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6일 토요일

보이지 않는 작은 정부, 사라진 시장경제 원리

박근혜당선인의 정권인수위원회의 임무도 이제 후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정부조직에대한 그림도 확정되고, 새 국무총리 인선도 발표되었다. 이제 남은 일은 새 정부 출범을 위한 정부조직을 국회에서 확정짓고, 국무총리를 비롯한 새정부의 각료들을 임명하면 된다.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고 새 정부가 출범하기까지 두달정도의 시간중 절반이 지나 이제  취임식 2월 25일이 한달 남았다.

다른 대통령 때보다 조용한 가운데 엄무가 착실하게 추진되는 인상을 주고 있는 박근혜당선인측은 국민의 신뢰라는 면에서 합격점을 얻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공약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천명하면서 공약의 현실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우선 이를 담당할 정부의 조직 그림을 발표하였다. 정부조직을 놓고 보면 전체 크기는 전과 비슷하다고 하지만, 내용은 많이 닯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책임총리제 실현을 위한 국무총리실을 확대개편하는 것은 당연할 것 같다.

다만 경제문제를 총괄한 경제부총리제을 부활하고, 중소기업 지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중소기업청의 확대개편안이 나왔다. 산업과 무역을 직접 연관시키기위한 통상산업부의 신설도 같은 산업지원 맥락에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 정부개편에서 가장 자랑하려는 대목은 미래창조과확부의 신설이다.  과학기술개발, ICT 업무을 능률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공룡부처가 생긴다고 언론은 떠들고 있다. 통상을 뺀 외무부, 과학을 뺀 문교부 그리고 중소기업을 뺀 산업부 모두 이래도 되나 하고 좀 풀죽어 있을 성 싶다.

또 청와대 기구도 안보조정실과 경호실이 장관급으로 격상되어 대통령을 직접 보필한다고 하고 차관급을 증원하여 국무총리비서실장 그리고 미래창조과학부에 IT전담 차관제를 신설한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공무원 수를 얼마로 늘리는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이제 1백만명 공무원시대가 되었다고 언론은 떠든다.

그러면서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것은 박근혜당선인이 그렇게 강조하던 경제민주화 지원과 복지 지원을 위한 조직이나 공무언 증원은 잘 보이지 않는다. 공정거래위원회와 보건복지부의 조직 확대나 증원이 곧 나올 것 아닌가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게 놓고 새 정부를 보면 그야말로 '큰 정부'의 이미지가 부각된다고 할 것이다. '작은 정부'는 어디 갔나? 그 많은 공약을 실천하기 위하여 물론 정부조직의 확대개편이 불가피한 면이 있지만, 또 그 많은 공약을 지원할 재원 마련을 위하여 한푼이라고 아껴야 하는 측면도 동시에 존재한다고 보아야 한다.

이제 일반화 되다시피한 지난정부에서 시행한 일부처 다수 차관제 같은 것은 그대로 가는 것인가? 안 그래도 공무원 증원의 파킨슨 법칙이 일반화되어 있는데 이제 작은 정부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미국, EU 그리고 일본 등 선진국들도 경기부양을 위한 양적완화에 보다 관심을 쏟고 있지, 정부 씀씀이를 절략하자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안 보인다. 이게 무슨 씬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핀잔맞기 알맞다.

그러나 그게 옳은 길인가? 나는 회의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엄격히 말하여 경기부양을 위한 또는 정치공약 집행을 위한 재정확대와 정부의 절략과 작은 정부를 구현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은 다른 차원의 개념이라고 판단한다.

더구나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하여, 중소기업지원을 위하여 정부는 시장개입을 당연시한다면 잘못된 접근이다. 시장을 들여다 보지 않고는 독과점기업의 불공정거래나 대기업의 횡포를 알아낼 수 없으니 시장을 드려다 보아야 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더구나 박근혜당선인이 선거때 강조하였던 지하경제 축소를 위하여 시장을 들어가 보아야 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접근로는 시장경제를 활성화시킬 수가 없다.

시장의 간섭(intervention)과 규제정책(regulation)은 개념상 구분되어야 한다. 만일 시장을 들어가 보아야 겠다고 정부가 생각한다면 그것은  정부의 시장간섭이 된다. 경제민주화나 지하경제의 축소 같은 일은 정부의 시장에 대한 규제정책을 통하여 이루어 져야 한다. 그러나 그 규제도 일반화된 간접규제로 가야지 특정사안에 대한 특정규제로 접근 되어서는 안 된다. 복지도 가능하면 일반 기준에 따라 시행되도록 하고 공정거래제도에 따라 시장의 독과점 횡포가 사라지도록 하여야 한다. 더군다나 지하경제의 축소는 금융실명거래제 등의 정책규제를 통하여 이루어지도록 해야 된다. 이것이 시장을 활성화 하는 길이다.

결론적으로 정부기구의 확대나 공무원의 증원은 새로운 행정수요에 맞추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경우에도 언제나 전제되는 것은 정부의 절제된 모습이 함께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이 때의 작은 정부의 개념은 일차적으로 행정경비의 일반적인 절제의 개념이지 기능축소의 개념은 아니라고 강조하고 싶다. 그렇다고 작은정부의 개념이 단순한 행정경비의 절략 만으로 개념규정을 할 수는 없다. 작은정부 안에는 더 나아가 시장의 활성화를 지원하는 개념이 포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시장경제가 추구하는 정책목표는 시장의 기능(market function)을 활성화하는 것임을 명심하여야 한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의 양적완화정책등을 엄격히 개념규정한다면 정책변수(통화)의 조정이지 큰정부와 직결되는 개념은 아닌 것이다. 같은 취지에서 박근혜대통령의 새 정부는 개념상 약간의 모순성이 존재하지만 행정경비의 절제와 효율 속에 시장기능이 보다 활성화되는 그런 정부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2013년 1월 14일 월요일

갈등의 치유, 통합의 논리

2012년 한국 대통령선거 전후의 사회적 화두는 통합(統合)이라 할 수 있다. 박근혜대통령 당선인이 선거공약으로 내세웠건 아니건 간에 선거 후 한국사회가 지향해야 할 화두는 사회통합이라고 할 것이다. 여기에는 정치권의 여와 야가 따로 없을 것이고,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든 국민이 동의할 것으로 나는 믿는다. 

그만큼 한국사회의 갈등구조가 심각하다는 말이 될 것이다. 이러한 갈등은 선거가 아니더라도 오늘을 사는 한국인들 모두에게 하나의 사회적 과제로 이미 떠 안겨 있었다. 이 갈등이 대통령선거를 거치면서 보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사회문제로 등장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박근혜대통령 당선인은 이 갈등을 사회적통합으로 해결하겠다고 들고 나왔고 선거가 끝난 지금 시점에서도 사회통합을 다음정부가 해결해 나가야 할 제일 첫번째 가치로 등장시키고 있다. 물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가 추구하는 국민행복의 첫번째 과제가 존재하는 갈등구조를 해결하는 것이 되는 것은 순리라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처럼 이미 여러각도로 사회갈등이 노출되고 있는 과정에서는 미룰 수 없는 사회이슈이고 현실정치의 핵심과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1.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노출된 한국사회의 갈등구조


이번 선거과정에서 사회문제로 등장한 갈등구조는 크게 네가지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1) 소득갈등 (2) 연령계층갈등 (3) 진보 대 보수의 이념갈등 (4) 지역갈등으로 집약할 수 있다. 

1) 소득갈등

정치계절마다 등장하는 '있는자, 없는자'의 문제, 대기업의 횡포 등의 이슈는 이번 대선과정에서 종합적 체계적으로 등장하였다. 정책과제로 복지가 이슈가 되었고 재벌의 불공정거래가 도마위에 올랐다. 이런 과제가 '경제민주화'로 포장되어 한국 대통령선거의 제1번의 선거이슈가 되었다. 

없는자의 문제로 취약계층인 어린이와 노인의 건강관리, 보육, 그리고 교육비 등의 지원에 대한 문제가 제일 먼저 떠 올랐다. 이 지원을 복지라는 정책이슈로 등장시켜 소위 보편적복지로 할 것인가, 차별적 선택적복지로 갈 것인가를 놓고 정치권은 달아오르기 시작하였다. 선거 중 한국헌법 119조 2항의 '경제민주화'라는 구절은 모든 복지문제의 해결통로처럼 되었다. 자연 정부의 대응능력을 이야기하는 것은 잘된 밥에 소금뿌리는 것 처럼 정치권은 외면하면서 복지의 수혜만 강조하고 싶어했다. 

'The more, the better'의 논리는 머지않아 유권자들에게 이래도 되나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하였다. 보편적복지 보다는 우리실정을 감안하여 선택적복지가 불가피하지 않나 생각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오늘 한 후보가 한발자국 나아가면, 다른 후보는 질세라 반발작 더 나아가는 공약을 남발함으로써 결과는 보편인지 선택인지가 불분명한 부문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제3자녀부터 평생지원, 3대인지 4대인지 중증질환의 무한지원, 의료지원 1백만원 상한제등등 우리 능력을 생각 안하고 너무 나간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반값등록금을 시현하겠다는 공약은 모든 후보가 내 걸었지만 다행이 박근혜당선인은 이것을 무조건이 아닌 장학금형식으로 한다는 것으로 조정을 하였다. 그러나 그 부담은 대단할 것이다. 

있는 자의 문제로 대기업의 불공정거래에 대한 선거공약은 매우 매서웠다. 대기업의 관련 중소기업에 대한 횡포나 독과점지위 남용 등은 비난 받아 마땅하다. 그래서 제일 먼저 등장한 것이 순환출자 제한이었다. 순환출자의 전면금지가 중소기업이나 일반국민의 감성에 차는 정책이겠지만 이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횡포나 시장지배 등의 안목으로보면 당장 전면 금지하는 것이 맞는 것 같지만, 이것을 모두 일시에 금지하는 것은 첫째 과거 이루어진 것을 모두 되돌리는 것이므로 어려운  문제가 발생할 것이고, 다른나라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순환출자를 우리만 무조건 막는 것은 오히려 역차별의 문제가 발생 된다고 할 것이다.

박근혜당선인은 우여곡절 끝에 기존출자분은 시간간격을 두고 인정하는 공약을 내 세웠지만 이대목에서 많은 비판이 나왔고 앞으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대기업주의 형사상 차별 중과 문제는 어찌 결론이 났는지 불분명하지만 형사문제를 너무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것으로 평가될 것이다. 

중소기업 지원의 일환으로 박근혜당선인은 많은 지원을 하겠다고 역설하고 있지만 오히려 이런 정책이 중소기업을 스포일 시키고,  더 나아가 자꾸 시장을 들여다보려는 선의가 오히려 정부의 '시장 간섭'을 낳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박근혜 당선인이 대기업 보다는 중소기업단체를 먼저 방문하고 중소기업인을 만나 지원을 약속하고 하는 것은 정치적으로는 의미가 있겠지만 정책적으로는 의미가 별로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기대와 무책임만 키우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론적이지만 시장의 문제는 기업의 크기에 상관없이 공정거래를 이루도록 강조하고 시장의 독과점이 최소화되도록  정책을 펴나가야 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법질서를 엄격하게 지켜나가고 그 법 질서 속에서 대기업 중소기업이 함께 공정한 경쟁을 하도록 만들어가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들은 또 역대 정권에서 너무나 많은 사탕발림을 받아왔다.

다만 서비스산업이나 벤쳐기업들이 초기(유치단계) 어려움을 겪지않도록 정부가 지원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도 무한정이 아닌 한시적(일정기간) 지원책이고, 지원내용도 산업별로 구분하지말고 같은 활동에 동일한 지원을 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 특정산업에대한 특헤논란에서 정부가 자유로워지고, 일정기간이후의 퇴출이 자유로워지게 된다.

다만 경쟁에서 열외(列外)에 있는 노약자, 극빈자들에 대한 정부지원은 아무리 어렵더라도 그 지원의 폭과 대상을 확대해 가야 한다. 이것은 복지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당선인이 연말연시 어려운 계층들을 찾는 것은 이런 시각에서 잘 하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여기서 이상의 소득갈등과 관련된 정책과는 별도로 새 정부가 어렵더라도 추진해야 하는 다른 정책과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국민의 기대치를 낮추는 정책이다. 복지정책은 어떤 경우던 다다익선이고 그것은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와야 한다.

당장의 국내외 경제전망은 매우 어렵게 진행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니 아무리 기대보다 경제가 단기에 좋아진다하더라도 당장 국민이 납세능력을 향상되기는 어렵다고  판단된다. 이런 상황이 오히려 새 정부로서는 국민의 기대치를 낮출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 보다 용이하게 할 수 있다고 본다. 1980년대 초 한국경제가 안정화시책을 펴나갈 때 하였던 것처럼 국민이 기대치를 낮추게 되는 계기를 정책적으로 마련해야 된다고 판단된다.

2) 연령계층갈등

비단 이번 대통령선거의 결과만이 아니라 최근 지속적으로 세대간의 갈등이 붉어져 나오고 있다. 한참 유행했던 '386'세대 논쟁은 사글어 들었고, 이제 '2030 세대'니 '40'세대니 '560세대'니 '670세대'니 하는 방식으로 연령계층을 나누어 세대간의 이념, 사고, 행동의 차이를 설명하려든다.

특히 선거때가 되면 이러한 세대간의 투표성향의 차이를 내세우면서 이들을 하나의 계층으로 묶어 자기네 편으로 영입하고자 애를 쓰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사실 지난 노무현대통령 선거당시 이런 패거리 정치행태가 극명하게 들어났다고 해도 과히 틀린 분석이 아닐 것이다. 오늘날에는 사회네트워크(SNS)가 다양화되어 인터넷 이메일세대, 문자세대, 트위터세대하며 구분할 수 있지만 당시 이메일이 젊은이들 간의 의사소통 전담수단이었던 때 투표일 오후 여름철 소나기처럼 이메일을 통한 투표독려가 일어나 노무현 대통령 승리를 가능하게 하였다고 분석한다.

이번 선거에서도 이러한 세대 계층간의 투표행태가 나타나리라 보고 날씨가 추우면 여당에 유리하다느니, 투표율이 높으면 야당이 유리하다느니, 투표율이 75%가 넘으면 야당후보가 춤을 추겠다느니 종래와 같은 진보대 보수성향을 연령으로 그룹핑하는 분석이 기조를 이루었다. 그러나 투표율이 78%가 넘었는데 야당후보는 낙선하였다.

더 다양해진 SNS는 작동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인가? 오후 6시 이후 투표한 사람이 3백만이나 된다는데 그들은 소위 젊은세대들이 주류를 이룬 것이 아닌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지난번의 실수를 거울삼아 보수세력들이 일부러 오후 늦게 투표하는 재치는 예상하지 못하였나? 아무튼 투표결과는 출구조사보다 더 큰 차이로 박근혜후보가 당선되었다.

여기서 연령계층 갈등과 관련하여 두가지 오류를 제기하고자 한다. 첫째는 연령계층을 통한 투표성향의 분석이 언론에서 만들어낸 지나친 과대해석이라는 점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보다 시야가 넓어지고, 그럼으로 보다 균형적인 시각에서 상황을 분석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꼭 보수성향이라고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물론 균형시각이 진보나 급진파의 시각에서는 보수의 색갈로 보일 수는 있다. 젊은이는 이상을 중요시하고 결과 보다 미래지향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한국의 진보처럼 이념의 틀 속에서 그들의 이상을 구분하려들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젊은이나 나이먹은 계층이나 자기의 판단으로 투표를 하고 그 기준은 오늘보다는 내일을 생각하며 선택을 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2030세대가 30%의 지지를 박근혜후보에게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진보 보수의 틀이 아니다.

둘째 이번 선거에서 50대가 절대지지를 박근혜후보에게 보냈다. 이 50대 중 절반은 지금부터 5년전 40대 중반으로서 팍팍한 현실 앞에 정권교체를 요구하던 그런 세대들 아닌가? 바로 그사람들이 5년이 지난 후 갑자기 세상보는 시각이 보다 넓어졌나? 개인의 형편이 활짝 피었나? 아닐 것이다. 다만 각자의 판단에 따라 나라의 미래를 누구에게 맏길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투표이지 나이 순으로 세워놓고 이것은 친여, 저것은 친야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접근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젊은이들이 보다 개혁적이고 변화를 보다 원한다는 일반론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내 말은 이것도 하나의 인기영합적으로 접근하는 져널리즘의 비지니스라고 생각한다. 현혹될 필요가 없다. 오늘의 젊은 세대들이 일반론적인 져너리즘이나 자칭 진보그룹보다 훨씬 위에 있다. 얼마나 현명하고 진취적이라는 것을 이번 투표결과로 보여주었다고 우리 모두 알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3) 진보 보수의 이념갈등

21세기 글로벌시대에 이념적 잣대로 사회를 구분하는 이념갈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보수나 진보를 학문적으로 그 성향을 분석할 수는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사람의 생각을 이념으로 재단하는 시대가 아니다.

한때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구분하여 좌익과 우익으로 구분하던 시대가 있었다. 이러한 이념의 차이는 1990년대 초 공산주의의 본산인 구 소련의 몰락과 함께 사라졌다. 그렇다고 오늘의 세계를 자본주의의 단순한 승리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시장경제의 모순을 시정하기위한 복지정책이 크로즈업되는 현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념이 시대를 지배하는 시기는 지났다.  후쿠야마는 자본주의의 승리를 '역사의 종말'로 결말지으려한다. 이것은 더 직설적으로 이념시대의 종말을 선언한 것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이런 흐름 속에서 허울좋은 한국의 진보는 무엇인가? 개혁과 개방을 앞세워 사회를 선순환으로 이끌어가고자 하는 그룹인가? 아니다. 한국의 진보는 종북(從北) 이상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보수의 가치는 사회를 개혁하여 다음세대를 보다 낳은 사회로 이끌고자하는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진보가 종북이 아니라면 그들의 지향점이 보수와 무엇이 다를 수 있단 말인가?

혁명(revolution)과 개혁(reform)은 천양지 차이이다. 혁명을 부정하는 한국의 진보는 더 이상 진보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보수와 지향점이 같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민주통합당은 정체성을 잃었다. 선거전략상 적과의 동침도 불사할 수는 있다고 할지 몰라도 그런 철학 위에서 국가운영을 담당할 수는 없다.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이번 선거에서 정권교체를 원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종북세력과 야합한 민주통합당으로 정권교체가 되기를 원할 수는 없다는 것이 이번 선거 결과이다.

누구도 위임하지도 않은 자칭 '원탁원로회의'인지에 소속된  인사들은 철 안든 늙은이들이지 그들이 한국의 젊은이들을 이끌 주제도 재목도 아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상당수 젊은이들이 보수의 가치를 들고 투표한 것을 보면서 이들은 이 현상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이미 이념의 시대가 지났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나는 분석한다. 이제 한국의 미래는 이념의 굴레가 아니라 개혁을 통한 국민행복을 추구하는 사회이어야 한다.

4) 지역갈등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도 한국의 고질이라할 수 있는 지역갈등은 제대로 해소되지 못하였다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한국선거에서 지역갈등이라 함은 호남대 영남을 의미한다. 영남에서 박근혜후보가 절대적인 표차로 승리를 하였고, 호남에서는 문재인후보가 절대적인 승리를 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서울과 경기 중부 강원 제주지역에서는 승패의 갈림은 있었지만 큰 차이가 없다.

박근혜후보가 영남출신이니 영남에서 이기는 것은 지역주의 관점에서는 당연하지만, 문재인 후보가 부산출신인데 호남에서 이기는 것은 이해되기 힘든다. 과거 김대중대통령 때는 호남출신이기 때문에 호남지지가 이해될 수도 있었다. 노무현대통령 때는 부산사람이지만 당시 김대중 전대통령의 영향력이 하도 커서 호남에서 몰표를 받을 수도 있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은 선듯 납득하기 힘이 든다. 특히 광주에서 박근혜후보 지지가 7%밖에 되지 않은 것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물론 경북이나 대구에서 박근혜후보가 크게 이겼지만 그러나 문재인후보도 그 지역에서 30여퍼센트 득표하였다.

이것을 놓고 우스게소리로 경북의 30%는 호남사람들이 이사간 사람들의 지지라고 한단다. 그러면 경북에서 이사간 호남인은 어디갔나? 경기 인천에서 박근혜후보가 이긴 것도 충청도 사람들이 많이 이사가서 그렇다고 한단다. 그러면 서울은 전라도사람이 많이 와서 문재인후보가 이겼나? 이런 이야기는 우스개소리로 치부해야 할 것이다. 다만 호남과 영남을 제외한 타지역은 지역갈등이 아닌 일반 투표자의 성향이라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지역갈등을 해결한다고 박근혜당선인은 사회통합의 일환으로 인사에서 호남배려를 강조하고 다닌다. 이것은 사실 낡은 레코드판이다. 박정희대통령 때는 안 그랬나? 김대중때는 사람이 없어 자리를 줄 수 없다는 낭설이 돌 정도로 호남을 배려하였다. 노무현대통령 때 호남을 경시하였다고 내놓고 이야기들 한다.

 이게 무슨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오늘 같은 글로벌 경쟁시대에 얼마나 능력있는 인사가 국가를 운영하는가가 중요하지 손바닥만한 나라에서 그것도 영남 호남 놓고 사회통합한다는 접근은 너무 현실만 생각한 접근이다. 정치적 술수에 불과하다. 능력이 있으면 호남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외국인이라도 빌려다 써야하는 것이 현대국가경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호남사람들도 무슨 선심쓰는 것 비슷한 호남인사 발탁이 오히려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하물며 신설부처를 호남지역에 두느니, 어디에 두느니하는 논란은 투표결과에대한 민의의 해석에서  아주 멀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오로지 개혁과 혁신을 화두로 새 정부는 국익만 바라보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2. 통합의 논리

이상에서 현존하는 한국사회의 갈등구조를 개괄적으로 섭렵하였다. 현재 갈등의  문제가 심각하던 그렇지 않던, 국가운영에 있어서 하나의 주요한 과제인 것은 틀림이 없고, 정치적으로  이것을 뛰어넘는 어젠다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박근혜당선인은 갈등 극복을 사회통합에서 찾고자 한다. 다양한 현대사회구조를 통합의 논리 하나로 묶어간다는 것 자체가 무리가 될 수 있다. 말이 사회통합이지 구체적으로 다양한 욕구와 생활의 주름을 어떻게 한 솥에 넣어 사회통합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것은 논리성의 문제 보다는 정치적접근을 통하여 그늘지고,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손톱 밑 가시를 제거하는 것과 같은 보살핌을 확대하여 보다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주자는 논리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막연한 공리주의로 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 정책에서, 정치에서 국민의 아픔을 어루 만져줌으로써 사회를 더불어 함께 엮어가고자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것을 통합의 논리하고 불러보자. 이와 관련하여 박근혜 새 정부가 당장 추진해야 할 통합의 과제들을 몇가지 제기해 본다.

1) 진영(陳營)의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앞에서 논의한 갈등구조를 보면 일부는 지금도 심각하고, 일부는 이미 지나간 허상을 붙들고 허우적대는 인상이다. 있는자 없는자의 문제나 영호남의 갈등구조는 지금도 상존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진보 보수의 논리나 연령계층에 따른 갈등은 이미 지나간 이슈들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지나간 이슈라고 현실적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새 정부의 입장에서 해야할 첫번째 과제는 우선  한국사회를 진영의 논리로 구분하고 대응책을 접근하는 방식 자체를 고쳐야 한다. 넓은 시야를 토대로 균형있는 정부정책을 펴 나아가고 정치는 이런 정부정책을 후원해야 한다.

대통령은 한국사회을 진영의 논리로 보는 것에서 탈피해야 한다. 있는자 없는자, 대기업 중소기업, 영남 호남, 진보 보수, 2030세대와 늙은세대등 진영의 논리나 시각을 전제로한 정책을 펴서도 안 되고 정치를 해서도 안된다.

통합한다고 어느 특정지역을 우대한다던가, 젊은세대를 구색가추기로 참가시킨다던가 하는등등의 정치적 접근에서 벗어나야 한다.

2) 후진적 정치행태를 현대화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후진적이고 퇴영적인 부문이 정치권이라고 하는데 별 이의가 없을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도 국가의 지도자를 정치지도자로 한국의 정치권은 착각하고 있다. 국가지도자라는 개념은 특히 경국제민(經國濟民)을 이끌어갈 국가의 큰 어른을 지칭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이런 나라의 큰 어른을 찾는 것은 시대흐름에 맞지 않는다.

오히려 다양한 기능사회에서 분야별로 최고를 달리는 여러 인사들이 그들 나름의 분야에서 최선다해 다양한 결과가  나오고 그런것들이 하나로 집합되면서 사회가 발전해 나간다고 할 수 있다.

옛날의 훌륭한 군주처럼 훌륭한 대통령을 뽑는 개념의 선거는 아닐 것이다. 대통령도 일개 직업인으로 보아야 맞을 것이다. 국가운영을 일정기간 수임받은 사람이 된다. 그것을  그 사람이 온통 나라의 모든 부문을 책임진다고 생각하고, 오직 그만이 오늘의 개개인의 삶을 책임져주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은 전 근대적이다.

민의의 대의기관인 국회는 정치적으로는 삼권분립의 한 축을 담당한다고 할 수 있지만 개개인 국회의원은 일정구역의 주민으로부터 민의를 수임받은 직업인다. 물론 개개 국회의원을 하나의 입법기관이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4년의 임기를 가진 수임자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전근대적으로 그가 뭐 그리 대단한 인사인양 별의별 특권을 누리는 것은 말이 되지않는다. 그러니 죽어라고 서로 싸우다 자기들 이속이 있는 곳에서는 여야가 따로 없다. 그러니 사법특권을 누리고, 연금 특권을 누리고 철면피하게 살아가고 있다. 국민세금가지고 예산조정한다고 몇날몇일을 호텔에서 서로 이권을 챙겨주고 국회가 끝나자마자 먼 중남미 아프리카등지로 연구시찰이랍시고 여행이나 가고 후진성의 표본이다. 그러고도 그게 지도자인가?

물론 한국국회의 후진적행태를 천편일률적으로 이야기하고 취급해서는 안 된다. 개중에는 국민의 세금을 생각하고 국가의 미래을 생각하는 훌륭한 사람도 있다. 문제는 그 비율이 너무 적어 그저 접시속 태풍에 불과하다고 한국의 정치행태를 이야기하는 것은 지나칠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의 국가운영에서 일차적으로 제일 걸림돌이 되고, 나라의 미래보다는 자기들 이속이나 챙기는 것이 한국의 정치권이라고 할 때, 아니라고 손들고 나올 사람이 관연 얼마나 될지 나는 가늠이 안 간다.

모름지기 한국의 정치권이 환골탈퇴하여 현대화하지 아니하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나는 확신한다. 세상은 딴 세상으로 변했는데 우물한 개구리는 제 옛날만 생각하고 고집한다. 그런 정치집단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한 한국의 사회통합은 불가능할 것이다. 후진적정치행태를 현대화해야 한다.


3) 50대 이상을 부채(liability)의 세대로 만들지 말라.


어느 경제학자의 말대로 사회를 세대로 구분하여 부채와 자산(asset)의 그룹으로 나누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물론 나이들 수록 생산성이 감퇴하는 것을 인정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세대 구분 없이 생산활동에 참여하도록 만들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생산성에 따라 대우하고 사회가 발전하게 만들어야 한다. 물론 극상 노인세대는 사회가 책임을 지고 지원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80대 이하의 세대들은 생산활동에 적극 참여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에 대한 1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

한국 젊은이들의 노인비하 생각은 김대중 대통령정부 때부터 확대되었다. IMF를 지나면서 당시 정부는 기업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였는데 이에따라 많은 해고조치(lay off)가 이루어졌었다. 오십대보다 더 낮은 40대 중반부터 감원을 하다보니 사회는 감원대상을 무능한 새대로 규정짔게 되었고, 자연 그들은 사회의 부채로 여기는 잘못된 습성이 생기기 시작되었다.

당시 정부가 레이오프세대들을 무능의 코너로 몰고가기보다는 그동안 사회발전에 대한 기여를 평가하는 방향으로 몰고 갔어야 했다. 또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는 참여기회를 확대하는 노력을 했어야 했다. 그런 노력보다는 이들 세대를 뒷방 코너로 몰아너어 무능한 인간으로,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부채세대로 치부해 버리고 말았다. 물론 IMF 등의 권유라는 구실을 말하고 싶겠지만 그것은 서양의 가치이지 유교문화를 바탕으로하는 동양의 가치는 아닌 것이다. 당시 정부의 무식의 소치라고 나는 평가한다.

지금 50대 이상의 세대를 막연하게 나이 만으로 부채, 자산으로 구분해서는 안 된다. 또 오늘의 자산은 어제 그들에 의하여 축적된 것임을 젊은세대에 일깨워야 한다. 단순하게 나이의 많고 적음으로 구분하여 젊은세대가 나이 많은 세대의 부담을 왜 짊어지게 하느냐고 불평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

심지어 노인에게 선거권을 박탈해야 한다는 소리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서 나이먹은 사람에게 힘이 쫙 빠짐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젊은이 들에게 음수사원(飮水思源)의 고사성어를 가르쳐야 하는 책임도 정부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더 나아가 정부의 임무는 산업구조, 고용구조의 변화를 추진해야 한다. 사회의 변화에 맞는 것이 모두 첨단 IT산업에 만 있는 것이 아니고 수출 일변도의 경제정책에서 벗어나 한국경제에 알맞는 경제, 산업구조의 변화를 정부는 추구해야 한다. 지난 정부의 정책부실이 바로 이런 곳에 있었음을 시인하고 화급한 산업구조변화와 이에 따른 고용구조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나이만으로 정년을 구분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최근 분석에 의하면 OECD국가중 50대 이상의 취업율이 한국이 가장 높다고 하고 그것이 마치 늙은 세대가 젊은 세대의 일자리를 빼았은 결과인 것처럼 해석하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모든 것이 경쟁력에서 평가를 해야지 그래서 젊은 사람이 더 경쟁력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새 정부가 마련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것이 사회통합의 첫 걸음이라고 할 것이다.


4) 경제민주화의 허상에서 탈피하라.

이번 선거에서 가장 잘못 간 것이 경제민주화로의 지나친 질주였다고 평가한다. 경제민주화는 정치슬로건이지 경제논리는 아니다. 더더군다나 경제정책은 아니다. 다다익선과 퍼퓰리즘은 민주주의 선거의 부산물이다.

국가운영의 기본은 '국리민복(國利民福)'에 있다. 국가를 보위하고, 백성을 잘 살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 국가운영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노무현정부가 국토를 지키는 개념이 없이 NLL을 아이들 땅따먹기로 비하한 것은 국가운영이 아니다. 이명박정부가 수출일변도로 부익부 빈익빈 정책을 추구한 것도 국가운영의 낙제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가난한 사람이 모두 없어지고 모두 배부르고 행복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위하여 국가는 시장과 경제행위를 규제할 수 있다고 한 헌법규정을 단순논리로 받아드리고 거기에 맞추어 모든 불평등을 하루아침에 시정하고자하는 논리로 경제민주화를 받아드린다면 그것은 오히려 경제발전의, 사회발전의 족쇄가 될 수 있다. 우리 속담에 '누을 자리를 보고 발을 뻗으라'는 말이 있다. 무턱대고 불평등만 쳐다보고 이것을 시정하려하는 것은 교각살우를 범할 위험이 있다. 능력대로 해야 한다.

세금 생각은 안 하고 무턱대고 일반복지니 뭐니를 주장하는 것은 안 된다. 또 좋은 것은 더 할수록 좋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오늘의 고통(세금)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이미 박근혜 대통령당선인도 너무 지나치게 간 것이 많다. 물론 상대후보의 공세에 맞추다보니 과한 것도 있었겠지만 지금이라도 정신차리고 바로 잡아야 한다. 물론 경제민주화로의 발상의 전환은 좋다. 그 준비부족함을 말하는 것이다.

아무리 경제민주화가 좋다고 해서 시장경제의 기본을 허트리면 안 된다. 순환출자규제나 출자총액제한 같은 제도는 그 범위와 속도에서 신중함을 기해야 한다. 더더군다나 재벌해체등의 접근은 혁명일 뿐이다. 시장을 규제(regulate)하는 것과 시장을 간섭(intervention)하는 것은 전연 다른 개념임을 정부는 알아야 한다.

복지재원을 마련하기 위하여 박근혜당선인은 지하경제를 양성화하여 추가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물론 지하경제의 양성화는 좋은 일이지만 그것은 제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지 마치 시장을 들쑤셔 지하에 숨은 재원을 발굴하겠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너무 편이한 접근이 될 것이다. 지하경제가 어디 등기내놓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들을 들 쑤시면 그들은 한발자국 뒤로 물러가 숨어버리게 되는 속성을 가지게 된다.

결국 지하경제의 해결책은 그들이 숨어살 수 없도록 제도를 고쳐나아가야 한다. 1980년대 초 소위 '장영자 어음사건'으로 한국의 자본시장은 풍지박산이 났다. 그 당시 한국정부는 이런 시장의 흐름이 완전히 박살이 난 마당에 건질 수 있는 것이 금융거래의 정상화라고 판단하여 '금융거래실명화에 관한 법률'을 제안하였다. 정치권의 엄청난 저항에 부딭혀 이 제도의 도입은 인정하되, 그 시행은 1990년 이후 정부가 정한 날부터한다고 해괘한 부측을 달아서 실명법은 국회를 통과하였다. 그게 한국의 소위 '실명제'다.

그 이후 김영삼정부 시절 이제도가 시행에 들어갔지만 시행초기 남의 뒷조사를 캐는데 너무 치중한 제도시행으로 당초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만일 한국의 금융실명제가 1980년대 중반부터 당초 계획대로 시행해 들어갔다면 오늘 한국의 경제질서는 보다 현대화되고, 지하경제는 훨씬 개선되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이것이 지하경제의 접근방법임을 박근혜당선인은 유념해야 할 것이다.


5) 성장의 잠재력 확충을 서둘러야 한다.

이명박정부에서 2%대로 추락한 잠재성장률을 끌어 올리는 노력을 박근혜당선인은 서둘러야 한다. 이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제기하지만 그저 막연한 메아리에 불과한 것 같다. 그러나 이것처럼 시급하고 근본적인 것은 없다고 할 것이다.

패망길에 들어선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하여야 한다. 옛날에는 일본을 보고 배우자고 하였다. 지금도 일본을 보고 배워야 한다. 다른점은 전에는 일본 하는대로 따라 하자고 하였고, 지금은 일본 반대로 하면 된다는 점에서 반대논리가 성립된다.

저출산 인구구조를 고쳐 나가야 한다. 산업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어려울 수록 더 개방하고 다른 나라와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나약한 젊은이들의 사고부터 세계를 이끌어가는 방향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도전정신을 길러야 한다. 남을 탓하기 앞서 사회에 헌신하고 봉사하는 정신을 함양시켜야 한다.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막연한 것 같지만 대한민국 국민 모두 교육개혁에 일어서야 한다.

내가 왜 늙은이를 돌보고 그 부담을 지며 살아야 하느냐고 불평하기 앞서 저 사람들이 전쟁의 잿더미에서 오늘의 부를 이루었는데, 나는 이를 발판으로 보다 윤택한 경제를 만들어 가겠다는 기개와 의지가 젊은이들에게 생겨나게 해야 한다. 그것은 참 교육을 통하여 가능한 것이지 종북세력들의 교육프로그램으로 되는 것이 물론 아님을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한다.

젊은이 늙은이의 구분이 없이 오늘 모두가 사회에 헌신하는 자세를 갖게 될때 한국의 성장력은 5%를 넘어 6%대에 진입하게 됨을 새 정부는 깨달아야 한다. KDI 같은 연구기관에 '잠재성장률 제고 연구'를 본격적으로 실시할 것을 주문하는 것도 한가지 방안이 될 수 있다.


6) 국민의 기대치를 낮우는 노력을 하라.

2%대의 경제성장을 하는 사회에서 무차별복지니 일반복지니 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다. 한국사회는 아직 절대수준의 복지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 보다는 상대적 격차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일이 의욕만으로 그렇게 금세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꾸준하게 정부는 추진하고, 국민들은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국민이 당장 무언가 변하는 것을 크게 기대하지 말고, 정부는 이런 일을 너무 서둘러 하려 해서는 안 된다. 거기에 파탈이 나게 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 인식해야 한다. 무슨 수로 지하경제를 파헤쳐 몇조의 복지재원을 당장 마련한단 말인가?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의 기대치를 낮추는 일이 필요하다하고 할 것이다. 성장에대한 기대, 복지에 대한 기대, 정부에 의한 선심 같은 기대들이 현실에 맞게 조정되고 좀 느긋하게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새 정부가 국민과의 정책합의를 이끌어 내야 할 부분이다. 정책합의는 힘으로 눌러 되는 것도 아니고 막연하게 때가 오기를 바라며 앉아 있어도 안 된다. 엄청난 정부의 노력이 요구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분서하여 국민에게 내어놓고 서로 허심탄회하게 협의를 해야 한다.


3. 실사구시(實事求是)


사회통합의 과제는 물론 엄처나게 어려운 일이라고 모두 믿을 것이다. 많일 박근혜당선인이 자기의 정치역량을 여기에 모두 바치기로 작정을 하여도 추진에 엄청난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박근혜당선인은 국민으로부터 '실천'에 대한 신뢰를 받고 있는 분이다. 이것이 만일 사회통합정책이 성공한다면 그 밑바탕이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정책을 국민이 믿는 것이다. 그 믿음은 대통령이 절대적으로 실천을 담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국민데게 각인시켜주는 데서 생긴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유능한 정부를 꾸리는 것이다. 이 막중한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전략집약적인 정부'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정치권에대한 설득능력을 갖춘 정부가 되어야 한다. 좌고우면하는 정부를 만들려면 이런 어려운 문제는 꺼내지도 말아야 한다.

 우리가 인정하던 아니하던 간에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는 훨씬 높게 되어 있다. 만일 한국에서 이런 사회통합이 잘 이루어지는 정치를 하는 것을 외국인들이 인정한다면 한국은 또다른 신화를 창조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즉 지금까지 한국은 '산업화에서 민주화'를 이룬 나라로 세계는 평가하였다. 이제 사회통합을 이룬 한국은 다시 '선진화에서 행복사회'로 변화 된 나라로 평가될 것이다. 박근혜당선인이 역사 앞에 이 업적을 이루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2013년 1월 5일 토요일

눈 밭 위의 달빛

2012년 겨울은 유난히 낯 설고 길다.

하얀 눈밭
대지를 덮은 눈은 유난히 히고 두껍다.
검은  흙은 그 민 얼굴을 내밀 수 없다.
그저 덮고 덮고 또 덮고
그래서 그 속은 포근하고 오히려 너무 조용하다.
외모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너무나 하얀 바깥은 눈 동자를 덮었다.
붉은 햇볕은 하얀 눈밭에 그대로 미끄러진다.

석양이 넘어간 후
맑안 초승달이 하늘 저편에서 얼굴을 내밀지만
그는 너무 수줍고 부끄럽기만 하다.
아! 나는 아직 어리고 더 커야한다.
그러나 보름달은 너무 커서
너무 데바라져서
오히려 쑥스럽다.
아직도 일주일도 더 남은 보름은
커가는 몸의 변화를 부끄럽게 한다.
그래도 빛이 커지고 세상도 보인다.

그 달빛은 부드럽게 하얀 눈밭을 어루 만진다.
눈밭은 수즙은 손을 내밀어 달빛을 받는다.
맑안 눈에서 어느덧 눈물이 맺힌다.
나는 아직 아니야 하고
수줍은 달빛을 밀쳐낸다.
달빛은
그래 더 커야해 하며
눈밭의 손등에 입술을 덥는다.
그리고 눈밭과 달빛은 서로를 토닥인다.
우리 더 커서 다시 만나자고
서로는 서로를 안아준다.
어느새 눈물은 고이고 그 너머 더 영롱한 빛이 대지를 감싼다.

월광(月光)!
아무리 추워도
아무리 미끄러워도
아무리 대지의 더러운 때가 너를 더렵혀도
하얀눈밭은 월광으로 찬란하다.
고층 창가에도
무너져가는 단칸 오막사리 창틈에도
하얀 눈으로 채색된 월광은 찬란하기만 하다.
베토벤이여!
한 여인보다는 온 세계에 이 뜨거운 월광을 고루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