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5일 화요일

대의정치의 함정

   대의정치는 나를 대신할 사람을 내세워 나라를 경영하는 정치제도이다. 정치란 무엇인가? 어학사전에서는 정치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라 해석하고, 지식백과사전에서는 정치란 ' 통치와 지배로 이에대한 복종, 협력, 저항등 사회적 활동의 총칭'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한마디로 다시 정리하면 정치란 나라를 경영하는 일이고, 대의정치는 나를 대신해 그 경영을 할 사람을 내세우는 제도를 말한다고 할 것이다.

   대의정치의 역사는 잘은 모르지만 그 출발이14세기경부터라고 치면 600여년의 긴 역사를 가진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직접민주제도의 물리적 한계에서 비롯된 이 제도는 당초의 의도나 취지에 맞게 운영된 경우도 많겠지만, 정치환경의 변화에 따라 큰 역할의 차이가 있었음을 역사에서 볼 수 있다. 대의정치에서 민주라는 개념이 현실 정치권력 앞에 얼마나 개념의 퇴색을 가져왔느냐 하는 문제에서 비롯해서, 얼마나 권력에 저항하고 타협하고 굴종하느냐를 역사는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이런 대의정치는 정치제도로서 현실권력과 관계변화의 역사를 갖는데서부터 출발하여, 경제 사회 기술 등의 발전과 함께 정치환경이 변화되는 흐름 속에서 대의정치가 갖는 의미의 변화와 기능의 한계를 노출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에 것이 독재,부패등과 연관되는 문제라면, 뒤에 것은 가치관등 사회변화와 함께 sns 등 사회구성원과의 소통관계등에서 대의정치 기능의 한계를 나타내게 된다고 할 수 있다.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말대로 이념의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결론이 났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민주주의는 물론 대의정치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최근 산업기술의 발전과 함께 sns등 매개수단의 큰 변화로 시장의 구조자체가 변화되어가고 있고 그 변화의 속도도 엄청나다. 이러한 흐름위에 대의정치도 변화를 맞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의정치의 현실적 의미인 의회제도에도 큰 변화가 요구된다. 그 변화의 바다위에 대의정치의 주체인 대의기관이 서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를 대신하는 대의기관의 구성원이 시대의 흐름이나 기술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는 능력을 갖기를 바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우선 잘 모른다. 다음은 이해관계가 상충되고 첨례하게 대립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끼리끼리 모일 수밖에 없다. 내용을 잘 모르니 그저 아는 사람들이 하는대로 따라나 가고, 우선 내 선거구에 무슨 이익이 있을까나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 국가운영전략이나 미래계획은 애당초 존재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이것이 현대정치에서의 패당이고 패거리정치이다.

   한국의 정치풍토는 이게 더 심하다고 할 수 있다.  발전과정이 급속이었고 발전의 폭도 대폭이었다. 변화를 따라잡기 힘든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반상의 구분, 패당정치의 전통이 있다. 특히 일제로부터 해방된 후 국가기반이 정착될 때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 와중에서 한국의 대의기구 구성원들은 나라운영의 우선순위보다는 나의 패당에 대한 충성의 밀도가 강했다고 할 수 있다. 혈연, 지연, 학연, 민주화운동, 노동운동,종북운동 등 패당의 매개는 다른 가치보다 우선하였다.

   현재 우리나라를 둘러싼 주변의 흐름은 그 어느 때보다 우리를 긴장시키고 있다. 정치기반이 취약한 김정은 통치의 불안정성, 자국의 이익만 우선하는 극우의 일본 아베정부, 대국굴기를 현실화한 중국 그리고 '아시아 우선'을 내세우는 미국, 모두 큰 변화의 바람을 예고하고 있다. 한편 7년째 2만불 시대의 함정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한국경제, 성장동력을 잃어버려 OECD국가중에서 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저성장 함정, 취업의 꿈이 사그러드는 젊은 취업지망생들, 우리 2세교육을 담당하는 일선의 전교조선생님들, 이것이 한국의 오늘이다.

   이런 환경을  한 아름 안고 있는 것이 한국의 대의기구, 대의정치이다. 이권이 있을 때나 불리하면 개별 헌법기관이라고 큰 소리치는 이들이 합리적인 개별행동이 있는가? 패거리에 불과하다. 논리도 없고 더군다나 나라를 제도하고자 하는 경륜은 처음부터 없다. 그러니 그 속에서 나온 대통령 노무현이 NLL을 부정하였다는데 아무도 자책하는 사람도 없는 정치권이다. 지난 이명박정부 때부터 1%에 머물러 있는 경제를 살려보자고 외쳐댄 대의기관이 존재하였나? 지금 이미 새정부 출발한지 언제인데 아직도 대통령부정선거타령이나 하고 있는 대의기관이다.

   한국의 정치권은 이론상 나를 대신한다는 의미의 기관임은 틀림없지만, 발전된 사회를 대변하기에는 너무 부족하고 하는 행동은 실례지만 시정잡배 수준도 못된다고 평가한다. 더군다나 정치권을 국민의 지도자라는 개념은 아예 맞지않는다고 평가한다. 그렇다고 직접민주주의의 대안이 없으므로 대의정치를 마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한국의 정치권에 대한 평가는 그냥 직업인으로 취급해야 옳다고 본다. 사회의 취업기회가 여러방법으로 열리는데, 정치권은 선거를 통해서 얻은 하나의 직업인으로 인식하고 거기에 맞는 사회적 대우를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일은 하지않으며 대우는 장관대우를 받아야 한다면 현대사회에서 넌센스일 뿐이다. 부동산 대책이 시급하다고 하면서 지난 8월 달에 내어놓은 취득세율 인하 관련법 개정을 11월에 그것도 큰 일이나 하는 것처럼 처리에 합의하였단다. 이들에게도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이 물론 적용되어야 한다.  현재의 정치권은 대오각성해야한다. 대의정치의 함정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2013년 10월 25일 금요일

잘난 선조, 못난 후손(장보고 중국유적지 답사기)

   우연한 기회에 '장보고 중국유적지 답사'여행에 참여하게 되었다. 한국해양재단의 주선으로 지난 주 10월 15일 출발한 우리 일행은 중국 웨이하이와 옌타이를 거쳐 칭다오를 들러보는 2박3일의 여행을 하게 되었다. 지금부터 약 1200년 전 신라인으로 중국 산동반도와 일본을  연결하는 3각무역을 총괄한 장보고대사의 유적을 찾아보는 여행길이다.

   나는 부끄럽지만 솔직히 말하여 장보고대사의 큰 업적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살아왔다. 단순하게 신라시대의 해상왕이라는 초등교육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손주 놈이 노래로 역사공부 할때 옆에서 들어본 것이 장보고 대사에 대한 나의 지식의 전부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참여동기 자체도 중고선생님들의 여행길에 선상강의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어 배타는 호기심에 좋다고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내가 순전히 가르침을 받는 이런 스터디투어로 바뀌어 나는 의외의 큰 소득을 얻게 되었다.

   나는 무엇보다 해상왕 장보고 선조의 큰 위업 앞에 옷깃을 여미고 경의를 표하였다. 790년경 탄생하신 것으로 추측되는 장보고대사는 841년 피살될 때까지 조국 신라와 중국 그리고 일본을 아우르는 3각무역을 일으켜 이를 관장한 선각자이시다. 그에게는 시대에 따라 당나라에서 무령군소장, 신라로부터 청해진대사, 진해장군등 여러직함으로 불렸지만 그에게 지금 합당한 직함을 붙인다면 해상왕이 적합할 것 같다. 장보고대사는 중국 산동반도에 신라방을 만들어 신라인들의 활동무대를 구축하고, 이어 신라조정에 탄원하여 신라 최남단 지금의 완도에 청해진을 만듦으로써 3각무역의 본거지를 구축하여 이를 토대로 동아시아 해상무역을 총괄하고 지배한 위대한 우리의 선조이셨다.

   우리 모두는 이순신장군을 왜군 앞에서 조국을 구한 위대한 선조로 존경한다. 이순신장군이 더 위대하였던 것은 당시 나약했던 조선 문신들의 모함과 질시 그리고 배척 앞에서 굳건하게 버티면서 앞에 닥아오는 왜구를 끝까지 퇴치한 자랑스런 우리의 선조이셨기때문이다. 지금도 광화문 네거리를 지날때 한국인이라면그분의 동상 앞에 언제나 숙연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장보고 해상왕은 임진왜란보다 800년이나 앞서 중국과 일본을 아우르는 무역거점을 이룬 분이다. 이순신장군이 침략하는 왜적을 물리친 우리의 빛나는 무관선조이셨다면, 장보고대사는 당시 신라 중국 일본을 아우르는 아시아 경제권을 제패한 해상왕 선조이셨다.

   그런데 나를 포함한 많은 한국사람들은 지금도 이순신장군은 잘 알고 존경하지만, 해상왕 장보고는 잘 모르고 살고 있다. 그 이유는 물론 긴 시간 간극이 가져오는 망각이 제일 클 것이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우리 못난 후손들이 그의 위대함을 발현시키지 못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배운 것은 당시 장보고대사의 세력이 강해지자 신라왕조 선비들이 그것을 맊고자 자객을 시켜 장보고를 살해하였다. 물론 전후사정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당시의 문신들은 자기들의 세력을 지키기위하여 장보고를 제거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가 필생의 사업으로 이루어놓은 청해진을 폐쇄해 버린 것이다. 조선 땅에 어렵게 만들어 놓은 국제무역의 본거지를 없엠으로서 해상무역을 원천봉쇄한 것이다.

   그리고 더 참담한 것은 장보고의 업적을 사실(史實)로서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장보고의 업적은 중국이나 일본문헌들에는 존재하고, 그것을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원용하여 전하여지고 있다고 한다. 장보고대사의 업적은 훗날 일본의 엔닌(圓仁)대사의 일기를 통하여 전하여지고, 그것을 미국의 역사학자이며 당시 주일미국대사이었던 라이샤워의 책으로 세상에 알려졌다고 한다. 후손으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당시 우리의 선조들은 장보고대사의 업적을 역사로 남기지 않았을까? 왜 중국이나 일본 그것도 미국사람까지 훌륭한 해상왕으로 칭송하던 장보고 대사의 일을 기록하지 않았을까? 당시 중국인이 조선을 깔보는 동이(東夷)이었기 때문일까? 또 장보고가 미워 살해하면 되었지 왜 청해진을 폐쇄하여 해상무역의 본거지 조차 없에버린 것일까? 만일 청해진이 그대로 남았으면 훗날 누가 다시 해상무역을 시도하고, 제2의 장보고대사가 나오지 않았을까? 3면이 바다인 조선반도가 다시 바다문을 쳐닫은 신라시대 우리의 못난 선조의 모습을 우리는 본다.

   그리고 다시 800년의 세월이 흘러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선왕조는 갈팡질팡이었다. 만일 이순신장군이 없었으면 과연 조선조는 지탱 될 수 있었을까? 그래서 풍전등화에서 왕조를 구한 조선선비들은 개과천선 국방에 목숨을 바쳤나? 아니다. 다시 당파싸움만 하며 세월을 다 보냈다.

   그리고 다시 200년 세월이 흘러 1894년 전봉준의 난이 일어난다. 가렴주구에 빠진 지방토호에 맞선 전봉준은 동학난을 일으킨다. 불과 200년전 임진난을 치르고 난 이씨조선 문관들은 사색당파 싸움에 여념이 없던 차 전봉준의 난을 보고 어마뜨거워라 하고 청나라에 구원병을 청한다. 사실 현재의 전북지역에서 일어난 일종의 지방민중봉기 하나를 제어하지 못하고 그것도 외국에 원병을 청한 당시 조정의 우리 선조가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불과 200년전 이순신장군의 살신보국의 충절은 후손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이를 계기로 왜군의 발호가 조선반도에서 일어나게 만들었다. 이것이 결국 청일전쟁의 단초가 되고 1905년 일본은 조선왕조를 찬탈 한다. 여기에 우리의 못난 선조의 모습이 있다.

   만일 우리 선조들이 1200년전 장보고의 해상왕국을 지키려는 자세를 가졌었더라면 오늘날 우리 한반도는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에 가정이야 없지만 장보고 이후 700년 800년 후 영국 불란서 독일 네델란드 스페인 포르트갈 등 많은 해양진출국가들이 중국대륙을 침탈하였다. 중국대륙을 마치 큰 소에 비유한단면, 이런 외세들은 소의 발, 꼬리, 다리, 허리 할 것없이 야금 야금 중국대륙을 먹어갔다.

   그때에 중국의 산동반도에 조선의 무역기지가 있었다면 어떻했을까? 기록에의하면 당시 중국에 5만여에 달하는 외국인이 들어와 이있었다는데 그중 신라인들이 어떤 역할을 하였을까? 독일인, 화란인들이 그렇게 쉽게 산동반도를 차지할 수 있었을까? 아니 신라인이 산동반도를 자기들 것으로 차지할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임진난 이후 조선조 후기 선비들이 국력을 국방과 경제력에 나누어 힘을 길렀으면 조선이 그렇게 어이없게 무너졌을까? 200년도 안 되어 지방에서 봉기가 일어나자 우리 선조는 우선 외국에 그 진압을 부탁하는 못난 짓을 하고 나섰다.

   또 그리고 60년의 세월이 흘렀다. 다행이 오늘을 사는 우리는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다. 단군 이후 처음 맞은 이 경제적번영 앞에 우리 모두 뿌듯한 마음이다. 그러나 오늘이 오기까지 우리 모두는 많은 우여곡절과 어려움을 겪어왔다. 6.25 김일성남침, 절대빈곤, 경제개발계획추진, 민주화쟁취 이런 일들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역사이다.

   그렇다고 장보고 이후 우리 선조는 모두 못난 선조이고 오늘을 사는 우리는 잘난 후손이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우리 선조들도 현재의 우리 못지 않게 훌륭한 선조였다. 다만 역사를 되짚어보면 이런 못난 면도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지금을 사는 우리의 못난 면은 또 얼마나 많을까?

   무엇보다 현재 우리의 폐쇄성을 제기하고 싶다. 장보고 이후 보여준 신라인들의 폐쇄성이나, 이조 후기 우리선비들의 폐쇄성은 오늘 우리를 후회스럽게 한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는 어떤가? 지금은 개방이나 무역자유화가 우리에게 그리 큰 이슈가 아니다. 그러나 불과 30년 전 1970년대 후반 한국경제가 개방을 시작할 때 정치권은 말할 것 없고, 한국의 모든 언론들조차 개구일성 반대였다. 지금 한국을 대표하는 큰 신문들이 앞장서 당시 정부의 무역자유화나 섣부른 개방이 나라를 망친다고 비난하였다. 옛날 폐쇄성의 부활이다. 부존자원이라고는 사람밖에 없는 한반도가 그것도 북쪽은 막혀있어 3면밖에 없는 섬나라 같은 한국이 발전할 수 있는 길은 개방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신라의 장보고 때나 지금이 무엇이 다른가? 개방을 하려면 경쟁력을 길러야한다. 경쟁력은 기술개발이나 물가가 싸야 가능한데 그를 위한 안정화노력과정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얼마나 고초를 겪었나? 임금동결, 추곡수매가동결, 예산동결등 지옥같은 세월을 우리는 겪었다. 1970년대 말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반대세력 앞에 맨몸으로 칼 앞에 서야만 하였다. 그 시절이 없었으면 어떻게 한국이 기술개발이 되고, 재정이 건전하여지고, 물가가 안정되었겠나? 거저 찾아온 발전은 없다.

   지금 오늘을 사는 우리 앞에 놓인 장애는 두가지다. 그 하나가 정치권의 근대화다. 지금 우리가 보수. 진보하면서 억지로 편갈라 싸울땐가? 대통령을 잘 못 뽑으니 NLL이 있느니 없느니한다. 영토권을 포기하는 것도 대통령인가? 이 책임은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우리 모두에게 있다. 아직도 잔당들이 남아 기네 아니네 하지만, 지금 다 지나간 이슈가지고 패거리 싸움만 하는 것이 정치권이다. 구태고 폐쇄성이다.

   MIT대학의 에이스모글루는 그의 최신 저서 'Why nations fail?'에서 나라의 패망역사는 개방이 아닌 붕당. 폐쇄성에서 찾았다. 지금같은 우리의 패거리 정치풍토는 조선시대의 사색당파싸움을 연상시킨다. 빨리 제거되어야 할구태이다.

   다음은 아직도 역사의 저녁노을 구름 뒤에 숨어있는 것 같은 종북세력의 문제이다. 이념의 시대는 이미 지났고 한국의 종북세력도 이념보다는 단순이 북괴를 따르는 무리에 불과하고 그 수도 소수에 불과하다. 어느시대나 이런 세력들은 있게 마련이지만 이들은 어떻게하면 현재의 번영을 무너트릴 것인가를 꿈꾸고 있다. 우리 사회가 그들에 대하여 너무 너그럽거나, 무서워하는 것 같다. 이들도 하루빨리 자연스럽게 사회의 건전한세력으로 변화 흡수되어야 한다.

   나는 장보고대사 앞에서 감히 역사발전의 흐름을 제기하고 싶다. 2차세계대전 후 세계는 선진국과 후진국으로 나뉘었고, 후진국의 절대빈곤 퇴치와 경제개발에 노력하여 왔다. 자연스럽게 선진국을 중심으로 무역자유화가 화두가 되었고, 세계는 20세기 후반 작은 지구촌을 토대로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거대한 담론을 제기하였다. 세계화 앞에 소수의 개발도상국은 선진대열로 합류하기도 하였지만, 더 많은 수의 개발도상국들은 거대해진 세계경제 앞에 더 작아지는 모습으로 변하였다. 신자유주의를 토대로한 세계화경제운영은 급기야 선진국들 사이에서도 시장이 무너지고, 나라운영이 주저앉는 볼상사나운 모습을 자아내고 있다. 선진국의 치부가 드러난 모습이다.

   제3차산업혁명을 주장하고 있는 제러미 리프킨같은 학자는 이제 세계경제는 세계화를 넘어 대륙화(continentalization)로 이행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끼리끼리 이해가 맞는 이웃과 공생하는 경제를 대륙화라고 한다면, 이것이 결국 장보고대사의 해상거점전략과 상통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장보고대사의 역사는 지금도 살아서 우리 후손의 길을 인도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오늘 우리 앞에 놓인 어려움이나 과제들이 비단 이것뿐이겠나? 그러나 이런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자연스럽게 정리되는 것이 역사이다. 다만 역사 앞에 그리고 장보고대사 앞에 우리는 못난 후손이 되지말아야 한다. 내 자신 좀더 일찍부터 한국경제의 발전동력을 교역의 확대 뿐만아니라 교역확대의 거점을 찾아 나섰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역시 나는 못난 후손인가보다.


























2013년 8월 14일 수요일

정치논리에 함몰된 세제개편

   2013년 8월 12일 박근혜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기획재정부가 준비한 종합세제개편안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라고 지시하였다. 물론 아직 국무회의의 의결 전 준비과정이지만, 이미 당정협의와 국회를 통한 상임위원회 야당의원들과도 소통을 한 기본안이 야당과 언론에서 비판여론이 높아지자  대통령이 나서서 진화를 하는 모양새를 가추면서 원점회귀를 지시한 것이다.

   이 일을 책임진 기획재정부는 '멘붕' 상태로 되었고, 정치공세를 잔뜩 준비한 야당은 공격타겟이 사라지자 관계자 문책요구를 하고 나오고 있다. 이러자 여당의 약삭바른 국회의원 중심으로 현 경제팀의 교체를 요구하고 나오고 있다. 이미 관심사는 세제개편의 내용이 아니고 누구누구를 내쳐야한다는 정치공세로 들어가 있다.

   대통령의 말씀 중 이미 함의가 깔려있는 국민과의 사전 소통 부족을 이유삼아 여야 정치권 그리고 일부 언론에서는 현 경제팀의 무능력까지 문제삼으려 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기획재정부는 부랴부랴 조정안을 만들어 지시를 받은 다음 날 8월 13일 오후 당정협의에 보고하였고, 거기서 과세기점을 당초안 345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상향되고, 고소득계층에 대한 징벌적 증세가 이루어지도록 하였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아직 정부 안이 확정된 것도 아니고 무슨 변화가 또 나올지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논쟁의 초점은 큰 수정을 가한 결론이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자 그렇다고 해서 '이제 그만하면 되었다'고 정부나 여당안을 지지하고 나서는 정치권이나 언론은 없을 것이 뻔하다. 그 이유를 들어보자. 첫째, 과세기점을  5500백원으로 상향하였다고 해서 소위 '거위 깃털 뽑기' 분쟁이 사그러드느냐? 아니다. 여전이 남는다. 5501만원대의 소득계층에서는 왜 하필 나인가? 나는 살기가 넉넉한 줄 아느냐? 언제나 한계계층은 존재하게 마련이다.

   둘째 이름이 보편적 복지던 선별적이던 대세는 보편적 복지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이 현재 한국의 복지개념이다. 선거기간중 남발되고, 다다익선으로 치달았던 정치공약에 대한 정돈이 없이 무턱대고 재원염출을 한다면 과세기점을 오히려 '개세'원칙으로 가야하는데, 연소득 3450만원은 가난한 계층이니 부담에서 제외한다고 한다면 이것은 복지공약을 손대야 하는 것이 옳은 접근방법이 된다. 그것을 정치적으로 5500만으로 상향한다면 과제부족분 연 4400억원(추산)은 어떻게 보충하나? 또 그렇다면 5499만원 소득자는 가난한 계층으로 분류될 수 있나?

   셋째 다른 쪽에서는 도대체 대통령이 한마디 지시하니 하루밤 사이에 과세기점이 60%나 상향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다른말로 하면 세제개편정책이 이렇게 가볍게 정치적고려에 의하여 크게 뒤바뀔 대상인가 일반인들은 의아할 것이다. 그러면 왜 5500만원인가? 1억, 아니 10억으로 하면 대부분 모두 세금공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정책의 신뢰가 무너지는 대목이다.

   현재 민주당이 주장하는 보편적복지를 하려면 절대빈곤을 제외하고 모두 세금을 내야 할 것이다. 물 위로 올라온 복지혜택만 정치공약으로 내 걸고, 물 밑의 세금정책은 감추어 놓는다면 그것은 정치사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민주당은 알아야 한다. 그것을 누더기로 가려놓은채 3450만원 과세기점이 가난한 유리지갑이라고, 부당하다고 백만 서명운동을 버리겠다고 으름자장을 놓는다. 그것이 무서워 대통령은 원점회기를 명한다. 그러니 하루밤 사이에 과세기점을 60% 상향하는 정책을 내 놓는다. 모두 경제정책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라고 할 것이다. 무책임하게 지하경제를 양성화하여, 또는 고소득 탈세 중과도 실체를 전망할 수 없는 말작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책임의 극치라고 생각한다. 또 이 경우 고소득 세금탈루자는 나만 재수업게 그러냐 불만이고 정치권에서는 왜 더 징벌적으로 하지않느냐고 불만을 터트릴 것이다.

   그렇게 하위소득계층의 세금 걱정을 하는 국회는 2012년 자기들의 소득수준을 종래의 차관급 수준에서 장관급수준으로 일거 대폭 상향조정하고, 그것도 모자라 꼼수를 써서 세금 내는 기본급은 3.6% 인상하고 기타 활동비를 60%가까이 상승시킨바 있다. 언제부터 국회의원이 장관급 봉급을 타지 못하여 일을 잘 못하였나? 업무활동비는 소득이 아닌가? 제눈의 들보는 보지 않는 정치권부터 고소득권으로 징벌적으로 과세하고 담세해야 할 것이다.

   넷째 공격대상을 잃은 정치권이나 언론들은 현 경제팀을 교체하라고 외쳐댈 것이다. 자 그래서 새 경제팀에서 세제개편안을 다시 만든다고 해서 문제의 본질이 해결되느냐 하면 그것은 절대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오히려 관료들의 정책전문성 만 회손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 일이 이렇게 뒤틀어지게 된 가장 큰 책임은 박근혜대통령에게 있다. 원천적으로 따져올라가 복지, 경제민주화를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면 그에 맞는 대응책을 강구해야하는데, 그래서 정부에서는 이를 감당할 대안을 마련하느라 여섯달을 밤낮없이 고생해서 만들어낸 대안을 마치 남의 일 보듯 내쳐버린 것이다. 취약계층의 유리지갑을 열게하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야당정치꾼들이 반대서명운동하겠다고 하니까 이게 무서워 대통령은 도망치고 만 결과가 되었다.

   그러면 대통령은 그동안 기획재정부에서 준비한 세제발전심의회 의안 내용도 비서진으로부터 보고 받지 않았단 말인가? 이번 세제개편의 목적이 무엇보다 공약사업 수행을 위한 재원마련이 목적이라는 인식도 대통령은 없었단 말인가? 공약사업으로 말이 138조원이지 이것이 어떻게 지하경제를 현실화하여 보충이 될만한 것인가?

   나는 박근혜대통령의 지지자이다. 그분의 확실한 국가관 그리고 안보관을 지지한다. 취임 이후 박근혜대통령은 대미 대중외교에서 괄목할만한 족적을 남긴 분이다. 현안의 남북관계, 대일관계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정세를 이끌어가는 훌륭한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제 남은 과제 중 중요한 것은 경제다. 그 앞에 경제정책이 있다.

   경제정책의 핵심은 전문관료들에게 맡겨야 선진국이 된다. 역대 대통령 중 관료의 전문성을 외면하고 불신한 대통령이 성공한 예는 없다. 경제정책이 정치논리로 휘둘리는 나라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경제논리를 정치논리에서 지켜주는 디딤돌은 대통령의 책무라고 할 것이다. 루이14세의 정치공약에 맏서 경제정책의 기본을 지킨 콜베르 당시 재무장관을 후인들이 칭송함은 바로 경제정책의 '신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2013년 5월 31일 금요일

박근혜정부의 국정운영 제언 - 5. 정치권개혁 실마리 풀지못하는 정치운영

   박근혜정부 출범 3개월은 어설픈 긴박과 초조가 함께한 시간으로 정리할 수도 있다. 어설픈 긴박은 출범초 국방장관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김정은은 하루가 멀다하고 장거리로켓 발사, 3차핵 실험 그리고 남쪽 불바다론 등으로 우리를 긴장시켰다. 물론 거의 모든 한국사람들이 북한이 섯부른 전쟁을 일르킬 수 없으며, 그런 능력도 없다고 믿고 있지만 하도 외쳐대는 망나니 쇼에 남한도 긴장을 눚출 수 없다. 그래서 어설픈 긴박과 초조가 함께하였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박근헤대통령은 취임초 정부조직개편과 정부 구성에서 어설픈 아마츄어리즘을 들어냈다. 미래창조과학부를 가지고 한달여 시간을 소비하더니 국무총리 및 장관들의 인선에서 기대보다 실망스러운 과정을 거쳤다.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보다는 아집과 베일이 상징되는 기간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 정치권은 다시 한번 국민에게 큰  실망을 주었다. 여야 공이 제 몫을 하지 못하였다. 여당은 과반수의 다수당인데 도대체 존재하는 지 조차 의심스러운 소극성을 보여주었다. 집권정당으로서 새정부와의 아이덴디티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아무것도 한 일이 없고 그저 하루하루 민주당의 장단에 놀아났다.

   통합민주당의 태도는 더욱 실망스러웠다. 정부조직법에서 보여준 무조건적인 반대가 무엇을 뜻하는가? 정치논리로 본다면 국민이 뽑아준 대통령이 임기 중 국정을 운영하기 위하여 정부조직을 이렇게 이렇게 하겠다고 하면, 당연이 그것을 일단 하도록 하고 그 결과가 나쁘면 비판을 하던지 해야지, 처음 출발도 하지 못하게 이것을 가지고 흥정하듯 하는 것은 민주주의 정당 그것도 수권경험이 있는 정당으로서 있을 수 없는 행동이었다.

   인사청문회를 한다고 개인의 사생활 그것도 남의 조상이 어떻고, 소유빌딩의 임차인이 성매매행위를 한다던가, 장관후보자가  관련부처 업무와 전연 상관이 없는 개인 활동과 관련하여 이러쿵저러쿵하는 등의 에피소드 만드는 일에 민주당은 앞장섰다. 그것도 종북활동을 내놓고 하고 있는 정당과 통합하여 그들을 앞세워 매일매일 가십성 기사를 만드러내는데 여념이없어 보였다. 민주당의 안목에는 국가경영이나 국민의 이익 같은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듯 싶다. 국민의 시각에서는 그들에게 월급을 주기위해 내는 세금이 아까울 지경이다.

   그렇다면 집권여당이나 야당의 이런 실망스런 정치에 국민은 어떻게 평가하고 대처해야 하나? 그 책임은 모두 정당에만 돌릴 수 있나? 궁극적으로는 이런 정치집단을 만든 책임이 물론 정당 그리고 현재의 정치인에 있지만, 그 잘못된 정치로 파생된 국가운영의 잘못에  대통령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나?

   박근혜대통령은 엊그제까지 새누리당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었고 새누리당의 공천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분이다. 책임의 원천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민주당은 지난 수십년의 정당역사와 전통이 있고, 가깝게 10년의 집권경험을 가지고 있는 전통정당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몸 바친 그들의 자랑스런 선배가 있는 정당이 최근 정통성을 잊은채 이사람 저 사람 끌어들여 소위 '통합' 당을 만들었다. 새로운 통합을 통한 시너지보다는 오합지졸로 전락한 민주당은 그 본연의 모습을 대통령선거 이후 지난 3개월여에서 여실이 보여주었다.

   북에서는 매일매일 남쪽을 집어삼키겠다고 어름장을 놓고 있는데 민주당은 아랑곳하지 않고 미래창조부의 일부기능을 어디에 주어야 한다고 외쳐대고 있고, 통상기능을 산업부에 붙이는 것이 부당하다고 우기고 있다. 물론 이런 주장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새로 들어서서 일하겠다는데 그것을 알량한 논리를 가지고 막무가내로 버티면 결국 정부가 굴복할 것이라는 초등학생같은 지적능력을 발현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은 매일 쳐들어올 것처럼 을러대는데 국방장관후보자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반대만 하고 나섰다.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가? 북에서 도발을 하던 말던 그것은 나는 책임이 없다는 것인가 아니면 이미 그들은 친북세력과 연합하여 있으니 북이 도발할 수 없음을 알고 하는 행동하는 것일까? 국민의 입장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야당의 작태라고 평가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 대통령은 어땠나? 유연성이 부족하였다고 종합평가할 수 있다. 사후적으로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대통령은 여와 야 모두를 끌어안지 못하는지 알 수가 없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여당을 야당을 모두 비판하고 욕을 할 수 있지만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정치권을 외면하고 국가운영을 할 수 없는 한 처음부터 이들을 왜 끌어안지 못하는지 답답한 마음이다.

   미국의 오바마대통령이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민주당이나 공화당 모두를 상대로 함께 정치해가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 모델이 한국에서는 왜 되지않느지 알 수가 없다.

   첫째 이제 대통령이 너무 권위적일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지금 한국정치에서 대통령과 국민은 많이 가까워졌다. 무슨 일이 생기면 대통령은 국민과 소통하려 노력한다. 국민도 대통령이 나의 편이라는 생각이 전보다 훨신 높다고 생각한다. 다만 청와대 담벼락을 너무 높게 만들었다. 현대 민주주의 대통령은 권위주의에서 탈피해야 한다. 권위는 유지하되 권위주의는 이제 의식적으로라도 없에도록 노력해야 한다.

   둘째 대통령은 직접 정치를 해야 한다. 정치는 여당사람들에게 시키고 나는 국가운영에 전념한다는 논리는 전근대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명박대통령은 자기는 정치를 떠나 국가경제운영에 전념하겠다고 선언하였는데 두마리 토끼를 다 잃은 것 아닌가? 반대로 대통령은 안보와 정치에 전념하고, 나머지 국정운영은 총리 이하 내각에 맡기는 것이 맞지 않나?

   셋째 새누리당 사람들과 함께 일체감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친박, 비박이라는 개념이 지금 무슨 문제가 되나? 당의 대표던 원내대표던 함께 붙들고 고민하며 국민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넷째 아무리 야당의 꼬락서니가 사납다고 해도 그래도 박근혜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임기중 그들을 붙들고 나라를 운영해야 한다. 왜 대통령은 야당대표와 함께 어울리고 고민하고 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지 못하는가? 정부조직법이 야당이 반대하면, 국방장관이 야당이 반대하면 왜 대통령을 그들을 직접 상대하여 설득하지 못하는가? 아랫사람 위사람 가르며 정치하던 것은 지난 시대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다섯째 지금 대한민국에서 국회보다 막강한 조직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중요한 일일수록 국회와 연관되지 않는 것이 없으며 국회의원은 하나하나가 독립된 헌법기관이다. 지금처럼 국회가 정당별로 별 통합된 지휘능력도 없으면서 마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정치의 근본이라고만 생각한다면 매사 어렵게 어렵게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그야말로 한국정치의 파라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책임은 없고 권한만 있는 국회의원, 정당운영의 패거리정치, 선거 다음날로 국민을 잊어버리는 국회의원의 행태 이런것들이 이제 새로운 생산적이고 책임이 따르는 국회 그리고 정치로 변해야 한다. 정치도 능률을 최고의 가치로 도입해야 한다. 그 앞장에 대통령이 서야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박근혜대통령은 여성으로서의 섬세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소신과 결단력이 함께 있는 지도자로 나는 평가한다. 새누리당이 곤경에 처해있을 때 보여주었던 그의 리더십 그리고 선거때마다 국민에게 다가갔던 부드러움을  대통령으로서 한국정치의 새 파라다임을 만들어가는데 발휘해 주기를 바란다. 박근헤대통령이 이 일에 가장 적합한 지도자로 나는 평가한다.



























2013년 5월 30일 목요일

박근혜정부의 국정운영 제언 - 4. 선거공약 굴레에서 벗어나라

   민주주의의 사회에서 어느 정부던 국민에대한 선거공약을 토대로 집권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국민과의 약속이고, 신의이고 그리고 정권의 정책가치이기도 하다.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박근혜대통령은 어느 집권자 보다 국민과의 약속을 철저하게 이행하려는 의지가 있는 분으로 많은 사람들이 평가할 것이다. 그래서 그분을 신뢰하고  지지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가깝게 세종시 문제가 이슈로 되었을 때 건곤일척 그것은 '내가 약속한 것이므로 세종시 건설을 찬성한다'고 선언한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이러한 그분에 대한 정치적 신뢰가 지난 대선에서 충청지방의 지지를 이끌어냈다고 할 수 있다. 개인간의 관계에서 신뢰는 미래가치 창조를 위한 첫 걸음이 되는 것과 같이 대의정치에서 신뢰는  국민지지의 초석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신뢰가 정치인으로서 가장 큰 덕목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신뢰를 토대로 정치에서는 선거공약이라는 것을 내 걸게 된다. 논리적으로 선거를 치르면서 국민은 선거공약을 토대로 어느 특정인이나 사안을 지지하게 되고, 이것을 선거 후 이행되는 것을 담보로 하게 된다.

   문제는 선거공약의 내용이다. 공약 내용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고 해서 그것이 가장 합리적인 공약이라는 담보는 없다. 공약내용의 질을 평가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다다익선인 복지공약이나 공정거래질서의 확보, 특정사업의 지역유치 공약등은 그 실현능력의 검증이 문제이고, 국민부담을 최소화하는 절세나 감세, 의료부담 절하 등은  도덕적 해이도 문제 된다.

   선거공약이 정치행동의 특성상 세밀한 연구검토 후에 확정되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다급하고 초조하다고 해서 선거공약으로 내거는 내용의 한계성은 존재하게 된다. 무엇보다 국가의 기본이념을 부정하거나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질서를 파괴하게 하는  것을 전제로 한 공약은 존재가치가 상실된다고 할 것이다. 다음은 아무리 이념이 지고지선한 것이라도 실현성이 불가능한 공약은 공약으로서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부문에 관한 것은 국민의 판단에 맞길 수밖에 없다. 전자가 대한민국의 국시를 부정하는 공약과 같은 것이라 한다면, 후자는 당장의 실현이 어려운 공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전자는 처음부터 성립될 수가 없는 것이고, 후자는 국민의 선택으로 판단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박근혜대통령의 대선공약에서 후자와 관련된 공약을 큰 묶음으로 정돈하면 경제민주화 관련 공약과 복지관련 공약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두 부문과 관련된 공약은 모두 다다익선의 내용들이다.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헌법 119조의 해석은 자유시장질서와의 상충과 맞닥드리게 된다. 복지증대공약은 국가의 순기능으로서의 타당성을 갖지만 당장 재정능력의 한계와 도덕적해이 문제와 맞닥드리게 된다. 그래서 인기영합주의(populism) 이야기가 함께 나오게 된다.

   그래서 이러한 인기영합성 공약을 보수성 정당보다는 진보성 정당에서 더 선호하게 된다고 일반화 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 대선에서 보수의 지지기반 위에 서 있는 박근혜대통령후보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공약을 야당에 앞서 공약에서 선점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야당을 무난하게 누를 수 있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이번 6월 임시국회에서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법안 수십개가 논의된다고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개별개별 법안의 시시비비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여당인 새누리당은 말할 것 없고 야당인 민주당은 자기들의 존재가치를 나타내고자 강도가 더 높은 경제민주화 관련법의 추진을 추구할 것이다. 복지공약도 같은 맥락에서 다다익선으로 치달을 것이다.

자.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이 이에대한 박근혜정부의 스탠스이다. 세계경제전망, 자본이동,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능력, 2013~2014년의 경제성장과 고용전망 이런 흐름들이 박근헤정부가 딛고서서 판단하게 될 국정운영의 정책변수가 될 것이다. 지금은 대통령후보로서의 다급함에서 벗어나 국정운영을 책임지는 위치에서 선거공약들을 점검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내가 약속한 것이기 때문에 지지를 한 세종시 건설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될 것이다. 대통령은 국정운영의 최종책임자로서 선거공약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완급조절의 문제라고 이해하고 냉정하게 다음과 같이 접근하기 바란다.

   첫째 새 정부의 국정운영의 우선순위는 시장경제의 창달에 두어야 한다. 아무리 창조경제가 중요하다 하여 정부가 나서서 좌지우지해도 안 되고 섯부른 인센티브를 가지고 시장을 간섭하려들어도 안 된다. 경제민주화는 이미 선거과정을 통하여 이해기반을 많이 넓혔다. 오히려 지나친 기대감이 자유경쟁을 해칠 우려마저 제기된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경제민주화는 제도화 보다는 분위기조성, 이해기반 확장 등에 주력하는 것이 더 현실적일 것으로 판단된다. 지나친 제도화의 틀에 얽매이는 것은 시장의 탄력을 죽일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다.

   둘째 복지는 최대한 노력하되 부담의 한계를 어느 매크로 지표에 연계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예를 들어 GDP가 되었던 일반재정규모가 되었던 복지의 한도를 연계하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 좋을 성 싶다.

   셋째 정책의 운영을 종합적 시각으로 포용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무엇을 위하여 무엇을 안한다는 개념은 즉 복지증진을 위하여 SOC 투자를 하지않는다는 개념 같은 것은 능력의 한계를 보다 강조하는 면은 있지만, 국가경제는 종합적인 결과이지 어느 특정부문에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선택과 집중(trade off) 보다는 종합하는 안목(comprehensiveness)을 가져야 할 것 같다.

   넷째 같은 맥락에서 외면되는 노동, 금융 등 매우 중요한 부문에 대한 무관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히려 선별적 업종편애가 이명박정부의 무기력경제를 만든 원인(遠因)이 되었던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좀더 종합적인 각부문 아우르는 활성화정책을 추구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된다.

   다섯째 어느 언론인이 사용한 말인데 '집단지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선심성정책을 사용하면 할 수록 치열한 경쟁은 없어지고 이에따라 경쟁력은 전반적으로 하강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자유시장질서를 망가트리고, 국민 전체가 집단지력이 떨어지는 상황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대한민국 전체의 경쟁력이 향상되는 방향으로 국가운영의 틀을 잡아가야 할 것이다.































2013년 5월 11일 토요일

박근혜정부의 국정운영 제언 - 3. 이론함정에 빠진 경제운영

   박근혜정부가 출범한지 두달이 지났지만 국민 모두는 김정은의 핵 위협 앞에 정신이 빠져 있다가, 박근혜대통령의 방미외교 성과 앞에 정신을 가다듬고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긴급하다고 법석을 떨던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이 국회의 한심한 늑장대응 앞에 한달이 지난 다음 겨우 국회를 통과하였다. 네밀락내밀락하던 한국은행의 금리인하도 동결 후 한달이 지난 5월 금통위에서 인하결정을 내렸다.

   이제 겨우 국민들은 혼돈에서 깨어나 현실을 깨닫고 있을 것이다. 아 한국경제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지, 실업이 문제지, 성장동력을 잃었지, 경제민주화한다고 하였지, 개성공단에서 철수하였지, 이런저런 생각 속에 자기 볼을 꼬집어보고  그제사 자기가 서 있는 곳을 살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박근혜대통령은 방미기간 중 미국의 벤쳐기업들과 자리를 함께하며 이 정부가 추진하려는 '창조경제'의 내용을 자신있게 설명하였다는 보도가 나온다. 국내에서도 경제부총리가 벤쳐기업들을 찾아 창조경제의 방향을 설명하였다고 보도가 나온다.

   자 그러면 이 정부의 경제정책은 현실화 단계에 들어갔다고 평가할 수 있다. 17조원이나 되는 재정확장이 이루어지고, 금리인하도 이루어졌다. 박대통령의 방미로 김정은의 천방지축은 잠정적으로 소강을 이룰 가능성도 생겼다. 그렇다면 이제 경제의 회복 차례(turn)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아직은 경제회복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만 하기에는 문제가 너무 많이 제기된다고 이야기해야 겠다. 국민경제운영이라는 차원에서 큰 문제 몇가지를 제기하여 새로운 정책운영의 길을 찾아보고자 한다.

   첫째 박근혜정부의 경제정책은 너무 이론에 빠져있다고 할 것이다. 경제민주화나 창조경제 모두가 그 개념에 있어서는 논리성이 있고 경제이론적으로도 큰 무리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우선 경제민주화는 지금 경제가 어려워서인지 그 말 자체가 사라진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 경제운영에서는 많은 비중을 가지고 현실화되고 있다. 갖가지 복지정책이나 공정질서의 확립을 위한 시장의 욕구는 그 이름이나 논리성(legitimacy) 이상으로 강조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경제정의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잘 되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기대와 실현가능성과의 간극을 어떻게 메워가느냐가 정부의 부담으로 남게 된다.

   더욱 심각한 현실적인 문제는 창조경제에 있다. 기술의 융합(convergence)이 가장 큰 과제로 떠오르고 있고, 이것을 제대로 실현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 시장의 우위를 점하는 길임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과제가 아니다. 문제는 어떻게(how)다. 그래서 새 정부는 고집스럽게 정부조직도 개편하고 기회있을 때마다 박근혜대통령 스스로 그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논리성면에서 옳은 방향의 설정인데 이것을 실현하는 정책수단의 집합이 그리 녹녹해보이지 않는다.

   1970년대 한국이 중화학공업개발을 추진할 때 그 개념정리에서부터 유인제도의 설정, 구체적인 사업의 선정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완전히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정부주도경제가 될 수 없다. 시장이 커졌기 때문이고 경제구조가 성숙되었기 때문이다. 창조경제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정부가 인식한다 하더라도 시장이 이를 뒷밭임할 수 있도록 하는 유인제도가 그리 녹녹하지 않다. 위험부담의 배분(sharing)도 어렵다. 벤쳐기업육성만으로 이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더더군다나 단기적인 경기회복에 이것이 기여하기에는 현실적제약이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경제민주화나 창조경제 모두 이론의 함정(theory trap)에 빠져 있는 기분이다. 이러한 정책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정책화가 아직 미진한 것 같다. 또 이 정책추진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점은 단기적 경제회생과 잘 조화되도록 하는 과제를 풀어야 하는 문제를 던진다 할 것이다.

   둘째 경제사령탑을 보다 굳건하게 만들어야 한다. 경제부총리제도가 만들어졌으면 창조경제를 포함한 모든 경제문제의 총괄사령탑이 경제부총리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이런저런 경제문제들이 어디에서 총괄되고 일사불란한 정책집행을 이루도록 하는 책임자가 누구인지 불분명하다면 이것이 문제라고 할 것이다. 대통령은 경제문제에 관한한 경제부총리에게 권한과 책임을 함께 주어야 할 것이다.

   정부 안에 실물경제문제를 총괄하는 위원회를 통상산업부에 둔다던가 창조경제의 책임자를 미래창조과학부에 둔다는 논리는 당연하다. 그러나 이 일의 총괄적인 지휘자는 경제부총리가 되어야 함은 경제운영의 기술상 당연한데 그것이 아직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고 있는 인상이다.

   셋째 실물경제의 상대편은 자본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아무리 금융시장이, 신자유주의가 외면되는 세상이지만 경제는 당장시장경제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자율과 개방이 없는 시장경제를 장기적으로 뛰어넘는 규제나 지시 일변도의 경제정책은 불가능하다고 나는 판단한다. 한국의 자본시장이 경쟁력이 있는가? 한국의 금융시장이 자율화를 제대로 갖추고 있는가? 1980년대 후반 이후 근 30여년간 한국의 금융시장은 자율화의 길을 걸어왔다고 할 수 있다. 그 자율화의 길이 이제 꽃을 피우려는 찬라 국제적인 금융스캔들이 일어나고 이제 시장은 금융규제 일변도의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도 예외가 될 수 없어 금융규제가 일반화되어 가고 있다. IMF 이후 금융시장은 정부의 보이는 손에 의하여 이합집산되었다. 새 정부 들어와서는 가계부채 지원의 명목으로 금융을 새롭게 규제하기 시작하고 있다. 물론 정치적목적의 정책을 무조건 탓할 수만은 없지만 아무리 어렵더라도 시장경제질서를 통채 흔드는 단초가 되는 규제정책을 쓰면 안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넷째 박근혜대통령은 최근 무역확대회의를 주재하였다는 보도가 나왔다. 엔저 앞에 날로 어려움이 커지고 있는 무역업자들을 격려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런 일들을 대통령이 나서야 하느냐 하는데는 의문이 따를 수 있다. WTO 상의 공정무역의 문제를 떠나서라도 이제 한국경제는 과거 정부주도의 경제운영시대가 아니다. 실물경제가 어찌 무역업자 뿐이겠나? 대기업의 총수들 보고 한국경제를 발전시킨 주역이라고 치켜세우는 것은 레토릭은 될 수 있지만 이들만이 한국경제발전의 주역이라고 하기에는 시장이 복잡하고 다기화되어 있다.

   오히려 격려를 하기로 말한다면 한이 없지만 우선 가장 큰 위험 부담자인 금융, 정치적으로 권력자로 부상한 노동조합 그리고 한국의 미래를 짊어진 학교선생님들... 어디 한이 있겠나? 대통령은 각계각층을 아우르는 격려와 위로에 인색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이를 잘 분간하여 온 정부가 나서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대통령을 위시하여 국무총리 경제부총리 각부장관 그리고 여러기관장들이 모두 이 일을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특히 대통령이 정부운영에 권한의 위임(delegation of power)을 보다 과감하게 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박근혜대통령의 새 정부 경제정책운영방식은 그 충분하고 부족함을 논하기엔 너무 이른 감이 있다. 또 잘 되리라고 믿고 싶다. 다만 다시 강조하는 것은 경제부총리가 한국경제운영의 총 사령탑이 되도록 권한과 책임을 주고 그 결과를 평가하는 경제운영스타일을 권하고 싶다. 경제부총리는 장단기 정책과제와 미래비젼을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한다.그래서 그의 책임하에 현재 경제난국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그 대안을 마련하게 해야 한다. 단기적인 실업감소의 모습과  장기적인 발전잠재력을 배양하는 청사진을 내어놓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 결과 경제부총리가 미래의 발전에 대한 확신을 국민에게 줄때 한국경제는 번영의 길로 들어선다고 할 것이다.



















































2013년 5월 10일 금요일

좌(左)신호넣고 우(右)진행하는 한은의 금리인하

   2013년 5월 9일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2.75%를 0.25% 포인트 내린 2.50%로 조정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세계적인 금리인하 추세와 최근 EU 중앙은행의 금리인하정책 그리고 호주까지 금리인하를 단행하는 상황을 보면서 한국은행이 결정한 금리인하는 정당성을 갖는다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나는 이번 금리인하에 찬성하는 입장이며, 오히려 너무 늦은 데 대한 불만이 있는 사람이다. 지난 달 한은이 금리동결을 발표할 때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나는 5월 금통위에서 금리인하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이야기하였다. 그것은 무슨 큰 지혜에 입각하기 보다 최근의 국내외 경제흐름과 한국은행의 생리를 조금 아는 사람으로서 느낌을 이야기한 것이 맞아떨어진 것에 불과하다.

   그만큼 이번 한국은행의 금리인하는 선제적이지 못하였고,  한국은행의 대국적인 경제운영자로서의 모습 보다는 자존심경쟁 비슷한 소아적 정책운영이라는 점에서 유감스럽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금리인하 다음날 한은직원들이 금리인하를 비난하는 글을 실명으로 계재한 것을 무슨 용감한 일을 한 것으로 언론에 등장하는 것을 보고 한심한 생각이 들어 정책변수의 운영자로서 한국은행의 역할에 대하여 소회의 일단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정책변수로서 금리의 기능을 담당하는 것은 한국경제운영을 책임지는 것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정책변수는 시장경제에서 시장의 기능이 보다 효율적으로 작동 되도록 돕는 정책수단이라는 말이다. 정부지출, 세율, 금리, 통화 그리고 지금은 아니지만 환율 등이 중요 정책변수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책변수들은 상호보완적으로 운용되어야하고 그리고 선제적으로 운영되어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 처하고 있는 한국경제의 대외환경은 한마디로 인위적인 가격조작으로 한국경제 목을 죄는 형국이다. 미국의 확장정책, EU의 네거티브 금리 그리고 일본의 엔저드라브 모두가 칼을 들고 한국경제의 목을 겨냥하는 듯한 절체절명의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엊그제 70대이던 엔이 100을 넘어섰다. 30%의 가격인하와 같은 엔 절하 앞에 한국제품이 단기적으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나?

   지난 1/4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0.9% 성장한 것을 가지고 한국은행은 봐라! 경제가 그리 나쁘지 않고 다시 하반기에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니냐고 의기양양하였다. 연율로 치면 1% 조금 넘는 현 경제상황을 놓고 한국은행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 있을까? 지난 5년동안 3%도 안되는 연평균 성장률을 시현한 한국경제의 실상 앞에 정책운영자로서 한국은행이 어떻게 그리 뻔뻔한지 이해할 수 없다.

   한국은행은 그동안 내 할 일 다 하였으니 이제 정부가 나서야 할 때라고 공식적으로 외친다. 그래서 정부는 17조에 달하는 추경을 확정하였다. 이게 한국은행의 금리고정의 이유라면 어찌 이제 겨우 국회에서 추경이 확정된 지금 역으로 금리를 인하할 수 있나?

   한국은행의 독립성이 있는데 밖에서 공연히 부츠기는 것은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고 한다. 한국은행의 독립성은 정책운영을 옳바르게 판단하게 하고 정치에 휘둘리지 않게하려는 것이지 한국은행 기구나 구성원이 뭐 그리 대단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독립성에 입각하여 생각한다면 왜 한달 전에 독립성 때문에 거절되었던 금리인하가 무슨 상황변동 때문에 이달에는 인하가 가능하다는 말인가? 독립성의 포기인가 아니면 상황의 변화인가 한국은행은 답변해야 한다.

   지난 5년여 동안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이 3%도 되지못하게 만든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 한국은행이 이 책임에서 열외될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이 한은의 독립성보장이 부족한 결과였다고 한은은 이야기할 수 있나? 책임은 없고 권한만 가지고자 하는 한은독립성보장이라고 비난한다면 한은은 어떻게 답변할수 있나?

   금리도 다른 정책변수와 마찬가지로 선제적이어야 효과가 극대화 됨은 말할 것도 없다. 사후약방문 같은 정책변수의 운용은 무능이던가 책임 떠넘기기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정책운영 실패에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하는 한국은행이 독립성 운운하며 면피하려 한다면 너무 뻔뻔한 것 아닌지 모르겠다.

   한국은행은 시장과의 소통에 보다 신경을 써야 한다. 온통 세상이 변하였는데 나만 고고하게 변하지 않으면서 권한만 찾는 자세를 유지한다면 그것은 시대착오적인 행위가 되지 않을지 생각해 볼 일이다.






























2013년 5월 8일 수요일

박근혜정부의 국정운영 제언 - 2. 자신감 과신하는 국방. 외교정책 운영

   지겹고 지겹던 북한의 대남 위협공세가 최근 수그러든 듯하다. 발사기지의 로켓을 보관처로 철수하였다는 어느 일본의 신문보도가 나오고, 김정은이 화장품가게나 고기식당을 찾는 뜨악한 뉴스를 북한이 내보내고 있다. 우리 국방부는 북한의 기만전술일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벌써 일반국민의 마음 속에는 북한위협을 잊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안보와 관련된 많은 문제들이 그동안 박근혜대통령의 방미결과와 연계하여보자고 미루고 미뤄 왔다. 드디어 5월 7일(미국은 6일) 한미 대통령정상회담은 성사되었고, 화기애애한 사진과 함께 두정상의 기자회견이 언론에 중계되었다. 예상 된대로 60주년이 되는 한미동맹관계를 보다 격상하여 글로벌리더십 파트너관계로 격상하고, 대북위협에 철저한 공동방어체제를 갖출것을 확인하였다. 현안의 한미자유무역협정을 활성화하고 새로운 원자력협정의 제정에 양국이 노력할 것을 두 정상은 합의하였다.

   오늘 밤 남은 박근혜대통령의 미 의회 상하합동회의 연설에서 대북억지력확대와 북한의 인권문제가 어느수준으로 어급될지 보아야 하겠지만 대체적으로 현재 양국정부가 예상하는 수준에서 긍정적으로 제기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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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대통령은 방미 일성에서 북한의 위협에 한국의 방위와 경제능력은 흔들릴 수준이 아니며, 충분한 대응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있게 천명하였다. 50대 1이라는 국가간 발전의 격차 속에서 전쟁은 불가능하다는 일반론을 우리 모두 믿고 있다. 하물며 미국과의 발전격차는 계산하기도 어려운 차이룰 우리는 알고 있다. 두 정상이 이야기하는 북한의 도발은 북한정권의 마지막 길이라는 것을 천명하는 것은 당연한 논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연말 북한의 미사일발사와 3차 핵실험 앞에 한국민들은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은 고사하고 일본이나 미국조차 이 상황을 중대한 위협으로 보고 철저한 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에 중국과 러시아가 동참하고  세계 모든나라가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오늘의 상황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 한국인들은 마음이 찜찜하다. 지속되는 긴장 앞에 피로감이 겹친다. 이것이 김정은이 노리는 함정일 것이다. 과거정권들이 했던 것처럼 이같은 상황 속에서 대화를 내세워 원조를 주었던 상황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에대해 이명박정부는 아예 등을 돌렸다. 새 정부는 한반도 프로세스라는 것을 가지고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자는 정책을 선언하였다. 그러니 김정은의 입장이 난감해 졌을 것이다. 칼을 빼었는데 이것을 다시 칼집에 집어넣을 계기를 마련해 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엉거주춤할 수밖에.

   반면 새 정부가 부닥치는 안보와 외교상황도 어느때 보다 엄중하다고 할 수 있다. 과거와 달리 북한의 보다 직접적인 핵 위협 앞에 당황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 과연 핵무기가 없는 한국이 미국의 핵우산만 믿고 편안할 수가 있나? 더구나 망나니가 폭탄을 손에쥐고 죽기살기로 위협하는 것 같은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만드는데 지원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원망해 보아야 지난 일이다. 당장이야 미국의 지원에 의지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지만 언제까지 우리가 이런 망나니를 머리위에 두고 살아야 한단말인가?

   1억불밖에 안 드는 핵폭탄제조에 10억불이 넘는 국축함을 몇기고 만들어야 하는 우리의 처지가 답답하기만하다. 또 그동안 재래식 무기의 준비는 과연 철저했는가? 연평도 포격시연평도에 갖추어 있던 우리의 장거리 포는 한심하게 수자가 적었고 또 정확한 포격을 하지 못한 상황을 우리가 보지않았나? 현정부가 만일 북이 국지도발을 한다면 즉각 대응하고, 원점까지 파괴하겠다는 전략을 발표하였지만, 군에대한 100% 신뢰가 지금은 보장되는지 일반인은 알 수가 없다. 이런 상황을 만든 지난 정부를 탓해보아야 무엇하겠나? 지금부터라도 군은 100% 신뢰를 보장받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전시작전권이양협의, 대북 억지력 확대를 위한 신무기도입 그리고 미국과의 전략적 합동행동에 따른 방위비 추가부담 등을 위한 국방비 부담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미국을 제외한 외교지평도 단기적으로는 매우 어렵게 전개되고 있다. 일본의 아베정부가 취하고 있는 인플레정책은 차치하고, 역사왜곡을 통한 인기몰이정책에 한국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외교는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시진핑의 중국은 아직 속내를 정확하게 들어내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세계를 이끄는 G-2의 리더십, 대북제재에 대한 실질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아직은 유보되는 부문이 많다. 최근 중국의 대북 금융제재 등 여러기사들이 한국신문에는 아전인수적으로 확대 보도 되고 있지만 아직은 좀더 두고 그 결과를 보아야 한다.

   박근혜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중국 일본 모두 미국에 버금가는 중요한 외교대상이다. 특히 중국과의 협력은 아직 충분하다고 할 수 없으므로 보다 많은 신뢰축적이 필요하다. 일본도 뗄 수 없은 우리의 이웃이다. 이들을 아우르는 정책운영이 다른 때보다 더 다급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박근혜대통령과 새정부는 매우 어려운 고비를 넘기지 않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 방위능력을 하루빨리 제고하는데 국정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군이 방위력과 신 성장동력인 창조경제의 발원지가 되는 이스라엘의 모델을 눈여겨 볼 대목이 될 것이다. 여기에 단기적으로 방위비부담의 한계가 검토되어야 한다. 외교는 국력에 바탕을 둔다. 그 국력은 무엇보다 경제가 살아나야 한다. 경제적번영이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됨은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런 현안의 문제를 풀 수 있는 긴급한 대목에서 의지력이 출중하고 상대방을 아우를 수 있는 리더십을 가진 박근혜대통령 정부가 되어주기를 우리는 기대하는 것이다.






























2013년 4월 27일 토요일

박근혜정부의 국정운영 제언 - 1. 총평

   박근혜정부가 출범한지 이제 두달이 지났다. 두달의 시간이 와 닫는 의미가 서로 다를 것 같다. 우선 벌써 두달이 지났어 하는 긍정론자들의 느낌과, 아직도 두달밖에 안 지났어 하는 피로증후군의 느낌으로 구분될 것 같다. 새 정부의 구성과 새 인물에대한 기대들로 벅찬 시간을 보낸 사람들의 감정이 전자에 속할 것이고, 새 정부 출범과정에서 일어난 여야갈등, 줄줄이 낙마하는 새 정부 인수자들에 대한 실망, 당장이라도 북한이 우리를 칠 것 같은 위기감의 연속 등 새 정부 출범후 두달만에 벌써 답답하고 지루하고 짜증나는 사람들의 심리가 후자일 것이다.

   나는 박근혜대통령을 지지한 사람이다. 새 정부 출범을 고대한 평범한 보수층의 한 사람이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느끼는 감정은 후자에 속할 것 같다. 많은 보수 지지자들이 이런 답답한 심정일 것같은 마음에 또 박근혜 새정부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박근혜정부의 국정운영 제언'이라는 제목으로 몇개 부문별로 나누어 국정운영방식에 대한 나의 의견을 정리하여 제언해 보고자 한다.

   먼저 박근혜정부의 지난 두달을 개괄하여 총평하여 본다면 합격점을 주고 싶다. 무엇보다 새 대통령의 국정스타일이 국민에게 안정감을 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조직법과 새 정부 인사의 국회청문회 과정에서 많은 불협화음이 있었고 답답함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결과론적으로 새 대통령의 정부조직 의지를  흔들려는 야당의 태도가 더 국민의 지탄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정부 인사 청문회과정에서도 인사들의 국정운영능력 검증을 위한 인물평가보다는 사사로운 가십 위주의 문제제기를 주로 야당이 하는 것을 보고 일반국민들은 야당의 태도를 비난하였다.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탓한다'는 비난이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대통령의 의연한 처리솜씨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옳고 글음보다도 문제처리의 접근이 안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참신성이 돋보였다고 할 수 있다. 총리와 몇몇 장관후보자들이 실패한 경우는 있지만 정부구성이 비교적 새 인물로, 과거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인사비판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전문성을 중요시한 것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무엇보다 박근혜대통령 자신이 깨끗한 이미지로 청와대에서 일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많이 보여준 것은 이런 참신함을 돋보이게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안보에서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정부조직법 처리지연으로 인사발령이 늦어지는 어려움 속에서도 매일매일 증폭되는 김정은정부의 핵 위협 앞에 대한민국은 두달의 시간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청와대 안보실, 국정원 그리고 통일부등 정부부서가 효율적으로 움직이면서 국민에게 걱정만 할 것 없다는 긍정의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새 대통령의 등장과정에서 미국 중국등 외교사절들과의 교례를 통한 한국의 안정필요성을 강조한 모습을 보여준 것도 좋았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개성공단의 처리과정에서 정부는 비교적 의연한 자세를 견지하고 시의에 맞는 처리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평할 수 있다. 무엇보다 4월 26일 공단잔류 근로자의 귀환결정과 같은 처리는 박대통령의 안보에 관한 결연성을 보여준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의 새 정부국정운영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함께 총체적인 면에서 보다 개선되어야 할 부문도 많이 발견된다.

   무엇보다 긍정의 리더십이 아직 잘 보이지 않는다. 아 이렇게 하면 우리가 어려움에서 벗어나겠구나 하는 청사진이 없다. 당장이야 북한의 안보위협 앞에 정신이 집중되어 있지만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 삶을, 우리행복을 증진하는 대안을 내어 놓고 이를 추진하는 일이 제일 급하다. 아시아 꼴지의 경제성장이 우리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 0.9%의 분기성장을 놓고 한은과 정부가 서로 다른 평가를 한다는 한심한 신문기사를 우리는 언제까지 읽어야 한단말인가?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나? 경제민주화한다고 여기저기 부정적인 들쑤시기가 자유시장경제를 망가트리는 것은 아닌가? 이런 걱정을 해소할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

   둘째 박근혜대통령의 일상이 청와대 안에 매어서는 안 된다. 소통을 위해서는 협의의 대상을 정치권 일반국민 모두에게 열어놓아야 한다.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야당정치인들, 국회직들과 밥을 먹는 활동도 중요하다. 그러나 일반인 입장에서 본다면 왜 새정부 출범과 함께 여당 야당 모두를 아우르는 정치를 하지 못하는지 답답해 보인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친북세력만 아니면 다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하는 집단들인데 그들을 왜 끌어앉지 못하고 사사건건 마찰이 일어나는지 국민의 입장에서는 답답하다. 물론 이 문제는 야댱에 더 책임이 있다고 일반은 평가하지만 그것은 선거로 평가되는 것이고 박근혜대통령 입장에서는 그들과 상대하여 국정운영을 할 수 밖에 없지않은가? 재계, 생산자단체도 마찬가지고, 소비자단체, 취약계층 모두 마찬가지다. 그들과 스킨십이 크로즈업 되지않는 국정운영이 아쉬운 대목이다.

   셋째 같은 맥락에서 정부 전체가 국민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특히 언론에 보다 적극적인 홍보를 하고 이해관계인들과 보다 많은 토론을 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여러 언론매체들에서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을 불러 토론회를 한다. 대부분 지나간 사람들을 불러 그것도 언론에 접근이 용이한 인사들 중심으로 한심한 시사토크를 하는 경우를 본다. 이것이 종편TV를 중심으로 한 언론매체들의 흐름이다. 물론 훌륭한 인사들이 훌륭한 분석을 하는 것을 폄하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부가 거기에도 적극 나서 국민을 상대로 소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뿐 아니라 이해당사자, 전문가들이 함께 정부와 고민하고 대안을 찾는 그런 소통의 모습이 더 보여야 할 것 같은 마음이다.

   총평의 마지막대목은 국민의 의식전환을 들어야 할 것 같다. 원래 민주주의는 시끄러운 것이고 능률을 담보하기 어려운 제도이지만, 그보다 더 낳은 대안을 찾을 수 없어 많은 나라가 이 제도에 매어있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흔이 말하는대로 기적적인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함께 이룬 자랑할만한 나라다. 그것도 우리 한 세대에서 이룬 성과이다. 이 대한민국이 이제 번영의 길에 들어섰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그런 대한민국이 지난 15년동안 발전의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물론 국민의 성급한 기대감도 문제가 되지만 무엇보다 먼저 거론해야 할 대목은 정부의 리더십 부족이었다고 평가해야 한다. IMF 이후 지난 3차례 정부에서 우리정부는 번영을 위한 긍정적인 리더십 발휘가 부족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정부를 만든 것도 우리국민이다. 발전의 정체를 가져온 데는 정부 뿐만 아니라 그를 구성하는 국민에게 책임이 공유되어야 한다. 국민의 책임이 피할 수 없는 큰 팩터가 됨은 말할 것 없을 것이다. 국민 모두가 새 정부의 긍정적인 리더십 발휘에 동참하고 협조해야 한다. 이를 위한 국민의 의식전환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이것이 선진국의 모습이다.

























2013년 4월 20일 토요일

벗꽃 2

곡우날 비오면 풍년든다고
옛 어른들은 믿었다.

2013년 4월 20일
곡우날 아침 비가 온다.
차분하면서도 제법 굵은 비가 온다.

그러나
풍년보다는 창밖 벗꽃이 흐트러지는 것을
오늘을 사는 우리는 더 안타까워한다.

어저께 4.19 !
어느 사회학자는 4.19가 난 것은
빈부격차 때문이었다고
박탈감 때문이었다고
그래서 역사의 필연이라고 역설한다.

그럴까?
1960년대 한국은 절대빈곤국으로 분류된 나라다.
오늘 아프리카 동남아 일부 사회처럼 배고픔이 넘쳐났다.
나 아닌 부자들을 쳐다볼 여유도 없었다.

지금
북한의 굶주린 사람들이
있는자들을 적대시할 마음의 여유가 있을까?

그래서
한국경제는 농촌을 혁신하고
기술을 도입하고
공장을 짔고
시장을 열었다.

그 시대를 살던 우리의 선배들은
남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내가 땀을 더 흘려야
내가 내가족이 굶지 않는다고
이를 악물었다.

이제!
뒤돌아보니
부러움이 박탈감이 몰려온다.
상대적 빈곤이다.
경제민주화해야 한다 외치고 싶다.

그러나
우리도 모르는 사이
대한민국은
어느덧 선진국이 선진사회가 되어 있다.

그걸
모르고
정치꾼들은 경제민주화만 외쳐대고 있다.
못난짓만 골라 하고 있다.

그래도
나머지 많은 사람들은
한국의 성장동력을
번영의 길을 찾아
오늘도 발길을 재촉한다.


창밖
비에 젖은 화사한 벗꽃
꽃잎들은
행여 내가 먼저 떨어질까 서로 부등껴안고 있다.

아니
네가 먼저가지 말라고 서로를 묶는다.
그리고 다독인다.
함께가자고

빗방울은 그래도 화사한 꽃잎을 땅에 내려놓는다.
땅에 떨어진
꽃잎들은 금세 이불이 된다.

남아 있는 내 가족이 더 오래 나무에 살라고
내년에 더 좋은 꽃잎을 피우라고
이들은 대지를 덮는다.































2013년 1월 26일 토요일

보이지 않는 작은 정부, 사라진 시장경제 원리

박근혜당선인의 정권인수위원회의 임무도 이제 후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정부조직에대한 그림도 확정되고, 새 국무총리 인선도 발표되었다. 이제 남은 일은 새 정부 출범을 위한 정부조직을 국회에서 확정짓고, 국무총리를 비롯한 새정부의 각료들을 임명하면 된다.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고 새 정부가 출범하기까지 두달정도의 시간중 절반이 지나 이제  취임식 2월 25일이 한달 남았다.

다른 대통령 때보다 조용한 가운데 엄무가 착실하게 추진되는 인상을 주고 있는 박근혜당선인측은 국민의 신뢰라는 면에서 합격점을 얻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공약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천명하면서 공약의 현실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우선 이를 담당할 정부의 조직 그림을 발표하였다. 정부조직을 놓고 보면 전체 크기는 전과 비슷하다고 하지만, 내용은 많이 닯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책임총리제 실현을 위한 국무총리실을 확대개편하는 것은 당연할 것 같다.

다만 경제문제를 총괄한 경제부총리제을 부활하고, 중소기업 지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중소기업청의 확대개편안이 나왔다. 산업과 무역을 직접 연관시키기위한 통상산업부의 신설도 같은 산업지원 맥락에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 정부개편에서 가장 자랑하려는 대목은 미래창조과확부의 신설이다.  과학기술개발, ICT 업무을 능률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공룡부처가 생긴다고 언론은 떠들고 있다. 통상을 뺀 외무부, 과학을 뺀 문교부 그리고 중소기업을 뺀 산업부 모두 이래도 되나 하고 좀 풀죽어 있을 성 싶다.

또 청와대 기구도 안보조정실과 경호실이 장관급으로 격상되어 대통령을 직접 보필한다고 하고 차관급을 증원하여 국무총리비서실장 그리고 미래창조과학부에 IT전담 차관제를 신설한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공무원 수를 얼마로 늘리는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이제 1백만명 공무원시대가 되었다고 언론은 떠든다.

그러면서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것은 박근혜당선인이 그렇게 강조하던 경제민주화 지원과 복지 지원을 위한 조직이나 공무언 증원은 잘 보이지 않는다. 공정거래위원회와 보건복지부의 조직 확대나 증원이 곧 나올 것 아닌가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게 놓고 새 정부를 보면 그야말로 '큰 정부'의 이미지가 부각된다고 할 것이다. '작은 정부'는 어디 갔나? 그 많은 공약을 실천하기 위하여 물론 정부조직의 확대개편이 불가피한 면이 있지만, 또 그 많은 공약을 지원할 재원 마련을 위하여 한푼이라고 아껴야 하는 측면도 동시에 존재한다고 보아야 한다.

이제 일반화 되다시피한 지난정부에서 시행한 일부처 다수 차관제 같은 것은 그대로 가는 것인가? 안 그래도 공무원 증원의 파킨슨 법칙이 일반화되어 있는데 이제 작은 정부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미국, EU 그리고 일본 등 선진국들도 경기부양을 위한 양적완화에 보다 관심을 쏟고 있지, 정부 씀씀이를 절략하자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안 보인다. 이게 무슨 씬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핀잔맞기 알맞다.

그러나 그게 옳은 길인가? 나는 회의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엄격히 말하여 경기부양을 위한 또는 정치공약 집행을 위한 재정확대와 정부의 절략과 작은 정부를 구현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은 다른 차원의 개념이라고 판단한다.

더구나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하여, 중소기업지원을 위하여 정부는 시장개입을 당연시한다면 잘못된 접근이다. 시장을 들여다 보지 않고는 독과점기업의 불공정거래나 대기업의 횡포를 알아낼 수 없으니 시장을 드려다 보아야 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더구나 박근혜당선인이 선거때 강조하였던 지하경제 축소를 위하여 시장을 들어가 보아야 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접근로는 시장경제를 활성화시킬 수가 없다.

시장의 간섭(intervention)과 규제정책(regulation)은 개념상 구분되어야 한다. 만일 시장을 들어가 보아야 겠다고 정부가 생각한다면 그것은  정부의 시장간섭이 된다. 경제민주화나 지하경제의 축소 같은 일은 정부의 시장에 대한 규제정책을 통하여 이루어 져야 한다. 그러나 그 규제도 일반화된 간접규제로 가야지 특정사안에 대한 특정규제로 접근 되어서는 안 된다. 복지도 가능하면 일반 기준에 따라 시행되도록 하고 공정거래제도에 따라 시장의 독과점 횡포가 사라지도록 하여야 한다. 더군다나 지하경제의 축소는 금융실명거래제 등의 정책규제를 통하여 이루어지도록 해야 된다. 이것이 시장을 활성화 하는 길이다.

결론적으로 정부기구의 확대나 공무원의 증원은 새로운 행정수요에 맞추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경우에도 언제나 전제되는 것은 정부의 절제된 모습이 함께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이 때의 작은 정부의 개념은 일차적으로 행정경비의 일반적인 절제의 개념이지 기능축소의 개념은 아니라고 강조하고 싶다. 그렇다고 작은정부의 개념이 단순한 행정경비의 절략 만으로 개념규정을 할 수는 없다. 작은정부 안에는 더 나아가 시장의 활성화를 지원하는 개념이 포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시장경제가 추구하는 정책목표는 시장의 기능(market function)을 활성화하는 것임을 명심하여야 한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의 양적완화정책등을 엄격히 개념규정한다면 정책변수(통화)의 조정이지 큰정부와 직결되는 개념은 아닌 것이다. 같은 취지에서 박근혜대통령의 새 정부는 개념상 약간의 모순성이 존재하지만 행정경비의 절제와 효율 속에 시장기능이 보다 활성화되는 그런 정부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2013년 1월 14일 월요일

갈등의 치유, 통합의 논리

2012년 한국 대통령선거 전후의 사회적 화두는 통합(統合)이라 할 수 있다. 박근혜대통령 당선인이 선거공약으로 내세웠건 아니건 간에 선거 후 한국사회가 지향해야 할 화두는 사회통합이라고 할 것이다. 여기에는 정치권의 여와 야가 따로 없을 것이고,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든 국민이 동의할 것으로 나는 믿는다. 

그만큼 한국사회의 갈등구조가 심각하다는 말이 될 것이다. 이러한 갈등은 선거가 아니더라도 오늘을 사는 한국인들 모두에게 하나의 사회적 과제로 이미 떠 안겨 있었다. 이 갈등이 대통령선거를 거치면서 보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사회문제로 등장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박근혜대통령 당선인은 이 갈등을 사회적통합으로 해결하겠다고 들고 나왔고 선거가 끝난 지금 시점에서도 사회통합을 다음정부가 해결해 나가야 할 제일 첫번째 가치로 등장시키고 있다. 물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가 추구하는 국민행복의 첫번째 과제가 존재하는 갈등구조를 해결하는 것이 되는 것은 순리라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처럼 이미 여러각도로 사회갈등이 노출되고 있는 과정에서는 미룰 수 없는 사회이슈이고 현실정치의 핵심과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1.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노출된 한국사회의 갈등구조


이번 선거과정에서 사회문제로 등장한 갈등구조는 크게 네가지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1) 소득갈등 (2) 연령계층갈등 (3) 진보 대 보수의 이념갈등 (4) 지역갈등으로 집약할 수 있다. 

1) 소득갈등

정치계절마다 등장하는 '있는자, 없는자'의 문제, 대기업의 횡포 등의 이슈는 이번 대선과정에서 종합적 체계적으로 등장하였다. 정책과제로 복지가 이슈가 되었고 재벌의 불공정거래가 도마위에 올랐다. 이런 과제가 '경제민주화'로 포장되어 한국 대통령선거의 제1번의 선거이슈가 되었다. 

없는자의 문제로 취약계층인 어린이와 노인의 건강관리, 보육, 그리고 교육비 등의 지원에 대한 문제가 제일 먼저 떠 올랐다. 이 지원을 복지라는 정책이슈로 등장시켜 소위 보편적복지로 할 것인가, 차별적 선택적복지로 갈 것인가를 놓고 정치권은 달아오르기 시작하였다. 선거 중 한국헌법 119조 2항의 '경제민주화'라는 구절은 모든 복지문제의 해결통로처럼 되었다. 자연 정부의 대응능력을 이야기하는 것은 잘된 밥에 소금뿌리는 것 처럼 정치권은 외면하면서 복지의 수혜만 강조하고 싶어했다. 

'The more, the better'의 논리는 머지않아 유권자들에게 이래도 되나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하였다. 보편적복지 보다는 우리실정을 감안하여 선택적복지가 불가피하지 않나 생각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오늘 한 후보가 한발자국 나아가면, 다른 후보는 질세라 반발작 더 나아가는 공약을 남발함으로써 결과는 보편인지 선택인지가 불분명한 부문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제3자녀부터 평생지원, 3대인지 4대인지 중증질환의 무한지원, 의료지원 1백만원 상한제등등 우리 능력을 생각 안하고 너무 나간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반값등록금을 시현하겠다는 공약은 모든 후보가 내 걸었지만 다행이 박근혜당선인은 이것을 무조건이 아닌 장학금형식으로 한다는 것으로 조정을 하였다. 그러나 그 부담은 대단할 것이다. 

있는 자의 문제로 대기업의 불공정거래에 대한 선거공약은 매우 매서웠다. 대기업의 관련 중소기업에 대한 횡포나 독과점지위 남용 등은 비난 받아 마땅하다. 그래서 제일 먼저 등장한 것이 순환출자 제한이었다. 순환출자의 전면금지가 중소기업이나 일반국민의 감성에 차는 정책이겠지만 이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횡포나 시장지배 등의 안목으로보면 당장 전면 금지하는 것이 맞는 것 같지만, 이것을 모두 일시에 금지하는 것은 첫째 과거 이루어진 것을 모두 되돌리는 것이므로 어려운  문제가 발생할 것이고, 다른나라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순환출자를 우리만 무조건 막는 것은 오히려 역차별의 문제가 발생 된다고 할 것이다.

박근혜당선인은 우여곡절 끝에 기존출자분은 시간간격을 두고 인정하는 공약을 내 세웠지만 이대목에서 많은 비판이 나왔고 앞으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대기업주의 형사상 차별 중과 문제는 어찌 결론이 났는지 불분명하지만 형사문제를 너무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것으로 평가될 것이다. 

중소기업 지원의 일환으로 박근혜당선인은 많은 지원을 하겠다고 역설하고 있지만 오히려 이런 정책이 중소기업을 스포일 시키고,  더 나아가 자꾸 시장을 들여다보려는 선의가 오히려 정부의 '시장 간섭'을 낳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박근혜 당선인이 대기업 보다는 중소기업단체를 먼저 방문하고 중소기업인을 만나 지원을 약속하고 하는 것은 정치적으로는 의미가 있겠지만 정책적으로는 의미가 별로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기대와 무책임만 키우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론적이지만 시장의 문제는 기업의 크기에 상관없이 공정거래를 이루도록 강조하고 시장의 독과점이 최소화되도록  정책을 펴나가야 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법질서를 엄격하게 지켜나가고 그 법 질서 속에서 대기업 중소기업이 함께 공정한 경쟁을 하도록 만들어가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들은 또 역대 정권에서 너무나 많은 사탕발림을 받아왔다.

다만 서비스산업이나 벤쳐기업들이 초기(유치단계) 어려움을 겪지않도록 정부가 지원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도 무한정이 아닌 한시적(일정기간) 지원책이고, 지원내용도 산업별로 구분하지말고 같은 활동에 동일한 지원을 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 특정산업에대한 특헤논란에서 정부가 자유로워지고, 일정기간이후의 퇴출이 자유로워지게 된다.

다만 경쟁에서 열외(列外)에 있는 노약자, 극빈자들에 대한 정부지원은 아무리 어렵더라도 그 지원의 폭과 대상을 확대해 가야 한다. 이것은 복지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당선인이 연말연시 어려운 계층들을 찾는 것은 이런 시각에서 잘 하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여기서 이상의 소득갈등과 관련된 정책과는 별도로 새 정부가 어렵더라도 추진해야 하는 다른 정책과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국민의 기대치를 낮추는 정책이다. 복지정책은 어떤 경우던 다다익선이고 그것은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와야 한다.

당장의 국내외 경제전망은 매우 어렵게 진행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니 아무리 기대보다 경제가 단기에 좋아진다하더라도 당장 국민이 납세능력을 향상되기는 어렵다고  판단된다. 이런 상황이 오히려 새 정부로서는 국민의 기대치를 낮출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 보다 용이하게 할 수 있다고 본다. 1980년대 초 한국경제가 안정화시책을 펴나갈 때 하였던 것처럼 국민이 기대치를 낮추게 되는 계기를 정책적으로 마련해야 된다고 판단된다.

2) 연령계층갈등

비단 이번 대통령선거의 결과만이 아니라 최근 지속적으로 세대간의 갈등이 붉어져 나오고 있다. 한참 유행했던 '386'세대 논쟁은 사글어 들었고, 이제 '2030 세대'니 '40'세대니 '560세대'니 '670세대'니 하는 방식으로 연령계층을 나누어 세대간의 이념, 사고, 행동의 차이를 설명하려든다.

특히 선거때가 되면 이러한 세대간의 투표성향의 차이를 내세우면서 이들을 하나의 계층으로 묶어 자기네 편으로 영입하고자 애를 쓰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사실 지난 노무현대통령 선거당시 이런 패거리 정치행태가 극명하게 들어났다고 해도 과히 틀린 분석이 아닐 것이다. 오늘날에는 사회네트워크(SNS)가 다양화되어 인터넷 이메일세대, 문자세대, 트위터세대하며 구분할 수 있지만 당시 이메일이 젊은이들 간의 의사소통 전담수단이었던 때 투표일 오후 여름철 소나기처럼 이메일을 통한 투표독려가 일어나 노무현 대통령 승리를 가능하게 하였다고 분석한다.

이번 선거에서도 이러한 세대 계층간의 투표행태가 나타나리라 보고 날씨가 추우면 여당에 유리하다느니, 투표율이 높으면 야당이 유리하다느니, 투표율이 75%가 넘으면 야당후보가 춤을 추겠다느니 종래와 같은 진보대 보수성향을 연령으로 그룹핑하는 분석이 기조를 이루었다. 그러나 투표율이 78%가 넘었는데 야당후보는 낙선하였다.

더 다양해진 SNS는 작동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인가? 오후 6시 이후 투표한 사람이 3백만이나 된다는데 그들은 소위 젊은세대들이 주류를 이룬 것이 아닌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지난번의 실수를 거울삼아 보수세력들이 일부러 오후 늦게 투표하는 재치는 예상하지 못하였나? 아무튼 투표결과는 출구조사보다 더 큰 차이로 박근혜후보가 당선되었다.

여기서 연령계층 갈등과 관련하여 두가지 오류를 제기하고자 한다. 첫째는 연령계층을 통한 투표성향의 분석이 언론에서 만들어낸 지나친 과대해석이라는 점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보다 시야가 넓어지고, 그럼으로 보다 균형적인 시각에서 상황을 분석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꼭 보수성향이라고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물론 균형시각이 진보나 급진파의 시각에서는 보수의 색갈로 보일 수는 있다. 젊은이는 이상을 중요시하고 결과 보다 미래지향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한국의 진보처럼 이념의 틀 속에서 그들의 이상을 구분하려들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젊은이나 나이먹은 계층이나 자기의 판단으로 투표를 하고 그 기준은 오늘보다는 내일을 생각하며 선택을 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2030세대가 30%의 지지를 박근혜후보에게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진보 보수의 틀이 아니다.

둘째 이번 선거에서 50대가 절대지지를 박근혜후보에게 보냈다. 이 50대 중 절반은 지금부터 5년전 40대 중반으로서 팍팍한 현실 앞에 정권교체를 요구하던 그런 세대들 아닌가? 바로 그사람들이 5년이 지난 후 갑자기 세상보는 시각이 보다 넓어졌나? 개인의 형편이 활짝 피었나? 아닐 것이다. 다만 각자의 판단에 따라 나라의 미래를 누구에게 맏길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투표이지 나이 순으로 세워놓고 이것은 친여, 저것은 친야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접근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젊은이들이 보다 개혁적이고 변화를 보다 원한다는 일반론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내 말은 이것도 하나의 인기영합적으로 접근하는 져널리즘의 비지니스라고 생각한다. 현혹될 필요가 없다. 오늘의 젊은 세대들이 일반론적인 져너리즘이나 자칭 진보그룹보다 훨씬 위에 있다. 얼마나 현명하고 진취적이라는 것을 이번 투표결과로 보여주었다고 우리 모두 알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3) 진보 보수의 이념갈등

21세기 글로벌시대에 이념적 잣대로 사회를 구분하는 이념갈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보수나 진보를 학문적으로 그 성향을 분석할 수는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사람의 생각을 이념으로 재단하는 시대가 아니다.

한때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구분하여 좌익과 우익으로 구분하던 시대가 있었다. 이러한 이념의 차이는 1990년대 초 공산주의의 본산인 구 소련의 몰락과 함께 사라졌다. 그렇다고 오늘의 세계를 자본주의의 단순한 승리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시장경제의 모순을 시정하기위한 복지정책이 크로즈업되는 현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념이 시대를 지배하는 시기는 지났다.  후쿠야마는 자본주의의 승리를 '역사의 종말'로 결말지으려한다. 이것은 더 직설적으로 이념시대의 종말을 선언한 것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이런 흐름 속에서 허울좋은 한국의 진보는 무엇인가? 개혁과 개방을 앞세워 사회를 선순환으로 이끌어가고자 하는 그룹인가? 아니다. 한국의 진보는 종북(從北) 이상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보수의 가치는 사회를 개혁하여 다음세대를 보다 낳은 사회로 이끌고자하는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진보가 종북이 아니라면 그들의 지향점이 보수와 무엇이 다를 수 있단 말인가?

혁명(revolution)과 개혁(reform)은 천양지 차이이다. 혁명을 부정하는 한국의 진보는 더 이상 진보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보수와 지향점이 같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민주통합당은 정체성을 잃었다. 선거전략상 적과의 동침도 불사할 수는 있다고 할지 몰라도 그런 철학 위에서 국가운영을 담당할 수는 없다.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이번 선거에서 정권교체를 원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종북세력과 야합한 민주통합당으로 정권교체가 되기를 원할 수는 없다는 것이 이번 선거 결과이다.

누구도 위임하지도 않은 자칭 '원탁원로회의'인지에 소속된  인사들은 철 안든 늙은이들이지 그들이 한국의 젊은이들을 이끌 주제도 재목도 아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상당수 젊은이들이 보수의 가치를 들고 투표한 것을 보면서 이들은 이 현상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이미 이념의 시대가 지났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나는 분석한다. 이제 한국의 미래는 이념의 굴레가 아니라 개혁을 통한 국민행복을 추구하는 사회이어야 한다.

4) 지역갈등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도 한국의 고질이라할 수 있는 지역갈등은 제대로 해소되지 못하였다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한국선거에서 지역갈등이라 함은 호남대 영남을 의미한다. 영남에서 박근혜후보가 절대적인 표차로 승리를 하였고, 호남에서는 문재인후보가 절대적인 승리를 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서울과 경기 중부 강원 제주지역에서는 승패의 갈림은 있었지만 큰 차이가 없다.

박근혜후보가 영남출신이니 영남에서 이기는 것은 지역주의 관점에서는 당연하지만, 문재인 후보가 부산출신인데 호남에서 이기는 것은 이해되기 힘든다. 과거 김대중대통령 때는 호남출신이기 때문에 호남지지가 이해될 수도 있었다. 노무현대통령 때는 부산사람이지만 당시 김대중 전대통령의 영향력이 하도 커서 호남에서 몰표를 받을 수도 있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은 선듯 납득하기 힘이 든다. 특히 광주에서 박근혜후보 지지가 7%밖에 되지 않은 것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물론 경북이나 대구에서 박근혜후보가 크게 이겼지만 그러나 문재인후보도 그 지역에서 30여퍼센트 득표하였다.

이것을 놓고 우스게소리로 경북의 30%는 호남사람들이 이사간 사람들의 지지라고 한단다. 그러면 경북에서 이사간 호남인은 어디갔나? 경기 인천에서 박근혜후보가 이긴 것도 충청도 사람들이 많이 이사가서 그렇다고 한단다. 그러면 서울은 전라도사람이 많이 와서 문재인후보가 이겼나? 이런 이야기는 우스개소리로 치부해야 할 것이다. 다만 호남과 영남을 제외한 타지역은 지역갈등이 아닌 일반 투표자의 성향이라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지역갈등을 해결한다고 박근혜당선인은 사회통합의 일환으로 인사에서 호남배려를 강조하고 다닌다. 이것은 사실 낡은 레코드판이다. 박정희대통령 때는 안 그랬나? 김대중때는 사람이 없어 자리를 줄 수 없다는 낭설이 돌 정도로 호남을 배려하였다. 노무현대통령 때 호남을 경시하였다고 내놓고 이야기들 한다.

 이게 무슨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오늘 같은 글로벌 경쟁시대에 얼마나 능력있는 인사가 국가를 운영하는가가 중요하지 손바닥만한 나라에서 그것도 영남 호남 놓고 사회통합한다는 접근은 너무 현실만 생각한 접근이다. 정치적 술수에 불과하다. 능력이 있으면 호남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외국인이라도 빌려다 써야하는 것이 현대국가경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호남사람들도 무슨 선심쓰는 것 비슷한 호남인사 발탁이 오히려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하물며 신설부처를 호남지역에 두느니, 어디에 두느니하는 논란은 투표결과에대한 민의의 해석에서  아주 멀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오로지 개혁과 혁신을 화두로 새 정부는 국익만 바라보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2. 통합의 논리

이상에서 현존하는 한국사회의 갈등구조를 개괄적으로 섭렵하였다. 현재 갈등의  문제가 심각하던 그렇지 않던, 국가운영에 있어서 하나의 주요한 과제인 것은 틀림이 없고, 정치적으로  이것을 뛰어넘는 어젠다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박근혜당선인은 갈등 극복을 사회통합에서 찾고자 한다. 다양한 현대사회구조를 통합의 논리 하나로 묶어간다는 것 자체가 무리가 될 수 있다. 말이 사회통합이지 구체적으로 다양한 욕구와 생활의 주름을 어떻게 한 솥에 넣어 사회통합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것은 논리성의 문제 보다는 정치적접근을 통하여 그늘지고,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손톱 밑 가시를 제거하는 것과 같은 보살핌을 확대하여 보다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주자는 논리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막연한 공리주의로 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 정책에서, 정치에서 국민의 아픔을 어루 만져줌으로써 사회를 더불어 함께 엮어가고자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것을 통합의 논리하고 불러보자. 이와 관련하여 박근혜 새 정부가 당장 추진해야 할 통합의 과제들을 몇가지 제기해 본다.

1) 진영(陳營)의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앞에서 논의한 갈등구조를 보면 일부는 지금도 심각하고, 일부는 이미 지나간 허상을 붙들고 허우적대는 인상이다. 있는자 없는자의 문제나 영호남의 갈등구조는 지금도 상존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진보 보수의 논리나 연령계층에 따른 갈등은 이미 지나간 이슈들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지나간 이슈라고 현실적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새 정부의 입장에서 해야할 첫번째 과제는 우선  한국사회를 진영의 논리로 구분하고 대응책을 접근하는 방식 자체를 고쳐야 한다. 넓은 시야를 토대로 균형있는 정부정책을 펴 나아가고 정치는 이런 정부정책을 후원해야 한다.

대통령은 한국사회을 진영의 논리로 보는 것에서 탈피해야 한다. 있는자 없는자, 대기업 중소기업, 영남 호남, 진보 보수, 2030세대와 늙은세대등 진영의 논리나 시각을 전제로한 정책을 펴서도 안 되고 정치를 해서도 안된다.

통합한다고 어느 특정지역을 우대한다던가, 젊은세대를 구색가추기로 참가시킨다던가 하는등등의 정치적 접근에서 벗어나야 한다.

2) 후진적 정치행태를 현대화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후진적이고 퇴영적인 부문이 정치권이라고 하는데 별 이의가 없을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도 국가의 지도자를 정치지도자로 한국의 정치권은 착각하고 있다. 국가지도자라는 개념은 특히 경국제민(經國濟民)을 이끌어갈 국가의 큰 어른을 지칭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이런 나라의 큰 어른을 찾는 것은 시대흐름에 맞지 않는다.

오히려 다양한 기능사회에서 분야별로 최고를 달리는 여러 인사들이 그들 나름의 분야에서 최선다해 다양한 결과가  나오고 그런것들이 하나로 집합되면서 사회가 발전해 나간다고 할 수 있다.

옛날의 훌륭한 군주처럼 훌륭한 대통령을 뽑는 개념의 선거는 아닐 것이다. 대통령도 일개 직업인으로 보아야 맞을 것이다. 국가운영을 일정기간 수임받은 사람이 된다. 그것을  그 사람이 온통 나라의 모든 부문을 책임진다고 생각하고, 오직 그만이 오늘의 개개인의 삶을 책임져주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은 전 근대적이다.

민의의 대의기관인 국회는 정치적으로는 삼권분립의 한 축을 담당한다고 할 수 있지만 개개인 국회의원은 일정구역의 주민으로부터 민의를 수임받은 직업인다. 물론 개개 국회의원을 하나의 입법기관이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4년의 임기를 가진 수임자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전근대적으로 그가 뭐 그리 대단한 인사인양 별의별 특권을 누리는 것은 말이 되지않는다. 그러니 죽어라고 서로 싸우다 자기들 이속이 있는 곳에서는 여야가 따로 없다. 그러니 사법특권을 누리고, 연금 특권을 누리고 철면피하게 살아가고 있다. 국민세금가지고 예산조정한다고 몇날몇일을 호텔에서 서로 이권을 챙겨주고 국회가 끝나자마자 먼 중남미 아프리카등지로 연구시찰이랍시고 여행이나 가고 후진성의 표본이다. 그러고도 그게 지도자인가?

물론 한국국회의 후진적행태를 천편일률적으로 이야기하고 취급해서는 안 된다. 개중에는 국민의 세금을 생각하고 국가의 미래을 생각하는 훌륭한 사람도 있다. 문제는 그 비율이 너무 적어 그저 접시속 태풍에 불과하다고 한국의 정치행태를 이야기하는 것은 지나칠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의 국가운영에서 일차적으로 제일 걸림돌이 되고, 나라의 미래보다는 자기들 이속이나 챙기는 것이 한국의 정치권이라고 할 때, 아니라고 손들고 나올 사람이 관연 얼마나 될지 나는 가늠이 안 간다.

모름지기 한국의 정치권이 환골탈퇴하여 현대화하지 아니하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나는 확신한다. 세상은 딴 세상으로 변했는데 우물한 개구리는 제 옛날만 생각하고 고집한다. 그런 정치집단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한 한국의 사회통합은 불가능할 것이다. 후진적정치행태를 현대화해야 한다.


3) 50대 이상을 부채(liability)의 세대로 만들지 말라.


어느 경제학자의 말대로 사회를 세대로 구분하여 부채와 자산(asset)의 그룹으로 나누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물론 나이들 수록 생산성이 감퇴하는 것을 인정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세대 구분 없이 생산활동에 참여하도록 만들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생산성에 따라 대우하고 사회가 발전하게 만들어야 한다. 물론 극상 노인세대는 사회가 책임을 지고 지원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80대 이하의 세대들은 생산활동에 적극 참여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에 대한 1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

한국 젊은이들의 노인비하 생각은 김대중 대통령정부 때부터 확대되었다. IMF를 지나면서 당시 정부는 기업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였는데 이에따라 많은 해고조치(lay off)가 이루어졌었다. 오십대보다 더 낮은 40대 중반부터 감원을 하다보니 사회는 감원대상을 무능한 새대로 규정짔게 되었고, 자연 그들은 사회의 부채로 여기는 잘못된 습성이 생기기 시작되었다.

당시 정부가 레이오프세대들을 무능의 코너로 몰고가기보다는 그동안 사회발전에 대한 기여를 평가하는 방향으로 몰고 갔어야 했다. 또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는 참여기회를 확대하는 노력을 했어야 했다. 그런 노력보다는 이들 세대를 뒷방 코너로 몰아너어 무능한 인간으로,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부채세대로 치부해 버리고 말았다. 물론 IMF 등의 권유라는 구실을 말하고 싶겠지만 그것은 서양의 가치이지 유교문화를 바탕으로하는 동양의 가치는 아닌 것이다. 당시 정부의 무식의 소치라고 나는 평가한다.

지금 50대 이상의 세대를 막연하게 나이 만으로 부채, 자산으로 구분해서는 안 된다. 또 오늘의 자산은 어제 그들에 의하여 축적된 것임을 젊은세대에 일깨워야 한다. 단순하게 나이의 많고 적음으로 구분하여 젊은세대가 나이 많은 세대의 부담을 왜 짊어지게 하느냐고 불평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

심지어 노인에게 선거권을 박탈해야 한다는 소리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서 나이먹은 사람에게 힘이 쫙 빠짐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젊은이 들에게 음수사원(飮水思源)의 고사성어를 가르쳐야 하는 책임도 정부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더 나아가 정부의 임무는 산업구조, 고용구조의 변화를 추진해야 한다. 사회의 변화에 맞는 것이 모두 첨단 IT산업에 만 있는 것이 아니고 수출 일변도의 경제정책에서 벗어나 한국경제에 알맞는 경제, 산업구조의 변화를 정부는 추구해야 한다. 지난 정부의 정책부실이 바로 이런 곳에 있었음을 시인하고 화급한 산업구조변화와 이에 따른 고용구조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나이만으로 정년을 구분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최근 분석에 의하면 OECD국가중 50대 이상의 취업율이 한국이 가장 높다고 하고 그것이 마치 늙은 세대가 젊은 세대의 일자리를 빼았은 결과인 것처럼 해석하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모든 것이 경쟁력에서 평가를 해야지 그래서 젊은 사람이 더 경쟁력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새 정부가 마련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것이 사회통합의 첫 걸음이라고 할 것이다.


4) 경제민주화의 허상에서 탈피하라.

이번 선거에서 가장 잘못 간 것이 경제민주화로의 지나친 질주였다고 평가한다. 경제민주화는 정치슬로건이지 경제논리는 아니다. 더더군다나 경제정책은 아니다. 다다익선과 퍼퓰리즘은 민주주의 선거의 부산물이다.

국가운영의 기본은 '국리민복(國利民福)'에 있다. 국가를 보위하고, 백성을 잘 살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 국가운영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노무현정부가 국토를 지키는 개념이 없이 NLL을 아이들 땅따먹기로 비하한 것은 국가운영이 아니다. 이명박정부가 수출일변도로 부익부 빈익빈 정책을 추구한 것도 국가운영의 낙제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가난한 사람이 모두 없어지고 모두 배부르고 행복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위하여 국가는 시장과 경제행위를 규제할 수 있다고 한 헌법규정을 단순논리로 받아드리고 거기에 맞추어 모든 불평등을 하루아침에 시정하고자하는 논리로 경제민주화를 받아드린다면 그것은 오히려 경제발전의, 사회발전의 족쇄가 될 수 있다. 우리 속담에 '누을 자리를 보고 발을 뻗으라'는 말이 있다. 무턱대고 불평등만 쳐다보고 이것을 시정하려하는 것은 교각살우를 범할 위험이 있다. 능력대로 해야 한다.

세금 생각은 안 하고 무턱대고 일반복지니 뭐니를 주장하는 것은 안 된다. 또 좋은 것은 더 할수록 좋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오늘의 고통(세금)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이미 박근혜 대통령당선인도 너무 지나치게 간 것이 많다. 물론 상대후보의 공세에 맞추다보니 과한 것도 있었겠지만 지금이라도 정신차리고 바로 잡아야 한다. 물론 경제민주화로의 발상의 전환은 좋다. 그 준비부족함을 말하는 것이다.

아무리 경제민주화가 좋다고 해서 시장경제의 기본을 허트리면 안 된다. 순환출자규제나 출자총액제한 같은 제도는 그 범위와 속도에서 신중함을 기해야 한다. 더더군다나 재벌해체등의 접근은 혁명일 뿐이다. 시장을 규제(regulate)하는 것과 시장을 간섭(intervention)하는 것은 전연 다른 개념임을 정부는 알아야 한다.

복지재원을 마련하기 위하여 박근혜당선인은 지하경제를 양성화하여 추가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물론 지하경제의 양성화는 좋은 일이지만 그것은 제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지 마치 시장을 들쑤셔 지하에 숨은 재원을 발굴하겠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너무 편이한 접근이 될 것이다. 지하경제가 어디 등기내놓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들을 들 쑤시면 그들은 한발자국 뒤로 물러가 숨어버리게 되는 속성을 가지게 된다.

결국 지하경제의 해결책은 그들이 숨어살 수 없도록 제도를 고쳐나아가야 한다. 1980년대 초 소위 '장영자 어음사건'으로 한국의 자본시장은 풍지박산이 났다. 그 당시 한국정부는 이런 시장의 흐름이 완전히 박살이 난 마당에 건질 수 있는 것이 금융거래의 정상화라고 판단하여 '금융거래실명화에 관한 법률'을 제안하였다. 정치권의 엄청난 저항에 부딭혀 이 제도의 도입은 인정하되, 그 시행은 1990년 이후 정부가 정한 날부터한다고 해괘한 부측을 달아서 실명법은 국회를 통과하였다. 그게 한국의 소위 '실명제'다.

그 이후 김영삼정부 시절 이제도가 시행에 들어갔지만 시행초기 남의 뒷조사를 캐는데 너무 치중한 제도시행으로 당초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만일 한국의 금융실명제가 1980년대 중반부터 당초 계획대로 시행해 들어갔다면 오늘 한국의 경제질서는 보다 현대화되고, 지하경제는 훨씬 개선되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이것이 지하경제의 접근방법임을 박근혜당선인은 유념해야 할 것이다.


5) 성장의 잠재력 확충을 서둘러야 한다.

이명박정부에서 2%대로 추락한 잠재성장률을 끌어 올리는 노력을 박근혜당선인은 서둘러야 한다. 이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제기하지만 그저 막연한 메아리에 불과한 것 같다. 그러나 이것처럼 시급하고 근본적인 것은 없다고 할 것이다.

패망길에 들어선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하여야 한다. 옛날에는 일본을 보고 배우자고 하였다. 지금도 일본을 보고 배워야 한다. 다른점은 전에는 일본 하는대로 따라 하자고 하였고, 지금은 일본 반대로 하면 된다는 점에서 반대논리가 성립된다.

저출산 인구구조를 고쳐 나가야 한다. 산업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어려울 수록 더 개방하고 다른 나라와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나약한 젊은이들의 사고부터 세계를 이끌어가는 방향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도전정신을 길러야 한다. 남을 탓하기 앞서 사회에 헌신하고 봉사하는 정신을 함양시켜야 한다.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막연한 것 같지만 대한민국 국민 모두 교육개혁에 일어서야 한다.

내가 왜 늙은이를 돌보고 그 부담을 지며 살아야 하느냐고 불평하기 앞서 저 사람들이 전쟁의 잿더미에서 오늘의 부를 이루었는데, 나는 이를 발판으로 보다 윤택한 경제를 만들어 가겠다는 기개와 의지가 젊은이들에게 생겨나게 해야 한다. 그것은 참 교육을 통하여 가능한 것이지 종북세력들의 교육프로그램으로 되는 것이 물론 아님을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한다.

젊은이 늙은이의 구분이 없이 오늘 모두가 사회에 헌신하는 자세를 갖게 될때 한국의 성장력은 5%를 넘어 6%대에 진입하게 됨을 새 정부는 깨달아야 한다. KDI 같은 연구기관에 '잠재성장률 제고 연구'를 본격적으로 실시할 것을 주문하는 것도 한가지 방안이 될 수 있다.


6) 국민의 기대치를 낮우는 노력을 하라.

2%대의 경제성장을 하는 사회에서 무차별복지니 일반복지니 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다. 한국사회는 아직 절대수준의 복지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 보다는 상대적 격차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일이 의욕만으로 그렇게 금세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꾸준하게 정부는 추진하고, 국민들은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국민이 당장 무언가 변하는 것을 크게 기대하지 말고, 정부는 이런 일을 너무 서둘러 하려 해서는 안 된다. 거기에 파탈이 나게 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 인식해야 한다. 무슨 수로 지하경제를 파헤쳐 몇조의 복지재원을 당장 마련한단 말인가?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의 기대치를 낮추는 일이 필요하다하고 할 것이다. 성장에대한 기대, 복지에 대한 기대, 정부에 의한 선심 같은 기대들이 현실에 맞게 조정되고 좀 느긋하게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새 정부가 국민과의 정책합의를 이끌어 내야 할 부분이다. 정책합의는 힘으로 눌러 되는 것도 아니고 막연하게 때가 오기를 바라며 앉아 있어도 안 된다. 엄청난 정부의 노력이 요구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분서하여 국민에게 내어놓고 서로 허심탄회하게 협의를 해야 한다.


3. 실사구시(實事求是)


사회통합의 과제는 물론 엄처나게 어려운 일이라고 모두 믿을 것이다. 많일 박근혜당선인이 자기의 정치역량을 여기에 모두 바치기로 작정을 하여도 추진에 엄청난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박근혜당선인은 국민으로부터 '실천'에 대한 신뢰를 받고 있는 분이다. 이것이 만일 사회통합정책이 성공한다면 그 밑바탕이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정책을 국민이 믿는 것이다. 그 믿음은 대통령이 절대적으로 실천을 담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국민데게 각인시켜주는 데서 생긴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유능한 정부를 꾸리는 것이다. 이 막중한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전략집약적인 정부'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정치권에대한 설득능력을 갖춘 정부가 되어야 한다. 좌고우면하는 정부를 만들려면 이런 어려운 문제는 꺼내지도 말아야 한다.

 우리가 인정하던 아니하던 간에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는 훨씬 높게 되어 있다. 만일 한국에서 이런 사회통합이 잘 이루어지는 정치를 하는 것을 외국인들이 인정한다면 한국은 또다른 신화를 창조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즉 지금까지 한국은 '산업화에서 민주화'를 이룬 나라로 세계는 평가하였다. 이제 사회통합을 이룬 한국은 다시 '선진화에서 행복사회'로 변화 된 나라로 평가될 것이다. 박근혜당선인이 역사 앞에 이 업적을 이루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2013년 1월 5일 토요일

눈 밭 위의 달빛

2012년 겨울은 유난히 낯 설고 길다.

하얀 눈밭
대지를 덮은 눈은 유난히 히고 두껍다.
검은  흙은 그 민 얼굴을 내밀 수 없다.
그저 덮고 덮고 또 덮고
그래서 그 속은 포근하고 오히려 너무 조용하다.
외모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너무나 하얀 바깥은 눈 동자를 덮었다.
붉은 햇볕은 하얀 눈밭에 그대로 미끄러진다.

석양이 넘어간 후
맑안 초승달이 하늘 저편에서 얼굴을 내밀지만
그는 너무 수줍고 부끄럽기만 하다.
아! 나는 아직 어리고 더 커야한다.
그러나 보름달은 너무 커서
너무 데바라져서
오히려 쑥스럽다.
아직도 일주일도 더 남은 보름은
커가는 몸의 변화를 부끄럽게 한다.
그래도 빛이 커지고 세상도 보인다.

그 달빛은 부드럽게 하얀 눈밭을 어루 만진다.
눈밭은 수즙은 손을 내밀어 달빛을 받는다.
맑안 눈에서 어느덧 눈물이 맺힌다.
나는 아직 아니야 하고
수줍은 달빛을 밀쳐낸다.
달빛은
그래 더 커야해 하며
눈밭의 손등에 입술을 덥는다.
그리고 눈밭과 달빛은 서로를 토닥인다.
우리 더 커서 다시 만나자고
서로는 서로를 안아준다.
어느새 눈물은 고이고 그 너머 더 영롱한 빛이 대지를 감싼다.

월광(月光)!
아무리 추워도
아무리 미끄러워도
아무리 대지의 더러운 때가 너를 더렵혀도
하얀눈밭은 월광으로 찬란하다.
고층 창가에도
무너져가는 단칸 오막사리 창틈에도
하얀 눈으로 채색된 월광은 찬란하기만 하다.
베토벤이여!
한 여인보다는 온 세계에 이 뜨거운 월광을 고루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