2010년 12월 31일 금요일

2011년 신묘년 새 해를 맞으며

백호(白虎)띠라던 경인년이 하얀 눈 속에서 막을내리고 있다. 유난이 맑디맑은 하얀 눈위를 2010년 마지막 날 햇살은 찬란하게 비추고 있다. 어제의 아픔을 눈 속에 묻고 그저 새해를 축복 만 하자고 하는 것 같다. 하나님의 은총이다. 신묘년 하얀토끼가 눈 속에서 평화로운 자태를 들어내고 있다. 아름답구나. 평화롭구나. 그렇게 2011년은 시작되고 있다.

지난 한 해 나는 사적으로 많은 행운을 받았다. 무엇보다 KDI연구팀과 함께한 사우디아라비아 KSP사업이 그런대로 잘 진행되고 성과도 있었다. 이런 일들이 새해에 어떻게 현실적으로 실현될지는 두고보아야 하겠지만, 이런 국가대국가의 협력사업이 진행되는 것이 좋고 그것도 내가 젊음을 바쳤던 경제개발계획과 관련되어 진행되게 되어 더욱 보람을 찾을 수 있어 좋았다. 작년의 카자흐스탄 일과 비교하면 사우디 일이 훨씬 긍정적이고 우리의 기대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새해에도 이 일이 잘 진행되어 마무리되기를 바란다.

지난 한 해는 무엇보다 세계적인 경기침체 속에서 한국경제가 비교적 잘 회복되고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금년 초 이 난에서 이야기하였던 6%대의 경제성장이 무난할 것으로 기대된다. 당초 정부가 4% 그리고 KDI가 5%대의 경제성장 전망을 내어놓았지만 실적은 그것을 훨씬 앞지른 수치이다. 물론 단순한 수치에 연연하기보다는 경제가 얼마나 구조적으로 튼튼하게 되었느냐 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하지안 한해동안 한국경제가 구조적으로 큰 개선을 이루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재정의 뒷밭임을 통하여 경기를 빨리 회복시킨 것은 정부의 경제운영이 나쁘지 않았음이다.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원자재가격의 급등 등이 새해 경제를 어둡게 보게 한다. 미국의 경기회복이 늦어지고 유럽국가들의 국가부도위협이 상존하고 있다. 세계적 자원블랙홀로서의 중국경제가 책임있는 행동을 할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많다. 이런 불안요인이 새해 세계경기를 어둡게 보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경제는 2010년 비교적 높았던 경제성장의 기저효과도 있다. 그러니 새해 경제를 4%대로 볼 수밖에 없게 한다. 설령 그래도 새해의 4%대는 지난해의 6%대에 못지 않는 성장의 흐름선상에 있다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지난해 한국경제는 괄목할 발자국을 남겼다. 무엇보다 한 EU, 한미 FTA를 이룬 것이다. 이에대하여 정치권은 반대의 평가도 하고 있지만 무식의 소치이고, 이는 한국경제의 발전을 위한 큰 의미있는 업적이라고 평가해야 한다. 정부의 노력과 행운이 함께한 한국경제발전의 족적이다. 물론 지난해 11월 11일 서울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도 정부가 자랑할 만한 업적이라고 해야한다. 이것은 단순한 국제회의의 개최보다는 훨씬 큰 의미의 발전계기를 한국경제에 가져다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언제 이런 세계열강을 한자리에 초대한 일이 있었던가? 그러나 이런 이벤트성 성과 보다는 G20정상회의 개최는 한국이 더 이상 개발도상국가로서 또는 남의 도움을 받는 처지의 나라가 아니라, 남을 돕고 남과 함께 대등한 위치에서 국가의 이해를 조정하는 명실상부한 대등자의 위치로 한국경제가 격상되었음을 말하여 준다고 할 수 있다. 극동의 작은 가난한 나라, 심지어 중국의 변방으로 비하되던 한국이 이제 그야말로 '동방의 등불'이 된 계기가 되었음을 한국인 들은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좋은 일에는 많은 시샘이 따르는 법, 지난 해 4월 그리고 11월 천안함폭침과 연평도피폭은 한국인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치미는 분노를 누를 길이 없게 한다. 오늘 섣달그믐 창박의 찬란한 저 햇살은 북녁에도 똑같이 비추고 있을텐데 북한정권은 왜 그리 몬난짓만 골라하나? 그들의 말대로 '우리끼리'에서 왜 나 아닌 우리의 상대방인 남녁을 죽이려만 하는가? 잘살려고 열씸을 다해도 어려운 세상에 왜 망하지 못해 안달을 하는지, 이제 울분보다 포기가 우리를 감싼다.

남녁의 인사들 중에도 한심한 사람이 자꾸만 늘어가는 것도 우리를 슬프게 한다. 왜 멀정한 사람도 정치권에만 들어가면 수준이하로 변하는지 알 수가 없다. 지난 한해동안 그것도 북한의 위협 속에서 행해진 한국 국회를 중심으로 한 정치권의 행태는 유치 그것이었다. 국가의 안보 앞에서도 당장의 자기 이익만 앞세운 짓거리는 그것이 한국국회, 정치권인지 북한정권의 앞잡이인지 구분을 어렵게 한다. 비단 국회뿐만 아니라 그 국회의 아들 격인 지방의회와 서울시의회의 연말 행동을 보면서 우리는 슬프지 않을 수 없다.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게 민주주의 자격이 있는 국민인지 의심나게 한다.

무상급식을 둘러싼 서울교육감인가 하는 인사는 무슨 진보사상가랍시고 으시댄다. 세상에 외눈 하나로 세상을 보면 그처럼 쉬운 일이 어디 있겠나? 능력이 있어 모두 무상급식을 하면 좋은 것을 누가 모르나? 그러나 우리의 재정능력이 따르지 못하는 것을 왜 생각 안하나? 물론 다른 못마땅한 경비를 다 깎아버리면 그 재원이 마련 된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러면 그 부문은 어떻게 하나? 서울시장이 형편상 어렵다고 하면 왜 서로 고민하고 점차적인 방법을 찾지 못하는지 모를 일이다.

보편적 복지라는 개념으로 국민을 호도하려는 노력은 비단 이것뿐이 아니다. 보편적복지를 하려면 국가재정이 그야말로 튼튼해야 한다. 그것을 잘 못 손댓다가 망가진 많은 선진국의 예를 보지 못하는가? 공적복지는 그야말로 4대공적보험 즉 국민연금, 의료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 EU 국가들 중 공적보험의 재정구조 부실로 파탄직전에 있는나라가 많음을 보고 있지 안은가? 70%의 보편적복지를 실현한다는 막연한 구호가 국가를 파탄의 지경으로 만들 것임을 우리는 단단히 이해해야 한다. 이 퍼퓨리즘이 지금 우리사회에 그리고 심지어 이명박정부 안에도 점점퍼져가고 있음을 보면서 이것을 차단하는 계기가 단단히 마련되어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보편적복지는 4대공적보험으로 국한하고 나머지는 사회가 이를 맡아야 한다. 전교조, 민노총, 농민등 사회각계각층이 다시 한번 마음을 정돈하는 계기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자 이러한 우리주변의 얼키고설킨 어려움들은 새해아침의 설렘에 비하면 다 딛고 지나야 할 과제이고 우리의 의무이다. 새해 우리주변은 너무 활력이 가득차 있음을 발견한다. 길게보면 우리 5천년 역사에 이보다 국운이 융성하고 번영이 구가된 때가 있었는가? 우리국민이 이렇게 활기에 차 있었는가? 우리가 대한민국국민임을 이보다 더 자랑스러워했던 때가 있었는가? 우리의 젊은이들이 세계를 껴 안는다. 운동에서던 학문에서던. 우리의 과학이 세계를 놀라게 하고, 우리의 활기찬 비지니스가 세계시장을 누빈다. 세계적 흐름이라고 하는 저탄소녹색성장(low carbon green growth)의 최 전방에 한국경제가 있고 한국정부의 정책이 있다.

새해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있게 나아가자. 우리를 쭈볏거리게 하는 문제들도 그것이 우리의 발길까지 맊게할 수는 없다. 자신감 그것이 첫째이고 물러서기보다는 부지런함이 둘째이다. 그리고 연구하고 개발하고 실천하는 과학한국이 다음이다. 그리되면 한국은 세계에 우뚝솓는 국가가 될 것이다.

2010년 12월 24일 금요일

사우디 여행 낙수

금년들어 벌써 세번째 사우디아라비아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한.사우디 Knowledge sharing program 사업수행차 지난 12월 16일부터 22일까지 리야드에서 일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거기에 있는동안 마침 연평도 폭침에 대한 대응 군사훈련이 우리국군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가슴조리며 북한의 억지포격이 또 일어나면 어쩌나하고 일행 모두는 초조한 순간을 보내고 그리고 귀국비행기에 올랐습니다.

2010년 3.4% 2011년 4.5%(IMF전망)의 경제성장과 미국달러기준 700억불의 국제수지 경상흑자를 시현하고 있는 사우디경제는 지난 6년동안의 기름가격지지덕분에 큰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부럽기만 한 일이고 세계돈이 지금 중동으로 모이고 있는 것이 실감납니다. 틈나는대로 사우디경제현황을 정리해 볼 참입니다.



<내 나라를 보며>

복잡하던 여행길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밤
비행기는 내 집 같구나.
상냥한 승무원의 미소는
내 딸 같기도 하고
편안한 안방같은 자리에서
잠에 빠진 나는
소란스런 바깥 소음에
눈을 뜬다.
그리고 그것이 비행기 소리임을 알고
팔과 다리를 쭉 펴면서
아침 침대에서처럼
느긋하게 창문을 연다.

뾰족뾰족한 내 나라 산하는
아침햇살을 찬란하게 머금고 있다.
어디일까?
거므틔틔한 겨울 산 정상들
등성이 바위들은
태고의 평화를
그저 넉넉함으로 나를 반긴다.
아 아름답구나.
조용하구나.
스키스로프의 하얀 눈길이 번영을 이야기하는구나.

저 햇살이
저 평화가
어제도 그랬을 텐데
그리고 그 햇살이 북녘 땅에도 그랬을 텐데
왜 그들은 남녘 하늘에 포탄을 쏘는가?
왜 죽이려하나?
이 평화를 이 번영을 왜 부시려하나?
거기도 내 조국이었고
내 이웃이었는데
왜 저리도 못난 짓 만 하나?
찬란한 아침 해는
그래도 그들의 팍팍한 삶에도
같이 비출 텐데
그들의 옹색한 처마 끝에도
벌거숭이 산자락에도
똑같이 비출 텐데...

남의 나라 경제발전을 돕는다고 돌아다니는
오늘이
왜 그들은 잡아주지 못하는가?
경쟁력을 갖추고
번영을 이루고
그렇게 함께할 날이 멀지 않을 것을
왜 나누지 못하는가?
나를 죽이려는 저 포성이
우리의 평화를
번영을
찬미하는 축포가 되는
그런 날은 언제나 오나...

2010년 12월 6일 월요일

한미FTA 타결 윈윈이 맞다

일요일 날(2010년 12월 5일)갑자기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된 한미FTA 타결내용을 놓고 야당에서는 굴욕적인 타결이라고 비난하면서 장외투쟁까지 나서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지금 야당인 민주당이 집권하였던 노무현정부시절에 추진된 한미FTA는 그동안 4년여의 시간을 지나면서 미국과 한국 모두 제대로 절차진행을 하지 못하면서 정치권의 큰 논란의 이슈로 등장하였고, 미국의 오바마대통령은 대통령선거공약으로 자동차협정내용의 수정을 내걸었었다. 당초 협정안대로는 한미FTA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한국은 한국대로 미국정치권의 엉거주춤한 입장을 되받아 국회비준을 미루면서 쇠고기를 비롯한 한국산업의 피해를 부풀려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는 사이 미국의 리먼금융사태가 발발하고 세계경제와 미국경제가 세계경제의 불황극복에 함몰되는 가운데 FTA 추진상황은 점점 원점에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2010년 11월 초 미국의 중간선거가 오바마의 패배로 끝이 났다. 선거 패배 이후 오바마로서는 새로운 계기 마련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한국에서 G20정상회의를 지난 11월 11일 개최하게 되었다. 미국과 한국은 서울정상회의를 계기로 가시적인 성과물을 내고자 한미FTA를 다시 들고 나왔다. 그러나 양국의 협의는 그리 간단하게 끝이 날 수 없을 만큼 예민한 이슈를 가지고 있었다. 한국의 쇠고기와 미국의 자동차가 피차의 양보할 수 없는 지렛대였다. 그것은 협의내용의 어려움보다는 어떤시점에서 어떤구실을 가지고 설득해 들어갈 것인가하는 사실내용과 좀 다른 예민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 협의 과정을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G20때 한미정상회의 당시 이문제를 빠른 시간 내에 다시 협의하기로 하였다는 내용을 발표할때 그 발표시점과 계기마련에 보다 신경을 쓰는듯한 인상을 받았었다.

그리고 한달도 지나지 않아 한미간의 협의는 다시 시작되었고 드디어 2010년 12월 4일(한국시간) 합의에 이르게 되었다. 물론 지난 11월 한미협의 미완료를 발표할 때 영종도피격을 예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연평도사건이 일어났고 이와연관 된 한미간의 군사협력활동이 확대하게 된 시점에서 양국정부는 한미FTA 타결을 해 낼 수 있는 계기를 잡게 되지 않았나 유추해 본다. 그것은 한국의 야권 일각에서 말하는 대로 한국정부가 미국의 안보신세를 갚기 위해 대폭적인 양보를 하고 이끌어낸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안보와 경제 양면에서 한미간에 공고한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북한에 대한 1차적인 압박이기 때문에 양국정부가 최대한 서둘러 마무리하였을 것으로 판단한다. 기회와 명분이 합치하는 것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굴욕외교, 퍼주기외교, 불균형협상 등등의 이름으로 폄하하고, 이것을 묵살하기 위하여 장외투쟁을 불사하겠다고 한국의 야당들은 벼르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내용을 따지고 보면 불충분한 것이 있다. 특히 자유무역협정을 한다면서 피차간에 기존의 규제(관세부과)를 존속시키고 미국의 자동차 안전기준을 종래대로 당분간 존치하는 내용등은 균형이 맞지않는 것 아닌가하는 섭섭함이 있을 수 있다. 또 우리측에서 얻어낸 돼지고기 관세유지나 제약업계의 시간벌기가 자동차협의에서 양보한 것에 비하면 훨씬 이득이 작은 불균형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단기적인 손익계산보다는 한미FTA가 다시 해결이 되지않은채 흘러가는 것에서 오는 장기적인 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다고 판단한다. 이명박대통령이나 오바마대통령이 서로 고양이 목에 종달기 싫다고 피할 경우 이문제는 쉽게 결말이 날 수 없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어느 계기에 결단을 내려 결말을 짔는 것은 국가운영자의 판단이고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미국 쇠고기 수입을 시작할 때 중고등학교학생들이 미국 쇠고기를 먹으면 죽는 것으로 이해될 만큼 한국의 여론은 비 이성적이었다. 지금 그런 방송을 해대던 언론인이나 가두에서 경찰차를 마구 부셔대던 사람의 가정에서도 미국 쇠고기를 먹고 잘 살고 있다. 특히 경제문제는 너무 감성에 치우치면 안된다. 보다 이성적으로 냉철하게 이해득실을 따져야 한다. 비록 지금 한국자동차가 미국의 관세가 없는 가운데 수출을 하면 훨씬 가격경쟁력이 있겠지만, 그 관세도 5년의 한시적규제이고 그 다음은 자유롭게 된다는 점을 먼저 생각해야 된다. 또한 반대로 FTA가 되지않고 그대로 간다면 더 높은 관세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게 계속되는 점을 생각해야 될 것이다.

경제협력과 관련된 협상은 단순한 현안과제 해결의 균형만 추구할 수 없는 복합적인 고려사항이 존재함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가 지금 이런 손익계산의 협상을 할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발전된 한국경제의 힘의 덕분으로 보아야 한다. 과거 우리가 아주 가난할때 선진국과 시혜적인 협상을 할 때는 말할 필요도 없고, 한국경제가 좀 발전하고 경쟁력이 생겼던 1980년대 90년대 선진국과의 경제협상에서도 논리성보다는 상황성이 훨씬 앞섰다. 개발도상국가이니까 좀 봐주는 상황성이 존재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쌀 수입규제이고 쇠고기 수입규제였다. 그러나 이제 G20회원국이 되고 한국의 경제력이 확장일로에 있으니 협상의 논리성이 강조되고, 더 나아가 한국과 이런 협정을 하려는 나라가 생겨난다는 것을 우리는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만큼 현장의 협상테이블은 더 어려움이 많게 된다는 점을 생각하고 협상에 임하는 정부와 협상관계지에게 힘을 실어주야 한다.

경제는 안보나 정치의 종속변수일 수밖에 없다. 어느 언론 기고에서 읽은 것이지만 연평도 피격이 생겼을 때 군이던 정치권이던 어느 누가 '내 책임이오'하고 들고 나온 사람이 있느냐고 한다. 그러면서 한미FTA 같은 문제가 제기되면 혼자 애국자인 양 입에 거품을 무는 것이 한국적인 현실이라한다. 그런사람들이 과연 한국경제를 위하여 얼마나 기여하고 헌신하였는지 묻지않을 수 없다.이제 좀 살게되니까 언제부터 그렇게 어깨에 힘을 주고 협상을 해보았는지 모르겠다. 걸뜻하면 가두시위를 하고 기물과 질서를 파괴하는 것을 보면 한심한 생각이 들지않을 수 없다. 연평도피격이 이루어진지 2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한국국회는 북괴의 만행을 규탄하는 결의안 하나 내지 못하였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그런사람들이 어떻게 애국을 논하고 한국경제의 불이익을 논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 대한민국국회는 한미FTA를 위하여 거리로 나갈 것이 아니라 또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데 정부보고 빨리 비준안을 제출하라고 독촉하여 비준결의를 해야 한다. 이것이 최소한의 애국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농민 기업인 근로자 모두 지금은 힘을 합쳐 한국경제가 보다 튼튼한 기반을 다져갈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내부적인 갈등을 무조건 묻어버리자는 논리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국가의 안위가 걱정이 되고 언제 어떤 형태로 북한의 공격이 있을 것인지 점칠 수 없는 현시점에서는 우선 한국의 모든 힘이 한 곳으로 모아져야 한다. 이것은 과거 군사정권시대의 국가안보우선 구호와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임을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한다. 내부의 갈등구조는 좀더 시간을 가지고 우리끼리 해결할 수 있다. 자신감을 가지고 국가위기에 대응해야 한다.

국가의 안보를 위하여 튼튼한 국방력이 필요한 것처럼 경제력 역시 안보의 필요조건이 되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한미FTA를 계기로 세계를 향한 한국경제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를 삼아야 한다. 이것이 한미FTA 타결이 윈윈이라는 이유이다.

2010년 11월 29일 월요일

연평도 피폭이 주는 교훈

일본여행길에 연평도가 북한으로부터 폭격을 당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내리막 산길에서 머리를 소나무에 받친것처럼 정신이 멍하는 충격 속에 사건 내용을 알아보기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우선 군인과 함께 민간인이 사망하였다는 소식에 더욱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 일정을 중단하고 귀국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어 저녁 호텔방에서 텔레비젼 앞을 지키고 앉아 있었지만 사건의 모두를 파악하지 못한 채 잠만 설쳤다. 그리고 이틀을 지낸 26일 귀국한 나는 무엇보다 27일 아침 다시 연평도에서 주민대피조치가 내려졌다는 소식에 전쟁을 실감하는 무서움을 느꼈다.

내 평생에 벌써 두번의 전쟁을 경험하게 되는가 하는 당혹감 속에 더욱 나를 실망시키고 있는 소식들을 들여다 보면서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우리 군에 대한 실망감이다. 북한이 500여발의 포격을 하였고, 그것도 150여발을 12분에 걸쳐 연평도에 폭격을 하였다는데 우리는 고작 80여발밖에 응사를 하지 못했다는 소식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아마 우리 군이 전략 상 일부러 제한된 응사를 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실상을 듣고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연평도에 모두 6문의 장거리포가 있는데 그것도 3개는 고장이 나 있고 나머지 3문을 가지고 80여발을 쏜 것은 그들로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보아야 한다고 어느 해군제독이 알려준다. 왜 6문에 불과하고 그것도 반은 고장난 상태로 국방을 하고 있는가? 그것도 나중에 뉴스를 통해 알아낸 것이지만 북이 사격을 종료한 후에나 겨우 우리가 응사하였단다. 적의 도발에 즉각 응사한다는 원칙에 어떻게 이렇게 느슨할 수 있는가? 또 국방부가 발표한 우리측 응사에 따라 북한 피해상황이 상당이 있을 것이라는 발표와는 달리 KBS 텔레비젼이 찍은 현장사진에는 피해상황이 파악이 안될 정도란다. 우리가 쏜 80발의 포탄은 필요한 피해를 주지 못했다는 결과가 아닌가? KBS 사진이 엉터리인가? 국방부 발표가 엉터리인가?

내가 이해하기로는 북한이 서해안에 구축해 놓은 장거리포들은 다 그런건 아니지만 많은 포대가 오래되었거나 심지어 6.25때 쓰던 것들이고 그것도 제대로 보수가 안되어 그 정확성이 훨씬 못 미치는 것들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결과는 북한이 쏜 포격은 비록 예상된 목표에 어느정도 빗나간 것들이 있지만 그 오차가 그리 크지 않아 마치 미리 그들의 목표를 완벽하게 파악하여(뉴스는 그것을 북한의 간첩이 한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조준사격을 한것으로 평가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보통사람이 이해하고 있는 방위능력이 거꾸로 된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북한은 오히려 정비가 불량하고 제대로 작동이 안되고 우리것은 잘 되어 있으려니 생각하는 일반인들의 기대가 정 반대로 나타난 이 현실을 군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해할 수가 없다.

천안암사건이 발생한지 겨우 8개월도 안 되어 그렇게 다짐하고 다짐하던 군의 완벽방위능력 제고가 겨우 이거란 말인가? 그러니 미국의, 일본의 언론이 한국의 방위능력이 허술함을 꼬집고 있는 것 아닌가? 왜 연평도에 6문의 장거리포가 고작이고 그것도 고장이냐는 질타에 예산타령을 한다. 이제와서 정부와 국회는 국방비 증액을 추진하겠단다. 이게 왜 예산 제약의 문제로 되나? 정신나간 사람들이다. 바로 코 앞에서 천안암이 침몰되고 그래서 수십명의 우리 아들들이 희생되었는데 군의 수뇌들은 그 사이 무슨 방위조치를 하고 있었단 말인지 설명을 해야 한다.

지난 27일 중국의 국무위원 우방궈인가 하는 사람이 갑자기 한국을 방문하여 토요일 외무장관과 그리고 일요일인 어저께 대통령과 많은 시간을 면담하였다. 그 사이 북한에서는 민간인 희생에 대한 유감표명을 하였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래서 생각이 아 무슨 진전된 상황이 있으려니 기대를 하였다. 그리고 그 인상 좋은 그 사절이 돌아가고 불과 몇 시간 뒤인 오후 다섯시 반 중국정부는 중대발표를 한다고 뉴스가 나왔다. 그러나 그 중대발표는 '6자회담 재개를 긴급제안한다'는 것이 고작이라고 한다. 완전이 누굴 놀리는 것도 아니고 우리를 얼마나 가볍게 보면 중국정부가 저런 일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외교의 이면에 무슨 다른 내용이 있을 수는 있지만 표면적인 상황으로 보면 중국은 마치 무슨 중재노력을 하는 양 모양새를 갖추는 척하면서 내용은 한국을 무시하고 북한을 불망나니 다둑거리듯 하고 있다. 실망이 아닐 수 없다.

오늘 29일 월요일 아침 10시 대통령의 대국민특별담화를 한다고 해서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았다. 현재의 입장에서 대통령의 말이 제한될 수밖에 없지만 막연한 '보복의지'의 표현 이상 별 내용이 없다. 기왕 특별담화를 할 요량이면 한국인의 철저한 보복의지를 표하고 이를 위하여 온 국민이 결속하고 또 결속하여 한치의 흔들림이 없는 국가운영을 하자는 멧세지를 보다 강하게 전달했어야 하지 않나? 약간 김빠진 기분이 드는 것은 기대가 너무 커서인지 모르겠다.

그러니 일본은 국회가 만장일치로 북한규탄 결의를 이미 하였는데 정작 우리 국회는 그런 결의 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더 나아가 사회주의 정당을 표방하는 일부 군소정당에서는 서해안에서 행하는 한미군사훈련의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나라가 있어야 절(寺)도 있다'고 말한 어느 스님의 말이 생각난다. 저들은 대한민국이 망하면 제 세상이 온다고 생각하나? 그렇다면 지금 연평도를 포격하는 무리와 무슨 차이가 있나? 소위 극우단체의 지나친 행동도 감정을 자제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우국충정을 나무랄 수는 없지만 너무 과격한 시위나 행동은 오히려 한국사회를 무정부상황으로 외부에 오해되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엇그제 CNN의 오보가 바로 그런 사례라고 생각한다.

결론은 이미 당한 일은 당한 일이고, 잘못된 일도 어찌할 수 없다. 다시 우리를 추스려야 한다. 우선 국회부터 그 알량한 정당패거리 싸움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무리 '햇볕정책'을 탓하고 지나간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원망해도 소용없다. 그것은 이미 지나간 일이다. 민주당도 이 지나간 정부에 기대어 다시 집권하고자 하는 망상을 버려야 한다. 역사는 앞으로 수뢰바퀴가 도는 것이지 그래서 가끔은 옛날이 그리울 때가 있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새 세상은 옛것으로 되돌아가는 법은 없다. 그래도 사회주의를 인생목표로 하는 인사들이 있다면 이건 할 수 없다. 그들이 원하는대로 하는 수밖에. 그러나 대한민국은 절대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가지않는다. 그렇다면 그들의 선택은 북한으로 가서 그들의 꿈을 피워야 할 것이다. 정 원하면, 사회주의 실현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한다면 제발 가라. 가서 돌아오지 마라.
이것이 싱가포르의 이광요수상이 했던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처리였다.

정부는 G20정상회의를 한지 얼마되었다고 이런 참담한 현실 앞에서 낙담만 하고 앉아 있으면 안된다.군도 개혁하고, 건곤일척 우리의 살 길을 밝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 길은 세계의 일원으로서 당당하고 활력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대통령이 지금 발휘해야할 리더십이다. 어려울 수록 한미 FTA를 매듭짔고 좀 손해보는듯 해도 이번에 해결해야 한다. 방위비를 증액하여 철퇴같은 요새를 만드는 마음으로 방위력을 키워야 한다. 이것은 국가예산의 재원의 제약이 문제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문제다. 방위력 증강에 최우선순위를 두고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세계의 일원으로 G20의 일원으로서 국제사회와 의연한 협력과 기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기업과 노동계 모두 나서야 한다. 나라을 위해 헌신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끼리 티격대는 싸움은 다음 언제라도 할 수 있다. 지금은 우리끼리 똘똘 뭉쳐 국력을 그리고 경제력을 더욱 키워야 할 때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되어도 대한민국 국민은 이를 극복하고 발전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런 멧세지가 대통령으로부터 나오길 기대한다.

2010년 11월 17일 수요일

포스트 G20 행사

25년전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 행사를 준비하며 한국사람들은 지겨울 정도로 '86, 88'이라는 말을 입과 귀에 달고 살았다.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하여 대한민국은 모든 것을 여기에 던졌다. 그리고 그 행사를 무사히 잘 끝맺음하였다.

아마도 올림픽이 끝난 다음 한국사람들은 우리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지구촌의 일원으로 우뚝선 것 같은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고 할 것이다. 일본에 주권을 빼았기고 육이오전쟁을 겪으면서 그리고 절대빈곤의 가난을 해쳐나오기 70여년만에 처음으로 가슴뿌듯한 행복감을 한국사람들은 느꼈다. 물론 그보다 3년 전 세계적행사라고 할 수 있는 IMF. IBRD 연차총회를 서울에서 개최한 경험이 있었지만 그래도 올림픽이 전 지구촌의 행사라는 점에서 우리를 더 뿌듯하게 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1999년에는 한국경제가 IMF의 대기성차관(stand by agreement)을 얻지 않을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고, 그후 10여년 동안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지나면서 한국경제는 망가질때로 망가진 상태에서 2008년 11월 미국발 세계경제위기를 맞게 되었다. 한국정부도 위기대응 측면에서 많은 정책수단을 강구하고 위기탈출을 위하여 총력을 기우렸다.

그래서 만들어진 G20 정상회의에 한국이 멤버가 되었고 그리고 2년이 지난 2010년 11월 서울에서 G20정상회의를 개최하게 되었다. 자연 그 회의의 주관국가로서 의장국 지위를 가지고 이 회의를 무사하게 끝을 내었다. 물론 이 회의가 올림픽같은 지구촌의 행사는 아니지만 선진국과 신흥국 정상들이 서울의 한자리에 앉아 세계경제를 논한 한국으로서는 기념비적인 행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1985년 플라자회의 같은 선진국들의 모임은 많이 있어 왔고 그런 행사를 우리는 옆에서 구경만 하는 처지였다. 이것이 신흥국들이 참여한 가운데 서울에서 처음 개최국이 되었다는 것은 아무리 조용하고 싶어도 그냥 있을 수 없는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회의를 준비한 정부 관계자의 노고를 치하해야 한다. 그 회의 결과를 놓고 물론 평가를 해야 하겠지만 그 이전에 우선 사고 없이 회의가 잘 마무리하게 된 것에 한국사람들은 뿌듯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회의 결과를 놓고 외신 특히 미국 측 언론들은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12일 회의결과를 '서울선언'이라는 이름으로 이명박대통령이 발표하자마자 CNN은 서울선언을 'failure'로 표현하였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국제수지 불균형을 해소하는 보다 구체적인 정책이나 가이드라인을 정상들이 합의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일 것이다.

미국이 취한 회의 몇일 전 6000억달러 자금살포가 환율저평가를 위한 한 수단이라고 독일이나 브라질은 직접 비난하고 나선 것이 가장 가까운 합의실패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중국이 속보이는 은행지급준비율 인상이라는 제스쳐를 보인것에 오히려 역겨움을 느낄 수 있지만 미국의 자금확장은 그런것을 뒤 덮기에 충분한 비난거리가 되고, 그래서 서울 협의에서 환율에 관한 합의를 이를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서울선언을 실패로 규정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나는 평가한다. 환율문제도 그 어려운 상황에서 내년 4월까지 국제수지관리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세계가 만들기로 합의한것도 하나의 진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의 어찌보면 오만한 자금확장이 국제수지불균형의 원인제공자가 중국이 아니고, 미국으로 변화 된 것 같은 착각을 가져오게 만들었다. 이런결과를 미국이 모르고 그런 조치를 취했을 리는 없다. 나쁘게 말하면 내가 하는 것은 다 선(good)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의 오만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서울 선언은 이 외에 많은 성과를 거둔 회의로 평가 될 수 있다. IMF의 구조개혁을 일구어 냈다. EU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지분율 6%를 신흥국에 이전한것이 그 첫째이고 또 대출제도를 바꾸어 사전적으로 회원국의 어려움을 지원하도록 한 것이 그 다음이 된다. 또 비정상적인 자금의 흐름을 규제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낸 것도 큰 변화이다. 투기적인 핫머니를 규제하는 것은 필요 불가피한 것으로 평가한다. 또한 개도국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합의를 해낸 것도 선진국과 개도국의 가교적 역할의 결과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제회의라는 것이 뭐 똑 부러진 결론 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자리를 함께하여 현안의 문제들을 함께 논의하고, 이해를 넓혀가는 광장이고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행사주관자인 한국정부와 한국인들이 보여준 정성스런 자세를 나는 높이 평가받을 만 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미흡한 면이 없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회의 결과에 대한 기대감을 너무 높게 설정하여 각국과 국내에 대하여 이를 제대로 절제하지 못하게 하였다고 나는 평가한다. 우리의 처지나 능력을 좀 겸손한 자세로 받아드리고 세계경제의 조정자로서의 자세를 보다 낮은 자세에서 출발하였으면 회의결과에 대한 평가가 훨씬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전체적인 평가에 큰 흠으로 될 수는 없다. 다른 한편 국내에서 우리끼리 자화자찬 만 하면 오히려 공이 반감 됨을 정부는 알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이렇게 수고하고 잘하였다고 우리끼리 뽐내보아야 모양만 사납게 됨을 알아야 한다. 무슨 국민보고대회니 이런 생색내기 행사를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촌스러운 것이다. 가만이 있어도 국민은 정부의 노고를 평가할 것이다.

2010년 11월 11일 목요일

Impressions of G-20 Summit meeting

G20Summit has started from today and tommorow in Seoul. World leaders including president Barrack Obama of united state of America, Huzintao of China and heads of Britain,Brazil, India, Russia etc have arrived in Seoul during the last couple of days to Seoul.

This morning of november 11, president Lee Myung Bak and Obama had a meeting at Chongwadai. And then news briefing of the two leaders has held at 15 minutes of 2 o'clock PM at Chunchukwan with very big conerns about the results of FTA negotiations between US and Korea which was kept during the last couple of weeks both sides of Korea and Us for final settlement before the G20 summit meeting.

The main contents of the news briefing summarized into three points; 1)enhancing close relationship between two countries 2)development of terms of conditions for 6 party talks continuations 3) the results of FTA negotiations between two governments which did'nt reach to the conclusions and presidents of two assigned to their teams to be finished within a couple of weeks.

The contents of news briefings gave us, boths sides of Korea and US, a little bit dissapointings but left some expectaions of intentional postponment for domestic political persuasions to each national assembly. On the other side, the faces of two leaders looked not bright, no smile and less energitic. Was that I too much sensitive?

2010년 11월 8일 월요일

벚꽃 단풍

그렇게도 화사한 꽃으로
너무 아름다워 오히려 우리를 슬프게 하던
윤중제 벚꽃
어쩌다 바람이 불면 이를 어쩌나 가슴 태우던
그러면서도 너는 왜 남의 나라꽃이 되어
잠시 서먹하게 한다.
그러다 속 좁은 나를 탓하며
너무 아름다워 내가 슬픈 너의 꽃잎에 볼을 비빈다.

한 여름 뙤약볕을
온몸으로 막아주던
벚꽃나무 그 싱싱한 입파리가
길게 누운 가을 햇살이 아름답다고
함께 찬미하자고 그리 애원하지만
인간은 바쁘다고 핑계 대며 너를 지나친다.
그래도 늙은 할머니는 굽은 허리너머로
잠시 잎 사이로 수줍게 인사하는 햇살을 어루만진다.
아름다웠다고
행복했다고
고맙다고.

어느새 벚꽃나무도 여기저기 울퉁불퉁 옹이가 생기고
갈라진 몸통사이로 개미가 휘졌고 지나간다.
아 연륜을 어찌 막으랴 어느새 거므스름한 내 피부를
그래도 애써 태연하던 그 푸른 이파리도
이제 너를 감싸주던 힘이 빠지는 것을
오히려 내가 나무에서 매어달리기도 힘 드는 것을
나무는 애써 슬프게 웃고 있다.

아니 온몸을 붉게 물 드려 너에게 다가간다.
너무 요란하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너무 초라하지는 더더욱 아니게
나무는 너에게 다가간다.
황홀한 이불이 되어 너를 감싸며 행복했다고 감사하다고.

꽃보다 더 아름다운 벚꽃 단풍
덜 뽐내고 아름다움을 오리려 감추고자하는
다소곳 조용히 너에게로 다가가는 윤중제 벚꽃나무
언제부터인가
인생이
저렇게 되어야 하는 것을 나는 모르고 살았다.
연륜의 아름다움은 원색을 버려야한다.
그리고 그저 조용히 너를 감싸주어야 한다.

밤사이
비가 오고
바람이 분다.
바람사이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절하게 떨고 있는 단풍잎을 보고
벚꽃나무는 애써 태연하게 말한다.
밟고 지나가는 인간의 발목을 감싸주라고
그리고 다시 자라나는 나무의 밑거름이 되라고
또 나뭇잎 사이로 바람이 분다.
무에 그리 급하다고 이렇게 가는 길을 재촉할까.

2010년 10월 25일 월요일

여중재 팁; G20재무장관회의 환율정책 협의결과

10월 23일 경주에서 진행된 G20정상회의를 위한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장 회의결과가 발표되었다. 그동안 환율전쟁으로 표현되는 최근 환율문제를 놓고 다음달 11일 서울 정상회의에서 합의점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이었고, 이 회의의 의제조율을 위한 경주재무장관회의는 세계적관심이 집중되는 회의였다. 한국이 의장국으로써 감당하기 힘든 이 어려운 문제를 잘 처리하고 정상회의를 마치는 것은 세계경제를 위해서도 좋고, 선진국으로 진입을 꿈꾸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도 그 위상제고를 위한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회의 전 몇주동안 과련된 어려운 많은 이야기가 나돌았다. 무엇보다 물귀신 작전 비슷하게 일본의 총리 그리고 재무상이 한국이 중국과 함께 환율조작국이라 지징하면서 세계경제운영의 책임을 다할 것을 주장하고 나섰다. 한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치부될만한 객과적 증거가 있는것도 아니고 어느나라나 하고 있는 중앙은행의 제한적 시장관여를 놓고 환율조각국 운운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물론 제한된 시장관여의 정도가 어느정도를 조작으로 볼 것인가 하는 객관적기준은 없다. 그러나 최근 원화의 절상 속도가 느리고, 어떤면에서 정체되었다고 평가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이는 한국정부의 바보같은 전략이라고 할 것이다. 아무튼 그렇다하더라도 일본은 몇주전 수십조엔의 시장간여를 한목에 내놓고 한 마당에 한국보고 환율 조작이야기를 하는 일본정부의 얕은 속내가 짐작되고 기분나쁜 이웃으로 다시 각인시켰다. 물론 일본정부는 사후적으로 발언취지가 잘못 전달된 것이라고 해명하였지만 그 속내야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중국 하나만 때리기 어려우니까 한국을 끼워팔기 식으로 엮어 댄 것이다. 미국은 느닷없이 경상수지 균형을 GDP의 4% 정도로 될 수 있도록 환율을 유지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이것도 말이 안 되는 힘의 논리이다. 국제수지불균형이 환율 하나의 요인으로 이루어지는 양 이렇게 목표수자 하나로 시장을 규제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독일이나 브라질은 미국의 무책임한 통화풀기에 따른 달러가치의 절하시도를 반대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이해 상충과제를 법적구속력이 없는 G20회의에서 합의에 이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더구나 지난 워싱턴 IMF회의 때도 조정에 실패한 환율협의를 경주회의에서 합의에 이르기는 매우 어려운 과제로 평가되었다.

이런 어려운 협의를 경주에서 합의에 이른 것은 매우 의미있고 잘된 일이라 평가할 수 있다. 우선 '시장결정적인 환율제도 도입'과 '경상수지 목표제 도입'이 나름대로 갖는 문제가 있고 집행력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지만 그래도 세계가 현행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의견의 일치를 보았고, 그것도 보다 시장친화적으로 결정된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나는 판단한다. 만일 이 안이 정상회의에서 각국별로 보다 구체화된다면 금상첨화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IMF 지분조정을 중심으로 한 국제통화기금 개혁에 합의하고 아울러 IMF가 각국의 시장상황과 이에 대한 대응전략들을 구체적으로 평가하는 보고서를 내도록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IMF는 G20국가를 5 카테고리로 구분하였다.

1범위; Advanced surplus economies : 한국 독일 일본을 거명하며 이들국가들은 수출 의존도 감소와 내수확충이 필요하다.
2범위; Emerging surplus economies : 아르헨티나 중국 인도네시아 이들 국가에서는 환율유연성 확대와 복지증진정책이 필요하다.
3범위; Advanced deficit economies : 미국 EU 이들 국가에서는 재정건전성유지와 global불균형해소방안 강구가 필요하다.
4범위; Emerging deficit economies : 브라질 멕시코 터키들을 거명하며 이들은 인프라스트럭쳐 투자확대,무역정책 개선이 필요하다.
5범위;Oil exporting economies :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들을 거명하며 경제다변화가 필요하다.

이런 세계경제의 카테고라이즈가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경제가 선진경제로 평가되는 것은 계면적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은 대목이다. 한국경제가 아직 개도국임을 이야기하자 IMF는 한국을 선진경제라고 하지 않으면 어느 경제를 선진경제라고 할 수 있느냐는 반응이었다고 언론은 전했다. 물론 그것이 한국경제에 대한 당장의 제재와 연관되어 있다고 평가하지만 그래도 매를 맞으면서도 그래도 어른 취급 받는것이 어쩐지 기분이 나쁘지 않음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덩치가 커지면 그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 이 대목을 잘 넘기면 된다. 한국정부와 국민 모두가 용기를 가지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

2010년 10월 12일 화요일

여중재팁; 오호라 금융실명제!

이제 있었는지도 잊어버린 금융거래 실명제를 왜 끄집어 내나? 생경맞은 이 과제를 새삼 거론하는 것은 나라도 한번은 이 문제를 이 시점에서 거론하고 가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책임감에서다. 1981년 장영자금융사건이 일어나 한국의 자본시장이 쑥대밭이 되었을 때 다 망가진 마당에 그래도 금융실명제라도 건지자 하는 소박한(정치권에서는 우리를 백면서생이라 했다) 마음에 당시 재무부 일각에서 들고 일어난 것이 금융실명제였다.

여러 난상토론이 있었지만 처음에는 별 생각없이 원론적으로 찬성을 하던 일반의 지지는 정치권을 중심으로 곰곰히 내 이해는 어찌되나 따져본 다음 결론은 반대로 돌아섰다. 새 제도하에서 정치자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를 궁리하던 정치권은 특히 당시 여당인 공화당도 준비부족을 구실로 반대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명분상 내칠 수가 없던 당시의 국회는 이 제도을 5년 후(1986년 이후) 정부가 정하는 시기부터 시행한다고 하는 해괘한 부칙을 삽입하여 금융실명거래법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그 5년이 지난 후 다시 6년이 지난 1992년 김영삼정부에 의하여 금융실명제는 시행에 들어갔다.

금융실명제가 실시된지 18년이 지난 지금 한국사회에는 이 제도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가? 지금 금융가에는 어느 금융인이 금융실명법을 위반하였다 하여 이의 처벌 여부가 관심이 되고 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이 금융인의 차명계좌가 1000개가 넘는다고 하고 있고, 그 금융인은 관행적으로 이루어진 일들로 치부하고자 하는 듯 하다. 여기서 나는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왈가왈부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것은 금융당국과 사정기관이 알아서 할 일이고 나는 이 제도를 끄집어 냈던 한 사람으로서 반성하고자 하는 뜻으로 몇가지 문제을 제기해 본다.

우선 한국인의 불공정 의식을 생각한다. 그동안 한국인들 중 금융실명제 위반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문제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소위 권력층에서 이런 사건이 크게 문제된 것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과문한 면도 있겠지만 정치권이나, 지금처럼 금융업당사자가 직접 실명제 위반을 이르켜 문제가 된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금융실명법이 잘 작동되어 불법사례가 줄어들어서 그리 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덮어 두었을 개연성이 더 많다. 그렇다면 무엇하러 금융거래를 실명화하도록 법제화 했단 말인가? 사실 행위에 대한 객관적 정당성, 합리성, 논리성 보다는 남들도 하는데 하는 자기변호성, 은밀성 등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한국의 독특한 문화를 간과한 대목이다. 요즘 정부가 내 세우는 '공정'의 화두도 따지고 보면 비슷한 범주의 규범과 현실의 괴리를 우리에게 안겨줄 가능성을 놓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 제도 도입 초기 강조되었던 것은 이것을 남의 뒷조사에 중점적으로 사용할 경우 이 제도의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를 시행한 김영삼정부나 김대중, 노무현 정부 모두 이 제도를 남의 뒷조사에 보다 중점을 두어 사용하였다. 그러니 금융거래의 지하화는 더욱 깊어만 갔고 관행은 고쳐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 제도 도입 초기 이렇게 현대생활이 기계의 지배하에 있게 될 것에 대한 예측이 부족하였다. 사실 금융실명거래제도가 도입되지 않았을지라도 현대의 IT를 중심으로한 기계문명생활은 모든 것을 감추면서 또는 얼굴을 감추고 또는 남의 이름을 빌어서 행동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거래의 지하화는 기계의 이용과 함께 점차 줄어들고, 자연스럽게 실명이 확인되는 거래가 정착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이제도 도입을 원천적으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 이 제도 시행을 잘못한 정부나 권력을 장악한 계층의 잘못이지 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은 물론 아니다. 또 선진된 사회를 지향하는 작금의 한국사회가 금융거래의 실명화를 땅에 묻어두었을 경우 거래의 선명도는 더욱 떨어지고 사회범죄는 더욱 늘었을 것이다. 그리고 금융산업의 발전도 그만큼 뒤쳐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을 보면서 공연히 제도만 만들어 남의 뒷조사의 도구 노릇이나 하게 만들고 말았다는 자책이 들고 있음은 어쩔 수 없다.

금융업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 제도가 있음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그 많은 비실명거래를 관행적으로 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많은 비실명구좌를 조사하고서도 엉거주춤 꾸물댄 금융감독원의 태도는 무엇인가? 이 사건을 쳐다보는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하나도 금융실명거래제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자신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제도가 있으면 무엇하나 제도는 수단에 불과하다. 문제는 그 제도의 취지대로 현실이 발전해가는 것이 중요한것 아닌가. 잃어버린 30년인 것을!

2010년 10월 11일 월요일

여중재 팁; 'IMF환율조정 실패; 서울서 결판'

2010년 10월 11일 한국경제신문은 최근 IMF 총회 후 환율과 관련하여 'IMF 환율조정 실패; 서울서 결판'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내용을 읽어보지 않아도 무슨 내용인지 짐작이 가는 기사를 보면서 피식 웃지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결판'이라는 용어였다. 무슨 OK목장의 결투를 연상하게 하는 '결판'이라는 용어를 환율과 관련하여 사용하고 있는가?

우선 그만큼 작금의 환율관련 논의가 국제사회에서 전쟁으로 표현될 만큼 치열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리먼사태 이후 경기침체의 해법을 거의 모든 나라가 수출에서 찾고 있다. 따라서 당연히 단기적인 경쟁력확보의 방법으로 환율을 생각하게 되고, 환율을 자국에 유리하게 이끌기 위하여 무리한 방법을 염치불구하고 써대는 모습을 연출하게 된다. 그 맨 선두에 중국의 위안화가 있다. 그러니 중국보고 환율을 절상하라고 미국을 위시한 서방국들이 앞장서 주장하고 있고, 이의 영향권 하에 있는 IMF를 비롯한 국제금융기구들도 함께 편들고 나서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발끈하는 것은 물론 중국정부다. 마치 국제환경문제회의에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과거 수백년동안 경제개발을 하느라고 그리고 지금 그들의 부를 유지하느라고 공해물질을 마구 배출시켜 놓아 지구를 병들게 하여 놓고, 이제와서 이를 막기위하여 앞으로 추가로 환경위해물질배출을 억제하자고 나서고 있는 것은 개발도상국가들에 대한 차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과거 환율의 이득을 실컷 누려온 미국등 선진국들이 무작정 위안화에만 초점을 맞추어 비난하는 것은 그것도 최근 수개월 동안의 환율변화수치만 가지고 비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중국의 입장일 것이다. 이에 맞서 중국은 마치 위안화절상을 받아드리면 중국의 기업들이 도산하고 이에 따라 엄청난 수요감퇴로 세계경기가 결단난다고 협박성 발언을 하고 있다. 앞의 논리는 같은 개도국 입장이었던 한국의 입장에서는 수긍이 가는 대목이지만, 뒷부문 즉 위엔화 절상으로 중국 경기가 후퇴되어 이것이 세계경제괴멸을 가져온다는 논리는 깡패를 연상하게 한다.

문제의 심각성 때문에 IMF는 2010년 연차총회에서 환율조정을 위한 회의(IMFC)를 하였으나 조정에 실패하였다고 언론은 전하고 있다. 일반이 생각하는 1985년의 플라자 합의 같은 것은 중국을 상대로 불가능함을 먼저 생각하여야 한다. 최근 천안함 사태에서 보여준 중국의 막무가네식 태도, 북한의 후계구도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 센가꾸열도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에게 보여준 무서운 협박 그리고 더 나아가 중국의 동남연해에서의 영토주권확보를 위한 주장 등 중국은 무서운 모습을 여과없이 연출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다. 무섭다고 할 수밖에 표현할 수 없다. 국제적 예의나 관습 또는 세계를 책임지는 리더십발휘 같은 낱말은 이 앞에 생경스럽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중국이 환율조정에 호락호락하겠나? 그러니 IMF 본부에서 이루어진 회의에서도 안 된 것을 다음 달 서울에서 '결판'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나?

무엇보다 환율을 전쟁하듯 결판 내는 식으로 조정할 수는 없다고 본다. 서로 차분하게 이해득실을 따지면서 서로의 이익이 최대화되던가, 아니면 피해가 최소화되는 수준을 찾아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 성질의 일을 지금의 중국과 해낼 수 있을지는 나는 의문을 가진다. 지금의 중국정부는 오로지 자국의 당장의 이익만 생각하고 국제적 룰은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북한의 김정일과 별 차이가 없다고 나는 본다.

따라서 다음달 서울의 G20회의에서는 환율문제가 의제가 되지 않을 수 없겠지만 주최국인 한국정부의 입장에서는 환율문제가 너무 크로즈업 되지 않도록 가능하면 돌아가는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할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이러다가 잘못 창조적리더십발휘라는 점에서 점수를 잃게 될 위험성이 있지만 지금 중국을 상대로 한국정부가 조정자로서의 리더십발휘 노력은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염려된다. 중국이 세계를 딛고 일어서기보다는 화평굴기(和平堀起)하기 바란다.

2010년 10월 5일 화요일

환율전쟁 접근법

환율이 미국 EU 일본 그리고 신흥시장을 막론하고 큰 변수로 등장하고 있고, 각국이 서로 이해가 엇갈리면서 이에 대한 대응심리의 심각도가 점차 높아지면서 ‘환율전쟁’이라는 칭호를 서슴없이 붙여대는 것이 요즘 언론의 자세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달러나 영국의 파운드화로 대표되었던 기축통화가 영국의 경제력쇠퇴와 함께 파운드화의 위세가 사라지면서 그 자리에 중국의 위엔 화가 체면 불구하고 등극하고 싶어 안달하고 있다. 국가의 경제발전의 정도가 반영되기보다는 덩치 크기를 앞세워 선진국이라는 이름의 요람을 마구 뭉개버리고자 하는 모양새로 요즘 중국의 위엔 화는 세상 무서운 줄을 모르고 대들고 있다. 그러니 환율전쟁이다.

중국은 최근 미국의 달러화 채권을 마구 사드려 세계에서 가장 많이 대미채권을 보유하더니, 이제는 일본 그리고 한국시장을 넘보고 있다. 금년 들어 중국은 일본과 한국의 엔화와 원화채권을 사들이고 있다. 시장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일본이나 한국경제의 입장에서는 환율이 큰 변수로 등장하게 됨은 말할 필요가 없다. 중국의 속내가 ‘안전자산의 확보’라고 선의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종국적으로는 중국의 이해에 따라 일본이나 한국의 환율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은 자명하다고 하겠다.

한국수출의 시장 의존도가 중국이 미국의 두 배가 넘는 현 상황 하에서 원화환율의 변화는 중국에서의 경제활동에 단기적으로 큰 영향을 받게 됨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 10년 전 한국경제의 외환위기 시 그 규모면에서 오늘 날 중국의 덩치와는 비교도 안 되는 헷지편드에 의하여 한국경제는 농락당하고 급기야 IMF에 갈 수밖에 없었던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 후에도 한국경제는 국제금융시장의 장난꾼 헷지펀드나 이를 부추기는 악의에 찬 해외언론 들에 의하여 큰 영향을 받았고, 지금도 거기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 수 없다. 더구나 최근 세계적 경기침체를 극복하는 방식이 선진국 신흥국을 막론하고 무역을 확대하여 경기를 부양하고자 한다. 각국은 수출을 증대하기 위하여 우선 환율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자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작금의 상황을 환율전쟁이라고 할 만 할 것이다.

일본을 위시한 몇몇 나라들의 외환당국이 최근 시장개입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옛날 방식으로 자국통화가 바라는 만큼 절하되지는 못할 것이다. 물론 한계적인 효과야 단기적으로 가져올 수는 있겠지만, 하루에 국제시장에서 거래되는 외환규모가 모르기는 해도 요즘 3조 달러는 넘을 텐데 하루 이틀 몇 억불 또는 몇 천만불 개입한다고 그 효과가 얼마나 갈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고 지금 1986년 소위 ‘플라자합의’와 같은 국제 빅딜을 할 수 있을까? 당시 일본은 지금의 중국처럼 세계경제에 직접영향을 미칠만한 힘도 약했고 중국처럼 막무가네식의 내주장만 하는 나라도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중국은 다르다. 중국의 위엔 화를 일시에 넉넉하게 절상하자는 합의를 국제사회가 이끌어내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해답은 자명하다. 무역은 자유무역으로 가고 자국의 경기진작은 재정(통화)을 통하여 하는 수밖에 없다. 한국정부가 11월 G20정상회의에서 이런 합의를 이끌어내려고 하는 것은 옳은 방향이라 할 것이다. 무역자유화를 더욱 진전시키는 세계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낸다면 한국정부는 세계경제를 위하여 큰 기여를 하였다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환율전쟁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더더군다나 중국의 위엔 화를 합리적으로 절상하는 해답을 당장 얻을 수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당분간 중국통화의 위세는 더 커질 것이고, 이와 관련한 상대국가의 경제적 취약성 노출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이런 환경을 전제로 한국경제가 환율전쟁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는 G20정상회의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고, 이의 대응 방식이 초미의 화급한 과제가 된다고 평가한다. 환율전쟁에 한국정부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환율전쟁의 접근방법은 G20정상회의로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경제운영에서 근본적이고 원론적 접근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판단한다.

첫째 한국경제의 수출의존을 주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 GDP의 40%가 넘는 수출의존을 얼마로 하는 것이 최선인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그러나 OECD 국가 중 그리고 어느 정도 산다는 나라에서 한국 같은 높은 수출의존 사례는 찾아보기 힘이 든다. 다른 나라가 어째서가 아니라 사실 수출 그것도 몇 개 되지 않는 소수기업의 수출에 목을 매고 있는 한국경제의 취약성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해답은 우선 경제활동 중 수출의 비중을 점차 주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 다른 말로 내수의 비중을 점차 늘려나가야 한다. 그것이 열린사회에서 옳은 일인가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이것은 개방 차원이 아니고 산업구조, 경제운영전략과 관련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내수 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설 토목 등의 분야가 아닌 기술 컨텐츠 융합 등의 전략이 보다 시급하고 실효 있게 추진되어야 한다.

둘째 국제경쟁력을 너무 가격중심으로 접근하면 단기적인 환율싸움만 촉발할 수 있다. 가격경쟁력보다 우선하는 비가격경쟁력 즉 기술, 원가, 경영의 혁신 등을 통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노력을 전략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물론 이와 관련하여서는 기존기업이 유리하고 중소기업 보다는 대기업이 유리할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정부가 하는 방식대로 정부가 대기업보고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시장간섭이고 가장 치졸한 방식이다. 그 해답을 시장에서 찾으라는 어느 원로교수의 말대로 정부는 시장간여를 하지 말고 오히려 시장에서 약한 입장에 있는 기업의 활동을 지원하는 파격적인 유인정책(incentive system)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시장의 왜곡은 공정거래정책으로 다스려야 한다. 이 길이 몇몇 수출대기업에 5천만의 목을 대고 있는 이 시장의 왜곡을 없애는 길이 될 것이다.

셋째 국가경영에서 안정시스템이 정착되도록 해야 한다. 비단 물가의 안정뿐만 아니라 사회전체가 안정된 질서를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무엇보다 사회가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에 대한 가치기준을 명화하게 해야 한다. 무엇이든 떼만 쓰면 되고, 법이고 질서이고 모두 이들의 떼 앞에 손을 드는 한국사회의 모순성을 제거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의 안정이고, 생활의 안전 확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공정과 혼동해선 안 된다. 공정과 정의 등의 가치는 아무래도 주관이 개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정부가 내 걸고 있는 공정의 실현은 철학적 관념적 이상일 수는 있으나 현실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질서 또는 가치기준으로 작동되기는 힘들다고 판단한다. 무엇이던 공정이라는 잣대를 들이밀 때 이것이 객관적으로 옳고 그름으로 결론 내기는 힘들 것이다. 그런 정의나 공정은 이념적 가치기준으로 작동이 되고 현실적으로 사회전체의 안정을 확보하는 기준은 법질서의 안정, 물가의 안정 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국가경영의 안정시스템이라고 평가한다.

넷째 경제운영의 우선순위를 안정에 두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물가의 안정뿐만 아니라 재정구조의 안정, 과다한 통화 공급의 지양, 시장시세를 반영한 금리운용, 시장개방의 확대 그리고 공정거래제도의 확충 등 경제운영에서 안정의 우선순위가 언제나 지켜지도록 하여야 한다.

다섯째 정치적 인기주의(populism)를 지양해야 한다. 현 정부의 ‘공정사회, 구현이나 친 서민으로 표방되는 어려운 계층을 위한 정책 등은 듣기만 달콤할 뿐 언제나 부족하고, 그래서 언제나 현실에 대한 불만만을 만들어 내는 인기주의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내년예산을 정부가 제안하면서 ’어려운 계층에게 따뜻함을 느끼게‘ 만들었다고 정부는 생색을 내고 있다. 국민들이 과연 내년 예산을 보면서 따뜻함을 느낄까?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기대감 만 높여 불만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게 할 것이다. 이명박정부의 후반은 이런 인기주의적 미사여구 (美辭麗句)사용을 자제하고 오히려 원리원칙이 강조되고 구현되는 사회를 강조해야 할 것이다.

이상의 원론적이고 원칙적인 경제와 국가운영이 추구 될 때 그 결과로 환율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는 점을 다시 강조하고자 한다. 외환보유액을 확충하고 필요하면 정부의 직접적인 환율개입을 하는 것으로 환율전쟁에서 이길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런 충동을 억누를 수 있어야 환율전쟁에서 살아남게 된다. 한국경제와 같은 그리 크지 않으면서, 지정학적인 취약점을 가지고 있는 경제가 환율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는 길은 원론적인 경제운영 뿐이라는 것을 정부는 되새겨야 할 것이다.

2010년 9월 25일 토요일

국격(國格)과 국력(國力)

2010년 9월 25일자 언론들의 주요 관점은 몇일 동안 관심사였던 일본과 중국의 해안도서 영유권을 둘러싼 분쟁에서 일본정부의 '백기 항복'기사였다. 사건의 본말은 일본이 자국법의 시행을 외치며 중국선장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겠다던 주장을 중국의 희토류(稀土類)수출규제시행과 일본인 건설업자의 구속 앞에 맥없이 무릅을 꿇고 만 내용이다. 직간접적으로 일본을 지지하였던 미국의 입장이 머슥하여 졌고, 한국인들의 가슴은 공연이 오그라든다.

최근 중국은 개혁개방을 앞세운 경제발전과 함께 정치민주화를 주창하고 나서고 있다. 사회주의를 표방한 중국이 정경분리로 시장경제를 주창하고 나설 때만 해도 제대로 성공할까 하는 의구심이 서방세계에는 있었다. 그것이 등소평의 흑묘백묘론으로 발전하자 중국이 제대로 시장의 힘을 믿고 있구나하는 믿음이 생겼다. 그 후 중국경제는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금년 말 GDP가 일본을 앞질러 미국 다음으로 세계 두번째 큰 경제로 발전하였다. 세계는 중국을 G2의 반열에 놓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 여세를 몰아 최근 중국지도자들은 북한의 김정일에게 개혁개방을 권유하고 있다는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또 최근 원자바오나 후진타오는 중국의 정치민주화를 거론하기 시작하고 있다. 발전이론 측면에서 보면 큰 흐름에서 중국이 제대로 발전의 변화를 진행하고 있는 듯이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번 센까꾸 섬 해상어민의 처리를 보면서 중국의 국격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물론 자국민을 보호하는 중국정부의 처사를 일차적으로 나무랄 일이 아님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 방법이 너무 힘 만을 앞세운 처사로 보여 실망감을 주게한다. 조직폭력배의 수법이 상대방을 힘으로 꼼작못하게 하는 것이다. 일의 옳고글음을 따질 필요가 없고, 더군다나 옆사람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오직 내 이익만 추구하면 고만이다. 중국의 이번 처사를 놓고 이렇게 비유하기에는 실례가 되겠지만 힘만을 앞세운 논리 앞에 실망을 감출 수 없다. 물론 이 일의 처사가 일본과 중국의 잘잘못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중국인구를 앞세워 일본관광객을 규제하겠다느니, 일본에대한 희토류수출을 막겠다느니 심지어 일본건설인을 구속하는 처사를 중국은 눈깜짝할 사이 해치웠다. 국력이다. 힘 앞에 꼼짝 못하는 일본을 보면서 과거 그들이 우리에게 하였던 처사를 연상하게 한다. 한국인은 지금도 물론 일본의 과거 조선침탈을 용서하지 못한다. 비슷한 내용의 힘의 논리로 일본이 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정부가 들어서자 정부는 한때 국격을 높이자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세계 10위권대의 한국경제에 맞게 그리고 G20정상회의 의장국 답게 국격을 올리기 위하여 대통령 산하에 정부조직을 만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무엇을 하였나? 쌀은 남는데 자국쌀 보호 만을 위하여 아직도 쌀 수입을 의무적으로 해야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천안함 사건에서 중국의 막무가네식 북한옹호에 대책이 없는 것이 한국이다. 일본의 독도영유권주장에 한발국도 진전이 없는 것이 현재의 한국이다. 그러면서 국격만 고상하게 떠든다고 되는가? 최근 공정사회구현이라는 정치철학적 담론 만으로 국격이 저절로 격상될 수 있을까? 총리인준을 한다고 몇날몇일을 허비하면서 남의 뒷 조사에 혈안이 된 한국국회의 국회격은 제대로 된 것인가? 자고 일어나면 김정일 북한이 어떤지, 도와주어야 할 지 하지말아야 할지 끙끙거리기만 하는 것이 우리네 솔직한 마음 아닌가? 모두가 안쪽만 쳐다보고 산다. 바깟은 보지않고 외면하려하고 있다.

자 이제 중국이 국력을 앞세운 세계굴기(堀起)를 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굴기가 성공적일지 여부는 좀 시간이 지나보아야 하고 이에대한 전망은 학자마다 엇갈리고 있다.나는 중국의 미래를 그리 긍정적으로 보고 싶지않다. 그러나 그것은 당장의 일과는 거리가 있는 이야기이다. 북한의 무경우한 행태에 치를 떠는게 우리 한국인이다. 이제 중국이 자국이익 우선만 막무가네로 확대하여 갈때 과연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깊이 고민해야 할 싯점이다. 그에대한 일차적인 대답은 국격보다는 국력 우선임은 자명하다고 하겠다. 우리 내부보다(inward looking) 바깟세상(outward looking)에 신경써야 한다.

2010년 9월 15일 수요일

여중재팁; 쌀 관세화 또 연기?

보도에 의하면 쌀 관세화를 위한 우루과이라운드협상이 올해도 또 실패하는 모양이다. 외무부에 의하면 최소한 이달(9월)말까지 한국정부가 이 협상을 통보하지 않는 한 관세화는 자동적으로 연기되고 그러면 내년 한국은 금년보다 2만톤이 많은 32만 7천톤을 의무적으로 쌀을 수입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농림부는 아직 농민단체와 협상을 하지 못하고 있고 그래서 이것이 이달 내에 끝을 내기 위한 행정절차소요시간을 감안하면 금년 관세화는 물건너 갔다고 한다.

농업경제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금년 쌀 생산예상량 4백7십3만톤의 소비잔량 8십만톤과 기존 재고 1백4십9만톤을 합한 재고량은 2백2십9만톤에 내년 의무수입량 3십2만 7천톤을 합하면 내년 말 재고예상량은 2백6십1만 7천톤이 된다. 이는 한국의 쌀 적정재고량 72만톤의 네배에 육박하는 수준이고, 그 재고를 위한 보관비가 4천억원이 넘는 수준이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새삼 놀라운 일도 아니고 벌써 10년 이상 되풀이되는 숙제이다. 관세화의 시한이었던 2004년을 넘겨 의무추가수입량이 매년 늘어나고 있는 것도 6년이 지났다. 생각해보면 이런 무책임은 세상에 없을 것같다. 정권은 말할 것 없고, 농림행정의 무책임성은 농민단체의 무책임성과 똑 같다고 평가한다. 농민단체는 생산자를 위한 단체라고 보고 그들의 막무가네 행동을 일단 이해할 수 있다하자. 그러나 그들의 행동이 정말 농민을 위한 것인지 더 나아가 한국국민 전체를 볼모로 너죽고 나죽자하는 식의 생떼인지는 평가가 엇갈릴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은 그것을 논하지 말자. 그리고 농림행정을 떠맡고 있는 농림부 더 나아가 이 정부의 무책임성을 비난하고자 한다.

이렇게 관세화여부를 결정하는 행정이 늦어진 이유가 농림장관 임명절차가 늦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도 이유가 되느냐 생각하면 한심하기까지 하다. 만일 농립부가 아니 정부가 쌀의 관세화가 더는 미룰 수 없는 주요정책이라고 한다면 왜 하필 농림장관을 그 시점에서 교체해야 했느냐에 정부는 답해야할 것이다. 또 새로된 장관도 만일 이렇게 시일이 촉박한 일이라면 밤을 낮 삼아 이 일의 타결을 위한 노력을 했어야지 내 임명이 늦었으니 내 책임은 아니다하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또 농림부에 장관 만 일하고 나머지는 들어누어 있나? 말이 되지 않는 변명이다.

국회등 정치권이나 언론들도 쌀이 남아도느니, 심지어 썩어가느니 허풍을 떨면서 북한에 못 갔다주어 안달만 할 것이 아니라 이런 근본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는 자세를 보였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생산과대만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연간 생산량의 7%에 달하는 쌀이 우리가 필요가 없는데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문제를 풀어가는 노력을 하여야 했다고 판단한다. 농민단체들도 진정으로 농민을 위하는 길을 찾는 노력을해야지 시장에서 쌀이 남는 문제야 우리가 알바 아니고 무조건 쌀 재배면적과 쌀 수매가만 확보하려는 구태의연한 자세를 버려야 할 것이다.

문제의 근본적인 중요성과 더 이상 연기할 수 없는 시급성을 정부 특히 대통령과 농림장관은 한국사회에 부각시켜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정치권과 언론도 이 논의에 강건너 불 보듯하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농민과 농민단체들도 보다 현실에 대한 진지한 접근과 고민을 함께 해야 한다. 이 문제에 관해서 우리 모두 반성하였으면 한다.

2010년 9월 11일 토요일

여중재팁; 한국노총과 경제단체의 정신나간 짓거리

보도에 의하면 전경련, 한국경총 그리고 대한상의가 한국노총에 파견되어 근무하는 127명 노동자들의 임금지원을 하기 위하여 100억상당의 기업모금을 한다고 한다. 노조의 전임자 수를 조정하기 위한 타임오프제의 실시에 한국노총이 편법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경제단체에 요구한 사항을 들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경제단체나 한국노총 모두 정신나간 짓거리를 하고 있다.

금액의 다과를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노조 전임자를 지나치게 많이 책정하여 노동귀족화하고 있는 현실을 시정하고자 수년동안 연기연기한 끝에 겨우 만들어진 노조전임자합리화대책을 정부와 노조가 합의하여 놓고 그것을 시행하려는 마지막 순간에 한번에 할 수 없으니 연차적으로 그 수를 주려나가겠다고 하여 소위 '타임오프제'라는 것을 연초에 만들어냈다. 쉬운 일도 아니고 이정도라도 해낸 정부의 정책의지와 이를 수용한 노조단체들 모두가 결단을 내렸다는 평가받기도 하였다.

당시 나는 이를 반대하는 의견을 개진한 바 있다. 타임오프제라는 편법이 다시 여러가지 시행상의 편법을 만들어 낼 것이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이 제도의 시행에 오히려 부담을 줄 수 있으니 어렵더라도 당초의 합의된 대로 노조 전임자 수를 조정하는 것이 옳다는 취지에서였다. 물론 한국 노동단체들의 정치적 힘의 우위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런 정책의 속성을 볼 때 단번에 시행해야 맞는 정책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타임오프제는 어렵사리 노사합의를 하여 시행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행과정에 현실적으로 어렵게 어렵게 노사단체협약에 이를 반영하는 모습을 보고 한국노사문화의 발전상을 보는 듯하기도 하였다. 개중에 노와 사가 서로 담합을 하여 단체협약에 반영되지 않은 뒷거래(이면협의)가 발견되는 사례를 볼 때도 몇몇은 그럴수도 있겠지 하는 넓은 마음이 생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번 경제단체와 한국노총의 공공연한 거래는 이 제도를 말살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고 판단한다. 한국노총이야 그렇다치고 경제단체들의 이런 정신나간 짓거리는 일반의 지탄을 받아 맛땅하다고 할 것이다. 일반기업에서 상급노동단체에 파견나간 사람들은 이런 편법으로 그대로 유지되고 회원사인 개별 기업에 있던 노조전임자는 왜 편법으로 그대로 유지되면 안되는지를 경제단체들은 우선 답해야 할 것이다. 한국노총에 이어 민주노총에서도 요구할 경우 이를 안 해줄 명분도 힘도 경제단체들은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개별기업의 노조에서도 이런 요구를 할 때 어떻게 외면할 수 있으며, 단체협약의 부당한 이면계약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느냐고 할 때 어떻게 경제단체들은 답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홍수에 강변뚝이 무너지는 것은 작은 구멍에서 시작된다는 논리보다 이경우는 아예 일부 뚝을 절단하는 행위와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결론은 이런 일에 가장 앞서 부당성을 주장해야 할 경제단체들의 무책임성을 우리 모두가 비판해야 한다. 노조전임자수의 합리적인 조정이라고 하는 오랜 숙제를 풀어가는데 노동단체들의 이해와 협조가 필요하지만 그 협조를 얻는답시고 내 할 일 팽개치고 먼저 장구치고 나대는 행동을 경제단체들은 하고 있다. 경제단체들은 이런 정신나간 짓을 당장 멈춰야 한다.

2010년 9월 3일 금요일

여중재 팁 : 9월이 오면

'9월이 오면'을 언제나 마음으로 기다려지는 말이다. 무언가 새로운 분위기, 새로운 기회, 새로운 행운이 올것 같은 막연한 기대가 때로는 나이 답지 않게 가슴까지 설레게 하기도 한다. 둘러보면 온통 답답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고 회색 빛 가운데 사는 느낌도 있는데 왜 이런 생뚱맞은 생각을 할까? 답답함의 일탈을 바라는 마음에서 일 것이라고 솔직히 고백한다.

그래서 금년 9월의 시작을 우선 밝게 시작해 보고 싶다. 우선 너무나 무더위가 긴 2010년 여름을 보내는 마음이 우선 상큼하다. 거기다 태풍 '곤파스'가 올드미스의 히스테리처럼 한반도 가운데를 할키고 지나갔다. 인명과 재산피해를 내고 자연 앞에 인간의 능력이 얼마나 무기력한 것인가를 한칼에 보여준 곤파스가 얄밉기도 하다. 그러나 달리 보면 우리 주변의 우중충한 일들을 초속 45m의 강풍으로 단번에 쉽쓸어 버렸다. 비온 후의 하늘의 가시거리는 내 눈의 백내장을 긁어 낸 착각을 가져다 준다. 코 끝으로 들어오는 공기는 곤파스가 남긴 바람과 함께 오랫만에 가슴을 대청소하고 머리까지 맑게 하는 것 같다.

김정일이 갑자기 중국을 가 후진타오와 함께 북중우호를 자랑하고 있는 가운데 북중과 한미가 상대적 연대확대로 새로운 냉전시대를 불러오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을하게 한다. 그래도 오늘은 그보다는 김정일이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좋게 생각하자. 또 우리도 너무 경직된 대북정책에 어느정도 사고의 유연성을 어떻게 가져오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자.

우리 국회도 오랫만에 야당 어느의원의 비리혐의에대한 최포동의안을 투표로 처리하고, 한나라당도 어느 어설픈 여성비하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국회의원을 제명처분하였다는 소식을 만들어 냈다. 국제적으로 커메디 국회로 유명한 한국국회에서 오랫만에 일(?)다운 일을 하였다고 생각하자.

전교조, 참여연대등의 상식을 뛰어 넘는 행동도 자제하는 것 같고, 기아 현대등 자동차회사의 무파업도 처음 이루었다고 한다. 또 크게 걱정하였던 노조의 타임오프제도도 그런대로 정착되는 분위기이다.

2분기 한국경제성장률이 전년 동기에 비하여 7.2%이고 국민소득도 5%를 넘어섰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발전이다. 거기다가 최근 원자력 등 자원수출 소식들이 여기저기서 들어오고 있고 수출도 잘되고 있다. 한국의 발전모델의 전수를 바라는 나라들이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제 한국은 젊은이들의 알자리 창출을 위한 정책과 함께 공정한 사회를 정부는 지향한다고 한다. 오히려 퍼퓰리즘을 걱정할 정도로 저소득층을 위한 정책노력도 한다고 한다. 물론 어려운 일이고 부작용을 걱정할 수 있지만 오늘은 이것들이 선(善)기능을 한다고 생각하자.

한국은 이제 1억 인구를 지향하는 장기발전전략을 생각해야 할 때다. 남북통일도 좋고 외국의 인구를 환영하고 받아드려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야 하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자 이제 이렇게 희망과 행운이 함께하는 9월이 왔다. 우리 한국 땅에 새로운 기회가 오고 있다. 이렇게 상쾌하게 9월을 시작하자.

2010년 7월 19일 월요일

국가운영전략의 새로운 접근

1. 한국민주주의의 자멸가능성

이달 초 한 일간지에서 서울대 전상인교수가 쓴 '한국민주주의의 자멸가능성'이라는 글을 읽고 많은 공감을 한 바 있다. 극도의 개인주의의 발현으로 한국사회 기존의 질서들이 파괴되고 있는 현실을 필자는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었다. 다섯가족 중 하나는 나홀로 족이 되어버린 한국, 국가나 동네 고향 동문이라는 전통질서가 개인주의적 이해(利害)로 서먹해져버리게 된 거리감, 더구나 노동조합 직장 시민단체 정당 등 사회조직에 발생하는 구성원으로 뜨악해 지게 만드는 개인주의의 노출 등은 한국사회를 이끌어가는 힘으로서의 동력을 잃게 만든지 오래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극단적인 개인주의의 발현은 권리만 말하고 의무는 말하려하지 않는다. 군중심리를 통해 위로를 받고, 집단행동을 통해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한다고 전상인교수는 분석하고 있다. 촛불시위가 그렇고, 월드컵축구경기도 단체로 모여 응원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다 보니 똑똑하고 성난 개인의 비위를 건드리는 것을 사회적 금기로 여기게 되었다. 극도의 개인주의 행동이 범람하는 한국사회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염치, 정직, 도덕, 책임, 배려같은 전통적가치는 현실에서 생경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2. 공리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공공선(公共善)을 사회적 덕목으로

지금와서 뜬금없이 250년전의 제리미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이 주장한 공리주의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오늘날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들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오늘의 발전을 이루었음을 말하고자 한다. 공리와 자유, 부패와 규제, 부의 사회환원과 경제활동의 자유, 부(富)에대한 경멸과 존경, 집단불법행동과 엄격한 법질서유지 등등 이런 상치된 가치와 질서들이 교차하면서 사회는 발전하여 왔음을 상기하고자 한다. 그들도 암울했던 시기가 있었고 사회는 그런 암울을 긍정의 사회질서로 발전시켰다. 지금의 한국사회의 극에 달한 개인주의 발현이 가져다 준 절망들도 새로운 협동과 협력의 한국사회를 잉태하기 위한 밑걸음일지도 모른다. 아니 긴 눈으로 보면 그럴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한국의 발전을 이야기할 때 소위 '압축성장'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 단순하게 시간의 흐름으로 오늘 날 선진국이 된 나라들이 200년 300년 발전과정을 겪었고, 한국은 불과 반백년사이에 발전을 한 것을 놓고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압축이라는 표현 뒤에 많은 부정적인 개념을 함께 주장하고 싶어한다. 군사독재, 규제, 정부주도 등등이 음영으로 나타난다. 그 압축성장의 반작용으로 오늘날 한국사회가 지나친 개인주의의 발현을 겪고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선진국들의 발전도 많은 시행착오 위에 오늘의 결과를 가져온 것을 인정한다면 한국의 빠른 발전 뒤에 나타나는 부정적 음영들도 변화의 밑걸음으로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압축성장의 표현을 싫어한다. 정확하게 이야기한다면 한국사회는 아직도 다른 나라들이 이미 거쳐간 발전의 고통골목을 지금 지나가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한국사회는 전통적가치라고 할 수 있는 부모에 대한 효도, 가정가치(famly value), 경로사상, 근면 자기희생 절략 이웃에 대한 사랑 등등의 유교적가치를 사회적덕목으로 가지고 발전하여 왔다. 지금 이런 사회적덕목이 극단적인 개인주의의 발로 앞에 많이 사글어들었다. 오히려 이런 소리가 시대에 뒤 떨어진 수구꼴통의 헷소리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의 전통적 가치가 완전히 사글어든 것은 아니고 불씨가 아직 조금은 남아 있다고 나는 믿는다.

3. 후쿠야마의 사회적자본(Social capitals)

20세기 미국이 낳은 석학 프란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yama 1952~)는 경제성장의 한 요소로서 사회적자본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생산의 3요소로서 토지 노동 자본이 가지고 있는 중요성에 못지 않게 한 사회의 발전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재화로서의 사회적자본을 주창하고 있다. 이는 아더 루이스가 이야기하는 경제하려는 의지(Will of economize)와도 상통한다고 나는 해석한다. 현대적 의미의 경제적 번영을 이루기 위하여는 생산의 삼요소에 못지 않게, 아니 더욱 중요한 것이 그 사회가 더 발전하고자 하는 발전동력이 있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이 발전동력에는 여러 요소들이 있고 그 요소들의 결합 융합 승화등의 과정을 거쳐 사회적자본이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근면 협동 자조 사랑 믿음 기술 과학 등등 이런 가치들이 서로 엉키면서 새로운 동력으로 등장할 때 그것이 후쿠야마가 말하는 사회적자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사회적자본의 크기를 가늠하는 하는 것이 개인주의 발현의 반대편 개념이 될 것이다. 다행이 한국사회는 전통적으로 다른 사회가 갖지 못한 유교적가치가 있다. 종교로서가 아닌 생활철학으로서 전통유교적가치를 한국적가치(Koresa's value)로 발전시킬 변화의 흐름에 지금 직면하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지만 현재 한국사회에서 극에달한 개인주의 발현이 역발상으로 전통적가치를 부활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4. 국가운영의 전략적접근

역발상의 챤스는 언제나 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천안함피격사건이 터지고 우리의 젊은 아들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건만 우리는 이에대한 보복은커녕 유엔 외교에서조차 중국에 퇴박맡고 북에 치운 결과를 가져왔다고 하는 것이 일본 언론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세계 15위의 경제대국(?)이라고 자화자찬하지만 그래서 G-20 의장국이 되었다고 우리끼리 자랑하지만, 미국경제는 말할 것 없고 중국경제의 부침에 신경과민할 수밖에 없는 의존형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 한국경제다. 크기는 제법 크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국제헷지펀드에 이리저리 휘둘릴 수 있는 것이 한국경제의 모습이다.

그런데 한편에서 돌아앉아 천안함이 북의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어 안달하는 인간들, 시민단체들이 있다. 국회의 한편에서는 그게 어느나라 정치인지 붉은지 퍼런지 구분이 안가는 정체불명의 정치꾼들이 판을 치고 있다. 집권당이라른 사람들은 국가운영의 기본도 모르고 우물안 개구리들의 편싸움만 그 좁은 우물바닥에서 해대고 있다.

한국사회가 지금 이상의 여러 위기에 있다면 그것은 흔한 말로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나는 판단한다. 한국사회를 하나로 묶어가는 발전의 동력을 만들어가면 된다. 그것을 옛날 규제적적 방식으로 되지 않는다. 그것은 후쿠야마가 말한 사회적자본을 키우는 전략을 만들어가는 데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하나? 간단하다. 시장, 법치 그리고 전통적 가치에 접목된 사회공공선을 일으켜세우면 된다고 나는 믿는다. 그것은 위에서부터 시작되어 종국에는 한국사회 모두가 함께 해가야 한다. 발전의 동력을 확충해야 한다. 지금이 이를 풀어가는 지혜와 노력 그리고 행동이 필요한 시기라고 본다.

2010년 6월 17일 목요일

여중재 팁 : 유월은 가는데

할일은 많은데 시간은 가고....더 가까이 가고픈데 게으름이 죄스러워 자꾸만 쭈볏쭈볏 돌아서 가는 내 자신이 민망하다. 6월 와서 글 한꼭지 쓰지 못하고 벌써 하순을 맞으니 꼭 죄지은 것 같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게으름 피웟다면 소가 웃을 것이고, 아무튼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각설하고 지난 한달여 사이 우리 주변이 너무 소란스러웠다. 무엇보다 천안함사건에 헉하는 분노를 누를 수 없었다. 6.2지방자치단체 선거가 너무 황당하게 우리 주변에 닥아왔다. 허울 좋게 보수가 지고 진보가 승리하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고 이러면 안되는 결과가 많은 지식인들을 멍하게 만들었다.

접시속 안일 속에서 황당한 공천으로 처음부터 실패를 자초한 한라당, 이기(利己)의 극치를 보인 민주당, 뭐가 뭔지도 모르고 혼자 벽에다 대고 외쳐댄 보수자처의 선진당 그리고 그보다 훨씬 영악한 전교조나 자기들끼리 진보라고 외쳐대며 정치꾼들이 적진 앞에서 뭉쳐댄 단일화 야합, 이런 것들이 6.2선거라고 나는 보았다. 다수결이나 대의정치라는 민주주의가 이것인가? 소위 보수라는 인사들은 혼자 잘났다고 모두 나서고 그에 맞서는 진보라는 이름의 인사들은 하나로 뭉치면 그 선거결과는 소수가 다수를 이기는 것은 너무나 뻔한 노릇 아닌가?

천암함 사건을 국제적으로 알리고 안보리에 가지고 가는 과정에서 보여준 북한의 황당한 언동, 그리고 전략적동반자관계로 격상되었다던 중국의 이율배반적 행동 등등이 정말 오늘 분통을 터트리게 한다.

그 어간에 소위 참여연대가 저지른 유엔과 국제사회에 보여준 천암함 사건 재조사 의뢰는 우리를 헉하게 만든다. 얼마나 속이 타버리면 천암함 유족 어머니가 참여연대를 찾아가 무릅꿇고 제발 그런짓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하였다는 기사를 보며 나는 그만 울고싶어졌다. 망나니 자식을 둔 어머니가 그 자식을 잡고 울며 그러지 말아달라고 하는 하소연하는 모습을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참여연대의 어떤 인사가 언론에 나와 많은 나라가 유엔에 자국의 잘못을 하소연하는 것은 일반화된 일이라고 떠들어댄다. 어느 나라 NGO가 자국의 안보문제를 가지고 정체성을 저버린 저런 반국가행위를 하는가 대답해 보라. 정말 저런 인사들이 한국사회의 권력자가 (참여연대도 오늘날 한국의 큰 권력기관이다)되어 마음대로 씨부려대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그 사람의 자식이 그사람의 형이나 아버지가 군에서 저렇게 황당한 죽음을 당했다 해도 그는 그것은 증거가 불충분하고 그러니 누가그랬느지 국제사회가 밝혀달라고 할까? 우리의 안보와 정체성을 거부하는 그런 언동이 또 먹혀드는 사회가 한국이다.

또 기막힌 일은 이명박정부가 천안함 사건과 관련하여 감사원 감사라는 것으로 군을 매도한 일이다. 나는 이상희 연합사령관이나 해군참모총장이 그날 술을 어떻게 먹었는지는 모른다. 또 그랬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감사원장이라는 사람이 국회에 나가 감사결과 잘못한 인사들 중에는 형사처벌되어야 할 사람이 십여명이 있다고 발표하였다. 내가 여기서 당혹해 하는 것은 군은 그들의 말대로 범죄집단이 아니다. 그런 우리 군을 몇명이 어떻게 술을 먹었고 보고체계가 어떻게 작동되었다는 것 등으로 전 군이 매도되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 없다. 그래도 우리는 군을 의지하고 믿고 살아야 한다. 그런 군을 저렇게 매도해도 되는가? 이것이 국가경영인가? 정부의 보다 깊이 있는 통찰이 있었어야 하지 않나 하는 마음이다. 북한의 유엔대사라는 인사는 뉴욕에서 만일 유엔의 제재가 있으면 북한은 군이 나서게 될 것이라고 공공연히 협박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군을 지지하고 군을 위로하고 군의 사기를 북돋아주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 이런 저런 일들이 나로하여금 글을 쓰지못하게 한 연유이다. 물론 변명이다. 그러나 누구 말대로 잔인한 유월이라 했는데 정말 잔인하게 오늘 우리를, 대한민국을 어렵게 한다. 무슨 말을 한들 지금 이 절박하고 가슴을 파고드는 처절함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저 멍하니 시간을 보낼 수밖에....

2010년 5월 6일 목요일

섣부른 일탈이 된 타임오프제도 유감

요즘 타임오프라는 그럴싸한 이름의 제도가 한국시장을 골치아프게 만들고 있다. 노동조합법에 이미 반영하여놓고 13년동안이나 그 시행을 유예하여 온 노조전임자 무급제도가 시행을 앞두고 기존 노조의 반발이 심하여 약은 꾀를 낸다고 해서 만든 제도가 소위 타임오프제이다. 2010년 1월 노조법을 개정하여 타임오프제(유급근로시간 면제)를 금년 하반기부터 시행하도록 제도화하였다. 이 새 제도의 시행에 앞서 노.사.정(勞使政)은 타임오프의 구제적 시행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타협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급기야 파열음을 내기 시작하였다.

이 제도를 시행할 경우 많은 노동조합의 전임자 수가 줄어들게 되고 그러다 보니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자기들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을 우려하여 기를 쓰고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만일 이대로 시행될 경우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낙선운동을 하겠다느니 등등 아마 날이 갈수록 그 반대 목소리는 더 거칠어질 것이다. 상급노동단체들 입장에서는 기존 수백명식 하던 전업노조원이 20여명으로 줄게 되니까 지나치다는 말을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이일은 지금 새삼스럽게 하자는 것이 아니고 원래 전업노조원에게 회사에서 봉급을 주자는 것이 잘못된 것이고 그런 유례가 없는 것인데도 한국 노조의 정치적 힘이 하도 강하다 보니 그동안 회사에서는 생산에 전연 참여하지 않는 인력에 대하여 회사돈으로 급여를 지급하게 만들었고 그것이 해가 갈수록 확대 일로에 있는 한국적 상황이다. 그러니 이런 불합리한 현실을 바꾸고자 그동안 많은 노력을 경주하였지만 성사되지 못하고 이제 겨우 이해가 합치되어 지난 1월 새로운 노조법에 이런 제도를 도입하게 되었다. 사실 이런 엉거주춤한 제도의 도입은 이미 오늘의 분쟁을 예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경쟁을 포기한 전교조의 생떼처럼 아마 앞으로 타임오프를 가지고 허구헌 날 시간과 노력을 쏟아붇게 될 것이다.

사실 노조 전임자는 노조의 돈으로 월급을 주어야 한다. 그것을 어떻게 회사돈으로 월급을 줄 수 있단 말인가? 노조에서 이야기하는 언필칭 규모가 작은 노조의 경우 전업노조원을 두기가 어려우므로 노동조합 활동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는 논리는 어느정도 수긍되는 점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그것도 전임노조원 하나도 둘 수 없는 소규모 노조라면 당연히 전임자를 두지 말고 일하면서 노조활동도 하도록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이들 소규모노조의 경우보다는 대형노조의 경우이다. 수백명 식 전임자가 있다가 그 수가 10분의 일로 줄어드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자기들의 세가 위축될까 우려하는데서 문제가 크게 제기된다고 보아야 한다. 사실 21세기 글로벌경제시대에 이렇게 생산에 직접참여하지 않는 근로자의 지원으로 줄어드는 국제경쟁력을 감당할 길은 없는 것이고 당연히 전임노조원의 경우 회사에서는 임금을 주어서는 안 된다.

이번 정부가 어려운 가운데 그래도 노조전임자 임금지급문제를 타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큰 일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렵더라도 현재와 같은 어정쩡한 중간 패스를 둔 것은 잘못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처음부터 금년 6월 이후에는 회사에서 돈대는 유급노조전임자는 없도록 했어야 했다.

2010년 5월 3일 월요일

한중FTA 보다 신중한 접근전략이 필요하다

최근 이명박대통령과 후진타오중국주석이 상하이엑스포 개막을 앞둔 정상회담에서 한중 FTA 협상개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이의 추진을 합의하였다. 작년 한 해 동안 한중교역액이 1.410억 달러에 이르러 한국 전체교역액의 20.5%를 차지했다고 한다. 미국 일본 교역액의 두배에 달하는 비중이다.

세계적 경기침체에 대처하여 한국정부는 초지일관 자유무역을 강조하고 선진국들의 보호주의 유혹에 쐐기를 박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과의 동일선상에서 한국은 최근 미국 EU 인도 등과 자유뮤역협정을 추진하고 있다. 칠레와의 FTA는 이제 양국에 상호이익이 되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좀 답답하게 진행되고 있는 미국 의회의 비준절차가 빨리 해결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한중 FTA협정추진은 미국 의회에 대해서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제 당장 남은 곳은 일본이고 아세안국가들이다. 한국정부가 갖는 한중자유무역협정의 전략적 측면일 것이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였지만 여러 가지 비경제적 이유 등으로 지지부진하다. 그러나 아세안국가와 협정을 체결하였고 곧 대만과 같은 성질의 협정을 추진한다고 한다. 이제 교역액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과 FTA를 체결할 경우 아시아에서 일본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을 포괄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일본과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추진에 중국의 유리한 전략적 입장을 갖게 할 것이고 경제적으로도 한국과의 교역 특히 농산물 등 1차상품의 교역증대를 기대하게 될 것이다.

한중자유무역협정 추진은 낮은 단계의 자유화 수준에서 시작되는 것이 불가피할 것이다. 한국의 입장에서 농산물 수입의 자유화는 당장 받아드리기 곤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대중 공산품수출에 대한 기대는 중국의 대한 1차산품수출 기대에 못지않을 것이다. 전략적으로도 대만이 중국과 무역자유화가 이루어질 경우 한국공산품은 중국시장에서 대만상품과 가격경쟁을 해야 한다. 양국간의 이해가 합치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이 한국을 발판으로 미국과 일본 시장의 진출에 우위를 차지할 수 있으며 한국은 거대한 중국시장에서 대만과 대등한 입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발판을 확보하는 셈이 된다.

한편 20세기 후반 이후 세계화의 추세가 지역간의 광역화를 통하여 먼저 이루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동남아의 아세안(ASEAN), 북미자유역협정(NAFTA) 그리고 EU가 그렇다. 이러한 흐름선상에서 한국 중국 일본의 경제통합을 추진하는 것이 이들 국가의 경제적비중이나 아시아 지역에서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적절할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중 일 3국의 역사 문화 전통 등을 고려하면 이 일이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지난 여러 해 동안 이에 대한 공동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신통한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자간 협정보다는 보다 단순한 양국간의 자유무역협정의 형태가 보다 손쉬운 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중자유무역협정이 그 자유화 수준이 낮을지라도 머지않아 해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양국간의 이해가 합치 되는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입장에서는 한중자유무역협정을 당장은 좀더 신중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성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다.

무엇보다도 한국의 입장에서는 중국에 대한 신뢰가 문제된다. 국가운영이나 경제운영이나 모두가 아직은 덜 성숙된 나라가 중국이다. 정부의 시장지배가 강하고 그것이 비경제적 이해와 연결될 때 어떻게 변화될지 예측하기 힘든 국가가 중국이라고 할 수 있다. 커진 덩치 때문에 세계시장에서 G2라고 하는 엄청난 취급을 받고 있지만 그 지적수준이나 행동양식은 아직 세계지배의 리더가 되기에는 멀었다는 것이 기 소르망 등 세계석학들의 중국에 대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나의 중국평가도 거의 같은 선상이다. 우리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중국이 행사하고 있는 책임성이 부족한 면을 여러 번 경험하였다. 북한의 깡패에 가까운 행동에 대해서도 마치 내 새끼 감싸기와 같은 무조건적인 중국의 태도는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행동인지는 모르지만 세계를 올바르게 이끌어가는 리더십은 아니다. 그런 중국이 이번 천암함사건과 관련하여 어떤 태도를 가질지는 거의 뻔하게 보인다.

경제운영에서도 중국은 시장의 지배가 정부의 보이는 손에 보다 의존되어 있다. 환율 금리 통화 등 정책변수들이 얼마나 시장의 힘으로 운영되는지 불분명하다. 거기다가 외환보유액처럼 엄청난 무기와 자원의 블랙홀이라고 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의 시장을 가지고 있다. 자 이런 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을 한다. 물론 시장에서의 이익은 대단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시장이 비경제적이유 등으로 알력이 생길 때 얼마나 시장의 시장지배력이 발휘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 현재의 나의 한중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우려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일이지만 내가 현직에 있을 때 대면하였던 중국 지도자들의 경제운영에 대한 접근방법은 시장경제운영과 매우 차이가 있음을 체험하였다. 물론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은 되지만 최근의 환율 금리 재정 등 정책변수의 운영방식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북한의 금강산에서의 한국자산 동결조치들을 보면서 어처구니없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과연 북한이 시장경제가 있는가를 생각하면 금세 답이 나온다. 자유무역협정은 시장경제를 전제로 한다. 한국이 서둘러 중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는 것에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는 첫 번째 이유이다.

둘째 중국이 시장경제로 완전하게 정착되기 위해서는 내부적으로 보다 많은 시련과 우여곡절이 있은 연후가 될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경험에서 나온 판단이다. 정부의 시장개입이 효율성면에서는 매우 돋보일 수가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시장의 힘과 정부의 힘이 여러 형태로 그리고 여러 곳에서 부딪치는 마찰음을 듣게 될 것이다. 등소평 이후 현재까지 중국정부는 경제운영에서 정의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보다 근본적인 개방을 전제로 한 시장경제운영이 전 같지 않을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이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가 성립될 수 있을까?

셋째 미국의 입장에서 한중자유무역협정은 어떻게 평가될까? 현재 이미 미국과 한국과의 무역량 비중은 한국 기준으로 중국의 절반으로 줄어들어있다. 한중FTA가 만일 미국의 한국FTA 의회비준에 앞서 시행된다면 한미무역량은 한중무역량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더 감소될 것이다. 미국정부의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것이다. 미국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은 미국의 도움을 받아 어려움을 딛고 일어난 나라이다. 당장도 미국의 지지 없이 김정일정권 문제를 한국정부 혼자 처리할 능력에 문제가 있다. 미국은 세계질서를 책임지는 나라이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운영을 분명히 하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국가이다. 그러한 미국이 의회비준이 좀 늦어지는 사이 한국정부가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여 미국을 젖히는 모양새를 갖추게 되고 그 결과 대중자유무역협정의 압력으로 작용될 것으로 분석될 때 미국정부가 갖는 한국정부에 대한 감정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아쉬울 때 잘 쓰는 혈맹관계는 이데 갔나? 아직도 군사 정치 외교 경제 많은 면에서 서로 강력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미국인데 이런 문제들에 대한 처리가 보다 신중하게 계산되고 그 연후에 한중자유무역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 일본과의 자유무역협정은 어찌할 것인가? 한중과 한일의 자유무역협정은 공교롭게 정 반대의 입장에 서게 된다. 한국의 대일 농산물수출과 일본의 대한 공산품수출 필요성은 중국의 대한 자유무역 대상과 정 반대로 일치한다. 중국은 한국과 자유무역협정을 하면 대일 대미 협정추진에 유리한 입장을 갖게 될 것이다. 한일간에도 중국처럼 낮은 단계의 자유화를 전제로 한 자유무역협정을 한국정부가 할 수 있을까? 그리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정부의 입장에서는 한중FTA가 즐거울 수가 없을 것이다.

다섯째 태평양시대를 맞이하여 한 중 일간에는 자유무역협정을 넘어 하나의 경제권으로서 경제통합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 길이 EU에 대항하고 미국을 비롯한 큰 경제권에 대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이 될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입장에서는 중국과의 관계개선과 함께 일본과의 관계도 더 진전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한쪽을 얻기 위하여 다른 쪽을 범연하게 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북한 문제를 풀어 가는데 있어서 큰 역할을 하게 될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한국 일본과의 관계개선이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미국과 일본 모두가 한국이 하나같이 중요시해야 하는 국가이다. 그런 당사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한중FTA는 보다 신중한 접근을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중자유무역협정은 한국의 입장에서는 기회이고 위기일 수도 있다. 한국이 세계시장으로 웅비하기위해서는 언젠가 중국을 딛고 세계시장으로 뻗어가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한중FTA는 한국경제의 기회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기대이익에 너무 서둘다가 기존의 이익시장을 범연하게 만드는 우를 범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 한국의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가 될 것이다. 한중무역협정의 추진에 보다 신중한 전략적접근이 필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2010년 4월 28일 수요일

경제운영을 정상화하라

한국은행은 4월 27일 2010년 1분기 경제성장률을 발표하였다. 전 분기 대비 1.8% 그리고 전년 동기대비 7.8% 성장하였다고 한다. 한국경제가 7% 대 성장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 오랜만이다. 2002년 4분기 성장률이 8.1%를 이룬 이후 처음이란다. 그것도 연간이 아니고 분기 실적이니 그리 좋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생산 소비 투자 수출 수입 공공지출 등 모든 부문에서 골고루 좋은 실적을 내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것도 많은 부문이 두 자리 수자의 증가를 보이는 10여년만의 성적으로 기록되고 있다. 연간 성장률이 얼마나 될까를 지금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나의 직감으로는 6% 내외를 조심스럽게 점쳐본다. 연초 정부나 한국은행이 4%대의 성장전망을 내어놓을 때 나는 5~6% 대를 이야기 하였다. 그런 전망이 아직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기지개를 킬만큼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경제운영을 정상화할 때라고 평가한다. 출구전략이라는 말이 마음이 들지 않는다. 언제 우리가 나락으로 떨어졌었나? 재작년 리먼사태가 났을 때도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너무 흐들갑을 떤 느낌을 지을 수 없다. 물론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질까하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이참에 한국 같은 말랑말랑한 경제를 꿀꺽 삼켜보고자 한 못된 국제자본의 장난도 겁이 났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무슨 전쟁 난 것처럼 비상복 입고 지하 벙커로 들어갈 일도 아니었다. 거기다가 비상경제대책회의니 뭐니 하는 이름도 사실 촌스러운 것이다.

세계적 경기침체를 맞아 비상경제대책회의가 아니라도 정부지출을 확대하고 금리를 낮추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그래서 기준금리를 2% 대까지 내렸고, 정부부채를 GDP의 36%대까지 정부지출을 확대하였다. 잘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별경제대책을 강구할 때 2%대까지 금리를 내리는 것이 좋은가 3% 아니 4%까지 내리는 것이 좋은가를 점검하고 결정하는 것은 정부를 포함한 통화당국의 몫이다. 돌이켜보고 당시 2%가 아니고 3%가 더 합리적이었다고 분석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그 정책을 책임지는 당국에서 결정하는 것이고, 그것 중 어느 것이 더 합리적이었는지를 사후에 따지는 것은 그리 큰 의미가 없다. 다만 당시 5%대의 금리수준에 있었기 때문에 시장의 지원효과를 고려하여 3% 포인트까지 내릴 수 있는 여력이 있었던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한다.

정부지출도 마찬가지다. 재정구조가 어느 정도 여력이 있으니 공공지출확대를 통하여 수요를 촉발하는 정책을 쓸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재정구조가 일본이나 영국 불란서 미국 등 선진국들보다 건실하였기 때문에 정부는 재정을 통한 경기부양이 가능하게 된 것이라고 평가해야 한다. 이것은 이명박정부가 아니라도 또 비상복을 입고 지하에서 비상경제대책회를 하지 않더라도 정상적인 정부라면 이렇게 하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명박정부의 재정확장정책을 폄훼해선 안 된다. 때맞추어 그런 수준의 정책결정을 한 것은 이 정부가 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정도의 확장정책을 쓸 수 있는 재정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경제를 다행으로 생각하고 고맙게 여겨야 한다. 1970년대 말 한국의 재정이 파탄지경에 이른 것을 안정화시책의 이름으로 구조조정한 것이 한국의 재정구조건실화의 역사다. 농민들의 쌀값을 동결하고, 공무원의 월급을 올리지 않고, 임금을 동결한 것이 재정건실화의 첫걸음이었다. 그런 노력이 아직 남아 있어 한국재정은 다른 나라에 비하여 건실한 편에 속한다. 그 덕을 이번 정부의 재정확장정책이 본 것이다. 다행스러운 일이라 할 것이다.

아직도 고용시장이 위축되어 있고 저소득층 가계의 생활이 팍팍하다. 가계부채도 많다. 이런 문제들이 다 해결되는 순간은 현실에서는 없다. 한국경제의 중국 의존이 너무 심화되는 것도 문제다. 중국의 통화절상이 될 때 또 중국의 경기과열 규제가 일어날 경우 한국경제에 미칠 영향 등도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거시적으로는 이제 한국경제가 소비 투자 무역 등 많은 부문에서 회복의 탄력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제 경제운영을 정상화해야 한다.

첫째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 점진적이던 무엇이던 그것은 한국은행이 정할 일이다. 그러나 시장에 금리인상과 유동성의 정상화에 대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 이문제의 접근에서 정부와 한국은행의 기 싸움 같은 신경전을 접어야 한다. 전근대적이다. 정부가 손을 놓아야 한국은행의 책임성이 살아난다. 정부의 두려움을 이해하지만 용감하게 한국은행에 권한을 위양해야 이 문제가 풀어지고 한국은행이 현대화한다. 이것이 경제운영의 정상화이다.

둘째 재정지출을 긴축해야 한다. 역사적으로도 국고를 풀어놓고 장기발전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재정을 건실화 해야 앞으로 확대 되어야할 많은 재정수요에 대응할 수 있다. 재정적자의 중기목표를 설정하고 거기에 맞게 재정운영을 보다 긴축적으로 해야 한다. 재정의 경기대책기능이 확대 될수록 경제운영에서 재정비축이 필요하다.

셋째 G20정상회의나 앞으로 있을 세계핵안보회의같은 국제 행사에 지나치게 목을 매어서는 곤란하다. 한국정부의 입장에서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중요한 기회이고 이런 일을 해낸 것도 이명박정부이다. 그 업적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렇다고 온 정부의 역량을 이곳에 집중하는 것은 오히려 이 업적을 회손 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을 유념하기 바란다. 오히려 이런 것이 정상적인 경제운영을 어렵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기 바란다.

넷째 이번 천안함사건 처리에서 정부가 보여준 여러 가지 절차적인 문제들은 비교적 잘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통령이 각계와 이해를 함께하려는 노력은 돋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다음 이런 분위기가 일반시민으로 전파되고 국민의 결연한 의지의 집약으로 형성 되어가는 모습이 약한 것 같다. 경제운영에서도 경제발전의지의 집약이 구심점이 없어지면서 응집력이 약해지는 것을 느낀다. 정부의 의지가 시장으로 전달되거나 그것을 토대로 발전의 구심점이 되는 것을 요즘은 발견하기가 어렵다. 시장이 발달하고 민주화가 될 수록 정부나 기업이나 소비자나 모두가 자기 이해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전체적인 발전의지의 집약이 되기 어렵게 된다. 이를 만들어가고 굳혀 가는 리더십 그것은 아직 한국에서는 대통령에게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것은 정상적인 경제운영에서 출발될 것이다.

2010년 4월 22일 목요일

벚 꽃

화사하다는 말이 오히려 부끄러운
여의도 강변 벚꽃
찬란함에 눈부시던 꽃잎들도
하루하루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그래서 서로 부둥켜안고 안간힘을 다 하건만
이제는 서로 이별해야 할 때라고
손을 놓아야 할 때라고
바람에 몸을 맡긴다.

너울대는 꽃잎은 행여 추해보일세라
웃음을 머금고
비단옷 그대로하고
바람에도 차분차분 춤을 춘다.

그리고 먼저 땅에 간 꽃잎이 행여 추울세라
벌거벗은 모습이 그냥 보일세라
그 위에 조용히 이불이 된다.
아니 아직도 아름다운 비단 옷이 된다.

한 겹 한 겹
싸이는 꽃잎은
다시 땅위에서 그 화사함을 뽐내고
그리고 살포시 생을 정리한다.

이미 땅위에 나뒹굴어진
칠십 인생의 모습
행여 추해보일세라
감추고 싶지만
나를 덮어줄 꽃잎은 없네.
이불은 없네.

2010년 4월 14일 수요일

한국경제가 1980년대 후반 일본 버블을 닮아간다고?

최근 노무라증권이 한국경제가 1980년대 후반 일본의 버블을 가져온 상황과 같은 모양으로 변해간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고 국내 매일경제가 보도한바 있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경제는 급격한 환율절상에 따른 경쟁력 약화를 금리인하를 통하여 보완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5%의 기준금리를 2.5%로 단번에 인하하고 이 상태를 1989년까지 유지하였다. 물론 환율정상에 대응하는 조치가 금리 뿐만 아니였지만 어떻던 대표적 대응정책이었다. 이를 통해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1988년1분기 일본경제는 전년 같은 분기에 비하여 9.8% 성장하였단다.

같은 분석 선상에서 노무라는 한국경제가 리먼사태 후 2008년 10월 5.25%의 기준금리를 2%로 인하하고 2010년 4월 현재 그대로 동결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공교롭게 금년 1분기 한국경제의 성장률은 작년 동기에 비하여 7.5% 높은 성장을 할것이라 한다.

그래서 일본과 한국의 위기극복 상황이 유사하고 그 결과가 경제성장에 나타난 모습도 공교롭게 같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니 일본경제 버블의 단초가 된 상황이 잘못하면 한국경제에도 나타나지 않겠느냐는 것이 노무라 분석의 초점인 것 같다. 그럴듯하고 앞으로 그리되지 말라는 법도 없겠다.

최근 한국경제에 나타나고 있는 주택가격의 급락모습이나 가계부채의 급증 문제들을 보면서 또 재정구조가 악화되는 것을 보면서 한국경제가 일본의 닮은 꼴이 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한국경제의 역동성(vitality)은 일본과 많이 다른 모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록 정부정책의 시행착오가 있을 수는 있지만 시장의 힘과 빠른 적응력은 결고 한국경제가 일본처럼 저렇게 축 처지지는 않을 것으로 나는 믿고 싶다. 거기에 더하여 정부는 재정구조의 건전화를, 한은은 통화가치의 건실화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경제의 역동성을 믿고 자신있게 이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도록 노력하자.

2010년 4월 10일 토요일

한국형경제개발경험 전수모델 만들자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한국의 경제발전경험을 경제협력 전략국가들과 공유하고자 이른바 지식공유사업(knowledge sharing program)으로 2004년부터 2009년까지 20여개국가에서 100개가 넘는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이것은 경제협력국가의 경제개발정책과 관련된 정책연구, 정책자문 그리고 정책실무자들의 교육 및 연수에 바탕을 두어 일괄 서비스하는 한국형 통합경제개발 컨설팅사업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식공유사업은 외무부 산하 한국국제협력재단(KOICA)의 공적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와 함께 한국의 실질적 대외협력사업으로 외교적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한국경제는 1962년 이후 1991년까지 30년 동안 6차에 걸친 종합경제개발계획을 수립 추진한 바 있다. 이 기간동안 연평균 9%에 달하는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하여 경제발전의 발판을 다졌다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는 전통적인 최빈국 농업사회에서 제조업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사회를 거쳐 IT, 지식경제시대를 지나 최근에는 소위 컨텐츠산업, 융합(convergence)산업의 시대를 마지하고 있다.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빠른 경제발전과 사회의 변화를 한국은 반세기만에 이룩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발전의 경험을 다른 협력파트너들과 공유하는 것은 매우 값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제2차경제개발계획에서부터 6차계획에 이르기까지 실무자로서 기획국장, 차관보 그리고 차관 장관에 이르기까지 직접간접으로 계획의 수립과 집행에 참여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정부의 주요경제정책 수립에 오랜 기간 직접 참여하여 온 경험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KDI의 지식공유사업에 참여하여 카자흐스탄, 쿠웨이트, 비에트남 그리고 앞으로 있을 사우디와의 지식공유사업을 현재 추진 중에 있다.

한국의 발전경험이 모두가 성공 스토리라고 할 수 없는 것이고, 각기나라들은 고유의 전통과 발전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력대상국들이 경제계획을 수립하는 단계에서 기술적인 사항들을 전문가들과 허심탄회하게 공동연구를 하면서 그들과 한국의 계획전문가들은 진정한 친구와 파트너가 될 수 있음을 발견하였다. 계획의 추진에서 한국이 비교적 성공적이었던 추진체제의 전수는 많은 후발국가 들에게 큰 지식과 경험으로 받아드리게 된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너무 멀어져버린 앞선 선진국들 보다는 가까이 손에 잡히는 한국의 경험이 그들에게 더 친밀감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실질적 외교이고 협력이라는 점에서 지식공유사업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제 얼마나 체계 있게 한국의 경험을 협력대상국에 전수시킬 것인가가 과제로 등장한다. 필자는 한국이 50년의 축약된 발전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의 발전을 이끈 대표적 인물, 대표적 발전전략 들이 부각되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음을 항상 아쉽게 생각한다. 기록이 부족하고 체계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선상에서 한국의 경제발전경험을 체계 있게 전달할 수 있는 전수모델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침 정부에서 이런 일과 관련된 연구를 하는 모양이다. 시의적절하고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경제개발계획의 수립과 집행에 연관된 기술적 사항에서부터, 각종 발전전략과 관련된 정책 분야에 이르기까지 대상을 체계화하고 한국의 발전경험을 일관성 있게 정리하여 경제외교의 교본이 되게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2010년 3월 23일 화요일

여중재 팁(10-03-23) : 농식품부 생존의 길

오랫만에 신문에서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농수산식품부가 '농식품부 샌존의 길 : 창조적파괴'라는 제목을 가지고 부내 심포지움을 한다고 한다. 그들은 거꾸로 농식품부가 망하는 길이라는 것도 이미 내걸고 있는 모양이다.

첫째 일회성 퍼주기식 보조금에 기대고 있는 경우 둘째 경제적 합리성보다는 정치사회적 개념이 우선되는 정책을 펴는 경우 셋째 국내외 시장여건의 변화를 거부하는 철밥통문화를 지속하는 경우 넷째 현장과 괴리된 탁상행정에 빠지는 경우 등이 농식품부가 망하는 길이라고 분석하는 모양이다.

옳은 말이고 지당한 접근이 아닐 수 없다. 요즘 대개의 경우 시장이 변하고 그 뒤를 정부가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직 농업시장의 변화를 찾기 힘든 터에 농식품부가 먼저 변화를 찾는 자세를 내보이는 것은 훌륭한 일이고 이를 이끌고 있는 장관 이하 관료들의 자세에 존경을 표한다.

벌써 3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1970연대 초에서 말까지 농업정책의 변화를 정부 내에서도 많이 시도한 바 있다. 당시 농업에 조금이라도 손이 가는 정책접근에 대하여 농식품부는 앨러지성 반응을 보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반대의 입장에 서있는 당시 경제기획원 관리들에게 그들은 적의에 찬 반응까지 보였었다. 결국 농업부문의 구조조정은 이루어지지 않은채 김영삼정부 후반부터 천문학적인 자금을 농업구조조정 명목으로 퍼부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이어진 이 투자는 농업구조개선 뿐만 아니라 농업인 그리고 그와 관련된 기구 전문가들 모두의 의식변화도 가져오지 못하였다. 성큰코스트가 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쌀의 관세화정책은 지금까지도 해결하지 못하고 WTO의 최소시장접근에 해당하는 쌀을 매년 한국은 수입하고 있다. 이미 일본은 이문제를 앞장서 해결하였다. 지금 국내 쌀 생산이 수요를 초과하고 여기에 억지로 들여온 엄청난 양의 수입쌀까지 합쳐 정부는 진퇴양난이다. 우선 관세화하는 길밖에 없는데 고양이 목에 방울 달 사람이 없는 것이다.

지금 농식품부 내부의 바람이 아마 이런 일련의 문제의식에서 출발된 것으로 보인다. 농업은 이제 오히려 미래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저생산성의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오히려 요즘 유행하는 융합(convergence)산업으로 농업이 그 대상이 되지 않을까 발전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다.

2010년 3월 17일 수요일

FT의 코리아 죽이기, 띠우기

영국의 Financial Times는 3월 17일자에 ' 한국 국제사회 뉴 리더로 부상'이라는 기사를 실었다고 동아일보가 기사화하였다.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을 거절당하고 자결한 이준열사의 뼈아픈 역사를 디디고 100여년 만에 한국은 세계 20개국 정상회의에 의장국이 되어 세계경제 발전방향을 주도적으로 협의하게 되었다고 동 신문은 한국의 발전을 추켜세웠다. 특히 2008년의 리먼사태 이후 한국경제가 보여준 괄목할 위기극복노력과 이에 따른 경제회복실적을 소개하였다. 또 동시에 이해 말 G20 정상회의에서 중국 위엔화 절상등 세계적 경제협력방향에 한국의 리더십 발휘를 기대한다는 찬사 일변도의 기사를 실었다고 한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반갑기보다는 씁쓸한 감정을 누를 수가 없다. 우선 피낸셜 타임스가 어떤 신문인가? 최근 한국관련 특히 한국경제의 위기가능성을 세계 어느 신문보도 보다 앞장서 나쁘게 보도한 신문이다. 지난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그랬고 지난 2008년 말 리먼사태 이후 세계경제 위기 앞에 한국경제가 금방 망가질 것 처럼 침소봉대한 신문이 아닌가? 필자의 편견도 있는지 모르지만 한국경제가 깨어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매일 쏟아낸 당시의 기사 들을 접할 때 필자는 마치 이 신문이 무슨 국제 헤지편드에 연관된 것 아닌가하는 의심하기까지 하였다. 마치 외환위기가 곧 닥칠 것 같은 상황을 전망하는 기사를 검증이나 한국정부 또는 전문가의 의견도 없이 얼마나 써대는지 정말 치가 떨릴 정도였다.

그런 신문이 왜 한국경제를 아니 한국을 이렇게 찬사 일변도로 띠우고 있는지 오히려 의심이 가는 것은 나의 지나친 선입견인가? 특히 G20정상회의에서 미국과 중국과의 껄끄러운 관계의 표면적인 이유가 되고 있는 위엔화 절상 문제를 한국이 중재할 것을 기대한다는 대목에서는 고개가 갸우뚱해지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한국의 위상이 격상이 되었고 G20정상회의의 의장국 입장에서 국제적 협력 아젠다를 조정할 수는 있겠지만 중국과 미국의 센서티브한 현안 조정에 한국이 어떻게 리더십 발휘를 할 수 있을지 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기축통화의 당사국인 미국이나 영국이 이번 세계위기에 단초가 된 지금 1985년의 플라자 미팅으로 일본의 옌을 단번에 조정했던 때를 그리워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중국은 일본보다는 훨씬 이것저것 가리지 않는 나라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판에 한국이 끼어들 수 있는 여지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한편 한국경제의 회복 탄력이 2009년 4분기 이후 급격히 사그러 들고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평가하지만 재정의 한계와 원화의 절상 흐름 속에서 한국경제의 회복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재정의 악화를 더욱 방치하기도 힘들고 금리를 더 인하할 수도 없다. 그리스를 포함한 EU의 경제전망도 밝지 않다. 중국도 속도의 문제는 있지만 인프레 대책과 통화절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경제의 회복도 기대보다는 느리고 그들도 수출을 통한 경기회복에 매달리고 있다. 모든 이런 상황이 한국경제에는 단기적으로 도움이 되지않는 요인들이다. 잘못하면 지난 1년동안의 한국경제 회복 탄력이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힘을 잃게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0년 한국경제는 경제회복의 탄력이 다른 나라에 비하여는 아직 높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재정이 전만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직 여유가 있고 수출도 비관적이지 않다. 경제성장도 잘하면 5~6%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그래도 한국경제의 취약성(fragility)은 여전하다. 따라서 쓸데없는 자만심이나 우물안개구리식의 편협된 후진성을 버리고 세계 속에 한국을 키워나아가는 진취성과 세밀한 전략을 세워가야 할 것이다.

2010년 3월 15일 월요일

여중재 팁 (10-03-15)

* 원자바오 중국총리의 양회 후 기자회견(10-03-13)에서 인용한 글귀 중 세가지를 소개합니다.

亦余心之所善兮, 雖九死猶未悔 (선한 일을 위해 아홉번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다)
行百里者半九十 (백리를 가는 사람에게 절반은 구십리다)
不畏浮雲遮望眼,自緣身在最高層(뜬 구름이 시야를 가리지 못하리니, 내 몸이 높은 곳에 있어서라네)

오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듯한 선문답이 실제 정치에 얼마나 전달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중국인들은 특유의 은유법을 즐겨 쓰고 있습니다. 미국을 향한 그의 내심을 드러내는 내용들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어려운 글귀를 들먹인들 실제 현실이 그에 따르지 못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공허한지 스스로 알 것입니다. 등소평의 黑猫白猫論(개방에서 흰고양이건 검은 고양이건 무슨 상관이랴) 같은 전달감은 없지만 중국인 특유의 和平堀起(평화롭게 우뚝 일어선다)를 외치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미국 중국 일본 그리고 EU가 각기 상호간의 마찰음이 소음의 단계를 넘어 세계인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한국의 처신은 어찌해야 할지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G20 의장국이라는 과분한 착각 속에 노무현 전대통령같은 치기가 발현되지 않도록 韜光養晦(도광양회 : 빛을 감추고 은밀하게 힘을 기르다)하는 전략으로 국력을 가다듬어야 하겠습니다.

2010년 3월 13일 토요일

Power senior가 되기위한 조건

최근 유행하는 말로 'well being' 에 이어 'grace aging' 이라는 말이 있다. 잘먹고 잘 살다가 웰빙이라면, 고상하게 잘 늙어가는 것이 그레스 에이징일 것이다. 老貪, 老醜 등의 반대개념이 그레스에이징일 것이다. 그러나 고상하다는 말은 여러 조건이 같추어질 때 가능할 것이다. 우선 건강에 큰 무리가 없어야 하고 경제적으로 어느정도 여유가 있어야 주변을 생각하게 만들 것이다. 다음 버리는 마음이 있어야 탐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탐욕하는 마음이 없어야 늙어 주변에 추함을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well dying' 도 못지 않게 중요한 가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아무리 그레스에이징을 한다 해도 죽음 앞에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요즘같이 오래 살고 의학의 발달로 웬만한 병들은 인공으로 극복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죽음을 극복할 수는 없고 죽음의 양태도 자기 의지와 별로 상관없이 나타난다. 그러니 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일지 모를 일이다.

나이 들어감에 이러한 가치들이 새삼 중요시 되고 가슴에 와 닫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나이들어감을 죄스러워하는 의식이 있다고 한다. 이런 의식은 혈연을 중시하는 전통유교정신에서 더 특별히 나타나는지 모르겠다. 내가 오래 살아서 내 자식에게 내 주변에 폐가 됨을 걱정하는 의식일 것이다.

그러나 그레이스에이징에서는 오히려 늙음을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 자랑스럽고, 자신의 많은 경험과 경륜을 펼쳐야 할 중요한 가치로 생각해야 한다고 어느 전문가는 이야기 한다. 거기서 늙음에 대한 위축과 소외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IMF를 지나면서 한국사회는 갑자기 늙은이를 사회의 한 구석으로 밀쳐버리는 사회로 변모되었다. 늙음은 사회의 자산이 아니라 부채(liability)라는 개념이 확산되면서 한국사회의 늙은이들은 무식하고 쓸모없는 계층으로 치부되고 있는게 현실이다.

어느 분의 저서에서 'power senior'라는 글귀를 읽었다. 아마 그레이스에이징을 넘어 늙은이들이 능력을 발휘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말일께다. 65세 이상 노인을 4인 젊은이들이 부양하는 사회가 한국사회라면 머지않아 일본처럼 4인이 아니고 3인 그리고 한사람의 젊은이가 같은 수의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시대가 온다. 노령사회의 암담한 모습이다. 그렇다면 늙은이가 스스로를 부양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활력을 찾고 국가가 민족이 유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파워 시니어의 시대가 되기위한 조건을 생각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법정스님의 말씀 중 이웃을 돕는 것은 보시가 아니고 자기 인생의 확장이라고 하였다. 내가 옳게 이해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늙은 이 인생의 확장으로 파워시니어의 가치를 해석하여 욺추르기보다는 뻗어나가 생산활동에 참여하고 이웃을 돕고 나아가 사회에 기여하는 시니어 파워가 지배하는 사회를 만드는 일을 생각해 보자.

2010년 3월 12일 금요일

여중재팁(03-12)

* David Landes의 '국가의 부와 빈곤'에서 중국이 쇠망의 길을 걸었던 것은 자부심, 타국에 대한 상대적 우월감, 무관심에서 왔다고 분석했다. 지금 한국사회가 번영의 길을 걷는다하여 오만하고 자만하고 우월감이 지나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 朱子 : 妙契疾書(묘계질서) 깨달음이 생기면 재빨리 써둔다. 사실 현대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메모의 습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디어가 떠 오르면 즉시 메모하고, 그 메모는 한 사람의 산 인생기록이 됩니다. 우리사회의 부족한 면이 부실한 기록이라고 한다면 이제부터라도 우리 모두 기록의 버릇을 기르도록해야겠습니다.

* 法頂 : 법정스님이 타계하면서 우리에게 '無所有'라는 큰 가르침을 남기셨습니다. 그분은 한 강연에서 '덕이 내 인생의 잔고(殘高)로 남도록 합시다'라는 좋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 敎學相長 : 가르치면서 배우고 함께 성장한다.

2010년 3월 10일 수요일

여중재 팁(03-10)

1. 한국의 외채

2009 2008

장기 (1년 이상) 251.962 백만달러 228.050 백만달러
단기 149.960 149.894
합계 401.922 377.944

* 장기채의 위험 : 채권투매
만기의 일시도래

2. 일본과 한국경제

1945년 일본경제가 한국경제의 16배
2010년 3배

* 가전 조선 한국이 앞섰고 철강 자동차 차이가 좁혀지고 있다.
반도체 정보통신 한국이 우위
노벨상 수상자 일본 15명 한국 0
연구개발 투자 한국이 일본의 20% 수준
일본병 : 자만, 폐쇄, 경직

3. nut cracker -- trap of triangle

NEET : not in education, employment and training

能變如常 : 변함으로써 변하지 않는 지혜 : 물오리의 자맥질

2010년 3월 8일 월요일

종속(dependency)의 문제를 생각한다.

1. 종속이론의 변천

2차대전 이후 한때 경제운영에서 종속이론(dependent theory)이 유행처럼 풍미한 때가 있었다. 전후 후진국이론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후진국경제의 선진국경제에의 종속성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고, 그것이 마치 자본주의의 태생적 모순인 것처럼 확대 해석하는 것이 유행처럼 된 일이 있었다. 남미국가들을 중심으로 개방경제 내지 자유무역(free trade)의 모순을 강조하고 아직도 그 잔영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후 ‘무역과 관세에 관한 일반협정(GATT)’이 발족되고 자유무역 확대를 중심으로 세계경제는 빠른 발전을 하게 되었다. 일본을 비롯하여 저개발국가 들의 경제발전이 무역을 통하여 이루어지면서 일본은 선진국으로 진입 되었고 일부는 ‘개발도상국가(developing country)'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어 발전대열에 참여하였다. 개방정책을 편 나라들은 종속이론으로 자립경제를 지향한 국가들 보다 발전 속도가 빠르게 나타났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龍)으로 표시되는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가 빠른 발전그룹에 속하였다. 이 발전과정에서 세계은행(IBRD)과 국제통화기금(IMF)은 저개발국의 경제지원과정에서 여러 가지 형태의 개방경제체제에 맞는 경제정책을 권유하고 지원조건(terms of conditions)으로 강요하기도 하였다. 그런 일들이 물론 수원국 들의 경제발전 속도를 가속시킨 결과가 되었고 그래서 요즈음 신흥국(emerging market)의 이름으로 세계시장에서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다른 한편 2차대전 이후 미국의 달러가 기축통화로서 자리매김을 하고 미국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영국 파운드화의 기축통화 기능을 제약시키고 그 위력을 무력화시켰다. 미국의 달러는 미국의 월스트리트 발전과 함께 세계경제의 제왕적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금융중심의 경제정책은 여러 가지 형태의 파생금융상품(derivatives)을 시장에 범람케 만들었고 종국은 그것들의 충돌(mismatch)이 2008년 미국 발 세계금융위기로 나타나게 되었다.

대공황 앞에 세계는 경악하였고 그 당사자인 미국은 말할 것 없고 그 사촌지간 쯤 되는 EU 국가들은 당황하면서 이 문제를 재정으로 틀어막아 보려 시도하기 시작하였다. 이 위기 앞에 신자유주의는 단번에 자취를 감추었고 천문학적인 재정지출을 통하여 파멸을 막아 갔다. 그리고 1년 반의 세월이 흘렀다. 그 처방이 옳고 그름을 떠나 세계경제는 1910년대의 대공황의 공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경제에서 공짜 도시락은 없다. 지금 우리네 지구촌은 쓰레기더미처럼 쌓인 재정적자와 정부부채 앞에 망연자실하고 있다. 그리스가 국가부도가 나느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지금 이 순간도 세계가 고민하고 있다. 아이스란드의 부도위기는 국민투표결과에 달렸다. 스페인이 그렇고 다음 일본이 그렇고 영국 미국이 또 그렇단다.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가치는 흔들리고 있다. 달러 일변도의 지배에 중국이 제일 먼저 딴지를 걸고 나왔다. IMF의 특별인출권을 확대하여 기축통화로서의 기능을 하게하자는 중국 측 주장(?)에 IMF로서도 환영하는 속내를 들어내고 있다. 기축통화의 당사국인 미국 영국의 통화가 흔들리고 자기가 위기를 가져온 장본인인판에 이제 종래의 G7 또는 G8 협의체는 세계경제를 이끌어갈 도덕적, 경제적 지도력을 상실하였다.

한국경제도 예외랄 수는 없다. 재정적자가 GDP의 2.7%, 국가부채가 39%수준이니 다른 나라 평균 수준에 비하여 아직 걱정할 것 없다고 정부는 설명하고 있지만 그 나빠지는 속도는 오히려 매우 빠르다. 재정의 건전성은 아직 여유가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출구전략을 생각할 여유는 아직은 부족하다.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지금 지구촌은 경제적 위기에서 자유로운 나라가 없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하이에크나 밀튼 후리드만은 지하에서 무어라 말할까? 그래서 죤 메이나드 케인즈를 모셔 와야 하는가? 금융의 위기가 재정의 위기로 전이되고 있는가?

이런 세계적 경제위기 앞에 세계가 공동대처를 하자고 하는 의미로 미국의 부시 전 대통령은 G20정상회의라는 것을 만들었다. 옳은 대처방안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한국의 이명박대통령은 지난 두 차례 정상회의에서 자유무역을 주장하고 나섰다. 금석지감이 있는 일이지만 지난 세월 한국경제는 언제나 보호의 그늘에서 도움을 얻고자 노력하였다. 그런 한국경제가 이 세계적 경제위기 앞에 세계가 자국경제보호를 위하여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는데 오히려 전통적인 자유무역을 주창하고 나간 것은 한국경제로서 자긍심이 생기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 미국 영국 불란서 독일 등의 속내가 궁금하다. 개방에서 보호로 얼마나 가는가?

2. 한국경제의 양극화

그렇다고 한국경제가 이 위기 앞에 여유로움이 있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외부충격에 대한 한국경제의 취약성(fragility)은 여러 부문에서 발견되고 실제 나타나고 있다. 1990년대 말의 외환의 미스매치가 가져온 한국경제의 취약성 노출, 리먼사태 이후 투기자본들의 악의에 찬 한국경제 폄훼농간에 사정없이 흔들리던 모습을 경험하였다. 그러한 취약성은 아직 한국경제가 자력으로 발전하고 외풍을 막아 갈 수 있는 능력을 덜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취약성을 가져온 여러 구조적 문제들 중에 나는 오늘 양극화의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경제구조의 양극화는 여러 측면으로 분석될 수 있지만 오늘은 대기업군과 그렇지 못한 기업간의 양극화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한국경제는 농지분배와 6.25전쟁으로 거의 균등한 빈곤상태에서 개발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1960년대 초 대외지향적개발전략에 따라 수출이 시작되고 여기서 수출에 참여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간에 발전의 속도가 벌어지게 되었다. 1970년대 소위 중화학공업개발전략에 따라 한국정부는 특정 산업을 개발하기 시작하고 여기에 참여할 기업을 선별적으로 선택하여 집중지원을 하게 되었다. 여기서 재벌이라는 이름의 대기업이 생기게 되고, 이 대기업에 기대어 사업을 하게 되는 하청 내지 계열기업이 생겨나게 되었다. 중화학에 참여한 대기업은 많은 정부지원 만 믿고 경제성이고 경쟁력이고 하는 문제를 따질 겨를이 없이 사업은 확장되고 기업의 크기는 욱일승천의 기세로 커져갔다. 그것이 많은 문제를 배태하여 1970년대 말 중화학공업 조정기를 거치게 되었지만 그 때도 산업의 조정이나 시장의 조정은 있었지만 관련 대기업의 조정은 없었다. 따라서 관련 대기업은 사업의 성패와는 관련 없이 날로 날로 커지고 발전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정책당국의 입장은 매우 합리적이고 분명하였다. 대기업의 지나친 편중발전이라는 논란에 대하여 그 크기의 세계적위상이 아직도 미미하다는 점과 합리적인 기업 계열화를 통하여 중소기업이 발전할 수 있다는 논리로 대응하여 갔다. 일본 기업군의 합리적 계열화를 벤치마크하면서 정책당국은 한국경제에서의 기업의 양극화 문제를 애써 외면하여 왔다.

1980년대 한국경제는 소위 자율과 개방을 표방한 안정화시책으로 대기업에 대한 특혜적 지원을 감축시켰고 민주화과정에서 불법 파괴적 노동조합활동으로 기업의 의욕을 떨어트리는 과정을 겪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살아남고 계속 발전할 수 있었던 기업은 중소기업보다는 오히려 조직력이 강한 대기업들이었다. 더군다나 1990년대 민주정부의 방향성 잃은 경제운영에서 살아남고 계속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군이었다. 이런 대기업군이 결정적 타격을 받게 된 것이 1990년대 말 소위 외환위기 때였다. 외환거래에 덜 직접적이었던 일반 소기업이나 중기업보다는 대기업군 들이 직격탄을 맞고 많은 대기업들이 큰 시련을 겪으면서 많은 도태가 일어났다. 소위 50대 기업군 중에 IMF를 거치면서 남아난 대기업은 10여개에 불과하였다.

대기업 수의 감축에 따라 대기업사이에서의 경쟁이 줄어들고 정부의 몇 남지 않은 대기업에의 의존은 역설적으로 확대되면서 오늘 날 대기업의 한국경제에서의 비중은 더욱 확대된 모습이다.
2000년대 초 IMF 대기성차관 기간을 거치면서 한국경제는 전후좌우를 살필 겨를이 없이 시장보호 자물쇠를 풀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자본시장과 금융시장의 무차별적인 개방은 어떤 면에서 발가벗겨진 한국경제의 자화상을 연출하게 되었고 그것이 한국경제운영의 크나큰 취약성을 가져오게 하였다. 살아남은 대기업은 독자생존을 위한 피나는 노력을 하였고 정부는 무자비하게 금융기관을 통폐합시켰다. 대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위기를 맞아 종래와 같은 정부보호나 금융지원을 개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니 자구적 내부혁신과 함께, 계열 내지 관련기업에 대한 냉혹한 업무정리를 하게 되었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면서 과거 일본을 본받던 대기업과 계열기업간의 생산적인 협력관계가 무너지게 되었다. 그 서슬이 퍼렇던 대기업노동조합 들조차도 살아남기 위하여 파괴적 노동활동을 제한하기 시작하였다. 파워밸런스의 재정립이 일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 기업의 재무구조 개선은 금융기관의 자구노력과 함께 밀도 있게 추진되어 부채비율은 급속히 개선되었다. 그러나 기업의 지배구조(governance)에 대하여는 특별한 변화가 없었다. 공정거래측면에서도 그렇고 자본시장이나 금융시장에서의 제도적 개선책도 별로 제시되지 않은 가운데 그동안 기업지배와 관련된 현안문제에 대한 사법당국의 처분도 종래와 같이 친기업적으로 엄격하지 못하였다. 그러니 살아난 대기업의 힘(power)은 더욱 강고해 질 수밖에 없었다. 금융시장의 지배권이 약화되고 공정거래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이 취약한 정부의 입장에서 몇 안 되는 대기업에 대한 정부 관여 간섭은 물론 크게 줄 수밖에 없었다. 과거 정부의 대기업에 대한 지도 관여의 지배력은, 오히려 권유 눈치 아부의 관계로 전락되고 있다고 하면 심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정부는 대기업의 상황을 눈치나 보고 잘 해주기만 바라는 형국으로 변모되어가고 있다.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지나면서 그들의 서툰 못난 짓들로 정부의 모습은 점점 작아지고 대기업의 모습은 점점 커져간 형국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한국의 중소기업은 어떤 발전을 하고 있나? 역대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친중소기업정책을 항상 슬로건으로 내걸어왔다. 그래서 지금 한국사회가 중소기업이 진흥된 사회인가? 아니다. 중소기업진흥정책이라는 것이 시혜적으로 금융을 일부 확대하고 조건을 개선해준다고 해서, 세금을 우대하고 일부 시장을 제한하여 될 일이 아니다. 그것도 계속적이기보다는 단속적이고 일률적이기보다는 특정부문에 한정된 부족한 지원만 가지고 중소기업이 발전되기는 힘이 든다. 중소기업은 태생적으로 경쟁력이 취약하고 존립기반이 허약해서 외부충격에 견뎌내기 힘이 드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취약성을 순발력과 창의력으로 보완하고, 일정기간을 견딜 수 있는 자금력이 뒤 밭침 되어 발전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시장을 확보하기 위하여 중소기업은 대기업과의 업무제휴를 추구한다. 이러한 시장의 조직화는 산업사회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지식 정보사회에서 중소기업의 대기업계열화는 산업사회와 구별된다고 일반적으로 말할 수 있다. 특히 컨텐츠산업분야 같은 곳은 애초 중소기업분야인지 대기업분야인지 불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어느 부문을 아웃 소싱할 것인지를 구분하기가 어렵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대기업은 아예 자기가 모두 해치우는 방법을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많게 된다. 중소기업의 참여기회가 더욱 제한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참에 대기업은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모두 자기가 해치우는 사업영역의 독점화를 점차 확대해 가다보니 중소기업이 껴들 수 있는 여지는 점점 줄어들게 된다.

그러니 대기업과의 생산적 계열관계는 지난 시대의 향수인가 보다. 대기업에서 관계기업을 대하는 태도가 과거에는 상의하고 협력하는 자세를 가졌다면, 지금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토를 달 모양이면 ‘잘해보라’ 한마디로 관계가 결판난다고 한다. 과거의 부패(corruption)가 공공부패였다면, 지금의 한국사회의 부패는 시장의 부패(market corruption)가 더욱 문제라고 한다. 한편 정부의 중소기업에 대한 세제 금융지원도 구조적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다. 결론은 그러니 이미 존재하는 일부 대기업은 영역구분 없이 점차 확대되고 상대적으로 중소기업의 영역은 점차 축소되고 있는 현실이다.

경제위기극복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고용정책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가 보다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고용기회의 창출을 대기업에만 의존할 수 없어 한국정부는 중소기업의 고용지원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신규고용에 대하여 세액공제를 하여주고 심지어 임금의 일부를 정부가 보조하여 주는 획기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중소기업 고용이 한국의 고용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줄 만큼 효과가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과 유사한 수준의 임금과 고용조건을 내 걸어도 원하는 신규인력은 중소기업을 오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어느 종소기업인은 이렇게 설명한다. 아무리 좋은 임금과 조건을 준다 해도 일류 인력이 중소기업을 선택하지 않는 이유는 중소기업의 정체성(停滯性)에 있다고 한다. 10년전, 20년전 아니 40년전 중소기업이 그대로 오늘도 중소기업이고, 그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자의 몰골이 저 모양 저꼴인데, 40년 후의 자기모습을 보면서 누가 중소기업에 오겠느냐는 식의 자조 섞인 한탄이다.

대학졸업반에서 보면 일류 대기업에 입사하면 옛날 과거에 합격한 이상의 부러움을 사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몇몇 대기업의 허구 많은 경영진 수자와 그들의 상상을 초월한 임금수준을 신문에서 접하면서 몇 년 후의 자화상을 보는 착각 속에서 대기업 입사를 희구하게 된다. 무엇을 해서 성취하고자 하는 의욕보다는 최후의 자기 모습을 기존 대기업의 임금수준에서 찾고자하는 젊은이들의 시각에는 초라한 몰골의 중소기업은 들어오지 않는다. 독창적 연구개발이나 성취 보다는 기존질서에 의지하려는 젊은이들, 가정을 책임지고 회사 또는 사회를 책임지기보다는 나 하나의 이익(interest)에 보다 집착하는 젊은이들의 성향은 중소기업의 설자리를 점점 잃게 만들고 있다.

3. 해결책이 없음을 대책 세워야 한다.

사실 경제운영에서 종속(dependency)의 문제를 거론하기는 쉽지 않다. 하물며 한국경제처럼 완전하게 개방된 선진경제구조를 가진 경우 경제운영에서 특정분야나 특정그룹에 전체 경제가 종속되는 문제를 꺼내들기에는 너무 껄끄러운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현재의 양극화를 방치하여 그 정도가 심화되어 종국적으로 파멸로 수렴되는 길이 보인다면 그것을 더 이상 내버려 둘 수 없는 과제라고도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를 시정할 해결책을 발전된 개방경제 운영에서 찾을 수 없다는데 있다. 시장의 문제를 정부가 직접 간여하는데도 정책의 한계가 있다. 시장의 자연 치유를 기다리는 데는 인내의 한계가 있다. 돌아앉아 버리기에는 대기업의 도덕성에 한계가 있다. 해결책이 없음에 대책을 세워야 하겠다. 몇 가지 제언을 제시하여 보자.

첫째 늦었지만 기업의 지배구조를 정리하여야 한다. 몇 몇 대기업의 반발이 있을 것이지만 IMF 이후 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듯 지배구조도 이제 합리화해야 한다. 당시 함께 이루어졌어야 할 일이다. 이것은 친기업정책과는 관련 없는 일이다. 불합리한 기업지배구조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공정거래법, 상법 그리고 자본시장과 금융시장의 거래관계법들을 보완하고 그 집행을 엄격하게 해야 한다. 지나간 일이라고 어물쩍 지나가거나 기업 이미지 추락 등을 이유로 문제의 노출을 천연해선 안 된다. 오히려 제도개혁의 아픔으로 승화해야 한다.

둘째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이 일어나게 해야 한다. 기존 대기업의 한 지류라고 해서 경쟁에서 이득을 보고 가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시장의 독과점규제에서부터 시작하여 시장질서가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되도록 제도도 보완하고 시장의 흐름에 왜곡이 없도록 해야 한다. 기존질서의 힘으로 새로운 창의를 짓밟거나 싹을 자르는 일 같은 행위가 철저하게 막아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가 어렵다.

셋째 부(富)의 가치와 존경이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자본주의의 근간인 부에대한 사회의 존경이 어느 경우 던 확고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부의 형성과정의 투명성과 함께 정당한 상속절차가 이루어지도록하고 이것에 대하여 사회가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넷째 자본주의에 대한 교육을 철저하게 하여 자율, 개방, 경쟁, 가격의 가치가 사회의 일반적 가치로 정착되게 해야 한다. 여기에 더하여 한국적 윤리 도덕을 정립 추가할 필요가 있다. 종교로서가 아닌 생활의 가치로서 헌신, 근면, 협동 등의 ‘유교적가치’를 한국인의 합리적 일반가치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서구적가치와 유교적가치가 함께 승화되어 한국적가치로 정립될 때 한국자본주의는 철저한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다섯째 대기업군 내부에서도 이러한 한국경제의 종속의 문제요인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잘잘못의 문제가 아닌 한국자본주의의 한 단계 높은 발전을 위하여 시장의 질서를 올바르게 하는데 알게 모르게 방해되는 행동이 있는지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평가한다.


* 편집자 : 앞으로 필자가 살아가면서 그때그때 생각나는 팁(tips)들을 써 보고자 한다.

계영배(戒盈杯) : 술이 일정수준을 넘어 오르면 새어나가도록 만든 술잔

- 지나침을 경계합시다. -

2010년 1월 31일 일요일

아시아의 시대가 오고 있나?

1. 2010년 초 세계경제의 관심

2010년 1월 말 스위스의 촌락 다보스에서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이 열리고 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세계의 관심은 최근 오바마 미대통령의 금융규제 즉 은행에 대한 정부의 간여정책으로 투자은행들의 일반은행 업무 이탈시도에 따른 자금흐름의 경색 우려가 어떻게 세계경기회복에 영향을 줄 것인지에 집중되고 있다고 한다. 이외에도 G2로 이름 지어진 미국과 중국의 경제흐름 특히 아시아의 대표처럼 되어버린 중국경제가 얼마나 세계경제에 호의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인지 그 흐름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다. 이와 관련하여 거대경제를 비롯한 각국의 출구전략이 자연스런 관심사가 되게 된다.

또 다른 관심은 세계적 경제파동 속에서 독야청청 큰 폭의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중국과 인도의 경제성장을 놓고 그리고 OECD 국가 중 두 번째라는 한국의 플러스 성장 등을 놓고 세계는 경이와 부러움을 표시한다. 공교롭게 한국이 금년 G20 회의 의장국이 되어 회의를 주재하게 된 것을 한국 국내는 말할 것 없고, 다른 나라들도 한국의 경제발전에 따른 위상의 상승으로 그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2. 아시아의 시대는 왔는가?

이런 흐름 속에 불란서 평론가 기 소르망은 한국의 한 일간지에 ‘아시아의 세기, 아직은 아니다’라는 제목의 기고를 하였다. (2010년 1월 26일자 동아일보) 그의 안목 즉 서구적 가치기준에서 보면 아직 농업국가의 형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인도경제, ‘값싼 노동력’을 기본으로 조립중심에 머물러 있는 중국의 산업구조 그리고 좀 창조적이고 서구기계문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도 서구적 과학기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경제 들을 기본으로 해 아시아의 세기가 온 것이 아니라고 기 소르망은 분석하고 있다. 더군다나 아시아는 자력방위능력이 없고 아직도 미국의 방위력에 의존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EU처럼 NATO나 마스트리트 조약 같은 역내 조정기구가 없다는 것이 아직 아시아의 세기가 오지 못한 이유라고 한다. 더군다나 아시아는 서구적 가치기준인 자본주의, 시장경제, 개인주의, 성(性)의 평등 등의 서구적 가치에 아직 얹혀 있고 서구적 가치에 대응하는 아시아적 가치인 '조화(harmony)' 만으로는 서구적 가치를 능가할 만큼 되지 못하였다는 논리를 기 소르망은 펴고 있다.

3. 아시아경제의 세계적 위상

아시아경제의 세계적 위상은 해가 갈수록 격상되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과 인도가 21세기 들어 특히 리먼사태 이후 괄목할 발전을 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세계의 흐름이 점차 아시아로 집중되고 있다는데 별 이론이 없는 것 같다. 최근 BBC가 행한 여론조사에서 60%의 응답자가 경제위기를 계기로 권력의 중심이 동양으로 이전되고 있다고 응답하였다는 보도가 나왔다. 경제력의 중심이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그리고 서구적 발전 동력이 아시아로 옮겨지고 있음을 막연하게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60억 세계인구 중에서 아시아인이 절반을 차지하는 것은 오랜 현상이고 누구나 다 안다. 과거에는 인구가 경제의 자산으로서의 가치보다는 부담으로 치부되었다. 어려운 살림살이에서 입을 여하히 줄려나갈 것인가가 경제정책의 관심사였고 실제 인구정책이라면 증가율을 여하히 줄려나갈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선진국들은 인구의 낮은 증가율이나 정체 그리고 노령화를 걱정한다. 인구학자들의 특정국 인종의 멸종전망을 차치하고라도 현실적으로 노령인구를 부양해야하는 젊은 사람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것을 보면서 두려움을 느낀다. 일본이 그렇고 한국이 그렇다. 대부분 EU 국가들이 그렇고 미국의 백인들이 그렇다. 이제는 인구가 부채보다는 큰 자산이다.

한국무역협회의 국제무역연구원의 분석에 의하면 아시아의 GDP가 세계전체의 그것에 차지하는 비중이 20%대에 다다르고 있다. 물론 아시아의 평균 성장률이 월등히 높으므로 그 비중은 빠른 속도로 늘어날 것이다. 가깝게 세계금융위기 이후 많은 나라가 큰 부의 성장을 하는데 중국과 인도는 높은 플러스성장을 하였다. 한국도 OECD 국가 중 드물게 플러스 성장을 하였다. 일본을 제외하고 아시아 각국은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모습이다. 무역규모도 마찬가지로 아시아 각국의 세계무역에 차지하는 비율이 20%대에 이른다. 중국이 일본을 앞서 세계에서 2위의 수출국이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다보스 회의에서 자유무역의 확대를 주장하였다. 보호의 그늘로 피해 다니던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의 경제가 거꾸로 자유무역의 확대를 세계에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괄목할 만한 경제력의 크기에 비하여 아시아 각국의 일인당 소득이나 복지의 수준은 일본을 제외하면 아직 한참 뒤인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이 그렇고 인도가 그렇다. 인도네시아, 필리핀이 그렇고 방글라데시는 아직도 절대빈곤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지표만으로 행복지수를 논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아직 멀었다고 할 수 있다. G2라고 중국을 미국과 같은 반열로 치켜세우고 있지만 중국의 1인당 소득은 세계에서 100위에 있는 3~4천 달러에 불과하다. 인도는 아직 농업국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고 인도네시아 말레지아 타이랜드 필리핀 방글라데시 등 아시아제국은 아직 신흥국이라는 이름을 듣기 어렵다.

아시아 각국의 이러한 취약한 위상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기진맥진하고 있을 때 중국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는 경이적인 플러스성장을 이루고 있고 세계자원과 자본의 블랙홀 역할을 하고 있다. 위세 당당하던 미국 영국 독일 불란서 등 서구 선진국들은 그저 망연자실한 채 아시아의 발전을 강 너머로 쳐다보고 있는 형국이다.

4. 자력방위구조의 결여

기 소르망의 분석에 의하면 아시아는 아직 자력방위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한다. 미국 국방력에 의존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만일 미국이 방위지원을 거둘 경우 자력으로 존립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EU 국가들의 NATO와 같은 협의기구가 없는 것이 아시아의 취약점이라고 지적한다. 타당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의 양극시대에 존재하였던 방위우산이 오늘 날 무슨 큰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NATO라는 협력기구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서구 국가의 방위를 보장하는지 묻고 싶다. 물론 오늘 날 미국이라는 단극시대에 각국의 방위에 있어서 미국의 역할은 결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인들 모든 것을 자기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오늘날 현실 아닌가? 오히려 국제적 협력 하에 모든 문제를 함께 풀어가고 있는 것이 21세기 방위시스템 아닌지 모르겠다. 경제가 글로벌화 하듯 방위도 글로벌화 하는 것 아닌가? 나토는 지나간 개념 아닌지 묻고 싶다. 글로벌방위시스템이라는 말이 성립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미국의 방위력을 활용하는 전략은 각국의 존재가치 그것이 경제적이던 전략적이던 존재가치를 높이는 노력이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한다.

5. 서구적 가치와 아시아적 가치

자본주의, 민주주의, 개인주의, 성(性)적 평등 등은 서구적 가치로 보아야 한다. 이들이 현대국가의 기본가치가 되고 있다. 아시아도 이러한 가치기준에 입각하여 국가와 사회가 운영된다고 할 수 있다. 당연한 것이 지난 200여년의 세계지배가 이들에 의해서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도그마로서 현대사회를 지금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 가치도 지역에 따라 그리고 사회구성원에 따라 어느 정도의 폭 범위 내에서 달리 해석되고 그래서 국지적 인종적 종교적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시아적 가치( Asia's value)라는 말은 1990년대 말 아시아의 금융위기 시 많이 제기되었다. 한국을 비롯한 타이랜드 인도네시아 등 소위 신흥국들이 금융위기를 맞아 IMF의 지원을 받아 위기를 넘기고 있을 때 미국을 비롯한 서구국가들, 각 국제금융기관들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학계 등 전문가그룹 들 모두가 아시아의 비능률적인 시장경제 운영을 힐난하고 비판하였다. 1998년 홍콩에서 열린 IMF 연차총회에서 이 문제가 폭발되고 말았다. 당시 말레지아 총리였던 마아티르와 미국의 헷지펀드의 대표격인 죠지 솔로스가 투기자본의 흐름에 대한 규제를 가지고 맞붙었다. 말레지아는 투기자본의 유통을 규제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 이후 쿠아라룸플에서 각국의 지도자들이 다시 모여 이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보다 못한 리콴유 싱가포르 전수상이 아시아는 아시아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는데 이것을 신자유주의에 입각하여 무조건 비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그 어간에 미국의 폴 크르구만교수는 뉴욕타임스인가에 아시아적 가치는 없다는 글을 썼다. 지난 세월 아시아 신흥국들이 빠른 발전을 한 것이 무슨 특별한 아시아적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풍부한 노동력을 싼 가격으로 사용한 결과에 불과하고 앞으로 이러한 자원의 혜택이 없어질 경우 아시아는 더 이상 빠른 발전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는 그래서 처음부터 아시아적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지였다. 당시는 하도 미국을 비롯한 서구적 가치 일변도의 분위기 속에서 나온 이런 논의를 대놓고 통박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 분위기 속에서 리콴유의 주장은 아시아인의 입장에서는 통쾌한 면도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다시 역전시킨 것은 그 회의에 참석하여 발표한 한국의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었다. 아시아의 신흥국 중에 대표격인 한국의 대통령이 아시아적가치는 처음부터 없었다고 크르구만의 논거를 지지하고 나섰다. 마아티르나 리콴유의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배신감 같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경솔한 것인지 무식한 것인지 분간키 어려운 처사였다.

1980년대 초 일본출신의 모리시마 미치오(森嶋通夫)교수는 일본의 빠른 발전의 원동력을 일본의 유교문화에서 찾았다. 일본 유교문화는 그들 나름대로의 충(忠)에 근거하여 조직 회사 정부 국가에 대한 헌신을 기본가치로 하고 있다. 21세기 들어 일본사회의 이러한 유교문화가 신세대 사이에서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모리시마는 일본의 장래는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같은 선상에서 한국의 유교문화는 혈연에 기반을 둔 효(孝)에서 출발하였다. 부모님에 대한 공경은 연장자에 대한 존경으로 그리고 자기절제와 근면을 바탕으로 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유교의 본고장 중국의 유교문화는 모택동 공산치하에서 많은 왜곡이 있었지만 공자에 대한 연구와 존경으로 최근 다시 부활하고 있다. 무슬렘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말레지아 인도네시아 등도 그리고 불교와 회교문화권인 인도 등 서남아시아권도 직접간접으로 아시아적 가치로 불리는 유교문화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종교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서 아시아적인 가치는 이 지역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서구의 가치가 개인주의라고 한다면 아시아의 가치는 공동체를 전제로 한 헌신(dedication), 조화(harmony)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6. 아시아 시대 (Era of Asia)의 조건

그렇다면 아시아의 시대는 오고 있는가? 아시아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기소르망의 말대로 아직 아시아의 시대가 왔다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르겠다. 특히 그것이 지역의 경제적 부(富)를 판정기준으로 한다면 서구 선진국에 비하여 아시아 국가들의 부는 한참 부족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시아의 시대라고 할 때의 개념은 어느 시점의 정태적 결과의 개념 보다는 보다 동태적으로 접근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개념규정 속에서 아시아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조건을 몇 가지 정리하여 보자.

첫째 서구문화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민주주의 자본주의 시장경제 인권 등은 21세기 들어 지구촌의 보편적 가치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아시아의 시대를 논함에 있어 이런 것들은 이미 주어진 전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시아 각국들은 물론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이제 모든 나라가 이런 조건을 대부분 갖추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 미국의 국방력 의존은 이제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가 미국의 국방력에 의존한다고 할 수 있다. 아직은 미국의 국방력에 대치하는 새로운 힘은 나타나고 있지 않다. 앞으로 그리 쉽게 나올 조짐이 없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견해이다. 따라서 아시아 시대의 오고 못 오고의 조건보다는 현 지구촌의 일반화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서구적 세계지배의 구체적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달러나 파운드화의 기축통화제도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2차대전 이후의 달러의 세계지배는 미국의 영향력을 더욱 효율적으로 뒷받침하였다. 그 기축통화가 여러 도전을 받고 있다. 2차대전 이후 세계를 지배하는 기구로 등장한 IMF나 세계은행에 대한 기능에 회의를 제기하고 있다. 아시아의 시대 도래에 구체적으로 제약을 가할 수 있는 이런 제도의 밑바탕이 흔들리고 있다는 이야기는 변화의 시대라는 점에서 아시아시대의 도래를 가로막을 제도의 제약이 약화 내지는 사라질 찰라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아시아는 세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GDP는 전체의 5분의 1일 정도를 생산한다. 그만큼 아시아 각국의 경제력은 자기 인구를 충분히 먹여 살릴 정도가 되지 못 한다 고 막연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21세기 인구는 생산수단으로서, 사회를 역동적으로 만드는 요소로서의 기능이 있다. 그리고 아시아 각국의 경제력의 발전 속도가 다른 지역에 비하여 몇 배 빠르다고 할 수 있다.

다섯째 2008년 말 리먼사태는 그동안 서구적 가치라고 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시장의 책임을 강조하기 위한 시장에의 간여 간섭이 새로운 시장경제의 운영의 메카니즘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까지 시장경제운영의 주축이라 할 수 있는 자유무역, 가격의 자유화 등의 기존가치는 계속 발전되어야 할 가치이다. 최근 미국 영국 서구국가에 대하여 신흥국들은 자유무역을 강조하고 정부의 지나친 시장간여를 염려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상전이 벽해 되는 느낌을 지을 수가 없다. 한국은 미국이나 EU에 대하여 FTA를 서두르고 있고 이들 나라는 거꾸로 우물주물하고 있다.

여섯째 세계의 지배력에서 아시아는 얼마나 비중을 차지할까? 이제 G7의 시대는 지나갔다. 세계경제를 진흙탕으로 몰고 간 장본인이 미국의 금융이고 여기 장단을 치던 영국 불란서 독일 등 선진국들이다. G20정상회의는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역사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G20회의의 주축 국이 아시아 국가가 된 것은 의미가 있고 앞으로 세계경제운영에 많은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전망할 수 있다.

7. 아시아 시대를 능동적으로 마지하자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아시아의 시대는 지금 오고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아직 더 발전되어야 할 부문이 아시아에 많이 남아있지만 그래도 정상(頂上)의 미주나 이미 늙은 EU 국가들을 제외하면 세계는 아시아의 영향 하에 있게 된다는 데 별 이의가 없을 것이다. 정상은 내려오는 길 밖에 없고 늙음은 조심성을 앞세운다. 그렇다면 시대를 살아가는 역동성은 아시아에서 나와야 한다.

아놀드 토인비가 말하는 태평양시대가 아시아의 시대를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 대서양의 시대는 갔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태평양 시대가 오는 것은 당연하다. 거기서 특히 중국 일본 한국이 중심이 되어 이 시대를 이끌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하여 역내 협력체제를 갖추는 노력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EU의 마스스트리트조약 같은 것은 힘들지 몰라도 굴절된 과거역사를 정돈하고 통화를 비롯한 새로운 경제협력체 같은 것을 빨리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2010년 1월 23일 토요일

가치관의 혼돈(anomie)에서 벗어나자

1. 사회적 갈등의 표출

한국사회는 개발연대와 민주화과정을 지나면서 여러 형태의 갈등이 잉태되었고 그것이 하나의 현상으로 구조화되어 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갈등구조는 IMF 이후 소위 좌경정부를 지나면서 보다 조직적으로 그리고 양성적으로 표출되어 한국사회에 하나의 힘의 도그마로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폭력적 노동운동, 광우병촛불시위, 면책특권을 빌미로 깡패나 다름없는 국회의원의 폭력행위 등을 단순한 사회갈등의 표출로 볼 것인가? 아니다. 이런 행위들은 사회적 갈등구조 표출의 주변에서 비슷한 탈을 쓰고 자기이익을 챙기기 위해 떼를 쓰는 행위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힘의 도그마 즉 사회갈등구조 속에서 약자의 가면 속에서 제 잇속 즉 경제적 또는 이념적 잇속 등을 챙기기 위하여 권력을 휘두르는 이런 현상을 현재 한국사회가 겪고 있다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사회발전과정에서 생성된 갈등구조의 자연스런 표출이 아니라 제몫 찾기에 눈이 먼 집단들의 집단행동이고 이것을 하나의 긍정적 사회발전과정으로 호도 미화하는 것은 실체파악의 착각이며 구시대적 안목이라고 평가한다.

2. 가치관의 혼돈

2010년 새해 들어 대한민국법원은 몇 가지 의미 있는 판결을 내어놓았다. 하나는 강기갑이라는 국회의원의 국회 내 폭력행위를 무죄로 판결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말썽 많던 MBC의 광우병 관련보도에 대한 무죄판결이 그것이다. 앞에 것은 국회의원이라는 자가 자기 분을 못 삭여 그랬다는(자기변명) 소위 ‘공중부양’을 하며 국회기물을 파괴하고 공무집행을 방해한 희화적인 사건이다. 뒤에 것은 광우병과 관련 없는 다우너 소의 처리를 영상화하여 마치 미국 쇠고기가 광우병에 걸려 있는 소를 도축하여 판매될 가능성이 있음을 그리고 또 다른 병으로 죽은 어느 미국인의 사인이 마치 인간광우병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 보도를 의도적으로 제작보도한데 대한 사기 명예회손 등의 사건이다.

이들 사건들을 맡은 단독판사들은 모두 무죄를 선고하였다. 판결이유는 강기갑 폭행은 공무집행을 방해할 의도가 없음을 이유로 하였다. 국회사무처장 방에서 방방 뛰는 그의 공중부양(?)이 공무집행에 방해가 안 되었다면, 그 뛰는 행위가 소리도 안 나고 새털처럼 조용해서 그 방에 있는 사람의 일에 전연 방해가 되지 않았다는 말인지 그 판사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그런 한량없는 너그러움이 발현될 수 있었을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또 사진에 명확하게 채증 된 국회 기물파괴는 어떻게 무죄가 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일반인이 그런 행동을 하면 죄가 되고 국회의원이 그것도 법을 만들고 그래서 누구보다 그 법을 잘 지켜야 할 책임이 있는 국회의원의 시정잡배만도 못한 국민재산 파손행위는 너그럽게 용서될 수 있는 것인지 판사는 답을 해야 한다.

MBC 광우병관련 판결은 더욱 가관이다. 필자가 제일 주목하는 판결이유 중 하나는 다우너 소 처리가 도축의 과정인지 불분명하므로 비록 그것이 도축되어 판매되었다하더라도 그것이 광우병과 관련 없는 것인데, 마치 다우너 소가 광우병에 걸린 소이고 그것을 미국은 도축하여 판매하는 것을 연상시키는 화면을 방송하였는데 그것이 의도적인 사기가 아니라는 판결을 하였다는 점이다. 이것도 방송당시에는 다우너 소인지 광우병 소인지 몰랐고 방송 후에서 그것이 단순한 다우너 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더구나 사인이 규명되지 않은 어느 여인의 죽음이 인간광우병을 연상시키도록 제작된 방송내용에 대해서도 사인규명이 방송 후에 인간광우병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으므로 방송당시는 사인이 불분명하였으므로 의도적인 사기가 아니라고 판결하였는데, 그러면 아무 관련 없는 사진들을 마치 관련 된 것처럼 만들어 보도한 그 방송내용이 단지 사인규명이 사후에 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죄가 된다면 공영방송의 책임은 어데서 찾아야 한단 말인지 판사는 답을 해야 한다.

법률가가 아닌 상식인의 입장에서 법관의 법해석과 판단의 결과를 왈가왈부하기는 어렵다. 전문영역에 속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상식인 들도 법철학의 근본이 상식(common sense)에 있음을 안다. 그렇다면 최근 사법부가 판결한 일련의 사건처리가 일반인의 상식에 부합하는 것이었는지를 논해보아야 하겠다.

첫째 이런 중요한 사건을 왜 단독판사들이 하는지 일반인은 이해하기 힘 든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대로라면 민감한 사건을 합의재판에 넘기면 합의과정에서 여러 잡음이 날 가능성이 있어서 이를 피하기 위하여 단독판사에게 넘겼다고 한다. 사실 여부는 외부에서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면 단독으로 판단하는데서 오는 독단이나 오류는 민감한 사건에서 왜 고려되지 않는지 일반인은 이해하기 어렵다. 또 언론에서 이야기가 많이 나오자 대법원에서는 일심판결을 가지고 무얼 그러느냐는 커멘트를 내어 놓았다. 물론 복심제이고 일심판결이 상급심에서 변화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판사의 판결은 확정력이 있는 것이고 판결의 오류를 전제로 상급심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단독판사가 한 이 판결이 오판일 가능성이 있고, 상급심에서 논할 수 있는 것 아니냐 하는 대법원의 의견대로라 하면 왜 애시 당초 신중한 처리를 위하여 합의재판부에서 신중한 검토를 할 것이지 단독판사의 결정으로 혼란을 자초하는지 법원의 행정절차를 이해할 수가 없다.

둘째 깡패나 다름없는 아니 그보다 더 저질적인 강기갑 폭행행위를 업무방해도 아니고 국회시설물을 파손하는 행위도 죄가 없다고 하면 무엇이 죄가 되는지 법의 상식으로 묻지 않을 수 없다. 제 분에 못 이겨 방방 뛰었다고 본인은 변명하는 모양인데 그가 자기 집 안방에서 방방 뛴들 누가 탓하랴. 국회사무처장이 집무하고 있는 방에 가서 탁자 위로 공중부양하는 해학적인 추태를 보여 놓고 그것이 제분에 못이긴 행위이니 공무방해가 없고 죄가 없다고 할 수 있는가? 보도에 의하면 도끼를 들고 국회 문을 부스는 사진이 공개되었는데 그것도 죄가 없다? 만일 판사 집 대문을 부순다 해도 그것은 별 일 아니라고 그렇게 너그러운 말을 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국회기물은 국민의 세금이다. 법을 누구보다 지켜야 할 입법기관이 기물을 파괴하는 행위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지 법의 상식에 맞지 않는 판결이라고 하지 아니할 수 없다.

셋째 MBC PD수첩사건은 법의 상식으로 더욱 이해할 수 없다. 다른 무엇보다 사실판단에서 연상될 만한 사진을 내어보내면서 그것을 보면 누구나 쉽게 광우병 쇠고기 판매나 인간광우병 발생 가능성을 생각하게 만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내용이 보도 이후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였으므로 악의적인 사기성이 없다는 판단이다. 사기죄나 명예회손죄의 성립요건을 여기서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판사들의 기술적 영역이다. 다만 이런 사실판단을 하는 것이 법의 상식에 맞는지를 따지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사실판단을 한다면 ‘나는 몰랐다’하면 모두 무죄가 된다. 모름의 귀책이 사회에 있지 당사자에게는 없다면 이런 세상살이는 참 편리하고 무서울 것 같다.

일반 매체에 대하여 그 잘 난체 잘하는 공영방송의 책임성은 어디 갔나? 내가 하면 이런 무책임성도 좋고 네가 하면 안 되는 이런 논리 아닌가? 사실 PD수첩방영을 보면서 중고등학교 어린 학생들이 미국쇠고기 먹으면 저렇게(인간광우병이라고 연상되는 여인의 죽음 화면) 된다고 울고 있던 뉴스를 판사는 보지 못했나? 법의 상식에 맞지 않는 판단이다. 그런 것들을 어느 개인이 사적인 장소에서 주장했다면 죄가 되겠는가? 안 될 것이다. 심지어 일반 상업방송에서 했다고 해도 좀 뜸을 들일 수 있는 여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MBC는 공영방송으로서 그 책임성이 다른 차원으로 판단해야 법의 상식에 맞는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사실 왜곡을 담당 작가가 지적까지 하였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왜곡보도를 한 것을 어떻게 당시 몰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면탈 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넷째 이러한 일련의 사건처리에 있어서 법의 상식에 입각한 공정한 판결보다는 재판부 스스로 이런 사건들을 사회 이념적 갈등사건으로 윤색하는 듯한 그래서 보다 진보적(?)인 입장에서 현실을 판단하고자 하는 것 아닌지 하는 오해를 부르게 한다. 한국사회는 사회갈등구조 속에서 약자의 입장을 감싸는 해법을 많이 찾아가고자 하였다. 경제개발과 민주화과정에서 옳은 방향의 사회발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일들이 훗날 한국사회에 ‘힘의 도그마’로서 활용되어 왔고 그것이 오늘날 사회의 많은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파괴적 노조활동이 그렇고 교권에서 벗어난 일부 전교조활동들이 그렇다. 일부 NGO를 표방한 사회운동이 그렇고 국익을 팽개친 정치권의 제몫 찾기 투쟁이 그렇다. 또한 과잉농업보호활동들이 그렇다. 대형노동조합, 전교조, 사회운동조직, 농민회 그리고 정치운동가들 모두가 이제는 약자가 아닌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이 센 집단이고 지난 발전의 혜택을 많이 받은 집단들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세월 그들의 사회활동을 약자를 돕는 입장에서 한국사회가 많은 지원을 하였다. 그 지원에 사법부는 큰 기여를 하였다고 할 수 있다. 배고픔을 안쓰러워하고 핍박 받음을 애써 돕고자 하여 왔다. 그런 사법부의 지원을 진보적인 판단이라고 평가하고 지지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이들이 가장 권력이 센 집단이고 그 떼를 쓰는 양상이 도를 넘는 경우가 많다. 이 도를 넘는 활동을 진보적 이름으로 관용 내지 지원하는 입장에서 법원이 판단한다면 이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필자는 평가한다. 이번의 판결이 이런 범위 내의 것인지는 아직 판단을 유보해야 하겠지만 법의 상식으로는 맞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앞으로 이번과 유사한 판결이 남아 있다고 언론은 전한다. 시국선언을 한 전교조 교원에 대한 평가가 그것이고, 공무원노조설립과 관련된 사법부의 판단이 현안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어떤 경우이던 법의 일반적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 판단을 법원을 하여야 할 것이다.

다섯째 한국사회의 가치관이 혼돈된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사법부 판단에 대하여 사회는 보수와 진보진영으로 대치하며 극렬한 상대방 비난 평가가 나타나고 있다. 이를 앞장서 정치권은 여는 보수를, 야는 진보의 편에서 서로 상대방에 대한 비난을 퍼부어 대고 있다. 급기야 검찰과 사법부의 대결처럼 나타나자 양 기관은 애써 이를 봉합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다. 당연히 그리 되어야겠지만 현재의 상황으로 한국사회는 가치관의 혼돈(anomie)으로 빠져들고 있는 양상이다. 일반인의 법의 상식과 거리가 있는 판결을 보면서 많은 한국사람 들은 스스로의 가치관에 혼돈을 경험하게 된다. ‘내가 무엇 잘못 생각하고 있나?’를 반추하면서 이것은 아닌데 하는 판단의 혼란을 스스로 경험하게 된다고 본다. 일부 사고와 행동에서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야 언제나 있게 마련이지만 내가 속해 있는 다수(majority)그룹의 가치관도 이런 것인지 의문과 회의가 생기게 될 것이다. 이것은 진보 보수의 이념적 갈등 이전의 개인의 가치관에 대한 혼돈이라고 필자는 평가한다. 도대체 무엇이 옳은 것인가? 사회는 이런 혼돈을 빨리 수습하고 옳고 글음의 가치관을 명확하게 해 주어야 한다.

3. 미래의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사회

그래서 정치권에서는 사법제도개혁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니까 대법원은 사법권독립을 굳건하게 지키겠다고 하고 야당에서는 여당의 사법권침해를 비난하고 있다. 이러한 일이야 당연한 일처리 수순이겠지만 이것은 일반국민의 관심권 밖이라고 생각한다.
문제의 해결은 사법부 구성원들의 올바를 가치관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느냐에 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발전된 나라일수록 사법부 구성원의 성향에 민감한 관심을 나타낸다. 그 구성원의 이념과 판단이 일반인의 가치관에 부합하느냐 여부가 매우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법부가 법집행의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에 그 구성원의 가치관이 일반인과 다를 경우 상식이 통하지 않고 더 나아가 개인 개인의 가치관의 혼돈을 가져오게 한다. 그것을 대법원장은 깊이 생각하야 할 것이다.

언제 어느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발전된 사회일수록 사회구성원으로 하여금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것을 위하여 한국사회는 지금 잉태하고 있는 가치관의 혼돈에서부터 빨리 벗어나야 한다. 21세기는 탈 이념시대이다. 보수 진보의 이념적 가치기준은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지구촌이 열린 마음으로 경쟁하고 거기서 번영을 구가하는 것이 오늘의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다.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아집에서 벗어나 지구를 아니 우주를 끌어안는 한국사회가 되어야 한다. 한국은 국운융성기에 있다. 이 기회에 한국사회가 세계 속에서 번영을 구가하기위해서는 한국인 모두가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갖게 해야 한다. 갈등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법부도 여기에 동참해야 한다. 아니 앞장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