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19일 월요일

국가운영전략의 새로운 접근

1. 한국민주주의의 자멸가능성

이달 초 한 일간지에서 서울대 전상인교수가 쓴 '한국민주주의의 자멸가능성'이라는 글을 읽고 많은 공감을 한 바 있다. 극도의 개인주의의 발현으로 한국사회 기존의 질서들이 파괴되고 있는 현실을 필자는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었다. 다섯가족 중 하나는 나홀로 족이 되어버린 한국, 국가나 동네 고향 동문이라는 전통질서가 개인주의적 이해(利害)로 서먹해져버리게 된 거리감, 더구나 노동조합 직장 시민단체 정당 등 사회조직에 발생하는 구성원으로 뜨악해 지게 만드는 개인주의의 노출 등은 한국사회를 이끌어가는 힘으로서의 동력을 잃게 만든지 오래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극단적인 개인주의의 발현은 권리만 말하고 의무는 말하려하지 않는다. 군중심리를 통해 위로를 받고, 집단행동을 통해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한다고 전상인교수는 분석하고 있다. 촛불시위가 그렇고, 월드컵축구경기도 단체로 모여 응원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다 보니 똑똑하고 성난 개인의 비위를 건드리는 것을 사회적 금기로 여기게 되었다. 극도의 개인주의 행동이 범람하는 한국사회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염치, 정직, 도덕, 책임, 배려같은 전통적가치는 현실에서 생경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2. 공리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공공선(公共善)을 사회적 덕목으로

지금와서 뜬금없이 250년전의 제리미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이 주장한 공리주의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오늘날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들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오늘의 발전을 이루었음을 말하고자 한다. 공리와 자유, 부패와 규제, 부의 사회환원과 경제활동의 자유, 부(富)에대한 경멸과 존경, 집단불법행동과 엄격한 법질서유지 등등 이런 상치된 가치와 질서들이 교차하면서 사회는 발전하여 왔음을 상기하고자 한다. 그들도 암울했던 시기가 있었고 사회는 그런 암울을 긍정의 사회질서로 발전시켰다. 지금의 한국사회의 극에 달한 개인주의 발현이 가져다 준 절망들도 새로운 협동과 협력의 한국사회를 잉태하기 위한 밑걸음일지도 모른다. 아니 긴 눈으로 보면 그럴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한국의 발전을 이야기할 때 소위 '압축성장'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 단순하게 시간의 흐름으로 오늘 날 선진국이 된 나라들이 200년 300년 발전과정을 겪었고, 한국은 불과 반백년사이에 발전을 한 것을 놓고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압축이라는 표현 뒤에 많은 부정적인 개념을 함께 주장하고 싶어한다. 군사독재, 규제, 정부주도 등등이 음영으로 나타난다. 그 압축성장의 반작용으로 오늘날 한국사회가 지나친 개인주의의 발현을 겪고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선진국들의 발전도 많은 시행착오 위에 오늘의 결과를 가져온 것을 인정한다면 한국의 빠른 발전 뒤에 나타나는 부정적 음영들도 변화의 밑걸음으로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압축성장의 표현을 싫어한다. 정확하게 이야기한다면 한국사회는 아직도 다른 나라들이 이미 거쳐간 발전의 고통골목을 지금 지나가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한국사회는 전통적가치라고 할 수 있는 부모에 대한 효도, 가정가치(famly value), 경로사상, 근면 자기희생 절략 이웃에 대한 사랑 등등의 유교적가치를 사회적덕목으로 가지고 발전하여 왔다. 지금 이런 사회적덕목이 극단적인 개인주의의 발로 앞에 많이 사글어들었다. 오히려 이런 소리가 시대에 뒤 떨어진 수구꼴통의 헷소리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의 전통적 가치가 완전히 사글어든 것은 아니고 불씨가 아직 조금은 남아 있다고 나는 믿는다.

3. 후쿠야마의 사회적자본(Social capitals)

20세기 미국이 낳은 석학 프란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yama 1952~)는 경제성장의 한 요소로서 사회적자본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생산의 3요소로서 토지 노동 자본이 가지고 있는 중요성에 못지 않게 한 사회의 발전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재화로서의 사회적자본을 주창하고 있다. 이는 아더 루이스가 이야기하는 경제하려는 의지(Will of economize)와도 상통한다고 나는 해석한다. 현대적 의미의 경제적 번영을 이루기 위하여는 생산의 삼요소에 못지 않게, 아니 더욱 중요한 것이 그 사회가 더 발전하고자 하는 발전동력이 있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이 발전동력에는 여러 요소들이 있고 그 요소들의 결합 융합 승화등의 과정을 거쳐 사회적자본이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근면 협동 자조 사랑 믿음 기술 과학 등등 이런 가치들이 서로 엉키면서 새로운 동력으로 등장할 때 그것이 후쿠야마가 말하는 사회적자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사회적자본의 크기를 가늠하는 하는 것이 개인주의 발현의 반대편 개념이 될 것이다. 다행이 한국사회는 전통적으로 다른 사회가 갖지 못한 유교적가치가 있다. 종교로서가 아닌 생활철학으로서 전통유교적가치를 한국적가치(Koresa's value)로 발전시킬 변화의 흐름에 지금 직면하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지만 현재 한국사회에서 극에달한 개인주의 발현이 역발상으로 전통적가치를 부활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4. 국가운영의 전략적접근

역발상의 챤스는 언제나 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천안함피격사건이 터지고 우리의 젊은 아들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건만 우리는 이에대한 보복은커녕 유엔 외교에서조차 중국에 퇴박맡고 북에 치운 결과를 가져왔다고 하는 것이 일본 언론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세계 15위의 경제대국(?)이라고 자화자찬하지만 그래서 G-20 의장국이 되었다고 우리끼리 자랑하지만, 미국경제는 말할 것 없고 중국경제의 부침에 신경과민할 수밖에 없는 의존형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 한국경제다. 크기는 제법 크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국제헷지펀드에 이리저리 휘둘릴 수 있는 것이 한국경제의 모습이다.

그런데 한편에서 돌아앉아 천안함이 북의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어 안달하는 인간들, 시민단체들이 있다. 국회의 한편에서는 그게 어느나라 정치인지 붉은지 퍼런지 구분이 안가는 정체불명의 정치꾼들이 판을 치고 있다. 집권당이라른 사람들은 국가운영의 기본도 모르고 우물안 개구리들의 편싸움만 그 좁은 우물바닥에서 해대고 있다.

한국사회가 지금 이상의 여러 위기에 있다면 그것은 흔한 말로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나는 판단한다. 한국사회를 하나로 묶어가는 발전의 동력을 만들어가면 된다. 그것을 옛날 규제적적 방식으로 되지 않는다. 그것은 후쿠야마가 말한 사회적자본을 키우는 전략을 만들어가는 데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하나? 간단하다. 시장, 법치 그리고 전통적 가치에 접목된 사회공공선을 일으켜세우면 된다고 나는 믿는다. 그것은 위에서부터 시작되어 종국에는 한국사회 모두가 함께 해가야 한다. 발전의 동력을 확충해야 한다. 지금이 이를 풀어가는 지혜와 노력 그리고 행동이 필요한 시기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