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콴유(李光유) 싱가포르 전 수상이 2015년 3월 23일 91세를 일기로 서거하였다. 아시아는 큰 지도자를 잃었다. 내가 궂이 리콴유 전 수상의 서거를 글에 담고자하는 것은 사적인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리콴유 수상을 맞났던 것은 두번인가 되고, 그 분의 아들이고 현 수상 리센룽(李顯龍)을 한번 만난 일이 있다. 모두다 사적인 만남이 아니고 공적인 자리에서다. 리콴유수상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부총리를 만나는 자리에 배석하여 뵈웠고, 다른 한번은 내가 어느분을 수행하여 싱가포르를 방문하였을 때이다. 리센룽수상은 내가 경제기획원 차관으로 APEC 정상회를 처음 만들어 한국대표로 참석하였을 때 그분 역시 당시 상공장관으로 싱가포르 대표로 참석하였을 때이다. 그러니 사적인 인연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리콴유 전수상 서거에 간단한 소회를 쓰고자하는 것은 그분에 대한 나의 존경심도 있지만, 내 나름대로 그분이 제시한 '아시아적 가치'에 많은 공감이 있어서이다.
1998년 홍콩에서 세계은행(IBRD)과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가 개최되었었다. 당시 한국경제도 소위 IMF의 대기성차관을 받고 있는 때이기도 하지만, 한국 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말레지아, 타이랜드 등 아시아 각국이 나름대로 각기 금융위기에 처하여 애를 먹고 있을 때이다. 자연스럽게 소위 헷지펀드(파생금융상품의 운용을 통하여 이익을 얻고자하는 복합금융사품)가 총회의 논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 미국을 중심으로 헷지펀드 운용자들과 아시아의 대표격인 말레지아 당시 수상은 연차총회에서 서로 얼굴을 붉힐 정도로 격한 토론이 있었다. 당시 새로운 한국정부 김대중대통령도 이런 돈 장사꾼에 불과한 이런 헷지펀드 지도자들을 청와대에서 만나곤 하는 기사가 많이 나곤하였던 때이다.
그 어간에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수상이 아시아에는 아시아 나름대로의 가치 즉 '아시아적 가치'가 아시아의 발전을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홍콩에서 마티르 당시 말레지아 수상도 미국 중심의 헷지펀드 운영의 부당성을 강조하면서 말레지아는 이런 펀드의 자유로운 입출금을 규제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 무렵 미국의 학계에서는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여 신자유주의의 대표격인 헷지펀드를 두둔하고 나섰다. 그 앞 줄에 미국의 폴 크르만이 있었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아시아적 가치'라는 것은 애시당초 없었다. 다만 아시아 각국이 발전을 이룬 것은 그들 나름의 풍부한 인력. 천연자원을 활용한 것에불과하다고 아시아의 발전동력을 폄하하는 듯 이야기하고 나섰다.
세계은행 연차총회가 끝난지 한두달 후인가 말레지아 쿠아라룸푸르에서는 세계지도자 회의가 개최되었다. 한국의 김대중대통령도 참석하고 리콴유, 마티르 등 지도자들이 참석한 회의였다. 그 회의에서 자연 리콴유의 '아시아적 가치'가 논의 되었다. 물론 당시 아시아에서는 최소한 리콴유나 마티르가 말하는 아시아적 가치를 지지하고, 크루그만같은 미국학자들은 아시적가치를 폄하하고 있었다. 문제는 한국의 김대중대통령이 이회의에 참석하여 '아시아적 가치'의 부존재를 들고 나온데서 시작 되었다.
당시 나는 은퇴한 상태에서 싱가포르 금융기관 전문가 들과 싱가포르에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말레지아에서 지도자 회의가 있고, 한국의 김대중대통령이 참석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우리가 회의를 하고 있는 중간에 한 참석자가 격한 표정을 지으며 들어와 지금 김대중대통령이 한 발언 내용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는 매우 흥분하여 '도대체 너의 한국이 무어 그리 잘났다고, 미국의 앞잡이가 되어 자기들이 주장하는 아시아적 가치를 부정할 수 있느냐'고 힐난하고 나섰다.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내가 산업은행 총재를 하면서 아시아 개발은행총회를 만들어 싱가포르,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 네나라가 개발금융의 협력체제와 더 나아가 금융산업발전을 도모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내 앞에서 한국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미국에 비위 맞추기 위하여 아시아적 가치 조차 부정하려든다고 대단히 흥분하면서 비난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나도 그자리에서 믿기지 않는 한국 대통령의 가벼운 처신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리콴유 수상이 아니더라도 이미 일본의 런던대 교수를 역임한 모리시마 미치오같은 학자는 일본의 경제발전의 밑바탕에는 일본의 윤리적 유교사상이 있음을 그의 저서를 통하여 이미 강조한 바 있다. 아시아적 가치가 비단 유교적 윤리에 국한하는 것만은 아니지만, 한국의 유교적 가치인 효(孝), 일본의 윤리가치인 충(忠), 이런 모든 것들이 아시아적 가치의 밑바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기본 중의 기본인 아시아적 가치를 한국의 대통령이 부정하고 나오는 것은 싱가포르 사람들이 흥분하는 것처럼 미국인에 그저 아부하는 그런 행동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내 얼굴이 뜨끈뜨끈해짐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시아적 가치의 존재 여부는 논쟁거리가 될 수 없다. 아니 없는 것이라도 있다고 주장하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일진대, 우리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이런 경망한 짓을 하고 나오는 것을 보면서 서울에서 헷지 펀드 지도자들을 대통령이 왜 만나는지 의아해 하였던 일을 상기하였다. 그런 지도자 밑에 있었으니 우리나라에 정말 우리의 전통적 가치가 많이 회손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나보다는 우리가족, 우리사회, 우리나라를 우선하고, 나의 이익보다는 남(他)을 생각하고 돕는 이런 훌륭한 아시아적 가치를 우리는 이어받고, 더욱 계발하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리콴유 수상의 서거에 다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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