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31일 수요일

러시아 가스 북한관통 도입의 두 그림자

언론보도에 의하면 러시아 가스를 북한을 관통하는 가스관을 이용 도입하는 사업에 러시아정부와 한국이 원칙적인 합의를 하고, 북한은 이를 허용(김정일의 말이라고 보도)하였다고 한다. 이런 뉴스는 최근 김정일과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협의되었다는 내용이 보도되면서 표면화 되었다. 물론 이 사업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한국과 러시아 사이에 협의가 진행되어온 것으로 알려진 일이지만 이것이 좀더 현실적으로 닥아오고 있다.

아직 한국정부 당국자나 기업 쪽에서 공식적으로 이 사업을 거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생뚱맞게 한나라당 대표라는 사람이 이 사업의 추진을 이야기하면서 거기다 한수 더 붙여 마치 이것이 이명박대통령의 특별한 관심과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인 것처럼 발표하였다. 20세기 개발연대에 사는 것도 아닌데 이런 독재시대 지도자에게 아부하는 것 같은 여당지도자의 말에 역겨운 마음이 들지만 그것은 그들의 세계로 치부하자.

아무튼 러시아 가스를 선박이 아닌 관로를 통하여 수입하면 엄청난 경제성이 있을 것 같다는 점에서 레이맨의 입장세서 흥미롭다. 그런데 그것이 북한을 통과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해서는 찜찜해진다. 과연 북한과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최근 금강산관광사업과 관련하여 북한은 남쪽사업가가 투자한 자산을 일방적으로 환수조치하고 관광사업의 허가를 취소한바 있다. 아직도 이 일이 남북간에 진행중에 있기 때문에 최종결론이 어떻게 날지는 좀더 지켜보아야 할 일이지만 그동안의 북한의 행동으로 보면 국제관례나 국제법은 아랑곳하지 않는 집단이다. 북한정권은 언제나 자기 편의에 의하여 말하고 행동하는 무법자들이다. 구호를 요청하면서도 큰소리치는 사람들이다. 개성공단 운영, 금강산관광객 총살 등 남한에서 보는 북한정부의 행동은 납득할 수가 없다.

그런 북한정부에 또 하나의 시비거리를 주는 꼴이다. 그것도 자그만치 금강산 관광에서 북한이 얻는 이익의 두배가 넘는 연간 천억원이 넘는 돈을 북한에 통과료로 주어야 하는 거대사업이다. 그야말로 북한은 자기 땅 밑으로 지나가는 것을 허락해주는 대가로 아무런 부담이 없이 거대한 공돈을 얻게되는 큰 이권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사업이 러시아나 한국에도 상응하는 큰 이득이 있는 것이겠지만 아무튼 북한은 큰 횡재를 하는 꼴이다. 이 사업과 관련하여 두가지 큰 그림자를 보게 된다.

첫째는 무엇보다 북한이 사업이 다되어 진행될 때 자기들 마음대로 개스관을 열고 닫고 하면 어떻게 하나하는 걱정이 우선 생긴다. 북한이 아니라도 일반적인 사업이라 할지라도 사업의 안전성 확보를 위한 안전장치를 강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더구나 북한같은 떼쟁이 정부를 상대로 남쪽기업이 가질 수 있는 안전판이 무엇이 있겠나? 없다.

육이오사변 전 북한은 남쪽으로의 전력송전을 아무 사전 통고도 없이 절단한 전례가 있음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에너지의 특수성 때문에 긴급사항은 더욱 절실하게 일어나게 되어 있다. 그걸 뻔히 알면서 무턱대고 북한의 선심만 생각하고 관로를 매설하는 것은 위험천만일 것이다. 북한의 자의대로 할 수 없는 장치는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우선 이 사업이 한국과 러시아에 국한되지 않고 일본이나 중국에도 연결되는 주 관로가 되도록하고 그 사업을 관련국이 함께 추진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은 몰라도 중국은 위치상으로 간단할 것 같지 않고, 만일 일본 한국과 러시아가 함께 사업을 운영하더라도 북한의 자의적 조작의 위험은 매를 함께맞는다는 정도의 위안이 있을 뿐 제대로 된 안전장치가 안된다고 생각된다.

이번 러시아와의 정상회담 후 북한이 밝힌 태도를 보면 마치 김정일위원장이 큰 은혜나 베푸는 것처럼 가스관로의 북한영내 통과를 '허용'한 것으로 발표되었다. 물론 이것은 나의 지나친 생각일 수는 있지만 분명한 것은 러시아와 한국 그리고 북한이 함께 이사업을 추진하는 형태가 아니라 북한은 거저 자기영토을 사용하게 해주는 혜택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북한으로서도 일년에 1억불이 넘는 거금을 거져 얻는 횡재이고 보면 이 사업에 큰 매력을 느끼겠지만, 비경제적으로는 남쪽의 목줄을 쥐는 한 제동장치를 만들게 되고, 그것도 그들은 돈 한푼 안 드리고 남쪽 돈으로 만든다는 데 더 큰 매력을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업은 서두르지 말고 좀더 신중하고 시간을 가지면서 추진할 일일 것 같다.

다른 그림자는 이 사업을 정권말기에 서둘러 추진하는 것은 자칫하면 큰 낭패를 자초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명박정부에서 그런 섣부른 생각이나 행동을 하리라고 믿지 않지만 노파심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특히 북한도 정권 이양기에 있는데 북한의 차기정권이 안정을 이룬 후에 이런 일들이 추진되는 것이 안전변을 좀더 튼튼하게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장기적으로, 그리고 하기에 따라서는 이 사업이 한국과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을 한단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남북간에도 윈윈하는 관계로 발전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독일이나 유럽 많은 국가들이 러시아와의 개스 의존에서 벌어지는 많은 문제를 보거나, 북한의 속성을 생각한다면 이번 러시아가스의 북한통과 관로 이용사업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아니 지금은 때가 아닌것 같다.












2011년 8월 26일 금요일

퍼퓰리즘 과잉복지 시대의 개막

2011년 8월 26일 오전11시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의 시장직사퇴회견이 있었다. 이미 예고된 행사지만 이를 바라보는 마음은 어수선하고 참담하다. 어찌보면 정치권의 행사지만 내용을 따져보면 이것이 단순한 정치행사의 성격 만 있는 것이 물론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이 어수선하다함은 이 일과 관련된 정치권의 대응자세를 보면서 그렇다. 거의 많은 시각이 33.3%의 투표율을 달성하여 개표가 될 수 있는 요건을 이루기 힘들것이라고 예상하였다. 오죽 다급하면 선거를 목전에 두고 투표율이 미달하거나, 개표가 되어 과반의 찬성을 얻지 못할 경우 시장직을 사퇴하겠다고 시장이 배수진을 쳤겠나? 그리고 하루인가 있다가 투표 이틀전에야 마지못하듯 한나라당은 서울시장의 주민투표를 지지한다고 발표하였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하나라당 대표가 서울시당모임에 겨우 참석하여 밥먹은 것이 지지활동의 전부가 아니었나 싶다. 대세론의 미몽속에서 박근혜 전대표는 '서울 시민이 알아서 할것'이라는 기막힌 멘트를 하였고, 친박계는 공식적으로 주민투표 반대입장을 유승민의원을 통하여 표명하였다. 그리고 선거가 참패로 끝나자 대표라는 사람은 과거 독재정부시절에 흔히 사용하였던 25.7%의 투표율은 사실상 승리한 것이라는 평가를 내 놓았다. 그리고 약속대로 시장직을 물러나겠다고 하는 시장을 10월 이후에 물러나 시장선거를 내년 지자체선거시 함께하도록 하자고 압력을 가한다. 이것이 소위 집권여당의 꼬락서니이다. 그들의 눈에은 국민은 없다.

야당도 마찬가지의 모양새이다. 야당인 민주당은 자기당의 뿌리인 고 노무현대통령이 '나쁜대통령'으로 낙인찍혀 곤욕을 치른 그 '나쁜'이라는 수식어를 이번 주민투표의 구호로 내세우면서 투표불참을 선전하면서 '애들 먹는 것 가지고...'하면서 투표불참을 권유하였다. 선거전략으로서는 먹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퍼퓰리즘의 대명사인 '보편적복지'의 출발점임을 감춘채 상위소득 50% 가정의 아이들 먹을 것을 정부가 뻇어가는 처럼 선전한다. 야당의 무책임한 선전술이다.

그것이 아니고 경제여력이 있는 가정의 자녀는 가정의 부담으로 이 아이들이 급식을 하는 것이고, 그것도 단계적으로 무상급식으로 확대해 간다는 서울시의 정책은 전연 먹혀들지 못하였다. 그렇게 해 놓고 투표장에 가는 것은 그 자체가 단계적무상급식을 찬성하는 행동으로 나타나 사실상 공개투표나 다름없는 선거가 치러졌다. 안 그래도 기권율이 높은 정책주민투표가 성사되기는 어렵게 되어 있다. 이런 얄팍한 꾀를 내는 야당의 선거전략이나, 처음부터 성사되기 어려운 성격의 주민투표이고 야당에서 이렇게 전략을 펼 것을 다 내다보면서 여당 내에서는 누구 하나 책임있게 들고 일어나 집권당의 결속을 주장하고 나오는 인사가 없었다. 애써 자치단체의 정책투표를 당이 나서는 것은 과잉이라는 해괘한 논리를 편 인사도 있다. 이것이 단순한 급식의 문제가 아니고 지금 세계가 앓고 있는 복지병의 시작임을 모른단 말인가? 그러니 마음이 어수선하고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참담한 마음이 드는 것은 보편적복지라는 이름의 이 퍼퓰리즘을 누구도 들고 일어나 그 부당함을 외치는 사람이 없다는 것 때문이다. 이름이 무엇이던 복지수요은 크게 일어나게 되어 있다. 우리나라처럼 빠른발전을 한 사회는 복지정책에 대한 축적기간이 짧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그리고 큰 물결로 다가오게 되어 있다. 또 전문적으로 복지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의 복지수준이 크게 부족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무엇보다 GDP의 7%수준에 불과한 한국의 복지수준은 복지선진국의 20% 수준에 비하면 아직 한참 부족하다고 분석한다. 틀리지 않은 말이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해야 할 첫번째 일은 한국은 아직 2만불 소득국가에 발과하다는 점이다. 거기다가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방위비 부담을 엄청나게 해야 한다. 이미 벌써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은 불과 3%수준이다. 앞으로 한국이 6~7%의 경제성장을 하여 소득수준을 올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복지수준을 선진국수준으로 향상시키기 위하여는 우리에게는 엄청난 노력과 절제가 요청되는 대목이다.

참담한 마음이 드는 다른 이유는 이런 보편적복지의 퍼퓰리즘이 우리와 후 세대에게 얼마나 많은 부담을 주게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전문가의 목소리가 없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인들이 실질적으로 느끼는 조세부담은 이미 매우 부담스럽다. 그러나 앞으로 추가되는 복지부담에서 오는 조세부담을 생각하면 더욱 힘에 겨웁게 된다. 이것을 누가 부담해 주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그런 부담 속에서 경제가 청청대로로 발전할 것을 기대하기는 힘든다.

복지는 경제발전의 목표이다. 때문에 같은 소득수준에서 복지를 극대화하는 정책의 조합을 찾는 것은 현대국가경영의 제일 큰 과제일 것이다. 성격상 정치가 인기주의에 영합되기시작하면 그것은 다다익선(多多益善)으로 치닫게 되어 있다. 먹을것 입을것 사는 집, 의료, 교육 모두 '공짜'가 되기를 원하게 된다.

이런 문제와 관련하여 정치권에서는 유권자를 의식하여 그 요구수준을 더해가게 되어 있다. 여야를 가릴 것 없다. 보편적복지, 선택적복지, 맞춤복지 등등 용어는 용어일뿐 정치권의 요구는 다 거기서 거기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절제를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전문가그룹이고 관료집단이다. 지금 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있다. 쓴 소리를 내는 경제전문가들이 들고 일어나야 한다. 지금 한국에 팽배해 있는 '내가 왜 나서?'이런 분위기가 더욱 진실된 목소리를 움추리게 하는 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이번 오세훈 시장의 무차별복지에 대한 주민투표는 이러한 시각에서보면 어쩌면 전문가들의 주눅든 목소리를 대변해 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거꾸로 된 입장이다. 정치권에서 이런 일을 시작할 때 전문가들은 무엇을 하였나? 나부터 자괴감이 드는 대목이다. 정치인 오세훈시장의 입장에서는 미안하지만 주민투표가 무모한(?) 도전이었다면, 미래를 보면서 오늘의 잘 못가는 흐름을 바로잡으려한 선비적자세는 칭찬받아야 할 것으로 평가하고 싶다. 국가운영에 참여하였던 나의 입장에서는 오세훈시장의 실패가 안타깝고 미안한 생각조차 들기도 한다.

아프리카 튀니지 출신 사상가 이브 할둔은 집단의 결속력이나 연대를 표시하는 말로 '아사비야'를 제창하였다 한다. 지금 한국사회에 가장 절실하게 다가오는 화두라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사회가 이만한 발전을 한 것을 앉아 받은 떡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나 넘쳐나는 것 같다. 지금 퍼퓰리즘에 매도되어 있는 정치권의 그 많은 애국자들은 지난 50년의 경제발전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세금을 나라에 내었는지, 얼마나 많은 헌신을 국가발전에 하였는지 묻고 싶다. 지금 한국이 한낫 퍼퓰리즘에 휩싸일 때가 아니다. 국민의 결속(solidarity)이 어느때 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2011년 8월 23일 화요일

2013년 균형재정 목표, 또하나의 퍼퓰리즘 되나?

2011년 8.15 경축사에서 대통령이 제안한 '공생발전'의 화두에 나오는 '2013년까지 균형재정을 지향하겠다'는 내용은 실례지만 또하나의 퍼퓰리즘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인기영합주의는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기 위하여 당장의 고통과 미래의 경제적 부담은 외면한 채 당장의 사탕발림 정책으로 대중을 혹세무민하는 획책이나 언동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 퍼풀리즘에는 당장은 좋으나 미래에는 오히려 부정적으로 작용되는 내용의 것과 앞으로 이룰 수 없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리 된다고 거짓말하는 것 등으로 구분될 수 있다. 현재 한국에 팽배해 있는 정치권의 보편적복지정책이 전자라고 한다면, 제주도의 해군기지 건설이 미국과 중국의 군사충돌을 가져와 제주도의 평화를 망치는 것이라고 우겨대는 소위 진보라 자칭하는 자들의 주장이 후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자체방위능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종속이지 참된 평화가 될 수 없음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 아닌가?

내가 대통령의 말씀을 결례하면서 이렇게 폄하하는 것은 균형재정의 실현이 얼마나 어렵고 엄청난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이 시점에서 균형재정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의도를 이해하고 찬성한다. 오늘 한국의 현실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내린 결론일 것이다.

첫째, 정치권의 복지주장이 도를 훨씬 넘었다고 생각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름이 보편적복지던 선별적복지던 다 거기서 거기인 주장을 들고 나오고 있다. 대학등록금인하, 무상급식, 무료유아원 등등 지금 한국은 복지천국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네가 하면 치정이라는 속어처럼 모든 일이 내가 앞장서는 것은 다 옳다고 주장한다. 나라 재정형편이고 담세능력은 내 알바 아니라는 태도이다. 왜 모든 국민의 무상급식은 안 나오는지 모르겠다. 중국이 모택동혁명 당시 부엌을 없에자고 해서 중국에는 부엌이 사라졌섰다고 한다. 먹는 것을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발상 아니겠는가? 그래서 중국의 가정이 파괴되고 몰락하는 한 때를 겪었다고 한다. 먹는것 입는것 사는 집, 모두 국가가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이것이 국가경영을 책임지는 한국 정치권의 의식수준이다. 신문에서 읽은 것이지만 그리스의 어느 지식인이 ' 그리스가 국가부도에 직면한 것은 정치권의 경쟁적인 퍼퓰리즘 복지정책 탓이라며, 지금 한국도 그리스와 똑 같은 길을 가고 있다'고 경고하였다 한다.

둘째 이 정치권 개념에는 비단 정당의 활동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단체들, 농민, 학생 그리고 사회운동을 앞세운 비정부기구 심지어 종북세력 모두가 광의의 정치권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이들 모두 힘이 있고 정치적영향력이 크기때문이다. 퍼퓰리즘적인 테마를 가지고 이들은 이합집산을 하면서 그들이 추구하는 이익을 위하여 투쟁한다. 대중의 미래나 경제적부담은 도외시한 퍼퓰리즘적 활동을 한다. 그리스가 망한 길을 우리도 애써 따라가고자 한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재정수요는 한없이 커지고만 있다. 경제가 발전할 수록 복지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국처럼 빠른 발전을 한 경제에서는 복지정첵에 대한 축적과정이 짧기때문에 안 그래도 이 부문의 재정수요는 엄청 크게 그리고 빨리 늘어나게 되어 있다. 거기에 급격한 출산율 감퇴는 국가전체의 생산성향상을 어렵게 만들고, 고령자에대한 부담은 개인이나 경제전체로도 큰 부담으로 다가 오고 있다. 거기다가 남북관계의 발전이나 미국의 재정구조개선 추진이 단기적으로 한국의 자체방위비 부담을 크게 요구하게 될 것이다.

넷째 고용창출을 위한 성장을 위하여는 재정의 유인투자가 필요할 것이다. 현재 정부가 생각하고 있는 한국의 잠재성장율 5%도 부족한 상황인데 OECD 전망으로 앞으로 3년동안 한국의 잠재성장율은 3.4%이다.이 잠재성장율을 어떻게 끌어올릴 수 있는가가 '공생발전'의 제일 큰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내 판단으로도 한국의 잠재성장율이 5~6%는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한 별단의 대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다섯째 통일비용의 준비도 미룰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방법에 따라 재정의 테두리 밖에서 준비될 수도 있겠지만, 어떻한 경우이던 한국경제의 부담으로 귀착되는 것이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도 잠재성장율 증가가 필요로 한다.

여섯째 2012년은 한국의 국회의원선거와 대통령선거가 모두 겹쳐 있는 해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퍼퓰이즘적 재정지출 요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은 자명하다. 그것을 정부 혼자 막아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더구나 임기가 끝나가는 대통령으로서는 벅찬 일일 것이다.

일곱째 반면 한국의 재정수지에 대한 안심 기대가 이제 한계점에 다달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재정구조는 다른 일반선진국들에 비하여 건실한 편이었다. 국가부채나 재정수지 모두 괜찮은 모양을 나타내왔다. 작년말 현재 한국의 국가채무규모가 GDP 대비 44.5%인 393조원이고, 관리대상 재정수지적자가 43조원으로 GDP의 4.1%에 해당한다. 이들 모양은 국가채무를 발생주의로 전환(과거에는 현금주의)한데서 나타난 부채액의 증가가 반영된 것이긴 하지만 과거 1980년의 국가부채 GDP 비율 20%보다는 두배도 더 많아진 모양이다. 재정수지 적자규모도 2008년 이후 67조원에 달하는 위기극복 재정투입이 반영된 것이긴 하지만 1%대에 있던 과거와 비하면 높은 증가세다. 재정수지적자규모는 김대중 노무현정부를 거치는 동안 늘어난 재정의 복지수요 증가와 함께 앞으로 빠른 속도로 증가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의 재정구조가 지금까지 그래도 건실했던 것은 1984년의 '제로베이스 예산 개혁'의 덕분이라고 평가한다. 당시 모든 재정지출을 제로에서부터 재점검하여 예산을 다시 짰다. 그것도 추곡수매가, 임금인상처럼 정치적 영향이 엄청나게 크고 폭발력도 큰 고질적인 재정부담비용을 과감하게 동결하는 예산구조개혁을 단행하였다. 그 이후 한국경제는 민주화과정을 거치면서 엄청난 저항과 부담을 안기도 하였지만 한국의 재정이 오늘 날까지도 건실하게 버텨나갈 수 있게 만든 초석이 되고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 민주화과정을 거치면서, IMF 시기를 거치면서도 그래도 재정구조를 크게 망가트리지 않은 것도 한국정부 운영자들의 노력의 결과이다. 이러한 한국의 재정이 이제 그 구조적 부담의 한계에 다달은 것을 느낀다. 더 이상 건실하다고 안심할 수 없다.

자 이런 상황 하에서 대통령은 2013년까지 재정균형을 지키겠다고 선언하였다. 앞의 상황을 곱씹어보아도 2년 안에 재정의 균형을 맞춘다는 것은 가히 혁명적 발상같다. 어떻게 할까? 앞의 재정수요를 대통령이 잠재울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정치권이 개과천선한다는 기대는 처음부터 성립하지 않는다. 공생발전은 누가 해주나? 격차없는 발전, 고용을 창출하는 성장, 서로가 서로를 보살피는 땃뜻한 사회는 저성장 속에서, 인플레 속에서 만들어질 수 있나? 어렵다. 그렇다고 세율을 올려 세금이 더 걷어지나? 세수는 세율보다는 경기의 함수가 더 크다. 4% 성장을 하면서 세수를 획기적으로 느릴 수 있는 세율은 없다. 마지작 방법은 30여년전에 사용하였던 제로베이스예산과 같은 혁명적 발상밖에는 방법이 없을 것 같다. 그것이 지금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나는 가늠이 가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임기가 다 해가는 이명박정부의 능력으로는 되지 않을 일 같다.

그렇다면 결론은 이명박대통령의 2013년 균형재정의 유지는 실현이 어려울 것 같다. 대통령의 말씀대로 균형재정을 유지하지 못한채 가는 것은 '구멍난 배로 항해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대통령이나 정부 혼자서 될이 물론 아니다. 국민 모두가 합심하고 작심하고 가야 가능한 일이다. 현재의 한국경제의 발전이 그저 거저 온 줄 착각하는 사람들이 요즘 많은 것 같다. 만일 지금 누가 제로베이스예산 같은 구조개혁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기개와 결심이 없다면 2013년 균형재정 달성은 또하나의 퍼퓰리즘이 될 것이다.










2011년 8월 16일 화요일

공생발전(共生發展)의 에코(echo)

2011년 광복절날 대통령 기념사를 주의깊게 듣고 있던 나는 짜증이 났다. 전체적인 구도나 내용을 왈가왈부할 의사는 없다. 생경한 단어의 나열을 들으면서 무슨 연설문을 저렇게 준비했나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말 꼬리를 잡는 것 같아 대통령에 대한 결례로 생각되어 조심스럽다. 그러나 전문가의 입장에서 이번의 국정연설을 들으면서 받게된 소회를 몇가지 기술하고 싶다.

우선 공생발전(echo systemic development)의 용어가 생경하다. 말의 뜻을 이해하기 어려워서보다도 억지로 말을 만든 냄새가 너무 난다. 이명박대통령 정부가 출범하면서 내걸었던 '녹색성장(green growth)'은 물론 우리가 처음 사용한 말은 아니지만 시의적으로 신선하고 공감이 가는 용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어서 나온 '친 서민' '공정한 사회' '동반성장' 등의 전략용어 시리즈는 전달감도 공허할 뿐만 아니라 개념도 혼란스럽다. 국정운영의 전략용어가 반드시 교과서적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용어가 주는 전략적메세지는 분명하고 일관되게 전달되어야 할 것이다. 전략적개념도 불분명하고, 포괄적이고 모호한 뜻의 용어는 성공적이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구차하게 그 뜻이 이런이런 것이라고 부연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공생발전이라는 것은 첫째 격차확대가 아니라 격차를 줄리는 발전이고, 둘째 고용없는 성장이 아니라 일자리가 늘어나는 성장이며, 셋째 서로가 서로를 보살피는 따뜻한 사회를 이루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옳은 말이고 방향이라고 믿어진다. 경쟁을 절대가치로 삼고 있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성공과 실패를 통하여 태생적으로 격차가 벌어지게 되어 있다. 발전결과의 격차를 주리는 것이 시장경제의 목표일 수는 없다. 다만 경쟁 실패자나 취약계층을 지원하고 보살피는 것은 시장경제 하의 정부의 정책이 해야 할 몫이다. 고용창출을 최대화하는 것은 시장경제운영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고용없는 성장이라는 말은 스스로 모순을 내포하고 있지만 그래도 고용집약적인 전략을 선택하여 고용을 극대화하는 것은 정부의 정책목표가 되어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보살피는 땃뜻한 사회'는 학계나 시민단체의 슬로건이지 정부의 정책전략으로 채택되기에는 너무 추상적인 상위개념이다. 이렇게 보면 공생발전은 처음부터 혼란스러워지고 정부의 전략으로 선택되기 위하여 많은 논란(에코)을 만들어 낼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공생발전을 국가의 발전전략으로 선택하는 것을 처음부터 잘못되었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어느 정부나 대통령도 국정운영의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국가운영을 하는 것이고 그것을 위하여 선택한 전략은 원론적 학문적으로 이론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국가운영을 목표로 하는 한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문제는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정책적수단을 여하히 잘 마련하여 추진하느냐가 가장 큰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말로 번지르하게 하는 것은 레토릭이지 전략이 될 수 없다. 가장 경계해야는 것이 인기주의(populism)인것이 그 까닭이다.

첫째 발전격차를 주리는 정책을 어떻게 마련할까? 시장의 원리인 경쟁을 제한할 수는 없다. 경쟁의 결과로 나온 격차를 어떻게 대처할까? 이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장경제의 태생적 모순이다. 그렇다고 경쟁승리자를 제한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경쟁실패자를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너무나 뻔한 이치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경쟁력 지원 일환으로 취한 환율등 수출지원정책은 시장에서의 발전격차를 가져오게 만들었다. 때문에 처음부터 내수시장 지원이나 금융등 서비스산업발전에 수출에 못지 않는 정책노력을 했어야 했다. 그걸 게을리했다. 그리고 몇개 수출대기업에 한국경제가 목을 매게 만들어 놓았다. 지금 삼성전자가 현대자동차가 잘못되면 아무 상관 없는 모든 사람이 살 수 없게 되어 있다. 종속(dependency)의 문제로 발전되었다. 이것은 시장경제의 모순이 아니다. 정책운영의 실패의 결과라고 나는 판단한다.

둘째 그렇기 때문에 애써 어려운 용어를 만들어 동반성장이니 공정사회니 하는 말 대신에 하나라도 실현가능하고 지속가능한 정책을 선택 추진해야 한다. 경제정책에서 가장 잘못된 출발이 윤리(ethics)를 강조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대기업의 도덕 아량을 기대하는 것은 대기업이 나빠서가 아니라 정책당국자로서는 금기해야 할 접근법이다. 일본사람들에게는 대기업이 할 일과 안할 일을 구분하는 윤리(나와바리)가 강조되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런게 없다. 대기업이 루이비통장사를 하던말던, 아이스크림장사를 하던말던, 골목 구멍가게 앞에 대형할인판매점을 하던말던 그것은 그들의 선택이고 전략이다. 자 그러면 무슨 수로 중소기업이, 경쟁취약자들이 살아간단 말인가? 그래서 시작된 정책이 공정거래제도이고 금융에서 공정거래확보를 위한 경쟁제한제도 등이 있다. 이런 제도가 어제 오늘에 생긴 것이 아닌데 왜 이런 격차가 생기나? 이것을 보다 엄격하게 시행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시장을 부추긴다는 명분으로 시장규칙에 대한 적용을 정권차원에서 물렁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이명박정부도 마찬가지 였다. 다음 자원배분에서 경쟁취약게층에 보다 많이 돌아가는 정책노력을 해야 한다. 특히 재정의 기능이 여기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는데 지난 시간동안 우리는 너무 수출에만 치중한 우를 범했다.

셋째 고용창출을 극대화하는 것은 경제운영의 결과이다. 따라서 정책운용에서 보다 고용창출이 원활한 업종에 자원배분이 확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고용은 사전적으로 세부적인 계획을 세워 정책을 추진하는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미래유망하다고 생각되는 업종이나 시장을 발전시키는 지원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미래산업을 예측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벤쳐시장을 육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정책노력은 지난 1990년대 말 그리고 IMF 이후에 한참 이루어졌었다. 많은 실패와 시행착오가 뒤따라서 지금은 이에대한 정책노력이 포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렵더라도 이것을 살려야 많은 유망한 고용기회가 창출된다. 금융산업이 그렇고 요즘 발전하는 한류의 문화컨텐츠 등 내수산업 육성이 수출 못지 않게 중요하고 이것이 한국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전략이 될 것이다.

넷째 땃뜻한 사회는 약자를 보살피는 사회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경쟁실패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보상차원의 접근보다는 규율과 법이 엄격한 사회질서를 만드는 일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질서의식 위에 실패자에대한 사회보살핌이 따라야 한다. 무조건적 보살핌이 필요한면도 있지만 그 이전에 실패에 대힌 책임과 응분의 보상이 함께 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전통가치인 유교적가치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종교로서가 아니라 생활철학으로서 근면, 희생과 절제 그리고 경로우애 등 전통적가치를 발현하는 사회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나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빠른 발전원인을 일본의 유교적 전통에서 찾았고, 그의 말대로 일본이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일본젊은이들이 잃어버린 유교문화에서 찾은 일본의 석학 모리시마교수의 접근이 오늘 한국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것 아닌가 생각한다.

다섯째 공생발전은 정치권의 탈 포퓰리즘에서 찾아야 한다. 아직도 이념의 그늘에 파무쳐 있는 종북세력과 그 아류들, 국가이익은 조금도 생각 안하고 눈앞의 정파의 이익에 매몰되어 있는 한국의 정치세력들 이들이 과연 공생발전을 논의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가? 오늘의 시급한 한국의 진로를 함께 걱정할 자격이 있는 계층들인가? 아니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으니 암담할 수밖에 없다. 이들을 대오각성시킬 수 있는 그룹은 막연하게 국민밖에 없다. 국민의 힘으로 이들을 질타하고 함께 포용하는 성숙성이 있어야 한국의 미래가 있다고 나는 본다.

공생발전은 그야말로 구호로 끝나기 쉬운 전략이다. 말로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하기만 잘 하면 대통령의 말대로 우리가 시장경제를 한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전략이고, 잘하면 한국적 발전모델로 발전될 수도 있다고 본다. 문제는 그 바탕그림이고 로드맵이다. 이것을 이명박정부가 제시하고 실천하지 못하면 이것 또한 하나의 퍼퓰리즘적 구호로 전락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11년 8월 9일 화요일

돌아온 탕아

성경에 나오는 돌아온 탕아처럼 나는 쭈볏쭈볏거리며 여중재를 찾았다. 그래도 여중재는 침묵하는 가운데 편안하게 나를 맞았고, 나 또한 고백하는 마음으로 여중재에 돌아왔다. 펜을 놓은지 반년이 넘었다. 금년들어 겨우 네 꼭지의 그것도 힘겨워해가며 글을 올렸지만 사실상 폐업한 거나 다름 없다.

개인적으로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 일이 나를 짓눌렀다고 변명하고 싶다. 그러나 그것은 그야말로 변명일 뿐 사실 나는 글 쓰는 일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이러고도 스스로를 '글쟁이'로 치부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내 글이 값진 것이어서도 아니고 더더군다나 누구에게 읽히고 싶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이것이나마 내 자신 존재함을 스스로에게 알리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글을 열씸히 써왔다. 아니 그나마 안하면 무엇 딱이 할 일도 없고, 그래도 자판을 두드릴 때가 나는 행복하기 때문에 이러고 산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게다. 현직을 떠난지 16년의 긴 세월 동안 나를 지탱하게 하여준 영양제같은 글쓰기에 다시 복귀하려고 한다.

각설하고,

2011년 8월 들어서자 지난 7개월동안의 증권시장이 장기조정을 마치고 다시 활기를 찾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 무섭게 세계증시는 패닉상태에 빠졌고, 세계경제는 2008년 리먼사태에 못지 않게 아니 어떤 면에서는 더 큰 파국으로 치닫을 것 같은 불안에 싸여 있다. 지난 7월 26일인가 미국의 국가채무한도조정이 막바지에 와 있을 때 CNN은 미국 오바마대통령과 공화당의 하원의장인 베이너의 협상과정에 대한 자기네의 입장을 담화형식으로 발표하는 것을 방송하고 있었다. 출장 중 호텔방에서 청취한 방송에 나는 '아! 저것이 성숙된 민주주의인가 보다'하는 생각을 하였다. 언제나 물리적 충돌을 연출하는 한국정치에 익숙한 나에게는 근사(?)하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물론 그때까지는 미국의 부채협상이 원만히 타결되고 내용도 저런 원론적인 재정지출삭감을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일 후 오바마는 정치권과의 타협된 결과를 발표하고 이어서 하원과 상원의 가결과 대통령의 결재가 일사천리로 이어졌다. 내용은 부채상한을 1조4천억불 증액하고, 그에 상당하는 액수를 앞으로 10년동안 재정지출을 삭감하는 것이다. 재정구조개혁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구조조정안에 대하여 여기저기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폴 크루그먼은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경제기 이렇게 침체국면에 있는데 재정지출 삭감은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실었다. 스티글리츠 등 대부분 학계에서도 부정적인 평가와 함께 더블 딥을 걱정하였다. 이어서 S&P는 미국의 신용등급을 AA+로 강등시켰다. S&P의 강등이유가 취약한 미국의 재정구조 때문이고, 이것이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없다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재정지출삭감이 미국경제를 다시 침체로 몰고가는 더블딥을 염려하는 것인지 불분명하지만 아무튼 일반이 잘 상상하지 못한 미국 신용등급하락을 전격발표하였다. 미국경제라고 최상급신용등급만 받으라는 법도 없고 미국경제를 분석해보면 수긍가는 점도 충분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사상초유의 일이고, 미국이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세계경제에 대한 발권력을 생각하면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것도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생각하면 미국의 재정구조 의곡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오랫동안의 레프트오버이고, 그것도 공화당 정부인 레이건, 부시 정부 때 정부부채가 제일 크게 만드어졌고 민주당 오바마대통령으로서는 그의 뒷처리를 하는 입장인데 이것을 내년의 대통령선거전으로서 공화당에서 들고 일어나고 있다는 분석에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욱 모를 것은 언론, 학계, 정치집단 어디에서도 이런 원인 제공자에 대한 시비나 잘잘못을 이야기하는 것을 본 일이 없다는 점이다. 역시 루틴화되어 있는 미국의 정권교체가 가져온 성숙성일까?

더욱 가관인 것은 전 FRB 의장인 그린스펀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장의 최저점은 한참 있어야 올 것이라는 말을 천연스럽게 하고 있다. 우리네 같으면 죽치고 있던지, 자기가 추진한 확장정책의 당위성을 이야기 하던지, 또 아니면 정책선택에 대한 잘못됨을 이야기 하는 것이 순서일텐데 마치 딴나라에서 온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 몰염치로 비치는 것은 동양적 생각일까? 그러니 러시아의 푸틴이 '미국이 세계경제에 기생하여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는 비난을 받는것 아닌가 싶다.

사실 생각하면 미국은 얼마나 자존심이 상할까? 일본처럼 할복(센빠꾸)하는 사람도 나옴직 하지만 프래그마티즘의 미국은 다른가? 벌써 시장에서는 미국의 패권(imperialism)이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물론 다분이 중국의 세계지배를 부추기는 친중국적 분석이고 희망이지만 나는 거기에 전연 동의하지 않는다. 기축통화체제의 변화도 아직 이른 이야기이다. 지난 66년동안의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체제는 쉽게 무너질 수 없다. 2차대전 후 영국의 파운드화가 미국의 달러로 전환될 때도 그것이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고 대전과정에서 미국의 힘과 영향력에 영국이 감당할 수 없어 이루어진 것이며 그것도 파운드와 달러의 두 통화체제가 상당기간 지속되었다. 지금 대전 후의 미국의 힘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의 경제력 비중 그리고 국방력 앞에 아직은 이에 대응될 세력이나 국력은 나타나고 있지 않다고 보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미국의 IT기술을 능가하는 국가는 아직 찾기 힘든다. 바다를 지배하는 해군력이 미국을 능가하는 국가나 세력은 아직 없다고 나는 판단한다.

그러나 역사는 변화를 전제로 한다. 내가 좋아하는 조지 프리드만의 말대로 10년 안에, 아니 100년 안에 미국의 패권적 힘을 능가할 국가나 세력을 찾기는 힘들것으로 보이지만, 비미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미국의 부채처리는 무책임하고(irresponsible), 비 도적적(immoral)이라고 나는 평가하고 싶다. 2008년의 세계경제침체나 이번의 경제충격 모두 미국이 만든 것이다. 패권적 힘을 가진 자는 나와 함께 함께사는 모두를 끌어안을 줄 알아야 한다. 나만 살고 너 죽는 것은 내 알배 아니라고 돌아서는 것은 소인배의 작태이다. '발권력을 가지고 있는 미국이 채무불이행을 할 수 있는가' 하고 큰 소리칠 것이 아니라 그 발권력이 미국의 이익 뿐만 아니라 세계경제의 선순환을 가져오도록 행사되어야 한다. 그것이 미국의 책임이고 도덕성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맹자가 이야기하는 의(義)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