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30일 화요일


     2015년 을미년 신년사

 

 

언제나 그런 것처럼 새해는 어김없이 우리곁으로 다가온다. 새해는 보내는 해보다는 아쉬움이 없이 희망만을 안고 다가와 좋다. 을미(乙未)년 새해는 양띠 해란다. 그것도 청색양의 해라고 한다. 양은 온순함, 포근함, 평화를 떠올리게 한다. 청은 활발함, 진취성, 새로움을 떠올리게 한다. 청색양은 발랄한 평화를 우리에게 줄 것 같다. 신선하고 활발한 해맑은 평화를 이 땅에 허락할 것 같다.

 

새해에는 우선 싸움 좀 하지 않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양처럼 온순하고 끌어안는 그런 평화가 왔으면 좋겠다. 우선 한국의 정치권이 쇄신되었으면 좋겠다. 국민의 삶은 외면한 채 정치한다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든 서로 헐뜯고 싸운다.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걷어 저런 사람들 월급 주어야 하는 한국사람들이 불쌍하다. 국민의 생활경제는 아랑곳 하지 않고, 문고리권력다툼이나 하고 종북 못해 안달이나 하고, 무슨 뜻인지 알쏭한 창조경제한다고 메아리 없는 공허한 말만 뇌까리며 3년을 허비한 정부 모두가 청색양을 떠 올리며 이제 다시 길을 찾았으면 좋겠다.

 

새해에는 국민의 행복을 최상의 가치로 삼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정치는 왜 있나? 정부는 왜 있나? 모두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국민의 행복추구를 지상의 가치로 삼고 국정을 운영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 행복을 보장하는 국정운영은 어떻게 하여야 하나? 한마디로 국민의 행복가치를 최우선으로 삼는 정치, 정부가 되면 된다. 정치권의 싸움도 할 수 없이 한다면 자기 파벌이익이 아닌 국민의 행복 편에 서서 해야 한다. 언론도 싸움만 부채질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행복조건에 서서 현상을 풀어가야 한다. 새해에는 헌법 10조의 행복추구권이 보다 적극화되고 강조되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새해에는 경제기반을 정돈하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언제 우리가 선진국이 되었다고 우리가 부자가 되었다고 오만하고, 경제민주화 한다고 시장의 창의를 다 죽이고, 나만 살면 된다고 현금 싸놓고 뒤돌아 앉아 갑()질이나 하며 안일한 생활만 하는 대기업 경영인들, 가난한 노인들의 깊은 한숨 소리는 우리를 자신 없게 만든다. 선진국들의 새해경제전망은 나아진다는데 우리가 지금처럼 아니 지난날처럼 해가지고 경제가 되살아날 수 있을까? 없다. 국정운영의 기본 틀을 국민의 행복추구에 맞추어 송두리째 바꾸어야 한다.

 

같은 선상에서 새해에는 진보니 종북이니 하는 단어가 없어졌으면 좋겠다. 왜 진보가 종북과 동의어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종북이 그리 좋으면 그들 모두 북한에 가 살아라. 이제 우리가 지난 60년 동안 배고픔 속에서 이겨내 부를 이룬 현재의 한국경제의 발전을 옆에서 팔짱만 끼고 구경만 하던 이들이 이제 나이 먹어 무슨 진보원탁회의다 뭐다 하며 거들먹대는 늙은이 진보세력들도 젊은 종북인사 들과 함께 북으로 가라. 가서 그들과 생활하며 김정은 지도자를 도와라. 그래서 그런 인사들이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 주었으면 좋겠다. 아니면 파란 양의 모습으로 변신 하던가.

 

새해에는 정부가 나서 우리나라의 인구대책을 세웠으면 좋겠다. 세계인구 증가의 정체 속에서 가장 한심한 나라는 대한민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이다. 남 이야기할게 아니라 우리나라의 인구감소전망은 앞으로 한민족의 장래를 암울하게 한다. 출산율 증가대책과 함께 외국인의 적극적인 이민영입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인구증가전망국가는 미국이다. 이런 미국의 저변에는 적극적인 이민정책이 있다. 반대가 일본이다. 우리가 일본을 앞서가는 노력을 해야하는 것은 경제발전이지 인구감소가 아니다. 인구규모는 부채(liabilities)가 아니고 자산(assets)이 되었음을 상기하고 싶다.

 

새해 국제정세는 우리에게 언제나 그랬지만 녹녹하지가 않다. 당장 머리에 이고 있는 김정은 정권의 핵무기 불장난을 무시만 할 수 없다. 중국이 우리와 전략적 동반자관계라고는 하지만 그들의 전략이 우리와 언제나 동반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일본은 우리의 대책 없는 골치거리다. 미국이 언제나 우리편인가? 러시아의 푸틴은 김정은 수준을 닮아가고 있다. 선진국 수출비중이 줄어간다는 이야기는 한국의 수출상대가 경기부침에 보다 취약한 후발국가들에 더 의존하고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안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가 일본 미국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조정자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당장은 아니다.

 

그렇다면 당장의 결론은 우리가 서로 우리끼리 서로 싸움질만 하고 앉아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끼리라도 싸우지 말고 서로 부둥켜안고 우리의 힘을 키워야 하는 것 아닌가? 대통령부터 청와대 닫친 문을 열고 거리로 나오라. 정치권도 국민 옆으로 오라. 그리고 그 말도 안 되는 국회근대화법인지를 당장 폐지하고 민주주의 기본원리인 다수결로 결론을 즉각즉각 내라. 시급한 현안들을 질질 끌고 월급만 타먹는 집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업인들도 거리로 나오라. 나와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고 제발 갑질 좀 고만하고 서로 살아가는 방안을 찾아라. 근로자들 노조귀족 만들어놓고 중소기업의 임금을 착취하여 자기들은 세배 네배 더 받는 그런 갑질구조를 행패를 없애야 한다.

 

 새해 파란 양의 모습대로 한국이라는 나라와 국민에게 해맑은 평화가 함께하기를 기도한다. 그래서 이제 선진경제로 당당히 발 돋음 하기를 바란다. 국민 모두가 행복가치를 추구하고 그 행복이 파란 양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기를 기원한다 

 

 

 

 

2014년 10월 17일 금요일

2014년 6월 3일 화요일

모든 은퇴관료들을 팽목항으로 내몰고 있는 대통령

     
 요즘처럼 은퇴관료로서 모욕적이고 허망하고 힘이 빠지는 때가 없었을 것이다. 광의의 관피아의 한사람으로써 내가 얼마나 이 나라에 잘못을 하였고, 피해를 주었는지 하나하나 따져보고 다시 따져본 적이 전에는 없었다. 그리고 허탈과 분노를 느낀다. 비단 나뿐이겠나? 얼마나 많은 전직관료들이 세월호 참사 앞에 도매금으로 매도되고 국민의 적이 되었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전직관료들의 심경이 참담하기로 팽목항에서 유명을 달리한 영령과 그 유가족의 비통함에 비교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거의 대부분이 우리의 희망, 우리의 아이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기성세대인 사람으로서 모두 죄인의 심경이고 가슴이 메어 온다.
 
정부가 세월호 사고를 처리함에 있어 무능과 두서없음을 보여준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아직도 진행 중에 있는 사고수습과 뒤처리가 국민의 시각에서 답답하고 부족하게 느껴지고 있음도 사실이다. 사고의 수습차원을 넘어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앞두고 국민적 분노를 촉발하고자 하는 정치권의 술수가 함께 뒤섞기면서 63일 지금 한국의 현실은 해결책이 잘 보이지 않는 답답한 먹구름에 덮여 있다.
 
우선 세월호 사건의 배후인물이라고 정부가 지목한 유병언이라는 인물의 체포가 안개속이다. 사건이 발생한지 50여일이 지난 이 시간까지 어디 숨어있다는 이야기만 되풀이되고 있다. 국민을 짜증나게 만들고 있다.
 
마찬가지로 세월호 수색과 배의 인양이 이렇게 더딘 것이 물론 일기관계 등의 외부 원인도 있다고 하지만, 다른 한편 아직도 실종자를 모두 수습하지 못하였고, 선체의 인양도 하지 못한 결과 앞에 마음이 편할 수 없다. 이런 이야기는 사실 기술적으로 모르고 있는 일반 레이맨의 입장이지 사실 정부로서는 있는 힘을 다 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그래도 국민은 짜증이 난다.
 
정부는 세월호 사고 원인의 하나가 관피아들(은퇴관료 재취업자들)의 못된 짓거리 때문이라고 질타한다. ()에서 나온 이들이 관련단체나 기업에 취업하여 규정을 어기고, 단체나 기업 편의적 눈감기 일변도의 행동을 한 것이 오늘의 사고 원인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앞으로 관피아의 척결이 국가적 어젠다임을 대통령은 주장한다. 이 소리를 들을 때, 국민이 대통령이나 정부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관이라는 말만 들어도 국민은 그냥 짜증이 난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랜다고 서울지하철사고, 요양병원화재사고 등 이어지는 사고들 앞에 국민들 가슴은 계속 벌렁벌렁한다.
 
대통령이 국무총리 내정자를 정해 발표하였는데 이틀 만에 사퇴하였다. 이유야 다 있겠지만 하필이면 돈 문제가 사퇴 이유가 되었다. 일반 시민들은 고사하고 지탄의 대상이 되는 대부분의 관피아들 조차도 상상하기 힘든 거액을 단기간 내에 이룬 것을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겠나? 그런 것 들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청와대 사정팀의 눈높이는 얼마나 되나? 국민들은 허탈하다.
 
그러나 그것을 떠들어대고 있는 정치권 그것도 국회의원님들 면면을 보면 뭐 묻은 개가 재 묻은 개 나무라는 꼴 같이 느껴진다. 우리 같은 무식한 사람의 눈에도 얼핏 사진 나오는 것을 보면 덕지덕지 얼굴이 변형된 것 같은데, 남은 비싼 성형하였다고 비난하면서 나는 아니라고 해대는 뻔뻔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들의 눈에는 세월호 사건이 오히려 정치호재로만 보일지 모른다. 국민의 마음은 처참하다.
 
한국의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나이가 기준인가? 처음 실시한다는 사전투표결과를 연령별로 분석하여 투표일 전에 발표하는 것은 비밀투표의 기준에 합당한 것인가? 그러면서 사리의 옳고 그름 보다는 진보는 보수를, 보수는 진보를 서로 그저 비난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 같다. 이런 진영논리에 빠져버린 오늘의 한국정치현실에 일반국민은 실망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1945년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해방된 대한민국은 올해로 7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6.25전쟁을 겪으며 300만이 넘는 우리 선조들이 나라에 몸을 바쳤다. 우리의 모든 산업시설은 파괴되고 오직 먼지 나는 농토위에 배고픔 만 남았다. 산업화하고, 열심히 일해서 먹을 것을 찾았다. 비에트남 전쟁에 나가 우리 선조들은 싸우면서 벌어드린 돈을 송금하였다. 우리영토가 좁아 중동 먼 나라까지 가서 먹을 것을 구해야 했다.
 
그리고 1980년대 후반 안정화시책으로 시장경제를 이룩한 대한민국은 민주화라는 대업을 이룩하였다. 올림픽을 치르고 월드컵을 개최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 성공스토리가 1990년대 말 IMF를 맞으면서 일시 중단되었다.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한국경제의 지속적인 발전보다는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우선순위를 둔 정부가 들어왔다. 그리고 한국경제의 발전능력이나 그 능력의 증진보다는 북한 퍼주기에 전념하였다. 이 덕에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은 3, 4%로 급락하였고, 이런 상황에서도 대한민국은 민주화가 경제발전에 우선하는 가치로 부상하였다.
 
그러면서 오늘의 경제적 번영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그저 민주화만 외쳐대는 세력이 나라를 점령하게 되었다. 그게 한국에서의 진보진영이다. 그러나 다른 편에서 그들은 쳐다보는 시선은 결코 고울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소위 진보진영의 무턱 댄 친북과 대한민국 부정 활동에 위기감을 느껴 뭉쳤다. 보수의 결집이다. 메말라가는 경제활동의 쇠퇴 앞에 이들이 함께 이명박정권과 박근혜정권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불행하게 이명박대통령은 경제대통령으로서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촛불시위 앞에 나도 한 패거리임을 보여주기 위한 어설픈 연극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역대 정권 중 가장 낮은 2.3% 임기중 연평균성장율을 남겨놓은 채 바톤을 박근혜 정부에 넘겼다.
 
박근혜대통령의 지난 1년 치적도 당장은 그리 후한 점수를 줄 수 없다. 연이은 인사실패로 국무총리의 낙마를 연속 맞보았다. 정부의 구성도 그리 좋은 평가를 받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구성보다는 박대통령의 정부운영 스타일에 문제가 제기된다. 무엇보다 내각과 청와대비서실을 이원화하여 운영함으로써 결집된 응집력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실세총리 기용을 선거공약으로 내 걸었지만 박대통령 하의 지난 1년 국무총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있으나 마나한 존재로 되었다. 총리를 없애거나 본인이 겸임하던지 해서 정부를 일원화하여 운영하는 방안이 나와야 할 것 같다.
 
다음 박대통령은 내각 내에서 공무원들의 전문적 분야까지 외면하는 정치대통령 모습만 보여주었다. 기획재정부에서 어렵게 만든 소득세 면세점 상한선을 일언지하에 거부한 것이 그 한 예라고 생각한다. 조세체계를 손대는데 세제심의회 등 많은 전문가가 참여하고 정부의 전문인력이 공동으로 만들어 낸 결론일 텐데 이를 즉석에서 재검토 지시를 하는 것은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정부 운영의 메카니즘을 모르거나 공무원들의 전문성을 생각해보지도 않은 처사라고 평가할 수 있다.
 
아직도 수첩인사가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것은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부족하게 만든다고 할 수 있다. 왜 보기에 그렇게 옹색하게 하는지, 좀 더 열린 마음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을 듯싶다.
 
박근혜대통령이 잘한 것은 경제민주화를 어느 정도 원칙 있게 정리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도 복지증진을 위한 정부세입 증대에 대한 정책이 없고, 경제민주화의 슬로건보다는 복지정책을 국민기본권적 시각으로 격상하는 그런 달라지는 무슨 정책 제시가 없는 점이 아쉽다.
 
세월호 사건 처리에서 박대통령의 모습은 오히려 세밀하고 여성다운 따뜻함도 묻어났다고 보인다. 정부가 무능하다고 하지만 사람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기나 유속의 어려움 앞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려는 노력을 국민은 평가할 것이다. 초기 선상근무자들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이나 해경, 검찰 등 정부기관의 손발 안 맞는 행동이 국민을 실망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최선을 다 하고자 하는 정부의 마음을 국민은 이해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걸듯하면 정부심판을 들고 나오는 상습적인 집단행동꾼들의 모습은 시끄럽기는 하지만 국민의 마음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빌미로 정권책임론을 들고 나오는 새정치연합 정치꾼들은 별로 평가의 가치조차 없다고 할 것이다.
 
박근혜대통령은 특별담화를 통해 관피아척결을 외쳤다. 세월호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중의 하나가 해양관계규칙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데 있다고 할 수 있고, 이렇게 된 것이 전현직 해양관료들의 그릇된 업무에서 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관피아 척결은 불가피하고 정당성을 갖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안대희 총리지명자 사퇴사건이 났다. 마치 국민들은 관피아 들은 수십억원의 돈을 마구 벌어드리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천만의 말씀이다.
 
관피아를 척결하는 것에 모두 동의할 것이다. 심지어 은퇴 관료들 자신들도 그리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은퇴자가 무슨 죄인인 것처럼 다루어지는 것에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퇴직 후 일정 기준 하에 관련기관이나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은 그 수가 많다고 하지만 전체 퇴직자 수에 비하하면 아주 낮은 비율일 것이다. 퇴직관리들의 국가발전에 대한 헌신을 이렇게 폄하해도 되는가?
 
현재 우리나라에도 퇴직공직자들의 취업제한 규정이 존재한다. 그 제한 규정보다 더 엄격하거나, 제한을 확대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비단 정부관료 뿐만 아니라 공공성이 있는 직업에서 퇴직할 때 엄격한 재취업 제한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제한이 퇴직자들의 퇴직 후 전문성을 통한 사회기여를 제한하는 것이 아님을 상기해야 한다. 한국과 같이 짧은 시간에 빠른 발전을 한 사회는 그것을 이끌었던 동력들을 다시 사회에서 활용하고 기여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평가한다. 사회발전의 연속성이라는 테마도 이를 통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라고 할 것이다. 전직관료들의 마음은 허탈하기 짝이 없다.
 
지금 60, 70대 퇴직관료들이 젊어서 관료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희생과 국가발전에 기여를 하였는지 일일이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국관료의 발전에 대한 기여는 세계가 인정하는 대목이다. 오히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퇴직관료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것이다. 그것을 지금 몇몇 좋지 않은 사례를 가지고 관료사회를 매도하는 것에 마치 대통령이 앞장서는 느낌을 주는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며칠 전 후배퇴직관료들 모임에서 본인은 오히려 이런 때 정부관료 들의 국가에 대한 보다 큰 헌신을 강조하였다. 어려웠던 지난 대목 대목을 상기하였다. 그게 관료들이 아니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일반인들은 모른다. 아니 후배들은 모른다.
 
국가가 부도 직전으로 몰리고, 앞 세웠던 전략기업들이 무너져갈 때, 그것을 붙잡고 씨름한 것이 한두 번인가? 인플레는 몇 십 프로 되는데, 성장은 멈추고 외국의 원조기관은 우리를 외면한 적이 얼마나 많았나? 외국에, 국제기관에 매달리면서 소위 차관을 얻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웠나? 이제 와 오늘의 부가 이런 헌신 없이 이루어질 수 있었겠나? 요즘은 수출이 한달에 500800억달러하지만, 1970년대 한국의 수출은 한 달에 고작 10억 달러, 그것을 경제기획국장실 상황판에 일일 신용장 금액을 그리면서 애달파하던 때가 불과 3040년 전이다. 그것도 모르고 지금 애국가를 부르네 마네, 태극기가 우리나라 국기냐고 해대는 철딱서니 앞에 우리 퇴직관료들은 무엇을 말하고 싶겠나?
 
생색내고 싶어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본인은 퇴직공직자 후배들에게 눈물 섞인 목소리로 용기 용기를 갖자고 외쳐댔다.

2014년 5월 6일 화요일

번영학(Sience of Prosperity)의 학문적 기초

                                  

1. 번영학의 탄생

일반경제학의 분과학문으로서 번영 학이 성립될 수 있나? 개발경제학, 신 자유주의 경제학 또는 복잡계 경제학처럼 번영학이 하나의 학문 분야로서 탄생될 수 있을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자.

번영학이 분과학문으로 성립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필요조건은 무엇일까? 어떤 주제나 과제가 하나의 학문분야가 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일반론적인 조건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 주제나 과제가 지향하는 가치가 뚜렷이 존재해야 할 것이다.

   . 번영학의 가치체계

번영이라는 화두(話頭)가 지향하는 가치는 무엇보다 번창, 영예, 행복등과 연관 될 것이다. 객관적으로 경제적 수준이 향상되는 현상을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단위로서 수요와 공급이 원활하게 일어나 시장이 활성화 되고, 토지 노동 자본 기술 그리고 이런 생산요소의 융합과 활동이 원활히 일어나는 상태가 유지되고, 앞으로도 전망되는 상태를 상정할 수 있다.

경제단위 구성원 입장에서는 풍족한 소득수준이 보장되고, 구성원으로서 그 존재가치가 뚜렷하고 영예스러워야 할 것이다.

사회는 구성원의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보호하는 책임을 지고 구성원은 그 사회구성원으로서 긍지와 행복을 느끼는 상태가 번영학의 가치가 될 것이다.

다음 번영학이 하나의 학문으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이런 번영의 가치와 연관하여 현재 제기되는 당면과제가 무엇인지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될 수 있는 당면과제는 일반론적으로 소득수준을 향상시키는 일일 것이다. 특히 경제발전이 늦게 시작되었거나 아직도 수요와 공급구조가 제대로 발전되지 못한 경제에서는 소득수준을 향상시키는 과제가 가장 시급한 과제로 등장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절대빈곤의 퇴치는 후진국 경제운영의 가장 긴박한 당면과제가 되었다. 절대빈곤의 수준을 넘어서도 인간의 존엄과 행복을 보장하기 위한 추가적인 소득수준의 향상 또한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였다. 또한 상당수준의 소득이 객관적으로 이미 보장되어 있는 경제단위라 할지라도 개인의 최대행복을 보장하기 위한 추가적인 소득수준의 향상은 언제나 제기되는 중요한 정책과제가 될 것이다.

다음 생각할 수 있는 당면과제는 공정거래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번영의 주제는 객관적인 기준뿐만 아니라 주관적으로 구성원 각기 사회에서 공정한 거래를 할 수 있는 조건을 보장받기를 원한다. 사회는 구성원의 공정한 거래와 경쟁이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능력에 맞는 활동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한편 경쟁 일탈 자에 대한 사회적 보장책이 강구 되도록 하는 것 또한 중요한 당면과제가 될 것이다. 사회보장제도, 의료, 고용 등 중요한 정책과제가 연관되어 요구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제단위 구성원 개인 개인의 행복가치가 최대한 보장되도록 하는 것 또한 최근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20세기 말 21세기 초 금융자본의 획기적인 발전과 함께 파생금융상품(Derivatives) 등의 발달이 금융시장과 더 나아가 자본시장 전체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금융시장 발전의 속도와 변화의 폭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게 시장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이를 통한 자본성장률과 국민소득 증가율의 격차가 다시 확대 되어 가고 있다. 자본성장률이 일반 경제성장률을 앞질러가는 속도가 크면 클수록 자본가에게 부의 집중이 일어나고 일반 노동자는 상대적 빈곤을 감수하게 된다.

불란서의 앙시앙레짐 시대에 존재하였던 소수 자본가의 부의 집중에 따른 국민소득 구성의 왜곡은 당시 비단 불란서뿐만 아니라 영국 독일 등 구라파 그리고 미국 등 선진경제의 일반적인 현상이었다1차 그리고 제2차 대전을 겪으면서 부의 집중은 완화되고 거의 왜곡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1950년에서 1970년대 사이에 일어났다. 이러한 국민소득의 균형은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정부에서부터 시작된 소위 신 자유주의의 출발과 함께 다시 깨어지기 시작하여 오늘날 선진경제의 부의 집중이 다시 옛날 수준으로 회귀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칼 맑스 이후 크게 제기 되었다가 일반의 관심권 밖으로 멀어졌던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의 신장격차가 다시 관심사가 되면서 이제 시장은 '상대적 빈곤감'이 하나의 절실한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상대적 빈곤감이 개인의 행복가치에 추가되는 조건으로 등장하게 된다.

   . 번영학의 접근방식

마지막으로 번영학이 하나의 학문으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이런 당면 과제나 문제들의 해결을 위한 새로운 접근방식(방법론)이 제시되어야 한다. 공정거래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는 무엇이며, 경제적 우위자와 열위자 사이에서 유발될 수 있는 부당한 관계를 불식시킬 제도적 장치가 강구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사회가 구성원의 행복한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태생적으로 정치슬로건으로 시작된 한국의 경제민주화는 공정거래제도를 토대로 한 것이고, 이는 정치민주주의와 함께 시장의 바탕을 경제주체간에 공정한 경쟁을 가져오게 하는 인프라를 만드는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이런 경쟁의 인프라를 갖추는 것은 경쟁을 보다 원활하게 한다는 의미는 있지만, 그것이 곧 국민의 행복을 가져오는 수단이 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정치민주화가 평등선거를 담보로 하는 것처럼 경제민주화가 공정한 경쟁체제를 담보로 한 것이다. 공정한 경쟁이 모든 국민의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나? 경쟁은 경쟁일탈 자를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경쟁일탈 자 문제는 어떻게 되어야 하나?  이것이 경제민주화가 번영학의 접근방법에서 배제되어야 할 이유이다.

이상에서 번영학이 경제학의 분과학문으로서 검토될 수 있는 학문적 기초가 어떤 것들이어야 하는 지를 어설프게나마 논의하였다. 물론 본 저의 기본 흐름이 왜 번영학이어야 하는지와 관련된 답을 내놓게 될 것이다.

오늘 왜 번영학을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체계이어야 하고, 우리의 발전전략 이어야 하고, 어떻게 그 목표를 달성해 갈 것인지를 답해야 한다. 그 해답을 말하기 전에 오늘 번영학을 탄생하게 한 연원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번영학을 탄생케 한 연원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그 이후 국가경제운영과 관련하여 두 갈래의 큰 흐름이 있었다고 분석할 수가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맞게 된 전후 경제운영의 변화흐름과 후진국 경제개발에 대한 종합적인 대응노력이 등장하게 되었다. 전자가 신 자유주의경제학의 탄생이고 후자가 개발경제학의 탄생이다.

   . 신 자유주의의 탄생

 승전국의 리더 격인 미국경제가 큰 변화의 흐름을 맞이하게 된다. 전쟁이 끝난 이후 미국경제는 수요의 변화와 성장의 후퇴로 실업, 인플레이션, 빈곤 등의 문제가 부각되어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1930년대 대공황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도 있다. 대공황에서의 탈출이 시도되는 과정에 세계대전 후의 수요의 급격한 변화까지 상승작용을 하는 모습이 전후 미국경제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침 영국의 죤 메이나드 케인즈(John Maynard Keyens)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은 미국경제문제 해답을 위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1930년대 대 공황 당시 케인즈의 일반이론은 문제해결의 지침서적인 역할을 하였다.

정부기능 확대의 논리적 지원을 바탕으로 32대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1932~45 4차에 걸친 대통령재임)는 뉴딜(New Deal)정책을 수립 추진하였다. '새로운 운영방식'이라는 이름대로 뉴딜정책은 몇몇 대형사업이 정부주도로 추진되었다. 초기 화려한 이름과 함께 출발한 뉴딜은 그러나 전후 급격한 환경변화와 함께 뚜렷한 성과를 기대할 수 없었다.

세계대전 이후 루즈벨트를 이은 트루먼(Truman)대통령, 아이젠하워(Eisenhower), 케네디(Kennedy), 죤슨(Johnson), 닉슨(Nixon), 포드(Ford), 그리고 카터(Carter)대통령에 이르기까지 30 여 년 동안 미국의 역대정부는 케인즈와 고전경제학의 대부 격인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on Hayek 1899~1992)를 오가며 정부지출과 세율의 인상 여부를 결정하는데 주안점을 둔 경제정책을 추진하였다.

물론 정책대상은 실업문제와 인플레이션 대책이 중심을 이루었다. 이러한 지루한 오락가락하는 경제정책의 변화 흐름에 따라 미국경제는 큰 흐름의 변화 가닥을 잡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경기의 변동흐름에 따라 부침을 계속하고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던 미국경제가 1981 40대 대통령에 취임한 레이건(Ronald Reagan 1911~2004)의 레이거노믹스에 이르러 미국의 경제정책대상과 수단이 바뀌기 시작한다. 정부지출이나 세율에 크게 의존하였던 정책수단에 통화 금리 등의 정책변수가 편입 되고 또 강조되었다.

국가기능도 프리드먼을 중심으로 한작은 정부가 제창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공급중심(Supply side economics)의 경제운영은 클린턴 정부에 이르러 경제가 활성화 되고, 신 자유주의를 표방하면서 1990년대 그리고 2000년대 초반 꽃을 피우게 된다. 신 자유주의경제학(Economics of Neoliberalism)의 탄생이다.

   . 개발경제학의 탄생

2차 대전 이후 경제정책 흐름의 두 번째 변화는 개발경제학의 탄생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전후 세계의 관심 중의 하나는 후진국들의 경제개발이었다. 절대빈곤의 퇴치를 당면과제로 하고, 지속 가능한 경제개발을 추구하는 정책으로서 종합적인경제개발(economic development)' 문제가 국제사회에 관심사로 떠올랐다. 개발경제학(Economics of Development)의 탄생이다.

개발경제학을 탄생하게 한 연원은 브레튼우드 체제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2차 세계대전 과정과 대전 후에 제기되었던 국제유동성의 부족과 외환통제의 보편화 등은 국제통화질서를 위기로 몰고 갔다. 이를 수습하고 해결책을 강구하고자 1944 7월 미국의 뉴햄프셔에서 연합국 44개국이 모여 협의한 결과 탄생한 것이 브레튼우드 체제 이다.

이 체제의 이행으로 1945 12 30개국이 서명하여 탄생시킨 기구가 세계부흥개발은행(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 IBRD)과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이다.

이와 별도로 전후 각국들은 교역을 증진시켜 세계경제의 부흥을 기해야 한다는 문제인식을 갖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47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23개국이 모여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eneral Agreement for Tariff and Trade: GATT)'을 체결하여 소위 가트 체제를 출범시켰다. 가트 체제는 출범 이후 제네바라운드를 시작으로 우루과이 라운드까지 무역자유화를 위한 여러 형태의 다자간 무역협상을 이끌어냈다. 우루과이 라운드를 마지막으로 가트 운영체제는 1995년 집행력을 갖춘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로 개편 되었다. 세계경제를 부흥시키고자 출범된 이들 3대 지원체제는 오늘날까지 그 기본이 유지되면서 발전을 거듭하면서 세계경제운영의 중심축이 되고 있다.

 

3. 개발경제학의 학문적 기초 

개발경제학의 학문적 기초는경제성장으로 집약할 수 있다. 경제성장을 토대로 국민총생산(GNP)의 절대량을 늘리고 이를 토대로 절대빈곤(Absolute poverty)을 퇴치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다.

개발경제학이 구체적 정책수단으로산업개발정책을 선호한다. 일반산업, 특별산업, 전략산업 등의 이름으로 산업지원을 통하여 개발초기 경제성장을 추구하게 된다. 불균형성장의 기초다. 이러한 산업의 특별지원을 위하여 투자확대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뒷밭침하기 위하여 저축증대, 경제개발원조 무역확대 등의 전략이 추진된다.

이러한 개발전략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수단으로 많은 개발도상국가 들은경제개발계획(Economic Development Plan)'을 선호하게 되고, 오늘날까지도 많은 개발도상국가 들이 이러한 집약된 경제계획을 선호하고 있다.

세계대전 이후 70년의 세월이 흐르는 가운데 개발도상국에 속해 있던 일부 국가는 선진대열로 부상하고, 일부는 신흥시장으로 분류되는 신흥 국으로 격상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개발도상국가가 지구상에 남아있고, 절대빈곤도 세계경제 속에 존재하고 있다. 물론 절대빈곤의 수나 개발도상국가의 수는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014 5월 현재 세계경제에서 34개국이 소위 선진경제대열에 합류한 OECD 국가로 분류되어 있다. 한국경제의 경우 1996 OECD에 가입하여 지금은 이들 OECD 가입경제들 중에서도 그 존재감이 크게 향상된 모습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2008년 미국의 리먼 브러더스 사의 몰락에 따른 금융파탄이 세계경제에 몰고 온 영향은 엄청났다. 그 중 세계경제에 가장 인상 깊게 부각되어 나타난 것은 소위선진국이라고 일컬어지던 경제들이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세계 모든 나라들이 거의 동시에 보게 되었었다는 점이다. 선진국이라고 언제나 선망의 대상이 되어 왔던 이들 경제들이 경제위기 앞에 겪게 되는 적나라한 모습을 세계는 볼 수 있었다. 그리스를 필두로 이태리, 스페인, 불란서, 영국, 아일랜드 그리고 일본 등 많은 선진국들 경제가 각기 다른 모습으로 그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연출하였다. 언제나 개발도상국가 들의 선망이고 롤 모델이었던 이들 선진경제의 벌거벗은 모습은 개발경제에 많은 시사점을 준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4. 신 자유주의 경제학이나 개발경제학이 잉태힌 가치체계의 혼돈

태한 가치체계의 혼돈미국을 중심으로 1990년대 세계경제는 경제운영의 중심축을 작은 정부와 함께 시장중심의 신 자유주의에 두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미국의 월 스트리트는 세계경제운영의 중심점으로 부상되었다.

그러나 아담 스미스의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은 언제나 정교함을 전제로 하지만 현실은 반드시 이를 증명해 보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2008년 리만 브라더스 사의 침몰은 세계경제를 다 함께 침몰직전으로 몰고 갔고 각국은 각기 경제운영의 상태에 따라 세계시장의 간극은 확대만 되어가고 있다.

국가별로는 그리스 이태리 스페인 등 선진 경제국들은 외부의 도움 없이는 지탱되기 힘든 모습을 연출하고 있고 영국경제는 장기 휴면상태에 들어가 있다.

다른 나라가 이렇게 하면 세계경제를 망친다고 호들갑을 떨기에 충분한 미국의 경제 회복을 위한 FRB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 6년의 시간이 지난 2014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자금줄 잡기(tapering)'가 시작되었다. 미국의 자금완화정책이 미국경제를 비롯하여 세계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지금으로서는 속단할 수는 없다. 미국의 이런 경기부양은 엄밀한 의미에서 신 자유주의에 역행하는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일본정부의 미국 따라 하기다. 2013년 일본 아베 정부는 미국과 같은 양적 완화와 함께 환율의 인위적인 절하(depreciation)를 취하고 있다. 이렇게 내놓고 인위적인 환율조작을 하는 일본경제는 그 불가피성을 IMF 조차도 인정하는 제스처를 보이고 있고, 이를 대놓고 비난하는 선진국도 없다.

그런 미국이 2014년 한국보고는 환율을 인위적으로 조절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물론 중국은 처음부터 미국의 환율조정비판을 외면하며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승자의 논리이고 힘의 논리이기도 하다. 가치체계의 모순이다.

개발경제학의 가치체계 역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개발경제학에서 추진된 전략산업개발은 그 자체가 많은 성공사례를 만들어냈고 이를 토대로 많은 개발도상국가 들이 경제도약의 발판이 되었지만 전략산업에 참여한 그룹과 참여하지 못한 그룹 간에 자연스럽게 발전의 간극이 확대되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한 나라 안에서도 생산성향상이 빠른 산업과 생산성향상이 느린 산업 간에는 전략산업개발이 함께 추진되더라도 발전성과는 큰 차이가 일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 농업과 제조업, 제조업 내에서도 전통제조업과 신기술제조업 사이에서 발생하는 발전격차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전략산업에 포함되어 개발에 참여한 그룹과 그렇지 못한 그룹의 발전 간극은 매우 크게 나타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산업발전의 괴리는 산업간, 한 산업 내에서도 개발에 참여한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 간에는 자연 소득의 불균형이 확대되고 이것이 소위있는 자와 없는 자로 이원화되는 사회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절대빈곤뿐만 아니라 상대적 빈곤 문제가 개발경제학의 새로운 가치로 대두되기 시작한다.

사회적 불평의 확대는 경쟁탈락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중요한 정책가치로 부상되고, 이에 따라 소득분배, 복지 등이 개발경제학의 중요한 한 분야로 제기되었다. 이러한 개발경제학의 지평확대는 더 나아가개인의 행복문제까지도 경제학이 추구해야 하는 중요한 가치로 점차 부상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개인의 행복추구는 그것이 주관에 몰입될 경우 사회가 개인 개인의 행복가치끼리 그 기준 대상 등에서 상호 충돌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게 된다. 상호충돌을 제도적으로 막아보자는 시도는 곳곳에서 시도된다. 그러나 이것을 제도적으로 접근하기에는 다른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119조에서 제기한경제민주화같은 것이 바로 그런 시도의 발단이라고 할 수 있다. 논리성과 현실성과의 괴리의 문제이다. 또한 개인의 행복추구가치가 주관에 몰입될 경우 사회가 개인 개인의 행복가치끼리 상호 충돌하는 모순을 제기하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공정한게임의 룰과 정부 경제운영의 목표를 경쟁과 함께 개인의 행복가치에 중점을 둔다는 점을 분명하게 천명하여야 한다.

이와 연관하여 행복이 번영학의 중요한 정책가치로 등장하게 된다.

21세기 초반 세계경제의 큰 변혁 앞에 경제학의 분과학문으로서의 신 자유주의 경제학이나 개발경제학은 나름대로의 가치체계 위에 세계경제발전에 기여를 하였다고 할 수 있지만 이제 그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21세기 초 세계경제의 침몰 앞에 작은 정부는 더 이상 자기정당성만 고집할 수 없게 되었다. 아니 이미 정부의 시장간여는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절대빈곤을 처리하기 위한 성장정책보다는 상대적 빈곤과 형평, 복지 그리고 개인의 행복이 더 큰 정책가치라고 사회는 소리를 지른다. 개발경제학은 설 자리가 없다. 번영학의 설 자리이다.

 

5. 번영학이 지향하는 가치체계

신 자유주의 경제학이나 개발경제학을 뛰어 넘는 경제학의 분과학문으로서 변영학이 지향하는 가치체계는 무엇이어야 할까? 번영학이 추구하는 가치체계는 한마디로 지속 가능한 경제발전전략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발전은 경제성장을 토대로 소득수준을 향상시키고, 경제구조를 심화 발전시켜 지속 가능한 성장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동시에 개인의 자유 평등 행복을 최대한 보장하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체계의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서 번영학은 기존의 개발경제학을 통한 경제성장 전략을 심화 발전시키고, 시장의 능률을 전제로 신 자유주의를 계승 발전시켜 나간다. 시장의 능률을 바탕으로 경제구조가 심화 발전되어 경제성장으로 연결되는 발전전략이 중심이 되고, 여기에 개인의 자유, 평등, 공정 그리고 행복의 가치가 함께 추구되는 복합된 가치체계를 번영학이 지향하는 가치체계로 정리되어야 할 것이다.

 

6. 번영학이 제시하는 접근방법

번영학이 추구하는 가치체계를 달성하기 위한 접근방법은 학문적 이론체계 중심의 논리 보다는 현실적이고 실사구시적인 정책대안의 제시가 중심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번영학이 추구하는 이론의 틀을 다음과 같이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 신자유주의의 중심축인 시장의 능률을 경제정책의 기본가치로 하여야 한다. 시장의 간섭은 말할 것도 없고 시장규제도 최소화해야 한다.

. 반면 무조건적인 작은 정부의 추구보다는 정부기능의 재정립을 요구한다. 번영학은 시장규제의 필요성이나 한계를 제시하는 정부기능의 재정립을 요구한다. 주요정책변수를 보다 능동적으로 활용하여 시장의 무기력이나 과속, 지나침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정부는 개발경제학의 토대 위에서 국민생활의 기본수요를 책임져야 한다. 적정한 성장, 안정, 고용 그리고 생활의 기본수요가 정부책임 하에 달성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시장 일탈자에 대한 정부지원은 행복추구권적 논리로 격상되어 추구되어야 한다. 21세기 정부기능은 이 부문에 보다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가난은 나라님도 못 구 한다는 우리 속담에서 벗어나 가난은 나라님(정부)가 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 질서의 유지는 21세기 정부의 지상의 책무이다. 개인의 행복추구가 독선과 아집으로 연결되어 법질서를 파괴하거나 법질서 유지를 어렵게 하는 것은 절대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경제적 우위자와 열위자 간에 생길 수 있는 부당행위는 법질서유지 차원에서 엄격하게 집행하여 공정거래질서가 확립하도록 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공정한 게임의 룰이 확립되는 사회를 추구한다. 경제우위자의 부당행위는 말할 것 없고 막무가내기 식 자기이익만 주장하는 행위는 게임의 룰 위반자로 처리되어야 한다.

. 새로운 세계경제질서의 확립을 위하여 기존의 브레튼우드 체제를 재정립할 것을 추진해야 한다. IBRD, IMF, WTO의 기능이 새로운 세계질서 수립에 알맞게 조정되어야 한다. 브레튼우드 체제가 몇몇 승전국이 중심이 되어 전통산업 중심의 발전전략을 기축으로 만들어진 국제체제라고 전제한다면, 이제 세계경제질서는 그 규모나 구조 모두 엄청난 변화 앞에 직면하고 있다. 

  전후 70년의 세월이 흘러 34 OECD 가입 선진경제권이 생겼고 많          은 신흥시장이 생겨나고 있다. 기술과 속도의 발달과 자원의 개발로 세계경제의 이합집산은 엄청난 속도의 변화 속에 수직적 통합이 시도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역적으로 전통산업 중심으로 경제적 이익에 따라 수평적 이합집산이 이루어진 것이 전 후 지금까지의 세계경제질서의 흐름이었다면 이제 그 흐름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 변화의 흐름에 맞게 새로운 브레튼우드 체제가 모색되어야 한다.

우리 귀에 익숙한선진국이나선진경제권은 더 이상 세계경제 발전의 견인차나 후진국에 대한 시혜 제공자가 아니다. 일부 선진경제들은 세계경제질서에 큰 부담만 주는 존재로 전락하고, 일부는 부모 덕에 잘 살던 부잣집 자식이 내 보이는 철없는 몽니만 부리는 모습으로 세계경제질서에 다가오고 있다.

절대빈곤의 퇴치에 모든 능력을 집중하던 개발도상국 들도 이제 일부는 선진경제권으로 일부는 신흥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그루핑되고 있다. 아직도 천연자원에만 의존하여 게으름 피우는 후발경제권이 있는가 하면, 지금까지 부담(liability)으로만 여겨지던 인구(population)나 인력(man power)의 여유를 가지고 경제운영에서 소비력과 경쟁력을 자랑하는 후발 경제권도 생겨나고 있다. 반면 기술개발에 온 힘을 쏟고 있는 일부 개도국경제권은 신기술의 개발과 융합을 통하여, 일부는 선진기술과의 수직적 통합을 통하여 쉽게 선진경제권을 제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엄청난변화의 시대에는 알맞는 새로운 브레튼우드 체제를 모색해야 한다. GATT가 집행력을 담보로 변신하여 WTO가 생겨났듯이 IBRD IMF도 거듭나는 변화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아니 이뿐 아니라 브레튼우드 체제 자체가 거듭 낳는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

 

7. 국가경제운영 전략으로서의 번영학의 위치

이상에서 번영학의 가치체계와 접근방법을 국가경제운영의 전략차원에서 정리하여 보았다. 역사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1915)이후 100여년의 세월 속에서 부침하였던 경제이론은 나름대로 시대성을 반영하면서 기여를 하면서 수명을 다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정부기능 조정을 놓고 벌려왔던 케인즈와 하이예크의 경제논리, ()의 집중에 반항하는 칼 맑스의 자본론, 2차대전후 후진국경제에 불을 비추어준 개발경제학 그리고 금융시장의 발달과 함께 미국의 월스트리트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 등등 이런 모든 학문체계들이 나름대로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하면서 세계경제운영에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절대빈곤 속에서 경제주체들은 자본가에게 저항도 해 보았고, 스스로의 의식주를 해결하기위하여 온갖 뼈를 깍는 노동을 감수하기도 하였다. 전국가적으로 빈곤타파를 위한 여러 개발전략들이 제시되고 나라에 따라 이를 활용하는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가 나뉘어가게 되었다. 월스트리트를 중심으로한 금융태풍은 그것을 알던 모르던, 더군다나 이 일과 관련이 없는 모든 지구인들에게 하늘에서 떨어지는 운석처럼 당황을 몰고 왔다.

이 앞에 개발경제학이니 신자유주의니 하는 논리들은 스스로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경제주체들도 국가의 발전, 자기가 속한 조직의 발전보다도 ''라고 하는 개인의 가치를 더 중요시하는 세계로 닥아가고 있다. 국가경제의 발전이나 자기회사의 발전보다 나의 '경제격상' '개인의 행복'이 주요한 가치로 등장하고 있다.

'변화의 시대는 변해야 산다'는 논리답게 이제 국가경제운영이 개발경제학이나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나 보다 행복을 여는 '번영학'의 토대위에 이루어져야 할 시대로 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