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7일 금요일

쌍용차 노사 극적타결의 함정

지난 5월 22일 시작된 쌍용차 노조의 공장점거 불법파업은 회사폐망의 백척간두에서 노사가 극적 타결을 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근 3개월에 걸친 노조의 공장점거 농성은 민노총 등 외부세력의 충동 속에 불법 파괴 폭력 등 갖은 나쁜 방법으로 근로자 가족은 말할 것 없고 평택시민 그리고 온 국민을 안타깝게 만들면서 진행되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현장의 사진들이 뉴스에 비추어질 때 안타까움과 함께 온 국민이 공포와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더욱 가관인 것은 국민의 대의기관인 민노당 국회의원들이 농성장에 동참 연좌하면서 ‘구조조정 해고 반대’를 외쳐대고 있었다. 오죽하면 근로자 가족들이 농성장에 나와 제발 민노당 좀 물러나 달라고 애원(?)하고 있겠는가? 그들이 거들어 도움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사태를 망가트릴까봐 하는 가족들의 안타까운 요구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일개 회사의 일 그것도 불가피한 구조조정을 하여 회사를 회생시키고자 하는 법원의 관리를 제3자가 해고(layoff)를 하지 말라는 등의 말도 안 되는 요구사항을 가지고 정치권이 불난 집에 부채질 하며 달라붙어 있다. 노노간의 폭력이 진행될 때 어느 국회의원이 두들겨 맞고 있는 모습은 국회의원으로서의 품위고 무엇이고 없는 사람들 같았다. 국회의원이 무어 그리 대단한 존재인가? 종북좌경(從北 左傾)정당의 자기 설자리 마련을 위한 행동쯤으로 일반인들에게 인식되어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니 내가 국회의원이라고 외쳐대도 그를 향한 방망이는 그치지 않고 두들겨 패 그를 병원으로 보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일과 관련하여 두 가지 잘된 부분이 눈에 뜨인다. 하나는 법정관리인의 의연한 소신 지키기이고, 다른 하나는 경찰력의 세심하고 인내심 있는 행사였다고 할 수 있다. 막무가내기 식 농성 에서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불상사를 경찰은 잘 참고 잘 관리하여 막아내었다. 용산 참사와 대조를 이룬 결과를 놓고 경찰지휘자들이 칭찬 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잘못되었다고 판단되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것은 언론에서 사용하는 표현으로 마지막 순간의 ‘극적타결’이다. 이것은 극적타결이 아니고 노조의 투항이다. 더 이상 견딜 수 없고 옆에서 충동질 해대던 전문 농성꾼들은 어느새 핫바지 무엇 새나가듯 없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자 노조는 새로운 제안이라고 해서 법정관리인이 당초 제시한 고용조정안을 수용하는 타협을 받아드린 것이다. 이것을 노조의 체면을 세우기 위함인지 모르지만 극적타결이라는 이름으로 끝맺음을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사회에 두 가지 다짐이 있어야 하겠다.

첫째 극적타결이라는 미사여구를 이런데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불법농성을 할대로 다 해놓고 회사 기물을 다 파괴하고 회사의 이미지를 땅에 다 떨어트려 놓고 더 견딜 수 없어 투항하는 노조를 놓고 최후순간 극적타결을 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타협은 좋다. 처음부터 그리 했어야지 자기들 처지가 견딜 수 없으니 갖은 못된 짓 다해놓고 이제 타결로 해서 내 체면을 세워달라고 하는 것은 패장으로서 도리가 아니다. 파렴치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의 노사갈등의 결말이 이런 식으로 결말이 나니 잘못한 사람이 전연 손해 볼 것이 없는 모순을 가져왔다.

관련은행에서도 관행대로 타결 직후 1000억원의 구조조정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들고 나오고 있다. 저렇게 회사의 기물이나 이미지가 손상 될 대로 다 된 회사에 극적타결이 이루어졌다고 즉시 지원하겠다고 나서는 은행장은 정신 있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현시점에서 다시 따져보고 지원여부를 정해야지 노사타결만 되면 지원하니 회사 경영진이나 노조는 손해 볼 일이 없게 된다. 구식이다.

이것이 한국노사문화의 잘못된 관행이라고 평가한다. 노조의 존재나 그 정당한 활동을 폄훼하자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노조는 권력기관이다. 그 권력기관이 잘못하였을 때도 언제나 그들의 체면만 세워왔기 때문에 한국의 노조활동이 이렇게 과격 불법화된 것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경찰이 노조 직접책임자의 처벌을 들고 나온 것은 당연하고 잘하는 일이라고 평가해야 한다. 법에 따라 엄정한 처벌이 따라야 하고 그에 상응하여 노조에 철저하게 손해가 가도록 조치되어야 한다. 뉴욕지하철 노조의 파업에 법원이 노조가 상상할 수 없는 피해보상을 명령한 본보기가 한국에서도 나와야 한다.

둘째 발전된 민주사회에서 ‘극적타결’이라는 용어가 시장에서 사라져 주기를 바란다. 언론에 이런 용어를 사용하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운영에서 전제되는 것이 상호간의 타협이다. 그 타협이 미리미리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지 극적으로 마지막 순간에 이루어진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극적이라는 말 자체가 마지막 순간을 상정한다. 세상 일이 이런 불가피한 경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라면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비용(cost)이 필요했을 것이겠나? 경쟁력의 측면에서 이것은 고비용을 전제한다.

극적이라는 말은 타협보다는 경직된 사회구조 속에서 어떤 권력자의 인위적 개입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독재적 정치권력구조나 독과점적 대기업주의 경직된 경영구조에서 극적타결이라는 형식을 빌려 사안을 극화하고 미화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한국사회는 그런 사회구조가 아니다. 전연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와는 많이 변하였다. 마치 비민주시대의 잔재와 같은 극적타결이 점점 줄어들고 그런 표현이 언론에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2009년 8월 5일 수요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운영의 기본으로 돌아가자

언제나 그렇기는 하지만 2009년 여름 7, 8월처럼 어수선하고 뒤죽박죽인 때도 드물었던 것 같다. 지난 3월 이후 한국경제가 밑바닥을 쳤느니 아니라느니 하던 논란도 정부의 신중론 앞에 모두 하반기에도 어려움이 올 가능성이 남아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되었다. 그러나 이 예측은 금세 빗나가기 시작하였다. 7월 하반기 이후 증권시장의 활황과 함께 섬머랠리의 종착도 없이 계속 증시가 좋게 갈 것이라고 시장은 호들갑을 떨고 있다. CNN은 한국이 OECD 국가중 경기회복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라며 증시, 성장률, 설비투자 등 관련지수의 우월성을 분석한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국내 애널리스트 들 중 비관론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있고, 코스피가 어디까지 갈지 알 수 없다고들 한다.

이어서 미국을 비롯하여 EU 국가들 그리고 동국권의 개도국들 모두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경기회복의 여러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한다고 세계 언론은 분석하고 있다.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이 긴 그림자를 만들며 한낱 작은 섬나라경제로 전락한다고 하던 영국경제에 대한 비관도 HSBC 등 주요은행들의 이익실현을 시작으로 긍정적인 지표들이 나타난다고 하고 있다. 새로운 번영을 찾아 막 출발하고 있는 듯한 세계경제의 회복 소식이다. 그 출발 대열 맨 앞에 한국경제가 서있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한국경제의 취약성과 위험 노출에 대한 악의적인 분석을 쏟아내던 국제금융시장도 한국의 외환보유가 리먼사태 이전의 수준인 3300억달러를 넘어서자 조용해졌다. 가장 악의에 찾던 HSBC 등 영국계은행, Financial Times 등 언론들도 할 말을 잃었다. 금년 마이나스 4%를 예상하던 IMF의 한국경제전망도 최근 부총재의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경제의 회복과 정부의 경제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고 아직 좀 이르기는 하지만 한국사람 모두가 서로 위로하고 칭찬하고 격려할 일이다.

그러나 한국 안에 들어와 요즘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답답한 일 뿐인 것 같아 허망하기조차 하다. 이런 이율배반적 현실 앞에 한국사람 모두 마음자세를 다잡아야 할 것 같아 원론적인 이야기를 다시 하고자 한다. 정치권 사회단체 언론 그리고 정부 모두가 다시 한번 반성하는 계기가 있어야 하겠다는 마음이다. 결론은 우리 모두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운영의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이다.

첫째 금년 들어 지난 3월에 이어 7월 임시국회에서 미디어 관련법을 가지고 여야가 생사를 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간의 긴 처리과정은 여기서 생략하자. 결국 국회의장 직권으로 7월 말 상정되어 국회를 통과하고 공포된 미디어관련법을 야당인 민주당은 절차상의 문제를 가지고 원천무효라고 주장하고 국회를 뛰쳐나가 장외투쟁을 벌리고 있다.

사실 미디어관련법이라고 나도 쓰고 있지만 나도 그것의 정확한 명칭 조차 모를 정도로 일반 국민생활과는 직접관련이 없는 법률안을 가지고 정치권은 생사를 건 투쟁을 하고 있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방송시장에 보다 경쟁을 도입하려는 시도에 대하여 기존 방송사의 이익 고수를 위한 밥그릇 싸움을 국회가 대리전하고 있는 꼴이다.

언제나 말하는 것이지만 한국의 정치권 특히 국회의원의 본분이 무엇인지 새삼 따져야하겠다. 국회의원은 당선되면 ‘ 나는 ....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 합니다 ’하는 내용의 대국민선서를 한다. 미디어관련법이 국가이익에 무슨 영향을 주게 될 것인가? 민주당이 사생결단을 하고 있는 것처럼 이것이 국민생활에, 민주주의에 무슨 심각한 해악이 있는 것인가?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재벌에 방송을 허가해 주면 시장경제에 어떠한 악영향을 끼친단 말인가? 민주당 주장대로 정부의 언론장악으로 독재를 시도한다면 대상수자가 줄어야지 그 대상이 늘면 더 어렵게 되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대기업이나 대형 신문사가 방송업을 하면 시장경제질서에 나쁜 영향을 끼치고 국가이익에 얼마나 손해를 본다고 그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오히려 일부 기득권방송사의 이익을 대변한다면 그것은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직무를 수행해야하는 국회의원의 본분을 망각한 처사라고 평가해야 한다. 물론 그 처리과정에서 집권당인 한나라당이나 정부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었음도 지적할 수 있지만 이것은 근본을 따지는데 있어서 곁가지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결론은 민주당의 국회의원 신분을 망각한 원외투쟁은 잘못된 것으로 비판받아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세계적 경제위기에 그것이 국가의 이익을 우선으로 해야 하는 국회의원의 해야할 일인지 민주당은 스스로 반문하고 국민 앞에 속죄해야 할 일이다.

둘째 언론보도에 의하면 최근 국가정보원은 자금의 테러지원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하여 영장 없이 개인과 법인의 금융거래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도 원론적인 입장에서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할 일임을 문제제기하고자 한다. 현행법(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에도 불법재산이나 자금세탁 등에 관련된 수사에 필요한 별도 금융정보를 검찰총장이나 국세청장등 제한된 관련기관의 요구에 따라 제공하게 되어 있다. 그 관련기관에 국가정보원을 추가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할 것이다.

최근 대 테러 대응이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국가경영의 최우선순위에 들어가는 중요한 사항이고 그 심각성이 더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국정원이 그런 시도를 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금융실명제 운영의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어느 경제정책과 관련된 문제도 그 나라의 사회 환경과 관련하여 그 제도의 폭과 깊이가 차이가 있게 마련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금융실명제는 1993년 시행된 이후 사실 만신창이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융거래는 본질상 비밀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범죄혐의나 행정편의에 의해 제도적으로 마구 노출될 경우 금융거래는 자꾸 지하로 숨으려고 하고 그러면 그럴수록 금융실명거래제도는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지하경제는 더욱 확대 된다.

그래서 독일의 경우에는 금융정보의 제공 경우에도 의심되는 사람 그것도 특정 계좌에 한정하도록 매우 제한적으로 정보가 제공된다. 그러나 한국의 제도는 너무나 광범위하게 정보가 제공되고 그것도 원천적으로 잘 관리도 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그래서 필요한 경우 관련기관에서는 의심되는 사람의 모든 계좌는 말할 것 없고 극단적으로 말하면 사돈의 팔촌계좌도 다 파헤칠 수 있게 되어 있다. 금융실명제도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 엄격한 미국의 경우에도 장기적인 국채 등의 경우는 제한적으로 무기명으로 거래할 수 있는 길이 트여있다. 일부 퇴로를 만들어 놓고 있다. 그 대신 일반 계좌의 경우는 엄격한 법의 보호를 받게 되어 있다. 한국의 경우는 반대로 모든 금융거래는 모두 실명으로 하는 저인망식이고 그렇게 모아진 거래의 비밀보호는 느슨하게 되어 있다.

그 느슨함에 현실적으로 권력기관인 국가정보원이 추가된다면 그것이 아무리 선한 목적을 가졌을지라도 그것은 금융거래 실명화의 명분을 본질적으로 훼손하게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시장경제운영에 반하는 제도보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정보원이 좀 번거롭더라도 이 문제는 재고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한다.

셋째 현재의 국가재정운영도 관리에 있어 보다 치밀성과 효율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IMF의 평가대로 한국정부의 위기극복을 위한 재정운영은 비교적 잘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재정구조의 왜곡을 분석하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GDP대비 국가부채의 비율이 2009년 35.6%로 작년의 30.1%에서 크게 늘어났고 내년 2010년에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거기다가 실업의 증가 등에 따라 소득분배구조가 빨리 왜곡되어 가고 있다. 분석에 의하면 소득 상위20%와 하위 20%의 비율이 9배에 가깝게 되었다고 하니 전국가구소득조사통계 이후 가장 큰 분배악화의 모습이다. 국가부채는 늘고 저소득층의 상대적 어려움이 확대되는 부담을 안고 정부는 재정운영을 해야 할 상황이다.

경제위기 초기에 치중되었던 전통적 방식의 사회간접자본 중심의 재정확대는 부가가치 증식이나 정규인력 흡수에 한계가 있게 되어 있지만 그래도 단기적 효과는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단기처방으로는 손쉬운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재정지출을 경제구조의 개선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여야 할 형편이다. 그래서 교육 지식 정보 기술 등 분야에 보다 치중하여 경제가 무역의존에서 벗어나도록 지원해야 한다. 성장의 동력도 환경친화적인 곳에서 찾아야 할 상황이다. 저탄소 녹색성장의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경기침체에서 상대적으로 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소득층을 위한 재정지출을 확대해야 할 형편이다. 이런 일들은 초기 보다 많은 투자를 필요로 한다. 반면 부가가치 증식이 느리고 고용흡수도 비탄력적이 되게 됨으로 재정의 부담을 더 많게 할 것이다. 이것을 감내하는 지혜와 노력이 정부가 감당할 몫이라고 할 수 있다. 엄청나게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재정투자의 방향전환은 보다 치밀한 계획과 일관성을 가지고 추진되어야 할 사항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성장동력에 대한 청사진을 내어놓고 그것이 초기 잠재성장률의 감소를 감내할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전문기관을 통하여 연구부석하여 그 감내 수준을 정해야 한다. 이런 준비 없이 흐름이 그렇다고 무작정 풍덩 물에 뛰어드는 우를 정부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가다가 중지하는 부담은 엄청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 정보 기술을 기반으로하는 새로운 성장분야를 정부는 전문기관과 함께 개발하여 투자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KDI 등 국책연구기관에서 과거 한국정부가 5개년 경제개발계획을 만들 듯 새로운 장기발전정책을 다듬는 작업을 시작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저소득층 정책도 이명박정부의 경제정책전환을 의미하는 것처럼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친 기업정책을 버리고 소득분배정책으로 정책을 전환한다는 접근을 할 경우 그것이 바로 인기주의(populism)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결국 이명박정부는 인기에 연연하여 좌고우면하면 이제 돌이킬 시간조차 없게 된다. 당초 선거에서 국민에게 공약한 사항들을 초심으로 돌아가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의연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시장경제운영의 기본을 지켜야 한다.

넷째 재야세력들이나 전업노동세력들도 과거 군사독재에 항거하던 방식으로 사회운동을 하면 안 된다. 이제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되는 나라다. 독재정권도 아니고, 시장에서 경쟁탈락자가 있을지언정 있는 자가 없는 자를 수탈하는 사회도 아니다. 공권력은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대항하고 투쟁해야 할 대상이 아님을 국민 모두가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최근 일부 재야 인권단체들이 정부가 국가인권위원장을 재야세력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임명하였다 하여 그를 인권위원장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이를 내외에 선전하고 다닌다고 한다. 그 이유인즉슨 임명과정에서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한다. 공론화를 하지 않은 것이 임명절차상 무슨 법률적 하자가 있다면 모를까 내가 사전에 몰랐고 그래서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인권위원장이 되었으니 이를 인정할 수 없다면 그런 억지는 민주주의의 기본에 반하는 것이다. 인권위원장이 어떤 사람인지, 그 사람이 인권분야에 얼마나 부적격의 사람인지 나는 모른다. 그래서 당연히 정부라는 대의기관을 두어 나(국민주권)를 대신하여 인권위원장을 대통령이 임명하게 되어 있는 것이 현행제도인 것은 초등학생도 아는 논리 아닌가? 그런 뻔한 이치를 놓고 막무가내로 반대하여 한국정부의 국제인권활동을 깎아내리는 재야 운동가들의 행태는 한심하다 아니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기본에 반하는 행동이다.

최근 쌍용자동차 문제와 관련하여 노와 사 그리고 노와 공권력과의 관계에서 큰 무리가 일어났다. 경영이 되지 못하여 정리해고가 불가피하다는 법정관리인의 정책은 불가피한 선택일 것이다. 법정관리인은 말 그대로 법원을 대신하여 회사를 관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거기에 선입견이나 이해의 충돌이 있을 수 없다. 그런 법정관리인이 내린 결론을 안 된다고 막무가내로 버티면 누가 그 회사를 지탱해 나갈 것인가? 해고되는 당사자 입장이야 이해되는 면이 있지만 회사가 문을 닫게 생겼는데 회사를 회생시키기 위하여 법으로 회생절차를 밟고 그 일환으로 정리해고를 하는 것을 받아드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회사를 살리지 말고 망하게 하라는 이야기와 같은 결과가 되는 것 아닌가? 그런 투쟁을 위하여 외부기관(민노총)에서 지원세력이 합세하여 경찰의 진압과 맞서 전쟁터와 유사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 최근의 쌍용자동차 사태이다.

경찰을 공권력을 투쟁의 대상으로 삼는 노조의 행동은 모든 국민을 상대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독재정권에 대항하였던 옛날 방식이다. 당사자에게는 미안하지만 쌍용차가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지켜야 할 대의는 아닌 것이다. 일개 회사의 일이다. 이 일로 인하여 국민경제에 나쁜 영향을 준다면 그것은 거꾸로 공권력이 지켜야 할 대상이고 그에 대항하는 것은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인 것이다. 공권력은 국민의 이익을 지키기 위하여 엄정히 행사되어야지 일부 노동세력에 의한 투쟁의 대상이 될 수는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이제 재야세력이던 노동세력이던 농민이던 학생이던 정치권이던 국회의원이던 누구든 공권력을 자기들과 같은 차원으로 두고 투쟁을 하는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자기가 정한 법질서를 지키고, 법률로 만들어진 대의기관인 공권력은 국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기관이고 이는 국민의 편이지 다른 국민의 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공권력이 엄정할 때 법질서는 지켜지고 민주주의가 성립되는 것은 당연한 논리이다.

자 이제 2009년도 5개월 남았다. 이 기간동안 한국사회는 민주주의를 잘 지키고 시장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 세계적 경제위기의 극복여부가 판가름 나는 것이 금년 남은 다섯 달에 달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땅에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위기극복 성공사례를 만들어내고, 지금까지 폄훼되었던 한국경제의 위상을 내로라하게 내세울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이루어내는 방법은 간단하다. 국민과 정부 모두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운영의 기본을 지키는 것이 그 대답이다. 나만 옳다고 주장하지 말고 상대방을 존중하자. 답답해도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 시장경제의 기본 틀을 지켜나가는 국민 그리고 나라가 되면 된다. 지금 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한국사회는 또 뒷걸음치는 우를 범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