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31일 월요일

2013년(癸巳年) 신년사

1. 변화의 시대

     2013년 계사년(癸巳年) 뱀띠해를 맞이하였다. 그것도 검은 뱀의 해란다. 작년 임진년이 흑룡의 해였는데 금년은 연 이어 흑사의 해인지 나는 알 수 없다. 용과 뱀은 우리나라 사고로 보면 용은 크고 영험한 동물인데 비하여 뱀은 무언가 기분이 좋지않은 동물로 치부되고 있다. 다만 꿈자리에서 뱀을 맞나는 것은 대부분 길조이고, 재수 있고, 잉태하는 등등 이로운 것으로 해몽된다. 12간지에서 만들어지는 해의 상징이 무슨 심오한 의미가 있는지 나는 전연 모른다. 다만 새해 되면 언론을 통하여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 지나갈 따름이다. 뱀은 싫어하지만 검은 능구렁이를 보면 재수있다고 생각한다. 각설하고...

   새해는 세계에 많은 부문에서 변화가 일 것으로 짐작된다. 어느시대를 막론하고 변화는 있게 마련이지만 특히 2013년은 연초부터 여러부문에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가. 권력지평의 변화

     1) 세계는 지난 연말을 전후하여 유수국가들의 정치권력이 교체되거나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함으로써 그의 제2기 집권이 시작되었다. 그는 태평양시대에 중점을 두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이제 G2 국가로 자리매김을 하는 중국은 이미 오래전 예고 된대로 시진핑이 권력을 이양받았다. 후진타오 때와 달리 시진핑은 국방주석도 함께 일시에 모든 권력을 유보없이 넘겨받아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고 있다. 그는 방위력을 확충하고 경제를 부흥시키겠단다. 불란서는 올랑드 사회당정부가 들어섰다. 특이한 점은 좌파정부가 좌파정책을 포기하였다. 인기영합정책이 실제 권력을 잡고보니 실천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나타낸 정책의 변화이다. 러시아는 푸틴이 예상대로 총리직을 버리고 대통령이 되었다. 푸틴의 정책은 밖을 보기보다는 러시아 내부의 부흥에 매진(inward looking)하는 인상이다.

    2) 아베 일본 자민당총재는 극우정책을 바탕으로 절대다수의 의원확보를 통한 재집권에 성공하였다. 국방군 확보를 위한 헌법개정을 통한 방위력확충과 이웃 중국, 한국과 영토분쟁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워 벌써부터 많은 무리수를 둘 것 같은 조짐이다. 이러한 극단주위는 물론 북한의 김정은 정부에서 더 나타나고 있다. 연말 장거리 로켓발사 성공을 계기로 그는 인민 사이에서 영웅으로 떠 받들리고 있다. 백성들의 배고픔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다음단계인 핵폭탄의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3) 단기적으로는 시진핑 정부와  아베 정부의 등장이 김정은의 동출행동과 함께 아시아 지평을 각축장으로 변화시킬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미 베트남, 필리핀 등과 영해권 분쟁을 일으킨 중국정부는 여세를 몰아 센가꾸열도를 놓고 일본정부와 날선 분쟁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충격을 받은 일본국민은 아베정권을 탄생시켜 이를 막아주기를 바라고 있다. 한국의 독도를 자기들 것이라고 망언하며 그곳에 잠입을 시도하던 극우파 의원들이 모두 입각한 아베정권이 출범함으로써 그들의 극우돌진이 언제 시동이 걸릴지 알 수가 없다.

     4) 99%의 반란으로 더 유명한 월스트리트 데모는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지만 언제, 어디에서, 어떤형태로 폭발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미국은 동병상련의 오바마가 재 집권하여 당분간 조용하겠지만 EU, 중국, 한국등 각지에서 부의 불평등에대한 불만이 가득한 것이 사실이다.

     5) 한국에서는 좌파세력의 강력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보수세력의 지지를 받은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후보가 18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진보와 보수의 집단들은  '종북세력에대한 견제'라는 보수의 절대가치를 제외하고는 그저 거기서 거기인 정책공약을 내세웠다. 경제민주화라고 하는  정치슬로건을 다 같이 내걸고, 그저 소득불평등, 경제불평등을 없에고 소위 보편적복지를 지향하는 모습은 양진영이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비슷한 가운데 서로 선심정책을 앞다투어 내 놓은 양상이었다. 퍼퓰리즘의 극치을 이룬 선거이었다. 당초 팽팽하게 경쟁하면서 이겨도 미세한 승부를 이룰 것이라는 예측과는 달리, 보수들의 대 결집으로 표차는 1백만표가 넘는 52%대 48%의 격차로 과반수를 넘어 박근혜후보가 이겼다. 그러나 박근혜정부의 대 내외 환경은 어느때보다 큰 변화가 일것 같고 해결책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나. 경제지평의 변화

     가. EU의 침몰

          내년 세계경제는 오히려 2012년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전망이다. 무역이 무너지고, 좀더 심각한 일본 영국같은 곳은 스태그플레이션이 심화될 것이다. 미국은 그동안의 양정완화정책으로 경제가 기지개를 펴는 듯 하지만, 넘치는 유동성은 오히려 인프레를 유발하여 스태그플레이션의 초기 진입이 되거나, 오히려 리프레이션 증상으로 변화될 가능성도 함께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형태로든 EU는 침몰하는 모습을 나타낼 것이고 한국과 중국경제는 과분한 복지확충으로 등에 식은땀이 흐를 것이다. 그래도 제일 큰 경제지평의 변화는 EU의 몰락과 함께 세계경제의 활력이 사그러드는 해가 되지 않을까 전망된다.

     나. 중국경제의 굴기시도        

          자원의 블랙홀로 불리는 중국경제는 세계의 수요 침잠기를 맞이하여 자원을 비롯한 많은 원자재를 원하는대로 사드리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세계수요의 퍼체이스마켓이 될 중국경제는 이를 바탕으로 대국굴기(大國堀起)를 시도할 것이다. 아시아 주변의 영토주권경쟁과 함께 새로 출발한 시진핑 정부는 정치 경제 면에서 지평을 넓혀가고자 시도할 것이다. 일부는 중국에 굴복하고 일부는 오히려 중국에 맞서 힘겨루기를 마다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 2013년 새해는 시끄럽게 될 전망이다.

     다. 미국경제 리프레이션 시작

          2013년 미국경제가 성장을 하는 가운데 물가가 상승하는 리프레이션으로 진입할 것인지, 아니면 성장도 끊어지고 물가도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갈 것인지 지금 가늠하기는  힘든다. 그러나 좀 희망적이지만 미국 오바마 정부가 현재 논쟁 중인 재정절벽(fiscal cliff)을 잘 결말짔고 현재의 경기부양을 위한 양적완화를 지속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면 미국경제는 단기적으로 다시 상승하고 그 대신 돈의 과다 살포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상황에 도달하지 않을까 전망된다. 그래도 그것은 일본의 스태그플레이션 보다는 좀 나은 국면의 전개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시진핑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노력은 오히려 일본과 한국과의 협력관계를 더 공고하게 하여 경제부흥을 획책할 가능성도 있고, 오히려 미국이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여 한국이나 일본에 중국견제 역할을 하여줄 것을 주문할 경우 한국과 일본은 더욱 재정핍박을 받을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후자보다는 전자의 협력관계 쪽으로 발전될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고싶다.

     마. 한국경제의 침하

          내년 한국경제는 2012년 보다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새정부가 들어서고 새 지도자에대한 기대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통령선거 중 지나친 복지공약으로 추가될 재원마련으로 재정구조는 더욱 악화될 것이고, 기대에 못 미친 선심지원은 국민들을 더욱 실망하게 만들 것이다. 

           성장잠재력 확보를 위한 경제구조개혁은 좀처럼 슆게 풀리지 않을 것이며, 많은 시간과 재원이 소요될 것이고 단기적으로 경기부양에 역으로 작용할 것이다. 수출은 세계수요의 부진으로 계속 어렵게 갈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의 내년 경제성장 전망 3%도 그리 녹녹하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거기에 복지수요는 증대하고,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실망감은 여기저기에서 행동으로 표출 될 것이다. 한국경제는 당분간 침하기를 맞게 될 것이다.

2. 새해를 맞은 한국인의 각오 

     가. 새로운 도전(challenge)에 대한 자신감

          한국인은 2013년 새로운 도전 앞에 섰다고 할 수 있다. 보수세력의 결집, 새 여성대통령, 과반수를 넘는 지지를 얻은 새 정부,  복지와 행복의 추구 그리고 예상되는  세계의 변화물결 앞에 한국인들은 위축될 수도 있고, 아니 더욱 결연히 새로운 도전을 헤쳐나갈 수도 있다. 

          21세기 한국인들은 어려운 파고 앞에 결연이 맞서는 용감함과 의지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나는 평가한다. 비단 경제문제 뿐만 아니라 모든 부문에서 한국인처럼 새로운 도전에 제대로 응전하는 민족은 드믈다고 나는 평가한다. 육이오사변 이후 한국은 불과 60년 만에 폐허에서 선진국으로 변모하였다. 인구 5천만에 소득수준 2만달러를 넘는 클럽에 당당히 진입하여 일로 매진하고 있다. G-20에 가입하였고 세계 8대수출국이 되었다. 교육수준은 세계 최고 이고 인터넷문화는 꽃을 피웠다. 한국인은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체육 모든 부문에서 세계 어느나라와도 어깨를 나란이 한다. 한국 안에서 보다는 밖에서는 한국을 모두 선진국으로 평가한다.

          2013년 세계지평이 요동을 치고 경제가 곤두박질을 친다해도, 한국인은 아무리 어려운 도전이 오더라도 이를 슬기롭게 극복할 자신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평가한다. 

      나. 세대갈등 진영(陳營)의 논리에서 탈출

          2012년 한국의 대통령선거과정에서 부산물로 생겨난 세대갈등이나 진영의 논리는 하루빨리 극복하고 나아가야 한다. 세대갈등도 물론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 침소봉대할 필요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언론의 분석이 가능한 것은 사실이지만, 20대 30대 중 상당한 비율의 사람들이 건전한 사고 를 가지고 현실을 직시하고 있음을 보아야 한다. 

          있는자 없는자의 문제, 재벌 배척 등 진영의 논리는 쉽지는 않지만 시간을 가지고 설득하고 함께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좌파진영의 주장 중 종북세력의 주장만 제외하면 한국의 절대다수는 자유시장경제와 민주질서를 절대가치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너무 표상적 언론분석에 좌지우지할 필요는 없다고 평가한다.

     다. 통합과 그늘을 배려하는 체온의 정치
    
          한국정치는 환골탈퇴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후진적인 집단이 정치집단이다. 패거리정치에서 벗어나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하고 옳게 행동하고 실천에 들어가는 정치집단이 한국에서 탄생되어야 한다. 과거 김대중, 김영삼과 같은 패거리 정치가 없어져야 한다.

          한국정치권은 체온을 가진 정치를 해야 한다. 복지를 위하여, 행복을 위하여 그늘진 곳을 어루만지고 우리 능력부족함을 스스로 자괴하는 그런 정치집단이 되도록 박근혜대통령은 처음부터 노력하여야 한다. 정치권이 환골탕퇴하지 않는 한 정치권은 현실에서 점점 증오의 대상이 될 것임을 각오해야 한다.

     라. 기대치를 낮추자

          그동안 선거등을 통하여 한국 국민은 많은 것을 새 정부나 박근혜대통령에게 기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성장에 대한 기대, 복지에대한 기대, 행복에 대한 기대, 정치권 혁신에대한 기대 어느 하나도 어렵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당장 실현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 시간과 노력 그리고 능력 범위내에서 서서히 개선되어가야 한다. 그것도 우리 모두 스스로 기여할 때 가능해 진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선 우리 스스로 당장 변하기 보다는 시간을 가지고 우리 모두 함께 노력하여 이루어간다는 각오로 우리 기대치를 낮추어가야 한다.

     바. 2013년을 한국굴기(堀起)의 원년으로 삼자

          중국은 이제 더 이상 도광양회(韜光養晦) 화평굴기(和平堀起) 즉 숨어서 실력을 양성하고 남의 눈치를 보아가며 번영을 시도하는 나라가 아니다. 대놓고 국력과시를 시도하는 나라가 되었다. 일본은 이미 선진국이다.

           그렇다면 한국도 이들과 경쟁에서 어엿하게 뻗어나아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현대사회는 인구나 나라의 크기에 의하여 국력이 평가되는 시대가 아니다. 한국도 이들과 대등하게 경쟁한다는 의식을 스스로 가져야 한다. 2013년을 바로 이런 한국굴기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당당하게 이웃과 경쟁하고 북한의 위협에 대응해야 한다. 새 술은 새 푸대에라는 말처럼 2013년 새 대통령, 새정부에서 한국굴기의 기회를 만들어가기를 바란다.

          추기: 뱀은 해마다 허물을 벗고 새롭게 태어난다고 한다. 그리고 사라질 뿐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한다. 계사년 검은 뱀의 해를 마지하여 한국도 이런 굴기의 원년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2012년 12월 26일 수요일

박근혜 시대의 개막

1. 새누리당 박근혜후보의 대통령 당선

   2012년 12월 19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는 제 18대 대통령에 당선되어 새로운 보수 여성대통령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초유의 유권자 과반수 지지를 넘어선 대통령, 초유의 여성대통령, 청와대에 두번들어가 살게된 대통령 등 많은 기록이 대통령 당선인에게 붙여졌다.

   선거기간 내내 한국의 대통령선거는 진영(陳營)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보수 대 진보, 50대 이상의 노년층과 20대 이상의 그것도 40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층과의 힘겨루기, 안철수 이정희 등 정체성이 불분명하지만 기존 보수와 결별하고자 하는 세력과 보수진영과의 갈등, 더 나아가 진보당계열의 종북세력과 광의의 민주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통합당과의 연합 등 선거는 정책보다는 어느 진영에 속하느냐를 놓고 힘겨루기를 하였다.

   선거 초반 새누리당 박근혜후보, 민주통합당 문재인후보 그리고 무소속의 안철수후보가 떠 올랐다. 그러나 이들 3인의 정책노선은 약간은 흐리멍텅한 가운데 서로의 차이를 확실하게 구분하기 곤란하였다. 모두가 경제민주화를 필두로 퍼퓰리즘의 극치를 이룬 가운데 누구라 할 것 없이 한걸음 더 앞서가고자 무리에 무리를 거듭하는 양상을 연출하였다. 하나가 일보 나가면 다른 후보는 일보 반을 가고자 애를 썼고 그러니 선심정책은 날로 확대되어가는 양상이었다.

   정책으로 정체성이나 국민의 지지 우위를 점하지 못하게 되자 민주당은 야권통합을 지상의 가치로 등장시켰다. 순진한 것인지 능구렁이가 더 들어가 있는 것인지 불분명한 안철수 전 서울대교수는 싱겁게 문재인후보 손을 들어주고, 자기는 조연으로의 역할을 자처하였다. 해괘한 것은 그러면서도 안철수는 문재인에게 덥석 안기기 보다는 오히려 거리를 두는 듯한 제스쳐를 취함으로써, 민주당은 말할 것 없고 관계없는 모든 유권자들을 당혹하게 하였다. 선문답과 애매모호한 제스쳐를 쓰는 안철수에게 모두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후보자 토론회가 테레비를 통하여 시작되었는데 무슨놈의 제도인지 그 취지가 불분명한 선관위 해석으로 국회의원이 5명이상이 있다는 이유라나 뭐라나를 들어 여론조사 1% 수준의 진보당 이정희후보가 참여하는 3인 토론회가 진행되었다. 1차, 2차 토론회가 진행되는 동안 이정희라는 후보는 정강정책에 대한 토론이 아니라 박근혜에 대한 욕설에 가까운 비난을 퍼부었다. 그 통에 토론회를 지켜보던 많은 유권자들은 당혹함에 빠져들었고 급기야 ' 나는 박근혜를 떨어트리려 나왔다'는 이정희의 막말을 들으면서 많은 유권자들은 '멘붕'상태로 들어갔다. 그녀의 이런 돌출행동은 옆에 앉은 문재인을 허수아비로 만들었고, 더듬대는 박근혜의 부족한 대응도 덮어버리고 말았다.

   투표 이틀전 마지막 3차토론을 5시간 남기고 이정희는 갑자기 대통령후보직을 사퇴함으로써 박근혜를 당황하게 만들고자 시도하였다. 이러한 이정희의 돌출행동은 50대 이상의 보수층을 위기 앞에 결속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특히 선거 5일전부터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는 암흑기간 동안 흑색선전은 극치를 이루었다. 문재인이 드디어 '골든크로스'를 넘어섰다는 루머는 설득력을 갖게하였다.

   투표율이 73%를 넘으면 문재인이 유리하고, 77%가 넘으면 문재인이 말춤인가를 추겠다는 약속을 하였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였다. 일부러 출장일정을 조정하여 새벽에 인천으로 귀국한 나는 아침밥을 먹자마자 식구들과 함께 투표소로 향하였다. 추워서 기다리면 어쩌나 하는 나의 염려는 조용한 투포소 밖의 분위기를 보고 안심하였지만, 교실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추위때문에 복도에 구비구비 길게 늘어선 투표객 맨 뒤에 열을 선 우리식구는 한시간 이상 기다리고야 투표에 참가할 수 있었다.

   여섯시 가까워지면서 투표율은 사정없이 올라가 78.9%라나가 되었다고 발표가 나왔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출구조사결과는 박근혜가 1.2%포인트로 문재인을 앞선다고 한다. 투표율 상승이 반드시 야당에 유리하지만 않다는 결과를 출구조사를 통해 보면서 불안해 했지만 결과는 51,6대 48,  1백 3십만표로 박근혜후보가 당선되었다.

2. 박근혜 정부가 당장 해야 할 일

   박근혜대통령당선인은 정부 인수위원회의 활동을 거쳐 내년 2월 25일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새로운 정부가 시작되게 된다. 이러한 법률적절차와는 별도로 실제 박근혜 대통령시대는 선거가 끝나자 마자 열렸다고 할 수 있다. 지난 몇일 사이 벌써 박근혜는 대통령으로서의 행보를 시작하였다.

   '천리길도 첫 걸음부터'라는 말처럼 박근헤대통령 시대는 열렸고 그 시작 초기가 정치적으로 그리고 사실상 앞으로 5년을 가늠할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언제나 산적한 문제는 있기 마련이지만 박근혜대통령 5년은 많은 상충된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 어려운 시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장기과제보다 당장 새 정부가 추구해야할 긴급과제들 몇가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가. 진영의 논리에서 벗어나라.

       언론에서 굳이  편을 가르고자 분석하는 것을 마다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도 아닌데 50대 이상은 보수고 40대 이하는 진보라는 논리는 과대 포장된 것이다. 물론 산술적인 투표성향 분석으로 이런 분석이 가능하지만 그중 젊은 세대들의 지지도 변화를 주시해야 한다.

       왜 20대가 30% 이상의 지지를 박근혜에게 보냈는가? 그들은 전교조 세대인데 왜 전교조를 등지고 보수교육감을 지지하였나? 왜 50대가 79%의높은 투표율과  90%대의 박근혜지지를 보내었나? 그들은 지난 번 대선때 불과 45세의 40대 아니었나? 그들이 왜 갑자기 그렇게 변하였나? 물론 나이들면서 세상을 보다 넓게 보게 되었다는 논리도 성립되지만, 그 보다는 그들이 40대일때 믿었던 이정희같은 종북논리가 얼마나 허구였는지를 깨달은 것 아닐까?

       투표결과 지역별 지지성향은 전과 별 변화가 없이 경상도는 박근혜, 전라도는 문재인을 지지하는 모습을 나타내었다. 그러자 박근혜 당선인은 대통합을 한다고 정권인수위원장, 국무총리는 전라도에서 고를 것이라는 예측을 한다. 이런 분석 자체가 진영의 논리이다. 정부는 이런 진영의 논리에서 벗어나 정도의 국가운영을 하여야 한다. 박정희시대부터 내려온 전라도 총리가 통합이라는 관점에서 얼마나 허구였는지를 통합을 강조하는 새 대통령은 알아야 한다. 정도의 국가운영은 전문성에 바탕을 두고 정치적으로는 그늘진 곳을 아우르는 민생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나. 50대 이상을 부채(liability)의 세대로 만들지 말라.

       어느 경제학자의 말대로 세대를 가지고 부채와 자산(asset)의 그룹으로 구분하는 것은 은 말이 안 된다. 물론 나이들 수록 생산성이 감퇴하는 것을 인정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세대 구분 없이 생산활동에 참여하도록 만들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생산성에 따라 대우하고 사회가 발전하게 만들어야 한다. 물론 극상 노인세대는 사회가 책임을 지고 지원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80대 이하의 새대들은 생산활동에 적극 참여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에 대한 1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

       한국 젊은이들의 노인비하 생각은 김대중 대통령정부 때부터 확대되었다. IMF를 지나면서 당시 정부는 기업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였는데 이에따라 많은 해고조치(lay off)가 이루어졌었다. 오십대보다 더 낮은 40대 중반부터 감원을 하다보니 사회는 감원대상을 무능한 새대로 규정짔게 되었고, 자연 그들은 사회의 부채로 여기는 잘못된 습성이 생기기 시작되었다. 당시 정부가 레이오프세대들을 무능의 코너로 몰고가기보다는 그동안 사회발전에 대한 기여를 평가하는 방향으로 몰고 갔어야 했다. 또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는 참여기회를 확대하는 노력을 했어야 했다. 그런 노력보다는 이들 세대를 뒷방 코너로 몰아너어 무능한 인간으로,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부채세대로  치부해 버리고 말았다. 물론 IMF 등의 권유라는 구실을 말하고 싶겠지만 그것은 서양의 가치이지 유교문화를 바탕으로하는 동양의 가치는 아닌 것이다. 당시 정부의 무식의 소치라고 나는 평가한다.

       지금 50대 이상의 세대를 막연하게 나이 만으로 부채, 자산으로 구분해서는 안 된다. 또 오늘의 자산은 어제 그들에 의하여 축적된 것임을 젊은세대에 일깨워야 한다. 단순하게 나이의 많고 적음으로 구분하여 젊은세대가 나이 많은 세대의 부담을 왜 짊어지게 하느냐고 불평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 심지어 노인에게 선거권을 박탈해야 한다는 소리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서 나이먹은 사람에게 힘이 쫙 빠짐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젊은이 들에게 음수사원(飮水思源)의 고사성어를 가르쳐야 하는 책임도 정부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더 나아가 정부의 임무는 산업구조, 고용구조의 변화를 추진해야 한다. 사회의 변화에 맞는 것이 모두 첨단 IT산업에 만 있는 것이 아니고 수출일변도의 경제정책에서 벗어나 한국경제에 알맞는 경제 산업구조의 변화를 정부는 추구해야 한다. 지난 정부의 정책부실이 바로 이런 곳에 있었음을 시인하고 화급한 산업구조변화와 이에 따른 고용구조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나이만으로 정년을 구분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다. 경제민주화의 허상에서 탈피하라.

       이번 선거에서 가장 잘못 간 것이 경제민주화로의 지나친 질주였다고 평가한다. 경제민주화는 정치슬로건이지 경제논리는 아니다. 더더군다나 경제정책은 아니다. 다다익선과 퍼퓰리즘은  민주주의 선거의 부산물이다.

      국가운영의 기본은 '국리민복(國利民福)'에 있다. 국가를 보위하고, 백성을 잘 살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 국가운영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노무현정부가 국토를 지키는 개념이 없이 NLL을 아이들 땅따먹기로 비하한 것은 국가운영이 아니다. 이명박정부가 수출일변도로 부익부 빈익빈 정책을 추구한 것도 국가운영의 낙제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가난한 사람이 모두 없어지고 모두 배부르고 행복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위하여 국가는 시장경제를 규제할 수 있다고 한 헌법규정을 단순논리로 받아드리고 거기에 맞추어 모든 불평등을 하루아침에 시정하고자하는 논리로 경제민주화를 받아드린다면 그것은 오히려 경제발전의, 사회발전의 족쇄가 될 수 있다. 우리 속담에 '누을 자리를 보고 발을 뻗으라'는 말이 있다. 무턱대고 불평등만 쳐다보고 이것을 시정하려하는 것은 교각살우를 범할 위험이 있다. 능력대로 해야 한다.

       세금 생각은 안 하고 무턱대고 일반복지니 뭐니를 주장하는 것은 안 된다. 또 좋은 것은 더할수록 좋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오늘의 고통(세금)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이미 박근혜 대통령당선인도 너무 지나치게 간 것이 많다. 물론 상대후보의 공세에 맞추다보니 과한 것도 있었겠지만 지금이라도 정신차리고 바로 잡아야 한다. 물론 경제민주화로의 발상의 전환은 좋다. 그 준비부족함을 말하는 것이다.

       아무리 경제민주화가 좋다고 해서 시장경제의 기본을 허트리면 안 된다. 순환출자규제나 출자총액제한 같은 제도는 그 범위와 속도에서 신중함을 기해야 한다. 더더군다나 재벌해체등의 접근은 혁명일 뿐이다. 시장을 규제(regulate)하는 것과 시장을 간섭(intervention)하는 것은 전연 다른 개념임을 정부는 알아야 한다.

   라. 성장의 잠재력 확충을 서둘러야 한다.

       이명박정부에서 2%대로 추락한 잠재성장률을 끌어 올리는 노력을 서둘러야 한다. 이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제기하지만 그저 막연한 메아리에 불과한 것 같다. 그러나 이것처럼   시급하고 근본적인 것은 없다고 할 것이다.

   패망길에 들어선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하여야 한다. 옛날에는 일본을 보고 배우자고 하였다. 지금도 일본을 보고 배워야 한다. 다른점은 전에는 일본 하는대로 따라 하자고 하였고, 지금은 일본 반대로 하면 된다는 점에서 반대논리가 성립된다.

       저출산 인구구조를 고쳐 나가야 한다. 산업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어려울 수록 더 개방하고 다른 나라와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나약한 젊은이들의 사고부터 세계를 이끌어가는 방향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도전정신을 길러야 한다. 남을 탓하기 앞서 사회에 헌신하고 봉사하는 정신을 함양시켜야 한다.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막연한 것 같지만 대한민국 국민 모두 일어서야 한다.

   젊은이 늙은이의 구분이 없이 오늘 내가 사회에 모두 헌신하는 자세를 갖게 될때 한국의 성장력은  5%를 넘어 6%대에 진입하게 됨을 새 정부는 깨달아야 한다. KDI 같은 연구기관에 '잠재성장률 제고 연구'를 본격적으로 실시할 것을 주문하는 것도 한가지 방안이 될 수 있다.


   마. 국민의 기대치를 낮우는 노력을 하라.

       2%대의 경제성장을 하는 사회에서 무차별복지니 일반복지니 하는 것이 지나친 것이다. 한국사회는 아직 절대수준의 복지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 보다는 상대적 격차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일이 의욕만으로 그렇게 금세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꾸준하게 정부는 추진하고, 국민들은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국민이 당장 무언가 변하는 것을 크게 기대하지 말고, 정부는 이런 일을 너무 서둘러 하려 해서는 안 된다. 거기에 파탈이 나게 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 인식해야 한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의 기대치를 낮추는 일이 필요하다하고 할 것이다.  성장에대한 기대, 복지에 대한 기대, 정부에 의한 선심 같은 기대들이 현실에 맞게 조정되고 좀 느긋하게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새 정부가 국민과의 정책합의를 이끌어 내야 할 부분이다.































2012년 11월 17일 토요일

바뀌는 세상, 구태 그대로의 한국정치권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지 67년의 세월이 흘렀다.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와 구 소련 중심의 공산주의의 냉전체제도 소련의 몰락과 함께 자본주의의 일방적 승리로  25년이 지났다. 그렇다고 이론상 자본주의의 승리라고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사생아처럼 생겨난 '복지주의'가 21세기 세계를 흔들고 있다.  2차대전 패전국 독일과 일본이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고 그중  미국 다음으로 경제적 부흥을 누렸던 일본이 중국에게 세계경제 2등 지위를 넘긴지도 2년의 세월이 흘렀다.

   모택동의 공산주의 지배로 부터 경제를 분리하여 흑묘백묘론을 들고 일어났던 중국의 등소평이 중국을 개방한지도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는 해와 뜨는 해로 비교되던 영국과 미국 중심의 국제통화도 달러화의 일방적 지배로 파운드화은 이제 중국의 우엔 화보다 오히려 국제적 통용성이 줄어들고 있다. '네마리 용'에서부터 시작된 개발도상국들의 비약적인 발전 모습들은 'BRICS'를 끝으로 시들해지고, 세계 부의 상징이던 미국 월가는 리먼브러더스의 몰락과 함께 찬란한 흥행기를 마감하였다. 지난 67년 사이 세계지형의 변형도다.

   세계지형의 변화 배경에는 경제발전을 위한 정치경제이론의 변화가 긴밀히 관련된다. 1929년 시작된 세계적 대공황과 제2차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시장경제와 개인의 이기주의에 바탕을 둔  고전적 유효수요 이론은 침몰되어가는 경제현실 앞에 무기력해 지게된다. 이를 바탕으로 보완된 정부주도의 케인지언 유수정책(pump priming policy) 논리는 불경기타개책으로  1950~60연대 흥행기를 맞는다.  그러나 이런 케인즈를 중심으로한 정부주도의 유효수요 창출 정책논리는 1970년대 대두된 스태그플레이션 앞에 20여년의 흥행기를 마감한다.

   그리고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하이에크와 밀튼 프리드만 등에 의해 종래의 케인즈이론을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고용과 이를 위한 투자는 정부정책보다는 시장의 지배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게 신자유주의 이론의 기본이다. 1979년 영국의 새 정부와 1981년 미국의 레이건 정부에 의하여  강조된 작은 정부와 감세등을 통칭하여 신 자유주의라 칭하고 이를 프리드만과 루카스등이 전파시켰다. 미국중심의 이 신자유주의는 월가의 흥행과 함께 세계부를 좌지우지하고 지난 20여년간 번영의 정점을 다다를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신자유주의의 중심에는 소득불균형이라는 복병의 처리가 제대로 되지 못하였다. 1980년대 10여년동안 미국소득증가의 90%를 최상위 1%가 독점하는 문제를 사회문제로 부각 되기 시작하였다.(Winner take all society)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의 경우에도 소득불균형의 모습이 지니계수를 통하여 관찰할 수가 있다.

   여기에 다시 대두된 것이 폴 사뮤엘슨을 중심으로 한 신고전학파의 등장이고 조안 로빈슨을 중심으로 한 후기케인지안학파의 주장이 등장한다. 개념상의 차이는 있지만 이들 새로운 학파를 중심으로 '이자율', '정부투자' 등이 '정책변수'로 더 중요성을 받게 되었고 투자내용의 계획화, 사회화 그리고 사회복지증대 등이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투자의 사회성(socialization of investment)이 전보다 강조되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새로운 학파의 주장들은 이론으로 유지될 뿐 호황을 누리는 월가 중심의 미국경제 앞에 오히려 무기력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론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기 시작한 곳도 바로 번영의 발원지 미국 월가였다. 2007년 리먼브러더스의 실패에 이어 번영의 사슬은 선진시장에서 특히  EU에서 연결고리가 끊어지기 시작하였다. 번영의 향락에 길 들여진 그리스 경제는 이체면 저체면 가릴 이성을 잃기 시작하였다. 한 두릅으로 억지로 꾀어만든 EU는 그리스가 터지면서 이태리 스페인 포르트갈 그리고 불란서의 좌익정부가 서로 묶여진 끈을 끊어내는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미국 월가는 불평등경제 데모의 발원지가 되었고, 이어 EU 국가들, 일본 심지어 중국등에서도 불평등과 죽겠다는 소리가 나기시작하였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복지논쟁이다. 복지논쟁의 스타트에는 언제나 '고용'이 앞장선다. 당장 무슨 수로 고용을 늘리나? 정부지출밖에 방법이 없다. 세금을 올릴수도 없다. 우선 금리를 제로수준으로 끌어내렸다. 일본을 닮아가는 미국의 제로금리정책이다. 그러나 아무리 금리가 낮아도 투자할 돈이 없다. 미국의 양적완화정책이 이미 세차례나 반복되면서 지난 10월 실시한 주택채권의 무제한 매입같은 무리수를 두고 있다. 이 덕으로 고용이 좀 늘고 오바마의 대선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이 양적완화정책의 종점이 어디일지는 지금 알 수가 없다. 정치가 엉망인 일본의 양적완화도 더 한심한 모습이고, EU에서 한발 물러선 영국도 마이나스경제성장을 유지하고 있다. 인기주의로 승리한 올랑드 불란서 좌파정권은 이미 그들의 인기정책의 한계를 알고 손들었다. 언제나 정치이벤트마다 단골 손님인 복지정책은 지금 어디에도 없다. 오직 한국만 마치 비행기 여행의 시차(時差)처럼 대통령선거를 맞아 '경제민주화'니 뭐니하면서 떠들어대고 있다.

   2012년 세계는 지역마다 편차는 있지만 많은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 우선 EU체제의 몰락위기이다. 그리스를 필두로 이태리 스페인 포르트갈이 경제의 침몰위기를 겪고 있다. 그 이전의 아이랜드나  헝거리의 재정위기는 이제 지난 이야기이고, 이제 EU의 지도국인 불란서 그리고 영국조차 경제가 영 죽을 지경이다. 미국도 FRB의 신속하고 탄력적인 대응으로 아직 그 체면을 유지하고 있지만 지난 대선 직전 실시한 3차 양적완화정책의 종착역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일본은 후쿠시마원전사고 이후 나라의 활력이 없어진 가운데 새로운 중의원선거를 치른다고  무제한 양적완화를 경제정책의 기본으로 새로 내걸 고 있다. 이러한 미국 일본 그리고 EU의 넘치는 현찰물결이 어디로 삼각파도를 이루며 밀려올지 알 수가 없다.

   금년들어 러시아의 푸틴이 다시 대통령으로 컨백하였고, 불란서는 사회주의 정부가 구성되었다. 최근 미국의 버락오바마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하였고 중국의 시진핑은 예상대로 정치 군사 모두를 한손에 틀어지게 되었다. 바야흐로 역사는 G2의 오바마와 시진핑의 시대로 집약된다. 중국의 대국굴기(大國堀起)를 견제하기 위하여 오바마는 재선에 성공하자 마자 미안마 태국 프놈펜 등을 순방한다고 한다. 이제 중국은 더 이상 도광양회(韜光養晦)하는 은둔하며 힘을 기르는 국가가 아니다. 이미 필리핀해와 일본 등지에서 영토권을 가지고 내 놓고 그들의 굴기를 시작하고 있다.

   다른 한편 이제 세상은 더 이상 앵글로 색손의 대서양문화의 시대가 아니다. 태평양시대가 도래하는 과정에서 미국 중국 일본 등이 서로 주도권 다툼을 시작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태평양시대의 협력관계도 어제의 구도가 아니다. 중국은 당연히 주도권을 잡으려 하고 있고, 일본은 아무리 늙어도 아직도 힘이 남아 있는 선진경제국가이다. 한국은 아직도 머리에 북한이라고 하는 시한폭탄을 이고 앉아 전전긍긍하고 있는 형상이다. 다행이 한국민의 최근 발현되는 세계무대에서의 역동성(vitality)은 국운흥성을 예감케 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의 정치권이다. 모두 한 삼테기에 넣어 태평양에 버렸으면 좋을 것 같은 구태정치 모습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보수가 무엇이고 진보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들 한국정치권에서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세사람 후보들이 모두 거기서 거기인 이슈를 들고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고 한다. 더군다나 둘은 서로 합치네 마네를 놓고 국민을 피곤하게 한다.

    사실 지금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 그리고 안철수 측에서 내세우고 있는 큰 정책의 틀은 거의 차이가 없다. 또 필요에 따라 인기영합적으로 말을 바꾼다.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한국의 앞날은 대통령 때문에 잘 될 것 같지는 않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국토를 지키고 국리민복을 최대의 가치로 하여야 한다. 국방에서 경제에서 사회에서 셋중 누가 더 낫다고 장담할 사람이 있는지 나는 판단할 수가 없다. 최소한도의 조건은 국가를 적화(赤化)하지 않아야 하고, 경제를 시장에 맡기는 인사이어야 한다. 이러한 가장 원초적이고 최소한도의 조건을 갖춘 대통령감이 세분 중에 누구라고 장담할 수가 없으니 한심한 일이다.



























2012년 11월 8일 목요일

새 지도자가 등장한 미 중 그리고 한국의 미래

   2012년 11월 7일 오후 3시(한국시간) 미국의 대선은 박빙의 승부라던 여론조사와 달리 오바마의 일방적 승리로 판가름 났다. 물론 전국 투표자수로는 불과 2%차이 밖에 안 난다지만 승자독식의 제도 탓에 오바마는 공화당의 롬니에 비하여 선거인수를 월등하게 앞서가게 되었다. 민주당은 아니 유색인종들은 휴 한숨을 쉬었을 것이고 백인들은 낙망하였을 것이다. 인종적 경쟁으로 변질된 선거판세를 보면서 백인들은 앞으로의 미래를 더 걱정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의 선거는 정책적으로 보면 단순한 흑백인종간 또는 힘있는 부자중심의 공화당의 지지가 아니라, 너무나 팍팍한 경제현실을 오바마가 그동안의 지지부진했던 정책추진을 마지막 박차를 가하여 종결지어달라는 주문이 아닐가 싶기도하다. 그 크기가 얼마일지 잘 가늠도 안가는 양적완화정책은 종착역이 어디이며, 그 수습은 재정을 얼마나 쥐어짜야 해결이 날 것인지 그리고 사망신고만 안 된 금리정책은 어떻게 해야 할 지 이 어려운 난제는 결자해지로 오바마대통령이 풀어달라고 미국국민은 요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승리의 기쁨과 함께 이 문제부터 풀어가는 해법을 내 노아야 한다.

   선거 한 달전 FRB 버냉키의장은 주택채권에 대한 무제한 매입정책을 발표하여 오바마 경제의 숨통을 티어주었다. 정책운영자의 시각으로 보면 이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큰 결단을 해야하는 일이다. 그 큰 선물을 버냉키는 오바마에게 주었다. 오바마는 버냉키의 중임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주택을 시작으로 미국경제의 회복의 신호가 조금식 나오고 있다. 7%대로 내려온 실업율은 과연 계속 이어갈 것인지 오바마는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우선 재정은 어떻게 하나? 공약으로 내 세운 부자증세가 과연 재정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 의료보험은 어떻게 운영해 갈 것인가? 모두가 세금이 늘어야 가능하다.

   미국의 선거가 있던 다음 날 그러니 11월 8일 중국은 새로운 지도자를 뽑는 정치행사가 시작되었다. 시진핑이 이미 차기 지도자로 내정되어 있지만 그 외에도 중앙정치상무위원을 누가 그리고 몇명으로 할 것인지 그리고 차기정부의 구성은 어떻게 할 것인지를 앞으로 약 한주일 동안 정하는 중앙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누가 차기 총리가 되고 정치국상무위원이 되고 하는 것은 중국인들은 관심사이겠지만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시진핑이라는 인사가 중국지도자가 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최근 중국은 국력을 바탕으로 남중국해와 다오다오이 등 영토문제를 가지고 관련국과 신경전을 벌리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관련국인 필리핀, 비에트남, 일본등지와의 국지적 문제가 아니다. 태평양시대의 종주권을 다투는 문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태자당출신의 시진핑은 선대로부터 무골출신이라고 전해진다. 그런 그가 타국과의 무력경쟁에서 단연 강경노선을 견지할 가능성은 많을 것이다. 이에 맞서 미국도 앞으로 태평양 중심정책을 펴 나가겠다고 한다. 중국의 경제적 군사적 세력확장을 견제하는 것은 당연한 정책일 것이다.

   이 와중에 애매한 한국의 지정학적 입장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대 중국견제가 미 일 그리고 미 한과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면서 전략적공조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중국의 덩치로보나 중국과 북한과의 관계로 보나 우리로서는 마냥 미국과의 전략적제휴에만 매달릴 수 없는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 정말로 어렵고 힘이드는 일이라고 평가된다. 중국은 중국대로 북한을 앞세워 우리를 압박할 것이고 북한은 나름대로 이 기회를 이용하려 할 것이다.

   한국의 대통령하겠다는 사람 모두 대 중국, 대 북한 문제에 관한한 어정쩡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NLL을 애들 작난처럼 땅따먹기라고 평가절하한 고 노무현대통령의 제 2인자인 문제인대통령후보는 이 문제에 관한 한 대통령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손으로 하늘을 가리듯 대통령정상회담자료는 볼 수 없는 것이라는 말만하는 문제인과 그의 민주당은 앞으로 닥아 올 미 중 갈등이나 그 사이에서 싫던좋던 역할을 하여야 할 한국의 입장을 지도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안철수라는 사람은 하루는 NLL을 지켜야 한다고 하고 다른 날은 제주도 해군기지는 잘못된 것이니 정부가 사과해야 한다고 하고 다니는 정체성이 불분명한 사람이다.

    박근혜라는 사람도 북한문제에 관한 한 평화주의만 내세운다. NLL 문제가 튀어나왔을때 대통령되겠다고 하는 사람이면 다른 누구보다 영토보존의 차원에서 노무현의 나라 팔아먹는 행동을 일갈하고,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이것의 진위를 가려 국민에게 알렸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이것을 당 사람들이 이말 저말하게 만들고 마치 NLL이 남북평화에 해로움을 가져오는 것으로 오해되는 것을 방치한 책임이 박근혜후보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역대대통령 중 가장 국민에게 호감이 가는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이라 하지 안나?

   실례이야기로 대통령이 무엇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사탕발림으로 표나 얻으려고 하고 다니는 꼴을 정말 보기 딱하다. 저 사람들이 무슨 대통령 감이냐? 국토를 지키고 국민의 재산권을 지켜주는 것이 대통령임을 그들이 모를리가 있나? 그저 이나저나 인기만 얻으면 된다는 퍼퓰리즘의 극치라고 생각한다.

   오바마- 시진핑 시대에 나름대로 역할을 할 수 있는 한국대통령이 나와야 한다. 이제와서 위 세사람 아닌 다른 사람을 차기 대통령으로 찾기에는 너무 늦었다. 누가 되던 과거 한국대통령이 가졌던 위상이 이제 더 이상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 독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아직 우리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양강 상이에서 국익을 지키고 미국과 중국의 극한충돌을 완화시켜 세계평화를 지켜가는 그런 현명한 지도자가 한국에서 나오기만 고대한다.




























2012년 10월 27일 토요일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판사의 말

   최근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기사가 언론에 등장하였다. 어느 재판과정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60대 중반의 여인이 요령부득한 증언을 하자 40대 중반의 판사가 하는 말 '늙으면 죽어야 해요'라고 했단다. 기가막힌 일이다.

   즉시 대법원장이 대 국민 사과를 했고, 지방법원장이 해당 판사를 견책하였다고 한다. 본인은 혼자말 한 것이 이렇게 되었다고 변명한 단다. 혼자 말이면 괜찮나? 관련하여 두가지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하나는 작년인가? 서울대 학생을 상대로 자기 부모가 얼마까지 살면 좋겠느냐는 여론조사를 하였단다. 그 결과는 63세인가가 평균치라고 한다. 결과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놀래지 않을 수 없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금년인가 다시 조사한 결과는 그 연영이 조금 올라갔단다. 미안해서 조금 봐준 것인지 모르겠다.

   또 하나는 최근 세계를 상대로 노령층(Senior)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를 외국  어느 조사기관이 한 결과가 나왔다. 상세한 내용을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언론 보도에 의하면 한국이 세계 여러나라중 시니어에 대한 존경심이 가장 낮게 나온 나라 그룹에 속한단다.

   '동방예의지국'이니 효(孝)를 숭상하는 유교사상을 으뜸의 가치로 여기는 나라였던 한국 젊은이들의 가치관이 이 지경이니 정말 숨이 목까지 막혀온다. 그러니 40대 중반밖에 안 된다는 판사의 입에서 이런 말이던 푸념이던 나오는 것이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1970년대 말 일본 출신 유명 경제학자인 모리시마 미치오(런던대) 교수는 '일본경제가 왜 그렇게 빨리 성장하였나?'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그 책의 기본 철학은 일본사회의 유교사상(Confucianism)이었다. 나보다는 나의 회사, 내 정부, 내 조국을 먼저 생각하는 일본인의 사상을 모리시마 교수는 유교사상에서 찾았다. 그런 전통과 의식이 오늘 일본을 선진국으로 만들고 경제대국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그 모리시마 교수가 2000년대 일본으로 돌아와 쓴 책이 '일본경제는 왜 망할 수밖에 없나?'라는 정 반대 제목의 책을 썼다. 향락에 빠진 일본 젊은이들이 사회를 위한 자기의 기여나 희생을 찾을 수 없단다. 도전보다는 오늘의 향락에 몰두하는 일본 젊은이를 보는 노 교수의 눈은 아마도 처절했을 것이다.

   외국인의 눈에도 일본의 앞날은 잿빛으로 가득차 있다. 1960년대 70년대 한국의 경제관료들은 입만 열면 일본을 배우자, 대쳐영국수상의 정책을 배우자고 외쳐대고 다녔다. 그런 일본의 최근 돌아가는 모양새에 연민을 금할 수 없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처리과정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일본정부의 국가운영능력을 의심하게 되었다. 국내문제가 제대로 되지 않으니 일본정부는 국민의 관심을 국수애국에 돌리고자 한국과 독도 그리고 중국과 다도다오위 섬을 가지고 국제문제를 일으키고자 한다. 그런 일본정부 밑에 일본 젊은이들 마저 향락에 취해 유교적 희생과 근면을 저버리는 사회가 되었다면 일본이 망할 수밖에 없다는 모리시마 교수의 분석을 반박할 논거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2008년에 발간한 졸저 '번영의 조건(박영사)'에서 한국경제발전의 역사적 조건으로 한국의 '유교정신(Confucianism)을 분석한바 있다. 이에 따르면 한국사회의 유교문화는 '효(孝)'를 더 중시한 반면, 일본은 '충(忠)'을 기본가치로 한 유교문화라고 하였다.

   한국사회는 일제수탈과 6.25사변을 겪으면서 가난과 희망이 사그러든 사회로 변하였다. 절대빈곤이 인구의 3%를 차지하는 처절한 상황이었다. 이런 한국사회가 50년 사이에 이제 선진국 반열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 밑바탕에는 지금도 살아 숨시고 있는 한국젊은이(당시)들의 나보다는 내 가족을 굶겨죽이지 않으려는 처절한 개발노력이 있었다. 그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마 한국에 없을 것이다.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는 말이 있다. 물을 마시면서 그 수원을 생각하라는 말이다. 누가 오늘 우리를 빈곤에서 번영을 가져오게 하였는지을 생각하게 하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렇게 모두 철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 내 이야기는 옛날만 생각하자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미래를, 꿈을 이야기해야 한다. 오늘을 사는 한국의 시니어들이 젊은이 들로 부터 공치사를 듣자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오늘을 사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꿈을 펼치는 풍선의 끝 줄 한가닥이 땅에 매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끈이 떨어진 풍선은 어디로 날라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망발을 한 젊은 판사를 매도하고 싶지 않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어디 그사람 한사람 뿐이겠나? 그것은 우리 시니어의 교육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젊다한들 자기도 10년후면 '꼰대'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다. 판사가 재단하는 것은 죄에 대한 판결이지 그 인생을, 사회를 판결하는 직업이 아니다. 최근 판사던 검사던 정치권을 기웃대며 자기는 한없이 깨끗하고 남의 눈의 가시만 쳐다보는 법조인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을 그렇게 만든건 가깝게는 우리 정치권이고, 넓게는 우리 사회 전체의 책임이다. 선진화를 향한 우리 수준이다.  아! 오늘을 사는 한국 늙인이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마라.































2012년 10월 18일 목요일

율사(律士)가 판치던 멕시코 정치

   1990년대 중반 멕시코 대통령 카를로스 살리나스(1988~1994)는 멕시코 경제의 구조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 자유시장경제를 표방하고, 미국 카나다 그리고 남미 대륙과의 개방협력을 추진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이 무렵 생겨난 것이 카나다와의 마지막 협상 타결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시작되었고, 미국과의 무역확대를 위하여 과감한 개방과 국영기업의 민영화정책을 살리나스는 추진하였다. 하바드 정치경제학박사 답게 시장개방을 중심으로 멕시코 경제를 한단계 업그레드 시킬려는 야심에 차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런 살리나스를 '예약된 실패'의 코너로 몰고 간 것은 살리나스 자신의 부패와 이를 응징하기 시작한 사회운동이었다. 살리나스와 그의 가족들은 많은 부패 혐의를 받게되었고 멕시코사회는 이를 정치사회문제화 하기 시작하였다. 그 중심에 살리나스의 북미자유무역협정이 문제제기의 구실노릇를 하였고, 이를 사회문제로 제기하는 데는 물론 법률가들이 앞장을 서게 되었다.

   멕시코가 미국 카나다와 FTA를 맺은지 20년의 세월이 흐른 현재의 멕시코경제가 과연 기대만큼 발전하였나? 물론 미국이나 세계를 향한 멕시코의 수출은 괄목할 신장을 하였다. 미국과의 상대적 저임을 바탕으로 한 멕시코의 산업단지는 수적인 면에서 많이 증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에 비하여 30%정도 뒤진 저임수준을  끌어올려 번영을 이루고자 한 멕시코경제는 기대만큼 미국을 따라잡지 못하였다. 오히려  지난 10여년간 멕시코 경제는 2~3% 대의 저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더구나 최근 멕시코에 비하여 더 저임금 수준인 중국시장이 개방되면서 많은 외국기업들은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기 시작하였다. 산업단지에 겨울이 오기시작하였다. 임금개선에 따른 복지기대는 충족되지 못하고 있고, 그나마 소득의 발판이던 외국기업의 탈 멕시코 현상을 보면서 멕시코인들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다.

   불만으로 가득찬 멕시코 사회는 그 표적을 미국과의 FTA에서 찾고자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 당시 대통령이었던 살리나스가 응징의 대상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를 앞장서 선동하고 행동에 옮기는 중심에는 자연스럽게 율사들이 등장하였다. 멕시코 정치의 중심에는 언제나 율사들이 판을 치고 있는데 율사들에게 살리나스의 개방정책과 부패는 고기가 물을 맞난 격이 되었다.

   대통령 임기를 겨우 맞친 살리나스는 1995년 어느날 뉴욕으로 야반도주를 하게 되고, 그 이후 아이랜드 등지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다. 최근 들어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살리나스는 멕시코를 드나들면서 권토중래를 시도하며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한다고 한다.

   한때 '세마리 용'으로 한국보다 오히려 우위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고, 1억이 넘는 인구와 많은 석유생산은 한국경제가 부러워하는 자원부국인 멕시코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2011년 11월 한국정부가 미국과 FTA를 타결하기위한 마지막 시도를 하고 있을 때 한국의 일부 지식인(?)들은 멕시코의 사례를 들어 나라를 거들내는 미국과의 FTA 반대를 외쳐대기 시작하였다. 거기에 더하여 살리나스 형제들의 부패협의에 비교하여 한국의 이명박대통령을 비난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시시비비를 여기서 논하고자 하지 않는다. 다만 객관적인 사실을 가지고 몇가지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첫째 멕시코경제가 NAFTA 때문에 망했나? 멕시코경제의 침하 원인 중에 NAFTA와 관련된  것이 일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수출증대를 통한 경기 부추김도 있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리먼사태 이후 소위 자유주의 그것도 미국이 좋아한다는 '신자유주의'가 경제운영 잘못의 중심에 서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정치경제학적 평가일 뿐이다. 마치 오늘날 유행병같은 '경제민주화', '정부규제확대'의 논의도 그가 갖는 정책의 정(正)의 효과 있는 반면, 다른 부작용이 얼마던지 있다는 것에는 반론이 없는 것과 같다. 더 나아가 오늘날 유행하는 자본주의 1,2,3,4,5가 사회발전의 흐름과 함께 강조점이 변화발전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거꾸로 멕시코가 살리나스 당시 FTA를 하지 않고 정부간섭 중심의 국수적 개발경제 운영(inward looking)을 하였다면 오늘 결과가 더 좋게 나왔을 것이라는 가정이 성립될 수 있을까? 결과를 놓고 이야기 한다면 아니다. 함께 출발한 카나다 경제는 오늘 오히려 미국을 추월할 것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미국과의 FTA 효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떻게 카나다의 FTA는 성공하고 멕시코의 FTA는 실패한 것일까?

   둘째 현재 멕시코경제가 더 어려워진 이유중 가장 큰 것은 정치 경제 사회 등 내부갈등에 기인 된 것이 아닌가 나는 그렇게 평가한다. 정파끼리의 싸움을 넘어 사회전체가 서로 못 잡아먹어 아웅다웅하는 동물세계처럼 되어가는 사회가 계속 발전을 해 갈 수는 없을 것이다. 부패와 마약 그리고 살상을 밥먹듯하는 사회를 상정하면 그 사회가 어떻게 바른 발전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더 루이스(Arther Lewis)교수가 말하는 소위 ' 경제하려는 의지(The will of economize)'가 없는데 어떻게 경제가 발전할 수 있나?

   한국의 요즘 정치현실을 생각해보자. 지금 한국의 대선정치판은 정책은 없고 서로 비난하고  떼 쓰고 서로 범법했다고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있다. 국회의원이랍시고 자기도 법률위반협의로 기소되어 있는 인사가 입만 열면 상대방의 범법행위를 맹비난하는 이 현실을 보면서 어떻게 한국경제가 올바른 발전과 번영를 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입만 열면 경제민주화, 복지를 외치는 그 인사들은 제대로 세금이나 내본 인사인지, 나라경제가 어떻게 운영되는 것인지 생각해본 일이나 있는지 의구심이 생긴다. 지금 한국경제가 이렇게 지리멸렬한 것은 한미 FTA를 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멕시코처럼 어떻게 하면 망하나 하는 짓만 골라하는 정치판에 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셋째 멕시코 경제가 어려워진 구조적 원인은 국제경쟁력이 떨어진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미국과의 FTA 이후 멕시코에는 자유화의 물결을 타고 많은 다국적기업들이 멕시코에 공장을 세우고 사업을 하였다. 그런 환경이 중국의 개방과 함께 경쟁력에서 뒤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많은 외국기업들은 멕시코를 떠나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였고 이에따라 멕시코의 산업단지는 찬바람이 불어오게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물론 경제자유화의 한 결과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유화는 오는 사람을 막지 말아야 하고 가는 사람을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가지 않게 하는 방법은 경쟁력을 살리는 길밖에 없다. 밤낮 갈등하면서 언제 경제의 경쟁력을 살려갈 수 있을까? 복지한다고 임금 올리고 기술개발은 뒷전인데 어떻게 경쟁력이 살아나나?

   한국도 마찬가지다. 경쟁력은 안정과 기술개발에서 찾아야 한다. 사회의 안정, 물가안정, 대외개방, 엄정한 법질서 유지, 이런 것들이 안정의 덕목이다. 기술개발은 밤낮 싸우면서 언제 연구실의 기술개발을 기대할 수 있나? 사회가 기술개발을 칭찬하고 지원하고 키우는 노력을 하지 않고 이공계대학만 가라 한다고 기술이 개발되나? 대기업만 때리고 있는데 이들이 언제 기술개발해서 경쟁력을 가추나? 멕시코의 오늘을 보면서 한국경제의 내일을 본다.

   넷째 율사들이 판을 치는 멕시코는 미래보다는 과거만 보는 우를 범하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율사의 속성은 상대방의 미래보다는 과거에 보다 집착한다. 상대방이 과거 무슨 잘못을 하였나, 무슨 법이나 규정을 위반하였나, 이런 것만 생각하지 상대방이 지금까지의 발전을 토대로 미래 무엇을 어떻게 할지는 별로 관심이 없게 마련이다.살리나스는 집권 후는 말할 것 없고 재직시에도 허구헌날 율사들의 과거 들추기에 매몰되어 있었다고 당시 외신들은 전한다.

   한국을 보자. 왜 그렇게 많은 검사 판사 출신들이 현직이 끝나자마자 정치권을 기웃대는가? 오히려 정치권에 입문하기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하여 검찰청 법원에 근무하는 것 같다고 하면 너무 심한 매도일까? 물론 거의 대다수는 훌륭한 율사로서 길을 가고 있지만 최근 너무 많은 율사들이 청탁을 가리지 않고 정치권 여기저기에 몸을 의탁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들의 단기적 전문성은 무엇일까? 재직시 알게된 남의 어두운 면에 대한 정보일 것이다. 그들이 새 세상에서 단기적으로 기여하는 것은 남의 부정폭로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세상이 미래지향보다는 과거지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본인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아주 때 안묻은 척한다. 왜 일반관료들은 퇴직 후 일정기간동안 자기가 관여했던 업종에 가는 것을 제한하면서, 왜 율사들은 정치권에 가는 것을 제한하면 안 되나? 전직을 이용해 먹는 것은 일반관료나 율사가 무엇이 다른가?

    나는 한국 율사들의 고매한 인격과 직업의식을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회가 앞으로 가기 위해서는 과거의 광정(匡正)보다는 미래지향적으로 변해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2012년 10월 2일 화요일

무속인까지 판치는 종편방송

   오늘 아침 어느 종편방송을 보며 하도 개탄스러워 글을 남기고자 한다. 정부가 작년인가 4대 신문에 종합방송 채널을 허용하고 방송에 들어간지 꽤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내 남직하고  종편방송에 채널을 돌리기 그리 쉽지 않다. 오랜 습관을 금세 고치기도 힘들고 어쩌다가 찾아보면 별 특별한 것도 없어 그럴 것이다. 시청률이 바닥이고 일반인들은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살고 있다.

   이런 종편방송이 선거철을 맞아 탈출구를 찾은듯 졸망졸망한 시사평론가들을 초대하여 년말로 닥아온 대통령 선거전망을 하기 시작하였다. 어느 방송에서 어느 인사를 초대하면 다른 종편에서는 비슷한 다른 인사를 초대하여 세상의 흐름이랍시고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대통령 후보군단의 일거수 일투족을 평가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네 시각으로는 그저 그런 인사들이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를 하려다보니 좀 돋보이기 위한 방법으로 토론의 내용보다는 그 외적인 것으로 즉 옷맵시, 말 스타일, 표정 등에서 승부를 걸고자 하는 모습이 벌어지고 있다. 커메디언 같기도 하고 개그맨 같기도 한 인사들의 거기가 거기인 토론을 보면서 저 사람들이 돈이 궁해서 이렇게 나와 그러나 하는 안쓰러운 생각도 든다. 그러다가 몇일 후 시사분석가라고  으시대던 인사들은 누구 캠프에 갔다, 누구의 장자방이 되었다고 뉴스를 탄다. 다른 나라도 이런 꼴이 있나?

   추석 연휴 자연 테레비 앞에 많이 앉아 있게 된 요즘 나는 어느 종편에서 어느 무속인을 출연시켜 대통령후보의 관상, 선거전망등을 이야기하게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러자 다른 종편에서는 다른 인사를 초대하여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것도 출연인사의 소개를 어느학교 교수 아무개라고 하고 그 인사는 자기는 이것을 심오한 학문의 바탕위에서 나오는 소리임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하는 소리는 거의 다른 무속인과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나는 그분들의 직업이나 학문적 깊이를 폄회하려 하지 않는다. 사람은 각기 자기 인생관이 있기 때문이다. 또 자기 직업에 충실한 말을 얼마던지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을 공영방송에서 그것도 한국을 대표하는 큰 일간지가 대주주인 방송에서 한다는 데 문제를 제기한다.


   어느 종편에서는 대통령후보의 관상을 개인별로 하게 하고 즉 대통령 깜이냐 여부를 평가하게 한다. 누구는 머리를 너무 내려 이마가 잘 안보이니 연구에 보다 집중하는 것이 좋을 상이니, 누구는 눈빛이 너무 흐리다고 하고 그저 그런 시정잡배수준의 관상을 펼치고 있다. 더 한심한 것은 프로 진행자가 그 무속인에게 대통령후보가 남북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느냐? 김대중 전대통령의 햇볓정책이 좋은 것이냐 이명박대통령의 주는 것 만큼 받는다는 남북정책이 좋으냐고 구체적으로 물어보기도 한다.

   정말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무속인이 깊은 통찰력과 세상을 경세할 능력이 있을 수는 있지만 이런 국가의 중요한 정책방향을 물어볼데가 없어 무속인을 불러놓고 토론하는 이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육이오 전쟁 때 하도 답답하다보니 '정감록'이라는 책이 유행하여 '정도령'이 언제 어떻게 나타난다고 하는 이야기가 우리 어른들이 하는 것을 본일이 자꾸만 생각난다. 지금이 전쟁중 내일을 몰라 답답한 때인가?

   이런 혹세무민하는 방송을 도대체 21세기 글로벌시대에 대한민국에서 해야되나 하는 의구심이 아니들 수가 없다. 저런 방송을 종편이랍시고 인허가한 정부나 시청률 올린다고 이런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해대는 방송국이나 나는 도매금으로 비판하고 싶다. 전기가 부족하다는데 전기사용이 아까울 지경이다.

 
























2012년 9월 14일 금요일

정책운용의 과단성

   9월 13일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현행 3.0%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지난 7월 기준금리를 3.25%에서 0.25% 포인트를 인하하여 3.0%로 한 것을 생각하면 3개월 만에 다시 금리 인하를 기대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최근의 경제가 하도 팍팍하게 움직이니 금리라도 인하하여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기대가 있었다.

   가계부채는 부동산경기 침체와 함께 악순환의 흐름을 타고 있고, 중소기업들은 경기의 후퇴와 함께 높은 이자부담에 허덕이고 있다. 대기업들은 돈을 싸놓고도 투자처를 찾지못하고 있고, 가계는 미래불안으로 지갑을 닫고 있다고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금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나 아니면 1% 대까지  추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반기를 상정하여 보면 성장률은 제로나 마이나스가 될 듯 싶다.

   추경편성을 할 수 없다던 정부는 금주 들어 5조 9천억원을 풀어 소위 '내수활성화조치'를 취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은 실망스럽다는 것인 일반적인 평가인 것 같다. 부동산경기 진작을 위하여 팔리지 않은 아파트를 금년 말까지 사는 경우 취 등록세를 경감한다든가, 부동산양도소득세를 면제하여 준다는 내용은 대상을 미분양주택으로 국한하는 바람에 기대에 못미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연말까지 근로자의 소득세의 일정률을 징수유예한다는 조치도 결국 내년소득의 조기활용 정도의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므로 별로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은 가보다. 정부가 미세조정에 무게를 두고 과감성이 부족한 조치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소위 '하우스 푸어'의 금리부담을 완화해 준다고 우리은행에서 신탁 리스방식(trust & lease back)의 지원을 발표하였다. 미국의 판매 리스방식(sale & lease back)을 원용한 것으로 효과가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그 대상이 거래기업중 일부인 상당히 제한적이어서 수혜가 크지 못할 것 같다. 그나마 다른 은행들은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어 금융당국의 애를 태우고 있다.

   반대로 국민은행같은 곳에서는 은행이 고객을 돕기는 커녕 절손이 난 저축액을 남의 저축으로 충당해 가는 일반적인 금융사기행위가 이 어려운 때 일어났다는 보도가 나와 울분을 사게한다. 비가오면 우산 걷어간다는 속담처럼 은행은 경기침체 하에서 오히려 거래자 특히 중소기업자의 목을 조이고 있다. 대기업은 신문에 나는 것처럼 포항제철이 추석을 앞두고 거래기업에게 선불금을 주는 그런 선행의 백기사가 아니다.

   금융기관의 자금을 써야하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3%는 남의 나라이야기 같다. 은행을 거래하는 기업은 그래도 양호한 편이다. 기타 제2금융권 그리고 사금융권의 이자는 차마 말할 수가 없을 정도로 무겁다.

   반면 얼마나 많은 대기업들이 그들의 거래기업을 종 부려먹듯하고 계약, 단가, 자금 등에서 횡포를 부리고 있는지는 당해본 사람만 아는 사실이다. 그러니 경제민주화한다고 대기업 때리기에 정치권은 앞장서야 표가 나올 판이다.

   개인이던 중소기업이던 자금이 쪼들리는 사람들은 어디를 처다보아야 하나? 은행, 거래대기업? 아니다. 그래도 쳐다볼만한 곳은 정책당국밖에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시장모습의 모두는 아니다. 그래도 지금과 같은 경제침체기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시장의 모습은 처절하기까지 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은행은 금리동결이 미안했던지 1조 5천억원인가 하는 규모의 돈을 풀어 어려운 기업의 금융채무를 갈아타게 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우선 그 규모에 놀랐다. 한국은행이 안하던 짓하려면 좀 제대로 하지 푼돈같은 규모의 지원액을 놓고 생색 내려하는 것 같기만하다.

   공교롭게 미국의 FRB는 3차 양적완화조치를 오늘 발표하였다. 매월 400억달러치의 주택담보채권(MBS)를 사준다고 한다. 그러면 기존 장기채지원을 위한 채권매입방식(operation twist) 450억달러와 합치면 850억 달러가 된다. 그리고 3차양적완화조치는 시한을 무기한으로 하여  그 규모가 매우 클 것으로 생각된다. 동시에 저금리기조를 2014년에서 2015년까지 연장한다고 하였다. 옳고 그름을 떠나 매우 적극적인 접근방식으로 판단된다.

   유럽중앙은행(ECB)도 9월 6일 '무제한 국채매입(outright monetary transaction program)' 조치를 발표한바 있다. 미국보다는 이유국가들의 국채매입에 의한 경기부양조치에는 많은 유보들이 있지만, 아무튼 단기적으로 시장을 안정시킨다는 점에서는 효과가 있다고 할 것이다.

   최근 어느 기관에서 세계중앙은행총재들의 업무능력을 평가한 보고서가 나왔는데 한국은행 총재가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그 이유는 한은 총재가 청와대에서 하는 정부 정책논의에 참여하여 중앙은행의 중립성을 떨어트리고 있다고 하였단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비단 이런 형식적인 평가가 있을 수 있으나, 그 보다는 오히려 과연 중앙은행이 시장의 요구를, 시장의 시그널을 얼마나 제대로 파악하고 즉각적인 대처를 하느냐 하는데 평가를 맞추어야 할 것이다.

   기획재정부에서 취한 재정의 건전성 확보나 정치권에 휘둘리지 않으려는 자세는 높이 살만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최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내수활성화조치는 그 깊이나 고뇌가 좀 부족한 것 같다.

   지금 세계적인 경제의 흐름이나 한국경제구조를 좀더 심도있게 접근하여 그에 상응하는 진지한 정책대응를 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현 경제구조에 대한 세밀한 분석, 중장기적인 미래예측, 그에 상응한 종합적이고 구조개선을 통한 발전잠재력확보 대책이 나와야 한다. 현재 정치권에서 들고 이러선 경제민주화같은 정치슬로건은 신경쓸 필요가 없다. 또한 단기적이고 임기응변적인 정책대응은 자제해야 한다. 정책당국은 좀더 무게 있게 그리고 구조적으로 현실을 타개하고 장기발전기반을 구축하는 그런 자세를 가져야 한다.

   후기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국가운영의 기본은 경제 그것도 번영에 맞추어져야 한다. 그것이 국력이 되도록 해야 한다. 민주주의 기본 이념같은 것은 이미 뛰어넘은 사회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와 같은 정치이념은 이제 더 이상 한국사회 발전의 아젠다가 될 수 없다. 남은 것은 한국사회에 번영의 길을 열어주는 일이 남아 있다고 할 것이다.

   이제 이명박정부 말기 몇개월이 남아 있다. 이명박대통령은 정치권을 더 이상 처다볼 필요가 없다. 오로지 흐트러진 발전잠재력을 추스리고, 좀더 구조적으로 개선된 경제를 다음정부에 넘겨주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같은 시각에서 기획재정부나 한국은행은 좀더 진지하고 고민에 찬 정책대응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길 기대한다. 시장의 시그널을 보고 용기있는 정책대응를 해 가야 한다.



























2012년 9월 1일 토요일

사방에서 옥제어 오는 올무

   입에 담기도 민망한 어린이 성추행사건이 온통 언론을 뒤 덮는다. 대구 나주 서울 어디 할 것 없이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온 나라가 성도착증에 걸린 것처럼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고 신문 보기가 무섭다. 얼마나 심각하면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다 할까?

   좌 클릭하지 못해 안달을 하는 새누리당 선거캠프를 보면서 낙담하지 않을 수 없다. 비정규직을 폐지해야 한다, 재벌규제를 당장 해야 한다, 대학등록금 반값을 당장 실현하겠다 등등 민주통합당이나 진보당의 정강정책으로 착각할 것 같다. 보수당이나 진보계열 정당이나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거기에 한 수 더 떠 새누리당은 보편적 복지실현을 위하여 매진할 것을 거듭 강조한다.  박근혜 캠프의 소위 '행복추진위원회' 인가 하는 곳에서는 그늘진 곳만 한없이 강조한다. 경제운영을 해본 인사들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명색이 보수 집권세력들이 모인 새누리당의 경제정책이 이러니 어디를 바라보아야 하나?

    한국의 중앙은행 총재는 가장 무능한 수장으로 국제평가기관이 평가를 내렸다고 오늘 기사가 났다. 개인이 무능해서일까? 기관이 무능해서일까? 아니다. 정치권의 이 눈치 저 눈치를 살피다 보니 시장의 흐름을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도 한국의 금융, 금리정책이 영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는 것 같다. 재정은 오히려 문을 닫고 내 몸 챙기기에 연연하는 듯 하다. 그러니 그런 기관의 수장이 높게 평가될 수 없을 것이다.

   고용은 는다고 하지만 고령층 고용만 늘고 청년고용은 오히려 나빠지는 못습이다. 수출 수입은 모두 동반 감퇴하여 국제수지는 불황형 흑자를 시현하고 있다. 가계소비는 늘지 않고, 대기업은 돈을 쌓 놓고 투자는 하지 않는다. 정부는 나도 살아야겠다고 추경을 거부한다. 3분기 경제성장은 잘못하면 제로나 마이나스 성장이 되겠단다.

   일본은 독도문제를 넘어 이제 위안부사건의 증거가 어디 있느냐고 들이 댄다. 손으로 해를 가리는 이런 억지 만행을 일본 총리를 비롯한 정치권이 들고 일어나고 있다. 실효지배를 하고 있는 센가꾸열도는 중국이 무서워 살살 다루고, 러시아에 실효지배를 당하고 있는 북방3개 도서 문제도 푸틴 러시아대통령이 더 세게 나올까봐 두려워 낮은 목소리로 가고 있다. 유독 말랑하게 보이는 한국과 독도 영유권문제를 국제사회에 대고 나발을 불고 있다.

   역대 독일 수상들이 역사의 현장을 찾아 사과하는 용기를 보면서, 전범자인 일왕을 모욕했다고 한국 대통령의 사과를 거꾸로 요구하고 있는 일본 수상의 우물안 개구리 같은 처신을 보면서 오히려 측은하기 까지 하다. 일왕이 저의 한테는 왕이지만 한국인에게는 침략을 최종적으로 일으킨 책임이 있는 전범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일본은 억지를 쓰며 외면하려 한다.

   중국은 한중수교 20주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고 해야 할 것이다. 북한과의 관계에서 중국이 불가피하게 취하는 행동도 있겠지만 아직 국제사회의 지도자로서, 이웃 협력자로서 중국은 지난 날 동안 많은 무리(無理)를 한국인에게 보여주고 있다. 국제기준(international standard)보다는 자국의 이익만을 우선하는 오늘의 중국이 G2이고, 지정학적으로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는 점이 오히려 오늘 한국으로 하여금 진퇴양난의 처지가 되게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애플과의 미국 특허소송에서 배심원 전원일치의 패배를 당했다. 엄청난 특허침해 배상과함께 미국에서의 삼성전자 제품 판매금지 처분이 내릴 것 같다. 다행이 일본에서의 동일 특허소송에서는 승소했다는 소식이지만 불안하기까지 하다. 연이어 코롱그룹은 방탄섬유에대한 듀퐁과의 특허소송에서 완패를 당하면서 앞으로 20년동안 미국은 물론 세계 어디에서도 코롱제품의 판매가 금지 되는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레이맨의 입장에서 미국인들의 안하무인격으로 사법판단 만 매달리는 모습에 황당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경쟁으로 이기려 하지 않고 소송으로 상대방을 눌러 이익을 챙기려는 행위를 미국말로 'rent seeking'이라고 하는데 바로 그 모습이다. '미국을 믿지말라'는 우리 속어가 생각난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만하니 사방에서 견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밖으로는 디지털강국으로서 견제가 심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외국기술의 모방모델이 더는 통하지 않게 우리 발전수준이 올라갔다는 뜻이기도 하다. 원천기술보다는 모방과 카피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국경제의 과거가 있었다.

   1970년대 초 한국경제가 중화학공업을 개발하고자 할 때  원천기술의 개발이냐 선진기술의 활용이냐를 놓고 한국정부 내에서도 많은 논의와 토론이 있었다. 결론은 원천기술의 개발보다는 외국기술을 도입 활용하기로 하고, 이를 위하여 선정된 기술개발에 대하여는 특별지원을 하도록 하였다. 이것이 중화학공업개발정책의 시작이었다. 이것은 선택이라기 보다는 당시 한국경제 수준으로서는 이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한국의 산업과 기술개발의 원동력이 되었지만 훗날 한국경제의 불균형성장과 산업의 외국기술의존 현상을 낳게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중반 한국정부는 산업과 기술의 선별지원방식(selective)을 없에고 일반지원방식(general)으로 전환하고, 대신 기술개발에 대하여는 정부지원을 보다 확대하는 정책을 구사하였다. 그리고 시장은 정부의 규제와 간섭보다는 시장기능(market system)에 맏기고 개방하는 정책을 선택하였다. 이 결과가 시장에서는 기업가 정신이 살아나고 기업인들은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창조 혁신 DNA를 계발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시장과 정부의 노력이 오늘 한국의 IT, 디지털 첨단시장을 만들게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부닥치는 선진국시장과의 경쟁에서 이제 한국은 저만치 따라오는 추종자가 아니다. 바로 나를 넘어가려는 경쟁자다. 이것이 지금 미국이나 다른시장이 보는 한국의 산업경쟁력이다.

   이시점에서 한국산업은 두가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 하나는 첨단기술을 활용하는 방법상의 무결점경영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한다. 특허를 비롯한 법률적 다툼에서부터 행정 세무 회계등 세계에서 완벽하게 통용될 수 있는 시스템경영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 상대시장을 원망하고 상대방을 탓하는 경영은 디지털시대에  더 이상 맞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한국인의 창조혁신 DNA를 계발해 나가는데 경영을 올인해야 한다. 이길이 한국에 번영을 가져오고 세계에 이기는 길이 될 것이다.

   문제는 안 쪽이다. 무절제의 극치를 달리는 철없는 재벌들의 행태를 환골탈퇴해야 한다. 재벌 2세들의 무위도식형 상속형 내부거래, 계열기업이나 연관기업과의 주종관계와 같은 구시대적 경영행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오직 재벌들은 디지털시대 시장을 이끌어갈 한국인의 창조혁신을 이끌어 내는데 올인해야 한다.

   해결책이 없는 것이 한국의 정치권이다. 모두 삼테기에 담아 태평양에 내다버리고 싶은 한국의 정치인들 때문에 한국은 선진문턱을 확실하게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 식자우환이라고 어디서 경제민주화 소리는 들어가지고 자나 깨나 경제민주화이고 복지타령이다. 세상에 공짜도시락이 어디 있나? 한국정치인들 중에는 그런 사람이 있기는 있었다. 저는 세금 한푼 안내고 남의 정치자금 지원으로 정치하는 위인이 자기는 고고하고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처럼 처신하는 것이 한국정치권이었다. 그 사람들의 눈에는 재벌은 뚜드려 잡고, 복지는 늘리고, 등록금은 반으로 주리고, 아이들은 날 때부터 교육 의료 모두 사회가 책임지는 그런 생각만 한다. 그러면서 자기 세금은 줄려가려고 가진 편법은 다 동원한다. 이것이 한국의 정치권이 내세우는  경제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여야가 없고 보수 진보가 없다.

   이런 모든 일들이 이 지금 대통령선거를 앞둔 한국사회에 함께 등장하고 있다. 안팍에서 옥제어 오는 올무에 가친 형국같다.




























2012년 8월 21일 화요일

'바보야! 그래도 성장이야'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선거캠페인에 등장하였던 구호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가 자꾸 떠오르는 정치계절이다. 새누리당은 박근혜의원이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었고 민주당은 다음 달 말 쯤 후보 확정행사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가장 관심이 가는 안철수씨는 언제 어떤 형식을 타고  대통령후보로 공식 등판할지 아직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아무튼 안철수와 민주당 대통령후보와의 합종연행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지, 아니면 따로따로 독자행보를 하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따지고 보면 SNS시대 정당정치의 도그마를 깨보자고 달려드는 것 같은 안철수 행보는 좀 생경해 보이기도하고, 그러면서도 무언가 신선한 것 같기도하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새로움에 대한 설레임이 함께 교차하는 현상을 안철수씨를 통하여 본다. 정당이라는 전통의 틀 속에서 꼭 대통령은 만들어져야 하나? 국민후보, 시민후보 이런 이름으로 대통령이 될 수는 없는 것인가?

   '그밥에 그나물' 격인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의 꼴 갖지않은 인사들의 작태를 보면 오히려 틀이 없는 국민후보가 훨씬 신선미가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틀이 없으니 어떤모습으로 등단하느냐 하는 것이 첫째 문제로 등장한다. 현행 대통령선거의 틀은 모두 정당을 그 밑바닥으로 깔고 있기 때문에 그 틀 밖의 국민후보는 어떻게 선거를 치러가게 될지 잘 상상이 떠오르지 않는다.

   과문한 결과이겠지만 우선 국민후보는 기존 법률이나 제도로 보호되고 기속(羈束)되는 것에 잘 맞지 않을 같다. 선거자금의 지원이나 모든 선거법상의 지위를 얻어 활동하는데 한계가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내 돈가지고 내 능력대로 활동한다고 한다면 못 할 것도 없을 것 같다.

   기존정치의 프레임에서 본 안철수 현상의 두려움은 이런 오프라인선상의 문제보다는 오히려 온라인선상의 두려움일 것이다. 그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그를 어떻게든 한몸으로 엮어가고 싶어하는 것이 현재 민주통합당 인사들의 속내일텐데, 현 상태대로 어물어물 가다 어느날 '나는 문재인을 지지하오.' 또는 '손학규를 지지하오'하고 안철수가 대통령후보직을 사퇴할 때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는 혼란과 두려움이다. 그는 이미 그런 전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하고 싶어하던 서울시장을 내용이 무엇이었던 갑자기 박원순이라는 인사에게 넘겨주면서 자기의 환상적(?) 인기를  단수의 지지율에 불과하던 박원순에 덧 입혀줌으로써 서울시민은 무어가 무언지 잘 모르는 가운데 엉겹결에 박원순을 서울시장으로 맞이하게 된 황당한 일을 당하게 하였다.

   백보를 양보하여 서울시장은 그렇게 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대통령을 엉겹결에 맞이할 수는 없다. 대통령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고, 국가를 보위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안철수현상을 지금 두려워하는 소이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이시점에서 안철수는 베일을 벋고 정정당당히 국민 앞에 서야 한다. 정치평론가들 중에는 안철수가 이미 대통령후보를 선언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하지만, 해석은 해석이고 현실적 실정법 앞에 책임있게 행동해야 한다. '안철수 생각'같은 연극같은 대사를 버리고 국민 앞에 알몸으로 서야한다. 그게 국민에대한 도리고 예의이다.

   8월 20일 새누리당은 박근헤 의원을 대통령후보로 선출하였다. 84%의 압도적 지지율로 당선되었다고 선전하지만 투표율이 40%도 안 되게 낮았던 점을 생각하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다시말해서 박근혜 지지할 사람 중심으로 투표가 이루어졌으니 득표율이야 올라갈 수밖에.

   그리고 박근혜의원은 대통령후보 수락연설을 했다. 연설에 등장한 새로운 단어는 '변화' '행복'이런 것들인 것 같다. 그러면서 박근혜는 ' 국민행복을 위한 새로운 제3의 변화'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다. 제3의 변화는 '경제민주화, 복지 그리고 일자리'를 통하여 실현하겠단다. 대개 기대했던 수준의 연설내용이었고, 구성에 고민이 묻어나는 후보로서의 첫번째 대 국민 멧세지였다. 그러나 속좁은 경제전문가의 입장에서는 많은 토를 달고 싶다.

   첫째 국민행복이라는 단어다. 우선 3인칭 국민이라는 단어에 추상적인 개념인 '행복'이라는 단어를 복합시켰다. 18세기 영국의 제러미 벤덤에의하여 제기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개념은 개인의 행복의 개념을 넘어 자유경제의 철학을 형성하게 하고, 이어진 제이 에스 밀과 같은 걸출한 경제철학자를 만들어 냈지만 개인의 행복과 공리(功利)는 상충개념으로 발전하였다. 오늘날 미국의 마이클 샌달에 의하여 현대경제에서 개인과 공리등이 구체적인 연구 테마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만큼 논의의 폭과 깊이가 넓고 깊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의 행복은 어떻게 형상화할까? 경제학에서 기피되는 단어가 행복(happiness)과 같은 추상적개념이다. 양심, 고통, 애국심 이런 개념은 객관적으로 계량화 형상화하기가 어렵다. 경제성장이나 물가, 1인당 소득, 소득분배 같은 용어들은 형상화할 수가 있다.

   대통령이 국민을 어떻게 행복하게 할 수 있나? 그저 많은 사람이 행복을 느낄것 같은 환경을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국민의 행복을 최대화하는 정책이 될 수는 없다. '행복을 느낄것 같은 환경'은  주관적인 개념이다. 또 이 과정에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의 행복은 무시되어도 되나 하고 센달은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의문은 계속 이어진다. 그래서 이런 단어의 사용을 퍼퓰리즘이라 한다.

   둘째 '제3의 변화'라는 이상한 단어를 사용하였다. '제3의 길' '제3의 물결'이런 말은 접해본 일이 있다. 알프레드 기든스의 제3의 길은 이미 퇴색된 개념이고, 최근 제3의 길은 없다고 까지 평가받기도 한다. 좋은 것만 찾아 떠나는 것 같은 개념의 제3의 길은 경제학에서는 없다. 공짜점심(free lunch box)이나 제3의길 같은 것이 국민의 행복과 상통하는 개념일지 모르겠다.

    다만 최근 영국의 토니 블레어수상이 들고 나와 다시 주목받게 된 개념이 제3의 길이라고 한 수 있다. 그러나 노동당정부 출신인 블레어 수상이 들고나온 제3의 길은 기든스의 제3의 길과는 다른 개념이다. 오히려 사회주의 성격의 노동당 정강정책에 시장경제를 접합시키고자 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박근혜후보가 이야기하는 제3의 변화를 여기에 대입한다면 거꾸로 시장경제에 사회주의 개념을 도입하고자 하는 기든스의 이론에 보다 접근된 것으로 이미 퇴색된 논리를 들고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알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은 한마디로 단층적 변화를 의미한다. 디지털시대 기존질서와 파라다임을 뛰어넘는 단층적변화를 토플러는 'The third wave'라고 하였다. 박근혜후보가 이야기하는 제3의 변화를 시현시킬 전략으로 내세운 경제민주화, 복지, 일자리창출이 단층적변화를 가져오게 할 수 있나? 아니다. 경제민주화던 복지던 일자리창출이던 모두 공짜점심도 아니고, 단층적변화의 개념이 아니다. 언어의 유희라면 실례일까?

   국민의 행복이나 제3의 변화나 정책을 수반하기 어려운 추상적 개념이고,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거론되기에는 너무 모호한 개념들이라는 점에서 안철수 원장의 '철수 생각'이나 박근혜 후보의 국민행복론이 다 거기가 거기인 것 같다.

   셋째 국가경영의 기본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이 '국리민복'이다. 국리민복을 추상화하지 말고 보다 정책개념에서 접근해야 한다. 행복이라는 개념도 그런 의미로 쓰고자 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무엇보다 우선 '번영(繁榮)을 가져오는 정책을 구체화해야한다. 클린턴의 구호대로 문제는 경제적 번영이다.

   앞으로 다가올 가까운 미래는 지구인들을 어렵게 만들어 갈 것 같다. 리먼사태로부터 시작된 세계경제위기는 5년이 지난 지금도 그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 EU를 비롯한 지구촌은 어디 활짝 웃는 곳을 지금 찾아볼 수 없다.

   한국경제 만 이야기하자. 수출이 어렵다. 경제성장이 제자리 걸음이다. 일자리가 늘지 않고 있다. 인구구조는 이미 고령화로 변해가고 있다. 정치권은 지도자 집단으로서 국민의 존경을 잃은지 오래다. 대통령은 잘했다는 말보다 '깜이 아니다'라는 야유를 받을 지경까지 인기를 잃고 있다. 세상은 그야말로 만인대 만인의 투쟁처럼 싸움 판이다.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자영업자는 자영업자대로, 가계는 가계대로 모두가 죽겠다고 야단이다. 고용은 늘어나지 않아 실업자 특히 젊은이들이 갈데가 없다. 일반국민은 어디 처다볼 데가 없다. 물론 세상을 이렇게만 보면 안 된다.


   그러나 그런 세상을 반영하듯 한국사회는 과거와 다른 변화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우선 돈이 없는 가계는 돈이 없어 소비를 못하고, 돈이 있는 가계는 장래가 불안해서 못쓰고 있다. 작년 2분기부터 가계의 소비성향이 줄어들고 있다. 가처분소득에대한 소비지출의 비율이 금년 2분기에 74.1%로 이 통계를 작성한 2003년 이후 최저수준이라고 한다. 가계가 지갑을 닫았다고 할 수 있다. 기업은 투자를 하지 않고 현금을 쌓아놓고 있단다. 이통에 기업의 부채비율이 100%이하로 내려갔다니 금석지감이 있다. 기업의 재무구조가 일시적으로 개선되는 것은 좋지만 투자를 하지 않으니 사업이 축소지향적일 수밖에 없고, 신규고용이 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정부는 정부대로 재정건전성 때문에 추경예산 편성같은 수요확장정책을 꺼리고 있다. 총수요가 늘 수 없는 환경이다.

   그러니 2012년 한국경제성장률 전망을 여려 기관에서 2% 대로 예측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게 무언가? 정부는 나름대로 다 어려운 판에 한국경제는 그래도 선방하고 있다고 이야기 하고 싶을 것이다. IMF 이후 한국경제는 저성장에 익숙해졌다. 좋게 보면 한국경제가 이미 성숙단계에 들어간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경제운영을 일선에서 오랫동안 맡아왔던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하라면 아직 한국경제는 더 높은 성장세를 유지해야 한다. 오늘 이렇게 된 것은 경제성장기반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허물어저 가는 경제성장 동력을 다시 일으켜세우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5년전 한국인들은 이명박대통령이 이 일을 할 수 있는 경제대통령감이라고 판단하여 그를 압도적으로 지지하였었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이다.

   사실 지금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는 국민의 안목에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나라를 팔아먹는 종북주의가 득세하지 않는 한 박근헤던 안철수던 아니 민주당 누구던 사실 별 상관 없다. 대통령이 국가의 지도자이지만 백성의 삶을 책임지지 못한다면 현대국가에서 지도자 자격을 가졌다고 할 수 없다. 사탕발림으로 미운 놈 때리고 어려운 사람 사정 들어주겠다고, 그래서  말로만 국민의 행복을 책임지겠다고 선전해대는 것을 믿을 사람은 없다. 그런 20세기적 정치구호는 이제 한국사회에 먹혀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작년에 펴냈다는 '다시 일터로(Back to Work)'가 생각난다. 이제 다시 한국경제의 활력을 불어넣어 성장동력을 살려나가는 일이 어느 무엇보다 중요하다. 성장 잠재력을 다시 어떻게하면 끌어 올릴 수 있을 것인지 심각하게 생각하여야 한다. 불행히 이런 고민을 하는 정당이나 대통령후보는 지금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이명박대통령의 '7-4-7'같은 정치구호를 반복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실사구시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번 대통령후보의 선거공약은 경제를 살리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다시 일터로'와 같은 한국경제 번영 전략이 나와야 한다. 그런 대통령후보를 내는 곳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정당이던 국민후보던 상관 없다. 나라를 팔아먹지 않는다면 흑묘(黑猫)던 백묘(白猫)던 무에 그리 대수인가?
 






















   

2012년 8월 13일 월요일

지는 해 와 뜨는 해

   런던의 올림픽이 8월 13일(한국시간) 새벽 폐막식과 함께 13일의 대 장정을 끝맞쳤다. 우려했던 테러등의 불상사가 없이 비교적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을 보면서 한도시에서 3번이나 치러지는 초유의 행사지만 해가 지지않는 나라(?) 영국의 위상이 아직은 좀 남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올림픽 기간동안 한국인으로서 나는 행복을 느꼈다. 13개의 금메달과 세계 5위의 순위를 이룬 한국 팀의 능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아니 대단했다. 시합 하나 하나가 감동의 연출이지만 특히 그 많은 수의 금메달을 보면서 한국인인 나는 뿌듯했다. 미국 중국 영국 러시아 다음으로 한국이 금메달 수에서 5위를 차지하였다. 그 순위와 함께 사격 양궁 체조 등 전에는 기대하기 힘든 종목에서의 금메달은  더욱 뿌듯한 감동을 준다. 특히 양학서 체조선수의 승리 스토리는 나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공교롭게 한일전으로 발전된 축구에서 일본을 통쾌하게 제압하고 동메달을 따는 순간 한국인들은 모두 얼싸안고 춤을 추었다. 모든 한국인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기에 충분한 이벤트들이었다.

   생각해보면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세계에서 다섯번째를 이루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 뿌듯한 일이다. 물론 금메달 수로만 순위로 재단하지 말자는 것이 요즘의 추세지만 사실 우리 뒤로 있는 많은 선진국, 큰 나라들을 생각하게 된다. 독일 불란서 이태리 스페인 카나다 일본 등 그 많은 선진국들이 우리 뒤에 있다.

   올림픽의 발원지 그리스는 순위경쟁은 커녕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운 경제위기에 있다. 스페인 이태리의 신용등급이 날로 떨어지고 있더니, 이제 독일 네델란드 영국 등의 신용등급도 하향길로 들어서고 있다. '체력은 국력이다' 라는 말은 뒤집어 말하면 국력이 뒷밭침이 되어야 체력이 커지고 올림픽 같은 국제행사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최근 그리스사태에서 발생된 EU국들의의 경제위기는 그것 자체가 동정이 가는 이야기이지만 냉정하게 보면 그들 국가와 국민들 스스로 만들어낸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의 노력보다는 조상들이 이루어놓은 부(富)에 의존하여 절제를 모르는 이들 국가의 오늘과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원래 경제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불란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이웃시장이 침체되면서 자연 생산활동이 저조해지는 독일에 이르기까지 지금 유럽 경제는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유로체제에서 벗어난 영국은 그나마 가지고 있던 글로벌리더십 발휘에서도 한발 물러난 꼴이 되었다. 올림픽이 없었으면 영국은 더 빨리 신용등급의 하향길에 들어 섰을 것이다.

   최근의 세계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나는 서구 선진국들의 모습을 '지는 해'에 빗대어 생각하게 된다. 남 안 된 일에 초치는 나쁜 심사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멘토로 삼았던 선진,서구문명의 신화(myth)가 깨지는 것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2차대전 이후 소위 후진국, 개발도상국들은 경제개발과 부흥을 위하여 나름대로 피나는 노력을 하여왔다. 경제계획이나 정책을 수립할 때 서구선진국들의 경험은 후참자들에게는 하나의 가르침이었고 선생님이었다. 특히 독일의 기술개발, 불란서의 정부역할 그리고 영국 그것도 대쳐정부의 지도력 이런 것들은 한국경제개발에 있어서 하나의 산 교과서였다.

   그런 나라들이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즉 수술을 하면서 그 속살을 보이게 되었다. 한국의 IMF 때 보다 자기들 끼리라고 훨씬 특혜성 지원을 보내는 IMF 등 국제기관 그리고 서구 국가들의 행동에 내심 속이 뒤틀리기도 하면서 그래도 잘 되기를 바랐지만 이들 국가의 대응능력은 영 아닌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멘토의 속살이 아닌, 아니 우리 속살 만도 못한 모습을 보면서 나는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신화가 깨지는 순간이다.

   올림픽 축구시합에서 한국이 영국과 4강진출을 준비할 때 영국축구감독은 '나는 한국 팀을 전연모른다' 라고 인터뷰하였다. 그말은 '내가 저 아래 수인 한국팀을 알 필요가 있느냐 즉  깜도 안되는 한국팀 쯤이야 '하는 오만한 속내을 들어 낸 것이다. 한국팀에 완패한 그의 얼굴이 보고 싶다. 역사상 처음 웨일스 아이랜드등  영국의 연합팀으로 구성하여 더욱 콧대가 높아진  영국팀이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의 단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에서도 그렇다. 21세기 한국의 경제위기 때 한국시장을 가지고 가장 악의적으로 놀았던 금융기관들이 주로 영국 불란서 독일계 은행들이었다. 그들의 뒤에는 Financial Times 등 구라파 언론기관들이 있었다. 그들의 눈에 발전성은 있지만 아직 작아 제맘대로 가지고 놀기에 말랑말랑한 한국경제가 하찮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내가 1980년대 초 경제기획국장으로 있을 때 영국경제를 따라잡을 수 있는 시기를 예측한 일이 있다. 결과는 당시 우리가 모수인 경제규모가 너무 적어 높은 성장률로만 따라잡는 시기를 예측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서 포기한 일이 있었다. 그게 한국경제의 실상이었다.

   3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한국과 영국의 경제는 얼마나 격차가 나 있을까? 지금 다시 한국경제가 영국경제를 따라잡을 수 있는 시기를, 방법을 생각하면 옛날처럼 불가능한 일일까? 물론 현재의 대차대조표로는 한국경제가 영국을 , 독일을, 불란서를 당장 제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과 같은 역동성(varieties)을 경제에 불어넣는다면 영국의 축구처럼 될 수도 있지않을까 생각해본다.

   한국경제의 멘토였던 일본경제를 생각해 보자. 이제 30년이나 지난 '잃어버린 10년'을 지금도 되풀이하면서 일본경제는 어려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벌써 3년이나 지났나. 후쿠시마원전의 쓰나미 피해 이후 일본인과 일본경제는 자신을 잃은 것 같다. 해마다 바뀌는 정권은 발전의 동력을 찾아 불어넣기에 역부족인 것 같다. 거기다가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는 막연한 지진피해 망상은 시간이 갈 수록 커지는 분위기이다.

   세상도 변했다. 무결점 평균상승이 목표였던 대량생산시대는 지나갔다. 속도와 역동성의 시대에 맞는 경제리더십은 아직 일본경제에 찾기 힘들다. 초고령사회에서 안정이 우선인 일본 사회는 새로운 역동성을 심어가기에는 색이 바래버린 것 같다.

   러시아도 지는 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현대화 과정으로 이행하려던 고르바쵸프시대는 우여곡절 끝에 푸틴시대를 맞아 다시 독재체제인 구시대로의 회귀 전환된 것 같다. 그렇다고  러시아가 대전 이후 미국과 맞서 양극체제를 구가하던 시대로 돌아가기에는 축적된 국력이 이미 다 소진된 뒤라고 보인다. 옛날의 영화는 중국에게 물려주고, 구시대에 쓰던 아나로그 무기들이 여기저기 흐터져 있는 한낫 개발도상국으로 전락되었다고 해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도 지는 해일까? 여기에는 여러 접근이 최근 나오고 있다. 미국도 이미 대전 이후 50여년 동안 이루어졌던 세계에 대한 절대적 지도력은 상실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경제적인 지도력의 한계는 달러의 기축통화지위 조차 흔들리게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대량생산중심의 아나로그시대를 마감한 현재, 디지털시대에 미국을 능가할 경제적역동성을 가진 나라는 아직 등장하지 않고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일본은 초고령사회로 역동성이 없고, 인도는 비교 되기에는 아직 너무 뒤져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21세기 디지털경제를 이끌 리더십은 미국을 제외하고 아직 찾기 힘든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은 아직 중천에 있는 해라고 평가하는 조지 프리드만의 평가에 손을 들어야 할 것 같다.

   중국은 어떤가? 뜨는 해인가 지는 해인가? 최근에 발전이 시작되어 그 엄청난 크기 때문에 단숨에 미국의 맞상대가 되었으니 뜨는 해라고 보아야 하겠다. 그러나 근육과 골격이 아직 다져지지 않은채 풍선처럼 부풀어오른 중국경제는 언제 바람이 빠질지, 골격이 무너질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디지털로의 이행이 느린 그런 모습은 아니다. 그리고 일단 세계의 굴뚝, 세계의 소비를 좌우할 엄청난 크기의 힘이 있다. 이 모습은 해가 뜨기는 떴는데 일찍 폭풍우에 가려 해가 떠오르는지, 이미 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결론은 한국경제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답해야 한다. 한국경제는 일본경제처럼 아나로그적 무결점경제 행태라고 할 수는 없다.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 보여주었던처럼 오히려 디지털경제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가진 경제가 현재의 한국경제라고 할 수 있다. 성격상 무결점을 지향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나 보다 역동적으로 다양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한국경제의 오늘과 내일의 희망섞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뜨는 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런 한국경제의 역동성이 거저 정(正)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역동성은 성격상 실패의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어떻게 하면 이 역동성을  성공으로 연계시킬 것인가는 오늘을 사는 한국사람들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보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자유시장경제질서를 제대로 지켜나가는 지혜와 용기가 있어야 한다. 허울 좋은 '경제민주화'를 토대로 사탕발림식 복지를 내 세우는 것은 오늘의 그리스를 닮아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치열한 경쟁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회를 만들도록 해야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한국정치권이 내 세우는 혹세무민의 인기영합주의적 정책구호에 반대로 가야 한다. 인기영합을 배척하고 원론적 자유경쟁체제를 배양해 가야 한다. 피나는 노력만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보장 받는 것처럼 말이다.






























2012년 8월 8일 수요일

자유시장경제질서와 사회적시장경제질서

   대한민국 헌법은 23조에서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하고, 119조 1항에서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나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하는 '자유시장경제질서'를 천명하였다. 동시에 헌법 23조 2항과 119조 2항은 재산권의 행사나, 자유시장경제질서에서 권리행사의 한계를 제시하였다. 즉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하는 사회적 구속성의 원리를, 자유시장경제의 유지에서도 국가적 규제와 조정을 정당화하는 사회성의 원리를 토대로 한 사회적시장경제질서(헌법재판소, 성낙인서울대교수)를 천명하였다.

   여기서 거론되는 자유시장경제질서와 사회적시장경제질서는 상충적 개념이라기 보다는 상호독립적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시장경제질서의 본질이 자유경쟁의 원리를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재산권의 행사제한이나 시장질서 유지에 국가의 규제와 조정을 정당화하는 질서의 사회성을 동시에 천명하였다고 할 수 있다.

   상호보완적이라기 보다는 시장경제질서의 원활한 발전을 도모하는 독립된 개념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개념적으로는 자유시장경제질서가 주(主)의 개념이라면 경제질서의 사회성은 종(從)의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주와 종의 관계가 서로 상충될 때 어느것이 다른 것을 우선하기보다는 상호영역을 지키면서 상대방을 존중하는 관계임을 헌법재판소는 판시하였다. (헌법재판소 2006 헌바: 기본권침해를 정당화할 수 있는 모든 공익을 아울러 고려하여 법률의 합헌성 여부를 심사하여야 한다)

   헌법 119조의 2항은 자유시장경제원리에서 보면 많은 문제를 스스로 안고 있다. 자유경제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기 위하여 보다 구체적인 조건을 적시하는 듯한 제 2항의 문구는 요즘의 시각에서보면 해석상 많은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고, 그것이 제1항과 어떤관계를 가지고 운용되어야 하는지가 불분명하다. 개념적 주와 종의 관계라기보다는 상호독립적이다. 그러니 서로 상충될 때 해법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이에대한 법률적시비는 본고의 영역이 아니다.

   작금 한국사회에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소위 '경제민주화', '보편적복지' 등의 정치담론들이 다 헌법 119조 2항의 법률적개념에 토대를 두고 시작되어 사회체제 전체를 넘나드는 이념적담론으로까지 발전되어가고 있다. 논의의 한계를 살펴보고 그리고 해법을 찾아보는 순서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우선 논의의 본원지라 할 수 있는 헌법 제 119조를 그대로 옮겨보자.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는 자유시장경제질서의 기본철학이다. 그리고 2항은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로 되어 있다. 1항에대한 한계랄까 예외를 이야기할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보다 구체적인 경우를 적시하기위하여 말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1987년 만들어진 헌법조문이니 요즘 개념으로 보면 진부한 표현들이지만 지금 그것을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이 조항을 대표하여 소위 경제민주화가 정치담론으로 나오게 되었다고 할 것이다. 경제민주화의 개념이 확대되어 '사회적공평성'으로 발전되었다. 무엇이 사회적 공평성을 저해하는가? 경제력 격차다. 그 경제력 격차의 중심에는 대기업, 재벌이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사회적평등성'으로 가다보니 복지가 누구에게나 같은 내용의 행복을 보장받는 평등성으로 발전하여 '보편적복지'가 정치담론으로 발전되었다.

   여기서 제기되는 첫번째 문제가 주(主)와 종(從)을 어떻게 개념화해야 할까 하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로 대표되는 119조 2항은 자유시장질서를 천명한 119조 1항의 예외 내지는 한계에 속하는 종의 개념에 속한다. 따라서 경제민주화를 강조하여 자유시장질서를 기본적으로 망가트릴 수는 없는 경제민주화의 한계를 우선 인식해야 한다. 경제민주화를 위하여 재벌을 해체하고, 응징하고, 경제활동을 직접 제한하는 그런 행위는 할 수 없다는 논거가 여기에 있다.  총액출자제한이나 순환출자금지 또는 주권행사의 제한을 법률로 제한하는 데는 이런 한계가 있다. 헌법 119조의 1항(주) 과 2항(종)이 주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해결책은 없는 것인가? 포괄적이기는 하지만 공정거래법상의 불공정거래행위 제한 제도의 운용을 보다 확대하고 탄력적으로 하여 문제해결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재벌응징의 타당성 논거인 계열기업이나 중소거래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불공정 부당행위는 공정거래법의 운용을 보다 엄격하게 집행함으로써 많이 해결될 수 있다. 순환출자나 주권행사의 제한을 법률의 제정이나 개정을 통하여 이루려 하기보다는 앞에 이야기한 불공정거래행위 제한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하거나, 그것도 부족하다고 인식될 경우  주거래은행제도를 통하여 금융정책에 입각한 규제를 부활하는 것이 오히려 현재 정치권에서 추진하는 법률적제재보다는 낫다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외국의 예에서 보거나 우리 헌법119조의 해석으로 보나 자유시장경제질서를 지키면서 대기업들의 부작용을 치유하는 길이 될 것이다.

   물론 이정도의 제도적 장치로는 부족하다. 원천적으로 재벌 내지 대기업 오너의 의식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말처럼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1인독재, 영구집권을 정치에서 금기하는 것이 예상되는 독재 폐해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활동은 이것이 불가능하다. 결국 오너의 의식전환이 필요한 대목이다. 한국재벌 오너들의 권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임기가 없는 그들의 눈에 정치권이나 언론들이, 아니 대통령인들 무섭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그런 딕테이터십은 없을 것 같은 내부통제 앞에 새로운 파라다임의 전환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일지 모른다. 여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문제와 관련하여 3가지 해법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첫째 재벌 오너들은 법률상 기업지배구조가 터무니없는 불공정거래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이건희 삼성회장이 우호지분을 합하여도 불과 17%의 지분을 가지고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한다고 한다. 이것은 오히려 낳은 편으로 불과 5%내외의 지분을 가지고 기업을 지배하고 있는 재벌오너의 지배구조를 공정거래 차원에서 오너 스스로 문제인식을 가져야 한다. 계열기업이 없는 중소기업의 오너가 경영권 확보를 위하여 피나는 노력을 하는 것을 역지사지해야 한다. 순환출자가 현실적으로 불가피함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작은 비율의 주식분포 만 가지고 전횡의 권력울 행사하는 현실 앞에 재벌의 오너는 겸손해져야 한다.

   둘째 재벌의 탐욕성(greediness)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 재벌의 오너가 갑자기 성인군자가 되라고 할 수는 없다. 또한 재벌의 내부경영구조가 이익이 있는한 시장 참여는 확대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골목상권의 침탈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두가지를 생각해보자. 소위 끝없는 재벌의 시장참여확대 종착역은 어디일까? 재벌과 비재벌의 투쟁으로 가게 된다. 누가 이기나? 처음은 재벌이 이기겠지만 종국적으로는 재벌이 망하게 된다.

   명색이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의 딸들이 루이비통등 명품장사를 그 아버지의 경제권력으로 휘어잡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이뿐이랴. 재벌이 아이스케이키 장사를 하고, 식당을 하고, 커피전문점을 하고.....이런 무분별한 시장확장이 재벌이 아닌 나머지 시장들은 어떻게 받아드리게 되나? 이 길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계열기업의 납품을 계약서도 써주지 않고 받아놓고, 자기들 형편에 맞는 시기에 자기들 입에 맞는 가격으로 일방적으로 정하여 대금을 정산하는 대기업의 횡포는 얼마나 갈까? 그 종착역은 어디일까? 결국 대기업의 탐욕은 시장을 망가트리고 국민경제를 쇠퇴시킨다. 그리고 종국적으로는 새로운 시장의 세력 앞에 재벌 자체가 파멸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탐욕의 문제를 기업 오너들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기업가들 사이에 사업의 영역(나와바리)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아무리 내가 힘이 있어도 자기에게 가당치 않은 영역은 범접을 금한다고 한다. 경제학적으로야 그만큰 도전(challenge)이 적다고 할 수 있지만, 다른면에서는 전문성과 집중이 가능하게 되는 경영형태라고 할 것이다. 그보다는 대기업 횡포라는 문제의 자연스러운 해결책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셋째 재벌의 윤리성(virtue)의 문제를 성낙인 서울대 교수는 제기한다. 가진자의 사회에 대한 자비(mercy)가 아니라 도덕성 윤리성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한다. 대기업 오너들이 변칙상속을 위하여 불법 내지 법의 일탈행위를 한다던가, 자식에게 부와 함께 경영권을 물려주기 위하여 변칙적인 행위를 하는 것을 사회가 엄격하게 응징하여야 한다. 돈을 바탕으로 일반인보다 특별대우를 받는 행위는 도덕 윤리성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현재 한국경제에서 소위 재벌총수라 불리우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자기 선대로부터 부와 경영권을 함께 물려받은 사람들이다. 경쟁의 원리에서 원천적으로 일탈된 이들이 올림픽이다 무어다 해서 체육계 등에 지원을 맡았다 해서 그게 윤리성 부합여부의 논의를 희석시킬 수 있는 일은 못 될 것이다. 고용을 늘리고 수출을 늘리고 부가가치를 높이는 이런 경제활동은 물론 평가받아야 할 덕목이지만, 만일 그 뒤에 감추어진 계열기업에 대한 착취나 불공정행위를 하였다면 아무리 앞의 일이 칭찬받을 만한 것이라도 그런 재벌은 지탄의 대상이 되고, 윤리도덕면에서 그들의 존재를 정당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상에서 자유시장경제질서를 보완하는 사회적시장경제질서의 확립을 위한 법률적, 논리적 해법을 찾아 논의하여 보았지만 결과는 오히려 어떤면에서는 혼란스런 이야기만 된것 같기도 하다. 그만큼 현실적 해법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은 오히려 경제민주화의 모호성를 딛고 보편적 복지문제로 확대 승화된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완할 의무를 진다'라고 하여 개인의 행복추구권이 헌법상의 권리임을 명시하였다. 보편적 복지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여기에 제한적 개념이 선별적복지로 해석될 수 있다. 전자가 총괄주의(universal ism)라면 후자가 선별주의 (selective base)이다.

   보편적 복지는 국민의 행복추구권에 입각하여 국민 누구나 복지를 향유할 권리를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논거가 된다. 여기에 수반되는 재원 확보를 위하여 부자증세에서 재벌해체에 이르기까지 넓은 정책제시가 넘나든다. 이것이 더 나아가 행복보장의 평등성으로 사회주의 실현의 장느까지 확대될 수도 있다. 선별적 복지는 재원확충의 현실적 제약을 전제로 한다. 영유아 지원, 초중등학교의 급식비 지원등이 여기에 속하는 정책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개념적 분류는 사실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국가는 국민의 행복추구를 뒷밭침해야 할 무한책임이 있다. 그렇다고 능력이 따르지 않는데 무턱대고 한없이 복지만 추구할 수는 없다. 따라서 선벽적복지는 보편적복지의 현실적 능력의 한계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이것을 '보편주의 바탕위에 선별적 원리가 결합된 '선별적 보편주의(selective universal ism)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런 당연한 복지정책이 왜 이렇게 심각한 정치담론으로 승격되었는가? 여기에는 정치권의 인기영합주의(populism)가 문제가 된다.  사탕발림처럼 시작된 복지논쟁은 만인평등의 복지로까지 번져나가게 된다. 복지평등은 사회평등을 지향하여 사회주의 국가건설을 이념화하기까지 한다.

   1980년대까지 개발이론에서 근간이 되었던 소득분배정책(income distribution policy)은 이제 빛을 잃은 것 같다. 1차적 소득분배정책은 소득원을 함양하는 정책이론으로 교육, 보건, 주택, 직업훈련등이 기본이 되었다. 앞으로 닥아올 다음세대에게 부를 이룰 수 있는 원천(소득원)을 함양하자는 이론이다. 그리고 2차적 소득분배정책이 조세나 재정을 통한 소득이전을 추구하자는 정책이다. 이는 경쟁실패자, 노약자 등 사회부조가 필요한 계층에 대한 정부지원을 확대하자는 이론이다. 1990년대까지 한국경제정책의 기본은 바로 이 소득분배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경제가 이런 소득분배정책을 이제 폐기할 단계에 와 있는가? 아니다. 아직도 1차적 소득분배정책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제기되는 단계에 있다. 소득원을 함양하기 위하여 교육, 보건, 주택등 확대되어야 할 정책분야가 한없이 많다. 조세를 통한 소득의 2차적분배나 재정지원도 확대 발전되어야 할 정책분야이다.

   이런 경제정책의 기본은 다 없어지고 오로지 나누어먹기식 복지정책에 매몰되어 있는 것은 정치권으로부터 만들어진 폐해라고 할 것이다. 선심성 복지정책에의 매몰은 한국경제를 원천적으로 망가트리는 우를 범할 가능성이 있다. 우선 능력 밖의 복지수준 확대는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력을 괴멸시킬수 있다. 더 나아가 남의 것을 뺏어먹기에 매몰된 국민의 종착역은 어디겠는가? 결과의 평등 만을 지향하는 사회는  경쟁의 동기를 잃게 되어 파멸되게 된다.

    이런 무서운 결과를 의식하지 않은채 지금 한국의 보수 진보, 여야를 막론하고 보편적복지의 포퓨릴즘에 빠져 있는 형국이다. 한국경제가 오늘 이만큼 된 원인을 살펴보고 한번 더 도약할 것을 꿈꾸는 정치인이 나와야 한다. 그런사람이 국가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음수사원(飮水思源)의 자세가 필요한 오늘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사회에 밀물처럼 몰려온 경제민주화, 보편적복지 담론은 정치권의 인기주의의 구실이 아닌 한국경제가 지향하고 추구해야 할  원천적 과제이다. 이것은 정치에 이용 되는 얕은 꾀의 대상이 아니다. 항차 사회파멸의 음흉한 전략의 대상으로 접근되어서는 더더욱 안 될일이다. 또한 이 일을 이지경으로 만든 책임이 정치권에만 있다고 할 수 만 없다. 문제의 원천제공자라고 할 수 있는 기업, 대기업,재벌 그리고 놀고 공짜도시락만 거저 먹으려는 계층 모두가 자성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자유시장경제질서와 사회적시장경제질서를 함께 지키는 길이 될 것이다.
 

















2012년 7월 27일 금요일

2012년 7월을 보내며

   2012년 7월의 마지막 주 금요일 오후 5시 반, 금년도 반을 지나 벌써 한달이 또 지나가는 구나 하는 생각에 나는 조금은 조급한 마음이 된다. 아 벌써....

   그게 나이탓 만이랴. 가는 세월이야 내가 어이하겠는가? 그리고 모두에게 한치의 차이도 없이 공평하게 지나가는데 무슨 아쉬움이 있겠나? 그러나 나는 할 일 다 못 끝낸 게으름뱅이가 섣달그믐날 모시가랭이 끼고 나오는 사람처럼 허둥지둥 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무슨 욕심이 아직 남아 이런 초조함이 드는 것은 아니다. 아직 한 인간으로서 해놓고 생을 마감해야 할 일이 남아 있는데, 해는 석양으로 지고 있는데 대한 자연스러운 초조함이다.

   그러니 우울할 수밖에. 가는 세월 불러 세울 수도 없고 사정해서 좀 천천히 가라고 부탁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러니 정리하지 못한 내 일을 서두를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런데 아무 대책이 서지 않는다.

   다른 사람도 이쯤 세상을 사노라면 다 그럴까? 아니면 내가 워낙 모자라 게으름만 피우다가 시험 전날 밤샘공부하는 학생같은 후회와 초조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아마 후자일게다. 그러니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이 있는 것 아닐까?

   이런 인생사가 국가운영에도 연결시켜 설명될 수 있을까? 한국발전이 남들이 보기에는 부러울 정도로 빠른 경제발전을 이루고, 정치민주화를 함께 성취한 큰 성과를 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모범사례로 꼽히기도 한다.

   그러나 2012년 하반기로 들어선 지금 한국에선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러가지 삐그덕대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한국이 북한과 비교하여 전쟁이 불가능할 정도로 발전격차가 생겼다고 하지만 아직도 북한의 핵 위협과 무력공포는 그대로 남아 있다. 세계 8대 경제대국이 되었다고 자부하고 있고, 2만불 인구 5천만의 '2050' 클럽도 가입되었다고 하지만 최근 성장률은 2%대로 곤두박질을 치고 수출은 정체되고 있다. 대신할 내수산업도 찾을 수가 없다. 준비가 없었으니 당연하다. 청년실업은 늘고 인구구조의 고령화는 우리의 내일을 잿빛으로 다가오게 한다.

   그런데도 정치한다는 사람들은, 대통령되겠다고 염치없이 내대는 인사들은 하나같이 복지타령 일색이다. 유력한 보수정당 대통령예비후보 캠프의 전략중에는 정책은 야당과 똑 같이퍼퓰리즘 일색으로 하기로 하였다는 이야기를 같은 당 정치인 입을 통해서 들으면서 내 마음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좀더 일찍 좋은 정책을 펴서 이 나라의 수준을 이런 황당한 지경에서 벗어나게 했어야 했는데 즉 발전수준을 훨씬 올려놓았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같은 것이 과거 정부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갖는 마음 아닐까?

   아직도 종북세력은 그 세가 줄기는 커녕 오히려 이제 잠행에서 벗어나 내 놓고 소리를 질러대고 있다. 이런 현실을 설명할 수도 없고 그러니 무섭기도 하다. 북한주민을 구하자는 노력인지, 세습 북한정권을 지지하자는 이야기인지 헷갈리는 현실 앞에 국가운영에 참여하였던 사람의 마음은 혼란스럽다.

   공정사회라는 개념이 기회의 형평, 법질서의 준수와 같은 일반적 개념을 넘어 모든 사람이 인정할 수 있는 공평한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는 개념으로 한국 정치권은 확대하고 싶어한다. 그러니 나보다 훨씬 잘살고, 내 기업보다 우월한 기업을 경쟁으로 이기고 극복하려는 개념보다는 그들의 이익이, 앞서간 경쟁력이 나에게 그냥 나누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요즘 유행하는 '보편적 복지'의 철학이 되어가는 세상이 나를 홀란스럽게 한다.

   그렇다고 오늘의 갈등들을 해결하려는 글로벌 리더십도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도 그렇고 EU도 그렇고 중국은 처음부터 그런 축에 낄 나라가 아니다. 어디에 리더십이 있는가? 임기가 다된 대한민국 이명박대통령에게 기대를 걸 수도 없다. 애초에 없어진 '747' 공약은 말 할 것도 없고 무슨 '끝장토론'을 한다는 대통령이 토론 결과를 DTI 규제 일부 수정이라는 정책을 내어놓는 희극을 우리는 무슨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하나?  난국타개를 위한 지혜가 없으면 최소한 어려움에 상응하는 긴장조성이라도 해야하는 것 아닌가?

   1970년대 말 한국경제가 구조조정을 준비할 때는 '일본을 배우자' '대처정부를 닮아가자' 이런 멘토가 있었다. 지금은 그런 것도 없다. 있기는 있다. '오늘의 일본을 배우면 안 된다.'

   대통령후보 공약은 안 지켜도 아무 문제 없는 것인가? '747'공약을 못 지킨 것이 리먼사태 때문이라고 해버리면 이명박대통령은 면피가 되는 것인가? 세계환경의 변화를 예측하지 못한 것이 무슨 잘 한 일은 아니지 않는가? 또 백보를 양보하여 리먼사태 이후 이명박대통령은 선거공약을 새로운 환경에 맞게 수정하던가 아니면 누군가 최소한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여주었어야 책임있는 민주정부의 자세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시정잡배 수준의 정치운동에 나도 전에는그런 부류에 속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못 보여주어 안달할 일이 아니라 국정운영의 중심을 잡고 끝까지 버텨가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면 대통령에게 결례되는 표현일까? 그러니 지금 소위 여야를 막론하고,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내세우고 있는 퍼퓰리즘은 선거 끝나면 고만인가? 보편적복지는 아무나 얼마던지 내걸어도 되나? 대통령이 된 후 한국재정이 나빠져서 못 지킨다고 하면 고만인가? 정치의 무책임성에대한 한계(tolerance)는 어디까지인가?

   경제대통령을 표방하고 대통령이 된 이명박대통령 임기중 한국경제성장률이 역대 정부 중 최 하위인 3%대, 아니 마지막에는 2%대로 추락하는 모습을 보며 이명박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할까? 리더십은 쇠고기 촛불시위시 청와대 뒷산에서 '아침이슬' 을 함께 응얼대는 동화성 화합행동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홀로 청와대 뒷 산에 갈 망정 이 나라 앞날을 책임지는 지략과 경륜을 찾아 혼자서 외롭게라도 그 길을 개척하는 것이 리더십이 아닐까?

   인생의 황혼길에서 그래도 아쉬움이 남아 초조한 마음을 잠시라도 가져보는 것이 일반 범부의 마음이어든 국가를 책임지는 그리고 책임지려는 사람들도 같은 마음이어야 하는 것  아닐까?

 


























2012년 4월 30일 월요일

잔인한 4월은 가라

누가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했던가?
그렇게 기다리던 벗꽃은
그 화사한 자태를 뽑낼 틈도 없이
우리 곁을 훌쩍 떠나버렸다.
그놈의 비바람 때문이라고 고래고래 소리질러도
떨어진 꽃 잎을 쓸어담을 수가 없다.

그리고
봄인데 여름이라고 더위는 벌써 창문을 노크한다.
그러니 철 잊은 꽃들은 너도 나도 앞다투어 망울을 연다.
개나리 피고, 진달래 피고, 목련이 피던 그런 촌수는 없어진지 오래다.
그래 무엇이 앞이고 뒤면 무슨 대수냐?

김정일 죽고 김정은이 아비를 이어간다.
김정일 생일이라고
김일성 100세라고
장거리 축포를 쏜다는 것이 집 앞에서 곤두박질 쳤다.

그리고 애꿋게 남한을 초토화시키겠다고
3분이면 가공할 위력을 발휘할 무기 맛을 볼 것이라고
매일 공갈협박이다.
인공위성이 내어놓은 북한 지하핵실험 준비 사진
모골이 송연하다.

중국은 보시라이가 세상을 패대기치려다 들켰다고 시끄럽다.
혁명한다고 축재를 해서 외국에 빼 돌리고
군사동원을 시도하다 들켰다고
그리고 어느 중국 인권변호사는 미국대사관으로 도망하였단다.

미국은 중국과의 관계를 원활하게 하고자 애써야 하는데
불청객은 왜 자꾸 오나?
경제는 일어나지 않고
실업률은 떨어지지 않고 있다. 8% 넘는 실업률로 재선에 성공한 예가 없다고
오바마 속을 긁는다.

EU는 자고 나면 망가지는 소리가 커지고
스페인이 이태리에 질세라 신용등급이 두단계 떨어졌다.
불란서 샤르코지는 카다피 돈을 썼다고 언론은 떠들고
독야청청 독일은 혼자 웃고 있나?

한국은 총선이 끝나자 대선밭으로 직행했다.
잠룡인지 무언지 이사람 저사람 언론은 떠들고
그런데 미국의 광우병이 봄날 바바람처럼 찾아왔다.
여기저기 살판났다고 외쳐대는 소리.
4년전 악몽을 다시 되살리는
무시무시한 공포 속에 정부는 사시나무 떨듯 하고 있다.

이래저래
2012년 봄날은 우리를 귀찮게 한다.
아니 잔인하다.
좀 놔둬라.
정신좀 차리고 우리도 힘 좀 써보자.
잔인한 4월아 가라 어서.








2012년 4월 18일 수요일

왜 우리만 뒷걸음질인가?

IMF는 어저께 금년 세계경제성장 전망을 0.2%포인트 상향한 3.5%로 잡았다고 발표하였다. 미국이 최근전망치 1.7%보다 0.4포인트 올린 2.1%로 상향되었고, EU국가들 조차도 몇몇은 상승된 전망이다. 중국은 8.2%로 그리고 다른 개도국들 평균치도 상향조정되었다. 한국경제는 최근 전망치에서 변함이 없는 3.5%를 유지하였다.

몇일전 한국은행은 한국성장전망을 올 초 3.7에서 3.5%로 하향조정하였다. 0.2% 하향전망한 것이 대수라고 각 언론들은 대서특필했고 방송들은 톱 뉴스로 취급하였다. 그 뉴스를 접하는 순간 나는 잠시 멍한 기분이 들었다.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떨고 있나? 내려갈 수도 있지.

1980년대까지 한국경제는 언제나 우등생 취급을 받았다. 세계평균경제성장율 수치의 두배, 세배되는 성장율을 당연시하면서 우리가 마치 세계성장을 견인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래보았자 한국경제 비중은 세계경제의 1%도 안되는 초라한 몰골인 것을. 일본의 7분의 1 미국의 20분의 1에 불과한 자그마한 경제니 조금 만 잘되어도 성장율은 크게 보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작은 규모의 경제가 쉽게 성장한다는 논리는 맞지않다. 그만큼 시작의 어려움이 큰 것이고 사실 시작의 동력을 불어넣기가 더 어렵다. 오늘 나이먹은 세대들은 죽을 힘을 다해 그것을 해 냈다. 그 동력이 떨어지고 언제부터인가 한국경제는 우등생이 아니라 중간 쯤 어떤때는 꼴찌대열에 익숙해졌다. 그러면서 우리 발전 정도이면 당연한 것처럼 자기합리화에 급급하며 살아오고 있다.

그러니 다른 나라들은 리먼사태 이후 셋백되어 있는 성장력을 다시 불 붙이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그저 하향성 폐쇄에 같혀있다. 그리고 그저 막연하게 리먼사태 이후 한국경제는 그래도 선방해서 이 정도는 가고 있다고 자기합리화하고 있다.

그런가? 노무현정부가 6%성장을, 이명박정부가 호기있게 7% 성장을 외쳐대며 출발하였지만 이 두 정부의 경제성적표는 역대 최 하위이다. 그것도 이명박정부 들어 최 하위 3%대의 5년 평균성장율을 전망하고 있다. 낙제점이다. 7% 성장 호언장담은 '리먼사태를 맞아 그나마 선방'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그리고 어느덧 한국사회는 이런 현상이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 거꾸로 오히려 어떻게 하면 그 과실을 내가 더 많이 가져갈 것인가에 경도 되어 있다.

물론 정치권의 책임이 제일 크다. 그저 자나깨나 복지타령을 하니 일반이 모두 거기에 마비되어서 그 과실의 향기만 따라가고 있다. 누가 과실을 만들 것인가는 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인 뿐만 아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그렇다. 재정이야 파탄나던 말던 그건 내 일이 아니다. 세금은 줄어야 하고 혜택은 그래도 늘어야 한다. 어려운 계층들이 보면 한달에 몇십만원하는 정부부조가 부족하다. 더 주어야 한다. 그런데 누가 그 돈을 내나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점점 적어지는 것 같다.

오죽하면 기획재정부가 지난 총선기간 동안 정치권이 내어놓은 복지수요를 충족하기 위하여 앞으로 5년간 268조가 추가로 들어갈 것이라는 것을 분석해 일반에게 알려주었다. 연간 50조가 넘는 복지비가 기존복지에 추가하여 들어가야 하는 엄청난 돈이다. 그러나 아마 일반은 잘 느끼지 못하는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로서, 국가운영자로서 당연히 국민에게 이 부담을 알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을 중앙선관위가 선거법위반이라고 제재에 나섰다. 그 정치권에 그 선관위다. 그것을 알려 국민이 대표를 잘 고르도록하는 것이 정부의 기능이지 그 지나친 공약이 어느 정파에 치우쳐 있다고 선거법위반이라고 그것도 정부가 하는 일을 가지고 말이다. 소가 웃을 일이다.

각설하고 이렇게 열등생은 아니라도 우등생 대열에서 탈락한 한국경제 성장력을 정부는 찾는 열정을 보이지 않고 있다. 7% 성장한다고 출발한 정부로서 그저 안되는 이유가 리먼 때문이라고만 하면 되나? 리먼사태가 없었으면 7% 성장이 되었을까? 아니다. 이 정부는 그게 모자란 것 같다.

1970년대 한국경제는 일본경제를 멘토로 삼고 배우려 많은 노력을 하였다. 영국의 대쳐정부를 벤치마킹하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하였다. 우선 급한대로 외국의 기술을 도입하여 배우고 산업화에 쓰고자 하였다. 거기에 시장경제를 토대로 경쟁체제를 도입하였다. 거기까지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앞서 세계제일이 되는 아픔을 잉태하지 못했다. 남의 기술만 카피하려는 노력은 원천기술을 발전시키는 쪽으로 가지 못했다. 인구의 노령화는 너무나 당연하고 누구나 다 아는데 우리는 그것을 잊어버렸다. 그러니 인력, 기술 등 공급부문의 발전이 되지 않았다. 수요관리에는 어느 정도 성공하였으나  공급경제의 기반을 닦는 일에 성공을 이루지 못하였다. 시들어가는 오늘의 일본경제를 따라가고 있다. 70년대 일본을 배우자하던 구호는 '이제 일본을 배우지 말자'로   바뀌어야 한다.

이명박정부는 아무리 어려워도 성장동력을 찾으려는 7%성장 공약을 지킬려는 노력을 국민에게 보여주었어야 한다. 수치의 달성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노력이다. 전략도 없고 열의도 부족한게 사실이다. 변명은 아무나 한다. 남들은 그래도 조금이나마 나아진다고 하는데 왜 우리만 뒷걸음질인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2012년 4월 13일 금요일

역사 현장의 에필로그

2012년 4월 11일, 13일 대한민국에는 두가지 큰 사건이 일어났다. 11일은 18대인지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선거가 있었고, 13일은 북한의 김정은이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릅쓰고 광명성3호(미국은 이것을 미사일이라고 불렀다) 시험발사를 강행하였다. 두 사건이 직접적으로 동시성 이외에 서로 관계가 있는 일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의 미래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하고 걱정스러운 면을 함께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국회의원 선거 결과는 예상과 달리 박근혜위원장이 이끄는 새누리당이 152석이라는 과반수를 확보하는 승리를 가져왔다. 새누리당은 선거 승리를, 민주통합당은 선거패배를 인정하는 결과를 놓고 여러 분석과 평가가 나오고 있다. 총 300석 의석중 겨우 두석 많은 다수당이 되었지만 선거전 출발지점의 예상에서는 크게 벗어났다.

당시 이명박정부의 실정(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 한나라당대표의 전당대회 자금살포, 대통령 주변의 불의 부정 등등)으로 과반은 고사하고 100석이 위협받던 참담한 파고 앞에 박근혜호는 우선 배이름을 '한나라'에서 '새누리'로  덕지덕지 덛칠하고 어려운 항해를 출발하였다. 반면 야당인 민주당은 야당을 통합하여 하나의 세력으로 출발한다고 이름을 민주당에서 민주통합당으로 개명하여 재야를 끌어안고, 거기에 더하여 진보로 개칠되어 있는 사회주의 종북세력들까지 아우르는 '야권연대'를 이루어 호기있게  출발하였다.

그러면서 야권연대는 소리쳤다. 한미FTA를 폐기하고, 제주도 강정해군기지 공사를 중단하겠다고 외쳐댔다. 처음 이들이 이런 이슈를 외쳐댈 때 이를 통해 어려운 계층들이 박수를 치고 나올 것을 기대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민심은 기대와 달랐다. 정부 말 대로 이 두 이슈가 모두 노무현정부에서 시작된 것이고, 그것이 한국경제발전에 얼마나 중요하고, 한국의 안보에 얼마나 불가피한 것인지를 국민이 먼저 안다는 사실을 민주당은 선거중에 깨달은 것 같다. 그래서 민주당은 부랴부랴 이명박정부 퇴진론을 그리고 민간인 사찰을 선거이슈로 등장시켰다. 이에 반해 새누리당에서는 차분하게 민생지원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을 지속하였다. 와중에 새누리 입장에서는 불로소득으로 김용민인가 하는 이의 '막말파문'이라는 순풍을 만났다.

이런 선거결과를 갖게한 요인을 한두개로 집약하기는 어렵지만 내 분석으로는 민주당의 선거전략이 너무 고자세고 전략부재였던 반면, 새누리의 저자세 그리고 '민생'으로 초지 일관한 전략이 먹혀든 것으로 본다. 다시말해서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정치권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을 민주당은  깨닫지 못한 것 같다. 야권연대가 물론 위력을 발휘하였지만 그저 색갈이 무엇이던 우리와 동화될 수 있다는 위협 앞에 보수진영의 결속을 더 가속시킨 것 같다.

내 평가로는 박근혜 새누리 선대위원장의 선거여왕으로서의 능력이 이런 승리를 가져왔다는 데 좀 다른 해석을 하고 싶다. 물론 그분의 살신성인하는 자세나 국민에게 다가가는 자세를 높게 평가하지만, 이번의 선거 결과는 여기에 더하여 야당의 오만과 전략실패가 도와준 결과로 나는 본다. 거기에 북한의 미사일발사 위협이 관심사로 떠 올랐다. 때마침 서울에서 개최된 '핵 전략회의'에서  58개국 세계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여 북한의 이 가당치도 않은 위협을 보게 만든 것이 국내 국외에 큰 반응을 일으킨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친북, 종북세력들로 하여금 국회의 캐스팅보트를 쥐게 만들 수 없다는 판단을 대한민국 국민들은 하였을 것이다.

박근혜 대세론 과 한명숙 사퇴론이 동시에 일어나는 선거 다음 다음날 13일 오늘 아침 7시 반 북한이 드디어 미사일을 발사하였다는 뉴스속보가 밥상머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종일 뉴스는 단연 북한의 미사일발사로 떡칠을 한다.

뉴스 속보가 테레비 화면에 나타나고 얼마(약 10분가량) 있다가 CNN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실패했을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리고 얼마 후 일본의 언론이 북한의 실패소식을 전했고 한국의 국방부가 한시간 쯤 후 북한의 미사일이 1분가량 하늘로 치솟다가 120키로 상공에서 여러갈래로 쪼개져 내렸다고 확인하였다. 이어서 일본 그리고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실패하였고 그들은 국제사회의 반대여론과 유엔결의를 위반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이례적으로 오늘 정오경 북한정부가 자기들의 시험발사가 실패하였음을 기자들에게 확인하였다는 기사가 나왔다. 세계의 유수언론 특파원들을 발사장에 불러다 놓고 북한당국은 정작 미사일 발사는 비밀로 하여 특파원들이 외신으로 발사소식을 듣게 만든 황담함을  연출하였다. 연이어 외신으로부터 미사일발사의 실패소식이 전해지고 있으니 아무리 철면피라 하더라도 자기들의 종래방식대로 '발사성공'을 우겨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태양절(김일성생일)을 이틀 앞두고 김정은의 축포는 이것으로 잠잠해질 수는 없을 것이다. 머지않아 그들은 핵실험 카드를 들고 나올 것이다. 아니 이미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말대로 인공위성의 추진체 시험은 비록 실패하였지만 이것은 한국을 비롯하여 많은 나라가 반복했던 시행착오이고, 그것과 별도로 핵보유국의 지위를 갖추기 위한 다른 하나 핵무기 시험을 계속한다는 것이 북한의 전략일 것이다.

핵무기의 실험은 추진체에대한 시험보다 보다 피부적으로 와 다는 위협으로 우리에게 다가 올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강성대국으로서의 입지를 굳혀간다는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공식적으로 김일성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주창하였지만 그 아들 김정일은 핵보유국 지위확보를 절체절명으로 삼아왔다고 할 수 있다. 3대 세습인 김정은은 어떨까? 김정은이 지금 핵이라고 하는  말 고삐를 당장 푼다고 하는 것은 말에서 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야말로 그들 말대로 '강성대국'이나 되고나면 모를까 당장 핵의 레버레지를 풀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반도는 다시 핵실험의 위협 앞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맞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언론에서 말하는대로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에 드는 비용이 이것저것 모두 합하면 10억불은 든다는데 그것이면 북한이 중국에서 밀을 사다 1년동안 주민의 배를 채울 수 있은 어마어마한 금액이란다. 정말 북한의 정치는 주민에게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죄를 짛고 있다. 얼마나 답답하면 후진타오 조차 북한정부가 핵보다는 민생에 우선해야 한다고 하지 않나?

개념이 없기는 대한민국의 정치권도 빼어놓을 수 없다. 무차별 복지니 반값등록금이니 이런저런 복지후생공약을 선거철이면 여기저기서 들고 나온다. 특히 민주당의 복지는 그야말로 무책임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새누리당이라고 크게 닯지는 않지만 현재 한국의 야당이 들고 나오는 복지는  불감당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기획재정부가 만일 현재 정치권이 제시하는 복지를 합하면 앞으로 5년동안 268조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분석하여 발표하였다. 매년 50조가 넘는 돈이 현 복지비에 추가로 들어간다는 이야기이다.

돈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돈이 얼마나 부담으로 다가오는지 감이 잘 안 오겠지만 이것은 지금의 복지나 국가운영비용에 추가되는 개념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더욱 가슴이 답답한 것은 이런 기회재정부의 정책분석이 선거법에 위반된다는 선거관리위원회의 판결이다. 그러면 애들 장난도 아니고 이런 엄청난 돈을 아무 책임없이 내가 집권하면 하겠다는 이야기인데 그것의 실상을 국민에게 알려야하는 것은 정부로서 국가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부처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소리이지 이것이 민주당에게만  불리하게하기 위하여 하는 일이란 말인가? 정부의 기능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국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다. 그밥에 그나불 같은 씁쓸한 기분이다.

국회의원을 우리의 지도자로 평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전에 이 난에서 지적한 기억이 있지만 지금 정도의 발전된 나라에서 정치인을 선출하는 것은 대의정치는 국민의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다 나갈 수 없으니 나를 대신해서 일을 할 사람을 뽑는 것이다. 물론 나를 대신할 사람이 훌륭해야 하겠지만 나는 훌륭하지 않은데 내가 뽑는 사람은 반드시 훌륭하다는 보장은 없다. 그저 대리인일 뿐이다. 그러니 사기꾼도 나오고 파렴치범도 나오고 막말하는 사람도 국회의원 나오지 않나? 그게 우리 지도자가 될 수 있나? 아니다 그저 나를 대신하는 직업인을 뽑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런 나의 대리인이 얼토당토않는 복지를 들고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것을 가리는 것은 일차적으로 유권자이고 옆에서 도와주어야 하는 것은 정부와 전문가집단이다.

금년 한국의 경제성장율이 3%를 조금 넘는 수준이 될 것이라는 것이 국내외 전문기관들의 전망이다. 이명박정부가 호기 있게 외치던 '7-4-7' 공약은 고사하고 역대 정권 중 가장 낮은 경제성장을 하는 상황이다. 낙제점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내가 지금 정부를 두둔하고 싶지도 않고, 오히려 탓하고 싶지만 그래도 여러 대 내외 상황이 어렵게 돌아가고 있고 그나마 이런정도라도 지켜나가는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 이 정부에서 다시 성장세를 되돌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다음정부에 기대해 보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입에 침이 마르게 복지만 외치고 언제 성장세를 추스른단 말인가? 경제에 기적은 없다. 콩심은데 콩나지 팟 나지 않는다는 것을 한국의 정치권은 알아야 한다.

어제와 오늘의 역사 현장에서 너무나 큰 일들을 보면서 한국민들은 망연자실하기도 하고, 새로운 희망의 싹을 보기도 할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보면서 일본이 저렇게 온나라가 긴장하고 있는데 한국민은 어떤가? 이솝우화가 생각난다. 우리는 되풀이 되는 현실 앞에 마비된 의식 속에 그저 습관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다른 하나는 우리가 이정도의 번영을 가지게 된 것이 거저 얻은 것이 아니다. 선배들의 노력 앞에 나는 그것을 거저 빼먹을 생각만 하는 것은 아닌가? 그것도 내 자손 후대에게 부채의 짐을 넘겨주면서 까지 말이다.






























2012년 3월 28일 수요일

바보야 FTA는 경제영토 확장이 아니라 경쟁력 싸움터야

2012년 3월 26일, 27일 서울에서 '원자력세계정상회의(Nuclear Energy Summit)'가 열리면서 58개국 정상들이 서울을 방문해 시끌벅적한 시간이 흘렀다. 원자력의 이용. 안전에 관한 각국의 관심은 아무리 과장해도 부족한 중요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마침 북한은 김일성 생일을 즈음한 장거리 우주선(사실은 미사일) 시험비행을 다음달 중순 실시한다고 발표해서 서울 정상회의에 대한 세계의 관심수위를 더욱 고조(농축)시키고 있다. 의장국으로서 회의를 개최하는 한국정부의 노력과 의연한 행사진행에 많은 한국사람들은 흐믓해 하기도 하고, 북한위협의 엄중한 현실 앞에 오히려 정부신뢰가 확대되는 기회가 된듯하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오바마대통령의 친한분위기 띠우기와 중국의 후진타오나 러시아의 메디에프대통령의 대북비난 발언이 우리에게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오고 있다. 오늘도 EU를 비롯한 개별정상회담이 이어지고 있고, 그 중심의제 가운데는 언제나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G20정상회의를 개최한데 이어 경제분야가 아닌 안보분야의 정상회의를 그것도 한국의 영토가 너무 비좁은 것 같은 58개 정상을 한자리에 불러 이런 회의를 개최하는 것은 아무리 정부에 등을 돌리고 있는 세력에게도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 와중에서 눈길을 끈 것은 '한. 터키 FTA 협상 타결' 소식이었다. 이어서 한중일 FTA 협상을 서두를 것을 한중정상회의에서 논의되었다. 나는 작년 한중 FTA 협상을 서두르지 말고 오히려 시간을 가지면서 이해관계를 다져갈 것을 제언한 바 있다. 아직 국제관행에 대한 중국의 신뢰가 부족하고, 중국과 한국경제의 규모의 차이 때문에 좀더 신중한 처리가 필요하다.오히려 다음정부에 이문제를 넘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이야기를 한바 있다. 그러나 세계질서는 변하고 있다. 북한에대한 중국의 일방적 사랑이 정리되고 G2국가로서 중국의 신뢰가 확대된마면 우리로서는 한중, 한일 FTA를 마다할 필요가 물론 없을 것이다.

지난 해 한미 FTA가 타결되고, 금년 3월 15일 드디어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발효에 들어갔다. 아직도 야권과 진보세력들 사이에서는 망국적 협정을 폐기해야 한다고 으르렁대고 있다. 야권은 다음 집권을 하면 한미FTA를 폐기하겠다고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더구나 종북세력인 진보당 계열과 연대하고 있는 민주통합당의 입장에서는 이들의 의견에 경도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려는 그들의 의도가 관철되지 않을 것으로 믿고 있지만 이들 세력의 우물안 개구리 사고에 환멸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들도 우리 국민인 것을 그들을 끌어안고 살 수밖에 없다.

한국정부는 한미FTA가 타결되자 한국의 경제영토가 세계 3위의 대국으로 확대 되었다고 홍보하고 있다. 한국경제가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확대되었다는 점에서는 옳은 말이다. 그러나 FTA가 되지않았다고 해서, 다시 말해서 FTA 이외의 지역에서는 한국경제가 활동을 제약받는다고 할 수만은 없다. 한국경제의 경쟁력 여하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영토의 사전적 의미는 '한나라의 주권이 미치는 땅' 즉 한나라의 통치권이 미치는 지역으로 되어 있다. 이때의 주권이나 통치권은 국민이 권리를 행사하거나 자국민을 보호하는 대상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경제활동을 할 때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즉 공정한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이에 대응하거나 정부가 이를 보호해 줄 수 있다. 이러한 경제활동은 경쟁력이 전제가 되어 발생할 수 있다. 경쟁력이 없으면 애초 경제활동이 일어날 수 없다.  이때의 FTA 는 영토개념에 포함될 수가 없음은 당연한 것이다.

따라서 FTA는 경제영토의 개념이 아니라, 경쟁력 싸움장터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한미 FTA가 되었다고 거저 경제성장이 늘고 고용이 확대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오히려 제대로 된 경쟁을 하여야하고 이를 위해서 더욱 한국경제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정부는 오히려 이점을 강조해야 한다. 정치권의 지나친 복지논쟁에서 벗어나 경쟁을 국가운영의 주제(key word)로 삼아야 한다.

비교우위적인  무역이론에서 보면 FTA는 분명 경제활동을 확대할 수 있다. 그러나 경쟁력을 갖추지 않은 경제는 오히려 상대방의 경쟁력에 압도당할 수 있다. 논리적으로는 FTA보다는 불공정거래를 막아주는 WTO(세계무역기구)같은 집행기구가 더 필요한 이유이다. 그래서 GATT(관세와 무역에관한 일반협정)의 집행력을 담보하는 WTO가 출범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세계각국이 자국의 이익 앞에 공정한 무역질서를 담보하는 규정을 만드는데 합의가 이루기 힘이 들어 시간만 천연되고, 그래서 WTO의 집행력이 확보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2차대전 이후 초유의 경기침체기를 맞은 세계경제는 그 돌파구를 내수와 무역확대에 두고 있다. 내수는 재정을 통하여 그리고 무역은 FTA를 그 해결통로로 삼고 있다. FTA는 정치지도자의 임기 유한성 때문에 WTO 보다 더 선호적이다. 그래서 요즘 세계각국은 WTO 보다는 FTA에 보다 공을 드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세계의 흐름을 타고 있는 FTA를 한국경제는 최근 대폭 확대해 가고 있다. 미국을 비롯하여 EU 그리고 동남아 각국,  인도 그리고 터키까지 확대되고 있다. 옳은 방향의 설정이다. 이럴수록 한국경제는 경쟁력 확보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쓸데 없는 정쟁에 휘말리거나 우물안 개구리격인 정치인들에게 이나라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 오직 경쟁력확보만이 살 길이다. '바보야 FTA는 경제영토확장이 아니라, 경쟁력 싸움터야.'






























2012년 3월 6일 화요일

雜想2

   만 두달만에 창에 들어왔다. 그동안 다른 일들이 나를 이곳에 오게 하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변명이고 게으름 탓이다. 너무 미안하고 죄를 지은 것 같아 살그머니 노변정담을 들여다 보고 창을 닫고 돌아 앉았으나 마음이 편치 않아 다시 창을 열고 막연하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벌써 우수, 경칩이 지났으니 겨울도 다 지났다. 오히려 창밖은 봄의 전령 봄비가 평화롭게 오고 있다. 가믈었던 대지를 그저 조용하게 적셔주고 있다. 여러가지 일로 지쳐있는 아들의 등을 어루만지는 어머니 손길같다.

   금년 두달의 시간인데도 세상은 많이도 변한 것 같다. 좋은 일 궂은 일이 다 함께 있지만 그래도 좋은 일을 더 기억하려고 노력하자. 정치권에서는 한나라당이 새 누리당으로 개명하고 민주당은 통합민주당으로 다 개명하면서 4월에 닥아온 국회의원선거 후보를 선정한다고 야단 법석이다. 말은 모두 새 피를 새 정치스타일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내 눈에는 그밥에 그나물같은 인사들이 들락날락하고 있는 것 같다. 집권당(?), 야당 둘 모두 여성이 대표가 되어 남자들이 하는 일들이 못마땅한 듯 많은 변화를 시도한다. 남성이던 여성이던 그게 무슨 문제인가? 친박, 친이가 문제인가? 김대중계가, 노무현계가 문제인가?  훌륭한 정치판이 짜여지기를 기대한다.

   지난 두달 사이 가장 두드러진 세상의 변화는 이미 EU의 삐걱대는 소리로 세계경제에 긴장을 주더니, 중국도 성장률을 7.5%로 그들의 러키넘버 바오바오(保八)를 포기해 세계무역시장에 타격을 줄 모양이다. 일본은 일어설 힘을 잃었고 이란의 핵개발 위협은 세계를 전쟁의 위협 앞에 두렵게하고 있다. 시리아의 참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중동의 정변 이후 예멘의 아이들이 세계에서 두번째로 나쁜 영양공급으로 피골이 상접해 있다. 러시아의 푸틴이 다시 대통령이 된 것이 러시아나 세계평화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 모르겠다. 몇달 후면 다가올 불란서 샤르코지, 미국의 오바마 그리고 한국의 대통령선거가 예비되어 있다. 모두가 인류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선거가 이루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한국경제는 금년 성장률 3.7%가 어렵겠단다. 물론 무역이 예상보다 지지부진하고 정치권의 대책없는 복지정책 그리고 정부에대한 국민의 신뢰상실로 경제는 어렵게 될 전망이다. 그러나 3.7이던 2.8이던 무슨 큰 차이인가? 문제는 발전의 잠재력을 키우는 것이다. 클린턴 말대로 '멍청아 문제는 경제야!'가  '한국사람들아 문제는 발전의 잠재력이야'다.

   

2012년 1월 9일 월요일

雜想 1

   연초 세상돌아가는 이야기가 답답하기만 하다. 한나라당 대표 선출과정에서 돈 봉투가 오갔다고 어는 국회의원이 발설하더니, 어제는 박희태 현 국회의장이 당 대표 출마시 자기에게 현금 3백만원이 든 봉투를  돌렸다고 검찰에 진술했단다. 당사자나 보좌진들도 모르는 일이라고  발 뺌하는 단계에 있다. 물론 앞으로 어떻게 발전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말이 나오자 유시민이라는 정치인은 이것은 야당에서도 다반사로 있어왔던 일이라고 덩달았다. 생각해보면 여야를 막론하고 이런 경비지원성 자금살포가 어제 오늘 일이 아닐 듯 싶다. 누구나 준 사람이나 준 행위를 비판하지만 당사자 즉 지구당관리자나 그 주변인사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경비지원도 없으면 어떻게 하란 말이냐고 할 것이다. 안 주면 안 준다고 야단일 것이 선거판의 분위기일 것 같기도 하다.

   이런 게스가 만일 사실이면, 이제 와 박희태 대표에게 부당함을 질타한다면 다른 그 전 또는 후의 인사들은 어떻게 면책되어야 하나? '재수 없게 나만 걸렸어...'하는 일이 여기에도 생기겠지. 한나라당이고 민주당이고, 무슨 이름 붙은 당이던 간에 대동소이한 상황이라면 우리 서로 마주서서 상대방 뺨 한 차례식 때리고 없었던 일로 하고 말까?

   그런데 도대체 고승덕이라는 사람은 왜 그런 폭로를 지금 하게 되었을까? 몇년 감추어 온 비밀(?)을 별다른 계기도 없이 왜 까발기는 것인가? 무슨 이익을 보기 위해 그리고 누구를 위해...도대체 그 저의가 짐작이 가지만 주관적인 의심이니까 말할 수도 없다.

   여당을 위하는 것인가? 야당을 위하는 것인가? 친박계를 위하는 것인가? 친이계를 죽이는 것인가? 머리 나쁜 내 계산은 답이 나오지 않는다.

   대통령은 후진타오와의 정상회담을 위하여 오늘 중국에 간다고 기사가 나왔다. 한중간의 전략동반자관계를 발전시키려 가는 것인지,  북한의 김정은 체제에 대한 지나친 사랑(?)을 자제해달라고 부탁하려 가는 것인지, 한중일 FTA 협상을 촉진하려 가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런 답답한 여행에 앞서 이명박대통령은 연초 이상한 경제정책을 발표하였다. 왈, 물가실명제 제도란다. 실명제란 말이 이런데도 쓰이는지 모르겠지만 주요 물가 별로 담당자 즉 관리책임자를 두어 그 물가의 흐름에 책임을 지게하라는 뜻의 정책을 금년부터 실시한다는 이야기이다. 콩나물담당, 전세담당, 등록금담당이니 이런 아류의 정책을 필 모양이다. 참 뜸금 없는 발상이다. 그 답답한 속 내야 이해되는 면도 있지만 지금 한국경제가 이런식의 접근으로 엉클어진 실타래같은 현실을 타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대통령께 실례를 범할수 없기 떄문에 코메디 같은 이 이야기의 전개는 여기서 접기로하자.

   지금 미국 시카고에서는 미국경제학자들이 모인 연차총회에서 금년도 미국과 세계경제전망을 토론한다고 한다. 일반적인 시각은 미국은 기대대로 그런대로 정의 방향으로 개선되어가고 있고, 민주 공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선거 후 재정지출의 확대 등으로 미국의 경기회복은 좀더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한다. 문제는 EU다. 뚜렸한 긍정신호를 보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만일 이태리와 스페인이 현상을 딛고 일어선다면 EU도 긍정적으로 발전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 두 나라가 지금의 어려움을 딛고 일어설지 가늠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 같다. 여기에 더 하여 금년 중국의 경착륙을 걱정하는 학자들의 견해가 나오고 있다. 7% 이하의 경제성장이 올 경우 중국은 경착륙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견해와 세계경제 위축에서 오는 수출선 확보실패가 중국을 경착륙시킬 것이라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한국경제에 대한 우려는 크지 않지만 한국정부의 포지티브시장규제 정책방식이 장기적으로 시장의 활성화를 저해할 것이라는 어느 학자의 견해가 관심이 간다.

   아무튼 이명박대통령의 시장에 대한 철학이 너무 전 근대적이어서 현재의 한국경제발전흐름에 맞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 매사 만사휴의이다. 그런 펀더멘털한 문제보다는 현실적인 문제 풀이를 적극적으로 해 나가는 일이 중요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물가실명제같은 엉뚱한 발상이 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금년 한 해 그래도 어물어물 큰 문제없이 현실을 마무리해 주길 바란다.































2012년 1월 2일 월요일

2012년 새해 아침에

   새해 아침에 언제나 그랬던 버릇대로 신년사를 써야한다는 의무감으로 창을 열었다. 사실 금년은 아무 준비도 없다. 사적으로 주변 일들이 너무 부산해서 차분한 마음을 가지기 힘이든다. 이제 한국 나이로 73세가 되었으니 모든 것을 조심하고 뒤로 물러나고, 내려놓으려고 노력해야 할 때다. 그런데 아직도 미진한 일들이 내 주변에 너무나 많아, 돌아 앉을 수가 없다. 이것도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건지 모르겠다. 피곤함을 접고 다시 힘을 내 한 해를 시작하자.

   언제나 그렇지만 금년 한 해도 녹녹한 시간이 될 것 같지 않다. 세계흐름도 그렇고 국내정세도 그렇고 심지어 지구환경변화 조차 불확실성에 가세하는 한 해가 될 것 닽다.

   지구환경변화야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영역이니 인간이 이러쿵저러쿵 전망할 수 없는 영역이다.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진 폭우 기근 등이 금년에 비켜가리라고 예단할 수 없다. 작년의 일본 후쿠시마 해일, 남미의 지진 그리고 태국의 폭우 등은 우리 모두를 섬뜩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고, 그저 기도할 수 밖에 없는 영역이다. 그리고 인간에게 보다 겸손하고 욕심을 버리라고 요구받는 영역이다.

   세계흐름에서 가장 우선 피부에 와 닫는 것이 EU국가들의 재정파탄 수습이다. ECU(이유중앙은행), IMF 그리고 불란서 독일 미국등 국가들이 나름대로의 대책을 내어놓고 있지만, 현재 나타나고 있는 그리스를 비롯한 스페인 등 남유럽국가들, 이태리, 벨지움 그리고 더 나아가 불란서 영국등 제국의 재정위기를 수습하기에 필요하고 충분한 대책을 내어놓지는 못하고 있다. 아니 능력이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세계경제 수습의 아르키네스 건이라고 할 수 있는 이지역 문제가 새해에 잘 풀릴 가능성은 별로 없어보인다. 다만 아직은 서방세계가 지배하는 지구촌이기 때문에 선진국들이 자기 집안문제처럼 되어 있는 이 지역 문제를 다른 지역문제처럼 방치하지는 못할 것 아닌가 하는 막연한 겟스 만 있을 뿐이다.

   러시아의 푸틴 장기집권 문제는 그 지역의 비중으로 보아 세계경제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지만 민주화를 위한 시위등이 심각해지기는 하겠지만 그런대로 수습되어 푸틴이 다시 집권하리라는 것이 일반적 시각 같다. 푸틴을 향한  시위는 러시아 내부문제 정도로 수습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오히려 오바마 재선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대안부재의 논리이다. 한편 현재의 경기침체는 그동안의 경기부양노력 등으로  기대보다 더 낳은 모습으로 개선 될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외부적 변수가 있지만 오바마의 리비아문제 처리처럼 이선지원(secondary leadership)이 오히려 미국의 부담과 세계경제의 부담을 보다 가볍게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미국정부는 여력을 중국의 오만성에  맞서 태평양 연안에 방위력을 구축하고, 아시아국가들과의 외교관계를 확대하려는 노력을 보일 것이다. 긍정적으로 평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일본은 작년에 이어 이제 늙은 고양이 정도의 모습으로 세계정세에 나타날 전망이다. 이제 일본은 경제문제에서도 세계흐름의 이니시어티브를 잃은 국가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나는 전망한다.

   중국은 김정일의 사망 이후 아시아의 맹주로서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노력을 확대할 것이다. 시진핑의 집권 이후 보다 원리 사회주의에 집착하여 국가를 통제하려 들 것이다. 연장선상에서 김정은의 북한을 자기들 복속국가로서 취급을 하려들 것이고, 김정은의 북한은 금년 상반기 중 보다 중국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중국은 북한 뿐만 아니라 일본 베트남 필리핀 등에서 해상 영토권분쟁을 일으키고, 한국영해의 중국어선 월경을 지원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진핑 중국은 미국에 정면으로 맞서지는 못하고, 경제는 국가통제의 확대로 점차 활력을 잃어가게 될 것이다. 인프레는 확대되고 세계자본들은 중국을 이탈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덩치와 통제국가 정부의 힘으로 세계문제를 간섭하려 할 것이고, 그렇수록 G2로서의 긍정적인 리더십보다는 트러불 메이커로 더욱 이메이지 메이킹하게 될 것이다.

   김정은의 북한은 김정일의 정치구호를 이어가려 하겠지만 강성대국의 실체가 너무 없기때문에 당분간 자체 체제안정에 주력하게 될 것이다. 취임일성으로 이명박정부를 욕하고 대드는 인상을 보이는 것도 다 이런 내부결속의 일환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 국가운영의 우선순위가 식량확보와 국제사회에서의 체제인정이기 때문에 당분간 핵실험이나 장거리 유도탄 발사등의 실험은 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체제을 넘보거나 폄하하는 듯한 외부 자극에 대하여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할 것이다. 특히 남한 정부와의 관계에서 더욱 신경과민의 방응을 보일 가능성이 클 것이다.

   시진핑의 중국이나 김정은의 북한을 포함하여, 금년 지구촌에는 미국 러시아 불란서 한국 등 정권과 관련된 선거 등 정치행사가 60여개국에서 있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다. 변화의 세기가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다. 세계의 흐름에서 이런 변화는 긍정보다는 어려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많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같은 연장선상에서 금년 대한민국은 많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금년 4월과 12월 국회의원선거와 대통령선거가 겹쳐 있다. 무엇보다 이명박대통령이 보여주는 지도자로서의 리더십 부족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이 크고, 한나라당이 지리멸렬 된 지금 금년 정치행사를 모두 예측하기 힘들게 하고 있다. 반면 야당통합이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이에대한 국민의 여론 또한 부정적인 모양이다. 더구나 안철수 바람이 어떻게 작용할지 몰라 2012년 한국의 정치흐름은 예측을 어렵게 하고 있다.

   우선 집권당 입장에서 보자. 지금 상태로 한나라당이 국회의원선거에서 이기고 재집권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만일 한나라당이 이길 수 있는 조건은 세 시나리오가 존재할 것 같다. 하나는 김정은 정부가 당장 거들나서 한반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다. 둘째는 야당통합이 지리멸령해져 민주당 노무현세력 그리고 종북세력들이 각기 제 갈 길을  가는 것이다. 셋째는 지금부터라도 이명박대통령이 북한의 변화 앞에 국가안보를 위한 비상내각을 구성하고, 일로 거기에 매진하여 국민의 지지을 얻어내는 것이다. 이상의 세 시나리오는 현재로서는 성립될 것 같지않다.

   그렇다면 금년의 선거는 집권당 입장에서는 이길 가능성보다는 질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고 준비해야 할 것 같다. 이런 가운데에도 가능성은 4월 국회의원선거에서 한나라당이 대패를 하고,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국민의 시각에서 대통령을 한나라당에 줄 가능성을 점칠 수는 있다. 그것은 요행을 바라는 것과 비슷하다고 나는 본다.

   오히려 보수의 입장에서 무서운 것은 안철수가 박원순을 몰아주듯, 대통령선거에 나간다 안 나간다하다가 어느날 엉뚱한 친북 진보인사를 지지하고 나설경우를 상정해보는 것이다. 그 무책임성 그 파장은 폭풍일 것이고, 대한민국의 장래는 암담하다고 할 것이다. 이 책임은 물론 이명박 현 대통령에게 있다. 또 가정을 가지고 미래를 미리 예단하는 것은 옳은 처사가 아니고, 안철수라는 사람을 알지도 못하면서 미리 폄하해서도 물론 안 된다고 나는 평가한다. 그러나 엄중한 현실 앞에 우리 모두는 불안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경제는 적당한 수준의 경제성장, 인플레이션 ,국제수지 그리고 실업율을 보이겠지만 그것은 현상적인 수자에 불과하다. 3% 대의 성장, 3%대의 물가 그리고 160억불대의 경상수지 흑자, 3%대의 실업율 그리고 3%대의 민간소비증가율, 이런 3자 시리즈를 내년 정부가 내어놓으면서 수자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한다. 형식적인 수자보다는 내용에 충실한다는 이야기인가? 아무튼 이명박정부의 경제정책은 겉으로는 어느정도 성공한 것 처럼 보이지만 구조적인 문제를 다음정부에 넘겨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리먼사태 이후 경기회복노력, 수출확대 그리고 한미FTA 등 긍정적인 업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정부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의 해결에 소홀하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많은 불만과 비난이 쏟아지고 있고 경제가 가야할 방향을 잃고 말았다.

   우선 경제성장의 잠재력을 잃고 말았다. 7.4.7 공약이 옳고 그름을 떠나 최소한 오늘 경기의 회복 보다는 미래 경제성장과 발전의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 옳은 경제운영이다. 그러나 이정부는 리먼사태를 계기로 경제정책의 기본을 경기회복 그것도 수출을 위한 고환율정책(depreciation)에 몰두하였다. 그래서 수출은 많이 늘었지만 내수의 정체와 빈부격차등 많은 구조적문제를 불러드렸다. 최근 정치권에서 무상복지니 박근혜복지니 하는 인기영합적 문제 접근 들도 여기서 야기 되었고, 세계경제가 어려워지자 한국의 경제성장은 기댈 데가 없어졌다. 성장잠재력을 키우지 못한 정책실패라고 평가되어야 한다.

   중산층이 없어졌다. 그러니 자나깨나 복지 복지다. 경제구조조정의 실패다. 배고픈 사람은  밥을 먹는 것이 급선무이지, 논에 농사를 잘 지어 쌀을 확보하는 것은 우선 관심 밖이 된다. 이명박정부의 전략부재의 한 단면이다.

   가계부채가 급상승하여 처리대책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금융기관의 개인부채가 1천조원이 되었고, 그중 주택문제와 연관된 가계부채가 절반 수준인 5백조원이라고 한다. 정부의 고환율정책과 부실 저축은행들의 프로젝트 화이난싱 등으로 인플레가 일어나니 부동산 버블이 생기게 되고, 거기에 동참한 개인들이 주택가격 하락에 따라 금융부채를 처리할 능력을 잃게 만들었다. 이것을 처리할 경제정책은 시장경제에서는 없다.

   청년실업문제를 소홀이 하였다. 대학을 나온 젊은이들이 갈 곳이 없다. 무슨 수로 15%에 달하는 대졸 출신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재정이 거들고 하여 기관에 인턴십 자리를 늘리는 것이 대졸자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길이 아니다.

   국민의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 급선무다. 언론 등에 나타나는 현란한 성공사례는 그것이 모두에게 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얼마나 노력을 하여 얻은 결실인가를 이야기해야하는데 그저 노력 별로 없이 거져 얻은 것처럼 부풀리는 마음의 인플레적 사고가 오늘의 사회불만을 자극하는 것이다. 기대치를 낮추고 생산성 만큼 임금을 받는 사회가 되도록 정책으로 유도해야 한다. 우리의 대졸 초임이 일본보다 높다는 것은 정부정책 실패의 한 단면이다.

   같은 연장선상에서 우리의 대학진학율이 다른 선진국에 비하여 너무 높게 된 문제도 제기되어야 한다. 분석에 의하면 80% 이상의 대학진학률을 흡수할 경제구조는 자유시장경제 구조에서는 없다고 한다. 지금 정부가 고졸출신자 채용을 강조하는 것은 만시지탄이 있다. 그리고 회사는, 사회는 이들 취업고졸출신자의 대학진학을 책임져 주어야 한다. 이런 가정과 사회의 준비 없이 무턱대고 대학에 진학하고 그 대졸생이 무직자가 되거나, 아니면 고졸출신이 하는 일을 하게하는 것이 발전된 한국경제의 경쟁력을 잃게 하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아울러 낮은 출산률에 대비하여 보다 적극적인 인구정책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마련 시행해야 한다.

   이상의 단편적인 한국경제의 구조의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은 정부가 보다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국민을 설득하고 일관 된 경제정책을 추진할때 가능하여 진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초 한국의 '종합안정화시책'과 같은 구조조정정책이 나와야 한다.이것을 기대하기에는 이명박 정부는 이미 시간이 없다. 다음 정부에 기대할 수밖에 도리가 없는 이치이다.

   이상에서 2012년 임진년 새해의 국내외 흐름을 짚어보았지만 솔직히 말해 별로 유쾌하거나 희망적인 모습을 발견하기 힘이 들게 되어 있다. 그러하다고 해서  금년 한국사회가 좌절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지난 60여년의 한국경제 발전과정을 되돌아보아도 언제 그렇게 편안한 새해를 맞을 때가 그리 많치 않았다. 오히려 더 어렵고 더 깜깜한 전망 앞에 우리 선배들은 이를 악물고 이를 헤쳐나아갔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이만한 발전을 이룩한 것이다. 그것을 오늘을 사는 우리 들은 알아야 한다. 지식인들이 뽑은 오늘의 4자성어 '엄이도종(掩耳盜鍾)'처럼 제손으로 귀를 가리고 종을 훔치려하지 말고, 내가 이 사회를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를 찾고 그것을 위하여 몸을 바치는 그러한 한국인이 되어야 하겠다.

   대한민국은 그 위상이나 구조가 이제 다른 선진국들에 비하여 손색이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까마득하게 보이던 구라파 많은 나라들의 실상을 오늘 보면서 나는 두가지 생각을 한다. 하나는 이들 나라들도 어쩌면 별 수 없는 그런 나라들이라는 점이다. 자기 선대들의 노력으로 이룬 부를 후손들이 힘들이지 않고 까먹고 놀고 있다가 결판을 내고 만 것이 오늘 이들의 모습이다. 다른 하나는 지고의 가치로 여겨졌던 서양가치(western value)도 사실 별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의 소득수준이 구매력기준으로 EU 평균을 넘어선 지금, 잘하면 머지 않아 이들보다 훨씬 앞 설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를 달성하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한국적가치(Korean value)를 연구하고 정립할 시기라고 평가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 우리가 오히려 더 비약하기위한 진통을 지금세대가 짊어지고, 앞서 처리한다는 자긍심을 갖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그것이 옳은 인식같다. 남을 탓하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런 마음을 버리고, 내가 앞서 이끌고 가는 자세를 갖추는 노력을 할 것을 새해 아침에 감히 제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