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7일 수요일

비상경제정부운영의 정책적 의미와 과제

1. 비상경제정부의 정책적 의미

최근 이명박대통령이 신년회견을 통하여 발표한 비상경제정부가 화두가 되고 있다. 누구나 세계적 경기침체를 놓고 걱정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경제문제가 심각하게 우리주변에 다가와 있다. 미국에서 금융위기로 시작된 경기침체는 세계 곳곳으로 번져나가고 있고, 이제 금융시장 뿐 만 아니라 실물경제 전반에 번져 있다. 1928년의 경기침체가 미국 중심이었다면 이번의 경기침체는 오히려 불을 지른 것은 미국이지만 불이 타는 곳은 전 세계로 번지고, 그 불길 또한 어디랄 것 없이 심각한 모습을 나타내고 그것이 언제쯤 끝이 날 것인지 도무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번 경제위기가 더욱 심각한 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주요국들의 정부가 거의 동시적으로 재정을 움직여 이 불황을 끄고자 하고 있고, 각국의 중앙은행은 경쟁적으로 저금리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동질의 처방을 동시에 추진하는 세계적 정책공조(?)가 일어나고 있다.

이 연장선상에서 이명박대통령은 2009년 새해 벽두 정부를 비상경제정부로 운영하겠다고 천명하고 나섰다. 얼 듯 보기에 당연한 처사 같기고 하고 그 구체적 내용이 아직 제대로 들어나지 않아 잘 분간은 어렵지만 극심한 경제위기에 처하여 정부의 자세를 가다듬는다는 면에서 수긍이 가는 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비상경제정부가 갖는 정책적 함의를 생각하면 그것이 공식적으로 사용하였던 그렇지 않았던 간에 의미가 심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의 비상경제정부 운영은 과거 한국경제가 경험하였던 박정희대통령이나 전두환대통령 집권과정에서 입법 행정을 포괄하는 초법기관인 국가재건최고회의나 국보위와 같은 비 정상적 정부기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대통령이 정부운영을 상시와 같이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드려야 할 것이다. 그에 대한 법률적 성격의 설정까지 뜻하는 것인지의 여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그보다는 정부를 운영하는 자세를 좀더 경기침체와 전쟁하듯 하겠다는 상징적의미를 갖는 것에 더 가까운 것으로 해석하고 싶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에도 시장경제운영이라는 관점에서 정부운영이 효율성을 담보로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경제는 지난 30여년 사이 공식적으로 비상경제정부를 선언한 경험은 없었지만 이와 유사한 개념의 극심한 경기침체가 있었고 이에 대비하여 비상경제운영기가 있었다. 따라서 이 때 정부가 어떤 경로로 경제위기를 탈출하였는지를 간단하게 살펴보고 이명박정부의 비상경제정부 운영의 과제랄까 하는 문제들을 몇 가지 제기하여 보고자 한다.

2.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 후의 비상경제정부와 상황실 운영

1979년 10월 26일 고 박정희대통령의 시해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일반인들은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한 것과 관련하여 정부 내에서도 엄청난 소용돌이가 일어난 것은 사건의 중대성에 비추어 당연하였다. 당시 경제기획원 정책조정국장이었던 필자는 중화학투자 말기에 나타난 경기침체를 타개하기위한 경제기획원 직원 워크셥을 전 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연구원)에서 숙식을 하면서 토론하고 있었다. 새벽 2시경 급히 사무실로 들어오라는 명령을 받고 나는 허둥대면서 자동차를 수배하고 무슨 일인지 몰라 여기저기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통행금지가 있었던 당시로서는 서울로 올라갈 수 있는 차를 수배하는 일이 큰일이었다. 가까스로 올라오는 자동차 속에서 경부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군인들이 무장을 하고 경비하는 것을 보고 이것 큰일이 일어났구나하는 직감을 갖게 되었다.

사무실에 도착하여 경제기획원 차관실로 가니 차관님과 몇몇 간부들이 이미 도착하여 있었다. 그 자리에서 대통령 서거소식을 듣고 또 신현확부총리와 경제장관님들이 회의를 하다 옷을 갈아입으러 잠시 모두 귀가하였다는 이야기와 함께 현 상황 하에서 경제를 어떻게 운영할 지를 실무적으로 검토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우선 어떻게 임해야 할 것인지 각자 의견을 말해보라는 차관님의 지시가 나왔다. 그러나 거기에 참석한 아무도 입을 다문 채 서로 얼굴만 처다 보고 있었다. 침묵이 흘렀다. 당시 경제기획원 내에는 경제기회국이 장기경제과제를 다루도록 되어 있었고 단기정책과제는 정채조정국에서 다루도록 업무가 편제되어 있었다. 따라서 경제긴급상황과 관련된 일은 당연히 정책조정국에서 다루어야 하고 그래서 필자가 자연 주무국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내 자신 멍한 가운데 그래도 책임상 내가 입을 떼어야 할 것 같아서 머뭇대다가 첫마디로 ‘우선 공항을 폐쇄하고 은행은 예금을 동결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운을 떼었다. 필자가 무엇을 알아서 한 소리도 아니고 무슨 대책이 있어서는 더더욱 아닌 이 한마디에 모두 묵묵부답 긴 침묵 만 흘렀다. 이렇다할 결론을 도출하지 못하고 회의는 한 시간 후 다시 소집된 경제장관회에서 국민에게 보내는 정부의 멧세지를 정하여 발표하기로 하고 그것을 빨리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겨우 내 방으로 돌아온 필자는 당시 실무자들을 불러 대국민담화문 초안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여기에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매년 그렇게 오랫동안 해왔던 정부 내 CPX(비상계획)도 언제나 김일성이 쳐들어오면 어떻게 대처한다는 연습을 하였지 대통령이 시해되는 상황 연습을 한 일이 없었다. 그러니 총명하다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당시 경제기획원 실무진 들도 글이 나오질 않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겨우 초안한 것이 ‘국민은 동요하지 말고 일상으로 돌아가 평상의 일에 임해 달라’는 내용의 담화문이 만들어졌다. 이어서 열린 장관회의에서 장관님들의 의견을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말이 많던 각 부처의 장관님들도 모두 입을 다문 채 모든 것을 부총리께서 하자는 대로 따라가겠다는 말만 되풀이 하였다. 그래서 경제장관명의로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기로 하고, 필자가 실무진 들이 작성한 대국민 성명을 읽고 그대로 발표할 것을 결정하였다. 그리고 그러니까 10.26 다음날인 아침 11시경 경제장관명의의 대국민 성명이 발표되었다. 당시로서는 비상경제정부니 하는 용어는 공식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세상은 비상체제에 들어가 있었다.

이어서 종합경제상황실을 설치하기로 하고 당시 정책조정국장실 한쪽 벽에 여러 경제지표들의 매일 움직임을 볼 수 있도록 차트를 만들어 붙였다. 성장 물가 국제수지 등 매크로 지표에서부터 여러 가지 단기적인 경제움직임인 수출신용장래도, 수입인증, 통화지표 등 갖가지 지표들이 그림으로 만들어져 한 벽을 빼곡하게 채웠다. 이 종합상황실은 그 후 정책조정국이 경제기획국에 통합되어 필자가 기획국장이 되면서 기획국장실의 중요한 일중의 하나가 되었고 이 후에도 이 차트가 선례가 되어 평상시에도 남아있게 되었다.

당시 한국경제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 국내는 물론 세계 모두가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 그래서 미국의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의 주요일간지 동경특파원들이 서울로 모여들었다(당시는 서울에 이들 특파원이 없었다). 정부에서는 무엇보다 세계에 우리의 실상과 우리의 정책방향을 정확하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서 이들 외국인 기자들에게 매일 기자회견을 하도록 결정하고, 필자가 이 일일회견 책무를 맡게 되었다. 당시 외국 언론의 관심은 서울의 봄을 지나 전두환대통령이 이끄는 국보위가 어떤 정책 칼러를 가질 것인지에 쏠려 있었다. 당시 안정과 개방이라고 하는 시장경제운영의 기본 틀을 한국정부가 견지하고 있음을 세계에 알리는 좋은 계기가 오히려 되었고, 이것이 한국의 새 정부에 대한 세계의 긍정적인 시각이 조성된 원인중의 하나가 되었다고 필자는 평가한다.

3. 1998년 IMF 당시의 비상경제정부와 운영

1997년 12월 김영삼 정부는 IMF와 대기성차관 협정을 맺었고, 이어서 1998년 2월 정부에 들어온 김대중대통령은 사실상 비상경제정부를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1979년 위기 이후 20년 만의 일이다. 외환관리 상의 차질로 문제가 된 한국경제는 IMF의 도움을 얻어 외환을 조달 받아 문제를 해결하였다. 어떻게 보면 그리 큰 문제도 아니었던 것을 우리 스스로 문제를 크게 만든 측면도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당시 문제를 크게 부각한데는 두가지 일반적인 원인이 있었다고 필자는 생각 한다. 첫째는 정치적인 이유이다. 김영삼정부와 김대중정부의 교체과정에서 정치적으로 이 문제를 크게 부각시킴으로써 정치적기반이 취약한 김대중정부의 기반을 확고하게 할 수 있었던 면이 있다. 김대중정부는 IMF라는 기구와의 정책협상을 이용하여 정책개혁을 하는데 반대의견을 쉽게 잠재울 수가 있었다. 수많은 금융기구와 기업들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하였다. IMF는 환율과 금리를 올리고 재정긴축을 시행하도록 요구하였다. 이에 따라 저성장과 국제수지 흑자를 실현하여 외부적으로는 빠른 시간 내에 경제를 정상화시킨 것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한국경제를 저성장구조로 급선회시키고 주식시장을 단번에 완전개방 시킴으로써 시장은 엄청난 변화를 맞게 되었다. 많은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도산하고, 이 처리과정에서 이들이 외국 투자가의 먹이 감으로 탈바꿈되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헷지펀드 들은 한국정치권에 손을 내밀며 한국 먹이 감을 사냥질하는 기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만일 지금 세계경제 운영처럼 정부가 또는 금융기관들이 친기업적으로 정책운영을 펴갔다면 그 많은 기업이, 그 많은 부동산이, 그 많은 주식이 외국투자가에게 단시일 내에 들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둘째는 사회적인 이유이다. 2차대전 이후 지난 50여년 동안 한국경제는 국제사회에서 우등생 취급을 받아왔다. 그런 한국경제가 갑자기 외환위기를 맞은데 대하여 한국사회는 자존심이 상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장롱 속 금붙이를 들고 한국경제를 살리자는 눈물나는 광경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어떤 면에서 순박한 한국사람 들의 마음과는 달리 당시 김대중정부는 1년도 되지 않아 IMF 금융위기를 탈출하였다고 선언하고 때깔 고운 비단옷으로 갈아입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김대중 정부에서는 비상경제정부의 개념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정부개혁 금융개혁 기업개혁 노동개혁 들 4대 개혁과제를 김대중정부는 개혁과제라고 설정하여 그것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처음부터 들고 나왔다.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아닌데 IMF가 제시하는 정책조정과 서로 이해가 일치하여 김대중정부는 쉽게 금융과 기업개혁에 메스를 가할 수 있었다. 특히 빅딜이니 화의니 하는 현란한 용어를 사용하면서 기업은 금융기관들은 구조조정의 길을 걷게 되었고 종착역은 외국펀드들의 먹이감이 되었다. 사실 당시 세계경제는 호황이었고 한국의 외환관리 문제는 단숨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었기 때문에 김대중대통령은 1999년 11월 IMF관리 종료를 선언하고 개혁과제들을 쓰레기통에 처박고 말았다. 노동개혁은 시작도 되지 않았고 정부 금융 기업개혁은 일부 추진하다가 고만두고 말았다. 만일 당시 정부가 내세웠던 개혁과제들을 그 후 몇 년 꾸준히 추진하였다면 또 노무현정부같은 황당한 정부가 이어가지 않았다면 한국경제는 오늘 이렇게 황당하게 당황하는 모습을 나타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야말로 비상경제정부를 운영했어야 할 김대중정부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정책개혁보다는 정책적 권모술수로 해피하게 지나가고 말았다.

4. 이명박정부의 비상경제정부 선언과 지하벙커 상황실 운영

이명박대통령의 비상경제정부는 우선 그 조직을 청와대에 대통령이 주재하는 비상경제대책회를 설치하고, 그 산하에 경제상황실을 지하 벙커에 설치한다고 발표하였다. 외국의 전쟁상황실(war room)이 연상되는 이 비상경제기구에 수긍 보다는 너무 하드웨어적 접근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앞선다.

물론 현재의 경제상황이 그야말로 비상한 상황이고 그것을 다루는 정부 자세 또한 비상한 자세로 일을 하겠다는 의미로 긍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비상경제위원회에는 관련국무위원 한은총재 금감위원장 그리고 몇몇 자문위원들이 참석하여 매주 1회 새벽에 열린다고 한다. 그리고 종합상황실은 거시 및 중소기업 그리고 사회소외계층 등으로 구분하여 상황을 점검하도록 하고, 경제수석 밑에 실무위원회를 둔다고 한다. 상황실과 실무위원회는 물론 관계부처 공무원들이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구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운영은 아직 시작이 되지 않았으니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이명박대통령의 스피드 경제대책을 뒷받침하리라고 생각된다. 여기서 연상되는 문제를 몇 가지 제시하여 보자.

첫째 안 그래도 이명박정부의 특징이 너무 청와대 일변도로 운영되다보니 관계부처의 적극적인 참여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판인데 이 비상경제정부의 운영으로 이제 그런 평가는 오히려 한가롭게 되었다. 비상이 갖는 뜻이 효율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모든 것이 대통령의 지시나 의사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운영되어야 한다. 그럴 때 과연 일반 정부의 다양한 전문성이 얼마나 반영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대통령의 뜻에 반하는 의견이 제기될 수 있고 또 비상경제위원회에서 논의 된 것을 관련부처에서 그렇게 신이 나서 추진할까 하는 의구심이 앞서간다. 잘못하면 모든 정부기구를 얼어붙게 만들고 효율보다는 비능률을 자체에서 만들어내지 않을까 걱정된다.

둘째 시장은 다양성을 전제로 한다. 경제가 아무리 어렵고 그래서 비상한 대책추진이 불가피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드리는 시장은 또 다른 특성으로 그것을 받아드리게 된다. 그래서 아무리 정부가 급한 소리를 할 때도 시장은 그것을 액면대로 받지 않고 시장 특유의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의하여 행해지고 받아드리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미국정부가 그 많은 돈을 퍼부으며 아무리 애를 써서 시장을 지원해도 그 반응은 기대하는 만큼 시원하지 않는 것이 시장의 특성이다. 언젠가 오히려 정부 재정의 어려움과 시장 흐름의 파열음을 생산하게 된다는 점을 염려해야 한다. 한국비상경제정부도 이점을 깊이 유념해야 할 것이다.

셋째 대통령 1인 체제는 아무리 훌륭하게 노력하여도 정부 모든 기구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발하지 않는 한 성공하기 힘이 든다는 것이 과거의 오랜 경험에서 알 수 있다. 더구나 잘못 되었을 때 모든 비난이 대통령 한사람에게 집중되게 되어 있다. 완충이 없는 국정운영은 전략상 항상 좋을 수가 없다는 것이 과거의 경험이다.

넷째 벙커의 이미지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정치권에 대한 압박 멧세지는 될 수 있겠지만, 이어서 전쟁을 연상하고 더 나아가 너무 전근대적인 이미지를 함께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경제운영을 전시작전개념화하는 것은 너무 나간 것 아닌가 생각해볼 일이다.

다섯째 하드웨어적 접근보다는 좀 가슴으로 접근하고 마음을 여는 자세를 보여주지 못하는 대목이 비상경제정부에는 아쉽게 느껴진다. 오바마 미국대통령당선인이 보여주는 포용과 어우름으로 세상을 끌어안는 그의 인사를 보면서 우리는 그것이 왜 안 되나 되뇌어 본다. 대통령이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정치권을 끌어안고 사정하고 설득해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의 폴슨 재무장관이 비상지원책을 가지고 하원의장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정하는 사진을 보면서 우리 정부는 과연 저런 직업의식이 있는 인사가 없나 생각해 보았다.

한국경제는 사회보호제도가 아직은 부족하다. 어려운 경제상황 하에서 이들은 그나마 기댈 데가 없다. 대통령은 이들을 잡고 함께 울고 부둥켜안아야 한다. 최근 이명박대통령이 어느 채소장수 할머니에게 목도리를 감겨주는 그런 자세가 더 넓게 번져야 한다. FTA 비준을 둘러싸고 국회가 난장판이 되는 그 순간에 대통령은 오히려 오갈 데 없는 소외계층을 찾아 가슴으로 안아주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것이 지금 정부가 부족한 대목이라고 필자는 평가한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밤이 깊으면 머지않아 새벽이 오듯이 경제의 어려움은 순환하게 되어 있다. 내가 나서야 지금의 위기가 극복된다는 의식을 아무리 급하더라도 좀 자제하면서 평상심을 갖도록 정부에 권유하고 싶다. 반면 정부가 비상경제정부를 운영할 만큼 현 상황을 비상하게 보고 접근하고 있는 점을 일반 국민도 모두 이해하고 비상정부운영에 협조하여야 한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사회단체, 노동단체 모두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에 동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어려움이 시작된다고 시장이 믿기 시작할 때는 이미 시장은 회복을 함께 준비한다는 사실을 믿고 정부 국민 모두는 마음을 한곳으로 모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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