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신문에서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농수산식품부가 '농식품부 샌존의 길 : 창조적파괴'라는 제목을 가지고 부내 심포지움을 한다고 한다. 그들은 거꾸로 농식품부가 망하는 길이라는 것도 이미 내걸고 있는 모양이다.
첫째 일회성 퍼주기식 보조금에 기대고 있는 경우 둘째 경제적 합리성보다는 정치사회적 개념이 우선되는 정책을 펴는 경우 셋째 국내외 시장여건의 변화를 거부하는 철밥통문화를 지속하는 경우 넷째 현장과 괴리된 탁상행정에 빠지는 경우 등이 농식품부가 망하는 길이라고 분석하는 모양이다.
옳은 말이고 지당한 접근이 아닐 수 없다. 요즘 대개의 경우 시장이 변하고 그 뒤를 정부가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직 농업시장의 변화를 찾기 힘든 터에 농식품부가 먼저 변화를 찾는 자세를 내보이는 것은 훌륭한 일이고 이를 이끌고 있는 장관 이하 관료들의 자세에 존경을 표한다.
벌써 3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1970연대 초에서 말까지 농업정책의 변화를 정부 내에서도 많이 시도한 바 있다. 당시 농업에 조금이라도 손이 가는 정책접근에 대하여 농식품부는 앨러지성 반응을 보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반대의 입장에 서있는 당시 경제기획원 관리들에게 그들은 적의에 찬 반응까지 보였었다. 결국 농업부문의 구조조정은 이루어지지 않은채 김영삼정부 후반부터 천문학적인 자금을 농업구조조정 명목으로 퍼부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이어진 이 투자는 농업구조개선 뿐만 아니라 농업인 그리고 그와 관련된 기구 전문가들 모두의 의식변화도 가져오지 못하였다. 성큰코스트가 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쌀의 관세화정책은 지금까지도 해결하지 못하고 WTO의 최소시장접근에 해당하는 쌀을 매년 한국은 수입하고 있다. 이미 일본은 이문제를 앞장서 해결하였다. 지금 국내 쌀 생산이 수요를 초과하고 여기에 억지로 들여온 엄청난 양의 수입쌀까지 합쳐 정부는 진퇴양난이다. 우선 관세화하는 길밖에 없는데 고양이 목에 방울 달 사람이 없는 것이다.
지금 농식품부 내부의 바람이 아마 이런 일련의 문제의식에서 출발된 것으로 보인다. 농업은 이제 오히려 미래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저생산성의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오히려 요즘 유행하는 융합(convergence)산업으로 농업이 그 대상이 되지 않을까 발전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다.
2010년 3월 23일 화요일
2010년 3월 17일 수요일
FT의 코리아 죽이기, 띠우기
영국의 Financial Times는 3월 17일자에 ' 한국 국제사회 뉴 리더로 부상'이라는 기사를 실었다고 동아일보가 기사화하였다.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을 거절당하고 자결한 이준열사의 뼈아픈 역사를 디디고 100여년 만에 한국은 세계 20개국 정상회의에 의장국이 되어 세계경제 발전방향을 주도적으로 협의하게 되었다고 동 신문은 한국의 발전을 추켜세웠다. 특히 2008년의 리먼사태 이후 한국경제가 보여준 괄목할 위기극복노력과 이에 따른 경제회복실적을 소개하였다. 또 동시에 이해 말 G20 정상회의에서 중국 위엔화 절상등 세계적 경제협력방향에 한국의 리더십 발휘를 기대한다는 찬사 일변도의 기사를 실었다고 한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반갑기보다는 씁쓸한 감정을 누를 수가 없다. 우선 피낸셜 타임스가 어떤 신문인가? 최근 한국관련 특히 한국경제의 위기가능성을 세계 어느 신문보도 보다 앞장서 나쁘게 보도한 신문이다. 지난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그랬고 지난 2008년 말 리먼사태 이후 세계경제 위기 앞에 한국경제가 금방 망가질 것 처럼 침소봉대한 신문이 아닌가? 필자의 편견도 있는지 모르지만 한국경제가 깨어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매일 쏟아낸 당시의 기사 들을 접할 때 필자는 마치 이 신문이 무슨 국제 헤지편드에 연관된 것 아닌가하는 의심하기까지 하였다. 마치 외환위기가 곧 닥칠 것 같은 상황을 전망하는 기사를 검증이나 한국정부 또는 전문가의 의견도 없이 얼마나 써대는지 정말 치가 떨릴 정도였다.
그런 신문이 왜 한국경제를 아니 한국을 이렇게 찬사 일변도로 띠우고 있는지 오히려 의심이 가는 것은 나의 지나친 선입견인가? 특히 G20정상회의에서 미국과 중국과의 껄끄러운 관계의 표면적인 이유가 되고 있는 위엔화 절상 문제를 한국이 중재할 것을 기대한다는 대목에서는 고개가 갸우뚱해지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한국의 위상이 격상이 되었고 G20정상회의의 의장국 입장에서 국제적 협력 아젠다를 조정할 수는 있겠지만 중국과 미국의 센서티브한 현안 조정에 한국이 어떻게 리더십 발휘를 할 수 있을지 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기축통화의 당사국인 미국이나 영국이 이번 세계위기에 단초가 된 지금 1985년의 플라자 미팅으로 일본의 옌을 단번에 조정했던 때를 그리워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중국은 일본보다는 훨씬 이것저것 가리지 않는 나라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판에 한국이 끼어들 수 있는 여지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한편 한국경제의 회복 탄력이 2009년 4분기 이후 급격히 사그러 들고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평가하지만 재정의 한계와 원화의 절상 흐름 속에서 한국경제의 회복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재정의 악화를 더욱 방치하기도 힘들고 금리를 더 인하할 수도 없다. 그리스를 포함한 EU의 경제전망도 밝지 않다. 중국도 속도의 문제는 있지만 인프레 대책과 통화절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경제의 회복도 기대보다는 느리고 그들도 수출을 통한 경기회복에 매달리고 있다. 모든 이런 상황이 한국경제에는 단기적으로 도움이 되지않는 요인들이다. 잘못하면 지난 1년동안의 한국경제 회복 탄력이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힘을 잃게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0년 한국경제는 경제회복의 탄력이 다른 나라에 비하여는 아직 높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재정이 전만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직 여유가 있고 수출도 비관적이지 않다. 경제성장도 잘하면 5~6%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그래도 한국경제의 취약성(fragility)은 여전하다. 따라서 쓸데없는 자만심이나 우물안개구리식의 편협된 후진성을 버리고 세계 속에 한국을 키워나아가는 진취성과 세밀한 전략을 세워가야 할 것이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반갑기보다는 씁쓸한 감정을 누를 수가 없다. 우선 피낸셜 타임스가 어떤 신문인가? 최근 한국관련 특히 한국경제의 위기가능성을 세계 어느 신문보도 보다 앞장서 나쁘게 보도한 신문이다. 지난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그랬고 지난 2008년 말 리먼사태 이후 세계경제 위기 앞에 한국경제가 금방 망가질 것 처럼 침소봉대한 신문이 아닌가? 필자의 편견도 있는지 모르지만 한국경제가 깨어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매일 쏟아낸 당시의 기사 들을 접할 때 필자는 마치 이 신문이 무슨 국제 헤지편드에 연관된 것 아닌가하는 의심하기까지 하였다. 마치 외환위기가 곧 닥칠 것 같은 상황을 전망하는 기사를 검증이나 한국정부 또는 전문가의 의견도 없이 얼마나 써대는지 정말 치가 떨릴 정도였다.
그런 신문이 왜 한국경제를 아니 한국을 이렇게 찬사 일변도로 띠우고 있는지 오히려 의심이 가는 것은 나의 지나친 선입견인가? 특히 G20정상회의에서 미국과 중국과의 껄끄러운 관계의 표면적인 이유가 되고 있는 위엔화 절상 문제를 한국이 중재할 것을 기대한다는 대목에서는 고개가 갸우뚱해지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한국의 위상이 격상이 되었고 G20정상회의의 의장국 입장에서 국제적 협력 아젠다를 조정할 수는 있겠지만 중국과 미국의 센서티브한 현안 조정에 한국이 어떻게 리더십 발휘를 할 수 있을지 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기축통화의 당사국인 미국이나 영국이 이번 세계위기에 단초가 된 지금 1985년의 플라자 미팅으로 일본의 옌을 단번에 조정했던 때를 그리워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중국은 일본보다는 훨씬 이것저것 가리지 않는 나라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판에 한국이 끼어들 수 있는 여지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한편 한국경제의 회복 탄력이 2009년 4분기 이후 급격히 사그러 들고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평가하지만 재정의 한계와 원화의 절상 흐름 속에서 한국경제의 회복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재정의 악화를 더욱 방치하기도 힘들고 금리를 더 인하할 수도 없다. 그리스를 포함한 EU의 경제전망도 밝지 않다. 중국도 속도의 문제는 있지만 인프레 대책과 통화절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경제의 회복도 기대보다는 느리고 그들도 수출을 통한 경기회복에 매달리고 있다. 모든 이런 상황이 한국경제에는 단기적으로 도움이 되지않는 요인들이다. 잘못하면 지난 1년동안의 한국경제 회복 탄력이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힘을 잃게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0년 한국경제는 경제회복의 탄력이 다른 나라에 비하여는 아직 높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재정이 전만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직 여유가 있고 수출도 비관적이지 않다. 경제성장도 잘하면 5~6%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그래도 한국경제의 취약성(fragility)은 여전하다. 따라서 쓸데없는 자만심이나 우물안개구리식의 편협된 후진성을 버리고 세계 속에 한국을 키워나아가는 진취성과 세밀한 전략을 세워가야 할 것이다.
2010년 3월 15일 월요일
여중재 팁 (10-03-15)
* 원자바오 중국총리의 양회 후 기자회견(10-03-13)에서 인용한 글귀 중 세가지를 소개합니다.
亦余心之所善兮, 雖九死猶未悔 (선한 일을 위해 아홉번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다)
行百里者半九十 (백리를 가는 사람에게 절반은 구십리다)
不畏浮雲遮望眼,自緣身在最高層(뜬 구름이 시야를 가리지 못하리니, 내 몸이 높은 곳에 있어서라네)
오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듯한 선문답이 실제 정치에 얼마나 전달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중국인들은 특유의 은유법을 즐겨 쓰고 있습니다. 미국을 향한 그의 내심을 드러내는 내용들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어려운 글귀를 들먹인들 실제 현실이 그에 따르지 못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공허한지 스스로 알 것입니다. 등소평의 黑猫白猫論(개방에서 흰고양이건 검은 고양이건 무슨 상관이랴) 같은 전달감은 없지만 중국인 특유의 和平堀起(평화롭게 우뚝 일어선다)를 외치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미국 중국 일본 그리고 EU가 각기 상호간의 마찰음이 소음의 단계를 넘어 세계인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한국의 처신은 어찌해야 할지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G20 의장국이라는 과분한 착각 속에 노무현 전대통령같은 치기가 발현되지 않도록 韜光養晦(도광양회 : 빛을 감추고 은밀하게 힘을 기르다)하는 전략으로 국력을 가다듬어야 하겠습니다.
亦余心之所善兮, 雖九死猶未悔 (선한 일을 위해 아홉번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다)
行百里者半九十 (백리를 가는 사람에게 절반은 구십리다)
不畏浮雲遮望眼,自緣身在最高層(뜬 구름이 시야를 가리지 못하리니, 내 몸이 높은 곳에 있어서라네)
오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듯한 선문답이 실제 정치에 얼마나 전달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중국인들은 특유의 은유법을 즐겨 쓰고 있습니다. 미국을 향한 그의 내심을 드러내는 내용들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어려운 글귀를 들먹인들 실제 현실이 그에 따르지 못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공허한지 스스로 알 것입니다. 등소평의 黑猫白猫論(개방에서 흰고양이건 검은 고양이건 무슨 상관이랴) 같은 전달감은 없지만 중국인 특유의 和平堀起(평화롭게 우뚝 일어선다)를 외치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미국 중국 일본 그리고 EU가 각기 상호간의 마찰음이 소음의 단계를 넘어 세계인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한국의 처신은 어찌해야 할지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G20 의장국이라는 과분한 착각 속에 노무현 전대통령같은 치기가 발현되지 않도록 韜光養晦(도광양회 : 빛을 감추고 은밀하게 힘을 기르다)하는 전략으로 국력을 가다듬어야 하겠습니다.
2010년 3월 13일 토요일
Power senior가 되기위한 조건
최근 유행하는 말로 'well being' 에 이어 'grace aging' 이라는 말이 있다. 잘먹고 잘 살다가 웰빙이라면, 고상하게 잘 늙어가는 것이 그레스 에이징일 것이다. 老貪, 老醜 등의 반대개념이 그레스에이징일 것이다. 그러나 고상하다는 말은 여러 조건이 같추어질 때 가능할 것이다. 우선 건강에 큰 무리가 없어야 하고 경제적으로 어느정도 여유가 있어야 주변을 생각하게 만들 것이다. 다음 버리는 마음이 있어야 탐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탐욕하는 마음이 없어야 늙어 주변에 추함을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well dying' 도 못지 않게 중요한 가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아무리 그레스에이징을 한다 해도 죽음 앞에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요즘같이 오래 살고 의학의 발달로 웬만한 병들은 인공으로 극복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죽음을 극복할 수는 없고 죽음의 양태도 자기 의지와 별로 상관없이 나타난다. 그러니 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일지 모를 일이다.
나이 들어감에 이러한 가치들이 새삼 중요시 되고 가슴에 와 닫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나이들어감을 죄스러워하는 의식이 있다고 한다. 이런 의식은 혈연을 중시하는 전통유교정신에서 더 특별히 나타나는지 모르겠다. 내가 오래 살아서 내 자식에게 내 주변에 폐가 됨을 걱정하는 의식일 것이다.
그러나 그레이스에이징에서는 오히려 늙음을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 자랑스럽고, 자신의 많은 경험과 경륜을 펼쳐야 할 중요한 가치로 생각해야 한다고 어느 전문가는 이야기 한다. 거기서 늙음에 대한 위축과 소외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IMF를 지나면서 한국사회는 갑자기 늙은이를 사회의 한 구석으로 밀쳐버리는 사회로 변모되었다. 늙음은 사회의 자산이 아니라 부채(liability)라는 개념이 확산되면서 한국사회의 늙은이들은 무식하고 쓸모없는 계층으로 치부되고 있는게 현실이다.
어느 분의 저서에서 'power senior'라는 글귀를 읽었다. 아마 그레이스에이징을 넘어 늙은이들이 능력을 발휘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말일께다. 65세 이상 노인을 4인 젊은이들이 부양하는 사회가 한국사회라면 머지않아 일본처럼 4인이 아니고 3인 그리고 한사람의 젊은이가 같은 수의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시대가 온다. 노령사회의 암담한 모습이다. 그렇다면 늙은이가 스스로를 부양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활력을 찾고 국가가 민족이 유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파워 시니어의 시대가 되기위한 조건을 생각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법정스님의 말씀 중 이웃을 돕는 것은 보시가 아니고 자기 인생의 확장이라고 하였다. 내가 옳게 이해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늙은 이 인생의 확장으로 파워시니어의 가치를 해석하여 욺추르기보다는 뻗어나가 생산활동에 참여하고 이웃을 돕고 나아가 사회에 기여하는 시니어 파워가 지배하는 사회를 만드는 일을 생각해 보자.
'well dying' 도 못지 않게 중요한 가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아무리 그레스에이징을 한다 해도 죽음 앞에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요즘같이 오래 살고 의학의 발달로 웬만한 병들은 인공으로 극복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죽음을 극복할 수는 없고 죽음의 양태도 자기 의지와 별로 상관없이 나타난다. 그러니 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일지 모를 일이다.
나이 들어감에 이러한 가치들이 새삼 중요시 되고 가슴에 와 닫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나이들어감을 죄스러워하는 의식이 있다고 한다. 이런 의식은 혈연을 중시하는 전통유교정신에서 더 특별히 나타나는지 모르겠다. 내가 오래 살아서 내 자식에게 내 주변에 폐가 됨을 걱정하는 의식일 것이다.
그러나 그레이스에이징에서는 오히려 늙음을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 자랑스럽고, 자신의 많은 경험과 경륜을 펼쳐야 할 중요한 가치로 생각해야 한다고 어느 전문가는 이야기 한다. 거기서 늙음에 대한 위축과 소외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IMF를 지나면서 한국사회는 갑자기 늙은이를 사회의 한 구석으로 밀쳐버리는 사회로 변모되었다. 늙음은 사회의 자산이 아니라 부채(liability)라는 개념이 확산되면서 한국사회의 늙은이들은 무식하고 쓸모없는 계층으로 치부되고 있는게 현실이다.
어느 분의 저서에서 'power senior'라는 글귀를 읽었다. 아마 그레이스에이징을 넘어 늙은이들이 능력을 발휘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말일께다. 65세 이상 노인을 4인 젊은이들이 부양하는 사회가 한국사회라면 머지않아 일본처럼 4인이 아니고 3인 그리고 한사람의 젊은이가 같은 수의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시대가 온다. 노령사회의 암담한 모습이다. 그렇다면 늙은이가 스스로를 부양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활력을 찾고 국가가 민족이 유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파워 시니어의 시대가 되기위한 조건을 생각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법정스님의 말씀 중 이웃을 돕는 것은 보시가 아니고 자기 인생의 확장이라고 하였다. 내가 옳게 이해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늙은 이 인생의 확장으로 파워시니어의 가치를 해석하여 욺추르기보다는 뻗어나가 생산활동에 참여하고 이웃을 돕고 나아가 사회에 기여하는 시니어 파워가 지배하는 사회를 만드는 일을 생각해 보자.
2010년 3월 12일 금요일
여중재팁(03-12)
* David Landes의 '국가의 부와 빈곤'에서 중국이 쇠망의 길을 걸었던 것은 자부심, 타국에 대한 상대적 우월감, 무관심에서 왔다고 분석했다. 지금 한국사회가 번영의 길을 걷는다하여 오만하고 자만하고 우월감이 지나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 朱子 : 妙契疾書(묘계질서) 깨달음이 생기면 재빨리 써둔다. 사실 현대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메모의 습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디어가 떠 오르면 즉시 메모하고, 그 메모는 한 사람의 산 인생기록이 됩니다. 우리사회의 부족한 면이 부실한 기록이라고 한다면 이제부터라도 우리 모두 기록의 버릇을 기르도록해야겠습니다.
* 法頂 : 법정스님이 타계하면서 우리에게 '無所有'라는 큰 가르침을 남기셨습니다. 그분은 한 강연에서 '덕이 내 인생의 잔고(殘高)로 남도록 합시다'라는 좋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 敎學相長 : 가르치면서 배우고 함께 성장한다.
* 朱子 : 妙契疾書(묘계질서) 깨달음이 생기면 재빨리 써둔다. 사실 현대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메모의 습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디어가 떠 오르면 즉시 메모하고, 그 메모는 한 사람의 산 인생기록이 됩니다. 우리사회의 부족한 면이 부실한 기록이라고 한다면 이제부터라도 우리 모두 기록의 버릇을 기르도록해야겠습니다.
* 法頂 : 법정스님이 타계하면서 우리에게 '無所有'라는 큰 가르침을 남기셨습니다. 그분은 한 강연에서 '덕이 내 인생의 잔고(殘高)로 남도록 합시다'라는 좋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 敎學相長 : 가르치면서 배우고 함께 성장한다.
2010년 3월 10일 수요일
여중재 팁(03-10)
1. 한국의 외채
2009 2008
장기 (1년 이상) 251.962 백만달러 228.050 백만달러
단기 149.960 149.894
합계 401.922 377.944
* 장기채의 위험 : 채권투매
만기의 일시도래
2. 일본과 한국경제
1945년 일본경제가 한국경제의 16배
2010년 3배
* 가전 조선 한국이 앞섰고 철강 자동차 차이가 좁혀지고 있다.
반도체 정보통신 한국이 우위
노벨상 수상자 일본 15명 한국 0
연구개발 투자 한국이 일본의 20% 수준
일본병 : 자만, 폐쇄, 경직
3. nut cracker -- trap of triangle
NEET : not in education, employment and training
能變如常 : 변함으로써 변하지 않는 지혜 : 물오리의 자맥질
2009 2008
장기 (1년 이상) 251.962 백만달러 228.050 백만달러
단기 149.960 149.894
합계 401.922 377.944
* 장기채의 위험 : 채권투매
만기의 일시도래
2. 일본과 한국경제
1945년 일본경제가 한국경제의 16배
2010년 3배
* 가전 조선 한국이 앞섰고 철강 자동차 차이가 좁혀지고 있다.
반도체 정보통신 한국이 우위
노벨상 수상자 일본 15명 한국 0
연구개발 투자 한국이 일본의 20% 수준
일본병 : 자만, 폐쇄, 경직
3. nut cracker -- trap of triangle
NEET : not in education, employment and training
能變如常 : 변함으로써 변하지 않는 지혜 : 물오리의 자맥질
2010년 3월 8일 월요일
종속(dependency)의 문제를 생각한다.
1. 종속이론의 변천
2차대전 이후 한때 경제운영에서 종속이론(dependent theory)이 유행처럼 풍미한 때가 있었다. 전후 후진국이론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후진국경제의 선진국경제에의 종속성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고, 그것이 마치 자본주의의 태생적 모순인 것처럼 확대 해석하는 것이 유행처럼 된 일이 있었다. 남미국가들을 중심으로 개방경제 내지 자유무역(free trade)의 모순을 강조하고 아직도 그 잔영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후 ‘무역과 관세에 관한 일반협정(GATT)’이 발족되고 자유무역 확대를 중심으로 세계경제는 빠른 발전을 하게 되었다. 일본을 비롯하여 저개발국가 들의 경제발전이 무역을 통하여 이루어지면서 일본은 선진국으로 진입 되었고 일부는 ‘개발도상국가(developing country)'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어 발전대열에 참여하였다. 개방정책을 편 나라들은 종속이론으로 자립경제를 지향한 국가들 보다 발전 속도가 빠르게 나타났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龍)으로 표시되는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가 빠른 발전그룹에 속하였다. 이 발전과정에서 세계은행(IBRD)과 국제통화기금(IMF)은 저개발국의 경제지원과정에서 여러 가지 형태의 개방경제체제에 맞는 경제정책을 권유하고 지원조건(terms of conditions)으로 강요하기도 하였다. 그런 일들이 물론 수원국 들의 경제발전 속도를 가속시킨 결과가 되었고 그래서 요즈음 신흥국(emerging market)의 이름으로 세계시장에서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다른 한편 2차대전 이후 미국의 달러가 기축통화로서 자리매김을 하고 미국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영국 파운드화의 기축통화 기능을 제약시키고 그 위력을 무력화시켰다. 미국의 달러는 미국의 월스트리트 발전과 함께 세계경제의 제왕적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금융중심의 경제정책은 여러 가지 형태의 파생금융상품(derivatives)을 시장에 범람케 만들었고 종국은 그것들의 충돌(mismatch)이 2008년 미국 발 세계금융위기로 나타나게 되었다.
대공황 앞에 세계는 경악하였고 그 당사자인 미국은 말할 것 없고 그 사촌지간 쯤 되는 EU 국가들은 당황하면서 이 문제를 재정으로 틀어막아 보려 시도하기 시작하였다. 이 위기 앞에 신자유주의는 단번에 자취를 감추었고 천문학적인 재정지출을 통하여 파멸을 막아 갔다. 그리고 1년 반의 세월이 흘렀다. 그 처방이 옳고 그름을 떠나 세계경제는 1910년대의 대공황의 공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경제에서 공짜 도시락은 없다. 지금 우리네 지구촌은 쓰레기더미처럼 쌓인 재정적자와 정부부채 앞에 망연자실하고 있다. 그리스가 국가부도가 나느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지금 이 순간도 세계가 고민하고 있다. 아이스란드의 부도위기는 국민투표결과에 달렸다. 스페인이 그렇고 다음 일본이 그렇고 영국 미국이 또 그렇단다.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가치는 흔들리고 있다. 달러 일변도의 지배에 중국이 제일 먼저 딴지를 걸고 나왔다. IMF의 특별인출권을 확대하여 기축통화로서의 기능을 하게하자는 중국 측 주장(?)에 IMF로서도 환영하는 속내를 들어내고 있다. 기축통화의 당사국인 미국 영국의 통화가 흔들리고 자기가 위기를 가져온 장본인인판에 이제 종래의 G7 또는 G8 협의체는 세계경제를 이끌어갈 도덕적, 경제적 지도력을 상실하였다.
한국경제도 예외랄 수는 없다. 재정적자가 GDP의 2.7%, 국가부채가 39%수준이니 다른 나라 평균 수준에 비하여 아직 걱정할 것 없다고 정부는 설명하고 있지만 그 나빠지는 속도는 오히려 매우 빠르다. 재정의 건전성은 아직 여유가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출구전략을 생각할 여유는 아직은 부족하다.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지금 지구촌은 경제적 위기에서 자유로운 나라가 없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하이에크나 밀튼 후리드만은 지하에서 무어라 말할까? 그래서 죤 메이나드 케인즈를 모셔 와야 하는가? 금융의 위기가 재정의 위기로 전이되고 있는가?
이런 세계적 경제위기 앞에 세계가 공동대처를 하자고 하는 의미로 미국의 부시 전 대통령은 G20정상회의라는 것을 만들었다. 옳은 대처방안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한국의 이명박대통령은 지난 두 차례 정상회의에서 자유무역을 주장하고 나섰다. 금석지감이 있는 일이지만 지난 세월 한국경제는 언제나 보호의 그늘에서 도움을 얻고자 노력하였다. 그런 한국경제가 이 세계적 경제위기 앞에 세계가 자국경제보호를 위하여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는데 오히려 전통적인 자유무역을 주창하고 나간 것은 한국경제로서 자긍심이 생기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 미국 영국 불란서 독일 등의 속내가 궁금하다. 개방에서 보호로 얼마나 가는가?
2. 한국경제의 양극화
그렇다고 한국경제가 이 위기 앞에 여유로움이 있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외부충격에 대한 한국경제의 취약성(fragility)은 여러 부문에서 발견되고 실제 나타나고 있다. 1990년대 말의 외환의 미스매치가 가져온 한국경제의 취약성 노출, 리먼사태 이후 투기자본들의 악의에 찬 한국경제 폄훼농간에 사정없이 흔들리던 모습을 경험하였다. 그러한 취약성은 아직 한국경제가 자력으로 발전하고 외풍을 막아 갈 수 있는 능력을 덜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취약성을 가져온 여러 구조적 문제들 중에 나는 오늘 양극화의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경제구조의 양극화는 여러 측면으로 분석될 수 있지만 오늘은 대기업군과 그렇지 못한 기업간의 양극화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한국경제는 농지분배와 6.25전쟁으로 거의 균등한 빈곤상태에서 개발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1960년대 초 대외지향적개발전략에 따라 수출이 시작되고 여기서 수출에 참여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간에 발전의 속도가 벌어지게 되었다. 1970년대 소위 중화학공업개발전략에 따라 한국정부는 특정 산업을 개발하기 시작하고 여기에 참여할 기업을 선별적으로 선택하여 집중지원을 하게 되었다. 여기서 재벌이라는 이름의 대기업이 생기게 되고, 이 대기업에 기대어 사업을 하게 되는 하청 내지 계열기업이 생겨나게 되었다. 중화학에 참여한 대기업은 많은 정부지원 만 믿고 경제성이고 경쟁력이고 하는 문제를 따질 겨를이 없이 사업은 확장되고 기업의 크기는 욱일승천의 기세로 커져갔다. 그것이 많은 문제를 배태하여 1970년대 말 중화학공업 조정기를 거치게 되었지만 그 때도 산업의 조정이나 시장의 조정은 있었지만 관련 대기업의 조정은 없었다. 따라서 관련 대기업은 사업의 성패와는 관련 없이 날로 날로 커지고 발전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정책당국의 입장은 매우 합리적이고 분명하였다. 대기업의 지나친 편중발전이라는 논란에 대하여 그 크기의 세계적위상이 아직도 미미하다는 점과 합리적인 기업 계열화를 통하여 중소기업이 발전할 수 있다는 논리로 대응하여 갔다. 일본 기업군의 합리적 계열화를 벤치마크하면서 정책당국은 한국경제에서의 기업의 양극화 문제를 애써 외면하여 왔다.
1980년대 한국경제는 소위 자율과 개방을 표방한 안정화시책으로 대기업에 대한 특혜적 지원을 감축시켰고 민주화과정에서 불법 파괴적 노동조합활동으로 기업의 의욕을 떨어트리는 과정을 겪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살아남고 계속 발전할 수 있었던 기업은 중소기업보다는 오히려 조직력이 강한 대기업들이었다. 더군다나 1990년대 민주정부의 방향성 잃은 경제운영에서 살아남고 계속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군이었다. 이런 대기업군이 결정적 타격을 받게 된 것이 1990년대 말 소위 외환위기 때였다. 외환거래에 덜 직접적이었던 일반 소기업이나 중기업보다는 대기업군 들이 직격탄을 맞고 많은 대기업들이 큰 시련을 겪으면서 많은 도태가 일어났다. 소위 50대 기업군 중에 IMF를 거치면서 남아난 대기업은 10여개에 불과하였다.
대기업 수의 감축에 따라 대기업사이에서의 경쟁이 줄어들고 정부의 몇 남지 않은 대기업에의 의존은 역설적으로 확대되면서 오늘 날 대기업의 한국경제에서의 비중은 더욱 확대된 모습이다.
2000년대 초 IMF 대기성차관 기간을 거치면서 한국경제는 전후좌우를 살필 겨를이 없이 시장보호 자물쇠를 풀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자본시장과 금융시장의 무차별적인 개방은 어떤 면에서 발가벗겨진 한국경제의 자화상을 연출하게 되었고 그것이 한국경제운영의 크나큰 취약성을 가져오게 하였다. 살아남은 대기업은 독자생존을 위한 피나는 노력을 하였고 정부는 무자비하게 금융기관을 통폐합시켰다. 대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위기를 맞아 종래와 같은 정부보호나 금융지원을 개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니 자구적 내부혁신과 함께, 계열 내지 관련기업에 대한 냉혹한 업무정리를 하게 되었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면서 과거 일본을 본받던 대기업과 계열기업간의 생산적인 협력관계가 무너지게 되었다. 그 서슬이 퍼렇던 대기업노동조합 들조차도 살아남기 위하여 파괴적 노동활동을 제한하기 시작하였다. 파워밸런스의 재정립이 일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 기업의 재무구조 개선은 금융기관의 자구노력과 함께 밀도 있게 추진되어 부채비율은 급속히 개선되었다. 그러나 기업의 지배구조(governance)에 대하여는 특별한 변화가 없었다. 공정거래측면에서도 그렇고 자본시장이나 금융시장에서의 제도적 개선책도 별로 제시되지 않은 가운데 그동안 기업지배와 관련된 현안문제에 대한 사법당국의 처분도 종래와 같이 친기업적으로 엄격하지 못하였다. 그러니 살아난 대기업의 힘(power)은 더욱 강고해 질 수밖에 없었다. 금융시장의 지배권이 약화되고 공정거래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이 취약한 정부의 입장에서 몇 안 되는 대기업에 대한 정부 관여 간섭은 물론 크게 줄 수밖에 없었다. 과거 정부의 대기업에 대한 지도 관여의 지배력은, 오히려 권유 눈치 아부의 관계로 전락되고 있다고 하면 심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정부는 대기업의 상황을 눈치나 보고 잘 해주기만 바라는 형국으로 변모되어가고 있다.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지나면서 그들의 서툰 못난 짓들로 정부의 모습은 점점 작아지고 대기업의 모습은 점점 커져간 형국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한국의 중소기업은 어떤 발전을 하고 있나? 역대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친중소기업정책을 항상 슬로건으로 내걸어왔다. 그래서 지금 한국사회가 중소기업이 진흥된 사회인가? 아니다. 중소기업진흥정책이라는 것이 시혜적으로 금융을 일부 확대하고 조건을 개선해준다고 해서, 세금을 우대하고 일부 시장을 제한하여 될 일이 아니다. 그것도 계속적이기보다는 단속적이고 일률적이기보다는 특정부문에 한정된 부족한 지원만 가지고 중소기업이 발전되기는 힘이 든다. 중소기업은 태생적으로 경쟁력이 취약하고 존립기반이 허약해서 외부충격에 견뎌내기 힘이 드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취약성을 순발력과 창의력으로 보완하고, 일정기간을 견딜 수 있는 자금력이 뒤 밭침 되어 발전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시장을 확보하기 위하여 중소기업은 대기업과의 업무제휴를 추구한다. 이러한 시장의 조직화는 산업사회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지식 정보사회에서 중소기업의 대기업계열화는 산업사회와 구별된다고 일반적으로 말할 수 있다. 특히 컨텐츠산업분야 같은 곳은 애초 중소기업분야인지 대기업분야인지 불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어느 부문을 아웃 소싱할 것인지를 구분하기가 어렵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대기업은 아예 자기가 모두 해치우는 방법을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많게 된다. 중소기업의 참여기회가 더욱 제한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참에 대기업은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모두 자기가 해치우는 사업영역의 독점화를 점차 확대해 가다보니 중소기업이 껴들 수 있는 여지는 점점 줄어들게 된다.
그러니 대기업과의 생산적 계열관계는 지난 시대의 향수인가 보다. 대기업에서 관계기업을 대하는 태도가 과거에는 상의하고 협력하는 자세를 가졌다면, 지금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토를 달 모양이면 ‘잘해보라’ 한마디로 관계가 결판난다고 한다. 과거의 부패(corruption)가 공공부패였다면, 지금의 한국사회의 부패는 시장의 부패(market corruption)가 더욱 문제라고 한다. 한편 정부의 중소기업에 대한 세제 금융지원도 구조적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다. 결론은 그러니 이미 존재하는 일부 대기업은 영역구분 없이 점차 확대되고 상대적으로 중소기업의 영역은 점차 축소되고 있는 현실이다.
경제위기극복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고용정책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가 보다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고용기회의 창출을 대기업에만 의존할 수 없어 한국정부는 중소기업의 고용지원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신규고용에 대하여 세액공제를 하여주고 심지어 임금의 일부를 정부가 보조하여 주는 획기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중소기업 고용이 한국의 고용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줄 만큼 효과가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과 유사한 수준의 임금과 고용조건을 내 걸어도 원하는 신규인력은 중소기업을 오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어느 종소기업인은 이렇게 설명한다. 아무리 좋은 임금과 조건을 준다 해도 일류 인력이 중소기업을 선택하지 않는 이유는 중소기업의 정체성(停滯性)에 있다고 한다. 10년전, 20년전 아니 40년전 중소기업이 그대로 오늘도 중소기업이고, 그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자의 몰골이 저 모양 저꼴인데, 40년 후의 자기모습을 보면서 누가 중소기업에 오겠느냐는 식의 자조 섞인 한탄이다.
대학졸업반에서 보면 일류 대기업에 입사하면 옛날 과거에 합격한 이상의 부러움을 사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몇몇 대기업의 허구 많은 경영진 수자와 그들의 상상을 초월한 임금수준을 신문에서 접하면서 몇 년 후의 자화상을 보는 착각 속에서 대기업 입사를 희구하게 된다. 무엇을 해서 성취하고자 하는 의욕보다는 최후의 자기 모습을 기존 대기업의 임금수준에서 찾고자하는 젊은이들의 시각에는 초라한 몰골의 중소기업은 들어오지 않는다. 독창적 연구개발이나 성취 보다는 기존질서에 의지하려는 젊은이들, 가정을 책임지고 회사 또는 사회를 책임지기보다는 나 하나의 이익(interest)에 보다 집착하는 젊은이들의 성향은 중소기업의 설자리를 점점 잃게 만들고 있다.
3. 해결책이 없음을 대책 세워야 한다.
사실 경제운영에서 종속(dependency)의 문제를 거론하기는 쉽지 않다. 하물며 한국경제처럼 완전하게 개방된 선진경제구조를 가진 경우 경제운영에서 특정분야나 특정그룹에 전체 경제가 종속되는 문제를 꺼내들기에는 너무 껄끄러운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현재의 양극화를 방치하여 그 정도가 심화되어 종국적으로 파멸로 수렴되는 길이 보인다면 그것을 더 이상 내버려 둘 수 없는 과제라고도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를 시정할 해결책을 발전된 개방경제 운영에서 찾을 수 없다는데 있다. 시장의 문제를 정부가 직접 간여하는데도 정책의 한계가 있다. 시장의 자연 치유를 기다리는 데는 인내의 한계가 있다. 돌아앉아 버리기에는 대기업의 도덕성에 한계가 있다. 해결책이 없음에 대책을 세워야 하겠다. 몇 가지 제언을 제시하여 보자.
첫째 늦었지만 기업의 지배구조를 정리하여야 한다. 몇 몇 대기업의 반발이 있을 것이지만 IMF 이후 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듯 지배구조도 이제 합리화해야 한다. 당시 함께 이루어졌어야 할 일이다. 이것은 친기업정책과는 관련 없는 일이다. 불합리한 기업지배구조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공정거래법, 상법 그리고 자본시장과 금융시장의 거래관계법들을 보완하고 그 집행을 엄격하게 해야 한다. 지나간 일이라고 어물쩍 지나가거나 기업 이미지 추락 등을 이유로 문제의 노출을 천연해선 안 된다. 오히려 제도개혁의 아픔으로 승화해야 한다.
둘째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이 일어나게 해야 한다. 기존 대기업의 한 지류라고 해서 경쟁에서 이득을 보고 가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시장의 독과점규제에서부터 시작하여 시장질서가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되도록 제도도 보완하고 시장의 흐름에 왜곡이 없도록 해야 한다. 기존질서의 힘으로 새로운 창의를 짓밟거나 싹을 자르는 일 같은 행위가 철저하게 막아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가 어렵다.
셋째 부(富)의 가치와 존경이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자본주의의 근간인 부에대한 사회의 존경이 어느 경우 던 확고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부의 형성과정의 투명성과 함께 정당한 상속절차가 이루어지도록하고 이것에 대하여 사회가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넷째 자본주의에 대한 교육을 철저하게 하여 자율, 개방, 경쟁, 가격의 가치가 사회의 일반적 가치로 정착되게 해야 한다. 여기에 더하여 한국적 윤리 도덕을 정립 추가할 필요가 있다. 종교로서가 아닌 생활의 가치로서 헌신, 근면, 협동 등의 ‘유교적가치’를 한국인의 합리적 일반가치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서구적가치와 유교적가치가 함께 승화되어 한국적가치로 정립될 때 한국자본주의는 철저한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다섯째 대기업군 내부에서도 이러한 한국경제의 종속의 문제요인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잘잘못의 문제가 아닌 한국자본주의의 한 단계 높은 발전을 위하여 시장의 질서를 올바르게 하는데 알게 모르게 방해되는 행동이 있는지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평가한다.
* 편집자 : 앞으로 필자가 살아가면서 그때그때 생각나는 팁(tips)들을 써 보고자 한다.
계영배(戒盈杯) : 술이 일정수준을 넘어 오르면 새어나가도록 만든 술잔
- 지나침을 경계합시다. -
2차대전 이후 한때 경제운영에서 종속이론(dependent theory)이 유행처럼 풍미한 때가 있었다. 전후 후진국이론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후진국경제의 선진국경제에의 종속성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고, 그것이 마치 자본주의의 태생적 모순인 것처럼 확대 해석하는 것이 유행처럼 된 일이 있었다. 남미국가들을 중심으로 개방경제 내지 자유무역(free trade)의 모순을 강조하고 아직도 그 잔영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후 ‘무역과 관세에 관한 일반협정(GATT)’이 발족되고 자유무역 확대를 중심으로 세계경제는 빠른 발전을 하게 되었다. 일본을 비롯하여 저개발국가 들의 경제발전이 무역을 통하여 이루어지면서 일본은 선진국으로 진입 되었고 일부는 ‘개발도상국가(developing country)'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어 발전대열에 참여하였다. 개방정책을 편 나라들은 종속이론으로 자립경제를 지향한 국가들 보다 발전 속도가 빠르게 나타났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龍)으로 표시되는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가 빠른 발전그룹에 속하였다. 이 발전과정에서 세계은행(IBRD)과 국제통화기금(IMF)은 저개발국의 경제지원과정에서 여러 가지 형태의 개방경제체제에 맞는 경제정책을 권유하고 지원조건(terms of conditions)으로 강요하기도 하였다. 그런 일들이 물론 수원국 들의 경제발전 속도를 가속시킨 결과가 되었고 그래서 요즈음 신흥국(emerging market)의 이름으로 세계시장에서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다른 한편 2차대전 이후 미국의 달러가 기축통화로서 자리매김을 하고 미국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영국 파운드화의 기축통화 기능을 제약시키고 그 위력을 무력화시켰다. 미국의 달러는 미국의 월스트리트 발전과 함께 세계경제의 제왕적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금융중심의 경제정책은 여러 가지 형태의 파생금융상품(derivatives)을 시장에 범람케 만들었고 종국은 그것들의 충돌(mismatch)이 2008년 미국 발 세계금융위기로 나타나게 되었다.
대공황 앞에 세계는 경악하였고 그 당사자인 미국은 말할 것 없고 그 사촌지간 쯤 되는 EU 국가들은 당황하면서 이 문제를 재정으로 틀어막아 보려 시도하기 시작하였다. 이 위기 앞에 신자유주의는 단번에 자취를 감추었고 천문학적인 재정지출을 통하여 파멸을 막아 갔다. 그리고 1년 반의 세월이 흘렀다. 그 처방이 옳고 그름을 떠나 세계경제는 1910년대의 대공황의 공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경제에서 공짜 도시락은 없다. 지금 우리네 지구촌은 쓰레기더미처럼 쌓인 재정적자와 정부부채 앞에 망연자실하고 있다. 그리스가 국가부도가 나느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지금 이 순간도 세계가 고민하고 있다. 아이스란드의 부도위기는 국민투표결과에 달렸다. 스페인이 그렇고 다음 일본이 그렇고 영국 미국이 또 그렇단다.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가치는 흔들리고 있다. 달러 일변도의 지배에 중국이 제일 먼저 딴지를 걸고 나왔다. IMF의 특별인출권을 확대하여 기축통화로서의 기능을 하게하자는 중국 측 주장(?)에 IMF로서도 환영하는 속내를 들어내고 있다. 기축통화의 당사국인 미국 영국의 통화가 흔들리고 자기가 위기를 가져온 장본인인판에 이제 종래의 G7 또는 G8 협의체는 세계경제를 이끌어갈 도덕적, 경제적 지도력을 상실하였다.
한국경제도 예외랄 수는 없다. 재정적자가 GDP의 2.7%, 국가부채가 39%수준이니 다른 나라 평균 수준에 비하여 아직 걱정할 것 없다고 정부는 설명하고 있지만 그 나빠지는 속도는 오히려 매우 빠르다. 재정의 건전성은 아직 여유가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출구전략을 생각할 여유는 아직은 부족하다.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지금 지구촌은 경제적 위기에서 자유로운 나라가 없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하이에크나 밀튼 후리드만은 지하에서 무어라 말할까? 그래서 죤 메이나드 케인즈를 모셔 와야 하는가? 금융의 위기가 재정의 위기로 전이되고 있는가?
이런 세계적 경제위기 앞에 세계가 공동대처를 하자고 하는 의미로 미국의 부시 전 대통령은 G20정상회의라는 것을 만들었다. 옳은 대처방안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한국의 이명박대통령은 지난 두 차례 정상회의에서 자유무역을 주장하고 나섰다. 금석지감이 있는 일이지만 지난 세월 한국경제는 언제나 보호의 그늘에서 도움을 얻고자 노력하였다. 그런 한국경제가 이 세계적 경제위기 앞에 세계가 자국경제보호를 위하여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는데 오히려 전통적인 자유무역을 주창하고 나간 것은 한국경제로서 자긍심이 생기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 미국 영국 불란서 독일 등의 속내가 궁금하다. 개방에서 보호로 얼마나 가는가?
2. 한국경제의 양극화
그렇다고 한국경제가 이 위기 앞에 여유로움이 있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외부충격에 대한 한국경제의 취약성(fragility)은 여러 부문에서 발견되고 실제 나타나고 있다. 1990년대 말의 외환의 미스매치가 가져온 한국경제의 취약성 노출, 리먼사태 이후 투기자본들의 악의에 찬 한국경제 폄훼농간에 사정없이 흔들리던 모습을 경험하였다. 그러한 취약성은 아직 한국경제가 자력으로 발전하고 외풍을 막아 갈 수 있는 능력을 덜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취약성을 가져온 여러 구조적 문제들 중에 나는 오늘 양극화의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경제구조의 양극화는 여러 측면으로 분석될 수 있지만 오늘은 대기업군과 그렇지 못한 기업간의 양극화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한국경제는 농지분배와 6.25전쟁으로 거의 균등한 빈곤상태에서 개발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1960년대 초 대외지향적개발전략에 따라 수출이 시작되고 여기서 수출에 참여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간에 발전의 속도가 벌어지게 되었다. 1970년대 소위 중화학공업개발전략에 따라 한국정부는 특정 산업을 개발하기 시작하고 여기에 참여할 기업을 선별적으로 선택하여 집중지원을 하게 되었다. 여기서 재벌이라는 이름의 대기업이 생기게 되고, 이 대기업에 기대어 사업을 하게 되는 하청 내지 계열기업이 생겨나게 되었다. 중화학에 참여한 대기업은 많은 정부지원 만 믿고 경제성이고 경쟁력이고 하는 문제를 따질 겨를이 없이 사업은 확장되고 기업의 크기는 욱일승천의 기세로 커져갔다. 그것이 많은 문제를 배태하여 1970년대 말 중화학공업 조정기를 거치게 되었지만 그 때도 산업의 조정이나 시장의 조정은 있었지만 관련 대기업의 조정은 없었다. 따라서 관련 대기업은 사업의 성패와는 관련 없이 날로 날로 커지고 발전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정책당국의 입장은 매우 합리적이고 분명하였다. 대기업의 지나친 편중발전이라는 논란에 대하여 그 크기의 세계적위상이 아직도 미미하다는 점과 합리적인 기업 계열화를 통하여 중소기업이 발전할 수 있다는 논리로 대응하여 갔다. 일본 기업군의 합리적 계열화를 벤치마크하면서 정책당국은 한국경제에서의 기업의 양극화 문제를 애써 외면하여 왔다.
1980년대 한국경제는 소위 자율과 개방을 표방한 안정화시책으로 대기업에 대한 특혜적 지원을 감축시켰고 민주화과정에서 불법 파괴적 노동조합활동으로 기업의 의욕을 떨어트리는 과정을 겪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살아남고 계속 발전할 수 있었던 기업은 중소기업보다는 오히려 조직력이 강한 대기업들이었다. 더군다나 1990년대 민주정부의 방향성 잃은 경제운영에서 살아남고 계속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군이었다. 이런 대기업군이 결정적 타격을 받게 된 것이 1990년대 말 소위 외환위기 때였다. 외환거래에 덜 직접적이었던 일반 소기업이나 중기업보다는 대기업군 들이 직격탄을 맞고 많은 대기업들이 큰 시련을 겪으면서 많은 도태가 일어났다. 소위 50대 기업군 중에 IMF를 거치면서 남아난 대기업은 10여개에 불과하였다.
대기업 수의 감축에 따라 대기업사이에서의 경쟁이 줄어들고 정부의 몇 남지 않은 대기업에의 의존은 역설적으로 확대되면서 오늘 날 대기업의 한국경제에서의 비중은 더욱 확대된 모습이다.
2000년대 초 IMF 대기성차관 기간을 거치면서 한국경제는 전후좌우를 살필 겨를이 없이 시장보호 자물쇠를 풀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자본시장과 금융시장의 무차별적인 개방은 어떤 면에서 발가벗겨진 한국경제의 자화상을 연출하게 되었고 그것이 한국경제운영의 크나큰 취약성을 가져오게 하였다. 살아남은 대기업은 독자생존을 위한 피나는 노력을 하였고 정부는 무자비하게 금융기관을 통폐합시켰다. 대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위기를 맞아 종래와 같은 정부보호나 금융지원을 개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니 자구적 내부혁신과 함께, 계열 내지 관련기업에 대한 냉혹한 업무정리를 하게 되었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면서 과거 일본을 본받던 대기업과 계열기업간의 생산적인 협력관계가 무너지게 되었다. 그 서슬이 퍼렇던 대기업노동조합 들조차도 살아남기 위하여 파괴적 노동활동을 제한하기 시작하였다. 파워밸런스의 재정립이 일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 기업의 재무구조 개선은 금융기관의 자구노력과 함께 밀도 있게 추진되어 부채비율은 급속히 개선되었다. 그러나 기업의 지배구조(governance)에 대하여는 특별한 변화가 없었다. 공정거래측면에서도 그렇고 자본시장이나 금융시장에서의 제도적 개선책도 별로 제시되지 않은 가운데 그동안 기업지배와 관련된 현안문제에 대한 사법당국의 처분도 종래와 같이 친기업적으로 엄격하지 못하였다. 그러니 살아난 대기업의 힘(power)은 더욱 강고해 질 수밖에 없었다. 금융시장의 지배권이 약화되고 공정거래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이 취약한 정부의 입장에서 몇 안 되는 대기업에 대한 정부 관여 간섭은 물론 크게 줄 수밖에 없었다. 과거 정부의 대기업에 대한 지도 관여의 지배력은, 오히려 권유 눈치 아부의 관계로 전락되고 있다고 하면 심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정부는 대기업의 상황을 눈치나 보고 잘 해주기만 바라는 형국으로 변모되어가고 있다.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지나면서 그들의 서툰 못난 짓들로 정부의 모습은 점점 작아지고 대기업의 모습은 점점 커져간 형국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한국의 중소기업은 어떤 발전을 하고 있나? 역대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친중소기업정책을 항상 슬로건으로 내걸어왔다. 그래서 지금 한국사회가 중소기업이 진흥된 사회인가? 아니다. 중소기업진흥정책이라는 것이 시혜적으로 금융을 일부 확대하고 조건을 개선해준다고 해서, 세금을 우대하고 일부 시장을 제한하여 될 일이 아니다. 그것도 계속적이기보다는 단속적이고 일률적이기보다는 특정부문에 한정된 부족한 지원만 가지고 중소기업이 발전되기는 힘이 든다. 중소기업은 태생적으로 경쟁력이 취약하고 존립기반이 허약해서 외부충격에 견뎌내기 힘이 드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취약성을 순발력과 창의력으로 보완하고, 일정기간을 견딜 수 있는 자금력이 뒤 밭침 되어 발전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시장을 확보하기 위하여 중소기업은 대기업과의 업무제휴를 추구한다. 이러한 시장의 조직화는 산업사회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지식 정보사회에서 중소기업의 대기업계열화는 산업사회와 구별된다고 일반적으로 말할 수 있다. 특히 컨텐츠산업분야 같은 곳은 애초 중소기업분야인지 대기업분야인지 불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어느 부문을 아웃 소싱할 것인지를 구분하기가 어렵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대기업은 아예 자기가 모두 해치우는 방법을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많게 된다. 중소기업의 참여기회가 더욱 제한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참에 대기업은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모두 자기가 해치우는 사업영역의 독점화를 점차 확대해 가다보니 중소기업이 껴들 수 있는 여지는 점점 줄어들게 된다.
그러니 대기업과의 생산적 계열관계는 지난 시대의 향수인가 보다. 대기업에서 관계기업을 대하는 태도가 과거에는 상의하고 협력하는 자세를 가졌다면, 지금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토를 달 모양이면 ‘잘해보라’ 한마디로 관계가 결판난다고 한다. 과거의 부패(corruption)가 공공부패였다면, 지금의 한국사회의 부패는 시장의 부패(market corruption)가 더욱 문제라고 한다. 한편 정부의 중소기업에 대한 세제 금융지원도 구조적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다. 결론은 그러니 이미 존재하는 일부 대기업은 영역구분 없이 점차 확대되고 상대적으로 중소기업의 영역은 점차 축소되고 있는 현실이다.
경제위기극복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고용정책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가 보다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고용기회의 창출을 대기업에만 의존할 수 없어 한국정부는 중소기업의 고용지원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신규고용에 대하여 세액공제를 하여주고 심지어 임금의 일부를 정부가 보조하여 주는 획기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중소기업 고용이 한국의 고용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줄 만큼 효과가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과 유사한 수준의 임금과 고용조건을 내 걸어도 원하는 신규인력은 중소기업을 오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어느 종소기업인은 이렇게 설명한다. 아무리 좋은 임금과 조건을 준다 해도 일류 인력이 중소기업을 선택하지 않는 이유는 중소기업의 정체성(停滯性)에 있다고 한다. 10년전, 20년전 아니 40년전 중소기업이 그대로 오늘도 중소기업이고, 그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자의 몰골이 저 모양 저꼴인데, 40년 후의 자기모습을 보면서 누가 중소기업에 오겠느냐는 식의 자조 섞인 한탄이다.
대학졸업반에서 보면 일류 대기업에 입사하면 옛날 과거에 합격한 이상의 부러움을 사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몇몇 대기업의 허구 많은 경영진 수자와 그들의 상상을 초월한 임금수준을 신문에서 접하면서 몇 년 후의 자화상을 보는 착각 속에서 대기업 입사를 희구하게 된다. 무엇을 해서 성취하고자 하는 의욕보다는 최후의 자기 모습을 기존 대기업의 임금수준에서 찾고자하는 젊은이들의 시각에는 초라한 몰골의 중소기업은 들어오지 않는다. 독창적 연구개발이나 성취 보다는 기존질서에 의지하려는 젊은이들, 가정을 책임지고 회사 또는 사회를 책임지기보다는 나 하나의 이익(interest)에 보다 집착하는 젊은이들의 성향은 중소기업의 설자리를 점점 잃게 만들고 있다.
3. 해결책이 없음을 대책 세워야 한다.
사실 경제운영에서 종속(dependency)의 문제를 거론하기는 쉽지 않다. 하물며 한국경제처럼 완전하게 개방된 선진경제구조를 가진 경우 경제운영에서 특정분야나 특정그룹에 전체 경제가 종속되는 문제를 꺼내들기에는 너무 껄끄러운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현재의 양극화를 방치하여 그 정도가 심화되어 종국적으로 파멸로 수렴되는 길이 보인다면 그것을 더 이상 내버려 둘 수 없는 과제라고도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를 시정할 해결책을 발전된 개방경제 운영에서 찾을 수 없다는데 있다. 시장의 문제를 정부가 직접 간여하는데도 정책의 한계가 있다. 시장의 자연 치유를 기다리는 데는 인내의 한계가 있다. 돌아앉아 버리기에는 대기업의 도덕성에 한계가 있다. 해결책이 없음에 대책을 세워야 하겠다. 몇 가지 제언을 제시하여 보자.
첫째 늦었지만 기업의 지배구조를 정리하여야 한다. 몇 몇 대기업의 반발이 있을 것이지만 IMF 이후 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듯 지배구조도 이제 합리화해야 한다. 당시 함께 이루어졌어야 할 일이다. 이것은 친기업정책과는 관련 없는 일이다. 불합리한 기업지배구조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공정거래법, 상법 그리고 자본시장과 금융시장의 거래관계법들을 보완하고 그 집행을 엄격하게 해야 한다. 지나간 일이라고 어물쩍 지나가거나 기업 이미지 추락 등을 이유로 문제의 노출을 천연해선 안 된다. 오히려 제도개혁의 아픔으로 승화해야 한다.
둘째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이 일어나게 해야 한다. 기존 대기업의 한 지류라고 해서 경쟁에서 이득을 보고 가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시장의 독과점규제에서부터 시작하여 시장질서가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되도록 제도도 보완하고 시장의 흐름에 왜곡이 없도록 해야 한다. 기존질서의 힘으로 새로운 창의를 짓밟거나 싹을 자르는 일 같은 행위가 철저하게 막아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가 어렵다.
셋째 부(富)의 가치와 존경이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자본주의의 근간인 부에대한 사회의 존경이 어느 경우 던 확고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부의 형성과정의 투명성과 함께 정당한 상속절차가 이루어지도록하고 이것에 대하여 사회가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넷째 자본주의에 대한 교육을 철저하게 하여 자율, 개방, 경쟁, 가격의 가치가 사회의 일반적 가치로 정착되게 해야 한다. 여기에 더하여 한국적 윤리 도덕을 정립 추가할 필요가 있다. 종교로서가 아닌 생활의 가치로서 헌신, 근면, 협동 등의 ‘유교적가치’를 한국인의 합리적 일반가치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서구적가치와 유교적가치가 함께 승화되어 한국적가치로 정립될 때 한국자본주의는 철저한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다섯째 대기업군 내부에서도 이러한 한국경제의 종속의 문제요인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잘잘못의 문제가 아닌 한국자본주의의 한 단계 높은 발전을 위하여 시장의 질서를 올바르게 하는데 알게 모르게 방해되는 행동이 있는지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평가한다.
* 편집자 : 앞으로 필자가 살아가면서 그때그때 생각나는 팁(tips)들을 써 보고자 한다.
계영배(戒盈杯) : 술이 일정수준을 넘어 오르면 새어나가도록 만든 술잔
- 지나침을 경계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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