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30일 한국의 언론은 지난 밤 발표된 국회의원 보궐선거 결과를 놓고 흥분하고 있다. 여당인 새누리당의 압승, 야당인 통합민주당의 완패라고 떠든다. 이어 여권의 누가 다음 대권후보로 기반을 다졌다느니 야당의 대표는 이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느니 하는 분석들을 내 놓고 있다. 성완종 회장 사건이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느니, 역시 박근혜대통령은 선거에 귀재라느니, 호남이 친노에 등을 돌렸다느니 제나름대로 선거결과를 분석해 댄다.
같은 날 한국시간 밤 같은 시간에 일본의 아베총리는 미의회에서 연설을 하였다. 패전국 일본이 그의 대적국가인 미국에서 2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보통국가로서 미국민에게 보내는 공식멧세지인 셈이다. 우리는 이 연설에서 우리의 위안부 문제에대한 일본정부의 진솔한 사과가 있기를 고대하고 앉아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예상대로 아베는 일본의 미국 진주만공격을 사과하고, 2차대전 당시 사망한 미군에대한 조의만 표하였다.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국가에 대한 침략이나 가혹행위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오히려 워싱턴에 오는 길목에서, 시카고나 하바드 대학 강연에서도 아베의 대응은 일관성을 유지한 반면, 우리는 위안부 사과에대한 내용이 있는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아베행보를 마치 중계방송하고 다니듯 하였다. 결과는 역시 예상대로 실망 뿐이었다.
미국도 아베정부에 대하여 아시아 국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간헐적으로 미국정부 관료들의 희망사항을 이야기하는 소리가 나올 뿐이다.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대한 동맹강화라는 원론적인 이야기이거나, 한걸음 더 나아가 오히려 과거에 매이기보다는 미래에 대한 협력을 더 강조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한국사람으로서는 미국의 이런 제3자적 입장에 섭섭함을 느끼게 한다. 역시 '미국을 믿지말라'던 옛날 1950년대 전쟁 중 항간의 유언비어를 떠올리게까지 한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미국은 1990년대 초 구 소련의 패망이후 냉전시대의 졸업과 함께 세계의 지도국으로 홀로 남게 되었다. 세계제패에 단일지도국이 된 미국은 일본 독일등과 함께 경제분야에서 경쟁체제를 유지하게 되었다. 2차대전 이후 군비와 경제력의 경쟁에서 단일 톱이었던 미국은 과학기술과 근면을 바탕으로 한 일본이나 독일의 경제 추격에 어려운 경쟁을 하게 되었고, 결과 부의 축적에서 여러국가와 경쟁을 하지않을 수 없게 되었다. 다극(Multi polar)시대에 재정은 핍박해지고 세계경찰국가로서 지불해야 하는 재정수요은 확대되고 있다. 다른나라와 마찬가지로 복지, 의료, 교육등의 재정수요은 커지고만 있다. 거기다가 2008년 리만브라더스사의 부도로 이어진 월스트리트의 파탄은 세계경제를 위축시키고 있다.
오히려 다행이 미국은 지난 3년간의 양적완화정책으로 경제가 다시 소생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미국을 제외한 세계경제는 아직도 침잠의 늪에서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실제 경제가 아주 나쁘지만 큰 덩치로 세계문제를 밀어부치는 국가운영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 하에서 미국은 중국의 국제기준에 잘 맞지 않는 통큰(?) 경쟁에 맞서야 하고, IS 격퇴에 나서야 한다. 천방지축 갈팡대는 김정은의 핵무기 장난에 쐐기를 박아야 한다. 이러한 일들 앞에 미국은 아베의 군비지원에서 그 해결책을 찾으려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중국견제를 위한 협력카드를 일본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일본의 아베의 입장에서 보자. 패전국가의 굴레에서 벗어나 아시아의 지도국으로 부상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일본의 아시아 침략행위에 대한 비판을 잠재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패전국으로서 군비보유가 제한된 것을 푸는 방법은 미국과의 군비협력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 아베는 미국에 군비협력을 자원하게 되고, 이에 대한 대가로 미국은 일본의 방위할동 제한을 풀어주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과거 역사 만행을 다시 이야기하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길에 방해가 될 것이라고 평가할 것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무시만 할 수 없는데 마침 전 정부에서 발표한 사과가 있으니 그것을 그냥 계승한다는 소극적 접수를 한 것이 아베의 속내일 것이다. 그 길이 일본인들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길이되고, 곁들여 경제살리기위한 돈 풀기에 미국이나 국제기관의 비판을 잠재울 수 있는 길이 된다고 아베는 판단했을 것이다.
한국의 입장을 보자. 만일 지금과 같은 미일 밀월이 지속되면 될 수록 한국은 입지가 좁아질 것이 뻔하다. 위안부 사과의 문제는 우리의 감성적 테마이지만 그것이 지금 우리가 걱정하는 한국의 입지와 관련한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또 아베의 현 정책이 지속되는 한 쉽게 풀릴 과제도 아니다. 그런데 박근혜정부는 여기에 온통 매달리는 분위기이다. 그렇다고 해결의 실마리도 찾지 못한채 말이다.
박근혜정부의 가장 한심한 대응의 하나는 외무장관의 소위 '전략적 침묵'인지 하는 것이다. 이정부가 출범한지 3년이 되어가는데 우리 외무부가 한 일이 무엇인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시진핑이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방문하였다고 으스댔지만 그래서 그게 무어냐 하는 대목이다. 오히려 시진핑이 한국에 와 우리의 안보대목인 '싸드(THAAD)'에 올무만 채인 꼴이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중국 눈치 본다고 미국이 추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가입에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고 가다 일본에게 그 이니시어티브를 빼았기고 말았다. 미국과 일본은 아베의 미국방문을 계기로 TPP가입문제를 해결하였다. 다른 한편 중국이 추진하는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AIIB)가입문제는 역으로 미국의 눈치를 본다고 어물거리다가 영국 독일등이 가입하자 뒤늦게 가입하여 선제적 이익을 다 잃고 말았다. 오히려 중국은 일본 보고 AIIB에 가입하면 부총재 자리를 일본에 할애하겠다고 한단다. 우리는 두마리 토끼를 다 잃게 되었다. 이게 전략적 침묵인가?
박근혜정부가 보궐선거에서 몇석을 얻은 것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 의미는 아니다. 이번 선거결과도 한마디로 말한다면 정치권에 대한 불신에서 나온 것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야당들이 그동안 취해온 소아적 행동 즉 국가안위나 번영은 제쳐놓고, 내몫 챙기는 일에 몰두하는 모습에 국민은 염증을 느끼고 있다. 이제 중요한 권한이 대부분 국회의 결정에 넘어가 있는데 경제가 다 망가지고 있는데 국회에 계류중인 법안은 낮잠을 자고 있다. 물론 야당만의 책임이 아니지만 여야 국회 모두 전략이 없이 눈앞의 이익에 매달린다. 국민은 염증을 느끼고 있다. 세금이 아깝고 시정잡배와 무엇이 다른가? 그러니 표가 갈데가 없으니 기존 질서가 승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금 세계지도상에서 한국의 위치는 자꾸 작아만지고(smallize)있다. 중요성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말이다. 세계연구기관들의 일반적 전망은 2030년대 중국과 인도를 합친 경제력은 미국과 EU를 합친 경제력보다 더 커질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같은 아시아 개발도상국가들이 괄목할 성장을 하는 것을 앞서 간 우리가 축하할 일이지만 그게 우리에게 유리하게만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 많은 경쟁을 해야하고 더 많은 일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일본의 절반도 안 되는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한국경제는 물론 그 규모가 커지고, 세계의 7.8위의 대국으로 성장하겠지만, 그 정치적 지정학적 크기는 오히려 줄러들 가능성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미국의 피보트 아시아의 한축이 미국과 일본 그리고 오스트랄리아로 형성되고 한국이 빠진다면 한국은 그 무게감이 훨씬 줄어들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한국경제가 일본을 앞질러 미국과 안보부담을 공유할 능력이 있는가? 없다. 빨리 만들어가야 한다. 이런 상황 앞에 정부는 말할 것 없고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 정치적 노동계 그리고 안일하게 갑질만 하고 있는 대기업 모두가 환골탈퇴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이다. 이런 다급하고 엄중한 상황 하에서 전략적 침묵이나 외치고 있는 한국의 외무장관는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