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7일 목요일

그린벨트를 규제개혁 차원으로 다루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2015년 5월 6일 박근혜대통령은 규제개혁회의를 주재하였다. 그 회의에서 그린벨트에 대한 규제를 대폭 푸는 정책을 채택하였다. 경기의 부양에 족쇄가 되는 갖가지 정부규제 중에 그린벨트와 관련된 규제를 풀어 주겠다는 정책의 결정은 여러가지 복합된 의미를 가지고 다가온다.

물론 그린벨트에 묶여 어려움을 받던 이해당사자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1971년 그린 벨트가 생긴지 44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정부에서 특정사안에 대한 부분적인 일부 규제 해제는 있었지만 지금처럼 정책으로 대폭 해제한 경우는 내가 알기로는 없었다. 더구나 이번에는 규제의 해제 권한을 지방자치단체로 넘긴다고 한다.  선거직으로 주민의 환심을 사기위한 선심정책이 난무하여 국가적 차원에서 문제가 많은 지차체의 장에게 이 권한을 넘기는  것은 심한 말로 뭐에게 생선가게 맏기는 꼴이다.

규제개혁이라함은 말 그대로 잘못된 규제를 올바르게 고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린벨트정책이 잘못된 규제이고 정책인가?  정책선택에서 국토를 보전하고 올바른 개발을 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정책이 잘못된 정책이 될 수는 없다. 올바르게 고치는 것이 이해 당사자나 거의 다름이 없는 자치단체장에게 규제해제권한을 부여하는 것인가? 그린벨트는 국가차원의 일이지 지방자치단체의 일은 아니다. 경솔한 정책조정이라는 평가를 받지않을까 싶다.

정책은 언제나 득과 실이 있게 마련이다.  물론 득(得)이 클 경우 정책을 선택하게 마련이지만 그러나 언제나 부수되는 실(失)의 문제를 사려깊게 따져보아야 한다. 무엇보다 장기적 국가번영에 이런 정책선택이 올바른 것인지를 전문적으로 따져보아야 한다.

대통령이 규제개혁회의를 주재하는 것이 효율적이겠지만, 주무부처의 입장에서는 대통령 앞이라 하고싶은 말도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을 수 있다. 이 회의의 목표가 규제를 푸는 것인데 여기에 새로운 규제나 기존 규제의 유지보강을 이야기하는 것은 대통령 앞에서 점수 잃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니 손톱 밑 가시 같은 자그마한 규제를 주로 대상으로 하게 되지, 국가운영의 원천적인 부분을 손대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해당사자의 입장에서야 그린벨트 뿐이겠나? 건축규제, 생명과 관련된 의료규제, 더 나아가 국가보위와 관련된 각종규제도 더욱 심각한 것이 될 것이다. 국가운영에서 필요한규제와 불필요한 규제의 판단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 매우중요하다. 규제 해제를 선심성으로 하다보면 결국 나라는 퇴락의 길로 가게 된다.

그린벨트정책이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정책인지 판단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1970년대 그리고 80년대에 정부로서는 그린벨트를 지키는 것이 헌법 지키는 것처럼 절박하였다. 대통령의 특명사항으로 정부는 이 정책을 유지하고자 노력하였다. 본인이 1985년 당시 건설부차관의 재직시 제일 어려운 과제중의 하나가 이 그린벨트 조정 문제였다. 지금이야 이미 너무 불합리한 노터치 부문은 해결되어 있지만 당시는 기존건물의 개보수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불가피할 겨우 국무회의에  상정하여 그 합리성을 따지게 되어 있었다. 이해 당사자 입장에서는 저 변두리 지방자치단체를 거쳐 국무회의까지 올라오는데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겠나? 당시 주무부처인 건설부 장. 차관의 입장에서도 이 일이 제일 골치아픈 일중의 하나였다. 오죽하면 당시 장관께서는 국무회의가 있는 날 다른 일정을 마련하고 차관이 대신 국무회의에 참석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안건 설명에 들어가면 관심은 자연 국무총리 만 가지고 있다. 그 집이 왜 이렇게 잘못 설계가 되었나, 건축재료가 무엇이 문제가 되었나 등등 일일이 캐 묻는다. 물론 주무부처  입장에서 미리 많은 공부를 하고 국무회의에 참석하지만 사실 이런 시시콜콜한 사안을 모두 알 수는 없다. 국무회의시 많은 시간을 이 일로 소비하면 다른 장관들께는 공연히 미안한 것이 건설부의 처지였다. 그러니 그린벨트는 지켜진 결과가 되었다.

당시 나도 그린벨트에 관한 다른 나라의 예를 많이 공부하였다. 나라마다 국토와 생활여건이 각기 다르므로 이를 비교하기 어렵지만 영국이던가 하는 나라는 그린벨트를 모두 골프장으로 만들어 유지시킨 사례도 있었다. 골프장이 망하지 않고 있는 한 그린벨트는 유지될 수 있다는 정책의지라고 생각되지만 우리나라 같으면 이것도 특혜의 범주로 취급될 것이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라 판단되었다.

아무튼 이렇게 어렵고 골치아픈 정책을 규제개혁 차원에서 포기하다싶이 해제한 현정부의 과단성(?)에 우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결정이 훗날 국토의 이용과 관리 차원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결과를 가져오면 이는 되돌릴 수가 없게된다.  규제개혁의 단추가 엉뚱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대통령부터 이런 인기영합적인 규제개혁회의 주재 같은 일에서 손을 떼야 한다. 그리고 주무부처 장관에게 철저한 이행을 명하여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은 국민행복을 어데서 찾게해야 하는 것인지, 그런 국정운영은 어떻게 한는 것인지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리더십 발휘를 해야 할 것이다.
















 

2015년 4월 30일 목요일

박근혜정부의 외교정책을 질책한다




2015년 4월 30일 한국의 언론은 지난 밤 발표된 국회의원 보궐선거 결과를 놓고 흥분하고 있다. 여당인 새누리당의 압승, 야당인 통합민주당의 완패라고 떠든다. 이어 여권의 누가 다음 대권후보로 기반을 다졌다느니 야당의 대표는 이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느니 하는 분석들을 내 놓고 있다. 성완종 회장 사건이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느니, 역시 박근혜대통령은 선거에 귀재라느니, 호남이 친노에 등을 돌렸다느니 제나름대로 선거결과를 분석해 댄다.

같은 날 한국시간 밤 같은 시간에 일본의 아베총리는 미의회에서 연설을 하였다. 패전국 일본이 그의 대적국가인 미국에서 2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보통국가로서 미국민에게 보내는 공식멧세지인 셈이다. 우리는 이 연설에서 우리의 위안부 문제에대한 일본정부의 진솔한 사과가 있기를 고대하고 앉아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예상대로 아베는 일본의 미국 진주만공격을 사과하고,  2차대전 당시 사망한 미군에대한 조의만 표하였다.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국가에  대한 침략이나 가혹행위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오히려 워싱턴에 오는 길목에서, 시카고나 하바드 대학 강연에서도 아베의 대응은 일관성을 유지한 반면, 우리는 위안부 사과에대한 내용이 있는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아베행보를 마치 중계방송하고 다니듯 하였다. 결과는 역시 예상대로 실망 뿐이었다.

미국도 아베정부에 대하여 아시아 국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간헐적으로 미국정부 관료들의 희망사항을 이야기하는 소리가 나올 뿐이다.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대한 동맹강화라는 원론적인 이야기이거나, 한걸음 더 나아가  오히려 과거에 매이기보다는 미래에 대한 협력을 더 강조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한국사람으로서는 미국의 이런 제3자적 입장에 섭섭함을 느끼게 한다. 역시 '미국을 믿지말라'던 옛날 1950년대 전쟁 중 항간의 유언비어를 떠올리게까지 한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미국은 1990년대 초 구 소련의 패망이후 냉전시대의 졸업과 함께 세계의 지도국으로 홀로 남게 되었다. 세계제패에 단일지도국이 된 미국은 일본 독일등과 함께 경제분야에서 경쟁체제를 유지하게 되었다.  2차대전 이후 군비와 경제력의 경쟁에서 단일 톱이었던 미국은 과학기술과 근면을 바탕으로 한 일본이나 독일의 경제 추격에 어려운 경쟁을 하게 되었고, 결과 부의 축적에서 여러국가와 경쟁을 하지않을 수 없게 되었다. 다극(Multi polar)시대에 재정은 핍박해지고 세계경찰국가로서 지불해야 하는 재정수요은 확대되고 있다. 다른나라와 마찬가지로 복지, 의료, 교육등의 재정수요은 커지고만 있다. 거기다가 2008년 리만브라더스사의 부도로 이어진 월스트리트의 파탄은 세계경제를 위축시키고 있다.

 오히려 다행이 미국은 지난 3년간의 양적완화정책으로 경제가 다시 소생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미국을 제외한 세계경제는 아직도 침잠의 늪에서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실제 경제가 아주 나쁘지만 큰 덩치로 세계문제를 밀어부치는 국가운영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 하에서 미국은 중국의 국제기준에 잘 맞지 않는 통큰(?)  경쟁에 맞서야 하고,  IS 격퇴에 나서야 한다. 천방지축 갈팡대는 김정은의 핵무기 장난에 쐐기를 박아야 한다. 이러한 일들 앞에 미국은 아베의 군비지원에서 그 해결책을 찾으려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중국견제를 위한 협력카드를 일본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일본의 아베의 입장에서 보자. 패전국가의 굴레에서 벗어나 아시아의 지도국으로 부상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일본의 아시아 침략행위에 대한 비판을 잠재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패전국으로서 군비보유가 제한된 것을 푸는 방법은 미국과의 군비협력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 아베는 미국에 군비협력을 자원하게 되고, 이에 대한 대가로  미국은 일본의 방위할동 제한을 풀어주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과거 역사 만행을 다시 이야기하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길에 방해가 될 것이라고 평가할 것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무시만 할 수 없는데 마침 전 정부에서 발표한 사과가 있으니 그것을 그냥 계승한다는 소극적 접수를 한 것이 아베의 속내일 것이다. 그 길이 일본인들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길이되고, 곁들여 경제살리기위한 돈 풀기에 미국이나 국제기관의 비판을 잠재울 수 있는 길이 된다고 아베는 판단했을 것이다.

한국의 입장을 보자. 만일 지금과 같은 미일 밀월이 지속되면 될 수록 한국은 입지가 좁아질 것이 뻔하다. 위안부 사과의 문제는 우리의 감성적 테마이지만 그것이 지금 우리가 걱정하는 한국의 입지와 관련한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또 아베의 현 정책이 지속되는 한 쉽게 풀릴 과제도 아니다. 그런데 박근혜정부는 여기에 온통 매달리는 분위기이다. 그렇다고 해결의 실마리도 찾지 못한채  말이다.

박근혜정부의 가장 한심한 대응의 하나는 외무장관의 소위 '전략적 침묵'인지 하는 것이다. 이정부가 출범한지 3년이 되어가는데 우리 외무부가 한 일이 무엇인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시진핑이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방문하였다고 으스댔지만 그래서 그게 무어냐 하는 대목이다. 오히려 시진핑이 한국에 와 우리의 안보대목인 '싸드(THAAD)'에 올무만 채인 꼴이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중국 눈치 본다고 미국이 추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가입에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고 가다 일본에게 그 이니시어티브를 빼았기고 말았다. 미국과 일본은 아베의 미국방문을 계기로 TPP가입문제를 해결하였다. 다른 한편 중국이 추진하는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AIIB)가입문제는 역으로 미국의 눈치를 본다고 어물거리다가 영국 독일등이 가입하자 뒤늦게 가입하여 선제적 이익을 다 잃고 말았다. 오히려 중국은 일본 보고 AIIB에 가입하면 부총재 자리를 일본에 할애하겠다고 한단다. 우리는 두마리 토끼를 다 잃게 되었다. 이게 전략적 침묵인가?

박근혜정부가 보궐선거에서 몇석을 얻은 것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 의미는 아니다. 이번 선거결과도 한마디로 말한다면 정치권에 대한 불신에서 나온 것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야당들이 그동안 취해온 소아적 행동 즉 국가안위나 번영은 제쳐놓고, 내몫 챙기는 일에 몰두하는 모습에 국민은 염증을 느끼고 있다. 이제 중요한 권한이 대부분 국회의 결정에 넘어가 있는데 경제가 다 망가지고 있는데 국회에 계류중인 법안은 낮잠을 자고 있다. 물론 야당만의 책임이 아니지만 여야 국회 모두 전략이 없이 눈앞의 이익에 매달린다.  국민은 염증을 느끼고 있다. 세금이 아깝고 시정잡배와 무엇이 다른가? 그러니 표가 갈데가 없으니 기존 질서가 승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금 세계지도상에서 한국의 위치는 자꾸 작아만지고(smallize)있다. 중요성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말이다. 세계연구기관들의 일반적 전망은 2030년대 중국과 인도를 합친 경제력은 미국과 EU를 합친 경제력보다 더 커질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같은 아시아 개발도상국가들이 괄목할 성장을 하는 것을 앞서 간 우리가 축하할 일이지만 그게 우리에게 유리하게만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 많은 경쟁을 해야하고 더 많은 일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일본의 절반도 안 되는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한국경제는 물론 그 규모가 커지고, 세계의 7.8위의 대국으로 성장하겠지만, 그 정치적 지정학적 크기는 오히려 줄러들 가능성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미국의 피보트 아시아의 한축이 미국과 일본 그리고 오스트랄리아로 형성되고 한국이 빠진다면 한국은 그 무게감이 훨씬 줄어들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한국경제가 일본을 앞질러 미국과 안보부담을 공유할 능력이 있는가?  없다. 빨리 만들어가야  한다. 이런 상황 앞에 정부는 말할 것 없고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 정치적 노동계 그리고 안일하게 갑질만 하고 있는 대기업 모두가 환골탈퇴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이다. 이런 다급하고 엄중한 상황 하에서 전략적 침묵이나 외치고 있는 한국의 외무장관는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2015년 3월 25일 수요일

리콴유 전 싱가포르수상과 아시아적 가치





리콴유(李光유) 싱가포르 전 수상이 2015년 3월 23일 91세를 일기로 서거하였다. 아시아는 큰 지도자를 잃었다. 내가 궂이 리콴유 전 수상의 서거를 글에 담고자하는 것은 사적인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리콴유 수상을 맞났던 것은 두번인가 되고, 그 분의 아들이고 현 수상 리센룽(李顯龍)을 한번 만난 일이 있다. 모두다 사적인 만남이 아니고 공적인 자리에서다.  리콴유수상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부총리를 만나는 자리에 배석하여 뵈웠고,  다른 한번은 내가 어느분을 수행하여  싱가포르를 방문하였을 때이다. 리센룽수상은 내가 경제기획원 차관으로 APEC 정상회를 처음 만들어  한국대표로 참석하였을 때 그분 역시 당시 상공장관으로 싱가포르 대표로 참석하였을 때이다. 그러니 사적인 인연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리콴유 전수상 서거에 간단한 소회를 쓰고자하는 것은 그분에 대한 나의 존경심도 있지만, 내 나름대로 그분이 제시한 '아시아적 가치'에 많은 공감이 있어서이다.

1998년 홍콩에서 세계은행(IBRD)과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가 개최되었었다. 당시 한국경제도 소위 IMF의 대기성차관을 받고 있는 때이기도 하지만, 한국 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말레지아, 타이랜드 등 아시아 각국이 나름대로 각기 금융위기에 처하여 애를 먹고 있을 때이다.  자연스럽게  소위 헷지펀드(파생금융상품의 운용을 통하여 이익을 얻고자하는 복합금융사품)가 총회의 논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 미국을 중심으로 헷지펀드 운용자들과 아시아의 대표격인 말레지아 당시 수상은 연차총회에서 서로 얼굴을 붉힐 정도로 격한 토론이 있었다.  당시 새로운 한국정부 김대중대통령도 이런 돈 장사꾼에 불과한 이런 헷지펀드 지도자들을 청와대에서 만나곤 하는 기사가 많이 나곤하였던 때이다.

그 어간에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수상이 아시아에는 아시아 나름대로의 가치 즉 '아시아적 가치'가 아시아의 발전을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홍콩에서 마티르 당시 말레지아 수상도 미국 중심의 헷지펀드 운영의 부당성을 강조하면서 말레지아는 이런 펀드의 자유로운 입출금을 규제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 무렵 미국의 학계에서는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여 신자유주의의 대표격인 헷지펀드를 두둔하고 나섰다. 그 앞 줄에 미국의 폴 크르만이 있었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아시아적 가치'라는 것은 애시당초  없었다. 다만 아시아 각국이 발전을 이룬 것은 그들 나름의 풍부한 인력. 천연자원을 활용한 것에불과하다고 아시아의 발전동력을 폄하하는 듯 이야기하고 나섰다.

세계은행 연차총회가 끝난지 한두달 후인가  말레지아 쿠아라룸푸르에서는 세계지도자 회의가 개최되었다. 한국의 김대중대통령도 참석하고 리콴유, 마티르 등 지도자들이 참석한 회의였다. 그 회의에서 자연 리콴유의 '아시아적 가치'가 논의 되었다. 물론 당시 아시아에서는 최소한 리콴유나 마티르가 말하는 아시아적 가치를 지지하고, 크루그만같은 미국학자들은 아시적가치를 폄하하고 있었다. 문제는 한국의 김대중대통령이 이회의에 참석하여 '아시아적 가치'의 부존재를 들고 나온데서 시작 되었다.

당시 나는 은퇴한 상태에서 싱가포르 금융기관 전문가 들과 싱가포르에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말레지아에서 지도자 회의가 있고, 한국의 김대중대통령이 참석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우리가 회의를 하고 있는 중간에 한 참석자가 격한 표정을 지으며 들어와 지금 김대중대통령이 한 발언 내용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는 매우 흥분하여 '도대체 너의 한국이 무어 그리 잘났다고, 미국의 앞잡이가 되어 자기들이 주장하는 아시아적 가치를 부정할 수 있느냐'고 힐난하고 나섰다.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내가 산업은행 총재를 하면서 아시아 개발은행총회를 만들어 싱가포르,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 네나라가 개발금융의 협력체제와 더 나아가 금융산업발전을 도모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내 앞에서 한국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미국에 비위 맞추기 위하여 아시아적 가치 조차 부정하려든다고 대단히 흥분하면서 비난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나도 그자리에서 믿기지 않는 한국 대통령의 가벼운 처신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리콴유 수상이 아니더라도 이미 일본의 런던대 교수를 역임한 모리시마 미치오같은 학자는 일본의 경제발전의 밑바탕에는 일본의 윤리적 유교사상이 있음을 그의 저서를 통하여 이미 강조한 바 있다. 아시아적 가치가 비단 유교적 윤리에 국한하는 것만은 아니지만, 한국의 유교적 가치인 효(孝), 일본의 윤리가치인 충(忠), 이런 모든 것들이 아시아적 가치의 밑바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기본 중의 기본인 아시아적 가치를 한국의 대통령이 부정하고 나오는 것은 싱가포르 사람들이 흥분하는 것처럼 미국인에 그저 아부하는 그런 행동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내 얼굴이 뜨끈뜨끈해짐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시아적 가치의 존재 여부는 논쟁거리가 될 수 없다. 아니 없는 것이라도 있다고 주장하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일진대, 우리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이런 경망한 짓을 하고 나오는 것을 보면서 서울에서 헷지 펀드 지도자들을 대통령이 왜 만나는지 의아해 하였던 일을 상기하였다. 그런 지도자 밑에 있었으니 우리나라에  정말 우리의 전통적 가치가 많이 회손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나보다는 우리가족, 우리사회, 우리나라를 우선하고, 나의 이익보다는 남(他)을 생각하고 돕는 이런 훌륭한 아시아적 가치를 우리는 이어받고, 더욱 계발하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리콴유 수상의 서거에 다시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