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20일 화요일

에필로그 1.(2008~2009.01)

미국의 리먼 브러더스가 부도가 난 이후 세계경제는 당황하기 시작하였고 미국의 전대미문의 시장 지원 앞에 세계는 안도 보다는 더 당황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당황스러운 환경 앞에 잘난 척 잘하던 경제학자들은 다 어디 갔느냐는 비난 섞인 논설을 보고 나는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

블로그의 특성상 편집에 여러 제약이 있어 일정간격으로 에필로그의 형식을 빌려 그 동한 한 일을 정돈하고자 한다. 앞으로 제목과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글을 쓰고자 한다. 많은 질책과 격려를 부탁드린다.

2009-1-20 경제위기에서 개방된 작은 경제가 살아 이기는 길
1-16 생산적 노조문화를 만들 때다
1-14 그린뉴딜정책에 대한 정책적 고찰
1-10 신자본주의(new capitalism)는 가능한가?
1-7 비상경제정부 운영의 정책적 의미와 과제
1-3 비상경제정부체제의 운영

2008-12-31 2008년을 보내며
12-30 느낌으로 본 2009년 경제전망
12-26 디플레이션 함정에서 벗어나는 정책
12-5 국회기능에 대한 회의
12-1 무슨 경제국치일?

2008-11-29 과잉처방트랩에서 벗어나자
11-25 오바마 경제팀 인선을 보는 한 한국인의 마음
11-19 선제적 금융감독 기능을 마련해야한다
11-15 종부세 당장 폐지시켜야한다
11-6 오바마를 통한 변화를 선택한 미국과 향후 세계정세

2008 10-28 좀 신중하게 정책을 세우자
10-25 한국정부는 경제위기 처리에 좀더 진중하게 언동 해야 한다
10-10 2류경제학자의 현 경제상황 타개방안

경제위기에서 개방된 작은 경제가 살아 이기는 길

세계 열세번째 가는 한국경제를 작은 경제라고 말하기 는 좀 그렇지만 작은 국토면적에 많은 인구를 가진 한국경제 그것도 세계 유일하게 남아있는 남북긴장관계가 언제나 뒷머리 한쪽을 짓누르고 있는 상황을 가지고 있는 경제는 언제나 남 앞에 당당하기 힘들다. 그것도 원했던 아니했던 우리 속내를 모든 외부에 내보이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개방경제를 운영하다보면 안전성(stability)보다는 취약성(fragility)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1997년 IMF를 거치면서 한국경제는 안전변을 제대로 가추지 못한 채 자본시장을 거의 모두 개방하고 말았다. 그래서 기간산업이라 할 수 있는 전력, 철강, 통신등과 실물경제의 목을 잡고 있는 금융부문등의 소유지분 중 상당량이 외국 자본에 넘어갔다.

1960년대 수출주도의 경제개발을 시작하면서 원자재부문 등을 외국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경제는 개방을 잉태할 수밖에 없었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개발을 추진한 목적은 당초 수입대체를 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과욕투자는 오히려 수출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되어 수입에 더 의존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당시 한국경제운영은 이런 실물구조의 발전에 따라가지 못하고 관(官)이 주도하여 시장을 간섭하고 시장은 보호되고 취약한 분야는 정부지원에 익숙하여 있었다. 국내시장의 대외개방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그런데도 아이가 부모도 깨닫지 못한 가운데 쑥쑥 커가듯 한국경제규모는 1000불 소득과 100억불 수출로 웃자라 있었다.

그래서 1970년대 중반 정부 일각에서 수입자유화를 조심스럽게 꺼내들기 시작하였다. 자유화라고 해봐야 지금과 같은 네거티브 시스템이 아니라 수입허가품목을 기별로 공고하는 것인데 그것을 확대하고 좀 탄력적으로 할 것을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에서 제안하였다. 이러한 이름 지어 자유화의 논의는 해당업종에서 청천벽력과 같은 정책으로 받아들여 반대의 목소리는 하늘을 찔렀다. 이를 배경으로 상공부 농림부등에서 펄쩍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경제기획원 안에서도 경제기획국을 제외하고는 시기상조라고 반대하였다. 물론 언론에서도 반대하고 당시 주요일간지의 하나는 사설에서 수입자유화논의에 대하여 우리가 언제 발전하였다고 이런 섣부른 개방을 논하느냐 하는 식의 힐난을 하고 나섰다. 개방론자들은 백면서생인 비교우위론자로 불리며 폄훼되고 있었다.

1975년 필자는 경제기획원 종합기획과장으로 1977년부터 시작되는 4차5개년계획서를 종합하여 집필하고 있었다. 동료들과 함께 한달 여를 당시 홍능에 있었던 KIST(훗날 KAIST) 영빈관을 빌려 숙식을 하면서 일하고 있었다. 당시 5개년계획서 작업은 언제나 그대로 되는 경우는 없었지만 앞으로 한국경제가 갈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실무자들은 혼신의 노력을 그 작업에 투입하여 그동안 관계부처와 연구소에서 연구된 것들을 종합 정리하였다. 물론 이런 작업은 장관의 관심도 등에 따라 실무진 들의 열성의 차이가 있어왔지만 당시는 5개년계획서작업이 개방의 화두와 함께 경제기획원 안팎으로 모두 관심을 가지고 결과를 주목하고 있었다. 당시 우리 집필진들은 한국경제가 개방을 하였을 때 세계경제의 부침에 따른 한국경제의 안전변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를 놓고 심각한 토론을 하였다. 그래서 얻은 결론이 네델란드나 벨지움처럼 무역규모가 국내 GDP를 초과하는 수퍼 개방국가들의 경제가 견뎌가는 것은 세계경제의 부침이 나라에 따라 차이가 있게 마련이므로 경제가 일시적으로 어려운 나라가 있으면 상대적으로 좋은 나라가 있게 되므로 수출선을 다변화하면 해결될 수 있고 그에 앞서 자국경제의 경쟁력을 항상 유지하여 갈 경우 내수시장에 주로 의지하는 경제보다 오히려 더 활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국경제의 무역자유화는 초보적이지만 1978년경부터 공식화되어 갔다. 그러나 그 개방의 속도는 매우 느리게 진행되다가 1980년대 초 전두환 대통령의 제5공화국이 탄생되면서 경제정책의 기본을 ‘안정과 개방’으로 천명한 이후 본격적인 개방이 추진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의 개방정책은 상품수출과 수입에 관련된 것이 주를 이루었고 그것도 수입개방을 포지티브시스템에서 네거티브시스템으로 전환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그러한 개방과 시장경제운영의 흐름은 1980년대 중반 이후 민주화의 물결을 타고 후퇴를 거듭하였다. 서비스부문 특히 자본시장의 개방은 정치 민주화 물결의 힘 앞에 말을 꺼내기도 힘들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1988년 당시 재무부에서는 자본시장 개방의 일정을 연차별로 조심스럽게 준비한 로드맵을 발표하였다.

1993년 김영삼정부는 국내 투자금융회사(단자회사)들을 종합금융회사로 전환하여 주면서 국내시장에서 어음할인을 주업으로 하던 그들에게 해외단기차입을 허용하였다. 주의 깊지 못한 정책이었다. 이렇게 하여 단기에 대거 도입된 단기외화차입이 사용처와 차입선과의 지불 미스매치가 생겨 결국 외환수급에 차질이 발생하는 바람에 한국경제는 1997년 말 IMF를 맞고 말았다. IMF 기간 한국경제의 자본시장 개방의 연차별 로드맵은 거론도 해보지 못하고 한국의 자본시장은 외부 요구에 의하여 안전판을 가추지 못한 채 100% 개방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김대중정부는 자본시장을 포함한 서비스부문과 농업 등 일부 지원이 불가피한 부문에 대한 개방요구에 속수무책이었다. 자본시장은 기간산업이나 사회간접자본을 주업으로 하는 회사들인 제철, 통신, 금융회사들의 소유구조가 단시일 내에 외국자본에 잠식되었고, 농업은 보호한답시고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단순 합계하면 수백조의 지원이 농업부문에 구조조정한다고 투입되었지만 달라진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김대중정부가 정부 기업 금융 그리고 노동개혁을 한다고 기치를 들고 일어났지만 양두구육으로, 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정부개혁은 오히려 쓸데없는 위원회 등의 난립으로 실무진만 수자를 주리고 상위계층은 늘리는 해괴한 모습을 노무현정부까지 이어갔다. 금융개혁은 수백 개의 금융회사를 퇴출시키고 일부를 단순 통폐합시켜 덩치만 키웠지만 그들이 한 짓은 기껏 집 잡고 돈 빌려주는 금융에 집중하여 600조가 넘는 가계부채를 양산하였다. 경쟁력향상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기업개혁은 빅딜이니 화의니 하는 현란한 용어를 내세워 기업을 외국자본에게 M&A시켰다. 노동개혁은 노사정위원회를 만들어 좌판만 벌려놓고 민주노총 한국노총의 정치세력화만 촉진시켜 놓고 말았다. 이러한 개혁과제의 폐기는 노무현정부에서는 아예 문제의 제기도 없이 쓰레기통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경제대통령의 기치를 달고 새로 태어난 이명박정부는 세상 밖으로 나오자마자 인사파동, 쇠고기파동을 겪으며 방향 감을 찾지 못하고 있는 판에 세계적 경기침체 쓰나미 앞에 그만 망연자실하는 상황이다.

한때는 2300억달러의 외환보유액을 한국정부는 앉으면 자랑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1997년 200억불에 불과하던 외환보유액이 나중에는 30억불로 줄어들어 환난을 겪었던 점을 생각하면 한편 뿌듯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숫자의 허구는 현실에서 증명된다. 우선 외환보유가 모두 돈을 벌어다가 쌓아놓은 것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거의 많은 부분이 잉여가 아니고 차입에 의해 일어난다는 점과 경제규모가 매우 커져서 하루에 국제금융시장에서 거래되는 자본의 거래가 수조달러에 이르고 있고 현대통신기술에의한 자본의 이동은 세계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생각하면 외환보유액 만이 능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물론 외환보유가 많은 것이 안전변이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경제운영의 충분조건이 되지 않음을 최근 한국경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외환보유와 관련하여 이명박정부 1년은 잘한 부문도 있고 잘못한 부문도 있다. 우선 환율을 안정시킨다고 시장에 개입하여 수백억달러의 외환을 사용하였지만 환율은 아직도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나마 미국 FRB와 통화스왑을 하고 이어 일본 중국과도 통화스왑을 한 것은 잘 한일에 속한다. 실제에 있어서나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줄뿐만 아니라 한국시장에서 먹이 감을 찾아보겠다고 벼르고 있는 일부 헤지펀드들의 비열한 한국경제 폄훼 과대포장에도 일격을 가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그런데도 최근 사태이후 한국경제만 유독 달러에 대한 절하 폭이 크고 아직도 환율은 불안하기만 하다. 물론 동시적 세계불황 앞에 수출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어 성장 고용 등에 적신호가 켜져 있고 경기회복을 한다는 정부의 여러 정책들이 국회 등 외부여건과 정부 안에서의 협조체제 불안으로 그 효능이 신속하지 못한데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신뢰(trust)를 얻지 못하고 있는데 있지 않나 생각한다. 새해 들어 정부는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개각을 단행하고 새로운 자세를 가다듬는 모습이다.

경제가 발전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여러 취약성을 가지고 있는 한국경제다. 외국펀드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비교적 잘 짜여져 있지만 그 규모나 경영 그리고 기술 등에 짜임새가 튼튼하지 못하여 어려움을 당할 경우 쉽게 지배될 수 있는 구조가 한국경제라고 볼지도 모른다. 지난 IMF 때 얼마나 그들은 재미를 보았나? 그러니 호시탐탐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명박정부가 이렇게 하면 위기탈출이나 안전변 확보가 가능하다는 청사진을 제대로 내 놓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개방된 작은 경제가 살아 이길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 진솔하게 몇 가지 고민해 보고자 한다.

첫째 개방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개방경제 하에서 어떻게 안전변을 확보할 것인가? 이에 대답은 모든 부문에서 여유를 갖도록 정책을 펴는 일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어렵게 느껴지지만 사실 답은 명확하다. 경제를 안정의 바탕위에서 운영하여야 한다. 수요 진작을 위하여 총력을 기울이는 판에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만 지금의 경기부양책도 그래서 좀 차분할 필요가 있다. 안될 때 돈만 퍼붓는다고 경제가 회생되는 것이 아니다. 유동성을 푸는 것이 불가피하겠지만 돈보다는 제도를 고치는 노력을 함께 추진할 필요가 있다. 우선 노동개혁을 해야 한다. 노동조합이 정치집단으로 되어서는 개방된 경제를 운영할 수 없다. 노동계를 압박하라는 말이 아니라 불법성과 폭력성을 노동쟁의에서 완전하게 제거해야 한다. 기업의 지배구조도 분명해져야 한다. 경제가 어려우니 기업을 보아준다는 개념은 전근대적 발상이다. 기업은 모래사막에 가서도 살아 발전할 수 있는 역동성과 진취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기업의 지배구조가 분명하고 떳떳하게 되어야 하고 그런 기업을 정부와 사회가 지원해야 밖에서 한국경제를 만만하게 보지 못한다. 덩치 키우기 금융기관 운영에 익숙한 경영은 고만두어야 한다. 경쟁력이 없는 금융기관들이 덩치 뒤에 숨어 호신하는 경영기법은 배제되어야 한다. 현재 이명박정부의 정부운영이 노무현정부를 닮아가지 않을까 염려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4대강운하계획을 버려라. 작은 정부를 지향해라. 패거리 중심에서 벗어나라. 그리고 시장을 보고 차분하고 자신 있는 경제운영을 정부가 해 보이는 것이 개방된 작은 나라가 갈 길이라고 생각한다. 경영학에서 hubris는 과거의 경험을 과신하여 고집함으로써 결국 실패에 이르게 된다는 말이라고 풀이한다. 열린 마음으로 지혜를 모아야 한다.

둘째 21세기는 지역중심의 협력체가 힘을 받고 있다. 미국의 수퍼파워 앞에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던 EU, NAFTA 등의 지역협력체제는 세계적 경제위기 앞에 다시 힘을 받게 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2008년 12월 워싱턴에서 시작된 G20회의는 글로벌 경제운영의 방향을 잡아가겠지만 미국의 영향력이 제한되는 가운데 종국적으로는 지역간의 협력을 가속시켜갈 것으로 전망된다. EU 국가들은 그들끼리, 산유국들은 OPEC을 중심으로, 최근 가스공급국들까지 러시아를 중심으로 뭉치고 있다. 아시아 태평양지역은 APEC 기구가 있지만 엉성한 협력기구일 뿐이다. 아시아 중심의 태평양지역은 그동안 협력기구 구성을 위한 몇 차례 시도가 있었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고 최근 AMF(아시아통화기금)도 실패하였고 한중일 단일통화 시도도 연구하기로 2004년 3국간에 합의하였지만 아직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최근 러시아와 중국 사이 통상에서 미국달러 사용의 배제를 합의하였다고 한다. 어차피 미국 달러의 기축통화로서의 힘이 전만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면 차제에 한중일 공동통화(common currency) 설치를 적극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EU 국가들처럼 자국통화를 인정하면서 공동통화를 운용하면 금융 불안기에 안정을 확보할 수 있고 상대국과의 협력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물론 3국간의 역사적 특성 등을 생각하면 쉬운 일이 아니고 EU의 공동통화 전제인 마스트리트 조약 (maastricht) 같은 경제운영의 기본 틀들을 합의할 수 있느냐 등의 어려움이 있겠지만 최근의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3국간에서도 이러한 협력의 필요성을 서로 깨닫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한국정부가 보다 적극화하는 노력을 보일 필요가 있을 것으로 평가한다.

셋째 한국사회의 신뢰구축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평가한다.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주장대로 신뢰(trust)는 제4의 생산요소라고 할 수 있다. 버락오바마 미국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유독 미국인의 책임과 봉사를 강조한 것은 미국사회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처럼 작고 개방된 사회가 세계 속에서 계속 발전해서 살아 이기기 위해서는 한국 국민들 사이에 신뢰를 바탕으로 단합해야 한다는 점은 누구나 수긍할 것이다. 그러한 신뢰는 군사독재를 통하여 형성될 수 없고, 문을 닫고 앉아 있는 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현재의 한국사회는 북한이라고 하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이런 한국사회가 발전이라고 하는 하나의 이해위에 단합될 수 있는 신뢰를 만들 수 없다면 개방된 한국사회의 미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발전이라고 하는, 번영이라고 하는 하나의 공동선을 위하여 신뢰를 구축하게 하는 것은 정부뿐만 아니라 지금 세대를 살고 있는 한국사람 모두의 책임이라고 평가한다.

결론적으로 개방된 작은 한국경제가 살아가는 길은 위기 앞에 허둥대지 말고 경제를 어렵더라도 참고 안정되게 운영해야 한다. 무한정한 재정의 확대나 통화의 공급보다는 어느 정도 그것을 해 나가되 제도개선을 통한 효율성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개방된 시장의 발전은 한중일 공동통화의 설정 과 같은 지역 협력제도를 마련하기 위하여 지금 서두르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동시에 한국 사회전체의 신뢰구축을 통한 단합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한국 국민 모두가 나설 때라고 평가한다.

2009년 1월 16일 금요일

생산적노조문화를 만들 때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가 주간 2교대제 시행을 촉구하기 위한 파업수순을 밟기로 하였다고 한다. 당초 금년 1월부터 주간 2교대제를 실시하기로 노사가 합의하였는데 이것을 아직 시행하고 있지 않는다는 이유로 파업을 할 모양이다. 이에 대하여 경영진에서는 갑자기 닥친 경기후퇴로 일거리가 줄어 교대근무를 할 형편이 되지 못하니 당장 시행할 수 없다고 하는 모양이다. 다른 날 나온 보도에 의하면 쌍용자동차 경영진이 요구하는 구조조정을 위한 감원요구를 노조가 받아드리지 않자 도저히 이대로 갈 수 없다고 법정관리를 신청하였다고 한다.

세기적 공황 앞에 안타깝게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갑갑하기만 하다. 일거리가 없는데 2교대제를 고집하는 노조, 회사가 문 닫을 지도 모르는 어려움에서 감원을 하자는데 안 된다고 버티는 노조, 모두 노조의 입장에서 이해될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더 가면 어찌되는가 생각하면 이러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오기도 한다. 현실 문제를 보는 객관적인 시각은 이것 무슨 해결책을 강구해야 하지 않느냐 하는 결론을 얻게 된다.

2008년 10월 이후 세계는 어디라 할 것 없이 파멸위기에 있는 경제를 구하겠다고 정부가 팔 걷어붙이고 나서고 있다. 재정지출은 말할 것 없고 세율 금리를 유례가 없을 정도로 대폭 인하하고 있다. 시장경제의 기본원리고 뭐고 할 것 없이 정부는 기업을 살리고 시장의 수요창출을 위하여 이체면 저 체면 따지지 않고 나서고 있다. 이런 판국에 월스트리트를 시발점으로 해고가 일어나고 새로운 고용기회는 하늘의 별따기 모습이다. 고용시장에 들어오지 못하는 인력들의 무너지는 가슴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래서 새로운 유행이 일거리나누기(job sharing), 인턴 십 그리고 신규 고용에 대한 정부보조 등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편법도 잠시잠간이지 정상적인 고용형태가 될 수는 없다. 기술과 근면성을 토대로 생산성을 올리는 정상적인 고용창출은 경제의 정상화에서 나옴은 당연하고 그런 고용시장을 만들어가는 것이 모든 경제정책의 초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한국의 노조문화는 이러한 절박한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한국의 경제발전 초기 민주화를 위하여 군사독재와의 투쟁이라는 명분과 합성되어 한국의 노조문화는 비타협, 투쟁성이 각인되었다. 그것이 1980년대 말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의 군사독재 타도 명분이 절정을 이루어 그 이후 한국노조는 무소불위의 권력집단으로 발전되었다. 한국의 노조는 개별 직장노조와 함께 산업별노조가 병행하고 1990년대 초에는 한 회사 안에 복수노조가 인정되고, 급기야 노조의 상급기관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으로 이원화되어 선명성과 투쟁성을 서로 경쟁하게 되었다. 한국의 노조는 단위노조 산별노조 그리고 상급노조로 하나의 커다란 권력집단으로 변화되었고 이것에 뿌리를 둔 민주노동당이라는 정치정당을 만들어 내었다. 이러한 권력에 호가호위되어 1980년대 말 이후 노조, 엄격하게 말하면 노조집행진의 이익을 위하여 불법 파괴적 가두시위가 다반사로 이루어졌고 심지어 회사 사주(社主)를 린치하는 일도 일어났고 파업을 밥 먹듯 하였다. 이런 흐름이 민주화가 이루어진지 20년이 지난 오늘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불법성노조문화는 오늘날까지도 세계적으로 그 명성이 나 있다. 특히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좌 편향정책은 노조와 동지적 협력관계를 유지하여 오면서 투쟁성을 고양시켜왔다고 할 수 있다.

IMF 때 김대중 정부는 노동개혁을 한다고 노사정위원회를 만들어 놓았지만 제대로 협의를 하지 못하고 시류와 이해에 따라 그 기구의 주요축인 노조대표들은 회의참석 여부를 가지고 권력을 행세하여 왔다. 결국 위기 때 아무런 합의를 창출하지 못한 채 김대중 정부는 노동개혁을 폐기하고 말았다. 노무현정부에 들어와서는 이 분야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지난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에서 국민은 이러한 노조권력을 배경으로 한 정치집단을 외면하고 말았다. 이상의 흐름 속에서 쌍용자동차의 구조조정 반대나 현대자동차의 파업수순을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정부는 세계적 경기침체와 관련하여 금리를 유례없이 인하하고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있다. 2009년 1월 16일 현재 한국의 기준금리는 2.5%까지 내려갔다. 유독 한국경제 만 물가가 내리지 않는 경직성을 가지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이미 마이나스 실질금리이다. 일본에 이어 미국이 제로금리시대를 선언하고 나섰지만 한국의 경우는 경제규모나 채권시장의 발전이 부족한 면을 생각하면 금리인하에 자연 더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재정지출 확대나 세율의 조정도 한국경제가 가지고 있는 상대적 강점이지만 이것도 한국국회의 낙후성으로 인하여 탄력적 운용이 용이하지 않다. 더구나 미국의 씨티은행 그룹이나 독일의 도이치뱅크 등 대형금융기관이 견디지 못하거나 카드채가 부도가 나는 등 제2의 글로벌금융위기가 온다면 한국경제의 취약성은 더욱 들어날 형편이어서 정부의 위기극복을 위한 정책변수의 조정은 좀 여유를 남겨놓고 가야 할 형편이다. 아무튼 현재의 정부지원정책이 원활히 이루어진다고 하여도 위기탈출 기여효과는 그리 기대할 만하다고 할 수만 없다.

이런 상황을 감안한다면 지금 정부가 서둘러야 할 한 분야가 노조의 협조와 이해를 구하는 정책이라고 할 것이다. 이미 정부가 쟙 셰어링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고 한국경제의 어려운 한 축인 노조의 생산적 문화 창출을 위한 노력이 종합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 어려운 때 임금을 동결하거나 인하하는 노력이 노조에서 나와야 한다. 일을 더하고 생산성을 올려 자사제품의 판로를 확보해야 한다. 복지는 어느 정도 양보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생산적 노조문화라 한다면 이것을 회사와 진지하게 협의하여 회사가 망가지지 않도록 노조가 나서야 한다. 그런 판에 일부 감원이나 노동환경의 개선에 목을 매는 듯한 최근의 쌍용자동차나 현대자동차 노조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기존 실패기구인 노사정위원회를 당장 폐지시키고 오히려 생산성을 자원하여 올리는 노조에 대하여 직접 지원을 할 수 있는 길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정부는 정책변수의 조정에 만 매어달리지 말고 오히려 과감한 발상의 전환을 하는 정책을 강구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한다.

노조도 이제 과거 투쟁의 미몽에서 깨어나 내가 회사이고 회사가 살아남는 것이 무엇에도 우선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것을 생산적 노조문화라 한다면 이것이 노조에서 먼저 들고 일어나야 한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지금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경제위기 탈출을 위한 노력에 한국경제가 단연 돋보일 것이다. 노동계급을 대변한다는 사람이 국회에서 파괴행위나 일삼는 볼썽사나운 연출에 국민은 이제 완전히 외면하고 있음을 한국의 노조는 인식해야 할 것이다. 우선 노조의 집단행동에서 붉은 띠를 없앨 것을 제안한다. 독재타도의 상징인 붉은 머리띠는 이제 오히려 독재의 당사자가 되어버린 노조가 계속 띄고 다니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꼭 머리띠를 매야 한다면 불루 오션의 상징인 파란색이 낫겠지만 그것도 필자는 반대다. 토론과 협의와 타협의 문화가 현대 노조문화의 기본임을 주장한다.

2009년 1월 14일 수요일

그린뉴딜정책에 대한 정책적 고찰

한국정부는 새해 들어 1월 9일 그린뉴딜정책의 방향을 설정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규모는 2012년까지 50조원을 투입하여 96만개의 고용을 창출하겠다고 한다. 그중 18조원을 4개강유역개발에 투입하여 28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이고 이를 즉각 착수하는 착공식을 갖고 공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머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발표되지 않았지만 계속 검토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린뉴딜정책은 미국 대통령 선거 중 또는 선거후 오바마 대통령후보가 그리고 대통령 당선자가 앞으로 10년간 1500억달러(210조원상당)를 투입하여 5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계획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오바마 진영은 과거 루즈벨트 대통령의 테네시개발사업과 같은 건설사업 대신 하이브리드카, 재생에너지, 에너지고효율주택 등 에너지절략사업에 주로 투입하겠다고 발표하고 이의 추진을 오바마는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인 지난 주 라디오연설에서 구체화해서 밝힌바 있다. 이러한 오바마의 그린뉴딜정책은 일본, 영국, 불란서 그리고 한국 등 여러 나라에서 적극적인 지지와 호응을 받게 되었다.

그린뉴딜정책은 말할 것도 없이 그린과 뉴딜이라는 이미지의 상징을 합성한 정책이름이다. 심각한 경기침체를 맞아 이를 단기간에 극복하는 방안은 대규모사업을 벌려 대량의 고용을 창출하고 그에 따른 수요 진작을 목표로 하는 사업을 찾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1929년의 세기적 공황에 사용하였던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요즈음처럼 에너지다소비에서 오는 지구온난화 등의 어려움을 이미 겪고 있고, 화석에너지 개발에 한계가 예측되는 이 지구촌에 다시 에너지를 마구 투입하는 사회간접자본 투자방식에는 자연 한계가 있게 된다.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경제회생의 동력으로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다시 생각하는 것은 재탕일 뿐만 아니라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 덧붙여서 그린(green)의 이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린의 신선 이미지에 덧붙여 에너지를 적게 쓰면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분야를 생각하게 되고 그의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IT산업분야 같은 것을 먼저 생각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분야는 새로운 분야로 업그레드하기에는 이미 발전된 분야라 할 수 있으므로 그를 활용하되 새로운 분야를 찾게 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재생에너지분야나 하이브리드카 생산과 같은 분야가 자연스럽게 침체 후에 떠오르는 새로운 견인분야라고 오바마 진영은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린뉴딜정책은 대개의 선진된 경제에서 시의성과 타당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 정책이라고 평가한다.

이명박 정부도 일직부터 이러한 경기부양사업의 필요성을 깨닫고 신판 뉴딜정책을 검토하여 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명박대통령은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던 4대강 운하계획이 이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므로 이런 대규모 사업의 추진을 고대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4대강운하계획의 포기를 주장하는 요구에 할 수 없이 대선 공약의 실행을 유보하고 있었다. 그래서 간판과 사업내용을 변경하여 이번 4대강개발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4대강 운하계획을 연결하여 추진하려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혹은 남아있다고 할 수 있지만, 하도 경제가 어렵게 된다는 이야기를 듣는 터라 18조원을 투입하여 28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이 대규모사업 추진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나머지 사업은 대체수자원확보, 친환경중소땜, 그린카, 신재생에너지, 폐기물활용 등 분야를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다.

정부는 이와 별도로 새해 1월 13일 대통령이 참석한 회의에서 신 성장동력산업을 선정하였다. 녹색기술, 첨단융합 그리고 고부가가치써비스 산업을 대상으로 민관이 3조원의 펀드를 조성하여 이 분야를 개발한다는 내용이다. 이 사업과 그린뉴딜정책과는 어떻게 연관되는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국외자의 시선으로는 모두 그린뉴딜에 포함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하고 좀 혼란스러운 가운데 무슨 다른 이야기인가 생각하기도 할 것이다.

한국의 그린뉴딜정책이 경제정책으로서 특히 단기적인 경기부양정책으로서 타당성을 갖기 위하여 검토해야할 일반적 기준을 4대강개발사업과 관련하여 몇 가지 생각하여 보자. 시의성의 문제는 온 세계가 시급하게 추진하고 있는 경기부양정책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경제적 타당성은 구체적인 사업내용을 잘 알 수 없으므로 쉽게 인정하기는 어렵지만 정부에서 그것은 충분히 검토하여 추진한 것이라고 믿고 갈 수밖에 없다. 다른 사업과의 대체성과 관련 하여는 더욱 어렵다. 토목사업의 부가가치 창출효과가 그것도 거의 건설장비에 의존하는 현대 토목사업의 특성상 그 돈을 타 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기회비용 측면에서 타당성을 가질 수도 있다고 평가한다. 다음 단기적인 경기부양정책이 장기 발전방향과 합치하는가 하는 면에서는 강 유역의 정비이므로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 이상과 같은 수박 겉핥기식의 정책적 타당성을 토대로 이 정책과 관련한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하여 보고자 한다.

첫째 지금 금융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돈을 마구 찍어내어(정부차입 등) 공급하고 있는데 그것을 금융부문 뿐만 아니라 실물부문으로 급거 확대하여 갈 경우 훗날 이 버블의 부작용을 어찌 감당해야 할 것인지 생각하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어차피 토목공사에서 오는 경기부양효과를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면 좀 답답하더라도 이런 사업의 추진은 참고 가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둘째 고용창출의 일시성을 걱정한다. 토목사업의 특성상 상시고용보다는 일시고용이 중심이 될 것이므로 그것이 장기적인 고용안정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을 걱정한다. 건설사업의 고용창출은 이런 대규모 토목사업보다는 잔손질이 많이 가는 주택 학교건물 일반사무실 등 건설부문이 더 친고용분야가 될 것이다.

셋째 이명박정부의 토목사업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실제와는 차이가 있다고 믿고 싶지만, 일반적으로 이명박대통령이 현대건설에 종사하였다는 점과 또 대통령이 된 후에도 그에게서 풍기는 건설업자의 모습이 연상되는 언동을 보면서 생긴 이미지일 것이다. 그것이 물론 나쁜 것이 아님은 당연하겠지만 발전된 나라의 성장동력산업과는 좀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무언가 한국경제라는 브랜드를 드러내는 데 좀더 적극적인 사업을 선정하고 추진하였으면 좋을 것이다.

넷째 그 대안의 하나로 교육투자를 생각해 본다. 비근하게 학교교사(校舍)에서부터 시작하여 기숙사 등 여러 시설들과 다양한 실험시설 등의 투자는 단기간의 경기부양 효과도 클 것이고 토목사업보다는 오히려 친고용적이 될 것이다. 여기서 넓게 일반건설사업과 유사한 교육시설투자를 제기하는 것은 이것이 장기적으로 한국경제의 발전기반을 제대로 마련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학교시설과 실험시설을 제대로 가춘 교육시설을 확충하여 갈 경우 교육의 질은 물론 좋아질 것이다. 한편 경제가 어려운 때 가정의 가장 큰 애로는 사교육비의 부담이라고 할 수 있다. 분석에 의하면 2인 자녀를 가진 가정의 한달 생활비의 20%가 최소 사교육비로 들어간다고 한다. 이런 부담에서 벗어나는 길은 공교육의 질을 향상시킬 수밖에 없다. 공교육의 질은 교육시설의 업그레이드에서 시작하여야 할 것이다. 물론 이와 함께 교사(敎師)의 질이 중요함은 다른 과제로 등장하지만 여기서는 논외로 하자.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1960년대 중학교 무시험 실시에서 출발하여 1980년의 정부의 과외금지조치에 이르기까지 긴 역사를 가진 정부의 정책과제였다. 이러한 수요 쪽의 정책은 언제나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공급 면에서 대학을 입학정원제에서 졸업정원제로 전환하는 정책도 1980년대 초 시도되었다. 그러나 이 신선한(?) 졸업정원제는 당시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이 중심이 되어 추진되었다. 당시 필자가 이 정책의 추진을 실무적으로 책임을 맡아 교육부(문교부)와 어려운 협의를 한 경험이 있다. 당시 문교부는 처음부터 교육전문기관이 자기들인데 경제를 하는 경제기획원에서 남의 영역을 놓고 가타부타하는 것에 대하여 자존심이 상한 것 같았다. 특히 그때나 지금이나 대학정원을 다루는 일이 문교부의 큰 권한인데 그것을 없애는 것은 밖으로 말은 할 수 없지만 밥그릇을 빼앗는 것으로 이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당시 예산 배정 권을 가진 경제기획원이 주장하는 것을 외면할 수가 없어 마지못해 문교부는 그 정책을 받아드렸다. 우여곡절 끝에 1980년대 초 시행에 들어간 대학졸업정원제는 그 시행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였다. 무엇보다 졸업을 시켜주지 않는다고 교수와 학교 측과 학생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게 되었다. 물론 이 문제점은 문교부가 의도적으로 과장시킨 면도 있었다고 생각된다. 결국 그래서 졸업정원제는 한국에서 제대로 정책을 추진하여 보지도 못하고 1980년대 중반 당시 정부에 의하여 폐지되고 말았다. 만일 당시 어렵더라도 이 새 제도를 계속 발전시켜 정착시켜 나갔었다면 오늘날 한국의 교육 특히 사교육시장은 어떻게 되었을까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

이야기가 빗나갔지만 그린뉴딜정책을 이런 교육개혁과 연관하여 추진할 경우 그래서 좀 시간이 걸리는 흠은 있지만 과외 등 사교육비 부담에서 가계를 좀 자유롭게 할 수 있다면 몇 십만 아니 몇백만의 고용창출효과보다 더 낳은 발전을 한국경제에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결론적인 이야기는 그린뉴딜은 토목공사가 아닌 교육 등 신성장동력산업 쪽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판단한다.

2009년 1월 10일 토요일

신자본주의(new capitalism)는 가능한가?

1. 문제의 제기

새해 벽두 그러니까 1월 8일(현지시간) 파리에서 ‘자본주의의 미래’라는 주제의 회의가 있었다고 언론(1월 9일자 연합뉴스)은 전한다. 그 자리에서 불란서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과 독일 앙겔라 메르겔 총리는 새로운 금융질서의 구축을 강조하였다 한다.

오는 4월 런던에서 개최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G20정상회의에 앞서 사르코지 대통령의 제안으로 열린 이 회의에서 메르켈 총리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자본주의를 규제하는데 성공하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유엔에 각국정부의 정책을 평가할 수 있는 안전보장이사회와 유사한 경제기구의 창설을 제안하였다고 한다. 메르켈은 이어서 미국의 재정적자와 중국의 경상수지흑자가 세계경제를 혼란케 하는 주된 요인이라고 지적하고 ‘우리가 금융시장만 쳐다보는 것으로 만족해한다면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고 언론은 전한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투기에 기반을 두고 있는 금융자본주의는 자본주의 논리를 왜곡하는 ‘부도덕한 시스템’이라고 지적하면서 신자본주의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그는 주장하기를 ‘금융자본주의는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심화시키고 노동과 생산력 및 기업가정신을 퇴색시키는 시스템’이라면서 21세기 자본주의에는 ‘정부가 나설 여지가 있다’고 주장하였다고 한다. 한편 이번 회의를 사르코지와 함께 이끌고 있는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도 ‘단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보다는 다른 가치에 기반을 두는 새로운 금융질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한다.

작년 11월 워싱턴에서 처음 열린 G20정상회의가 두 번째로 오는 4월 런던에서 개최될 것에 대한 사전 준비 성격의 이번회의에서 미국 중심의 브렛튼우드체제를 비판하고 기선을 잡고자하는 회의의 성격을 가지고 ‘신자본주의 질서’를 주창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논의들은 학문적 측면에서는 시시비비가 가능하지만 현실 국제정치 역학구도 하에서 어떤 변화를 모색할 것인지는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로 등장하게 된다. 따라서 냉전이후의 자본주의 변천과정을 간단하게 정리하여 보면서 새로운 질서로서의 신자본주의의 가능성을 모색하여 보고자 한다.

2. 역사의 종언

1992년 당시 조지 메이슨대 교수였던 후란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명저 ‘역사의 종언(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을 발간하면서 더 이상 자본주의를 덮을 이념은 존재할 수 없다는 평가를 한바있다. 이를 통하여 구소련의 몰락 이후 더 이상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 바탕을 둔 세계질서는 사라지고 자본주의가 세계질서의 중심이 되었다고 일반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승리가 자본주의의 이념이나 체제의 우월성에서 왔느냐 하는 논란에서는 일반적으로 그렇지가 않고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체제의 모순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본주의 체제 우월성이 나타났다고 이해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연유가 무엇에서 왔건 20세기 말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는 세계질서에 있어서 우월한 가치로 이해되고 세계의 부가 이 자본주의에 바탕을 두어 형성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초강경국가(super power) 지위가 자본주의 기본에 철저하게 기반을 둔 신자유주의(new liberalism)에 토대를 두고 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자본주의 역사 속에 오랫동안 함께 발전을 구가하던 유럽 국가들은 차츰 자기들 국가와 미국과의 격차가 점점 확대되어 이제 다시 따라잡기 어렵게 되자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비판하고 그와 다른 자본주의 즉 경쟁과 경쟁실패자에 대한 보호의 두 가치를 동시에 중요시하는 자본주의를 들고 일어남으로써 자기들의 상대적 낙후를 위안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다시 일기 시작하였다.

3. 제 3의 길

마아가렛 대쳐 영국수상이 일구어낸 10여 년 동안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경제부흥은 영국은 물론 세계가 인정하는 성공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흥 뒤의 그늘이라고도 할 수 있는 빈부격차, 사회적 차별, 가족파괴, 환경오염 등의 문제가 1990년대 후반 토니블레어의 노동당 집권과정에서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재빠르게 정리하여 출간한 책이 1998년 사회학자 Anthony Giddens의 '제3의 길(The third way)'이다.

기든스는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뛰어 넘는 가치를 찾는다는 점에서 제3의 길을 주창하였다. 기든스는 상호의존과 협력에 입각한 범세계화를 통한 세계적 민족주의를 달성하자고 한다. 그래서 안정과, 균형, 번영이 함께하는 지구촌을 실현한다는 것이 기든스의 제3의 길이라고 볼 수 있다.

제3의 길은 정치적으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혼합하여 실용주의 노선을 견지하고 경제적으로는 무제한적 자유방임의 경제운영에서 국가가 개입하는 제한적 자본주의를 주장한다. 또한 복지개념 도입으로 빈부격차를 해소하기위하여 부를 균등하게 분배하는 방식으로 국가가 국민에게 미래사회에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준비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기든스의 제3의 길은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정부운영의 이론적 지주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신자유주의에 비판 인식을 가지고 있는 많은 지식인 그리고 이와 연관된 정부에서 선호의 대상이 되었고 심지어 한국의 노무현 정부의 고위인사들도 마치 이 길이 현대 국가운영에 무슨 큰 해결 이념인양 들고 나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제3의 길과 같은 논리는 학문적으로 평가의 대상이 될지언정 신자유주의에 입각하여 세계의 초강대국이 된 즉 미국을 제외한 G20의 모든 나라 경제규모가 미국 한나라에 겨우 비슷한 현실 앞에 별로 큰 설득력을 갖지 못하였다.

4. 역사의 회귀와 꿈의 종언(The return of history and the end of dream)

2003년 미국의 이락크 침공을 앞두고 미국의 네오콘 논객 로버트 케이건(Robert Kagan) 카네기국제평화재단 교수는 ‘Of Paradise and Power’라는 저서에서 유럽인 들의 현실 안주와 이와 대칭되는 미국의 수퍼 파워로서의 기능을 논하였다. 그는 새로운 현대후기유럽질서(new post modern european order)를 ‘역사 이후의 천국(post historical paradise)’으로 규정하였다. 따라서 자체 국방능력을 상실한 채 모든 방위능력을 미국이라는 수퍼 파워에 의존하고 나약한 경제적 안일 만을 추구하는 지역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는 연합국의 이름으로 코소보 침공 시 유럽국가 들은 군사작전능력을 상실한 채 모든 작전을 미국의 작전과 지시에 따랐음을 꼬집고 있다.

이런 케이건의 분석에 영향을 받았는지 후쿠야마는 2006년 ‘기로에 선 미국(America at the cross roads)’를 집필하여 그 자신 주장하였던 역사의 종언을 다시 종언하기 시작하였다. 9.11테러를 맞고 이라크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미국을 보는 그의 눈이 변화되기 시작한 것인가? 그러던 후쿠야마는 작년 하반기 미국의 금융대란을 보면서 어느 기고문에서 ‘신자유주의의 종언(The Fall of America)’을 들고 나왔다.

2008년 케이건은 드디어 ‘역사의 종언’에 대칭되는 ‘역사의 회귀와 꿈의 종언’이라는 저서를 발간하였다. 그는 세계의 흐름을 수퍼 파워인 미국과 함께 강대국 즉 러시아 중국 그리고 일본과 인도 들이 존재하게 되고 유럽을 포함한 나머지 세계로 구분하면서 이런 세계질서 속에 미국은 여전히 수퍼 파워로서의 기능을 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에 입각하여 미국은 세계를 ‘민주주의 축과 전제주의의 연합(axis of democracy and association of autocrats)'으로 2분화고 적과 동지의 개념으로 세계를 운영하고자 한다고 분석한다.

수퍼 파워로서 미국은 이런 흐름 속에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미국의 획일주의(unilateralism) 적 사고가 세계질서 정돈에 어려움을 가져오게 한다. 적과 동지의 2분법적 사고를 토대로 국제문제 해결에 협의보다는 힘을 바탕으로 군사력을 사용하고자 한다. 역사적으로 유럽국가 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은 유엔 등 국제기구를 신뢰하기 보다는 자국 주권에 보다 집착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국제질서의 새로운 모색에 있어서 국제기구를 통한 통합적 협력체제의 구축보다는 자국 주권에 보다 우선순위를 두는 특성을 미국은 가지고 있다고 분석할 수 있다.

5. 지금 누가 미국과 경쟁할 수 있나?

한편 이러한 특성과 문제를 가진 수퍼 파워 미국에 대하여 당장 경쟁할 수 있는 강대국이 보이지 않는 것이 오늘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단일국가는 물론이고, 강대국들이 서로 연합하여 미국의 힘에 대항할 수 있는 그런 형편도 현재로서는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 윌리암 번스타인(William Bernstein)등 역사학자들의 분석이다.

6. 신자유주의는 괴멸되는가?

2008년 10월 미국의 리먼브러더스가 부도처리된 것을 전환점으로 하여 그동안 세계는 금융위기에 직면하게 되고, 그 위험의 정도와 한계 그리고 시기를 모르는 세계경제는 금융부문을 넘어 실물경제의 침체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래서 세계경제는 ‘R(recession)의 공포’라는 말이 나오더니 작년 말에는 ‘D(depression)의 공포’로 변화되고 그 공포는 연말 연시를 기하여 이제 'D의 트랩(depression trap)'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정이 급박해지자 미국을 비롯한 각국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 금융의 모든 조치들을 앞 다투며 취하여 가고 있다. 지난 해 12월 미국의 부시대통령 주선으로 G7이 아닌 G20정상회의가 워싱턴에서 열려 세계적 경기침체 해결방안을 모색하였다. 물론 이런 정상회의에서 큰 의미 있는 회의결과를 기대하기 어렵지만 특히 임기 말을 앞둔 미국의 부시대통령의 지도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금년 4월에 2차 회의를 런던에서 개최할 것을 결정하고 막을 내렸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같이 불은 미국에서 일어났는데 왜 우리 모두가 이렇게 황당하게 당해야하는가 하는 불만을 내심 갖게 되어 있다.

안 그래도 수퍼 파워인 미국의 경제적 독주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신자유주의가 오늘의 문제발단의 근본원인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비판하고 나섰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발단 된 주택채권은 파생금융상품으로 변화되면서 세계각지로 흘러들어가게 되었고, 그래서 그 원산지인 미국에서 채권시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자 전 세계 금융시장은 동시에 걷잡을 수 없게 불길이 번져나가게 되었다 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금융규제가 느슨하여 이런 일이 일어났고 그 배경에는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경제운영에 그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고, 또 그 책임이 있다고 하고 싶은 것이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의 마음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니 메르겔처럼 미국 중심의 브레튼우드 체제를 차제에 재검토하여 유엔 등 제3기관으로 변화시킬 것을 제의하게 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경제문제를 안전보장이사회와 같은 위상의 수퍼 기구로 유엔에 설치한다는 것도 그리 용이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기구운영의 기본인 자본을 비롯한 지분을 국력을 전제로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경제기구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IMF나 국제기구들은 국력에 비례하여 돈도 대고 운영에 결정권을 행사하게 되어 있다. 현재의 국제기구 참여 지분들은 물론 2차대전 후의 상황이 일차 반영된 것이므로 그동안 빠른 발전을 한 한국과 같은 나라는 현재의 국력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였다는 불만은 있지만 근본적으로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처럼 회원국들이 동일한 투표권을 갖는 기구를 만드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번 미국정부의 구제조치나 미국 기업에 대한 평가 등에 있어서 IMF나 신용평가기관들의 자기편의적 평가를 내놓고 있는 2중 잣대적 행위에 대하여 비난 받아야 할 것이다. 필자는 한국정부에서 IMF와 오랫동안 정책평가를 협의하였고 1985년 이전에는 매년 대기성차관을 한국정부가 하였는데 그것을 실무 책임졌었다.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이번 IMF나 미국정부의 2중 잣대는 비난받아야 한다고 평가한다.

그렇다고 해서 사르코지 말처럼 금융기능을 부익부 빈익빈으로 매도하고 재정이 그 완충기능을 보완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도 문제가 있다고 평가한다. 기든스의 제3의 길을 연상시키는 그의 재정개입 논의는 다른 면에서는 재정을 파탄시킬 수 있고 응급처리는 몰라도 그것을 제도화했을 때 복지재정의 어려움에 처한 오늘날 유럽국가 들을 보면 그 해답이 나온다고 필자는 평가한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미국의 신자유주의는 괴멸될 것인가? 아니다 라고 필자는 평가한다. 이론적인 면에서도 물론 금융감독기능의 강화 등 보완의 여지는 있지만 시장의 힘에 바탕을 둔 신자유주의는 계속될 것이다. 제3의 길이나 정부 중심적 경제운영 방식을 쳐다보기에는 현대 경제운영은 너무 복잡하고 연결된 다른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또 힘의 논리로 보더라도 현재의 미국경제의 덩치에 대항할 단일국가나 국가연합도 기대할 수 없다는 번스타인의 분석이 맞는다고 필자는 평가한다. 그렇다면 결론은 미국의 신자유주의의 괴멸을 기대하기보다는 경제적 측면의 다극화를 모색하는 하나의 계기가 이번 세계적 경기침체기에 국제간의 협력을 통하여 태생시켰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물론 미국의 양보나 새로운 국제질서의 전략이 전제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리 실현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신자본주의는 태생되는가? 아니다가 필자의 답이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미래가 어둡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은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은 살아있다고 필자는 믿는다.

2009년 1월 7일 수요일

비상경제정부운영의 정책적 의미와 과제

1. 비상경제정부의 정책적 의미

최근 이명박대통령이 신년회견을 통하여 발표한 비상경제정부가 화두가 되고 있다. 누구나 세계적 경기침체를 놓고 걱정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경제문제가 심각하게 우리주변에 다가와 있다. 미국에서 금융위기로 시작된 경기침체는 세계 곳곳으로 번져나가고 있고, 이제 금융시장 뿐 만 아니라 실물경제 전반에 번져 있다. 1928년의 경기침체가 미국 중심이었다면 이번의 경기침체는 오히려 불을 지른 것은 미국이지만 불이 타는 곳은 전 세계로 번지고, 그 불길 또한 어디랄 것 없이 심각한 모습을 나타내고 그것이 언제쯤 끝이 날 것인지 도무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번 경제위기가 더욱 심각한 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주요국들의 정부가 거의 동시적으로 재정을 움직여 이 불황을 끄고자 하고 있고, 각국의 중앙은행은 경쟁적으로 저금리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동질의 처방을 동시에 추진하는 세계적 정책공조(?)가 일어나고 있다.

이 연장선상에서 이명박대통령은 2009년 새해 벽두 정부를 비상경제정부로 운영하겠다고 천명하고 나섰다. 얼 듯 보기에 당연한 처사 같기고 하고 그 구체적 내용이 아직 제대로 들어나지 않아 잘 분간은 어렵지만 극심한 경제위기에 처하여 정부의 자세를 가다듬는다는 면에서 수긍이 가는 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비상경제정부가 갖는 정책적 함의를 생각하면 그것이 공식적으로 사용하였던 그렇지 않았던 간에 의미가 심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의 비상경제정부 운영은 과거 한국경제가 경험하였던 박정희대통령이나 전두환대통령 집권과정에서 입법 행정을 포괄하는 초법기관인 국가재건최고회의나 국보위와 같은 비 정상적 정부기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대통령이 정부운영을 상시와 같이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드려야 할 것이다. 그에 대한 법률적 성격의 설정까지 뜻하는 것인지의 여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그보다는 정부를 운영하는 자세를 좀더 경기침체와 전쟁하듯 하겠다는 상징적의미를 갖는 것에 더 가까운 것으로 해석하고 싶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에도 시장경제운영이라는 관점에서 정부운영이 효율성을 담보로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경제는 지난 30여년 사이 공식적으로 비상경제정부를 선언한 경험은 없었지만 이와 유사한 개념의 극심한 경기침체가 있었고 이에 대비하여 비상경제운영기가 있었다. 따라서 이 때 정부가 어떤 경로로 경제위기를 탈출하였는지를 간단하게 살펴보고 이명박정부의 비상경제정부 운영의 과제랄까 하는 문제들을 몇 가지 제기하여 보고자 한다.

2.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 후의 비상경제정부와 상황실 운영

1979년 10월 26일 고 박정희대통령의 시해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일반인들은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한 것과 관련하여 정부 내에서도 엄청난 소용돌이가 일어난 것은 사건의 중대성에 비추어 당연하였다. 당시 경제기획원 정책조정국장이었던 필자는 중화학투자 말기에 나타난 경기침체를 타개하기위한 경제기획원 직원 워크셥을 전 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연구원)에서 숙식을 하면서 토론하고 있었다. 새벽 2시경 급히 사무실로 들어오라는 명령을 받고 나는 허둥대면서 자동차를 수배하고 무슨 일인지 몰라 여기저기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통행금지가 있었던 당시로서는 서울로 올라갈 수 있는 차를 수배하는 일이 큰일이었다. 가까스로 올라오는 자동차 속에서 경부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군인들이 무장을 하고 경비하는 것을 보고 이것 큰일이 일어났구나하는 직감을 갖게 되었다.

사무실에 도착하여 경제기획원 차관실로 가니 차관님과 몇몇 간부들이 이미 도착하여 있었다. 그 자리에서 대통령 서거소식을 듣고 또 신현확부총리와 경제장관님들이 회의를 하다 옷을 갈아입으러 잠시 모두 귀가하였다는 이야기와 함께 현 상황 하에서 경제를 어떻게 운영할 지를 실무적으로 검토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우선 어떻게 임해야 할 것인지 각자 의견을 말해보라는 차관님의 지시가 나왔다. 그러나 거기에 참석한 아무도 입을 다문 채 서로 얼굴만 처다 보고 있었다. 침묵이 흘렀다. 당시 경제기획원 내에는 경제기회국이 장기경제과제를 다루도록 되어 있었고 단기정책과제는 정채조정국에서 다루도록 업무가 편제되어 있었다. 따라서 경제긴급상황과 관련된 일은 당연히 정책조정국에서 다루어야 하고 그래서 필자가 자연 주무국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내 자신 멍한 가운데 그래도 책임상 내가 입을 떼어야 할 것 같아서 머뭇대다가 첫마디로 ‘우선 공항을 폐쇄하고 은행은 예금을 동결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운을 떼었다. 필자가 무엇을 알아서 한 소리도 아니고 무슨 대책이 있어서는 더더욱 아닌 이 한마디에 모두 묵묵부답 긴 침묵 만 흘렀다. 이렇다할 결론을 도출하지 못하고 회의는 한 시간 후 다시 소집된 경제장관회에서 국민에게 보내는 정부의 멧세지를 정하여 발표하기로 하고 그것을 빨리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겨우 내 방으로 돌아온 필자는 당시 실무자들을 불러 대국민담화문 초안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여기에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매년 그렇게 오랫동안 해왔던 정부 내 CPX(비상계획)도 언제나 김일성이 쳐들어오면 어떻게 대처한다는 연습을 하였지 대통령이 시해되는 상황 연습을 한 일이 없었다. 그러니 총명하다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당시 경제기획원 실무진 들도 글이 나오질 않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겨우 초안한 것이 ‘국민은 동요하지 말고 일상으로 돌아가 평상의 일에 임해 달라’는 내용의 담화문이 만들어졌다. 이어서 열린 장관회의에서 장관님들의 의견을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말이 많던 각 부처의 장관님들도 모두 입을 다문 채 모든 것을 부총리께서 하자는 대로 따라가겠다는 말만 되풀이 하였다. 그래서 경제장관명의로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기로 하고, 필자가 실무진 들이 작성한 대국민 성명을 읽고 그대로 발표할 것을 결정하였다. 그리고 그러니까 10.26 다음날인 아침 11시경 경제장관명의의 대국민 성명이 발표되었다. 당시로서는 비상경제정부니 하는 용어는 공식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세상은 비상체제에 들어가 있었다.

이어서 종합경제상황실을 설치하기로 하고 당시 정책조정국장실 한쪽 벽에 여러 경제지표들의 매일 움직임을 볼 수 있도록 차트를 만들어 붙였다. 성장 물가 국제수지 등 매크로 지표에서부터 여러 가지 단기적인 경제움직임인 수출신용장래도, 수입인증, 통화지표 등 갖가지 지표들이 그림으로 만들어져 한 벽을 빼곡하게 채웠다. 이 종합상황실은 그 후 정책조정국이 경제기획국에 통합되어 필자가 기획국장이 되면서 기획국장실의 중요한 일중의 하나가 되었고 이 후에도 이 차트가 선례가 되어 평상시에도 남아있게 되었다.

당시 한국경제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 국내는 물론 세계 모두가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 그래서 미국의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의 주요일간지 동경특파원들이 서울로 모여들었다(당시는 서울에 이들 특파원이 없었다). 정부에서는 무엇보다 세계에 우리의 실상과 우리의 정책방향을 정확하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서 이들 외국인 기자들에게 매일 기자회견을 하도록 결정하고, 필자가 이 일일회견 책무를 맡게 되었다. 당시 외국 언론의 관심은 서울의 봄을 지나 전두환대통령이 이끄는 국보위가 어떤 정책 칼러를 가질 것인지에 쏠려 있었다. 당시 안정과 개방이라고 하는 시장경제운영의 기본 틀을 한국정부가 견지하고 있음을 세계에 알리는 좋은 계기가 오히려 되었고, 이것이 한국의 새 정부에 대한 세계의 긍정적인 시각이 조성된 원인중의 하나가 되었다고 필자는 평가한다.

3. 1998년 IMF 당시의 비상경제정부와 운영

1997년 12월 김영삼 정부는 IMF와 대기성차관 협정을 맺었고, 이어서 1998년 2월 정부에 들어온 김대중대통령은 사실상 비상경제정부를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1979년 위기 이후 20년 만의 일이다. 외환관리 상의 차질로 문제가 된 한국경제는 IMF의 도움을 얻어 외환을 조달 받아 문제를 해결하였다. 어떻게 보면 그리 큰 문제도 아니었던 것을 우리 스스로 문제를 크게 만든 측면도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당시 문제를 크게 부각한데는 두가지 일반적인 원인이 있었다고 필자는 생각 한다. 첫째는 정치적인 이유이다. 김영삼정부와 김대중정부의 교체과정에서 정치적으로 이 문제를 크게 부각시킴으로써 정치적기반이 취약한 김대중정부의 기반을 확고하게 할 수 있었던 면이 있다. 김대중정부는 IMF라는 기구와의 정책협상을 이용하여 정책개혁을 하는데 반대의견을 쉽게 잠재울 수가 있었다. 수많은 금융기구와 기업들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하였다. IMF는 환율과 금리를 올리고 재정긴축을 시행하도록 요구하였다. 이에 따라 저성장과 국제수지 흑자를 실현하여 외부적으로는 빠른 시간 내에 경제를 정상화시킨 것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한국경제를 저성장구조로 급선회시키고 주식시장을 단번에 완전개방 시킴으로써 시장은 엄청난 변화를 맞게 되었다. 많은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도산하고, 이 처리과정에서 이들이 외국 투자가의 먹이 감으로 탈바꿈되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헷지펀드 들은 한국정치권에 손을 내밀며 한국 먹이 감을 사냥질하는 기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만일 지금 세계경제 운영처럼 정부가 또는 금융기관들이 친기업적으로 정책운영을 펴갔다면 그 많은 기업이, 그 많은 부동산이, 그 많은 주식이 외국투자가에게 단시일 내에 들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둘째는 사회적인 이유이다. 2차대전 이후 지난 50여년 동안 한국경제는 국제사회에서 우등생 취급을 받아왔다. 그런 한국경제가 갑자기 외환위기를 맞은데 대하여 한국사회는 자존심이 상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장롱 속 금붙이를 들고 한국경제를 살리자는 눈물나는 광경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어떤 면에서 순박한 한국사람 들의 마음과는 달리 당시 김대중정부는 1년도 되지 않아 IMF 금융위기를 탈출하였다고 선언하고 때깔 고운 비단옷으로 갈아입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김대중 정부에서는 비상경제정부의 개념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정부개혁 금융개혁 기업개혁 노동개혁 들 4대 개혁과제를 김대중정부는 개혁과제라고 설정하여 그것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처음부터 들고 나왔다.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아닌데 IMF가 제시하는 정책조정과 서로 이해가 일치하여 김대중정부는 쉽게 금융과 기업개혁에 메스를 가할 수 있었다. 특히 빅딜이니 화의니 하는 현란한 용어를 사용하면서 기업은 금융기관들은 구조조정의 길을 걷게 되었고 종착역은 외국펀드들의 먹이감이 되었다. 사실 당시 세계경제는 호황이었고 한국의 외환관리 문제는 단숨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었기 때문에 김대중대통령은 1999년 11월 IMF관리 종료를 선언하고 개혁과제들을 쓰레기통에 처박고 말았다. 노동개혁은 시작도 되지 않았고 정부 금융 기업개혁은 일부 추진하다가 고만두고 말았다. 만일 당시 정부가 내세웠던 개혁과제들을 그 후 몇 년 꾸준히 추진하였다면 또 노무현정부같은 황당한 정부가 이어가지 않았다면 한국경제는 오늘 이렇게 황당하게 당황하는 모습을 나타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야말로 비상경제정부를 운영했어야 할 김대중정부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정책개혁보다는 정책적 권모술수로 해피하게 지나가고 말았다.

4. 이명박정부의 비상경제정부 선언과 지하벙커 상황실 운영

이명박대통령의 비상경제정부는 우선 그 조직을 청와대에 대통령이 주재하는 비상경제대책회를 설치하고, 그 산하에 경제상황실을 지하 벙커에 설치한다고 발표하였다. 외국의 전쟁상황실(war room)이 연상되는 이 비상경제기구에 수긍 보다는 너무 하드웨어적 접근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앞선다.

물론 현재의 경제상황이 그야말로 비상한 상황이고 그것을 다루는 정부 자세 또한 비상한 자세로 일을 하겠다는 의미로 긍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비상경제위원회에는 관련국무위원 한은총재 금감위원장 그리고 몇몇 자문위원들이 참석하여 매주 1회 새벽에 열린다고 한다. 그리고 종합상황실은 거시 및 중소기업 그리고 사회소외계층 등으로 구분하여 상황을 점검하도록 하고, 경제수석 밑에 실무위원회를 둔다고 한다. 상황실과 실무위원회는 물론 관계부처 공무원들이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구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운영은 아직 시작이 되지 않았으니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이명박대통령의 스피드 경제대책을 뒷받침하리라고 생각된다. 여기서 연상되는 문제를 몇 가지 제시하여 보자.

첫째 안 그래도 이명박정부의 특징이 너무 청와대 일변도로 운영되다보니 관계부처의 적극적인 참여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판인데 이 비상경제정부의 운영으로 이제 그런 평가는 오히려 한가롭게 되었다. 비상이 갖는 뜻이 효율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모든 것이 대통령의 지시나 의사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운영되어야 한다. 그럴 때 과연 일반 정부의 다양한 전문성이 얼마나 반영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대통령의 뜻에 반하는 의견이 제기될 수 있고 또 비상경제위원회에서 논의 된 것을 관련부처에서 그렇게 신이 나서 추진할까 하는 의구심이 앞서간다. 잘못하면 모든 정부기구를 얼어붙게 만들고 효율보다는 비능률을 자체에서 만들어내지 않을까 걱정된다.

둘째 시장은 다양성을 전제로 한다. 경제가 아무리 어렵고 그래서 비상한 대책추진이 불가피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드리는 시장은 또 다른 특성으로 그것을 받아드리게 된다. 그래서 아무리 정부가 급한 소리를 할 때도 시장은 그것을 액면대로 받지 않고 시장 특유의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의하여 행해지고 받아드리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미국정부가 그 많은 돈을 퍼부으며 아무리 애를 써서 시장을 지원해도 그 반응은 기대하는 만큼 시원하지 않는 것이 시장의 특성이다. 언젠가 오히려 정부 재정의 어려움과 시장 흐름의 파열음을 생산하게 된다는 점을 염려해야 한다. 한국비상경제정부도 이점을 깊이 유념해야 할 것이다.

셋째 대통령 1인 체제는 아무리 훌륭하게 노력하여도 정부 모든 기구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발하지 않는 한 성공하기 힘이 든다는 것이 과거의 오랜 경험에서 알 수 있다. 더구나 잘못 되었을 때 모든 비난이 대통령 한사람에게 집중되게 되어 있다. 완충이 없는 국정운영은 전략상 항상 좋을 수가 없다는 것이 과거의 경험이다.

넷째 벙커의 이미지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정치권에 대한 압박 멧세지는 될 수 있겠지만, 이어서 전쟁을 연상하고 더 나아가 너무 전근대적인 이미지를 함께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경제운영을 전시작전개념화하는 것은 너무 나간 것 아닌가 생각해볼 일이다.

다섯째 하드웨어적 접근보다는 좀 가슴으로 접근하고 마음을 여는 자세를 보여주지 못하는 대목이 비상경제정부에는 아쉽게 느껴진다. 오바마 미국대통령당선인이 보여주는 포용과 어우름으로 세상을 끌어안는 그의 인사를 보면서 우리는 그것이 왜 안 되나 되뇌어 본다. 대통령이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정치권을 끌어안고 사정하고 설득해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의 폴슨 재무장관이 비상지원책을 가지고 하원의장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정하는 사진을 보면서 우리 정부는 과연 저런 직업의식이 있는 인사가 없나 생각해 보았다.

한국경제는 사회보호제도가 아직은 부족하다. 어려운 경제상황 하에서 이들은 그나마 기댈 데가 없다. 대통령은 이들을 잡고 함께 울고 부둥켜안아야 한다. 최근 이명박대통령이 어느 채소장수 할머니에게 목도리를 감겨주는 그런 자세가 더 넓게 번져야 한다. FTA 비준을 둘러싸고 국회가 난장판이 되는 그 순간에 대통령은 오히려 오갈 데 없는 소외계층을 찾아 가슴으로 안아주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것이 지금 정부가 부족한 대목이라고 필자는 평가한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밤이 깊으면 머지않아 새벽이 오듯이 경제의 어려움은 순환하게 되어 있다. 내가 나서야 지금의 위기가 극복된다는 의식을 아무리 급하더라도 좀 자제하면서 평상심을 갖도록 정부에 권유하고 싶다. 반면 정부가 비상경제정부를 운영할 만큼 현 상황을 비상하게 보고 접근하고 있는 점을 일반 국민도 모두 이해하고 비상정부운영에 협조하여야 한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사회단체, 노동단체 모두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에 동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어려움이 시작된다고 시장이 믿기 시작할 때는 이미 시장은 회복을 함께 준비한다는 사실을 믿고 정부 국민 모두는 마음을 한곳으로 모아가기를 바란다.

2009년 1월 3일 토요일

비상경제정부체제의 운영

이명박대통령은 새해벽두에 행한 신년연설에서 ‘비상경제정부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에 따라 대통령이 주재하는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청와대에 설치하는 모양이다. 이른바 ‘war room' 같은 것을 설치하여 대통령이 직접 관장하여 운영하겠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이미 운영되고 있는 정부 내의 ‘위기관리대책회의’와 ‘경제금융점검회의’를 격상시킨 모양새라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이명박대통령은 2009년 새해의 국정운영의 기본방향으로 (1) 비상경제정부 구축 (2) 선진 일류국가 건설을 위한 중단 없는 개혁 추진 (3) 민생을 촘촘히 챙기는 따뜻한 국정 그리고 (4) 녹색성장과 미래준비를 천명하였다. 국정운영의 기본방향은 행정수반으로서 대통령이 정부 내에서 새해에 어디에 중점을 두어 국정을 운영해 나아갈 것인지를 표어화한 것이므로 이에 대하여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고 수긍이 가는 대목들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비상경제정부 구축을 위하여 설치할 비상경제대책회의 운영과 관련하여 몇가지 제기될 수 있는 문제를 미리 정리하여 봄으로써 새로운 기구운영에 참고가 되게 하고자 한다.

첫째 비상경제대책회의 법률적 성격이 무엇인지를 정해야 할 것이다. 그야말로 과거 국가재건최회의나 국보위와 같은 초입법권을 가진 기구면 말할 필요가 없고 그렇지 않더라도 정부의 의사결정권을 행사하는 기구일 경우에도 설치에 대한 법적근거가 부여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단순한 워룸 성격의 대통령자문기구로 될 경우에는 대통령의 행정조치로서 물론 가능하게 될 것이다. 현재의 짐작으로는 후자로 출발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에는 너무 형식적인 하드웨어적인 모양새의 기구가 아닐까 싶다. 실제 지금보다 큰 차이도 없고 효율성도 없으면서 무슨 큰일을 하는 것처럼 요란을 떤다는 비판이 가능할 것이다.

둘째 대통령의 자문기구로 운영된다하더라도 대통령제도의 특성상 크고 작은 문제들이 이 회의에서 사실상 대부분 결정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문제의 신속한 처리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관련기관의 자율성과 상충되는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극단적으로 금리가 이 기구에서 논의된다면 금통위는 무엇을 할 것이며, 금융기관에 대한 자금공급이나 금융기관의 대출문제가 논의될 경우 중앙은행이나 일선 은행들의 자율성이 회손 될 것이다. 또 이런 저런 논의가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에서 사전에 논의 될 경우 자연 모든 문제들이 대통령 한 사람으로 수렴되어 1인체제가 형성될 것이다. 그 경우 대통령은 1인체제의 부담을 안아야 할 것이다.

셋째 이 비상대책회의에 문제처리의 종착역이라 할 수 있는 국회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기구의 효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현행 헌법상의 대통령긴급조치가 입법권에 대한 제약을 전제로 한 것이라면 문제처리의 신속성을 위한 비상경제대책회의의 효율성에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현재의 한국 국회를 둘러싼 정치권의 무경우, 무법 그리고 무논리의 환경 하에서 비상경제정부의 구축이 얼마나 효과를 낼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정부의 일사불란한 의사결정으로 입법부에 대한 전방위적 압력 효력은 있을 것이다.

넷째 비상경제대책회의가 그야말로 비상한 경제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경제의 장단기 문제가 혼합되어 다루어진다면 잘못하면 혼선이 생기고 전문성이 회손 되는 경우가 생길 것이다. 따라서 아주 시사적이고 단기적인 문제를 다루는 방향으로 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정부 때 부동산투기문제를 다룰 때 투기행위 하나 만을 소멸시킨다는 구실로 부동산 거래세, 보유세제를 모두 한번에 부담을 인상하는 전문성 상실의 정책 잘못을 저지르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다섯째 책임 문제가 제기 될 것이다. 법률적 책임뿐만 아니라 일반 행정적 책임문제도 관계기관에서 해이하게 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문제가 잘 처리될 때는 문제가 없지만 무슨 문가 발생할 때 안 그래도 책임회피를 위한 책임전가가 다반사인 경험에서 보면 관계기관에서는 잘 못하면 손놓고 앉아 있을 가능성을 미리 염려하면서 회의운영을 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한국사회는 민주주의의 기본인 다수결의 논리보다는 떼가 더 앞서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국회의원수가 과반이 넘는 한나라당은 그 절반 정도의 의원수에 불과한 민주당에 질질 끌려 다니고 있는 것이 한국의 국회다. 세계가 놀라고 있는 디플레션의 위기에서도 한국의 노조는 임금은 계속 올려야 하고, 불법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온 나라가 비상시국인데 일부 사회단체는 이념 혼선의 트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북에 지원을 하지 못해 안달을 하고 있다. 한국의 2세들은 사회주의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한 전교조에 맡겨져야 한다. 이런 변화되지 아니한 환경 속에서 개방된 한국경제는 발전국과 발전되지 아니한 국가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있는 형국이다. 세계적 불경기에 한국경제가 살아남고 아니 다른 나라에 앞서가기 위해서는 비상한 노력과 각오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국가적인 비상시국이라는 점에서 이를 극복하기위하여 국민 모두가 하나로 뭉쳐 혼신의 힘을 발휘해야 한다. 1998년 김대중 정부는 IMF라고 하는 외부기구의 힘에 도움을 받아 국민의 힘을 모을 수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기댈 의지목이 없다. 그러나 대신 IMF의 경험을 한 국민을 가지고 있다. 잘 못하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잘 하면 한국경제는 선진국대열에 완벽하게 들어갈 수 있다. 이 기로에 이명박대통령은 비상경제대책회의를 들고 나왔다. 그 제도나 기구가 문제가 있던 어떻던 국민 모두는 이 기구와 정부를 밀어야 한다. 그것이 당장은 한국경제가 살아남을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