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31일 일요일

아시아의 시대가 오고 있나?

1. 2010년 초 세계경제의 관심

2010년 1월 말 스위스의 촌락 다보스에서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이 열리고 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세계의 관심은 최근 오바마 미대통령의 금융규제 즉 은행에 대한 정부의 간여정책으로 투자은행들의 일반은행 업무 이탈시도에 따른 자금흐름의 경색 우려가 어떻게 세계경기회복에 영향을 줄 것인지에 집중되고 있다고 한다. 이외에도 G2로 이름 지어진 미국과 중국의 경제흐름 특히 아시아의 대표처럼 되어버린 중국경제가 얼마나 세계경제에 호의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인지 그 흐름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다. 이와 관련하여 거대경제를 비롯한 각국의 출구전략이 자연스런 관심사가 되게 된다.

또 다른 관심은 세계적 경제파동 속에서 독야청청 큰 폭의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중국과 인도의 경제성장을 놓고 그리고 OECD 국가 중 두 번째라는 한국의 플러스 성장 등을 놓고 세계는 경이와 부러움을 표시한다. 공교롭게 한국이 금년 G20 회의 의장국이 되어 회의를 주재하게 된 것을 한국 국내는 말할 것 없고, 다른 나라들도 한국의 경제발전에 따른 위상의 상승으로 그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2. 아시아의 시대는 왔는가?

이런 흐름 속에 불란서 평론가 기 소르망은 한국의 한 일간지에 ‘아시아의 세기, 아직은 아니다’라는 제목의 기고를 하였다. (2010년 1월 26일자 동아일보) 그의 안목 즉 서구적 가치기준에서 보면 아직 농업국가의 형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인도경제, ‘값싼 노동력’을 기본으로 조립중심에 머물러 있는 중국의 산업구조 그리고 좀 창조적이고 서구기계문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도 서구적 과학기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경제 들을 기본으로 해 아시아의 세기가 온 것이 아니라고 기 소르망은 분석하고 있다. 더군다나 아시아는 자력방위능력이 없고 아직도 미국의 방위력에 의존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EU처럼 NATO나 마스트리트 조약 같은 역내 조정기구가 없다는 것이 아직 아시아의 세기가 오지 못한 이유라고 한다. 더군다나 아시아는 서구적 가치기준인 자본주의, 시장경제, 개인주의, 성(性)의 평등 등의 서구적 가치에 아직 얹혀 있고 서구적 가치에 대응하는 아시아적 가치인 '조화(harmony)' 만으로는 서구적 가치를 능가할 만큼 되지 못하였다는 논리를 기 소르망은 펴고 있다.

3. 아시아경제의 세계적 위상

아시아경제의 세계적 위상은 해가 갈수록 격상되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과 인도가 21세기 들어 특히 리먼사태 이후 괄목할 발전을 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세계의 흐름이 점차 아시아로 집중되고 있다는데 별 이론이 없는 것 같다. 최근 BBC가 행한 여론조사에서 60%의 응답자가 경제위기를 계기로 권력의 중심이 동양으로 이전되고 있다고 응답하였다는 보도가 나왔다. 경제력의 중심이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그리고 서구적 발전 동력이 아시아로 옮겨지고 있음을 막연하게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60억 세계인구 중에서 아시아인이 절반을 차지하는 것은 오랜 현상이고 누구나 다 안다. 과거에는 인구가 경제의 자산으로서의 가치보다는 부담으로 치부되었다. 어려운 살림살이에서 입을 여하히 줄려나갈 것인가가 경제정책의 관심사였고 실제 인구정책이라면 증가율을 여하히 줄려나갈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선진국들은 인구의 낮은 증가율이나 정체 그리고 노령화를 걱정한다. 인구학자들의 특정국 인종의 멸종전망을 차치하고라도 현실적으로 노령인구를 부양해야하는 젊은 사람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것을 보면서 두려움을 느낀다. 일본이 그렇고 한국이 그렇다. 대부분 EU 국가들이 그렇고 미국의 백인들이 그렇다. 이제는 인구가 부채보다는 큰 자산이다.

한국무역협회의 국제무역연구원의 분석에 의하면 아시아의 GDP가 세계전체의 그것에 차지하는 비중이 20%대에 다다르고 있다. 물론 아시아의 평균 성장률이 월등히 높으므로 그 비중은 빠른 속도로 늘어날 것이다. 가깝게 세계금융위기 이후 많은 나라가 큰 부의 성장을 하는데 중국과 인도는 높은 플러스성장을 하였다. 한국도 OECD 국가 중 드물게 플러스 성장을 하였다. 일본을 제외하고 아시아 각국은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모습이다. 무역규모도 마찬가지로 아시아 각국의 세계무역에 차지하는 비율이 20%대에 이른다. 중국이 일본을 앞서 세계에서 2위의 수출국이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다보스 회의에서 자유무역의 확대를 주장하였다. 보호의 그늘로 피해 다니던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의 경제가 거꾸로 자유무역의 확대를 세계에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괄목할 만한 경제력의 크기에 비하여 아시아 각국의 일인당 소득이나 복지의 수준은 일본을 제외하면 아직 한참 뒤인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이 그렇고 인도가 그렇다. 인도네시아, 필리핀이 그렇고 방글라데시는 아직도 절대빈곤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지표만으로 행복지수를 논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아직 멀었다고 할 수 있다. G2라고 중국을 미국과 같은 반열로 치켜세우고 있지만 중국의 1인당 소득은 세계에서 100위에 있는 3~4천 달러에 불과하다. 인도는 아직 농업국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고 인도네시아 말레지아 타이랜드 필리핀 방글라데시 등 아시아제국은 아직 신흥국이라는 이름을 듣기 어렵다.

아시아 각국의 이러한 취약한 위상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기진맥진하고 있을 때 중국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는 경이적인 플러스성장을 이루고 있고 세계자원과 자본의 블랙홀 역할을 하고 있다. 위세 당당하던 미국 영국 독일 불란서 등 서구 선진국들은 그저 망연자실한 채 아시아의 발전을 강 너머로 쳐다보고 있는 형국이다.

4. 자력방위구조의 결여

기 소르망의 분석에 의하면 아시아는 아직 자력방위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한다. 미국 국방력에 의존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만일 미국이 방위지원을 거둘 경우 자력으로 존립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EU 국가들의 NATO와 같은 협의기구가 없는 것이 아시아의 취약점이라고 지적한다. 타당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의 양극시대에 존재하였던 방위우산이 오늘 날 무슨 큰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NATO라는 협력기구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서구 국가의 방위를 보장하는지 묻고 싶다. 물론 오늘 날 미국이라는 단극시대에 각국의 방위에 있어서 미국의 역할은 결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인들 모든 것을 자기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오늘날 현실 아닌가? 오히려 국제적 협력 하에 모든 문제를 함께 풀어가고 있는 것이 21세기 방위시스템 아닌지 모르겠다. 경제가 글로벌화 하듯 방위도 글로벌화 하는 것 아닌가? 나토는 지나간 개념 아닌지 묻고 싶다. 글로벌방위시스템이라는 말이 성립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미국의 방위력을 활용하는 전략은 각국의 존재가치 그것이 경제적이던 전략적이던 존재가치를 높이는 노력이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한다.

5. 서구적 가치와 아시아적 가치

자본주의, 민주주의, 개인주의, 성(性)적 평등 등은 서구적 가치로 보아야 한다. 이들이 현대국가의 기본가치가 되고 있다. 아시아도 이러한 가치기준에 입각하여 국가와 사회가 운영된다고 할 수 있다. 당연한 것이 지난 200여년의 세계지배가 이들에 의해서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도그마로서 현대사회를 지금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 가치도 지역에 따라 그리고 사회구성원에 따라 어느 정도의 폭 범위 내에서 달리 해석되고 그래서 국지적 인종적 종교적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시아적 가치( Asia's value)라는 말은 1990년대 말 아시아의 금융위기 시 많이 제기되었다. 한국을 비롯한 타이랜드 인도네시아 등 소위 신흥국들이 금융위기를 맞아 IMF의 지원을 받아 위기를 넘기고 있을 때 미국을 비롯한 서구국가들, 각 국제금융기관들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학계 등 전문가그룹 들 모두가 아시아의 비능률적인 시장경제 운영을 힐난하고 비판하였다. 1998년 홍콩에서 열린 IMF 연차총회에서 이 문제가 폭발되고 말았다. 당시 말레지아 총리였던 마아티르와 미국의 헷지펀드의 대표격인 죠지 솔로스가 투기자본의 흐름에 대한 규제를 가지고 맞붙었다. 말레지아는 투기자본의 유통을 규제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 이후 쿠아라룸플에서 각국의 지도자들이 다시 모여 이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보다 못한 리콴유 싱가포르 전수상이 아시아는 아시아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는데 이것을 신자유주의에 입각하여 무조건 비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그 어간에 미국의 폴 크르구만교수는 뉴욕타임스인가에 아시아적 가치는 없다는 글을 썼다. 지난 세월 아시아 신흥국들이 빠른 발전을 한 것이 무슨 특별한 아시아적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풍부한 노동력을 싼 가격으로 사용한 결과에 불과하고 앞으로 이러한 자원의 혜택이 없어질 경우 아시아는 더 이상 빠른 발전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는 그래서 처음부터 아시아적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지였다. 당시는 하도 미국을 비롯한 서구적 가치 일변도의 분위기 속에서 나온 이런 논의를 대놓고 통박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 분위기 속에서 리콴유의 주장은 아시아인의 입장에서는 통쾌한 면도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다시 역전시킨 것은 그 회의에 참석하여 발표한 한국의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었다. 아시아의 신흥국 중에 대표격인 한국의 대통령이 아시아적가치는 처음부터 없었다고 크르구만의 논거를 지지하고 나섰다. 마아티르나 리콴유의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배신감 같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경솔한 것인지 무식한 것인지 분간키 어려운 처사였다.

1980년대 초 일본출신의 모리시마 미치오(森嶋通夫)교수는 일본의 빠른 발전의 원동력을 일본의 유교문화에서 찾았다. 일본 유교문화는 그들 나름대로의 충(忠)에 근거하여 조직 회사 정부 국가에 대한 헌신을 기본가치로 하고 있다. 21세기 들어 일본사회의 이러한 유교문화가 신세대 사이에서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모리시마는 일본의 장래는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같은 선상에서 한국의 유교문화는 혈연에 기반을 둔 효(孝)에서 출발하였다. 부모님에 대한 공경은 연장자에 대한 존경으로 그리고 자기절제와 근면을 바탕으로 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유교의 본고장 중국의 유교문화는 모택동 공산치하에서 많은 왜곡이 있었지만 공자에 대한 연구와 존경으로 최근 다시 부활하고 있다. 무슬렘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말레지아 인도네시아 등도 그리고 불교와 회교문화권인 인도 등 서남아시아권도 직접간접으로 아시아적 가치로 불리는 유교문화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종교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서 아시아적인 가치는 이 지역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서구의 가치가 개인주의라고 한다면 아시아의 가치는 공동체를 전제로 한 헌신(dedication), 조화(harmony)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6. 아시아 시대 (Era of Asia)의 조건

그렇다면 아시아의 시대는 오고 있는가? 아시아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기소르망의 말대로 아직 아시아의 시대가 왔다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르겠다. 특히 그것이 지역의 경제적 부(富)를 판정기준으로 한다면 서구 선진국에 비하여 아시아 국가들의 부는 한참 부족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시아의 시대라고 할 때의 개념은 어느 시점의 정태적 결과의 개념 보다는 보다 동태적으로 접근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개념규정 속에서 아시아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조건을 몇 가지 정리하여 보자.

첫째 서구문화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민주주의 자본주의 시장경제 인권 등은 21세기 들어 지구촌의 보편적 가치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아시아의 시대를 논함에 있어 이런 것들은 이미 주어진 전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시아 각국들은 물론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이제 모든 나라가 이런 조건을 대부분 갖추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 미국의 국방력 의존은 이제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가 미국의 국방력에 의존한다고 할 수 있다. 아직은 미국의 국방력에 대치하는 새로운 힘은 나타나고 있지 않다. 앞으로 그리 쉽게 나올 조짐이 없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견해이다. 따라서 아시아 시대의 오고 못 오고의 조건보다는 현 지구촌의 일반화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서구적 세계지배의 구체적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달러나 파운드화의 기축통화제도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2차대전 이후의 달러의 세계지배는 미국의 영향력을 더욱 효율적으로 뒷받침하였다. 그 기축통화가 여러 도전을 받고 있다. 2차대전 이후 세계를 지배하는 기구로 등장한 IMF나 세계은행에 대한 기능에 회의를 제기하고 있다. 아시아의 시대 도래에 구체적으로 제약을 가할 수 있는 이런 제도의 밑바탕이 흔들리고 있다는 이야기는 변화의 시대라는 점에서 아시아시대의 도래를 가로막을 제도의 제약이 약화 내지는 사라질 찰라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아시아는 세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GDP는 전체의 5분의 1일 정도를 생산한다. 그만큼 아시아 각국의 경제력은 자기 인구를 충분히 먹여 살릴 정도가 되지 못 한다 고 막연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21세기 인구는 생산수단으로서, 사회를 역동적으로 만드는 요소로서의 기능이 있다. 그리고 아시아 각국의 경제력의 발전 속도가 다른 지역에 비하여 몇 배 빠르다고 할 수 있다.

다섯째 2008년 말 리먼사태는 그동안 서구적 가치라고 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시장의 책임을 강조하기 위한 시장에의 간여 간섭이 새로운 시장경제의 운영의 메카니즘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까지 시장경제운영의 주축이라 할 수 있는 자유무역, 가격의 자유화 등의 기존가치는 계속 발전되어야 할 가치이다. 최근 미국 영국 서구국가에 대하여 신흥국들은 자유무역을 강조하고 정부의 지나친 시장간여를 염려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상전이 벽해 되는 느낌을 지을 수가 없다. 한국은 미국이나 EU에 대하여 FTA를 서두르고 있고 이들 나라는 거꾸로 우물주물하고 있다.

여섯째 세계의 지배력에서 아시아는 얼마나 비중을 차지할까? 이제 G7의 시대는 지나갔다. 세계경제를 진흙탕으로 몰고 간 장본인이 미국의 금융이고 여기 장단을 치던 영국 불란서 독일 등 선진국들이다. G20정상회의는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역사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G20회의의 주축 국이 아시아 국가가 된 것은 의미가 있고 앞으로 세계경제운영에 많은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전망할 수 있다.

7. 아시아 시대를 능동적으로 마지하자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아시아의 시대는 지금 오고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아직 더 발전되어야 할 부문이 아시아에 많이 남아있지만 그래도 정상(頂上)의 미주나 이미 늙은 EU 국가들을 제외하면 세계는 아시아의 영향 하에 있게 된다는 데 별 이의가 없을 것이다. 정상은 내려오는 길 밖에 없고 늙음은 조심성을 앞세운다. 그렇다면 시대를 살아가는 역동성은 아시아에서 나와야 한다.

아놀드 토인비가 말하는 태평양시대가 아시아의 시대를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 대서양의 시대는 갔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태평양 시대가 오는 것은 당연하다. 거기서 특히 중국 일본 한국이 중심이 되어 이 시대를 이끌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하여 역내 협력체제를 갖추는 노력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EU의 마스스트리트조약 같은 것은 힘들지 몰라도 굴절된 과거역사를 정돈하고 통화를 비롯한 새로운 경제협력체 같은 것을 빨리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2010년 1월 23일 토요일

가치관의 혼돈(anomie)에서 벗어나자

1. 사회적 갈등의 표출

한국사회는 개발연대와 민주화과정을 지나면서 여러 형태의 갈등이 잉태되었고 그것이 하나의 현상으로 구조화되어 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갈등구조는 IMF 이후 소위 좌경정부를 지나면서 보다 조직적으로 그리고 양성적으로 표출되어 한국사회에 하나의 힘의 도그마로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폭력적 노동운동, 광우병촛불시위, 면책특권을 빌미로 깡패나 다름없는 국회의원의 폭력행위 등을 단순한 사회갈등의 표출로 볼 것인가? 아니다. 이런 행위들은 사회적 갈등구조 표출의 주변에서 비슷한 탈을 쓰고 자기이익을 챙기기 위해 떼를 쓰는 행위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힘의 도그마 즉 사회갈등구조 속에서 약자의 가면 속에서 제 잇속 즉 경제적 또는 이념적 잇속 등을 챙기기 위하여 권력을 휘두르는 이런 현상을 현재 한국사회가 겪고 있다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사회발전과정에서 생성된 갈등구조의 자연스런 표출이 아니라 제몫 찾기에 눈이 먼 집단들의 집단행동이고 이것을 하나의 긍정적 사회발전과정으로 호도 미화하는 것은 실체파악의 착각이며 구시대적 안목이라고 평가한다.

2. 가치관의 혼돈

2010년 새해 들어 대한민국법원은 몇 가지 의미 있는 판결을 내어놓았다. 하나는 강기갑이라는 국회의원의 국회 내 폭력행위를 무죄로 판결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말썽 많던 MBC의 광우병 관련보도에 대한 무죄판결이 그것이다. 앞에 것은 국회의원이라는 자가 자기 분을 못 삭여 그랬다는(자기변명) 소위 ‘공중부양’을 하며 국회기물을 파괴하고 공무집행을 방해한 희화적인 사건이다. 뒤에 것은 광우병과 관련 없는 다우너 소의 처리를 영상화하여 마치 미국 쇠고기가 광우병에 걸려 있는 소를 도축하여 판매될 가능성이 있음을 그리고 또 다른 병으로 죽은 어느 미국인의 사인이 마치 인간광우병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 보도를 의도적으로 제작보도한데 대한 사기 명예회손 등의 사건이다.

이들 사건들을 맡은 단독판사들은 모두 무죄를 선고하였다. 판결이유는 강기갑 폭행은 공무집행을 방해할 의도가 없음을 이유로 하였다. 국회사무처장 방에서 방방 뛰는 그의 공중부양(?)이 공무집행에 방해가 안 되었다면, 그 뛰는 행위가 소리도 안 나고 새털처럼 조용해서 그 방에 있는 사람의 일에 전연 방해가 되지 않았다는 말인지 그 판사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그런 한량없는 너그러움이 발현될 수 있었을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또 사진에 명확하게 채증 된 국회 기물파괴는 어떻게 무죄가 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일반인이 그런 행동을 하면 죄가 되고 국회의원이 그것도 법을 만들고 그래서 누구보다 그 법을 잘 지켜야 할 책임이 있는 국회의원의 시정잡배만도 못한 국민재산 파손행위는 너그럽게 용서될 수 있는 것인지 판사는 답을 해야 한다.

MBC 광우병관련 판결은 더욱 가관이다. 필자가 제일 주목하는 판결이유 중 하나는 다우너 소 처리가 도축의 과정인지 불분명하므로 비록 그것이 도축되어 판매되었다하더라도 그것이 광우병과 관련 없는 것인데, 마치 다우너 소가 광우병에 걸린 소이고 그것을 미국은 도축하여 판매하는 것을 연상시키는 화면을 방송하였는데 그것이 의도적인 사기가 아니라는 판결을 하였다는 점이다. 이것도 방송당시에는 다우너 소인지 광우병 소인지 몰랐고 방송 후에서 그것이 단순한 다우너 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더구나 사인이 규명되지 않은 어느 여인의 죽음이 인간광우병을 연상시키도록 제작된 방송내용에 대해서도 사인규명이 방송 후에 인간광우병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으므로 방송당시는 사인이 불분명하였으므로 의도적인 사기가 아니라고 판결하였는데, 그러면 아무 관련 없는 사진들을 마치 관련 된 것처럼 만들어 보도한 그 방송내용이 단지 사인규명이 사후에 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죄가 된다면 공영방송의 책임은 어데서 찾아야 한단 말인지 판사는 답을 해야 한다.

법률가가 아닌 상식인의 입장에서 법관의 법해석과 판단의 결과를 왈가왈부하기는 어렵다. 전문영역에 속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상식인 들도 법철학의 근본이 상식(common sense)에 있음을 안다. 그렇다면 최근 사법부가 판결한 일련의 사건처리가 일반인의 상식에 부합하는 것이었는지를 논해보아야 하겠다.

첫째 이런 중요한 사건을 왜 단독판사들이 하는지 일반인은 이해하기 힘 든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대로라면 민감한 사건을 합의재판에 넘기면 합의과정에서 여러 잡음이 날 가능성이 있어서 이를 피하기 위하여 단독판사에게 넘겼다고 한다. 사실 여부는 외부에서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면 단독으로 판단하는데서 오는 독단이나 오류는 민감한 사건에서 왜 고려되지 않는지 일반인은 이해하기 어렵다. 또 언론에서 이야기가 많이 나오자 대법원에서는 일심판결을 가지고 무얼 그러느냐는 커멘트를 내어 놓았다. 물론 복심제이고 일심판결이 상급심에서 변화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판사의 판결은 확정력이 있는 것이고 판결의 오류를 전제로 상급심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단독판사가 한 이 판결이 오판일 가능성이 있고, 상급심에서 논할 수 있는 것 아니냐 하는 대법원의 의견대로라 하면 왜 애시 당초 신중한 처리를 위하여 합의재판부에서 신중한 검토를 할 것이지 단독판사의 결정으로 혼란을 자초하는지 법원의 행정절차를 이해할 수가 없다.

둘째 깡패나 다름없는 아니 그보다 더 저질적인 강기갑 폭행행위를 업무방해도 아니고 국회시설물을 파손하는 행위도 죄가 없다고 하면 무엇이 죄가 되는지 법의 상식으로 묻지 않을 수 없다. 제 분에 못 이겨 방방 뛰었다고 본인은 변명하는 모양인데 그가 자기 집 안방에서 방방 뛴들 누가 탓하랴. 국회사무처장이 집무하고 있는 방에 가서 탁자 위로 공중부양하는 해학적인 추태를 보여 놓고 그것이 제분에 못이긴 행위이니 공무방해가 없고 죄가 없다고 할 수 있는가? 보도에 의하면 도끼를 들고 국회 문을 부스는 사진이 공개되었는데 그것도 죄가 없다? 만일 판사 집 대문을 부순다 해도 그것은 별 일 아니라고 그렇게 너그러운 말을 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국회기물은 국민의 세금이다. 법을 누구보다 지켜야 할 입법기관이 기물을 파괴하는 행위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지 법의 상식에 맞지 않는 판결이라고 하지 아니할 수 없다.

셋째 MBC PD수첩사건은 법의 상식으로 더욱 이해할 수 없다. 다른 무엇보다 사실판단에서 연상될 만한 사진을 내어보내면서 그것을 보면 누구나 쉽게 광우병 쇠고기 판매나 인간광우병 발생 가능성을 생각하게 만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내용이 보도 이후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였으므로 악의적인 사기성이 없다는 판단이다. 사기죄나 명예회손죄의 성립요건을 여기서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판사들의 기술적 영역이다. 다만 이런 사실판단을 하는 것이 법의 상식에 맞는지를 따지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사실판단을 한다면 ‘나는 몰랐다’하면 모두 무죄가 된다. 모름의 귀책이 사회에 있지 당사자에게는 없다면 이런 세상살이는 참 편리하고 무서울 것 같다.

일반 매체에 대하여 그 잘 난체 잘하는 공영방송의 책임성은 어디 갔나? 내가 하면 이런 무책임성도 좋고 네가 하면 안 되는 이런 논리 아닌가? 사실 PD수첩방영을 보면서 중고등학교 어린 학생들이 미국쇠고기 먹으면 저렇게(인간광우병이라고 연상되는 여인의 죽음 화면) 된다고 울고 있던 뉴스를 판사는 보지 못했나? 법의 상식에 맞지 않는 판단이다. 그런 것들을 어느 개인이 사적인 장소에서 주장했다면 죄가 되겠는가? 안 될 것이다. 심지어 일반 상업방송에서 했다고 해도 좀 뜸을 들일 수 있는 여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MBC는 공영방송으로서 그 책임성이 다른 차원으로 판단해야 법의 상식에 맞는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사실 왜곡을 담당 작가가 지적까지 하였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왜곡보도를 한 것을 어떻게 당시 몰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면탈 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넷째 이러한 일련의 사건처리에 있어서 법의 상식에 입각한 공정한 판결보다는 재판부 스스로 이런 사건들을 사회 이념적 갈등사건으로 윤색하는 듯한 그래서 보다 진보적(?)인 입장에서 현실을 판단하고자 하는 것 아닌지 하는 오해를 부르게 한다. 한국사회는 사회갈등구조 속에서 약자의 입장을 감싸는 해법을 많이 찾아가고자 하였다. 경제개발과 민주화과정에서 옳은 방향의 사회발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일들이 훗날 한국사회에 ‘힘의 도그마’로서 활용되어 왔고 그것이 오늘날 사회의 많은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파괴적 노조활동이 그렇고 교권에서 벗어난 일부 전교조활동들이 그렇다. 일부 NGO를 표방한 사회운동이 그렇고 국익을 팽개친 정치권의 제몫 찾기 투쟁이 그렇다. 또한 과잉농업보호활동들이 그렇다. 대형노동조합, 전교조, 사회운동조직, 농민회 그리고 정치운동가들 모두가 이제는 약자가 아닌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이 센 집단이고 지난 발전의 혜택을 많이 받은 집단들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세월 그들의 사회활동을 약자를 돕는 입장에서 한국사회가 많은 지원을 하였다. 그 지원에 사법부는 큰 기여를 하였다고 할 수 있다. 배고픔을 안쓰러워하고 핍박 받음을 애써 돕고자 하여 왔다. 그런 사법부의 지원을 진보적인 판단이라고 평가하고 지지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이들이 가장 권력이 센 집단이고 그 떼를 쓰는 양상이 도를 넘는 경우가 많다. 이 도를 넘는 활동을 진보적 이름으로 관용 내지 지원하는 입장에서 법원이 판단한다면 이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필자는 평가한다. 이번의 판결이 이런 범위 내의 것인지는 아직 판단을 유보해야 하겠지만 법의 상식으로는 맞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앞으로 이번과 유사한 판결이 남아 있다고 언론은 전한다. 시국선언을 한 전교조 교원에 대한 평가가 그것이고, 공무원노조설립과 관련된 사법부의 판단이 현안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어떤 경우이던 법의 일반적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 판단을 법원을 하여야 할 것이다.

다섯째 한국사회의 가치관이 혼돈된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사법부 판단에 대하여 사회는 보수와 진보진영으로 대치하며 극렬한 상대방 비난 평가가 나타나고 있다. 이를 앞장서 정치권은 여는 보수를, 야는 진보의 편에서 서로 상대방에 대한 비난을 퍼부어 대고 있다. 급기야 검찰과 사법부의 대결처럼 나타나자 양 기관은 애써 이를 봉합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다. 당연히 그리 되어야겠지만 현재의 상황으로 한국사회는 가치관의 혼돈(anomie)으로 빠져들고 있는 양상이다. 일반인의 법의 상식과 거리가 있는 판결을 보면서 많은 한국사람 들은 스스로의 가치관에 혼돈을 경험하게 된다. ‘내가 무엇 잘못 생각하고 있나?’를 반추하면서 이것은 아닌데 하는 판단의 혼란을 스스로 경험하게 된다고 본다. 일부 사고와 행동에서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야 언제나 있게 마련이지만 내가 속해 있는 다수(majority)그룹의 가치관도 이런 것인지 의문과 회의가 생기게 될 것이다. 이것은 진보 보수의 이념적 갈등 이전의 개인의 가치관에 대한 혼돈이라고 필자는 평가한다. 도대체 무엇이 옳은 것인가? 사회는 이런 혼돈을 빨리 수습하고 옳고 글음의 가치관을 명확하게 해 주어야 한다.

3. 미래의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사회

그래서 정치권에서는 사법제도개혁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니까 대법원은 사법권독립을 굳건하게 지키겠다고 하고 야당에서는 여당의 사법권침해를 비난하고 있다. 이러한 일이야 당연한 일처리 수순이겠지만 이것은 일반국민의 관심권 밖이라고 생각한다.
문제의 해결은 사법부 구성원들의 올바를 가치관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느냐에 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발전된 나라일수록 사법부 구성원의 성향에 민감한 관심을 나타낸다. 그 구성원의 이념과 판단이 일반인의 가치관에 부합하느냐 여부가 매우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법부가 법집행의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에 그 구성원의 가치관이 일반인과 다를 경우 상식이 통하지 않고 더 나아가 개인 개인의 가치관의 혼돈을 가져오게 한다. 그것을 대법원장은 깊이 생각하야 할 것이다.

언제 어느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발전된 사회일수록 사회구성원으로 하여금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것을 위하여 한국사회는 지금 잉태하고 있는 가치관의 혼돈에서부터 빨리 벗어나야 한다. 21세기는 탈 이념시대이다. 보수 진보의 이념적 가치기준은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지구촌이 열린 마음으로 경쟁하고 거기서 번영을 구가하는 것이 오늘의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다.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아집에서 벗어나 지구를 아니 우주를 끌어안는 한국사회가 되어야 한다. 한국은 국운융성기에 있다. 이 기회에 한국사회가 세계 속에서 번영을 구가하기위해서는 한국인 모두가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갖게 해야 한다. 갈등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법부도 여기에 동참해야 한다. 아니 앞장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