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3일 경주에서 진행된 G20정상회의를 위한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장 회의결과가 발표되었다. 그동안 환율전쟁으로 표현되는 최근 환율문제를 놓고 다음달 11일 서울 정상회의에서 합의점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이었고, 이 회의의 의제조율을 위한 경주재무장관회의는 세계적관심이 집중되는 회의였다. 한국이 의장국으로써 감당하기 힘든 이 어려운 문제를 잘 처리하고 정상회의를 마치는 것은 세계경제를 위해서도 좋고, 선진국으로 진입을 꿈꾸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도 그 위상제고를 위한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회의 전 몇주동안 과련된 어려운 많은 이야기가 나돌았다. 무엇보다 물귀신 작전 비슷하게 일본의 총리 그리고 재무상이 한국이 중국과 함께 환율조작국이라 지징하면서 세계경제운영의 책임을 다할 것을 주장하고 나섰다. 한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치부될만한 객과적 증거가 있는것도 아니고 어느나라나 하고 있는 중앙은행의 제한적 시장관여를 놓고 환율조각국 운운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물론 제한된 시장관여의 정도가 어느정도를 조작으로 볼 것인가 하는 객관적기준은 없다. 그러나 최근 원화의 절상 속도가 느리고, 어떤면에서 정체되었다고 평가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이는 한국정부의 바보같은 전략이라고 할 것이다. 아무튼 그렇다하더라도 일본은 몇주전 수십조엔의 시장간여를 한목에 내놓고 한 마당에 한국보고 환율 조작이야기를 하는 일본정부의 얕은 속내가 짐작되고 기분나쁜 이웃으로 다시 각인시켰다. 물론 일본정부는 사후적으로 발언취지가 잘못 전달된 것이라고 해명하였지만 그 속내야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중국 하나만 때리기 어려우니까 한국을 끼워팔기 식으로 엮어 댄 것이다. 미국은 느닷없이 경상수지 균형을 GDP의 4% 정도로 될 수 있도록 환율을 유지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이것도 말이 안 되는 힘의 논리이다. 국제수지불균형이 환율 하나의 요인으로 이루어지는 양 이렇게 목표수자 하나로 시장을 규제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독일이나 브라질은 미국의 무책임한 통화풀기에 따른 달러가치의 절하시도를 반대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이해 상충과제를 법적구속력이 없는 G20회의에서 합의에 이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더구나 지난 워싱턴 IMF회의 때도 조정에 실패한 환율협의를 경주회의에서 합의에 이르기는 매우 어려운 과제로 평가되었다.
이런 어려운 협의를 경주에서 합의에 이른 것은 매우 의미있고 잘된 일이라 평가할 수 있다. 우선 '시장결정적인 환율제도 도입'과 '경상수지 목표제 도입'이 나름대로 갖는 문제가 있고 집행력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지만 그래도 세계가 현행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의견의 일치를 보았고, 그것도 보다 시장친화적으로 결정된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나는 판단한다. 만일 이 안이 정상회의에서 각국별로 보다 구체화된다면 금상첨화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IMF 지분조정을 중심으로 한 국제통화기금 개혁에 합의하고 아울러 IMF가 각국의 시장상황과 이에 대한 대응전략들을 구체적으로 평가하는 보고서를 내도록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IMF는 G20국가를 5 카테고리로 구분하였다.
1범위; Advanced surplus economies : 한국 독일 일본을 거명하며 이들국가들은 수출 의존도 감소와 내수확충이 필요하다.
2범위; Emerging surplus economies : 아르헨티나 중국 인도네시아 이들 국가에서는 환율유연성 확대와 복지증진정책이 필요하다.
3범위; Advanced deficit economies : 미국 EU 이들 국가에서는 재정건전성유지와 global불균형해소방안 강구가 필요하다.
4범위; Emerging deficit economies : 브라질 멕시코 터키들을 거명하며 이들은 인프라스트럭쳐 투자확대,무역정책 개선이 필요하다.
5범위;Oil exporting economies :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들을 거명하며 경제다변화가 필요하다.
이런 세계경제의 카테고라이즈가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경제가 선진경제로 평가되는 것은 계면적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은 대목이다. 한국경제가 아직 개도국임을 이야기하자 IMF는 한국을 선진경제라고 하지 않으면 어느 경제를 선진경제라고 할 수 있느냐는 반응이었다고 언론은 전했다. 물론 그것이 한국경제에 대한 당장의 제재와 연관되어 있다고 평가하지만 그래도 매를 맞으면서도 그래도 어른 취급 받는것이 어쩐지 기분이 나쁘지 않음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덩치가 커지면 그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 이 대목을 잘 넘기면 된다. 한국정부와 국민 모두가 용기를 가지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
2010년 10월 25일 월요일
2010년 10월 12일 화요일
여중재팁; 오호라 금융실명제!
이제 있었는지도 잊어버린 금융거래 실명제를 왜 끄집어 내나? 생경맞은 이 과제를 새삼 거론하는 것은 나라도 한번은 이 문제를 이 시점에서 거론하고 가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책임감에서다. 1981년 장영자금융사건이 일어나 한국의 자본시장이 쑥대밭이 되었을 때 다 망가진 마당에 그래도 금융실명제라도 건지자 하는 소박한(정치권에서는 우리를 백면서생이라 했다) 마음에 당시 재무부 일각에서 들고 일어난 것이 금융실명제였다.
여러 난상토론이 있었지만 처음에는 별 생각없이 원론적으로 찬성을 하던 일반의 지지는 정치권을 중심으로 곰곰히 내 이해는 어찌되나 따져본 다음 결론은 반대로 돌아섰다. 새 제도하에서 정치자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를 궁리하던 정치권은 특히 당시 여당인 공화당도 준비부족을 구실로 반대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명분상 내칠 수가 없던 당시의 국회는 이 제도을 5년 후(1986년 이후) 정부가 정하는 시기부터 시행한다고 하는 해괘한 부칙을 삽입하여 금융실명거래법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그 5년이 지난 후 다시 6년이 지난 1992년 김영삼정부에 의하여 금융실명제는 시행에 들어갔다.
금융실명제가 실시된지 18년이 지난 지금 한국사회에는 이 제도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가? 지금 금융가에는 어느 금융인이 금융실명법을 위반하였다 하여 이의 처벌 여부가 관심이 되고 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이 금융인의 차명계좌가 1000개가 넘는다고 하고 있고, 그 금융인은 관행적으로 이루어진 일들로 치부하고자 하는 듯 하다. 여기서 나는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왈가왈부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것은 금융당국과 사정기관이 알아서 할 일이고 나는 이 제도를 끄집어 냈던 한 사람으로서 반성하고자 하는 뜻으로 몇가지 문제을 제기해 본다.
우선 한국인의 불공정 의식을 생각한다. 그동안 한국인들 중 금융실명제 위반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문제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소위 권력층에서 이런 사건이 크게 문제된 것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과문한 면도 있겠지만 정치권이나, 지금처럼 금융업당사자가 직접 실명제 위반을 이르켜 문제가 된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금융실명법이 잘 작동되어 불법사례가 줄어들어서 그리 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덮어 두었을 개연성이 더 많다. 그렇다면 무엇하러 금융거래를 실명화하도록 법제화 했단 말인가? 사실 행위에 대한 객관적 정당성, 합리성, 논리성 보다는 남들도 하는데 하는 자기변호성, 은밀성 등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한국의 독특한 문화를 간과한 대목이다. 요즘 정부가 내 세우는 '공정'의 화두도 따지고 보면 비슷한 범주의 규범과 현실의 괴리를 우리에게 안겨줄 가능성을 놓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 제도 도입 초기 강조되었던 것은 이것을 남의 뒷조사에 중점적으로 사용할 경우 이 제도의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를 시행한 김영삼정부나 김대중, 노무현 정부 모두 이 제도를 남의 뒷조사에 보다 중점을 두어 사용하였다. 그러니 금융거래의 지하화는 더욱 깊어만 갔고 관행은 고쳐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 제도 도입 초기 이렇게 현대생활이 기계의 지배하에 있게 될 것에 대한 예측이 부족하였다. 사실 금융실명거래제도가 도입되지 않았을지라도 현대의 IT를 중심으로한 기계문명생활은 모든 것을 감추면서 또는 얼굴을 감추고 또는 남의 이름을 빌어서 행동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거래의 지하화는 기계의 이용과 함께 점차 줄어들고, 자연스럽게 실명이 확인되는 거래가 정착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이제도 도입을 원천적으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 이 제도 시행을 잘못한 정부나 권력을 장악한 계층의 잘못이지 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은 물론 아니다. 또 선진된 사회를 지향하는 작금의 한국사회가 금융거래의 실명화를 땅에 묻어두었을 경우 거래의 선명도는 더욱 떨어지고 사회범죄는 더욱 늘었을 것이다. 그리고 금융산업의 발전도 그만큼 뒤쳐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을 보면서 공연히 제도만 만들어 남의 뒷조사의 도구 노릇이나 하게 만들고 말았다는 자책이 들고 있음은 어쩔 수 없다.
금융업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 제도가 있음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그 많은 비실명거래를 관행적으로 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많은 비실명구좌를 조사하고서도 엉거주춤 꾸물댄 금융감독원의 태도는 무엇인가? 이 사건을 쳐다보는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하나도 금융실명거래제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자신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제도가 있으면 무엇하나 제도는 수단에 불과하다. 문제는 그 제도의 취지대로 현실이 발전해가는 것이 중요한것 아닌가. 잃어버린 30년인 것을!
여러 난상토론이 있었지만 처음에는 별 생각없이 원론적으로 찬성을 하던 일반의 지지는 정치권을 중심으로 곰곰히 내 이해는 어찌되나 따져본 다음 결론은 반대로 돌아섰다. 새 제도하에서 정치자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를 궁리하던 정치권은 특히 당시 여당인 공화당도 준비부족을 구실로 반대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명분상 내칠 수가 없던 당시의 국회는 이 제도을 5년 후(1986년 이후) 정부가 정하는 시기부터 시행한다고 하는 해괘한 부칙을 삽입하여 금융실명거래법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그 5년이 지난 후 다시 6년이 지난 1992년 김영삼정부에 의하여 금융실명제는 시행에 들어갔다.
금융실명제가 실시된지 18년이 지난 지금 한국사회에는 이 제도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가? 지금 금융가에는 어느 금융인이 금융실명법을 위반하였다 하여 이의 처벌 여부가 관심이 되고 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이 금융인의 차명계좌가 1000개가 넘는다고 하고 있고, 그 금융인은 관행적으로 이루어진 일들로 치부하고자 하는 듯 하다. 여기서 나는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왈가왈부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것은 금융당국과 사정기관이 알아서 할 일이고 나는 이 제도를 끄집어 냈던 한 사람으로서 반성하고자 하는 뜻으로 몇가지 문제을 제기해 본다.
우선 한국인의 불공정 의식을 생각한다. 그동안 한국인들 중 금융실명제 위반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문제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소위 권력층에서 이런 사건이 크게 문제된 것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과문한 면도 있겠지만 정치권이나, 지금처럼 금융업당사자가 직접 실명제 위반을 이르켜 문제가 된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금융실명법이 잘 작동되어 불법사례가 줄어들어서 그리 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덮어 두었을 개연성이 더 많다. 그렇다면 무엇하러 금융거래를 실명화하도록 법제화 했단 말인가? 사실 행위에 대한 객관적 정당성, 합리성, 논리성 보다는 남들도 하는데 하는 자기변호성, 은밀성 등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한국의 독특한 문화를 간과한 대목이다. 요즘 정부가 내 세우는 '공정'의 화두도 따지고 보면 비슷한 범주의 규범과 현실의 괴리를 우리에게 안겨줄 가능성을 놓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 제도 도입 초기 강조되었던 것은 이것을 남의 뒷조사에 중점적으로 사용할 경우 이 제도의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를 시행한 김영삼정부나 김대중, 노무현 정부 모두 이 제도를 남의 뒷조사에 보다 중점을 두어 사용하였다. 그러니 금융거래의 지하화는 더욱 깊어만 갔고 관행은 고쳐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 제도 도입 초기 이렇게 현대생활이 기계의 지배하에 있게 될 것에 대한 예측이 부족하였다. 사실 금융실명거래제도가 도입되지 않았을지라도 현대의 IT를 중심으로한 기계문명생활은 모든 것을 감추면서 또는 얼굴을 감추고 또는 남의 이름을 빌어서 행동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거래의 지하화는 기계의 이용과 함께 점차 줄어들고, 자연스럽게 실명이 확인되는 거래가 정착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이제도 도입을 원천적으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 이 제도 시행을 잘못한 정부나 권력을 장악한 계층의 잘못이지 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은 물론 아니다. 또 선진된 사회를 지향하는 작금의 한국사회가 금융거래의 실명화를 땅에 묻어두었을 경우 거래의 선명도는 더욱 떨어지고 사회범죄는 더욱 늘었을 것이다. 그리고 금융산업의 발전도 그만큼 뒤쳐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을 보면서 공연히 제도만 만들어 남의 뒷조사의 도구 노릇이나 하게 만들고 말았다는 자책이 들고 있음은 어쩔 수 없다.
금융업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 제도가 있음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그 많은 비실명거래를 관행적으로 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많은 비실명구좌를 조사하고서도 엉거주춤 꾸물댄 금융감독원의 태도는 무엇인가? 이 사건을 쳐다보는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하나도 금융실명거래제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자신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제도가 있으면 무엇하나 제도는 수단에 불과하다. 문제는 그 제도의 취지대로 현실이 발전해가는 것이 중요한것 아닌가. 잃어버린 30년인 것을!
2010년 10월 11일 월요일
여중재 팁; 'IMF환율조정 실패; 서울서 결판'
2010년 10월 11일 한국경제신문은 최근 IMF 총회 후 환율과 관련하여 'IMF 환율조정 실패; 서울서 결판'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내용을 읽어보지 않아도 무슨 내용인지 짐작이 가는 기사를 보면서 피식 웃지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결판'이라는 용어였다. 무슨 OK목장의 결투를 연상하게 하는 '결판'이라는 용어를 환율과 관련하여 사용하고 있는가?
우선 그만큼 작금의 환율관련 논의가 국제사회에서 전쟁으로 표현될 만큼 치열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리먼사태 이후 경기침체의 해법을 거의 모든 나라가 수출에서 찾고 있다. 따라서 당연히 단기적인 경쟁력확보의 방법으로 환율을 생각하게 되고, 환율을 자국에 유리하게 이끌기 위하여 무리한 방법을 염치불구하고 써대는 모습을 연출하게 된다. 그 맨 선두에 중국의 위안화가 있다. 그러니 중국보고 환율을 절상하라고 미국을 위시한 서방국들이 앞장서 주장하고 있고, 이의 영향권 하에 있는 IMF를 비롯한 국제금융기구들도 함께 편들고 나서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발끈하는 것은 물론 중국정부다. 마치 국제환경문제회의에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과거 수백년동안 경제개발을 하느라고 그리고 지금 그들의 부를 유지하느라고 공해물질을 마구 배출시켜 놓아 지구를 병들게 하여 놓고, 이제와서 이를 막기위하여 앞으로 추가로 환경위해물질배출을 억제하자고 나서고 있는 것은 개발도상국가들에 대한 차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과거 환율의 이득을 실컷 누려온 미국등 선진국들이 무작정 위안화에만 초점을 맞추어 비난하는 것은 그것도 최근 수개월 동안의 환율변화수치만 가지고 비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중국의 입장일 것이다. 이에 맞서 중국은 마치 위안화절상을 받아드리면 중국의 기업들이 도산하고 이에 따라 엄청난 수요감퇴로 세계경기가 결단난다고 협박성 발언을 하고 있다. 앞의 논리는 같은 개도국 입장이었던 한국의 입장에서는 수긍이 가는 대목이지만, 뒷부문 즉 위엔화 절상으로 중국 경기가 후퇴되어 이것이 세계경제괴멸을 가져온다는 논리는 깡패를 연상하게 한다.
문제의 심각성 때문에 IMF는 2010년 연차총회에서 환율조정을 위한 회의(IMFC)를 하였으나 조정에 실패하였다고 언론은 전하고 있다. 일반이 생각하는 1985년의 플라자 합의 같은 것은 중국을 상대로 불가능함을 먼저 생각하여야 한다. 최근 천안함 사태에서 보여준 중국의 막무가네식 태도, 북한의 후계구도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 센가꾸열도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에게 보여준 무서운 협박 그리고 더 나아가 중국의 동남연해에서의 영토주권확보를 위한 주장 등 중국은 무서운 모습을 여과없이 연출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다. 무섭다고 할 수밖에 표현할 수 없다. 국제적 예의나 관습 또는 세계를 책임지는 리더십발휘 같은 낱말은 이 앞에 생경스럽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중국이 환율조정에 호락호락하겠나? 그러니 IMF 본부에서 이루어진 회의에서도 안 된 것을 다음 달 서울에서 '결판'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나?
무엇보다 환율을 전쟁하듯 결판 내는 식으로 조정할 수는 없다고 본다. 서로 차분하게 이해득실을 따지면서 서로의 이익이 최대화되던가, 아니면 피해가 최소화되는 수준을 찾아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 성질의 일을 지금의 중국과 해낼 수 있을지는 나는 의문을 가진다. 지금의 중국정부는 오로지 자국의 당장의 이익만 생각하고 국제적 룰은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북한의 김정일과 별 차이가 없다고 나는 본다.
따라서 다음달 서울의 G20회의에서는 환율문제가 의제가 되지 않을 수 없겠지만 주최국인 한국정부의 입장에서는 환율문제가 너무 크로즈업 되지 않도록 가능하면 돌아가는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할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이러다가 잘못 창조적리더십발휘라는 점에서 점수를 잃게 될 위험성이 있지만 지금 중국을 상대로 한국정부가 조정자로서의 리더십발휘 노력은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염려된다. 중국이 세계를 딛고 일어서기보다는 화평굴기(和平堀起)하기 바란다.
우선 그만큼 작금의 환율관련 논의가 국제사회에서 전쟁으로 표현될 만큼 치열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리먼사태 이후 경기침체의 해법을 거의 모든 나라가 수출에서 찾고 있다. 따라서 당연히 단기적인 경쟁력확보의 방법으로 환율을 생각하게 되고, 환율을 자국에 유리하게 이끌기 위하여 무리한 방법을 염치불구하고 써대는 모습을 연출하게 된다. 그 맨 선두에 중국의 위안화가 있다. 그러니 중국보고 환율을 절상하라고 미국을 위시한 서방국들이 앞장서 주장하고 있고, 이의 영향권 하에 있는 IMF를 비롯한 국제금융기구들도 함께 편들고 나서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발끈하는 것은 물론 중국정부다. 마치 국제환경문제회의에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과거 수백년동안 경제개발을 하느라고 그리고 지금 그들의 부를 유지하느라고 공해물질을 마구 배출시켜 놓아 지구를 병들게 하여 놓고, 이제와서 이를 막기위하여 앞으로 추가로 환경위해물질배출을 억제하자고 나서고 있는 것은 개발도상국가들에 대한 차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과거 환율의 이득을 실컷 누려온 미국등 선진국들이 무작정 위안화에만 초점을 맞추어 비난하는 것은 그것도 최근 수개월 동안의 환율변화수치만 가지고 비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중국의 입장일 것이다. 이에 맞서 중국은 마치 위안화절상을 받아드리면 중국의 기업들이 도산하고 이에 따라 엄청난 수요감퇴로 세계경기가 결단난다고 협박성 발언을 하고 있다. 앞의 논리는 같은 개도국 입장이었던 한국의 입장에서는 수긍이 가는 대목이지만, 뒷부문 즉 위엔화 절상으로 중국 경기가 후퇴되어 이것이 세계경제괴멸을 가져온다는 논리는 깡패를 연상하게 한다.
문제의 심각성 때문에 IMF는 2010년 연차총회에서 환율조정을 위한 회의(IMFC)를 하였으나 조정에 실패하였다고 언론은 전하고 있다. 일반이 생각하는 1985년의 플라자 합의 같은 것은 중국을 상대로 불가능함을 먼저 생각하여야 한다. 최근 천안함 사태에서 보여준 중국의 막무가네식 태도, 북한의 후계구도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 센가꾸열도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에게 보여준 무서운 협박 그리고 더 나아가 중국의 동남연해에서의 영토주권확보를 위한 주장 등 중국은 무서운 모습을 여과없이 연출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다. 무섭다고 할 수밖에 표현할 수 없다. 국제적 예의나 관습 또는 세계를 책임지는 리더십발휘 같은 낱말은 이 앞에 생경스럽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중국이 환율조정에 호락호락하겠나? 그러니 IMF 본부에서 이루어진 회의에서도 안 된 것을 다음 달 서울에서 '결판'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나?
무엇보다 환율을 전쟁하듯 결판 내는 식으로 조정할 수는 없다고 본다. 서로 차분하게 이해득실을 따지면서 서로의 이익이 최대화되던가, 아니면 피해가 최소화되는 수준을 찾아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 성질의 일을 지금의 중국과 해낼 수 있을지는 나는 의문을 가진다. 지금의 중국정부는 오로지 자국의 당장의 이익만 생각하고 국제적 룰은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북한의 김정일과 별 차이가 없다고 나는 본다.
따라서 다음달 서울의 G20회의에서는 환율문제가 의제가 되지 않을 수 없겠지만 주최국인 한국정부의 입장에서는 환율문제가 너무 크로즈업 되지 않도록 가능하면 돌아가는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할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이러다가 잘못 창조적리더십발휘라는 점에서 점수를 잃게 될 위험성이 있지만 지금 중국을 상대로 한국정부가 조정자로서의 리더십발휘 노력은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염려된다. 중국이 세계를 딛고 일어서기보다는 화평굴기(和平堀起)하기 바란다.
2010년 10월 5일 화요일
환율전쟁 접근법
환율이 미국 EU 일본 그리고 신흥시장을 막론하고 큰 변수로 등장하고 있고, 각국이 서로 이해가 엇갈리면서 이에 대한 대응심리의 심각도가 점차 높아지면서 ‘환율전쟁’이라는 칭호를 서슴없이 붙여대는 것이 요즘 언론의 자세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달러나 영국의 파운드화로 대표되었던 기축통화가 영국의 경제력쇠퇴와 함께 파운드화의 위세가 사라지면서 그 자리에 중국의 위엔 화가 체면 불구하고 등극하고 싶어 안달하고 있다. 국가의 경제발전의 정도가 반영되기보다는 덩치 크기를 앞세워 선진국이라는 이름의 요람을 마구 뭉개버리고자 하는 모양새로 요즘 중국의 위엔 화는 세상 무서운 줄을 모르고 대들고 있다. 그러니 환율전쟁이다.
중국은 최근 미국의 달러화 채권을 마구 사드려 세계에서 가장 많이 대미채권을 보유하더니, 이제는 일본 그리고 한국시장을 넘보고 있다. 금년 들어 중국은 일본과 한국의 엔화와 원화채권을 사들이고 있다. 시장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일본이나 한국경제의 입장에서는 환율이 큰 변수로 등장하게 됨은 말할 필요가 없다. 중국의 속내가 ‘안전자산의 확보’라고 선의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종국적으로는 중국의 이해에 따라 일본이나 한국의 환율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은 자명하다고 하겠다.
한국수출의 시장 의존도가 중국이 미국의 두 배가 넘는 현 상황 하에서 원화환율의 변화는 중국에서의 경제활동에 단기적으로 큰 영향을 받게 됨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 10년 전 한국경제의 외환위기 시 그 규모면에서 오늘 날 중국의 덩치와는 비교도 안 되는 헷지편드에 의하여 한국경제는 농락당하고 급기야 IMF에 갈 수밖에 없었던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 후에도 한국경제는 국제금융시장의 장난꾼 헷지펀드나 이를 부추기는 악의에 찬 해외언론 들에 의하여 큰 영향을 받았고, 지금도 거기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 수 없다. 더구나 최근 세계적 경기침체를 극복하는 방식이 선진국 신흥국을 막론하고 무역을 확대하여 경기를 부양하고자 한다. 각국은 수출을 증대하기 위하여 우선 환율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자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작금의 상황을 환율전쟁이라고 할 만 할 것이다.
일본을 위시한 몇몇 나라들의 외환당국이 최근 시장개입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옛날 방식으로 자국통화가 바라는 만큼 절하되지는 못할 것이다. 물론 한계적인 효과야 단기적으로 가져올 수는 있겠지만, 하루에 국제시장에서 거래되는 외환규모가 모르기는 해도 요즘 3조 달러는 넘을 텐데 하루 이틀 몇 억불 또는 몇 천만불 개입한다고 그 효과가 얼마나 갈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고 지금 1986년 소위 ‘플라자합의’와 같은 국제 빅딜을 할 수 있을까? 당시 일본은 지금의 중국처럼 세계경제에 직접영향을 미칠만한 힘도 약했고 중국처럼 막무가네식의 내주장만 하는 나라도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중국은 다르다. 중국의 위엔 화를 일시에 넉넉하게 절상하자는 합의를 국제사회가 이끌어내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해답은 자명하다. 무역은 자유무역으로 가고 자국의 경기진작은 재정(통화)을 통하여 하는 수밖에 없다. 한국정부가 11월 G20정상회의에서 이런 합의를 이끌어내려고 하는 것은 옳은 방향이라 할 것이다. 무역자유화를 더욱 진전시키는 세계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낸다면 한국정부는 세계경제를 위하여 큰 기여를 하였다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환율전쟁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더더군다나 중국의 위엔 화를 합리적으로 절상하는 해답을 당장 얻을 수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당분간 중국통화의 위세는 더 커질 것이고, 이와 관련한 상대국가의 경제적 취약성 노출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이런 환경을 전제로 한국경제가 환율전쟁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는 G20정상회의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고, 이의 대응 방식이 초미의 화급한 과제가 된다고 평가한다. 환율전쟁에 한국정부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환율전쟁의 접근방법은 G20정상회의로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경제운영에서 근본적이고 원론적 접근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판단한다.
첫째 한국경제의 수출의존을 주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 GDP의 40%가 넘는 수출의존을 얼마로 하는 것이 최선인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그러나 OECD 국가 중 그리고 어느 정도 산다는 나라에서 한국 같은 높은 수출의존 사례는 찾아보기 힘이 든다. 다른 나라가 어째서가 아니라 사실 수출 그것도 몇 개 되지 않는 소수기업의 수출에 목을 매고 있는 한국경제의 취약성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해답은 우선 경제활동 중 수출의 비중을 점차 주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 다른 말로 내수의 비중을 점차 늘려나가야 한다. 그것이 열린사회에서 옳은 일인가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이것은 개방 차원이 아니고 산업구조, 경제운영전략과 관련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내수 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설 토목 등의 분야가 아닌 기술 컨텐츠 융합 등의 전략이 보다 시급하고 실효 있게 추진되어야 한다.
둘째 국제경쟁력을 너무 가격중심으로 접근하면 단기적인 환율싸움만 촉발할 수 있다. 가격경쟁력보다 우선하는 비가격경쟁력 즉 기술, 원가, 경영의 혁신 등을 통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노력을 전략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물론 이와 관련하여서는 기존기업이 유리하고 중소기업 보다는 대기업이 유리할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정부가 하는 방식대로 정부가 대기업보고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시장간섭이고 가장 치졸한 방식이다. 그 해답을 시장에서 찾으라는 어느 원로교수의 말대로 정부는 시장간여를 하지 말고 오히려 시장에서 약한 입장에 있는 기업의 활동을 지원하는 파격적인 유인정책(incentive system)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시장의 왜곡은 공정거래정책으로 다스려야 한다. 이 길이 몇몇 수출대기업에 5천만의 목을 대고 있는 이 시장의 왜곡을 없애는 길이 될 것이다.
셋째 국가경영에서 안정시스템이 정착되도록 해야 한다. 비단 물가의 안정뿐만 아니라 사회전체가 안정된 질서를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무엇보다 사회가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에 대한 가치기준을 명화하게 해야 한다. 무엇이든 떼만 쓰면 되고, 법이고 질서이고 모두 이들의 떼 앞에 손을 드는 한국사회의 모순성을 제거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의 안정이고, 생활의 안전 확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공정과 혼동해선 안 된다. 공정과 정의 등의 가치는 아무래도 주관이 개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정부가 내 걸고 있는 공정의 실현은 철학적 관념적 이상일 수는 있으나 현실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질서 또는 가치기준으로 작동되기는 힘들다고 판단한다. 무엇이던 공정이라는 잣대를 들이밀 때 이것이 객관적으로 옳고 그름으로 결론 내기는 힘들 것이다. 그런 정의나 공정은 이념적 가치기준으로 작동이 되고 현실적으로 사회전체의 안정을 확보하는 기준은 법질서의 안정, 물가의 안정 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국가경영의 안정시스템이라고 평가한다.
넷째 경제운영의 우선순위를 안정에 두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물가의 안정뿐만 아니라 재정구조의 안정, 과다한 통화 공급의 지양, 시장시세를 반영한 금리운용, 시장개방의 확대 그리고 공정거래제도의 확충 등 경제운영에서 안정의 우선순위가 언제나 지켜지도록 하여야 한다.
다섯째 정치적 인기주의(populism)를 지양해야 한다. 현 정부의 ‘공정사회, 구현이나 친 서민으로 표방되는 어려운 계층을 위한 정책 등은 듣기만 달콤할 뿐 언제나 부족하고, 그래서 언제나 현실에 대한 불만만을 만들어 내는 인기주의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내년예산을 정부가 제안하면서 ’어려운 계층에게 따뜻함을 느끼게‘ 만들었다고 정부는 생색을 내고 있다. 국민들이 과연 내년 예산을 보면서 따뜻함을 느낄까?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기대감 만 높여 불만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게 할 것이다. 이명박정부의 후반은 이런 인기주의적 미사여구 (美辭麗句)사용을 자제하고 오히려 원리원칙이 강조되고 구현되는 사회를 강조해야 할 것이다.
이상의 원론적이고 원칙적인 경제와 국가운영이 추구 될 때 그 결과로 환율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는 점을 다시 강조하고자 한다. 외환보유액을 확충하고 필요하면 정부의 직접적인 환율개입을 하는 것으로 환율전쟁에서 이길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런 충동을 억누를 수 있어야 환율전쟁에서 살아남게 된다. 한국경제와 같은 그리 크지 않으면서, 지정학적인 취약점을 가지고 있는 경제가 환율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는 길은 원론적인 경제운영 뿐이라는 것을 정부는 되새겨야 할 것이다.
중국은 최근 미국의 달러화 채권을 마구 사드려 세계에서 가장 많이 대미채권을 보유하더니, 이제는 일본 그리고 한국시장을 넘보고 있다. 금년 들어 중국은 일본과 한국의 엔화와 원화채권을 사들이고 있다. 시장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일본이나 한국경제의 입장에서는 환율이 큰 변수로 등장하게 됨은 말할 필요가 없다. 중국의 속내가 ‘안전자산의 확보’라고 선의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종국적으로는 중국의 이해에 따라 일본이나 한국의 환율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은 자명하다고 하겠다.
한국수출의 시장 의존도가 중국이 미국의 두 배가 넘는 현 상황 하에서 원화환율의 변화는 중국에서의 경제활동에 단기적으로 큰 영향을 받게 됨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 10년 전 한국경제의 외환위기 시 그 규모면에서 오늘 날 중국의 덩치와는 비교도 안 되는 헷지편드에 의하여 한국경제는 농락당하고 급기야 IMF에 갈 수밖에 없었던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 후에도 한국경제는 국제금융시장의 장난꾼 헷지펀드나 이를 부추기는 악의에 찬 해외언론 들에 의하여 큰 영향을 받았고, 지금도 거기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 수 없다. 더구나 최근 세계적 경기침체를 극복하는 방식이 선진국 신흥국을 막론하고 무역을 확대하여 경기를 부양하고자 한다. 각국은 수출을 증대하기 위하여 우선 환율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자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작금의 상황을 환율전쟁이라고 할 만 할 것이다.
일본을 위시한 몇몇 나라들의 외환당국이 최근 시장개입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옛날 방식으로 자국통화가 바라는 만큼 절하되지는 못할 것이다. 물론 한계적인 효과야 단기적으로 가져올 수는 있겠지만, 하루에 국제시장에서 거래되는 외환규모가 모르기는 해도 요즘 3조 달러는 넘을 텐데 하루 이틀 몇 억불 또는 몇 천만불 개입한다고 그 효과가 얼마나 갈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고 지금 1986년 소위 ‘플라자합의’와 같은 국제 빅딜을 할 수 있을까? 당시 일본은 지금의 중국처럼 세계경제에 직접영향을 미칠만한 힘도 약했고 중국처럼 막무가네식의 내주장만 하는 나라도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중국은 다르다. 중국의 위엔 화를 일시에 넉넉하게 절상하자는 합의를 국제사회가 이끌어내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해답은 자명하다. 무역은 자유무역으로 가고 자국의 경기진작은 재정(통화)을 통하여 하는 수밖에 없다. 한국정부가 11월 G20정상회의에서 이런 합의를 이끌어내려고 하는 것은 옳은 방향이라 할 것이다. 무역자유화를 더욱 진전시키는 세계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낸다면 한국정부는 세계경제를 위하여 큰 기여를 하였다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환율전쟁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더더군다나 중국의 위엔 화를 합리적으로 절상하는 해답을 당장 얻을 수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당분간 중국통화의 위세는 더 커질 것이고, 이와 관련한 상대국가의 경제적 취약성 노출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이런 환경을 전제로 한국경제가 환율전쟁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는 G20정상회의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고, 이의 대응 방식이 초미의 화급한 과제가 된다고 평가한다. 환율전쟁에 한국정부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환율전쟁의 접근방법은 G20정상회의로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경제운영에서 근본적이고 원론적 접근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판단한다.
첫째 한국경제의 수출의존을 주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 GDP의 40%가 넘는 수출의존을 얼마로 하는 것이 최선인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그러나 OECD 국가 중 그리고 어느 정도 산다는 나라에서 한국 같은 높은 수출의존 사례는 찾아보기 힘이 든다. 다른 나라가 어째서가 아니라 사실 수출 그것도 몇 개 되지 않는 소수기업의 수출에 목을 매고 있는 한국경제의 취약성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해답은 우선 경제활동 중 수출의 비중을 점차 주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 다른 말로 내수의 비중을 점차 늘려나가야 한다. 그것이 열린사회에서 옳은 일인가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이것은 개방 차원이 아니고 산업구조, 경제운영전략과 관련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내수 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설 토목 등의 분야가 아닌 기술 컨텐츠 융합 등의 전략이 보다 시급하고 실효 있게 추진되어야 한다.
둘째 국제경쟁력을 너무 가격중심으로 접근하면 단기적인 환율싸움만 촉발할 수 있다. 가격경쟁력보다 우선하는 비가격경쟁력 즉 기술, 원가, 경영의 혁신 등을 통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노력을 전략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물론 이와 관련하여서는 기존기업이 유리하고 중소기업 보다는 대기업이 유리할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정부가 하는 방식대로 정부가 대기업보고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시장간섭이고 가장 치졸한 방식이다. 그 해답을 시장에서 찾으라는 어느 원로교수의 말대로 정부는 시장간여를 하지 말고 오히려 시장에서 약한 입장에 있는 기업의 활동을 지원하는 파격적인 유인정책(incentive system)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시장의 왜곡은 공정거래정책으로 다스려야 한다. 이 길이 몇몇 수출대기업에 5천만의 목을 대고 있는 이 시장의 왜곡을 없애는 길이 될 것이다.
셋째 국가경영에서 안정시스템이 정착되도록 해야 한다. 비단 물가의 안정뿐만 아니라 사회전체가 안정된 질서를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무엇보다 사회가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에 대한 가치기준을 명화하게 해야 한다. 무엇이든 떼만 쓰면 되고, 법이고 질서이고 모두 이들의 떼 앞에 손을 드는 한국사회의 모순성을 제거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의 안정이고, 생활의 안전 확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공정과 혼동해선 안 된다. 공정과 정의 등의 가치는 아무래도 주관이 개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정부가 내 걸고 있는 공정의 실현은 철학적 관념적 이상일 수는 있으나 현실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질서 또는 가치기준으로 작동되기는 힘들다고 판단한다. 무엇이던 공정이라는 잣대를 들이밀 때 이것이 객관적으로 옳고 그름으로 결론 내기는 힘들 것이다. 그런 정의나 공정은 이념적 가치기준으로 작동이 되고 현실적으로 사회전체의 안정을 확보하는 기준은 법질서의 안정, 물가의 안정 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국가경영의 안정시스템이라고 평가한다.
넷째 경제운영의 우선순위를 안정에 두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물가의 안정뿐만 아니라 재정구조의 안정, 과다한 통화 공급의 지양, 시장시세를 반영한 금리운용, 시장개방의 확대 그리고 공정거래제도의 확충 등 경제운영에서 안정의 우선순위가 언제나 지켜지도록 하여야 한다.
다섯째 정치적 인기주의(populism)를 지양해야 한다. 현 정부의 ‘공정사회, 구현이나 친 서민으로 표방되는 어려운 계층을 위한 정책 등은 듣기만 달콤할 뿐 언제나 부족하고, 그래서 언제나 현실에 대한 불만만을 만들어 내는 인기주의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내년예산을 정부가 제안하면서 ’어려운 계층에게 따뜻함을 느끼게‘ 만들었다고 정부는 생색을 내고 있다. 국민들이 과연 내년 예산을 보면서 따뜻함을 느낄까?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기대감 만 높여 불만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게 할 것이다. 이명박정부의 후반은 이런 인기주의적 미사여구 (美辭麗句)사용을 자제하고 오히려 원리원칙이 강조되고 구현되는 사회를 강조해야 할 것이다.
이상의 원론적이고 원칙적인 경제와 국가운영이 추구 될 때 그 결과로 환율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는 점을 다시 강조하고자 한다. 외환보유액을 확충하고 필요하면 정부의 직접적인 환율개입을 하는 것으로 환율전쟁에서 이길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런 충동을 억누를 수 있어야 환율전쟁에서 살아남게 된다. 한국경제와 같은 그리 크지 않으면서, 지정학적인 취약점을 가지고 있는 경제가 환율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는 길은 원론적인 경제운영 뿐이라는 것을 정부는 되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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