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를 아쉬운 마음으로 보내며 새해를 맞는다. 지난 연말은 KSP 일 등으로 너무나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 중 상당히 많은 시간을 컴퓨터 조작 미숙으로 허비하였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잘 보냈다. 뒷이야기 거리가 많이 남은 카자흐스탄 생활은 내 인생 후반기 새로운 도전이었고 경험이었다. 결과가 상대국의 환경 때문에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개발경험을 전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연 이어 12월 초 쿠웨이트 팀에 대한 강의도 의미 있고 좋았다. 연말 관련 보고서를 쓰느라 매우 바쁜 나날을 보냈다. 능숙치 못한 영어를 사용하는 일이 얼마나 비능률적인지 새삼 깨닫는다.
그 통에 ‘여중재’를 소홀이하여 글도 올리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2009년 한 해 동안 그래도 40 꼭지의 글을 여중재에 올렸다. 질적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하였지만 그래도 양으로는 상당한 양이고 당초 계획대로 출판으로 까지는 못 갔지만 좀더 써서 새해에 출판을 생각해 보리라.
자 이제 호랑이 그것도 귀한 흰 호랑이해가 밝았다. 지난 연말에 비하여 그래도 새해에는 엄청난 충격 뉴스가 없는 가운데 출발하는 것이 마음에 든다. 리먼사태의 공포에서 해방되었고 무엇보다 한국시장을 넘보는 국제 펀드들의 악의에 찬 소문을 한해 안에 한국경제는 말끔하게 청소해버린 것이 마음 뿌듯하다. 물론 정부가 먼저 칭찬받아야겠지만 기업인 국민 모두가 열심히 노력한 결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일부 비난 받아야 할 정치권 노동계의 행동이 있었지만 전체적인 축하 분위기에 이것도 묻어버리기고 가자.
새해에 한국경제는 이제 정말 선진된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무엇보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질서를 지키는 법질서의 엄정성이 보다 확립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제발 국민의 지도자로 자칭하는 (많은 국민은 그들을 지도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권이 환골 탈퇴하여야 한다. 그 지겨운 지역주의가 없어지고 떼쓰고 법위에 군림하는 그들의 작태가 없어지지 않는 한 한국은 선진사회가 될 수 없다. 세금만 축내는, 없어졌으면 좋을 것만 같은 정치권이 다시 제 본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아마 모든 국민을 바랄 것이다.
노동계도 마찬가지다. 세상에서 가장 고소득자들인 대기업 노조들은 노동쟁의 인지 정치행위인지 구분이 잘 안가는 떼를 국민경제를 담보로 해대고 있다. 멀리 1980년대 중반부터 25년의 세월 속에 한국의 노동계는 법 없이 군림하였다. 이보다 더 힘 있는 정치세력이 없다. 이제 질릴 만도 하고 넌더리내는 주변의 시선을 볼 수 있으련만 그들은 아직도 제몫 찾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 그들의 행태에 아부하지 못해 안달하는 정치권은 드디어 연말 노동법 개정을 둘러싸고 코메디 같은 행태를 국민에게 보여주었다. 노동단체들의 힘을 빼야 한국이 선진국이 될 수 있다. 머리에 두른 붉은 띠가 권력의 상징으로 남아 있는 한 한국의 앞날은 밝지만 않다고 할 수 있다.
대기업의 무소불위의 작태도 시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독재정권을 싫어하는 근본 이유는 그들이 처음 출발 때부터 잘못해서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초심보다는 눈앞의 이익에 집착되는 인간본능에서 나타나는 불의 불합리를 국민은 싫어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대기업도 30년 40년 기업군을 운영하다보니 잘하는 면도 있지만 자기 가족의 영구집권을 위한 여러 행태가 나오게 되는 것은 독재정권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평창올림픽 유치를 위하여 필요해서 사면복권 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처음부터 잘 못된 것이다. 언제부터 재계가 한목소리로 그렇게 애타게 호소할 만큼 평창올림픽이 대단한 것인가? 오로지 대 기업들이 언제 자기들에게도 이런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일종의 품앗이로 사면 건의를 하는 것인지, 삼성그룹의 경제적 힘에 엎드리는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국가적 대의와 이익이 무엇인가? 내가 이 문제를 여기에 제기하는 것은 누구를 비난하자는 의도가 아니라 진정 새해 한국이 선진사회로 가기위한 대목에서 이런 일들을 짚어보자는 뜻에서다.
정부는 글로벌경제 하에서 지금 하고 있는 비지니스 친화적 정책을 계속해야 한다. 그렇다고 그것을 내 세우다 보니 국민의 지지가 내려간다고 서민우선이니, 국가 우선이니 하는 포퓰리즘적 접근이나 정책을 펴서는 안 될 것이다. 원자력발전소 수주가 잘 된 것이지만 그것을 둘러싸고 마치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칭송을 유도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는 것은 오히려 겸손을 덕목으로 삼는 우리네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정부는 좀더 사려 깊고 의연한 형태로 모든 문제를 접근하는 것이 한국사회의 선진화를 가져오는 길일 것이다.
경인년 새해, 많은 도전이 있겠지만 나의 동물적 육감으로는 새해 한국경제는 현재 KDI에서 전망하는 5.5%보다 더 높은 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한다. 더블 딥이니 무슨 현란한 용어로 새해를 어렵게 보려는 의견도 있지만 새해 한국경제는 훨씬 자신 있는 모습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모두 서로 축하하고 격려하면서 시작하자.
2009년 12월 31일 목요일
2009년 11월 23일 월요일
역 발상(逆 發想)의 세종시 처리
지금 한국의 정부나 정치권은 세종시 문제를 놓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범의 꼬리를 잡고 있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지난 정부가 저지른 일을 제대로 바로잡겠다고 선언한 정부의 태도야 누가 무어라 하랴. 그러나 그것의 접근방법이 서툴러 일을 꼬이게 만들었고, 지금 와서는 이것을 추진하는 내용이 본류보다는 곁가지 문제를 놓고 날마다 이러저러한 아이디어로 날밤을 새우고 있다. 정부가 머지않아 정부안을 내어놓겠다고 하는데 그 내용이 기상천외한 것이 나올 것 같지도 않고, 그러니 법개정을 둘러싸고 시빗거리는 계속될 것 같다.
무엇보다 정부가 이 일을 제대로 처리할 요량이었으면 좀더 신중하고 치밀한 준비를 하여 시작하였어야 했다. 새 국무총리 임명과정에서 느닷없이 세종시 문제를 총리개인의 판단처럼 접근한데서부터 잘못은 시작 되었다. 꼭 총리를 내 세울 요량이었으면 입각 후 정부에 들어와 이러저러한 내용을 파악하고 그 결론으로 세종시 문제를 거론하게 하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 느닷없이 초야에 묻혀 있던 사람이 총리에 임명되자 세종시를 변경하겠다고 한 것은 그 사안의 중대성을 전연 망각한 경솔함에서 왔다고 할 것이다. 이것은 정부도 마찬가지이다. 설령 새 총리가 그런 소리를 하더라도 이를 말렸어야 했다. 마치 내가 욕먹기 싫은 일을 네가 한다니 잘되었다는 모양새를 연출하게 되었다. 실제 그런 속마음이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총리의 접근방법도 영 불만스럽다. 세종시 처리에 대한 총체적인 그림은 제시하지 않은 채 벌써 다 짜가지고 가는 모양새를 취한다. 마치 무슨 큰 플럿이나 있는 것처럼 ‘이름을 대면 다 알만한 기업들이 세종시 입주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식의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 또 서울대학 공대 제2캠퍼스가 입주하는 양, 무슨 무슨 국책연구소가 들어오는 것처럼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물론 언론의 자가생산도 많겠지만 일의 순서가 전체 세종시의 자족도시기능을 위하여 이런 모양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을 내어놓고 그것을 먼저 여론수렴을 해야 하는 것이 순서일 텐데 일을 역순으로 하고 있다.
실례지만 힘도 별로 없는 총리가 권유한다고 기업들이 녹녹하게 들어먹을 일도 아니고, 설령 강요로 들어온다 해도 시간이 지나 다음 정권이 들어설 때 이들이 보따리 쌀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여기서 제기되는 몇 가지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는 기업이나 학교나 어느 기관이던 이들의 입주에 따른 경제성은 얼마나 고려한 것인지 모를 일이다. 정부부처가 입주하는 것이 비능률 문제가 있어 이 계획을 고쳐야 한다면 이들 기업이나 기관들의 비능률이나 경제성은 다 고려된 것인가 묻고 싶다. 기업이 비능률로 경쟁력을 잃게 된다면 그 또한 큰일 아닌가? 둘째 결과적으로 이런저런 기관들의 입주를 위하여 그 요란을 떨며 도시계획을 만들고 강제수용 등을 통하여 주민들을 억지로 떠 밀어 내었단 말인가? 태산명동에 서일필인 꼴이다. 셋째 입주를 지원하기 위하여 평당 2백만원이 넘는 토지조성비를 몇십만원으로 내려준다니 납득할 수가 없다. 여타 산업단지들의 역차별의 문제제기를 차치하고라도 그 원가차익은 누가 부담하는 것인지는 생각지도 않았다는 말이 된다. 결국 일반국민의 부담이 되는데 이것을 연장하면 그 몇몇 기업이나 학교, 연구소등에게 모든 국민이 보조를 하여 주는 결과가 된다. 이게 시장경제운영에서 가당한 일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자 여기서 언론을 통하여 두 가지 해결책이 제시된 것을 생각해 보자. 하나는 세종시를 원안대로 처리하여 그 정책결정의 부당함과 엄청난 사회비용을 우리 후손들이 반면교사로 삼도록 하자는 의견이다. 사실 세종시는 노무현대통령의 말대로 선거에서 ‘재미 좀 본’ 포퓨리즘의 단적인 예이다. 나라야 어찌되던 정권을 잡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 노무현정부의 잘못된 역사적 사업을 두고두고 후손들이 배우도록 한다면 의미가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정부의 과천청사도 있는데 그것보다 한 시간 여 거리의 세종시에 몇몇 정부부처가 들어갔다고 해서 나라가 망할 일이 아니다. 요즘같이 영상회의 등 통신기술이 발달된 시대에 거리가 무슨 그리 결정적인 결함이라 할 수 있느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부청사의 분산에서 오는 비능률의 비용과 세종시를 원안대로 유지하면서 국민이 포퓰리즘의 반면교사에서 얻게 되는 교육효과를 비교하는 비용편익분석이 필요한 대목이다.
두 번째 안은 서울대학교가 몽땅 세종시로 이전하자는 의견이다. 그 의견은 서울대는 어차피 국립대학이니까 이전비용을 정부가 부담할 명분이 있는 것이고, 서울대학이 가지고 있는 지성(知性)의 총본산으로서의 상징성과 그 규모에서 오는 경제성 때문에 세종시의 변화를 가능케 한다는 의견이라고 집약할 수 있다. 물론 이 경우 서울을 떠나 있는 서울대학 이름의 모순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고, 서울대학 구성원들의 반발도 예상할 수 있다.
결국 정부안이라는 것이 이러한 극단적인 안이 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것이 현재의 예상이다. 이명박대통령이 라디오연설을 통하여 지난 대통령선거과정에서 세종시 원안추진을 약속한 것을 사과하고, 자기의 본심은 세종시 반대였음을 서울시장 재직시 표현한 것을 가지고 캄프라지하려 할지 모른다. 만일 정부가 그럴 요량이라면 그것은 큰 두 가지 잘못을 만들게 될 것이다. 하나는 이명박대통령이 대통령이 안 되었으면 모를까 대통령이 된 마당에 내가 대통령이 되고 싶어서 마음에 없는 세종시 원안추진을 약속하였다고 한다면 그것은 현직 대통령으로서 있을 수 없는 짓이다. 국민의 최고대표로서 상징성이 있는데 비록 속마음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를 공식 인정하는 것은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다는 점에서 모든 국민을 모독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노무현정부의 포퓰리즘을 성토하는 국민의 입에 재갈을 먹이는 것이 된다는 것을 이명박대통령은 알아야 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런 입장이라면 ‘원안 +알파’를 주장한 박근혜의원을 신종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할 수가 없게 된다. 자기는 그렇게 해도 되고, 박근혜의원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잃는 게임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정부가 그렇게 저렇게 변명을 하면서 이것저것 올망졸망한 입주기업이나 학교 또는 기관들을 선정 발표하게 된다면 관계법률 개정에 국민동의를 얻어내기 힘들 것이다. 국회의 야당들은 물론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기대하던 충청도민들 조차 등을 돌릴 것이다. 그렇다고 속 좁은 몇몇 한나라당의원 들의 주장처럼 국민투표 운운하는 것은 정치학적 논리의 모순성에 앞서 충청도민의 엄청난 저항을 불러올 것이다. 똑 같은 사안이 전라도에서, 경상도에서 일어났을 때도 그들이 국민투표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할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하면 답은 절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국무총리를 지낸 몇몇 국가원로들이 세종시 원안추진을 반대하는 성명을 내었다는 보도는 그것의 타당성 보다는 정부의 입장을 언제나 지원하는 원로들의 입장이지 그 이상으로 보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정말 그분들이 그런 생각이라면 왜 노무현정부에서 추진할 때 침묵하고, 대통령 선거 전 국회에서 그렇게 골치 아프게 떠들어 댈 때 침묵하고 있다가 왜 지금 그 불합리성을 주장하는지에 대한 반문에 먼저 답해야 될 것이다.
그렇다면 현시점에서 무슨 대안으로 이 문제를 결론지을 수 있을까? 생각을 처음부터 거꾸로 해보면 어떻게 될까? 첫째 세종시를 처음부터 없었던 일로 할 수는 없을지를 생각해보자. 정부청사의 분산에서 오는 비능률이 문제라면 이것을 없었던 일로 하고 끝내는 것이다.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첫째는 이미 조성되고 있는 저 땅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매각하거나 정부가 국유지로 그냥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둘째 이렇게 될 경우 정부에 대한 신뢰는 말할 것 없고 엄청난 반발이 충청인을 중심으로 일어날 것이다. 이것에 대한 부담은 물론 정부의 몫이다.
두 번째 역발상의 대안은 정부가 모두 세종시로 가는 것이다. 정부가 당초부터 수도를 옮기려면 청와대, 국회를 비롯한 모든 정부부서가 다 갈 것이지 무슨 힘없는 부서를 고르듯이 몇몇 부서를 옮기기로 계획한 것부터가 잘 못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청와대는 국회는 사법부는 왜 서울에 꼭 남아야 하나? 고통을 내가 먼저 짊어진다는 생각에서 힘 있는 권력기관이 먼저 살신성인하는 자세를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통일시대를 대비하여 남쪽으로 수도가 가는 것이 좋지 않다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 옛날 기준으로는 맞다. 그러나 현대와 같은 기계문명시대에 한 시간 남쪽에 있으나 북쪽에 있으나 그 위치가 가지는 의미는 줄어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보다도 나의 역발상제안의 주안은 21세기 지식정보사회에서 정부의 영역은 산업사회에 비하여 훨씬 줄어들고 있다는데 있다. 물론 리먼사태 이후 세계적 경제위기 앞에 정부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 현재의 흐름이지만, 경제가 정상화될 경우 더욱 정부의 기능은 타 산업에 비하여 줄어들게 될 것이다. 사양산업의 길을 장기적으로는 걷게 될 것이다. 그런 정부의 위치가 이렇게 정보와 지식이 넘쳐나는 통일시대에 서울에 있으나 좀 남쪽에 위치하나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물론 같은 논리선상에서 사실 수도를 서울을 버리고 어디로 옮겨야 하는 타당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세종시를 발상한 전 노무현정부의 인기영합주의를 성토한다. 그러나 이미 세종시를 추진하여 이미 터를 닦고 있는 현시점에서 노무현 정부를 이은 현 정부가 이것을 중단할 능력과 의지가 있다면 중단하는 것이 일안일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역 발상으로 제대로 된 수도 이전을 검토할 것을 제의해 본다. 필사즉생의 각오로 말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이 일을 제대로 처리할 요량이었으면 좀더 신중하고 치밀한 준비를 하여 시작하였어야 했다. 새 국무총리 임명과정에서 느닷없이 세종시 문제를 총리개인의 판단처럼 접근한데서부터 잘못은 시작 되었다. 꼭 총리를 내 세울 요량이었으면 입각 후 정부에 들어와 이러저러한 내용을 파악하고 그 결론으로 세종시 문제를 거론하게 하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 느닷없이 초야에 묻혀 있던 사람이 총리에 임명되자 세종시를 변경하겠다고 한 것은 그 사안의 중대성을 전연 망각한 경솔함에서 왔다고 할 것이다. 이것은 정부도 마찬가지이다. 설령 새 총리가 그런 소리를 하더라도 이를 말렸어야 했다. 마치 내가 욕먹기 싫은 일을 네가 한다니 잘되었다는 모양새를 연출하게 되었다. 실제 그런 속마음이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총리의 접근방법도 영 불만스럽다. 세종시 처리에 대한 총체적인 그림은 제시하지 않은 채 벌써 다 짜가지고 가는 모양새를 취한다. 마치 무슨 큰 플럿이나 있는 것처럼 ‘이름을 대면 다 알만한 기업들이 세종시 입주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식의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 또 서울대학 공대 제2캠퍼스가 입주하는 양, 무슨 무슨 국책연구소가 들어오는 것처럼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물론 언론의 자가생산도 많겠지만 일의 순서가 전체 세종시의 자족도시기능을 위하여 이런 모양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을 내어놓고 그것을 먼저 여론수렴을 해야 하는 것이 순서일 텐데 일을 역순으로 하고 있다.
실례지만 힘도 별로 없는 총리가 권유한다고 기업들이 녹녹하게 들어먹을 일도 아니고, 설령 강요로 들어온다 해도 시간이 지나 다음 정권이 들어설 때 이들이 보따리 쌀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여기서 제기되는 몇 가지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는 기업이나 학교나 어느 기관이던 이들의 입주에 따른 경제성은 얼마나 고려한 것인지 모를 일이다. 정부부처가 입주하는 것이 비능률 문제가 있어 이 계획을 고쳐야 한다면 이들 기업이나 기관들의 비능률이나 경제성은 다 고려된 것인가 묻고 싶다. 기업이 비능률로 경쟁력을 잃게 된다면 그 또한 큰일 아닌가? 둘째 결과적으로 이런저런 기관들의 입주를 위하여 그 요란을 떨며 도시계획을 만들고 강제수용 등을 통하여 주민들을 억지로 떠 밀어 내었단 말인가? 태산명동에 서일필인 꼴이다. 셋째 입주를 지원하기 위하여 평당 2백만원이 넘는 토지조성비를 몇십만원으로 내려준다니 납득할 수가 없다. 여타 산업단지들의 역차별의 문제제기를 차치하고라도 그 원가차익은 누가 부담하는 것인지는 생각지도 않았다는 말이 된다. 결국 일반국민의 부담이 되는데 이것을 연장하면 그 몇몇 기업이나 학교, 연구소등에게 모든 국민이 보조를 하여 주는 결과가 된다. 이게 시장경제운영에서 가당한 일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자 여기서 언론을 통하여 두 가지 해결책이 제시된 것을 생각해 보자. 하나는 세종시를 원안대로 처리하여 그 정책결정의 부당함과 엄청난 사회비용을 우리 후손들이 반면교사로 삼도록 하자는 의견이다. 사실 세종시는 노무현대통령의 말대로 선거에서 ‘재미 좀 본’ 포퓨리즘의 단적인 예이다. 나라야 어찌되던 정권을 잡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 노무현정부의 잘못된 역사적 사업을 두고두고 후손들이 배우도록 한다면 의미가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정부의 과천청사도 있는데 그것보다 한 시간 여 거리의 세종시에 몇몇 정부부처가 들어갔다고 해서 나라가 망할 일이 아니다. 요즘같이 영상회의 등 통신기술이 발달된 시대에 거리가 무슨 그리 결정적인 결함이라 할 수 있느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부청사의 분산에서 오는 비능률의 비용과 세종시를 원안대로 유지하면서 국민이 포퓰리즘의 반면교사에서 얻게 되는 교육효과를 비교하는 비용편익분석이 필요한 대목이다.
두 번째 안은 서울대학교가 몽땅 세종시로 이전하자는 의견이다. 그 의견은 서울대는 어차피 국립대학이니까 이전비용을 정부가 부담할 명분이 있는 것이고, 서울대학이 가지고 있는 지성(知性)의 총본산으로서의 상징성과 그 규모에서 오는 경제성 때문에 세종시의 변화를 가능케 한다는 의견이라고 집약할 수 있다. 물론 이 경우 서울을 떠나 있는 서울대학 이름의 모순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고, 서울대학 구성원들의 반발도 예상할 수 있다.
결국 정부안이라는 것이 이러한 극단적인 안이 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것이 현재의 예상이다. 이명박대통령이 라디오연설을 통하여 지난 대통령선거과정에서 세종시 원안추진을 약속한 것을 사과하고, 자기의 본심은 세종시 반대였음을 서울시장 재직시 표현한 것을 가지고 캄프라지하려 할지 모른다. 만일 정부가 그럴 요량이라면 그것은 큰 두 가지 잘못을 만들게 될 것이다. 하나는 이명박대통령이 대통령이 안 되었으면 모를까 대통령이 된 마당에 내가 대통령이 되고 싶어서 마음에 없는 세종시 원안추진을 약속하였다고 한다면 그것은 현직 대통령으로서 있을 수 없는 짓이다. 국민의 최고대표로서 상징성이 있는데 비록 속마음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를 공식 인정하는 것은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다는 점에서 모든 국민을 모독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노무현정부의 포퓰리즘을 성토하는 국민의 입에 재갈을 먹이는 것이 된다는 것을 이명박대통령은 알아야 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런 입장이라면 ‘원안 +알파’를 주장한 박근혜의원을 신종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할 수가 없게 된다. 자기는 그렇게 해도 되고, 박근혜의원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잃는 게임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정부가 그렇게 저렇게 변명을 하면서 이것저것 올망졸망한 입주기업이나 학교 또는 기관들을 선정 발표하게 된다면 관계법률 개정에 국민동의를 얻어내기 힘들 것이다. 국회의 야당들은 물론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기대하던 충청도민들 조차 등을 돌릴 것이다. 그렇다고 속 좁은 몇몇 한나라당의원 들의 주장처럼 국민투표 운운하는 것은 정치학적 논리의 모순성에 앞서 충청도민의 엄청난 저항을 불러올 것이다. 똑 같은 사안이 전라도에서, 경상도에서 일어났을 때도 그들이 국민투표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할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하면 답은 절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국무총리를 지낸 몇몇 국가원로들이 세종시 원안추진을 반대하는 성명을 내었다는 보도는 그것의 타당성 보다는 정부의 입장을 언제나 지원하는 원로들의 입장이지 그 이상으로 보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정말 그분들이 그런 생각이라면 왜 노무현정부에서 추진할 때 침묵하고, 대통령 선거 전 국회에서 그렇게 골치 아프게 떠들어 댈 때 침묵하고 있다가 왜 지금 그 불합리성을 주장하는지에 대한 반문에 먼저 답해야 될 것이다.
그렇다면 현시점에서 무슨 대안으로 이 문제를 결론지을 수 있을까? 생각을 처음부터 거꾸로 해보면 어떻게 될까? 첫째 세종시를 처음부터 없었던 일로 할 수는 없을지를 생각해보자. 정부청사의 분산에서 오는 비능률이 문제라면 이것을 없었던 일로 하고 끝내는 것이다.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첫째는 이미 조성되고 있는 저 땅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매각하거나 정부가 국유지로 그냥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둘째 이렇게 될 경우 정부에 대한 신뢰는 말할 것 없고 엄청난 반발이 충청인을 중심으로 일어날 것이다. 이것에 대한 부담은 물론 정부의 몫이다.
두 번째 역발상의 대안은 정부가 모두 세종시로 가는 것이다. 정부가 당초부터 수도를 옮기려면 청와대, 국회를 비롯한 모든 정부부서가 다 갈 것이지 무슨 힘없는 부서를 고르듯이 몇몇 부서를 옮기기로 계획한 것부터가 잘 못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청와대는 국회는 사법부는 왜 서울에 꼭 남아야 하나? 고통을 내가 먼저 짊어진다는 생각에서 힘 있는 권력기관이 먼저 살신성인하는 자세를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통일시대를 대비하여 남쪽으로 수도가 가는 것이 좋지 않다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 옛날 기준으로는 맞다. 그러나 현대와 같은 기계문명시대에 한 시간 남쪽에 있으나 북쪽에 있으나 그 위치가 가지는 의미는 줄어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보다도 나의 역발상제안의 주안은 21세기 지식정보사회에서 정부의 영역은 산업사회에 비하여 훨씬 줄어들고 있다는데 있다. 물론 리먼사태 이후 세계적 경제위기 앞에 정부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 현재의 흐름이지만, 경제가 정상화될 경우 더욱 정부의 기능은 타 산업에 비하여 줄어들게 될 것이다. 사양산업의 길을 장기적으로는 걷게 될 것이다. 그런 정부의 위치가 이렇게 정보와 지식이 넘쳐나는 통일시대에 서울에 있으나 좀 남쪽에 위치하나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물론 같은 논리선상에서 사실 수도를 서울을 버리고 어디로 옮겨야 하는 타당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세종시를 발상한 전 노무현정부의 인기영합주의를 성토한다. 그러나 이미 세종시를 추진하여 이미 터를 닦고 있는 현시점에서 노무현 정부를 이은 현 정부가 이것을 중단할 능력과 의지가 있다면 중단하는 것이 일안일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역 발상으로 제대로 된 수도 이전을 검토할 것을 제의해 본다. 필사즉생의 각오로 말이다.
2009년 11월 21일 토요일
석달의 외도에서 돌아오다
지난 9월 1일부터 11월이 다 간 오늘에 이르기까지 약 석 달간 나는 생각지 않던 카자크스탄 관련 일을 하느라고 정신없이 보냈다. 그러다 보니 여중재에서 답답한 이야기를 나눌 겨를이 없었다. 물론 그것은 변명이 반은 섞인 것이지만 사람이 어떤 일에 몰두하다보면 일상의 일을 돌볼 마음의 여유를 잃게 된다고 구지 변명한다.
그러니까 8월 중순 KDI 원장이 카자크스탄과 지식공유사업(knowledge sharing programs, KSP)을 하는데 그곳 정부에서 상주경제고문을 요청하는데 갈 의향이 없느냐는 제의를 받고 바로 내가 옛날에 하던 일이므로 흔쾌하게 수락하고 다른 KSP단원들과 함께 9월1일 카자크스탄으로 떠나게 되었다.
생전 생각해보지도 않던 북쪽 땅 끝 마을을 찾은 나는 한편 감탄하기도 하고 한편 한심한 생각을 하면서 만 한달을 그곳 수도인 아스타나에 있는 릭소스(Rixos)호텔에서 고독한 생활을 시작하였다. 단원들은 일주일 후 모두 돌아가고 혼자 남은 나는 아침 그곳 경제부 산하 경제연구소에 출근하여 하루 종일 사람 맞나고 회의하고 저녁 여서 일곱 시 경에 호텔로 돌아와 지친 몸을 침대에 눕히는 생활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9월 29일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고 귀국한 나는 다시 11월 10일 단원들과 함께 금년 마지막 연구마감회의를 한다고 카자크스탄을 찾았다가 14일 귀국하였다.
그곳에서의 경제고문 일은 너무나 간격이 큰 경제시스템으로 인하여 제대로 하지는 못하였지만 그래도 그들(산업부, 경제부, 경제연구소)에게 많은 교육효과는 있을 것 같다. 그들이 기대하였던 2010~2014기간동안의 국가주도 산업혁신5년계획(Enforced innovative industrial programs)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하였다. 기본적으로 카자크계획은 과거 소비에트 계획의 잔재가 남아 있는 계획성격이기 때문에 한국이 가지고 있었던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한 종합적인 유도계획(Indicative plan)과는 거리가 멀다. 유사점을 찾는다면 우리 유신 때 하였던 중화학계획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래서 그런 방향으로 권유를 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들의 전통문화인지 배우려는 자세보다는 남을 부려먹는 데 익숙한 것 같은 문화에 실망을 하고 돌아왔다. 갑자기 부자 된 졸부가 돈으로 부려먹던 외국컨설팅회사를 대하는 듯한 그들의 모습이 역겹고 자존심이 상하였지만 그래도 나 개인적으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상상해보지 못한 설원의 북극을 경험한 것도 큰 개인소득이다. 틈나면 그곳의 경제 사회에 대한 나의 관찰(observations)을 정리하리라.
이제 본연의 일로 돌아가 열심히 오늘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글을 쓸 것이다. 연내 50꼭지는 써서 한 묶음으로 정리하고 내년 새로운 출발을 하였으면 좋겠다. 그리될지 자신은 없지만 시간시간 순간순간을 아끼면서 내 생활에 충실히 할 것을 스스로에 약속하면서 외도에서 돌아온 변을 마친다.
그러니까 8월 중순 KDI 원장이 카자크스탄과 지식공유사업(knowledge sharing programs, KSP)을 하는데 그곳 정부에서 상주경제고문을 요청하는데 갈 의향이 없느냐는 제의를 받고 바로 내가 옛날에 하던 일이므로 흔쾌하게 수락하고 다른 KSP단원들과 함께 9월1일 카자크스탄으로 떠나게 되었다.
생전 생각해보지도 않던 북쪽 땅 끝 마을을 찾은 나는 한편 감탄하기도 하고 한편 한심한 생각을 하면서 만 한달을 그곳 수도인 아스타나에 있는 릭소스(Rixos)호텔에서 고독한 생활을 시작하였다. 단원들은 일주일 후 모두 돌아가고 혼자 남은 나는 아침 그곳 경제부 산하 경제연구소에 출근하여 하루 종일 사람 맞나고 회의하고 저녁 여서 일곱 시 경에 호텔로 돌아와 지친 몸을 침대에 눕히는 생활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9월 29일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고 귀국한 나는 다시 11월 10일 단원들과 함께 금년 마지막 연구마감회의를 한다고 카자크스탄을 찾았다가 14일 귀국하였다.
그곳에서의 경제고문 일은 너무나 간격이 큰 경제시스템으로 인하여 제대로 하지는 못하였지만 그래도 그들(산업부, 경제부, 경제연구소)에게 많은 교육효과는 있을 것 같다. 그들이 기대하였던 2010~2014기간동안의 국가주도 산업혁신5년계획(Enforced innovative industrial programs)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하였다. 기본적으로 카자크계획은 과거 소비에트 계획의 잔재가 남아 있는 계획성격이기 때문에 한국이 가지고 있었던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한 종합적인 유도계획(Indicative plan)과는 거리가 멀다. 유사점을 찾는다면 우리 유신 때 하였던 중화학계획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래서 그런 방향으로 권유를 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들의 전통문화인지 배우려는 자세보다는 남을 부려먹는 데 익숙한 것 같은 문화에 실망을 하고 돌아왔다. 갑자기 부자 된 졸부가 돈으로 부려먹던 외국컨설팅회사를 대하는 듯한 그들의 모습이 역겹고 자존심이 상하였지만 그래도 나 개인적으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상상해보지 못한 설원의 북극을 경험한 것도 큰 개인소득이다. 틈나면 그곳의 경제 사회에 대한 나의 관찰(observations)을 정리하리라.
이제 본연의 일로 돌아가 열심히 오늘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글을 쓸 것이다. 연내 50꼭지는 써서 한 묶음으로 정리하고 내년 새로운 출발을 하였으면 좋겠다. 그리될지 자신은 없지만 시간시간 순간순간을 아끼면서 내 생활에 충실히 할 것을 스스로에 약속하면서 외도에서 돌아온 변을 마친다.
2009년 9월 30일 수요일
경제운영과 넛지(Nudge)
최근 모일간지에서 Robert H Thaler(미 시카고대학 경영연구소 교수)와의 인터뷰기사를 실으면서 최근 유행하는 그의 넛지(옆구리를 슬쩍 찔러 원하는 방향의 행동을 유도함)에 대한 내용을 상세하게 소개한바 있다.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로 공인되는 탈러의 넛지정책은 요즘 유행하는 훌루처럼 세계지도자들의 관심사라 한다. 우리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하여 오바마 미국대통령, 호주수상, 차기집권이 예상되는 영국의 보수당수 등이 모두 넛지 팬이란다. 중도를 내세운 한국의 대통령이야 우선 좌우를 아우른다는 이 행동경제학에 마음이 끌릴 것이다.
탈(脫)이념사회에서 새삼 좌와 우를 갈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시대에 뒤진 한국적 현실이지만, 중도를 표방하면서 좌와 우의 이념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이명박대통령으로서는 탈러교수의 넛지가 자기정당화의 훌륭한 지주라고 생각하고 싶을 것이다. 남자화장실의 파리 한 마리 그림이 네델란드의 청소비용을 80% 줄였다는 이 넛지이론이 얼마나 근사하고 매력적인가? 등소평의 ‘검은고양이 흰고양이 논리’가 실용(實用)의 대표논리처럼 들리는 것처럼, 시장경제운영에서 넛지가 얼마나 근사하게 들리겠는가? 슬쩍 옆구리만 치면 시장은 거기에 물 흐르듯 반응하는 경제운영은 아마 현대경제운영자의 꿈일 것이다.
그러나 경제운영에서 이런 근사한 정책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현실적일까? 성숙된 경제의 복잡성(complexity) 속에서 이런 넛지가 얼마나 필요한 만큼 필요한 제때에 마련될 수 있느냐가 문제일 것이다. 오바마가 찾고 있는 그 복잡한 의료시스템의 넛지정책은 무엇인가? 금융시장의 그 복잡성 속에서 파생상품(derivatives)을 정돈하고 해결할 수 있는 넛지는 무엇인가? 그래서 그 해답이 이거다 하고 제때에 나올 수 있을까 나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 해답으로 적절한 통제정책을 찾고 세계화를 다운사이징하자고? 아 이런 일들이 얼마나 현실성과 정합될까? 어느 정도 세계화를 주리면서 내부통제를 좀더 효울적으로 확대하자는 제의는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기득권자(First comer)의 논리가 아닐까? 후참자인 개발도상국들은 피해는 함께 보고 이에 대한 대책은 각자가 알아서 하라는 논리처럼 들리게 될 것이다. 탈러교수의 저서처럼 승자의 저주(curse)처럼 들리지 않을까?
행동경제학이 태동하기 전이라고 생각하지만 복잡계경제학(complexity economy)이 세인의 관심을 끈 적이 있고 아직도 여전한 세계경제이슈의 중앙에 이 이론이 있다. 그 일환으로 시작된 온실가스배출을 주리자는 교도의정서에 미국은 가입을 보류하고 버텼다. 지금 행동경제학에서는 세계화를 다운사이징하자고 한다. 모두가 선진국의 입장에서 아니 오늘의 세계경제위기를 만들어낸 미국의 입장에서 이제 내 코가 석자이니 각자가 알아서 하자고 나오는 뻔뻔함이 그 뒤에 있지 않다고 반박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경제이론이 발전하는 과정을 너무 현실에 대입하는 것은 그것 자체가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편의적으로 이론을 가지고 혹세무민하려는 의도도 우리가 경계해야 힐 일이라고 판단한다. 1970년데 중반에 칠레경제가 전근대적인 운영을 하다가 빈사직전에 있었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 칠레정부는 개방과 자율화만이 살길이라고 소위 시카고학파라는 밑튼 후리드만의 제자들을 불러들여 문제를 해결하였다. IMF나 미국의 신자유주의를 등에 업고 후발국가 들의 경제운영을 퇴박놓고 세계화만이 살길이라고 외쳐대던 그 훌륭한 경제학자들은 왜 지금 입을 다물고 있나? 후리드만은 지하에서 무엇이라 할까?
넛지의 이론은 경제이론이지 그것이 현실 경제운영에 쉽게 대입되기는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특히 이런 이론을 가지고 선진국들이 자기정당화나 후참국들을 이끌어가고자 한다면 그것 자체가 넛지가 반대로 가게 된다는 점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후기] 나는 지금 카자크스탄의 수도 아스타나에 와 있다. 이 나라가 만들고자 하는 5개년계획을 자문하기위해서 이곳 정부와 함께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이론에 더욱 관심이 가는 모양이다.
탈(脫)이념사회에서 새삼 좌와 우를 갈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시대에 뒤진 한국적 현실이지만, 중도를 표방하면서 좌와 우의 이념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이명박대통령으로서는 탈러교수의 넛지가 자기정당화의 훌륭한 지주라고 생각하고 싶을 것이다. 남자화장실의 파리 한 마리 그림이 네델란드의 청소비용을 80% 줄였다는 이 넛지이론이 얼마나 근사하고 매력적인가? 등소평의 ‘검은고양이 흰고양이 논리’가 실용(實用)의 대표논리처럼 들리는 것처럼, 시장경제운영에서 넛지가 얼마나 근사하게 들리겠는가? 슬쩍 옆구리만 치면 시장은 거기에 물 흐르듯 반응하는 경제운영은 아마 현대경제운영자의 꿈일 것이다.
그러나 경제운영에서 이런 근사한 정책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현실적일까? 성숙된 경제의 복잡성(complexity) 속에서 이런 넛지가 얼마나 필요한 만큼 필요한 제때에 마련될 수 있느냐가 문제일 것이다. 오바마가 찾고 있는 그 복잡한 의료시스템의 넛지정책은 무엇인가? 금융시장의 그 복잡성 속에서 파생상품(derivatives)을 정돈하고 해결할 수 있는 넛지는 무엇인가? 그래서 그 해답이 이거다 하고 제때에 나올 수 있을까 나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 해답으로 적절한 통제정책을 찾고 세계화를 다운사이징하자고? 아 이런 일들이 얼마나 현실성과 정합될까? 어느 정도 세계화를 주리면서 내부통제를 좀더 효울적으로 확대하자는 제의는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기득권자(First comer)의 논리가 아닐까? 후참자인 개발도상국들은 피해는 함께 보고 이에 대한 대책은 각자가 알아서 하라는 논리처럼 들리게 될 것이다. 탈러교수의 저서처럼 승자의 저주(curse)처럼 들리지 않을까?
행동경제학이 태동하기 전이라고 생각하지만 복잡계경제학(complexity economy)이 세인의 관심을 끈 적이 있고 아직도 여전한 세계경제이슈의 중앙에 이 이론이 있다. 그 일환으로 시작된 온실가스배출을 주리자는 교도의정서에 미국은 가입을 보류하고 버텼다. 지금 행동경제학에서는 세계화를 다운사이징하자고 한다. 모두가 선진국의 입장에서 아니 오늘의 세계경제위기를 만들어낸 미국의 입장에서 이제 내 코가 석자이니 각자가 알아서 하자고 나오는 뻔뻔함이 그 뒤에 있지 않다고 반박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경제이론이 발전하는 과정을 너무 현실에 대입하는 것은 그것 자체가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편의적으로 이론을 가지고 혹세무민하려는 의도도 우리가 경계해야 힐 일이라고 판단한다. 1970년데 중반에 칠레경제가 전근대적인 운영을 하다가 빈사직전에 있었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 칠레정부는 개방과 자율화만이 살길이라고 소위 시카고학파라는 밑튼 후리드만의 제자들을 불러들여 문제를 해결하였다. IMF나 미국의 신자유주의를 등에 업고 후발국가 들의 경제운영을 퇴박놓고 세계화만이 살길이라고 외쳐대던 그 훌륭한 경제학자들은 왜 지금 입을 다물고 있나? 후리드만은 지하에서 무엇이라 할까?
넛지의 이론은 경제이론이지 그것이 현실 경제운영에 쉽게 대입되기는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특히 이런 이론을 가지고 선진국들이 자기정당화나 후참국들을 이끌어가고자 한다면 그것 자체가 넛지가 반대로 가게 된다는 점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후기] 나는 지금 카자크스탄의 수도 아스타나에 와 있다. 이 나라가 만들고자 하는 5개년계획을 자문하기위해서 이곳 정부와 함께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이론에 더욱 관심이 가는 모양이다.
2009년 8월 7일 금요일
쌍용차 노사 극적타결의 함정
지난 5월 22일 시작된 쌍용차 노조의 공장점거 불법파업은 회사폐망의 백척간두에서 노사가 극적 타결을 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근 3개월에 걸친 노조의 공장점거 농성은 민노총 등 외부세력의 충동 속에 불법 파괴 폭력 등 갖은 나쁜 방법으로 근로자 가족은 말할 것 없고 평택시민 그리고 온 국민을 안타깝게 만들면서 진행되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현장의 사진들이 뉴스에 비추어질 때 안타까움과 함께 온 국민이 공포와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더욱 가관인 것은 국민의 대의기관인 민노당 국회의원들이 농성장에 동참 연좌하면서 ‘구조조정 해고 반대’를 외쳐대고 있었다. 오죽하면 근로자 가족들이 농성장에 나와 제발 민노당 좀 물러나 달라고 애원(?)하고 있겠는가? 그들이 거들어 도움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사태를 망가트릴까봐 하는 가족들의 안타까운 요구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일개 회사의 일 그것도 불가피한 구조조정을 하여 회사를 회생시키고자 하는 법원의 관리를 제3자가 해고(layoff)를 하지 말라는 등의 말도 안 되는 요구사항을 가지고 정치권이 불난 집에 부채질 하며 달라붙어 있다. 노노간의 폭력이 진행될 때 어느 국회의원이 두들겨 맞고 있는 모습은 국회의원으로서의 품위고 무엇이고 없는 사람들 같았다. 국회의원이 무어 그리 대단한 존재인가? 종북좌경(從北 左傾)정당의 자기 설자리 마련을 위한 행동쯤으로 일반인들에게 인식되어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니 내가 국회의원이라고 외쳐대도 그를 향한 방망이는 그치지 않고 두들겨 패 그를 병원으로 보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일과 관련하여 두 가지 잘된 부분이 눈에 뜨인다. 하나는 법정관리인의 의연한 소신 지키기이고, 다른 하나는 경찰력의 세심하고 인내심 있는 행사였다고 할 수 있다. 막무가내기 식 농성 에서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불상사를 경찰은 잘 참고 잘 관리하여 막아내었다. 용산 참사와 대조를 이룬 결과를 놓고 경찰지휘자들이 칭찬 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잘못되었다고 판단되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것은 언론에서 사용하는 표현으로 마지막 순간의 ‘극적타결’이다. 이것은 극적타결이 아니고 노조의 투항이다. 더 이상 견딜 수 없고 옆에서 충동질 해대던 전문 농성꾼들은 어느새 핫바지 무엇 새나가듯 없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자 노조는 새로운 제안이라고 해서 법정관리인이 당초 제시한 고용조정안을 수용하는 타협을 받아드린 것이다. 이것을 노조의 체면을 세우기 위함인지 모르지만 극적타결이라는 이름으로 끝맺음을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사회에 두 가지 다짐이 있어야 하겠다.
첫째 극적타결이라는 미사여구를 이런데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불법농성을 할대로 다 해놓고 회사 기물을 다 파괴하고 회사의 이미지를 땅에 다 떨어트려 놓고 더 견딜 수 없어 투항하는 노조를 놓고 최후순간 극적타결을 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타협은 좋다. 처음부터 그리 했어야지 자기들 처지가 견딜 수 없으니 갖은 못된 짓 다해놓고 이제 타결로 해서 내 체면을 세워달라고 하는 것은 패장으로서 도리가 아니다. 파렴치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의 노사갈등의 결말이 이런 식으로 결말이 나니 잘못한 사람이 전연 손해 볼 것이 없는 모순을 가져왔다.
관련은행에서도 관행대로 타결 직후 1000억원의 구조조정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들고 나오고 있다. 저렇게 회사의 기물이나 이미지가 손상 될 대로 다 된 회사에 극적타결이 이루어졌다고 즉시 지원하겠다고 나서는 은행장은 정신 있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현시점에서 다시 따져보고 지원여부를 정해야지 노사타결만 되면 지원하니 회사 경영진이나 노조는 손해 볼 일이 없게 된다. 구식이다.
이것이 한국노사문화의 잘못된 관행이라고 평가한다. 노조의 존재나 그 정당한 활동을 폄훼하자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노조는 권력기관이다. 그 권력기관이 잘못하였을 때도 언제나 그들의 체면만 세워왔기 때문에 한국의 노조활동이 이렇게 과격 불법화된 것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경찰이 노조 직접책임자의 처벌을 들고 나온 것은 당연하고 잘하는 일이라고 평가해야 한다. 법에 따라 엄정한 처벌이 따라야 하고 그에 상응하여 노조에 철저하게 손해가 가도록 조치되어야 한다. 뉴욕지하철 노조의 파업에 법원이 노조가 상상할 수 없는 피해보상을 명령한 본보기가 한국에서도 나와야 한다.
둘째 발전된 민주사회에서 ‘극적타결’이라는 용어가 시장에서 사라져 주기를 바란다. 언론에 이런 용어를 사용하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운영에서 전제되는 것이 상호간의 타협이다. 그 타협이 미리미리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지 극적으로 마지막 순간에 이루어진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극적이라는 말 자체가 마지막 순간을 상정한다. 세상 일이 이런 불가피한 경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라면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비용(cost)이 필요했을 것이겠나? 경쟁력의 측면에서 이것은 고비용을 전제한다.
극적이라는 말은 타협보다는 경직된 사회구조 속에서 어떤 권력자의 인위적 개입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독재적 정치권력구조나 독과점적 대기업주의 경직된 경영구조에서 극적타결이라는 형식을 빌려 사안을 극화하고 미화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한국사회는 그런 사회구조가 아니다. 전연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와는 많이 변하였다. 마치 비민주시대의 잔재와 같은 극적타결이 점점 줄어들고 그런 표현이 언론에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더욱 가관인 것은 국민의 대의기관인 민노당 국회의원들이 농성장에 동참 연좌하면서 ‘구조조정 해고 반대’를 외쳐대고 있었다. 오죽하면 근로자 가족들이 농성장에 나와 제발 민노당 좀 물러나 달라고 애원(?)하고 있겠는가? 그들이 거들어 도움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사태를 망가트릴까봐 하는 가족들의 안타까운 요구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일개 회사의 일 그것도 불가피한 구조조정을 하여 회사를 회생시키고자 하는 법원의 관리를 제3자가 해고(layoff)를 하지 말라는 등의 말도 안 되는 요구사항을 가지고 정치권이 불난 집에 부채질 하며 달라붙어 있다. 노노간의 폭력이 진행될 때 어느 국회의원이 두들겨 맞고 있는 모습은 국회의원으로서의 품위고 무엇이고 없는 사람들 같았다. 국회의원이 무어 그리 대단한 존재인가? 종북좌경(從北 左傾)정당의 자기 설자리 마련을 위한 행동쯤으로 일반인들에게 인식되어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니 내가 국회의원이라고 외쳐대도 그를 향한 방망이는 그치지 않고 두들겨 패 그를 병원으로 보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일과 관련하여 두 가지 잘된 부분이 눈에 뜨인다. 하나는 법정관리인의 의연한 소신 지키기이고, 다른 하나는 경찰력의 세심하고 인내심 있는 행사였다고 할 수 있다. 막무가내기 식 농성 에서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불상사를 경찰은 잘 참고 잘 관리하여 막아내었다. 용산 참사와 대조를 이룬 결과를 놓고 경찰지휘자들이 칭찬 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잘못되었다고 판단되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것은 언론에서 사용하는 표현으로 마지막 순간의 ‘극적타결’이다. 이것은 극적타결이 아니고 노조의 투항이다. 더 이상 견딜 수 없고 옆에서 충동질 해대던 전문 농성꾼들은 어느새 핫바지 무엇 새나가듯 없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자 노조는 새로운 제안이라고 해서 법정관리인이 당초 제시한 고용조정안을 수용하는 타협을 받아드린 것이다. 이것을 노조의 체면을 세우기 위함인지 모르지만 극적타결이라는 이름으로 끝맺음을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사회에 두 가지 다짐이 있어야 하겠다.
첫째 극적타결이라는 미사여구를 이런데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불법농성을 할대로 다 해놓고 회사 기물을 다 파괴하고 회사의 이미지를 땅에 다 떨어트려 놓고 더 견딜 수 없어 투항하는 노조를 놓고 최후순간 극적타결을 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타협은 좋다. 처음부터 그리 했어야지 자기들 처지가 견딜 수 없으니 갖은 못된 짓 다해놓고 이제 타결로 해서 내 체면을 세워달라고 하는 것은 패장으로서 도리가 아니다. 파렴치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의 노사갈등의 결말이 이런 식으로 결말이 나니 잘못한 사람이 전연 손해 볼 것이 없는 모순을 가져왔다.
관련은행에서도 관행대로 타결 직후 1000억원의 구조조정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들고 나오고 있다. 저렇게 회사의 기물이나 이미지가 손상 될 대로 다 된 회사에 극적타결이 이루어졌다고 즉시 지원하겠다고 나서는 은행장은 정신 있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현시점에서 다시 따져보고 지원여부를 정해야지 노사타결만 되면 지원하니 회사 경영진이나 노조는 손해 볼 일이 없게 된다. 구식이다.
이것이 한국노사문화의 잘못된 관행이라고 평가한다. 노조의 존재나 그 정당한 활동을 폄훼하자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노조는 권력기관이다. 그 권력기관이 잘못하였을 때도 언제나 그들의 체면만 세워왔기 때문에 한국의 노조활동이 이렇게 과격 불법화된 것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경찰이 노조 직접책임자의 처벌을 들고 나온 것은 당연하고 잘하는 일이라고 평가해야 한다. 법에 따라 엄정한 처벌이 따라야 하고 그에 상응하여 노조에 철저하게 손해가 가도록 조치되어야 한다. 뉴욕지하철 노조의 파업에 법원이 노조가 상상할 수 없는 피해보상을 명령한 본보기가 한국에서도 나와야 한다.
둘째 발전된 민주사회에서 ‘극적타결’이라는 용어가 시장에서 사라져 주기를 바란다. 언론에 이런 용어를 사용하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운영에서 전제되는 것이 상호간의 타협이다. 그 타협이 미리미리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지 극적으로 마지막 순간에 이루어진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극적이라는 말 자체가 마지막 순간을 상정한다. 세상 일이 이런 불가피한 경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라면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비용(cost)이 필요했을 것이겠나? 경쟁력의 측면에서 이것은 고비용을 전제한다.
극적이라는 말은 타협보다는 경직된 사회구조 속에서 어떤 권력자의 인위적 개입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독재적 정치권력구조나 독과점적 대기업주의 경직된 경영구조에서 극적타결이라는 형식을 빌려 사안을 극화하고 미화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한국사회는 그런 사회구조가 아니다. 전연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와는 많이 변하였다. 마치 비민주시대의 잔재와 같은 극적타결이 점점 줄어들고 그런 표현이 언론에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2009년 8월 5일 수요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운영의 기본으로 돌아가자
언제나 그렇기는 하지만 2009년 여름 7, 8월처럼 어수선하고 뒤죽박죽인 때도 드물었던 것 같다. 지난 3월 이후 한국경제가 밑바닥을 쳤느니 아니라느니 하던 논란도 정부의 신중론 앞에 모두 하반기에도 어려움이 올 가능성이 남아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되었다. 그러나 이 예측은 금세 빗나가기 시작하였다. 7월 하반기 이후 증권시장의 활황과 함께 섬머랠리의 종착도 없이 계속 증시가 좋게 갈 것이라고 시장은 호들갑을 떨고 있다. CNN은 한국이 OECD 국가중 경기회복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라며 증시, 성장률, 설비투자 등 관련지수의 우월성을 분석한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국내 애널리스트 들 중 비관론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있고, 코스피가 어디까지 갈지 알 수 없다고들 한다.
이어서 미국을 비롯하여 EU 국가들 그리고 동국권의 개도국들 모두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경기회복의 여러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한다고 세계 언론은 분석하고 있다.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이 긴 그림자를 만들며 한낱 작은 섬나라경제로 전락한다고 하던 영국경제에 대한 비관도 HSBC 등 주요은행들의 이익실현을 시작으로 긍정적인 지표들이 나타난다고 하고 있다. 새로운 번영을 찾아 막 출발하고 있는 듯한 세계경제의 회복 소식이다. 그 출발 대열 맨 앞에 한국경제가 서있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한국경제의 취약성과 위험 노출에 대한 악의적인 분석을 쏟아내던 국제금융시장도 한국의 외환보유가 리먼사태 이전의 수준인 3300억달러를 넘어서자 조용해졌다. 가장 악의에 찾던 HSBC 등 영국계은행, Financial Times 등 언론들도 할 말을 잃었다. 금년 마이나스 4%를 예상하던 IMF의 한국경제전망도 최근 부총재의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경제의 회복과 정부의 경제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고 아직 좀 이르기는 하지만 한국사람 모두가 서로 위로하고 칭찬하고 격려할 일이다.
그러나 한국 안에 들어와 요즘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답답한 일 뿐인 것 같아 허망하기조차 하다. 이런 이율배반적 현실 앞에 한국사람 모두 마음자세를 다잡아야 할 것 같아 원론적인 이야기를 다시 하고자 한다. 정치권 사회단체 언론 그리고 정부 모두가 다시 한번 반성하는 계기가 있어야 하겠다는 마음이다. 결론은 우리 모두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운영의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이다.
첫째 금년 들어 지난 3월에 이어 7월 임시국회에서 미디어 관련법을 가지고 여야가 생사를 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간의 긴 처리과정은 여기서 생략하자. 결국 국회의장 직권으로 7월 말 상정되어 국회를 통과하고 공포된 미디어관련법을 야당인 민주당은 절차상의 문제를 가지고 원천무효라고 주장하고 국회를 뛰쳐나가 장외투쟁을 벌리고 있다.
사실 미디어관련법이라고 나도 쓰고 있지만 나도 그것의 정확한 명칭 조차 모를 정도로 일반 국민생활과는 직접관련이 없는 법률안을 가지고 정치권은 생사를 건 투쟁을 하고 있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방송시장에 보다 경쟁을 도입하려는 시도에 대하여 기존 방송사의 이익 고수를 위한 밥그릇 싸움을 국회가 대리전하고 있는 꼴이다.
언제나 말하는 것이지만 한국의 정치권 특히 국회의원의 본분이 무엇인지 새삼 따져야하겠다. 국회의원은 당선되면 ‘ 나는 ....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 합니다 ’하는 내용의 대국민선서를 한다. 미디어관련법이 국가이익에 무슨 영향을 주게 될 것인가? 민주당이 사생결단을 하고 있는 것처럼 이것이 국민생활에, 민주주의에 무슨 심각한 해악이 있는 것인가?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재벌에 방송을 허가해 주면 시장경제에 어떠한 악영향을 끼친단 말인가? 민주당 주장대로 정부의 언론장악으로 독재를 시도한다면 대상수자가 줄어야지 그 대상이 늘면 더 어렵게 되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대기업이나 대형 신문사가 방송업을 하면 시장경제질서에 나쁜 영향을 끼치고 국가이익에 얼마나 손해를 본다고 그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오히려 일부 기득권방송사의 이익을 대변한다면 그것은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직무를 수행해야하는 국회의원의 본분을 망각한 처사라고 평가해야 한다. 물론 그 처리과정에서 집권당인 한나라당이나 정부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었음도 지적할 수 있지만 이것은 근본을 따지는데 있어서 곁가지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결론은 민주당의 국회의원 신분을 망각한 원외투쟁은 잘못된 것으로 비판받아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세계적 경제위기에 그것이 국가의 이익을 우선으로 해야 하는 국회의원의 해야할 일인지 민주당은 스스로 반문하고 국민 앞에 속죄해야 할 일이다.
둘째 언론보도에 의하면 최근 국가정보원은 자금의 테러지원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하여 영장 없이 개인과 법인의 금융거래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도 원론적인 입장에서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할 일임을 문제제기하고자 한다. 현행법(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에도 불법재산이나 자금세탁 등에 관련된 수사에 필요한 별도 금융정보를 검찰총장이나 국세청장등 제한된 관련기관의 요구에 따라 제공하게 되어 있다. 그 관련기관에 국가정보원을 추가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할 것이다.
최근 대 테러 대응이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국가경영의 최우선순위에 들어가는 중요한 사항이고 그 심각성이 더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국정원이 그런 시도를 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금융실명제 운영의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어느 경제정책과 관련된 문제도 그 나라의 사회 환경과 관련하여 그 제도의 폭과 깊이가 차이가 있게 마련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금융실명제는 1993년 시행된 이후 사실 만신창이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융거래는 본질상 비밀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범죄혐의나 행정편의에 의해 제도적으로 마구 노출될 경우 금융거래는 자꾸 지하로 숨으려고 하고 그러면 그럴수록 금융실명거래제도는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지하경제는 더욱 확대 된다.
그래서 독일의 경우에는 금융정보의 제공 경우에도 의심되는 사람 그것도 특정 계좌에 한정하도록 매우 제한적으로 정보가 제공된다. 그러나 한국의 제도는 너무나 광범위하게 정보가 제공되고 그것도 원천적으로 잘 관리도 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그래서 필요한 경우 관련기관에서는 의심되는 사람의 모든 계좌는 말할 것 없고 극단적으로 말하면 사돈의 팔촌계좌도 다 파헤칠 수 있게 되어 있다. 금융실명제도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 엄격한 미국의 경우에도 장기적인 국채 등의 경우는 제한적으로 무기명으로 거래할 수 있는 길이 트여있다. 일부 퇴로를 만들어 놓고 있다. 그 대신 일반 계좌의 경우는 엄격한 법의 보호를 받게 되어 있다. 한국의 경우는 반대로 모든 금융거래는 모두 실명으로 하는 저인망식이고 그렇게 모아진 거래의 비밀보호는 느슨하게 되어 있다.
그 느슨함에 현실적으로 권력기관인 국가정보원이 추가된다면 그것이 아무리 선한 목적을 가졌을지라도 그것은 금융거래 실명화의 명분을 본질적으로 훼손하게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시장경제운영에 반하는 제도보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정보원이 좀 번거롭더라도 이 문제는 재고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한다.
셋째 현재의 국가재정운영도 관리에 있어 보다 치밀성과 효율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IMF의 평가대로 한국정부의 위기극복을 위한 재정운영은 비교적 잘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재정구조의 왜곡을 분석하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GDP대비 국가부채의 비율이 2009년 35.6%로 작년의 30.1%에서 크게 늘어났고 내년 2010년에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거기다가 실업의 증가 등에 따라 소득분배구조가 빨리 왜곡되어 가고 있다. 분석에 의하면 소득 상위20%와 하위 20%의 비율이 9배에 가깝게 되었다고 하니 전국가구소득조사통계 이후 가장 큰 분배악화의 모습이다. 국가부채는 늘고 저소득층의 상대적 어려움이 확대되는 부담을 안고 정부는 재정운영을 해야 할 상황이다.
경제위기 초기에 치중되었던 전통적 방식의 사회간접자본 중심의 재정확대는 부가가치 증식이나 정규인력 흡수에 한계가 있게 되어 있지만 그래도 단기적 효과는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단기처방으로는 손쉬운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재정지출을 경제구조의 개선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여야 할 형편이다. 그래서 교육 지식 정보 기술 등 분야에 보다 치중하여 경제가 무역의존에서 벗어나도록 지원해야 한다. 성장의 동력도 환경친화적인 곳에서 찾아야 할 상황이다. 저탄소 녹색성장의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경기침체에서 상대적으로 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소득층을 위한 재정지출을 확대해야 할 형편이다. 이런 일들은 초기 보다 많은 투자를 필요로 한다. 반면 부가가치 증식이 느리고 고용흡수도 비탄력적이 되게 됨으로 재정의 부담을 더 많게 할 것이다. 이것을 감내하는 지혜와 노력이 정부가 감당할 몫이라고 할 수 있다. 엄청나게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재정투자의 방향전환은 보다 치밀한 계획과 일관성을 가지고 추진되어야 할 사항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성장동력에 대한 청사진을 내어놓고 그것이 초기 잠재성장률의 감소를 감내할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전문기관을 통하여 연구부석하여 그 감내 수준을 정해야 한다. 이런 준비 없이 흐름이 그렇다고 무작정 풍덩 물에 뛰어드는 우를 정부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가다가 중지하는 부담은 엄청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 정보 기술을 기반으로하는 새로운 성장분야를 정부는 전문기관과 함께 개발하여 투자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KDI 등 국책연구기관에서 과거 한국정부가 5개년 경제개발계획을 만들 듯 새로운 장기발전정책을 다듬는 작업을 시작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저소득층 정책도 이명박정부의 경제정책전환을 의미하는 것처럼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친 기업정책을 버리고 소득분배정책으로 정책을 전환한다는 접근을 할 경우 그것이 바로 인기주의(populism)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결국 이명박정부는 인기에 연연하여 좌고우면하면 이제 돌이킬 시간조차 없게 된다. 당초 선거에서 국민에게 공약한 사항들을 초심으로 돌아가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의연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시장경제운영의 기본을 지켜야 한다.
넷째 재야세력들이나 전업노동세력들도 과거 군사독재에 항거하던 방식으로 사회운동을 하면 안 된다. 이제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되는 나라다. 독재정권도 아니고, 시장에서 경쟁탈락자가 있을지언정 있는 자가 없는 자를 수탈하는 사회도 아니다. 공권력은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대항하고 투쟁해야 할 대상이 아님을 국민 모두가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최근 일부 재야 인권단체들이 정부가 국가인권위원장을 재야세력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임명하였다 하여 그를 인권위원장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이를 내외에 선전하고 다닌다고 한다. 그 이유인즉슨 임명과정에서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한다. 공론화를 하지 않은 것이 임명절차상 무슨 법률적 하자가 있다면 모를까 내가 사전에 몰랐고 그래서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인권위원장이 되었으니 이를 인정할 수 없다면 그런 억지는 민주주의의 기본에 반하는 것이다. 인권위원장이 어떤 사람인지, 그 사람이 인권분야에 얼마나 부적격의 사람인지 나는 모른다. 그래서 당연히 정부라는 대의기관을 두어 나(국민주권)를 대신하여 인권위원장을 대통령이 임명하게 되어 있는 것이 현행제도인 것은 초등학생도 아는 논리 아닌가? 그런 뻔한 이치를 놓고 막무가내로 반대하여 한국정부의 국제인권활동을 깎아내리는 재야 운동가들의 행태는 한심하다 아니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기본에 반하는 행동이다.
최근 쌍용자동차 문제와 관련하여 노와 사 그리고 노와 공권력과의 관계에서 큰 무리가 일어났다. 경영이 되지 못하여 정리해고가 불가피하다는 법정관리인의 정책은 불가피한 선택일 것이다. 법정관리인은 말 그대로 법원을 대신하여 회사를 관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거기에 선입견이나 이해의 충돌이 있을 수 없다. 그런 법정관리인이 내린 결론을 안 된다고 막무가내로 버티면 누가 그 회사를 지탱해 나갈 것인가? 해고되는 당사자 입장이야 이해되는 면이 있지만 회사가 문을 닫게 생겼는데 회사를 회생시키기 위하여 법으로 회생절차를 밟고 그 일환으로 정리해고를 하는 것을 받아드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회사를 살리지 말고 망하게 하라는 이야기와 같은 결과가 되는 것 아닌가? 그런 투쟁을 위하여 외부기관(민노총)에서 지원세력이 합세하여 경찰의 진압과 맞서 전쟁터와 유사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 최근의 쌍용자동차 사태이다.
경찰을 공권력을 투쟁의 대상으로 삼는 노조의 행동은 모든 국민을 상대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독재정권에 대항하였던 옛날 방식이다. 당사자에게는 미안하지만 쌍용차가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지켜야 할 대의는 아닌 것이다. 일개 회사의 일이다. 이 일로 인하여 국민경제에 나쁜 영향을 준다면 그것은 거꾸로 공권력이 지켜야 할 대상이고 그에 대항하는 것은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인 것이다. 공권력은 국민의 이익을 지키기 위하여 엄정히 행사되어야지 일부 노동세력에 의한 투쟁의 대상이 될 수는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이제 재야세력이던 노동세력이던 농민이던 학생이던 정치권이던 국회의원이던 누구든 공권력을 자기들과 같은 차원으로 두고 투쟁을 하는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자기가 정한 법질서를 지키고, 법률로 만들어진 대의기관인 공권력은 국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기관이고 이는 국민의 편이지 다른 국민의 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공권력이 엄정할 때 법질서는 지켜지고 민주주의가 성립되는 것은 당연한 논리이다.
자 이제 2009년도 5개월 남았다. 이 기간동안 한국사회는 민주주의를 잘 지키고 시장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 세계적 경제위기의 극복여부가 판가름 나는 것이 금년 남은 다섯 달에 달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땅에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위기극복 성공사례를 만들어내고, 지금까지 폄훼되었던 한국경제의 위상을 내로라하게 내세울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이루어내는 방법은 간단하다. 국민과 정부 모두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운영의 기본을 지키는 것이 그 대답이다. 나만 옳다고 주장하지 말고 상대방을 존중하자. 답답해도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 시장경제의 기본 틀을 지켜나가는 국민 그리고 나라가 되면 된다. 지금 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한국사회는 또 뒷걸음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이어서 미국을 비롯하여 EU 국가들 그리고 동국권의 개도국들 모두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경기회복의 여러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한다고 세계 언론은 분석하고 있다.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이 긴 그림자를 만들며 한낱 작은 섬나라경제로 전락한다고 하던 영국경제에 대한 비관도 HSBC 등 주요은행들의 이익실현을 시작으로 긍정적인 지표들이 나타난다고 하고 있다. 새로운 번영을 찾아 막 출발하고 있는 듯한 세계경제의 회복 소식이다. 그 출발 대열 맨 앞에 한국경제가 서있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한국경제의 취약성과 위험 노출에 대한 악의적인 분석을 쏟아내던 국제금융시장도 한국의 외환보유가 리먼사태 이전의 수준인 3300억달러를 넘어서자 조용해졌다. 가장 악의에 찾던 HSBC 등 영국계은행, Financial Times 등 언론들도 할 말을 잃었다. 금년 마이나스 4%를 예상하던 IMF의 한국경제전망도 최근 부총재의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경제의 회복과 정부의 경제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고 아직 좀 이르기는 하지만 한국사람 모두가 서로 위로하고 칭찬하고 격려할 일이다.
그러나 한국 안에 들어와 요즘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답답한 일 뿐인 것 같아 허망하기조차 하다. 이런 이율배반적 현실 앞에 한국사람 모두 마음자세를 다잡아야 할 것 같아 원론적인 이야기를 다시 하고자 한다. 정치권 사회단체 언론 그리고 정부 모두가 다시 한번 반성하는 계기가 있어야 하겠다는 마음이다. 결론은 우리 모두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운영의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이다.
첫째 금년 들어 지난 3월에 이어 7월 임시국회에서 미디어 관련법을 가지고 여야가 생사를 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간의 긴 처리과정은 여기서 생략하자. 결국 국회의장 직권으로 7월 말 상정되어 국회를 통과하고 공포된 미디어관련법을 야당인 민주당은 절차상의 문제를 가지고 원천무효라고 주장하고 국회를 뛰쳐나가 장외투쟁을 벌리고 있다.
사실 미디어관련법이라고 나도 쓰고 있지만 나도 그것의 정확한 명칭 조차 모를 정도로 일반 국민생활과는 직접관련이 없는 법률안을 가지고 정치권은 생사를 건 투쟁을 하고 있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방송시장에 보다 경쟁을 도입하려는 시도에 대하여 기존 방송사의 이익 고수를 위한 밥그릇 싸움을 국회가 대리전하고 있는 꼴이다.
언제나 말하는 것이지만 한국의 정치권 특히 국회의원의 본분이 무엇인지 새삼 따져야하겠다. 국회의원은 당선되면 ‘ 나는 ....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 합니다 ’하는 내용의 대국민선서를 한다. 미디어관련법이 국가이익에 무슨 영향을 주게 될 것인가? 민주당이 사생결단을 하고 있는 것처럼 이것이 국민생활에, 민주주의에 무슨 심각한 해악이 있는 것인가?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재벌에 방송을 허가해 주면 시장경제에 어떠한 악영향을 끼친단 말인가? 민주당 주장대로 정부의 언론장악으로 독재를 시도한다면 대상수자가 줄어야지 그 대상이 늘면 더 어렵게 되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대기업이나 대형 신문사가 방송업을 하면 시장경제질서에 나쁜 영향을 끼치고 국가이익에 얼마나 손해를 본다고 그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오히려 일부 기득권방송사의 이익을 대변한다면 그것은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직무를 수행해야하는 국회의원의 본분을 망각한 처사라고 평가해야 한다. 물론 그 처리과정에서 집권당인 한나라당이나 정부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었음도 지적할 수 있지만 이것은 근본을 따지는데 있어서 곁가지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결론은 민주당의 국회의원 신분을 망각한 원외투쟁은 잘못된 것으로 비판받아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세계적 경제위기에 그것이 국가의 이익을 우선으로 해야 하는 국회의원의 해야할 일인지 민주당은 스스로 반문하고 국민 앞에 속죄해야 할 일이다.
둘째 언론보도에 의하면 최근 국가정보원은 자금의 테러지원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하여 영장 없이 개인과 법인의 금융거래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도 원론적인 입장에서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할 일임을 문제제기하고자 한다. 현행법(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에도 불법재산이나 자금세탁 등에 관련된 수사에 필요한 별도 금융정보를 검찰총장이나 국세청장등 제한된 관련기관의 요구에 따라 제공하게 되어 있다. 그 관련기관에 국가정보원을 추가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할 것이다.
최근 대 테러 대응이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국가경영의 최우선순위에 들어가는 중요한 사항이고 그 심각성이 더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국정원이 그런 시도를 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금융실명제 운영의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어느 경제정책과 관련된 문제도 그 나라의 사회 환경과 관련하여 그 제도의 폭과 깊이가 차이가 있게 마련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금융실명제는 1993년 시행된 이후 사실 만신창이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융거래는 본질상 비밀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범죄혐의나 행정편의에 의해 제도적으로 마구 노출될 경우 금융거래는 자꾸 지하로 숨으려고 하고 그러면 그럴수록 금융실명거래제도는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지하경제는 더욱 확대 된다.
그래서 독일의 경우에는 금융정보의 제공 경우에도 의심되는 사람 그것도 특정 계좌에 한정하도록 매우 제한적으로 정보가 제공된다. 그러나 한국의 제도는 너무나 광범위하게 정보가 제공되고 그것도 원천적으로 잘 관리도 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그래서 필요한 경우 관련기관에서는 의심되는 사람의 모든 계좌는 말할 것 없고 극단적으로 말하면 사돈의 팔촌계좌도 다 파헤칠 수 있게 되어 있다. 금융실명제도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 엄격한 미국의 경우에도 장기적인 국채 등의 경우는 제한적으로 무기명으로 거래할 수 있는 길이 트여있다. 일부 퇴로를 만들어 놓고 있다. 그 대신 일반 계좌의 경우는 엄격한 법의 보호를 받게 되어 있다. 한국의 경우는 반대로 모든 금융거래는 모두 실명으로 하는 저인망식이고 그렇게 모아진 거래의 비밀보호는 느슨하게 되어 있다.
그 느슨함에 현실적으로 권력기관인 국가정보원이 추가된다면 그것이 아무리 선한 목적을 가졌을지라도 그것은 금융거래 실명화의 명분을 본질적으로 훼손하게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시장경제운영에 반하는 제도보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정보원이 좀 번거롭더라도 이 문제는 재고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한다.
셋째 현재의 국가재정운영도 관리에 있어 보다 치밀성과 효율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IMF의 평가대로 한국정부의 위기극복을 위한 재정운영은 비교적 잘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재정구조의 왜곡을 분석하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GDP대비 국가부채의 비율이 2009년 35.6%로 작년의 30.1%에서 크게 늘어났고 내년 2010년에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거기다가 실업의 증가 등에 따라 소득분배구조가 빨리 왜곡되어 가고 있다. 분석에 의하면 소득 상위20%와 하위 20%의 비율이 9배에 가깝게 되었다고 하니 전국가구소득조사통계 이후 가장 큰 분배악화의 모습이다. 국가부채는 늘고 저소득층의 상대적 어려움이 확대되는 부담을 안고 정부는 재정운영을 해야 할 상황이다.
경제위기 초기에 치중되었던 전통적 방식의 사회간접자본 중심의 재정확대는 부가가치 증식이나 정규인력 흡수에 한계가 있게 되어 있지만 그래도 단기적 효과는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단기처방으로는 손쉬운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재정지출을 경제구조의 개선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여야 할 형편이다. 그래서 교육 지식 정보 기술 등 분야에 보다 치중하여 경제가 무역의존에서 벗어나도록 지원해야 한다. 성장의 동력도 환경친화적인 곳에서 찾아야 할 상황이다. 저탄소 녹색성장의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경기침체에서 상대적으로 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소득층을 위한 재정지출을 확대해야 할 형편이다. 이런 일들은 초기 보다 많은 투자를 필요로 한다. 반면 부가가치 증식이 느리고 고용흡수도 비탄력적이 되게 됨으로 재정의 부담을 더 많게 할 것이다. 이것을 감내하는 지혜와 노력이 정부가 감당할 몫이라고 할 수 있다. 엄청나게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재정투자의 방향전환은 보다 치밀한 계획과 일관성을 가지고 추진되어야 할 사항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성장동력에 대한 청사진을 내어놓고 그것이 초기 잠재성장률의 감소를 감내할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전문기관을 통하여 연구부석하여 그 감내 수준을 정해야 한다. 이런 준비 없이 흐름이 그렇다고 무작정 풍덩 물에 뛰어드는 우를 정부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가다가 중지하는 부담은 엄청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 정보 기술을 기반으로하는 새로운 성장분야를 정부는 전문기관과 함께 개발하여 투자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KDI 등 국책연구기관에서 과거 한국정부가 5개년 경제개발계획을 만들 듯 새로운 장기발전정책을 다듬는 작업을 시작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저소득층 정책도 이명박정부의 경제정책전환을 의미하는 것처럼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친 기업정책을 버리고 소득분배정책으로 정책을 전환한다는 접근을 할 경우 그것이 바로 인기주의(populism)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결국 이명박정부는 인기에 연연하여 좌고우면하면 이제 돌이킬 시간조차 없게 된다. 당초 선거에서 국민에게 공약한 사항들을 초심으로 돌아가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의연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시장경제운영의 기본을 지켜야 한다.
넷째 재야세력들이나 전업노동세력들도 과거 군사독재에 항거하던 방식으로 사회운동을 하면 안 된다. 이제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되는 나라다. 독재정권도 아니고, 시장에서 경쟁탈락자가 있을지언정 있는 자가 없는 자를 수탈하는 사회도 아니다. 공권력은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대항하고 투쟁해야 할 대상이 아님을 국민 모두가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최근 일부 재야 인권단체들이 정부가 국가인권위원장을 재야세력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임명하였다 하여 그를 인권위원장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이를 내외에 선전하고 다닌다고 한다. 그 이유인즉슨 임명과정에서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한다. 공론화를 하지 않은 것이 임명절차상 무슨 법률적 하자가 있다면 모를까 내가 사전에 몰랐고 그래서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인권위원장이 되었으니 이를 인정할 수 없다면 그런 억지는 민주주의의 기본에 반하는 것이다. 인권위원장이 어떤 사람인지, 그 사람이 인권분야에 얼마나 부적격의 사람인지 나는 모른다. 그래서 당연히 정부라는 대의기관을 두어 나(국민주권)를 대신하여 인권위원장을 대통령이 임명하게 되어 있는 것이 현행제도인 것은 초등학생도 아는 논리 아닌가? 그런 뻔한 이치를 놓고 막무가내로 반대하여 한국정부의 국제인권활동을 깎아내리는 재야 운동가들의 행태는 한심하다 아니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기본에 반하는 행동이다.
최근 쌍용자동차 문제와 관련하여 노와 사 그리고 노와 공권력과의 관계에서 큰 무리가 일어났다. 경영이 되지 못하여 정리해고가 불가피하다는 법정관리인의 정책은 불가피한 선택일 것이다. 법정관리인은 말 그대로 법원을 대신하여 회사를 관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거기에 선입견이나 이해의 충돌이 있을 수 없다. 그런 법정관리인이 내린 결론을 안 된다고 막무가내로 버티면 누가 그 회사를 지탱해 나갈 것인가? 해고되는 당사자 입장이야 이해되는 면이 있지만 회사가 문을 닫게 생겼는데 회사를 회생시키기 위하여 법으로 회생절차를 밟고 그 일환으로 정리해고를 하는 것을 받아드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회사를 살리지 말고 망하게 하라는 이야기와 같은 결과가 되는 것 아닌가? 그런 투쟁을 위하여 외부기관(민노총)에서 지원세력이 합세하여 경찰의 진압과 맞서 전쟁터와 유사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 최근의 쌍용자동차 사태이다.
경찰을 공권력을 투쟁의 대상으로 삼는 노조의 행동은 모든 국민을 상대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독재정권에 대항하였던 옛날 방식이다. 당사자에게는 미안하지만 쌍용차가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지켜야 할 대의는 아닌 것이다. 일개 회사의 일이다. 이 일로 인하여 국민경제에 나쁜 영향을 준다면 그것은 거꾸로 공권력이 지켜야 할 대상이고 그에 대항하는 것은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인 것이다. 공권력은 국민의 이익을 지키기 위하여 엄정히 행사되어야지 일부 노동세력에 의한 투쟁의 대상이 될 수는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이제 재야세력이던 노동세력이던 농민이던 학생이던 정치권이던 국회의원이던 누구든 공권력을 자기들과 같은 차원으로 두고 투쟁을 하는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자기가 정한 법질서를 지키고, 법률로 만들어진 대의기관인 공권력은 국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기관이고 이는 국민의 편이지 다른 국민의 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공권력이 엄정할 때 법질서는 지켜지고 민주주의가 성립되는 것은 당연한 논리이다.
자 이제 2009년도 5개월 남았다. 이 기간동안 한국사회는 민주주의를 잘 지키고 시장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 세계적 경제위기의 극복여부가 판가름 나는 것이 금년 남은 다섯 달에 달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땅에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위기극복 성공사례를 만들어내고, 지금까지 폄훼되었던 한국경제의 위상을 내로라하게 내세울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이루어내는 방법은 간단하다. 국민과 정부 모두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운영의 기본을 지키는 것이 그 대답이다. 나만 옳다고 주장하지 말고 상대방을 존중하자. 답답해도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 시장경제의 기본 틀을 지켜나가는 국민 그리고 나라가 되면 된다. 지금 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한국사회는 또 뒷걸음치는 우를 범하게 된다.
2009년 7월 14일 화요일
금욕과 절제의 칼뱅주의와 아시아적 가치
영국의 BBC는 칼뱅 탄생 500주년을 맞아 네델란드를 중심으로 칼뱅주의를 바탕으로 한 정치윤리와 생활방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보도를 하였다고 국내언론(한국경제)에 기사화 되었다. 금욕과 절제를 중심으로 한 청교도주의가 미국의 이민개척사에서 개척자의 종교이었고 생활철학이었다. 그 칼뱅이즘은 미국 시장경제 발전의 이념이었고, 그것이 오늘날 미국자본주의를 꽃피게 한 원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문명사회가 복잡화되면서 미국뿐만 아니라 오늘을 사는 지구 어디에서도 이러한 청교도적 생활자세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네델란드 총리 안페터 발케넨데는 본인이 칼뱅교도임을 공언하고, 엄격한 도덕성과 절도 있는 규범을 중시하는 정치를 펴고 있다고 한다. 그는 현재의 세계적 경제위기를 ‘돈에 대한 집착과 탐욕, 사회전체를 생각하지 않는 이기주의가 초래한 도덕성 위기’에서 찾고 있다. 사회의 강력한 도덕적 받침대가 바로 칼뱅이즘이라고 평가하고 칼뱅주의의 부활을 그는 주장하고 있다 한다.
작년 말 미국 발 세계경제위기는 금융가의 탐욕과 방탕한 경영에서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바탕(leverage)이 없는 신용, 무한대에 가까운 바탕이 없는 상품판매 그리고 종착역을 뻔히 알면서도 나한테만은 그 종착역이 되지 않을 것을 막연하게 바라면서 인간은 탐욕의 바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미국 리먼사태 당시의 시장과 인간의 본성과의 관계라고 분석할 수 있다. 그런 시장상황을 방치한 정책당국이나 감독기구가 일차적으로 비난을 받아야 하겠지만 아마 그들도 불운의 종착역이 그들 대에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살아왔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것이 터진 것이 세계적 경제위기이고 모든 지구인들은 도매금으로 볼모가 되어 있다.
이것을 해결하겠다고 선진국들은 G-10 정상회의를 만들고 각국이 재정을 풀고, 돈을 풀자고 합의하고 있다. 그만그만한 조치들이 발전된 나라들 사이에서 취해졌고, 미국을 위시하여 정책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는 나라들이 힘겹게 시장에 재정지원과 함께 돈을 한량없이 풀어대고 있다. 10개월이 지난 2009년 7월 중순 그러나 세계경제가 신통한 반응을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 벌써 각국정부의 재정파탄이나 강력 인플레이션 걱정이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타임지가 지난 3월 선정한 세계를 바꾸고 있는 10대 아이디어에 뽑힌 신칼뱅주의가 네델란드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여러 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현대문명의 마지막 이념이라 할 수 있는 시장경제나 의회민주주의는 자체가 가지고 있는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또 반면 여러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탐욕성이나 무절제가 시장에서 그리고 의회민주주의에서 여러 문제를 잉태하게 마련이다. 그 근원처방을 칼뱅에서 찾아보자는 것은 시의성이나 논리성으로 볼 때 매우 타당한 접근이라고 평가된다.
1990년대 말 아시아의 금융위기 시에 미국은 IMF 등을 동원하여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국가 들에게 가혹할 만큼 자유시장논리에 입각한 개방과 정부 시장관여정책 축소를 강요하였다. 당시 동원된 미국의 경제학자들이나 투자회사 운영자들은 입만 열면 시장경제논리로 정부는 시장에서 철수하고 정부의 보호를 철폐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때 이런 서구적 시장논리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사람이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수상이었고 마아티르 말레지아 총리였다. 소위 ‘아시아적 가치(Asia's value)’가 있음을 주장한 그들의 논리는 물론 서구의 힘 앞에 큰 반응을 받지 못하였다.
‘아시아적 가치’는 여러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고, 그것이 아시아의 발전에 큰 기여가 있었음을 증명할 수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일본이나 한국의 빠른 발전을 동양의 유교문화에서 찾은 연구도 있다. 역사를 보더라도 아시아는 서구사회와 차별되는 사회윤리 도덕이 존재하여 온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효(孝)를 바탕으로 한 가부장적 문화나, 충(忠)을 바탕으로 한 헌신의 문화가 존재한다. 연장자에 대한 예의나 조직을 위한 자기희생, 근면 절제 등의 아이사적 독특한 문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아시아적 가치가 신칼뱅이즘과 상통한다고 판단한다.
아시아적 가치는 당초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퇴박을 놓았던 바로 그 미국의 경제학자들이나 펀드 매네이저들이 지금 앞장서 정부보호와 시장 간여를 강조하고 있는 아이러니 앞에 칼뱅주의의 부활 시도는 정말 시의적절하고 옳은 방향이라고 평가한다.
한국사회에 표출된 후기산업사회의 문제들이나 자본주의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둘러보면서 그리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한국정치권의 행태를 보면서 다시 한국사회에 아시아적 가치가 강조되고 생활화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것이 이름을 어떻게 붙이던 ‘금욕과 절제’로 대표되는 아시아적 가치로 부활되어 나 개인의 이익과 함께 우리가 속해 있는 모든 공동체의 이익이 함께 추구되는 윤리와 도덕이 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한국에도 네델란드의 안페터 총리 같은 지도자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네델란드 총리 안페터 발케넨데는 본인이 칼뱅교도임을 공언하고, 엄격한 도덕성과 절도 있는 규범을 중시하는 정치를 펴고 있다고 한다. 그는 현재의 세계적 경제위기를 ‘돈에 대한 집착과 탐욕, 사회전체를 생각하지 않는 이기주의가 초래한 도덕성 위기’에서 찾고 있다. 사회의 강력한 도덕적 받침대가 바로 칼뱅이즘이라고 평가하고 칼뱅주의의 부활을 그는 주장하고 있다 한다.
작년 말 미국 발 세계경제위기는 금융가의 탐욕과 방탕한 경영에서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바탕(leverage)이 없는 신용, 무한대에 가까운 바탕이 없는 상품판매 그리고 종착역을 뻔히 알면서도 나한테만은 그 종착역이 되지 않을 것을 막연하게 바라면서 인간은 탐욕의 바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미국 리먼사태 당시의 시장과 인간의 본성과의 관계라고 분석할 수 있다. 그런 시장상황을 방치한 정책당국이나 감독기구가 일차적으로 비난을 받아야 하겠지만 아마 그들도 불운의 종착역이 그들 대에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살아왔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것이 터진 것이 세계적 경제위기이고 모든 지구인들은 도매금으로 볼모가 되어 있다.
이것을 해결하겠다고 선진국들은 G-10 정상회의를 만들고 각국이 재정을 풀고, 돈을 풀자고 합의하고 있다. 그만그만한 조치들이 발전된 나라들 사이에서 취해졌고, 미국을 위시하여 정책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는 나라들이 힘겹게 시장에 재정지원과 함께 돈을 한량없이 풀어대고 있다. 10개월이 지난 2009년 7월 중순 그러나 세계경제가 신통한 반응을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 벌써 각국정부의 재정파탄이나 강력 인플레이션 걱정이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타임지가 지난 3월 선정한 세계를 바꾸고 있는 10대 아이디어에 뽑힌 신칼뱅주의가 네델란드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여러 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현대문명의 마지막 이념이라 할 수 있는 시장경제나 의회민주주의는 자체가 가지고 있는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또 반면 여러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탐욕성이나 무절제가 시장에서 그리고 의회민주주의에서 여러 문제를 잉태하게 마련이다. 그 근원처방을 칼뱅에서 찾아보자는 것은 시의성이나 논리성으로 볼 때 매우 타당한 접근이라고 평가된다.
1990년대 말 아시아의 금융위기 시에 미국은 IMF 등을 동원하여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국가 들에게 가혹할 만큼 자유시장논리에 입각한 개방과 정부 시장관여정책 축소를 강요하였다. 당시 동원된 미국의 경제학자들이나 투자회사 운영자들은 입만 열면 시장경제논리로 정부는 시장에서 철수하고 정부의 보호를 철폐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때 이런 서구적 시장논리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사람이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수상이었고 마아티르 말레지아 총리였다. 소위 ‘아시아적 가치(Asia's value)’가 있음을 주장한 그들의 논리는 물론 서구의 힘 앞에 큰 반응을 받지 못하였다.
‘아시아적 가치’는 여러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고, 그것이 아시아의 발전에 큰 기여가 있었음을 증명할 수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일본이나 한국의 빠른 발전을 동양의 유교문화에서 찾은 연구도 있다. 역사를 보더라도 아시아는 서구사회와 차별되는 사회윤리 도덕이 존재하여 온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효(孝)를 바탕으로 한 가부장적 문화나, 충(忠)을 바탕으로 한 헌신의 문화가 존재한다. 연장자에 대한 예의나 조직을 위한 자기희생, 근면 절제 등의 아이사적 독특한 문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아시아적 가치가 신칼뱅이즘과 상통한다고 판단한다.
아시아적 가치는 당초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퇴박을 놓았던 바로 그 미국의 경제학자들이나 펀드 매네이저들이 지금 앞장서 정부보호와 시장 간여를 강조하고 있는 아이러니 앞에 칼뱅주의의 부활 시도는 정말 시의적절하고 옳은 방향이라고 평가한다.
한국사회에 표출된 후기산업사회의 문제들이나 자본주의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둘러보면서 그리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한국정치권의 행태를 보면서 다시 한국사회에 아시아적 가치가 강조되고 생활화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것이 이름을 어떻게 붙이던 ‘금욕과 절제’로 대표되는 아시아적 가치로 부활되어 나 개인의 이익과 함께 우리가 속해 있는 모든 공동체의 이익이 함께 추구되는 윤리와 도덕이 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한국에도 네델란드의 안페터 총리 같은 지도자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2009년 7월 7일 화요일
북은 핵을 신주 삼고, 남은 안 되려 안달하고
1. 북은 핵을 신주 삼고
지난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을 택해 북한은 하루 동안 스커트급 미사일 7발을 발사하였다.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스스로의 존재가 있음을 미국에게 알리려 할 목적이라는 일반적인 분석이 나오고 있다. 북한은 2009년 들어서 7개월 동안 17개의 미사일을 발사하고 한차례 핵실험을 하였다. 이 엄청난 북한의 전쟁놀이에 세계가 비난하고 질타하고 있지만 당사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핵만이 자기들을 지켜주는 신주라고 그들은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이 변한 것을 북한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인지 일부러 모르는 척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옛날에 통했던 벼랑 끝 전술이 지금 오바마 정부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부러 외면하는 것 같다. 몽니를 부리면 밉더라도 어느 정도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여주었던 지난 정부시절의 전략전술이 이제 전연 다른 환경에 놓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나(북한) 여기 있다고 처절(?)하게 외치던 미국독립기념일의 미사일 발사에 대하여 미국정부는 완전하게 무시전략으로 나아가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독립기념 대국민 연설에서도 이란 핵문제는 거론했어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언급조차 없었다 한다. 그리고 대북제재는 더욱 옥죄는 모양이다. 최근 미국정부의 북한 금융제재를 위한 작업팀이 중국과 말레지아를 연이어 방문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미국의 무시전략을 북한이 모를 리 없을 텐데 이를 계속하는 것은 대외보다는 북한의 정권승계를 위한 대내전략에서 나온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러한 전쟁 놀음에 들어가는 엄청난 돈을 생각하면 더욱 무서운 생각이 든다. 언론에서 분석한 바에 의하면 금년 들어 17번의 미사일 발사에 들어간 돈이 6천 5백만불, 인공위성 발사에 4억불 도합 4억 6천 5백만 불이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여기에 핵실험 비용 5억불을 합하면 대략 10억불의 엄청난 투자가 있었을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이 정도의 규모는 북한의 1년 국방비 예산 5억 5천만 불의 두 배에 해당되는 금액이다. 이 돈으로 북한의 부족한 식량을 구입한다면 북한주민은 몇 년간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엄청난 액수가 된다. 그렇게 큰 돈을 어떻게 벌어 어떻게 회계처리 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2년 치의 국방예산을 금년 상반기에 다 써버리는 것은 앞날을 생각 안하고 당장이 결정적인 계기라고 북한당국이 믿고 행동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2. 남은 안 되려 안달하고
이러한 북한의 전쟁 놀음에 남한 사람은 언제나 뒷골이 땅기지 않을 수 없다. 말할 필요도 없이 북한당국의 핵 놀음은 절대 포기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그들을 지탱해 주는 마지막 지렛대라고 그들이 믿고 있는 한 그들은 절대로 핵을 노치 않을 것이다. 반면 미국이 망나니 같은 북한 정권이 핵을 가지고 노는 것을 마냥 내버려둘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이 미국이나 전 세계적 관점에서 북한의 핵을 결정적으로 저지할 의향이나 행동을 나타내지 않을 것이다. 자국의 이익이 우선할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북한의 핵 놀음은 당분간 계속되고 놀음의 1차적인 대상은 남한이 될 것은 뻔한 이치이다. 그런대도 많은 남쪽 사람들은 북한의 위협에 마비되어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어느 인사가 북한의 미사일이 남한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망발 때문인지 모두가 그저 멍하니 앉아 있다. 머지않아 벽에 부딪칠 것이 뻔한 상황을 보면서도 습관성으로 달려가고 있는 열차를 타고 있는 형국이다. 운 좋게 북한의 내부사정으로 붕괴되어 통일을 거저 얻게 되는 행운을 바란다면 그것은 백치의 망상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절박한 상황 앞에 무슨 대응을 해야 할 것 아닌가?
이런 상황인데도 현재의 북 핵 위협이 현 정부의 비우호적인 남북협의사항 처리에서 온 것이라고 우겨대는 지도자(?)가 있다. 정부는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북에 가져다 준 돈이 현금으로 29억불, 협력사업을 포함하여 총 69억불이라고 집계하고 있다. 이 규모의 돈은 중국이 같은 기간 북한에 지원한 19억불의 3.7배에 해당하는 엄청난 돈이다. 물론 이 외에 뒷돈으로 지불된 돈을 상상하면 북한지원금은 엄청날 것이다. 분석에 의하면 현재의 북한 미사일 연구나 핵무기 개발에 들어간 돈이 13억 내지 15억불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지원하여준 돈이 이것의 4배 수준이 되는 셈이다. 물론 개발비를 어떻게 추산하느냐에 따라 개발비 총액이 25억불 수준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어떤 경우이던 우리가 보내준 돈이 북의 핵관련 투자에 들어간 돈의 2배가 넘는 셈이다. 생각하면 지금 우리가 보내준 돈으로 개발한 핵무기로 우리 목을 죄고 있는데 그 원인이 무슨 현 정부의 대북정책 때문이라고 말하는 그 지도자는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아닌 말로 남북관계를 일시 우호적으로 하였다고 하여 그들의 핵위협에서 남한이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며 오히려 영원히 그들의 핵 앞에 질질 끌려 다니는 꼴이 될 것은 뻔한 노릇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 지도자는 현재 한국의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것을 또한 걱정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근거가 이명박 대통령의 독재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그의 말대로 현재의 독재가 사실이라면 그 독재가 헌법을 위반하여 이루어 진 것인지, 그것이 헌법에 위반되었다면 그것은 대통령을 탄핵소추하거나 할 일이지 그것으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무너진다고 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 아닐 수 없다. 노무현대통령 시절 대통령이 탄핵소추를 받은 일이 있었는데 그 때도 한국의 민주주의가 무너진다고 판단해서 탄핵을 발의하였나? 과연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위험이 있다면 그것이 현 정부의 독재 때문이 아니라 북한의 핵 위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현재의 한국의 발전정도로 볼 때 한국의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것이 헌법으로 선출한 대통령의 독재에서 올 가능성은 없다고 단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헌정질서가 엄연히 존재하는데 대통령 한사람의 독재가 한국민주주의를 무너트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북한의 전쟁도발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무너질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결과를 만든 사람이 바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게 국민의 동의도 없이 돈을 퍼다 준 장본인임을 깨닫고 국민 앞에 석고대죄 할 장본인이다. 민주주의 타령을 할 일이 아니다.
현재 한국의 번영을 망가지게 하지 못해 안달하는 집단 들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제일 먼저 정치권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세계적 경제위기 앞에 정파들은 자기들 이익에 얽매어 매사를 그르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작년 국회를 구성하는데 몇 달을 소비한 현 국회는 7월 임시국회를 열지도 못하고 장외에서 몰골사나운 투쟁을 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는 비정규직근로자의 입장에서 고민하기보다는 정규직노동단체를 앞세워 정치문제화 하고자 하고 있다. 미디어법은 현 방송사들의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자하는 얄팍한 수에 온 정치권이 놀아나고 있는 꼴이다. 그것이 위기극복과 무슨 상관이 있나? 국민생활과 국민경제와 무슨 상관이 있나? 이게 한국의 정치수준이다. 국회도 열지 않고 허구한 날 쌈질만 하면서 왜 국회의원들은 그 많은 보좌관과 함께 국민으로부터 월급을 받아가고 있는지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한다. 무노동무임금 제도를 만든 사람이 바로 국회의원이다.
노동단체들도 아무데나 간섭하고 대들 일이 아니다. 조합원의 근로조권과 관련된 일에 국한해야지 무슨 자기들 조합원도 아닌 비정규직문제에 왜 관련단체가 되며 무슨 이해집단들의 행동에 무턱대고 지원한다고 나서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느 법이나 규정에서 그들에게 지원을 요청하고 있는지 생각해야한다. 노동단체라고 폭력을 쓰고 법을 위반하는 행동을 해도 된다는 규정은 없다. 이런 무분별한 무불간섭 폭력행위가 바로 한국의 민주주의를 망가트리는 행동임을 자성해야 하다.
사회단체들의 시위도 폭력을 일삼고 남의 권리를 함부로 침탈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시위 목적이 옳다손 치더라도 법을 위반하는 행동과 언동은 민주주의를 망치는 것이다. 공권력인 경찰에 폭력을 가하고 국가자산을 파괴하는 것은 국민 모두의 재산권을 침탈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공권력이 존중되지 않는 사회는 민주주의를 지킬 능력을 상실하게 됨은 당연하다. 국가기물을 파손하고 경찰을 폭행하는 것이 영웅시되는 군사독재시대의 낡은 유산에서 하루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
한 사회가 현재의 번영을 이루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선배들이 하였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어제를 생각하지 않고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들처럼 사회를 마구 휘잡고 다닌다면 그것은 현재의 번영을 망가트리고 모두 안 되려고 안달하는 꼴이 된다.
3. 미적지근한 중도강화론
이명박대통령의 최근 중도강화론을 들고 나온 것도 북한의 핵 위협 앞에 미적지근한 처사라고 평가한다. 이념시대가 이미 종말을 고하고 21세기는 각국이 번영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앞 다투어 노력하고 있는 세상이다. 물론 한국사회가 특유의 이념 논쟁의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특히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지나면서 지구상에서 소멸되어가고 있는 좌파적 잔영이 한국사회에서 다시 부각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때 나타나는 땅거미처럼 일시적으로 짖게 나타나지만 곧 소멸되는 환영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단연코 이념의 시대는 지나갔다. 21세기 세상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만이 번영을 보장하는 제도로 남아 있다. 이때에 무슨 있지도 않은 좌와 우를 가르고 또 그것을 서로 아우르는 듯한 중도를 들고 나오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필자는 평가한다. 사회를 통합하고 번영을 향하여 사회의 응집이나 신뢰를 높이기 위한 하나의 정치슬로건으로서 중도 강화론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있지도 않는 좌와 우의 이념 존재를 다시 사회에 환기시키는 부작용이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할 것이다.
4. 번영을 향한 국정장악
결론은 북의 핵 위협 앞에 움츠리지 않고 번영을 가져와야 하는 국정운영이 바로 현 이명박 정부의 사명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하여 정부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토대위에 국정이 확고하게 장악되고 집행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좌고우면하면 더욱 북의 위협에 휘말릴 위험이 있다. 철저한 원칙과 법질서가 바로서는 사회가 번영의 화두를 가지고 모두가 한군데로 응집되도록 국정을 펴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사회의 번영이 안 되도록 하기위해 안달을 하는 것 같은 지금까지의 의식과 행동을 한국사회는 벗어버려야 한다. 북한의 핵 위협이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외치는 극소수의 친북인사들은 북에 가 살 사람들이다. 절대다수의 남한 사람의 번영에 동참하는 듯하면서 망가지게 만드는 반역사적 행동을 그들이 해서는 안 된다. 지난 50년 번영을 위해 최선을 다 했던 한국사회는 다시 50년의 새 번영의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
지난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을 택해 북한은 하루 동안 스커트급 미사일 7발을 발사하였다.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스스로의 존재가 있음을 미국에게 알리려 할 목적이라는 일반적인 분석이 나오고 있다. 북한은 2009년 들어서 7개월 동안 17개의 미사일을 발사하고 한차례 핵실험을 하였다. 이 엄청난 북한의 전쟁놀이에 세계가 비난하고 질타하고 있지만 당사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핵만이 자기들을 지켜주는 신주라고 그들은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이 변한 것을 북한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인지 일부러 모르는 척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옛날에 통했던 벼랑 끝 전술이 지금 오바마 정부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부러 외면하는 것 같다. 몽니를 부리면 밉더라도 어느 정도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여주었던 지난 정부시절의 전략전술이 이제 전연 다른 환경에 놓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나(북한) 여기 있다고 처절(?)하게 외치던 미국독립기념일의 미사일 발사에 대하여 미국정부는 완전하게 무시전략으로 나아가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독립기념 대국민 연설에서도 이란 핵문제는 거론했어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언급조차 없었다 한다. 그리고 대북제재는 더욱 옥죄는 모양이다. 최근 미국정부의 북한 금융제재를 위한 작업팀이 중국과 말레지아를 연이어 방문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미국의 무시전략을 북한이 모를 리 없을 텐데 이를 계속하는 것은 대외보다는 북한의 정권승계를 위한 대내전략에서 나온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러한 전쟁 놀음에 들어가는 엄청난 돈을 생각하면 더욱 무서운 생각이 든다. 언론에서 분석한 바에 의하면 금년 들어 17번의 미사일 발사에 들어간 돈이 6천 5백만불, 인공위성 발사에 4억불 도합 4억 6천 5백만 불이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여기에 핵실험 비용 5억불을 합하면 대략 10억불의 엄청난 투자가 있었을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이 정도의 규모는 북한의 1년 국방비 예산 5억 5천만 불의 두 배에 해당되는 금액이다. 이 돈으로 북한의 부족한 식량을 구입한다면 북한주민은 몇 년간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엄청난 액수가 된다. 그렇게 큰 돈을 어떻게 벌어 어떻게 회계처리 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2년 치의 국방예산을 금년 상반기에 다 써버리는 것은 앞날을 생각 안하고 당장이 결정적인 계기라고 북한당국이 믿고 행동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2. 남은 안 되려 안달하고
이러한 북한의 전쟁 놀음에 남한 사람은 언제나 뒷골이 땅기지 않을 수 없다. 말할 필요도 없이 북한당국의 핵 놀음은 절대 포기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그들을 지탱해 주는 마지막 지렛대라고 그들이 믿고 있는 한 그들은 절대로 핵을 노치 않을 것이다. 반면 미국이 망나니 같은 북한 정권이 핵을 가지고 노는 것을 마냥 내버려둘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이 미국이나 전 세계적 관점에서 북한의 핵을 결정적으로 저지할 의향이나 행동을 나타내지 않을 것이다. 자국의 이익이 우선할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북한의 핵 놀음은 당분간 계속되고 놀음의 1차적인 대상은 남한이 될 것은 뻔한 이치이다. 그런대도 많은 남쪽 사람들은 북한의 위협에 마비되어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어느 인사가 북한의 미사일이 남한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망발 때문인지 모두가 그저 멍하니 앉아 있다. 머지않아 벽에 부딪칠 것이 뻔한 상황을 보면서도 습관성으로 달려가고 있는 열차를 타고 있는 형국이다. 운 좋게 북한의 내부사정으로 붕괴되어 통일을 거저 얻게 되는 행운을 바란다면 그것은 백치의 망상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절박한 상황 앞에 무슨 대응을 해야 할 것 아닌가?
이런 상황인데도 현재의 북 핵 위협이 현 정부의 비우호적인 남북협의사항 처리에서 온 것이라고 우겨대는 지도자(?)가 있다. 정부는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북에 가져다 준 돈이 현금으로 29억불, 협력사업을 포함하여 총 69억불이라고 집계하고 있다. 이 규모의 돈은 중국이 같은 기간 북한에 지원한 19억불의 3.7배에 해당하는 엄청난 돈이다. 물론 이 외에 뒷돈으로 지불된 돈을 상상하면 북한지원금은 엄청날 것이다. 분석에 의하면 현재의 북한 미사일 연구나 핵무기 개발에 들어간 돈이 13억 내지 15억불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지원하여준 돈이 이것의 4배 수준이 되는 셈이다. 물론 개발비를 어떻게 추산하느냐에 따라 개발비 총액이 25억불 수준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어떤 경우이던 우리가 보내준 돈이 북의 핵관련 투자에 들어간 돈의 2배가 넘는 셈이다. 생각하면 지금 우리가 보내준 돈으로 개발한 핵무기로 우리 목을 죄고 있는데 그 원인이 무슨 현 정부의 대북정책 때문이라고 말하는 그 지도자는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아닌 말로 남북관계를 일시 우호적으로 하였다고 하여 그들의 핵위협에서 남한이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며 오히려 영원히 그들의 핵 앞에 질질 끌려 다니는 꼴이 될 것은 뻔한 노릇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 지도자는 현재 한국의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것을 또한 걱정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근거가 이명박 대통령의 독재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그의 말대로 현재의 독재가 사실이라면 그 독재가 헌법을 위반하여 이루어 진 것인지, 그것이 헌법에 위반되었다면 그것은 대통령을 탄핵소추하거나 할 일이지 그것으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무너진다고 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 아닐 수 없다. 노무현대통령 시절 대통령이 탄핵소추를 받은 일이 있었는데 그 때도 한국의 민주주의가 무너진다고 판단해서 탄핵을 발의하였나? 과연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위험이 있다면 그것이 현 정부의 독재 때문이 아니라 북한의 핵 위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현재의 한국의 발전정도로 볼 때 한국의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것이 헌법으로 선출한 대통령의 독재에서 올 가능성은 없다고 단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헌정질서가 엄연히 존재하는데 대통령 한사람의 독재가 한국민주주의를 무너트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북한의 전쟁도발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무너질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결과를 만든 사람이 바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게 국민의 동의도 없이 돈을 퍼다 준 장본인임을 깨닫고 국민 앞에 석고대죄 할 장본인이다. 민주주의 타령을 할 일이 아니다.
현재 한국의 번영을 망가지게 하지 못해 안달하는 집단 들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제일 먼저 정치권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세계적 경제위기 앞에 정파들은 자기들 이익에 얽매어 매사를 그르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작년 국회를 구성하는데 몇 달을 소비한 현 국회는 7월 임시국회를 열지도 못하고 장외에서 몰골사나운 투쟁을 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는 비정규직근로자의 입장에서 고민하기보다는 정규직노동단체를 앞세워 정치문제화 하고자 하고 있다. 미디어법은 현 방송사들의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자하는 얄팍한 수에 온 정치권이 놀아나고 있는 꼴이다. 그것이 위기극복과 무슨 상관이 있나? 국민생활과 국민경제와 무슨 상관이 있나? 이게 한국의 정치수준이다. 국회도 열지 않고 허구한 날 쌈질만 하면서 왜 국회의원들은 그 많은 보좌관과 함께 국민으로부터 월급을 받아가고 있는지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한다. 무노동무임금 제도를 만든 사람이 바로 국회의원이다.
노동단체들도 아무데나 간섭하고 대들 일이 아니다. 조합원의 근로조권과 관련된 일에 국한해야지 무슨 자기들 조합원도 아닌 비정규직문제에 왜 관련단체가 되며 무슨 이해집단들의 행동에 무턱대고 지원한다고 나서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느 법이나 규정에서 그들에게 지원을 요청하고 있는지 생각해야한다. 노동단체라고 폭력을 쓰고 법을 위반하는 행동을 해도 된다는 규정은 없다. 이런 무분별한 무불간섭 폭력행위가 바로 한국의 민주주의를 망가트리는 행동임을 자성해야 하다.
사회단체들의 시위도 폭력을 일삼고 남의 권리를 함부로 침탈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시위 목적이 옳다손 치더라도 법을 위반하는 행동과 언동은 민주주의를 망치는 것이다. 공권력인 경찰에 폭력을 가하고 국가자산을 파괴하는 것은 국민 모두의 재산권을 침탈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공권력이 존중되지 않는 사회는 민주주의를 지킬 능력을 상실하게 됨은 당연하다. 국가기물을 파손하고 경찰을 폭행하는 것이 영웅시되는 군사독재시대의 낡은 유산에서 하루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
한 사회가 현재의 번영을 이루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선배들이 하였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어제를 생각하지 않고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들처럼 사회를 마구 휘잡고 다닌다면 그것은 현재의 번영을 망가트리고 모두 안 되려고 안달하는 꼴이 된다.
3. 미적지근한 중도강화론
이명박대통령의 최근 중도강화론을 들고 나온 것도 북한의 핵 위협 앞에 미적지근한 처사라고 평가한다. 이념시대가 이미 종말을 고하고 21세기는 각국이 번영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앞 다투어 노력하고 있는 세상이다. 물론 한국사회가 특유의 이념 논쟁의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특히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지나면서 지구상에서 소멸되어가고 있는 좌파적 잔영이 한국사회에서 다시 부각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때 나타나는 땅거미처럼 일시적으로 짖게 나타나지만 곧 소멸되는 환영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단연코 이념의 시대는 지나갔다. 21세기 세상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만이 번영을 보장하는 제도로 남아 있다. 이때에 무슨 있지도 않은 좌와 우를 가르고 또 그것을 서로 아우르는 듯한 중도를 들고 나오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필자는 평가한다. 사회를 통합하고 번영을 향하여 사회의 응집이나 신뢰를 높이기 위한 하나의 정치슬로건으로서 중도 강화론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있지도 않는 좌와 우의 이념 존재를 다시 사회에 환기시키는 부작용이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할 것이다.
4. 번영을 향한 국정장악
결론은 북의 핵 위협 앞에 움츠리지 않고 번영을 가져와야 하는 국정운영이 바로 현 이명박 정부의 사명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하여 정부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토대위에 국정이 확고하게 장악되고 집행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좌고우면하면 더욱 북의 위협에 휘말릴 위험이 있다. 철저한 원칙과 법질서가 바로서는 사회가 번영의 화두를 가지고 모두가 한군데로 응집되도록 국정을 펴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사회의 번영이 안 되도록 하기위해 안달을 하는 것 같은 지금까지의 의식과 행동을 한국사회는 벗어버려야 한다. 북한의 핵 위협이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외치는 극소수의 친북인사들은 북에 가 살 사람들이다. 절대다수의 남한 사람의 번영에 동참하는 듯하면서 망가지게 만드는 반역사적 행동을 그들이 해서는 안 된다. 지난 50년 번영을 위해 최선을 다 했던 한국사회는 다시 50년의 새 번영의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
2009년 6월 30일 화요일
MB의 중도강화론과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
1. 이데올로기 시대의 종말
구 소련이 멸망한 이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 갈등은 사실상 결말이 났다. 2차대전 이후 확대되어 왔던 좌와 우의 이념갈등은 본령의 한축인 구 소련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면서 끝이 났다. 공산주의는 사라지고 자본주의가 승리하게 된 결과가 되었다. Prancis Fukuyama는 1992년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 이라는 저서를 통하여 인류의 역사 진화는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질서(capital liberal democracy)’로 그 결말이 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인류의 이데올로기 진화의 종점’이고 ‘인류 최후의 정부형태’라고 그는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후쿠야마의 자유민주주의의 승리 논리는 그 4년 전인 1988년 발표된 Paul Kennedy의 '강대국의 흥망(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으로 발생하게 된 미국을 비롯한 서구사회의 세계지배에 대한 비관주의를 잠재우는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폴 케네디는 16세기 이후 긴 역사적 관점에서 세계를 지배하는 국가의 흥망성쇠를 순환의 논리로 관찰하였다. 한 국가가 경제발전으로 우월성을 통하여 세계를 지배하지만, 그 국가는 우월한 경제적 지위를 지키기 위하여 군비를 증강하고 결국 지나친 군비증가가 종국에는 경제적 우월성을 상실하게 만든다고 분석한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이 그리고 서구제국이 경제적 우월성을 만들어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지만 결국 그 경제적 우월성을 지키기 위한 지나친 군비증강으로 미국의 세계지배는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 폴 케네디의 논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장래에 대한 비관논리가 지배하고 있을 때 소련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은 미국을 비롯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공산주의의 망령에서 세계가 벗어나 자유시장경제질서를 토대로 한 자본주의가 인류가 추구할 가치임을 분명하게 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가 모든 면에서 공산주의를 능가하고 무결점의 이념으로 승리하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의 기본 전제인 시장의 경쟁체제는 언제나 경쟁의 그늘과 낙오자를 생산하게 마련이고 이곳 또한 인류가 바로잡아야할 영원한 대상이고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질서가 인류 최후의 이념과 정부형태로 결말이 난 것은 자본주의의 승리라기보다는 공산주의가 갖는 체제적 결함 때문에 자멸한 결과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좌와 우로 표현되는 이념갈등은 후쿠야마의 주장대로 역사에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공산주의체제가 사실상 남아있는 곳은 지구의 동쪽 끝 북한 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러시아는 더 이상 공산주의 종주국이 아니고 정권유지에 급급한 한낱 개발도상국으로 전락하였고, 중국은 형식적인 공산주의 정치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시장경제를 도입한 신흥국가로 변화되었다. 이들 두 나라는 더 이상 공산주의 이념이 지배하는 사회로 분류될 수 없게 변화되었다. 쿠바나 일부 중미국가들도 폐쇄의 도구로 활용되었던 공산주의 이념이 국가가 개방되면서 더 이상 공산주의 이념을 추구할 형편이 되지 못하고 있다. 결론은 공산주의 이념이 이제 지구상에서 사라진 것이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남은 것은 자유시장경제질서이고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뿐이다. 이것이 현대국가의 정체성(identity)이다.
2. 현대국가의 운영
이러한 현대국가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국가운영의 지향점은 번영(prosperity)이라고 할 수 있다. 번영은 경제적 개념에 더 가깝지만 정의하여 본다면 부(富)와 행복이 함께하는 조건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번영의 개념 속에는 공동체 보다는 개인에 더 가깝게 접근하고자 한다. 따라서 영토확장이나 군비증강과 같은 적극적 의미의 국가체제 운영 보다는 소극적이지만 개인의 부의 축적과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우선하는 가치로 삼는 국가운영이라고 할 수 있다. 번영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영토확장을 위한 전쟁이나 공동체의 통합된 이념추구를 위한 투쟁적 행동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폴 케네디나 프란시스 후쿠야마나 표현의 차이가 있지만 국가나 사회의 우열(優劣)의 조건은 과학기술이나 경제의 우월성에 달려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경제개념으로 표현한다면 시장경제의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다. 경쟁력을 토대로 경제적 부가 축적되고 그 부를 토대로 사회가 발전하고 개인의 행복의 1차적 조건이 충족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시장에서의 경쟁은 언제나 그늘을 만들어낸다. 그 그늘을 살펴야 하고 그늘에서 유래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일은 현대국가 경영에서 영원이 계속되는 과제이고 피할 수 없다. 이제 지구상에는 사실상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질서 만 남아있는 현실 속에서 경쟁의 그늘과 관련된 문제를 풀기위한 방법으로서의 정책수요에는 국가간에 차이가 있을 수 없고 이것은 국가의 1차적 책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다시 좌니 우니 하는 이념적 차이를 찾는 것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접근이다. 국가가 존재하고 그를 대행하는 정부가 있다면 그 정부가 해야 할 제일 큰 임무중의 하나는 시장의 그늘을 보살피는 일이 되는 것은 당연하고 그것이 정부가 해야 할 책무가 된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최근 좌파 노동자당을 토대로 집권한 브라질의 룰라대통령은 좌파의 논리에서 벗어나 시장경제의 활성화로 국부를 증가시켜 그것을 빈곤층 지원에 활용하여 중산층으로 발전시켰다고 평가받고 있다 한다. 좌파와 우파를 아우르는 정책을 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총리도 노동당을 토대로 집권하였지만 집권하자 좌파적 정책을 버리고 보수당 정책을 추진하여 성공을 거두었고 현재 영국의 보수당 당수인 데이비드 캐머런은 반대로 사회적 약자보호와 환경 복지의 중시 등 좌파적 가치를 접목시킨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한다. 이제 국가운영에서 좌파와 우파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3. MB의 중도강화론
대한민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얼마 전 중도강화론을 들고 나왔다. 좌와 우에 편향되기 보다는 실용적으로 시의에 맞는 선택을 해 가는 것을 그의 국가운영의 기본으로 삼겠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미 그의 리더십을 실용에 두고 있음을 천명한 바 있다. 이번의 거론은 그 실용 중도 노선을 좀더 강화하겠다는 이야기로 해석된다.
그의 이러한 리더십에 대하여 그 함의를 가지고 여러 설왕설래가 이미 있었던 터라 이번 그 중도를 더 강화하겠다는 것이 좀더 좌 편향을 적극화하겠다는 것인지, 무엇을 구체적으로 강화하겠다는 것인지 논의가 분분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현대국가의 정체성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질서로 결론이 난 상태이다. 유독 한국사회 만이 아직도 좌파니 우파니, 제 나름대로 이름 지어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논쟁의 잔재가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잔재 치고는 서로 죽기 살기로 대드는 형국을 연출하고 있다. 세계 13위 경제규모를 가지고, 세계에 완전하게 개방되어 있는 한국사회가 뒷전에 앉아 자기들끼리 이미 지구상에서 사라져버린 이념의 허상을 붙들고 서로 싸움질을 하고 있는 꼴이다.
이러한 한국의 이념논쟁은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훨씬 극렬하게 사회분열을 조장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스스로 사회의 그늘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좌파의 논리를 있는 자 없는 자의 논리로 발전시켜가고 있다. 있는 자를 타도하여 없는 자를 구제하자는 논리는 쉽게 공산주의 논리와 맥을 같이하며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공산국가체제인 북한 김정일 정권을 돕지 못해 안달을 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진보그룹이라고 자칭한다. 이미 흘러가버린 공산주의 사회주의 좌파사고의 미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그룹이 한국사회에서 스스로 진보라는 이름을 쓸 수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들 중 김정일 정부를 지향하는 친북세력을 제외하면 나머지 좌파그룹들은 사실 이념적 논쟁에서 분류되는 좌파가 아니고 현대국가 경영에서 제기되는 사회의 그늘을 보다 적극적으로 바로잡고자하는 그룹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들은 좌파가 아니다. 반면 우파로 대표되는 한국의 보수그룹은 일부 행동그룹이 존재하지만 그들을 제외한 많은 조용한 다수(silent majority)가 그저 보수로 통칭되고 있다. 보수그룹 중 일부가 국가우선의 극우세력으로 한국사회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보수그룹들도 사회 그늘의 치유를 중요시하고 이를 보다 개혁적으로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한국사회에서 좌파로 분류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나 우파로 분류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함께 현대국가경영에서 사회의 그늘을 해결해보고자 하는 같은 목적과 사회발전을 희망하는 같은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사회의 친소(親疎)관계나 타성적 행동이 서로 다를 뿐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 지금 존재하는 좌파 우파의 논쟁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는가? 여기에는 두 가지 초점이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일부 세력들이 자기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이런 이념갈등을 부추기고 있고 이런 놀음에 한국사회가 놀아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일부 소수의 친북세력의 전략전술이 사회를 이념갈등으로 의제시켜 혼란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친북세력은 있을지언정 한국사회에 종래의미의 좌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만일 이런 논리에 동의한다면 한국사회에서의 이념 논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한국사회에 이념논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강화론은 무슨 뜻일까? 첫째는 좌우가 없으니 중도일 수밖에 없다는 어법상의 해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말장난은 물론 아닐 것이다. 둘째 현실을 좌파와 우파의 대결로 보고 어차피 우파에 속한 이명박대통령이 보다 좌파적 사고에 가까운 리더십 발휘를 하겠다는 해석이 가능하여 질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많은 문제를 제기한다고 평가한다.
첫째 대통령에게 결례가 되겠지만 만일 대통령의 중도강화론이 둘째의 사고에서 출발된 것이라면 그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평가된다. 이미 사라져버린 좌파 우파의 이념논쟁을 더욱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둘째 이러한 중도강화론을 실현하기 위하여 서민중심의 정책을 보다 꼼꼼하게 챙기겠다는 발상도 너무 전근대적이라고 평가한다. ‘서민’중심의 말 자체가 벌써 있는 자 없는 자의 문제 접근임을 깨달아야 한다. 서민이 아니라 발전의 그늘을 해결하기위한 노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표현으로 되어야 하고, 서민에게 무슨 시혜를 베푸는 듯한 접근이 아니고 현대국가경영에서 우선순위가 발전의 그늘을 치유하는 것임을 천명하고 여기에 중점을 두는 접근이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 또 서민을 위한 정책을 보다 꼼꼼하게 챙긴다는 말은 지금까지 그것을 소홀히 하였거나 아니면 보다 적극적으로 있는 사람 우선의 정책을 펴 왔다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다. 대통령의 말씀을 가지고 말꼬리를 잡는 듯한 이야기가 아니라 리더십발휘의 접근자세를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셋째 대통령의 통합의 리더십 발휘를 위한 충정은 이해되지만 중도강화가 종래의미의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닌 것이 중도 인데, 보수는 내 텃밭이니 보다 진보 쪽으로 기울겠다는 발상이라면 이것이 통합의 리더십일까 의구심이 앞선다. 중도가 진보와 보수를 모두 내편일 수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또 모두가 내편이 아닐 수도 있음은 당연한 논리이다. 있지도 않은 이념의 중도가 아니고 국가경영에서 사회구성원의 통합을 추구하는 리더십 발휘가 가장 긴급한 과제라고 할 것이다.
넷째 사회 그늘진 곳을 보살피는 정책은 자유시장경제를 운영하는 한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취급되어야 한다. ‘시장은 경쟁으로, 경쟁탈락자는 정부가 보살피는 국가운영이’ 현대국가경영의 철학이 되어야 한다. 정부는 시장에서 경쟁이 보장되도록 규칙을 엄격하게 만들고 그 위반을 가차 없이 응징할 수 있어야 한다. 법질서를 엄격하게 지키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첫걸음이라는 인식을 모두 공유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경쟁탈락자에 대하여 경쟁력을 일으키는 능력을 배양하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교육 보건 주택 등 1차적 소득분배정책을 제대로 시행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보장 사회보호정책 등 2차적 분배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경제운영의 틀을 제대로 마련하고 그대로 시행하는 리더십 발휘가 대통령이 말하는 서민을 위한 것이 될 것이다.
다섯째 차제에 한국사회에서 더 이상 좌파 우파의 이념갈등이 사라질 수 있도록 북한 추종세력을 제외한 좌파인사와 사회개혁을 소리 없이 염원하는 우파인사들이 서로 추구하는 목표가 같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사회움직임이 생겨나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의 사회통합에 대통령의 리더십이 발휘되기를 기대한다.
구 소련이 멸망한 이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 갈등은 사실상 결말이 났다. 2차대전 이후 확대되어 왔던 좌와 우의 이념갈등은 본령의 한축인 구 소련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면서 끝이 났다. 공산주의는 사라지고 자본주의가 승리하게 된 결과가 되었다. Prancis Fukuyama는 1992년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 이라는 저서를 통하여 인류의 역사 진화는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질서(capital liberal democracy)’로 그 결말이 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인류의 이데올로기 진화의 종점’이고 ‘인류 최후의 정부형태’라고 그는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후쿠야마의 자유민주주의의 승리 논리는 그 4년 전인 1988년 발표된 Paul Kennedy의 '강대국의 흥망(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으로 발생하게 된 미국을 비롯한 서구사회의 세계지배에 대한 비관주의를 잠재우는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폴 케네디는 16세기 이후 긴 역사적 관점에서 세계를 지배하는 국가의 흥망성쇠를 순환의 논리로 관찰하였다. 한 국가가 경제발전으로 우월성을 통하여 세계를 지배하지만, 그 국가는 우월한 경제적 지위를 지키기 위하여 군비를 증강하고 결국 지나친 군비증가가 종국에는 경제적 우월성을 상실하게 만든다고 분석한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이 그리고 서구제국이 경제적 우월성을 만들어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지만 결국 그 경제적 우월성을 지키기 위한 지나친 군비증강으로 미국의 세계지배는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 폴 케네디의 논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장래에 대한 비관논리가 지배하고 있을 때 소련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은 미국을 비롯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공산주의의 망령에서 세계가 벗어나 자유시장경제질서를 토대로 한 자본주의가 인류가 추구할 가치임을 분명하게 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가 모든 면에서 공산주의를 능가하고 무결점의 이념으로 승리하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의 기본 전제인 시장의 경쟁체제는 언제나 경쟁의 그늘과 낙오자를 생산하게 마련이고 이곳 또한 인류가 바로잡아야할 영원한 대상이고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질서가 인류 최후의 이념과 정부형태로 결말이 난 것은 자본주의의 승리라기보다는 공산주의가 갖는 체제적 결함 때문에 자멸한 결과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좌와 우로 표현되는 이념갈등은 후쿠야마의 주장대로 역사에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공산주의체제가 사실상 남아있는 곳은 지구의 동쪽 끝 북한 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러시아는 더 이상 공산주의 종주국이 아니고 정권유지에 급급한 한낱 개발도상국으로 전락하였고, 중국은 형식적인 공산주의 정치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시장경제를 도입한 신흥국가로 변화되었다. 이들 두 나라는 더 이상 공산주의 이념이 지배하는 사회로 분류될 수 없게 변화되었다. 쿠바나 일부 중미국가들도 폐쇄의 도구로 활용되었던 공산주의 이념이 국가가 개방되면서 더 이상 공산주의 이념을 추구할 형편이 되지 못하고 있다. 결론은 공산주의 이념이 이제 지구상에서 사라진 것이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남은 것은 자유시장경제질서이고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뿐이다. 이것이 현대국가의 정체성(identity)이다.
2. 현대국가의 운영
이러한 현대국가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국가운영의 지향점은 번영(prosperity)이라고 할 수 있다. 번영은 경제적 개념에 더 가깝지만 정의하여 본다면 부(富)와 행복이 함께하는 조건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번영의 개념 속에는 공동체 보다는 개인에 더 가깝게 접근하고자 한다. 따라서 영토확장이나 군비증강과 같은 적극적 의미의 국가체제 운영 보다는 소극적이지만 개인의 부의 축적과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우선하는 가치로 삼는 국가운영이라고 할 수 있다. 번영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영토확장을 위한 전쟁이나 공동체의 통합된 이념추구를 위한 투쟁적 행동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폴 케네디나 프란시스 후쿠야마나 표현의 차이가 있지만 국가나 사회의 우열(優劣)의 조건은 과학기술이나 경제의 우월성에 달려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경제개념으로 표현한다면 시장경제의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다. 경쟁력을 토대로 경제적 부가 축적되고 그 부를 토대로 사회가 발전하고 개인의 행복의 1차적 조건이 충족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시장에서의 경쟁은 언제나 그늘을 만들어낸다. 그 그늘을 살펴야 하고 그늘에서 유래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일은 현대국가 경영에서 영원이 계속되는 과제이고 피할 수 없다. 이제 지구상에는 사실상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질서 만 남아있는 현실 속에서 경쟁의 그늘과 관련된 문제를 풀기위한 방법으로서의 정책수요에는 국가간에 차이가 있을 수 없고 이것은 국가의 1차적 책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다시 좌니 우니 하는 이념적 차이를 찾는 것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접근이다. 국가가 존재하고 그를 대행하는 정부가 있다면 그 정부가 해야 할 제일 큰 임무중의 하나는 시장의 그늘을 보살피는 일이 되는 것은 당연하고 그것이 정부가 해야 할 책무가 된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최근 좌파 노동자당을 토대로 집권한 브라질의 룰라대통령은 좌파의 논리에서 벗어나 시장경제의 활성화로 국부를 증가시켜 그것을 빈곤층 지원에 활용하여 중산층으로 발전시켰다고 평가받고 있다 한다. 좌파와 우파를 아우르는 정책을 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총리도 노동당을 토대로 집권하였지만 집권하자 좌파적 정책을 버리고 보수당 정책을 추진하여 성공을 거두었고 현재 영국의 보수당 당수인 데이비드 캐머런은 반대로 사회적 약자보호와 환경 복지의 중시 등 좌파적 가치를 접목시킨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한다. 이제 국가운영에서 좌파와 우파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3. MB의 중도강화론
대한민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얼마 전 중도강화론을 들고 나왔다. 좌와 우에 편향되기 보다는 실용적으로 시의에 맞는 선택을 해 가는 것을 그의 국가운영의 기본으로 삼겠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미 그의 리더십을 실용에 두고 있음을 천명한 바 있다. 이번의 거론은 그 실용 중도 노선을 좀더 강화하겠다는 이야기로 해석된다.
그의 이러한 리더십에 대하여 그 함의를 가지고 여러 설왕설래가 이미 있었던 터라 이번 그 중도를 더 강화하겠다는 것이 좀더 좌 편향을 적극화하겠다는 것인지, 무엇을 구체적으로 강화하겠다는 것인지 논의가 분분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현대국가의 정체성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질서로 결론이 난 상태이다. 유독 한국사회 만이 아직도 좌파니 우파니, 제 나름대로 이름 지어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논쟁의 잔재가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잔재 치고는 서로 죽기 살기로 대드는 형국을 연출하고 있다. 세계 13위 경제규모를 가지고, 세계에 완전하게 개방되어 있는 한국사회가 뒷전에 앉아 자기들끼리 이미 지구상에서 사라져버린 이념의 허상을 붙들고 서로 싸움질을 하고 있는 꼴이다.
이러한 한국의 이념논쟁은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훨씬 극렬하게 사회분열을 조장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스스로 사회의 그늘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좌파의 논리를 있는 자 없는 자의 논리로 발전시켜가고 있다. 있는 자를 타도하여 없는 자를 구제하자는 논리는 쉽게 공산주의 논리와 맥을 같이하며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공산국가체제인 북한 김정일 정권을 돕지 못해 안달을 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진보그룹이라고 자칭한다. 이미 흘러가버린 공산주의 사회주의 좌파사고의 미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그룹이 한국사회에서 스스로 진보라는 이름을 쓸 수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들 중 김정일 정부를 지향하는 친북세력을 제외하면 나머지 좌파그룹들은 사실 이념적 논쟁에서 분류되는 좌파가 아니고 현대국가 경영에서 제기되는 사회의 그늘을 보다 적극적으로 바로잡고자하는 그룹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들은 좌파가 아니다. 반면 우파로 대표되는 한국의 보수그룹은 일부 행동그룹이 존재하지만 그들을 제외한 많은 조용한 다수(silent majority)가 그저 보수로 통칭되고 있다. 보수그룹 중 일부가 국가우선의 극우세력으로 한국사회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보수그룹들도 사회 그늘의 치유를 중요시하고 이를 보다 개혁적으로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한국사회에서 좌파로 분류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나 우파로 분류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함께 현대국가경영에서 사회의 그늘을 해결해보고자 하는 같은 목적과 사회발전을 희망하는 같은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사회의 친소(親疎)관계나 타성적 행동이 서로 다를 뿐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 지금 존재하는 좌파 우파의 논쟁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는가? 여기에는 두 가지 초점이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일부 세력들이 자기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이런 이념갈등을 부추기고 있고 이런 놀음에 한국사회가 놀아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일부 소수의 친북세력의 전략전술이 사회를 이념갈등으로 의제시켜 혼란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친북세력은 있을지언정 한국사회에 종래의미의 좌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만일 이런 논리에 동의한다면 한국사회에서의 이념 논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한국사회에 이념논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강화론은 무슨 뜻일까? 첫째는 좌우가 없으니 중도일 수밖에 없다는 어법상의 해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말장난은 물론 아닐 것이다. 둘째 현실을 좌파와 우파의 대결로 보고 어차피 우파에 속한 이명박대통령이 보다 좌파적 사고에 가까운 리더십 발휘를 하겠다는 해석이 가능하여 질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많은 문제를 제기한다고 평가한다.
첫째 대통령에게 결례가 되겠지만 만일 대통령의 중도강화론이 둘째의 사고에서 출발된 것이라면 그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평가된다. 이미 사라져버린 좌파 우파의 이념논쟁을 더욱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둘째 이러한 중도강화론을 실현하기 위하여 서민중심의 정책을 보다 꼼꼼하게 챙기겠다는 발상도 너무 전근대적이라고 평가한다. ‘서민’중심의 말 자체가 벌써 있는 자 없는 자의 문제 접근임을 깨달아야 한다. 서민이 아니라 발전의 그늘을 해결하기위한 노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표현으로 되어야 하고, 서민에게 무슨 시혜를 베푸는 듯한 접근이 아니고 현대국가경영에서 우선순위가 발전의 그늘을 치유하는 것임을 천명하고 여기에 중점을 두는 접근이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 또 서민을 위한 정책을 보다 꼼꼼하게 챙긴다는 말은 지금까지 그것을 소홀히 하였거나 아니면 보다 적극적으로 있는 사람 우선의 정책을 펴 왔다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다. 대통령의 말씀을 가지고 말꼬리를 잡는 듯한 이야기가 아니라 리더십발휘의 접근자세를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셋째 대통령의 통합의 리더십 발휘를 위한 충정은 이해되지만 중도강화가 종래의미의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닌 것이 중도 인데, 보수는 내 텃밭이니 보다 진보 쪽으로 기울겠다는 발상이라면 이것이 통합의 리더십일까 의구심이 앞선다. 중도가 진보와 보수를 모두 내편일 수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또 모두가 내편이 아닐 수도 있음은 당연한 논리이다. 있지도 않은 이념의 중도가 아니고 국가경영에서 사회구성원의 통합을 추구하는 리더십 발휘가 가장 긴급한 과제라고 할 것이다.
넷째 사회 그늘진 곳을 보살피는 정책은 자유시장경제를 운영하는 한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취급되어야 한다. ‘시장은 경쟁으로, 경쟁탈락자는 정부가 보살피는 국가운영이’ 현대국가경영의 철학이 되어야 한다. 정부는 시장에서 경쟁이 보장되도록 규칙을 엄격하게 만들고 그 위반을 가차 없이 응징할 수 있어야 한다. 법질서를 엄격하게 지키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첫걸음이라는 인식을 모두 공유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경쟁탈락자에 대하여 경쟁력을 일으키는 능력을 배양하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교육 보건 주택 등 1차적 소득분배정책을 제대로 시행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보장 사회보호정책 등 2차적 분배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경제운영의 틀을 제대로 마련하고 그대로 시행하는 리더십 발휘가 대통령이 말하는 서민을 위한 것이 될 것이다.
다섯째 차제에 한국사회에서 더 이상 좌파 우파의 이념갈등이 사라질 수 있도록 북한 추종세력을 제외한 좌파인사와 사회개혁을 소리 없이 염원하는 우파인사들이 서로 추구하는 목표가 같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사회움직임이 생겨나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의 사회통합에 대통령의 리더십이 발휘되기를 기대한다.
2009년 6월 23일 화요일
식자(識者)들의 혹세무민(惑世誣民)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요즘처럼 혼란스러운 때도 드물 것 같다. 그중에서도 작년 말 시작된 미국 발 세계적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지난 8개월 동안 낙관과 비관의 살얼음판을 지나오고 있다. 그것은 정도의 차이가 좀 있을지언정 발전된 나라나 그렇지 못한 나라나 비슷한 모양새라고 할 수 있다.
리먼사태가 발생하자 많은 사람들은 1930년대의 대공황을 연상하면서 어쩌면 그 이상의 고통이 세계를 휩쓸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래서 미국을 비롯한 영국 일본 등 선진국과 한국 등 일부 신흥국들은 긴급정상회의를 하면서 세계경제를 구원하기 위하여 재정지출을 최대한 늘리고, 시장의 구원을 위한 지원과 규제를 다 함께 할 것을 합의하고 이를 신속하게 이행하기 시작하였다. 자유시장경제 운영은 잠시 뒷전으로 물러나고 정부의 보이는 손이 마구 시장을 휘저어 대지만 군말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만큼 절박성이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약 4개월이 지난 금년 3월을 저점으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증시는 다시 상승탄력을 받는 모습을 연출하였다. 그중에서도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의 증시는 보다 활발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이제 세계경제는 불황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것 아니냐 하며 낙관적인 전망이 여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세계경제가 다시 3개월이 지난 6월 20일을 전후하여 다시 비관론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발단은 지난 22일 세계은행의 금년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이 3월의 마이너스 (-)1.7%에서 마이나스 2.9%로 위축 될 것이라는 데서 시작되었다. 불과 얼마 전 IMF의 개선된 전망과는 반대로 된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의 최근 제조업과 소비지표 그리고 주택지표들이 개선된 모습을 보이자 미국경제가 바닥을 친 게 아니냐 하는 전망이 나왔고, 일부는 세계경제도 점차 불황의 끝 부분을 지나고 있는 것 아니야 하는 낙관을 제기하였다. 그것이 불과 며칠을 두고 미국의 증시가 하락하기 시작하자 다시 비관이 득세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최근의 유가와 금리가 상승세를 보이다가 갑자기 유가가 급락하고 동(銅)등 자원가격과 식량 등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 또 금 가격이 하락하고 대신 안전재화로서 달러가격이 상승한 단기적 시장상황이 이를 뒷밭침하고 있다.
이러한 시장상황의 낙관과 비관의 중심에는 언제나 유명한 식자(識者)들이 서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책임 있는 유관기관에서 권위 있게 제시되는 경우가 믿음성이 더 있지만 이런 것들은 대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 어간에 투자은행이나 증권회사들의 애널리스트들이나 대학교수 그리고 펀드운영자들이 발 빠르게 전망을 내어놓게 된다. 물론 그 중간에 언론기관들이 이를 요리하여 세상에 내어놓게 마련이다. 물론 많은 경우 훌륭한 분석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전망이 제시되고 있지만 개중에는 소위 전문가라는 모자를 쓰고 점쟁이처럼 이말 저말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어 유감스러운 경우가 많이 있다.
이번 비관의 단초인 세계은행의 전망근거를 정확하게 파악할 길이 없지만 3개월 전에 비하여 현격한 경기하강을 전망하기 위해서는 보다 분석적 근거가 제시되었어야 할 것이다. 물론 제시되었지만 그것을 언론에서 상세하게 보도하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거의 동시에 방송에 출연하여 ‘더블 딥’을 전망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의 전망은 그의 이름값에 비하여 그리 신빙성이 없다고 평가된다. 그가 전망하는 장기금리상승, 미국정부의 재정적자부담 그리고 유가상승 전망 등에 이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얼마 전 ‘세계경제는 불황의 터널 끝을 지나가는 것 같다’는 전망을 한 바 있다. 그는 다 아는 바와 같이 작년의 세계경제위기를 예측한 사람으로 세상에 알려져 있고 그 이후 많은 기회에 그의 의견을 개진하고 있는 명사이다. 그는 얼마 전 한국 어느 기관의 초청으로 한국에 와 한국경제를 낙관적으로 전망한 바 있다. 물론 초청국에 대한 약간의 예의가 전망에 반영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번에도 그는 금년 연말까지 국제유가가 다시 100달러에 육박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어떻게 알까?
비슷한 모델로 미국 프린스턴대의 폴 크루그만 교수를 들 수 있다. 그야 유명한 언론의 컬럼니스트로 노벨경제학상을 탄 저명인사이다. 많은 저서를 출간하였고 예리한 현실분석으로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그도 최근 한국에 초청되어서 한국경제를 낙관하고 세계경제도 어느 정도 개선되는 모습을 전망하고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다른 지역에 가서 행한 어두운 세계경제전망을 보면서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바마 정부의 정책에 대한 그의 평가도 좋았다 나빴다 들쑥날쑥 이다. 왜 그럴까?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 코스피가 500이 된다고 글을 쓰면서 말썽을 빚은 인사가 있다. 그래도 그가 무엇을 맞췄다고 믿고자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점괘는 맞지 않았다. 필자가 들은 바에 의하면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들이 증시전망을 맞출 길이 없기 때문에 영업적으로 비관론자와 낙관론자 둘을 언제나 함께 전망하게 함으로써 언제나 현실에 맞는 점괘를 내걸도록 한다는 우스개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이런 일이 점괘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평생의 일을 나라의 장단기 경제 분석과 정책을 마련하는데 종사하였다. 그 일에 가장 전제되는 것이 장단기 전망이다. 이런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하여 많은 공부도 하고 전문가들과 많은 토론을 하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퇴직하여 대학교수로 그런 문제를 강의하고 지냈다. 그래서 남들은 내가 이런 분야의 경제전문가로서 생각해 주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부족하여서 그런 면도 있지만 언제 경제가 어떻게 되고 특히 언제 경제가 회복되고 유가가 언제 백 달러 될 것을 알아 낼 수는 없다. 전문기관이 경제성장률전망치를 몇 퍼센트로 내어 놓는 것은 여러 전제를 복합한 자기들 나름의 모델 분석결과이지 그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이다. 종교계에서 하는 선문답 식으로 불황의 터널을 지나느니 중간에 있느니, 유가가 언제 얼마가 되느니 하는 것은 점괘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다. 이것은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라고 평가한다.
필자가 어렸을 때 육이오전쟁 중 북괴의 남침에 어디로 피난 가는 것이 안전할 것인지 등에 대한 걱정을 할아버지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옆에서 들은 바 있다. 그때 제일 많이 이야기 된 것이 정감록의 토정비결이었다고 기억된다. 그래서 어느 지역이 가장 안전한 ‘피난고지’라고 그 예언서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세계적 경기침체가 언제 끝나고 얼마나 깊을 것인지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것은 점쟁이 점괘에 속하는 일이다. 전문가는 흐름을 보고 거기에 적절한 방책을 제시하는 일을 해야지 무슨 점쟁이 하는 일 하듯 하면 오히려 사회만 자꾸 혼란스러울 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답답하고 고통스럽지만 냉철한 이성에 입각하여 현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그에 대응하는 자세가 전문가들에게 요구된다고 평가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식자인양 무슨 점괘 같은 현실 전망을 하여 세상을 속이고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혹세무민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리먼사태가 발생하자 많은 사람들은 1930년대의 대공황을 연상하면서 어쩌면 그 이상의 고통이 세계를 휩쓸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래서 미국을 비롯한 영국 일본 등 선진국과 한국 등 일부 신흥국들은 긴급정상회의를 하면서 세계경제를 구원하기 위하여 재정지출을 최대한 늘리고, 시장의 구원을 위한 지원과 규제를 다 함께 할 것을 합의하고 이를 신속하게 이행하기 시작하였다. 자유시장경제 운영은 잠시 뒷전으로 물러나고 정부의 보이는 손이 마구 시장을 휘저어 대지만 군말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만큼 절박성이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약 4개월이 지난 금년 3월을 저점으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증시는 다시 상승탄력을 받는 모습을 연출하였다. 그중에서도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의 증시는 보다 활발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이제 세계경제는 불황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것 아니냐 하며 낙관적인 전망이 여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세계경제가 다시 3개월이 지난 6월 20일을 전후하여 다시 비관론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발단은 지난 22일 세계은행의 금년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이 3월의 마이너스 (-)1.7%에서 마이나스 2.9%로 위축 될 것이라는 데서 시작되었다. 불과 얼마 전 IMF의 개선된 전망과는 반대로 된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의 최근 제조업과 소비지표 그리고 주택지표들이 개선된 모습을 보이자 미국경제가 바닥을 친 게 아니냐 하는 전망이 나왔고, 일부는 세계경제도 점차 불황의 끝 부분을 지나고 있는 것 아니야 하는 낙관을 제기하였다. 그것이 불과 며칠을 두고 미국의 증시가 하락하기 시작하자 다시 비관이 득세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최근의 유가와 금리가 상승세를 보이다가 갑자기 유가가 급락하고 동(銅)등 자원가격과 식량 등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 또 금 가격이 하락하고 대신 안전재화로서 달러가격이 상승한 단기적 시장상황이 이를 뒷밭침하고 있다.
이러한 시장상황의 낙관과 비관의 중심에는 언제나 유명한 식자(識者)들이 서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책임 있는 유관기관에서 권위 있게 제시되는 경우가 믿음성이 더 있지만 이런 것들은 대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 어간에 투자은행이나 증권회사들의 애널리스트들이나 대학교수 그리고 펀드운영자들이 발 빠르게 전망을 내어놓게 된다. 물론 그 중간에 언론기관들이 이를 요리하여 세상에 내어놓게 마련이다. 물론 많은 경우 훌륭한 분석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전망이 제시되고 있지만 개중에는 소위 전문가라는 모자를 쓰고 점쟁이처럼 이말 저말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어 유감스러운 경우가 많이 있다.
이번 비관의 단초인 세계은행의 전망근거를 정확하게 파악할 길이 없지만 3개월 전에 비하여 현격한 경기하강을 전망하기 위해서는 보다 분석적 근거가 제시되었어야 할 것이다. 물론 제시되었지만 그것을 언론에서 상세하게 보도하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거의 동시에 방송에 출연하여 ‘더블 딥’을 전망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의 전망은 그의 이름값에 비하여 그리 신빙성이 없다고 평가된다. 그가 전망하는 장기금리상승, 미국정부의 재정적자부담 그리고 유가상승 전망 등에 이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얼마 전 ‘세계경제는 불황의 터널 끝을 지나가는 것 같다’는 전망을 한 바 있다. 그는 다 아는 바와 같이 작년의 세계경제위기를 예측한 사람으로 세상에 알려져 있고 그 이후 많은 기회에 그의 의견을 개진하고 있는 명사이다. 그는 얼마 전 한국 어느 기관의 초청으로 한국에 와 한국경제를 낙관적으로 전망한 바 있다. 물론 초청국에 대한 약간의 예의가 전망에 반영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번에도 그는 금년 연말까지 국제유가가 다시 100달러에 육박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어떻게 알까?
비슷한 모델로 미국 프린스턴대의 폴 크루그만 교수를 들 수 있다. 그야 유명한 언론의 컬럼니스트로 노벨경제학상을 탄 저명인사이다. 많은 저서를 출간하였고 예리한 현실분석으로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그도 최근 한국에 초청되어서 한국경제를 낙관하고 세계경제도 어느 정도 개선되는 모습을 전망하고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다른 지역에 가서 행한 어두운 세계경제전망을 보면서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바마 정부의 정책에 대한 그의 평가도 좋았다 나빴다 들쑥날쑥 이다. 왜 그럴까?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 코스피가 500이 된다고 글을 쓰면서 말썽을 빚은 인사가 있다. 그래도 그가 무엇을 맞췄다고 믿고자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점괘는 맞지 않았다. 필자가 들은 바에 의하면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들이 증시전망을 맞출 길이 없기 때문에 영업적으로 비관론자와 낙관론자 둘을 언제나 함께 전망하게 함으로써 언제나 현실에 맞는 점괘를 내걸도록 한다는 우스개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이런 일이 점괘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평생의 일을 나라의 장단기 경제 분석과 정책을 마련하는데 종사하였다. 그 일에 가장 전제되는 것이 장단기 전망이다. 이런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하여 많은 공부도 하고 전문가들과 많은 토론을 하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퇴직하여 대학교수로 그런 문제를 강의하고 지냈다. 그래서 남들은 내가 이런 분야의 경제전문가로서 생각해 주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부족하여서 그런 면도 있지만 언제 경제가 어떻게 되고 특히 언제 경제가 회복되고 유가가 언제 백 달러 될 것을 알아 낼 수는 없다. 전문기관이 경제성장률전망치를 몇 퍼센트로 내어 놓는 것은 여러 전제를 복합한 자기들 나름의 모델 분석결과이지 그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이다. 종교계에서 하는 선문답 식으로 불황의 터널을 지나느니 중간에 있느니, 유가가 언제 얼마가 되느니 하는 것은 점괘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다. 이것은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라고 평가한다.
필자가 어렸을 때 육이오전쟁 중 북괴의 남침에 어디로 피난 가는 것이 안전할 것인지 등에 대한 걱정을 할아버지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옆에서 들은 바 있다. 그때 제일 많이 이야기 된 것이 정감록의 토정비결이었다고 기억된다. 그래서 어느 지역이 가장 안전한 ‘피난고지’라고 그 예언서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세계적 경기침체가 언제 끝나고 얼마나 깊을 것인지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것은 점쟁이 점괘에 속하는 일이다. 전문가는 흐름을 보고 거기에 적절한 방책을 제시하는 일을 해야지 무슨 점쟁이 하는 일 하듯 하면 오히려 사회만 자꾸 혼란스러울 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답답하고 고통스럽지만 냉철한 이성에 입각하여 현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그에 대응하는 자세가 전문가들에게 요구된다고 평가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식자인양 무슨 점괘 같은 현실 전망을 하여 세상을 속이고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혹세무민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2009년 6월 13일 토요일
개성공단 국가운영 독재
2009.6.11 개성공단과 관련된 남북실무회의가 개성에서 열렸다. 예상은 하였던 일이지만 북한당국은 개성공단의 운영과 관련하여 남쪽이 받아드릴 수 없는 제안을 하였다. 지난번 회의에서 북쪽이 제기하였던 문제를 더 구체화한 것이기 때문에 놀래기보다는 그들의 저의가 무엇인지가 문제의 핵심처럼 제기되고 있다.
북쪽은 개성공단 근로자의 임금을 지금까지 월 75불 하던 것을 300불로 4배 인상하고 앞으로 연간 인상률도 10~20%하자고 하였다. 공업단지 사용료와 관련하여 100만평 1차분의 토지임대료를 5억불 지불하고 2010년부터 토지사용료로 평당 5~10달러를 징수하겠단다. 토지임대료는 토지개발공사가 2004년 50년 임대조건으로 16백만불을 일시불로 이미 지불한 것인데 그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먼저 낸 돈의 31배에 해당하는 돈을 또 요구하고 있다.
북한당국은 2008년 3월 남한당국자 11명을 개성공단에서 추방한 것을 시작으로 그동안 근로자의 입출경과 많은 제재를 일방적으로 취하고 있다. 국제관례나 계약조건의 이행과는 전연 거리가 있는 북한당국의 처사를 일반적인 시장경제의 논리로 이해하는 것은 납득할 수가 없고 황당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번에 구체적인 경제조건을 북한이 제시하고 나왔다. 앞으로 더 회담이 진행되어 보아야 하겠지만 지금 북한이 제시한 조건을 남쪽 기업이 받아들이기는 불가능할 것 같다. 더군다나 지금까지 북한당국이 취한 개성공단 운영과 관련한 인적 물적 교류의 일방적 제한조치들을 보면 이제 더 이상 개성공단 사업은 불가능할 것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현재의 결과를 놓고 지난 일을 되돌아보면 개성공단은 처음부터 출발하지 말았어야 했을 것 같다. 국제관례고 계약이고 무엇이고 내 맘대로 한다는 북한의 억지 논리로는 북한이 사업의 정상적인 상대가 될 수 없다. 아무리 시장경제와 다른 체제라 하지만 계약의 이행에 전연 기속되지 않는 처사 앞에 더 이상 무슨 이야기가 필요하단 말인가? 그것을 ‘민족끼리’라는 논리로 무턱대고 추진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남한당국으로서는 북한당국에 의하여 체포되어 면회도 소식도 모르는 근로자의 안전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일 이외에 현 시점에서 할 일이 없을 상 싶다. 지금 보아서는 북한당국이 남한당국의 관심사인 구속자 문제는 처음부터 다룰 의사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 할 일이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다. 만일 어떤 형태로던 이번 일이 1차적으로 해결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북한당국이 남쪽의 코를 꿰는 꼬임에 불과할 것이다. 질질 끌려가는 꼴이 될 것이다.
국가경영의 측면에서 미련을 접어야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북한정권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전략을 다시 한번 확고부동하게 수립하고 이를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전략은 크게 두 가지 방향이 되어야 한다. 하나는 물론 북한당국과의 관계를 좋게 하기위하여 너무 성급하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 하에 결연하고 냉정한 이해관계에서 대북접근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는 남한 땅에 일고 있는 일방적인 친북분위기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략접근에 따라 당장 해야 할 일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 될 것이다.
1. 개성공단은 주도면밀하게 준비하여 철수를 시작하여야 한다.
당장의 분위기로 보아서는 더 이상 개성공단과 관련하여 북한당국과 협상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냉정하게 경제성에 입각하여 협상에 임하되 남한의 입장은 철수를 포함한 여러 가능성을 열고 회담에 임하여야 한다. 북한이 제시한 비용의 조정은 조정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북한은 개성공단 실패의 책임을 남한당국에 떠넘기고자 할 것이기 때문에 그 빌미를 주지 않는 선에서 천천히 그리고 한 가닥, 한 가닥 세밀하게 집고 넘어가면서 협의를 해야 한다. 그 사이 경영이 불가능한 한국기업은 하나 둘 퇴각하도록 해야 한다. 시간은 남쪽 편이지 북쪽 편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2. 김대중 전 대통령은 더 이상 국민을 속이지 말고, 국민 앞에 속죄하여야 한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6월 11일 자기 재단에서 행한 ‘6.15기념연설’에서 이명박 정부를 독재정부로 규정하고 이렇게 가면 ‘국민도 불행하고 정부도 불행하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행동하는 양심이 되자’고 하였다. 국민도 불행하고 정부도 불행하다는 말을 곱씹어 보면 너무나 섬뜩한 국민협박으로 해석 된다. 그래서 그야말로 독재치하에서 지성인에게 호소하는 듯한 ‘행동하는 양심’을 가지고 국민을 선동하여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이명박정부의 독재에 항거하는 행동을 하자는 것이다. 그야말로 선동과 포퓰리즘 정치의 전형을 전직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오늘의 북한 핵 위협 앞에 국민을 불행하게 만든 원인제공자가 사죄는커녕 몰염치하게 선동정치를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독재정치를 국어사전에서는 ‘한나라의 권력을 주권자 한사람이 쥐고 마음대로 정무를 처단하는 정치행태’라고 풀이하고 있다. 정치학적으로는 대통령제 하에서는 대통령 한사람이 권력을 쥐고 정무를 처단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는 대통령제는 다 독재가 된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형식적 의미의 독재정치는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모두 같은 범주에 속할 것이다. 그렇다면 유독 이명박 대통령이 독재자라는 논리는 어디에 논거를 두는 것일까? 지난번 고 노무현 전대통령 장례과정에서 김대중 전대통령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전 군사독재시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언급한 것이 언론에 보도된바 있다. 그 이유가 이명박 대통령 마음대로 노무현 전대통령의 비리를 수사하게 만들어 그를 죽게 하였다는 데 논거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후 언론기관의 여론조사결과라고 보도되는 내용 중에 노무현전대통령의 죽음에 이명박대통령의 책임도 당사자 본인 다음으로 있다고 나온바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이명박대통령이 독재자라고 규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단 말인가? 논리의 비약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이명박대통령의 잘잘못을 여기서 시비하자는 말이 아니라 독재로 명명하는 행위의 당위성에 부당함을 말하는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같은 6.15기념연설에서 북한의 핵실험을 마지못해 비판하면서도 마치 현 정부가 전 정부가 맺은 남북협의 결과를 지키지 않는 것을 강도 높게 비난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명박 정부는 즉시 금강산관광사업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치 핵실험의 이유가 남한당국의 북한당국에 대한 비협조에 있는 듯한 여운을 남긴다. 과문한 결과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개성공단 문제에는 언급이 없다. 그와 고 노무현 대통령은 그들이 퍼다 준 대북지원으로 오늘의 대남 핵 협박을 가능하게 한 원인제공자들이다. 정부 집계에 의하면 이분들 임기 10년 동안 대북 지원은 현금만 29억달러, 현금과 현물을 합하면 69억달러라고 한다. 이 금액이면 지금 북한이 마련한 장거리 로켓과 핵무기개발에 드는 비용의 몇 배가 되는 규모이다. 같은 기간 중국이 북한에 제공한 돈의 4에 해당하는 엄청난 돈을 한국 국민의 동의도 물어보지 않고 이 분들은 자기들의 전략으로 북한에 퍼다 준 것이다. 물론 남쪽의 돈이 무기개발로 직접 들어갔다는 증거는 없지만 그 돈이 없었으면 북한정권이 이런 핵개발이 불가능하였을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그런 원인제공자인 김대중 전대통령의 행동은 역사에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3. 민주당은 국회로 돌아가 세금 값을 하라.
6월 10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는 ‘6.10항쟁’기념식이 그야말로 각계각층에서 모여서 치러졌다. 거기 참가한 사람이나 집에 있는 사람이나 모두 관심은 민중운동의 기념 보다는 얼마나 사람이 모이고, 사고가 나지 않을까, 교통은 얼마나 막힐까 하는데 모아졌다고 할 수 있다. 문화의 광장인 시청 앞 광장을 정치집회에 사용하는 것에 서울시가 난색을 표하자 이 행사를 문화행사로 한다는 해괴한 논리를 펴서 사용에 들어간 이 행사장의 가운데에 민주당 그리고 이름도 잘 모를 여러 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자리 잡고 앉아있었다. 그들은 이명박 독재타도를 외치고 고 노무현 대통령 정신계승을 자임하고 나섰다. 소위 ‘거리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외치는 이명박대통령의 독재는 내 맘대로 안 되는 것은 독재라는 억지 논리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법을 어기고 규정을 위반해도 내가 하려는 일이 옳은 것이니 좋고, 오히려 법을 지키고 집행하려는 것은 독재라는 논리가 된다. 국회의원이 국회는 팽개친 채 거리에 나와 선동을 일삼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것이 민주당의 논리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에 사과가 선행해야 한다고 국회를 열지 않고 있다. 그것이 비록 사과해야 할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국회를 여는 것과 연계할 필요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사과는 사고대로 받고 국회운영은 국회운영이 아닌가? 세금을 내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도대체 저들이 내 돈을 받아먹고 있는데 그들이 세금 값을 하는가? 국회우상화의 전근대적 표본이 바로 이런 것일 것이다.
민주당의 노무현 정신 계승은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가 생전 국민의 지지를 잃자 그가 그들 주변에 접근하는 것조차 전염병환자처럼 꺼리던 사람들이 바로 민주당 사람들이었다. 지금 세상인심이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에 동정론으로 변하자 무슨 정신계승 운운하는 것은 아무리 후안무치한 사람들이라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가소롭지 않을 수 없다. 빨리 국회로 돌아가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일이 법안심의를 심도 있게 하고, 국민을 평안하게 만드는 것일 것이다. 그것이 최소한 오늘 의 한국 국회를 존재하게 하는 최소한의 당위가 될 것이다.
4. 현대국가에서 좌파니 우파니 하는 전근대적 이념은 번영의 조건이 되지 못한다.
21세기 국가운영의 화두는 번영(prosperity)이라고 할 것이다. 번영의 함의는 경제적 조건이 우선 되겠지만 그 외의 안정, 행복이 가득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일 것이다. 번영의 일반적 조건은 국민 각자가 자기 있는 곳에서 부가가치 증식에 최선을 다하고, 각자의 안정과 행복을 위하여 내가 지켜야 할 것을 다 지키고, 국민 상대방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에 남아 있는 좌파 우파의 색깔이나 진보 보수의 이념 논쟁은 21세기 국가운영의 우선순위에서는 지나간 이슈에 불과하다. 얼마나 번영된 사회 번영된 국가를 만들어 가느냐가 현대사회의 우선된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국의 노동당정부나 보수당정부나 오늘날에는 정책은 모두 비슷하고, 빈민계층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많은 신흥국가들의 진보그룹들의 정책도 보수와의 차이를 제대로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세상이다. 그래서 발전된 나라나 신흥되는 사회나 막론하고 많은 나라에서 좌파정권이나 진보정권은 차츰 사라져 가고 있다. 모두 비슷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남는 가치가 바로 얼마나 국민의 번영을 가져오느냐 하는 것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에는 아직도 유별나게 진보니 보수니, 좌파 우파의 전근대적 색깔 론이 많이 남아있다. 학자들은 그것을 더 세분화하여 급진진보, 중도진보, 정통보수, 중도보수 등으로 세분화하고 싶어 하고 있다. 현대 국가운영의 흐름인 번영의 조건으로 본다면 이런 담론은 비현실적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오히려 한국에서의 좌파나 진보그룹 중에 얼마 많은 사람이 북한 김정일 정부에 가까운가, 즉 친북세력인가 그리고 우파나 보수그룹 중에도 얼마나 시장경제 운영을 우선시하는 세력인가를 구분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가난한 사람을 위하는 것이 좌파이고 부자를 위하는 것이 우파라는 기존 관념은 잘못된 것이고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현대국가운영에서 어느 정부 던 가난한 사람을 위하는 정책을 써야 하고 또 경제발전을 위하여 시장의 논리에 따라 부자를 위하는 정책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정부가 국민의 번영을 얼마나 가져왔느냐 하는 평가를 받는 것이 국가운영이지 좌파 우파의 색깔은 국가운영에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사회에서 지금 일고 있는 좌파니 진보니 하는 세력들은 조용히 스스로의 정체성을 다시 점검하고 스스로 추구하는 방향이 가난한 사람 권력을 얻지 못한 사람을 위하는 것인지 아니면 북한정권을 위하는 것인지를 구분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후자라면 모르겠지만 전자라면 그것은 좌파가 아니고 그야말로 번영을 위한 정책의 한 축을 더 중요시하는 부류로 스스로를 개념 규정할 필요가 있다. 우파나 보수도 마찬가지다. 스스로가 시장경제의 논리에 따른 경쟁의 경제를 중요시하는 그룹인지 국가지상주의와 같은 극우세력인지를 점검하여 보고 전자일 경우 이것은 우파도 무엇도 아닌 당연한 시장경제 지지자에 불과한 것이다. 만일 이런 분석에 동의한다면 한국사회에서 김정일 북한정권을 지지하는 그룹이나 국가지상주의를 신봉하는 그룹은 그 수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고 지금 스스로 좌파라고 하는 세력이나 우파라고 생각하는 세력의 대부분이 이념의 차이가 아니고 단순한 친소의 차이나, 일부 극단주의자들에게 비판 없이 휩쓸려 다닌 그룹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명하여 진다. 한국사회에서 더 이상 좌파 우파의 논쟁은 의미 없는 짓이다. 허상을 쫓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일부 극단 국가지상주의자나 친북세력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들을 실정법적으로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어느 사회이건 일부 극단론자들이 있게 마련이고 사회가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을 끌어안고 함께 번영을 찾아가는 것이 현대국가의 국가운영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지금 한국사회 안정을 어렵게 하는 일부 정치권, 노동권, 사회운동권 세력들은 국가통치력(법률과 사회규범)의 범위 내에서 활동하고 이를 지지해 주어야 한다. 전직 대통령이던 국회의원이던 노동단체든 친북사회단체든 국가통치력 안에서 행동하고 활동해야 한다. 국가통치력은 어느 경우이던 존중되어야 한다. 통치력을 벗어나는 행동은 당연히 법규의 제재를 받아야 하고 국가통치력 범위 내의 행동은 당연히 보호되어야 한다. 단순히 내 맘에 안 든다고 독재 운운하는 것은 한국민주주의를 오히려 모독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국민 모두가 여기에 이해를 같이해야 한국사회의 번영은 가능하여 진다고 할 수 있다.
5. 이명박대통령도 사회통합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치를 하여야 한다.
이명박대통령은 독재자라는 말을 들을 때 억울한 마음이 있을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현 정부를 독재정부라고 부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다만 왜 이런 억지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지를 대통령은 곰곰이 생각하여 보아야 할 것이다. 이명박대통령은 실례지만 너무 정치를 하지 못한다고 결론지어 말할 수 있다. 국민을 이해시키지 못하고, 사회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제 식구 들 조차 화합을 시키지 못하고 어떻게 옳게 대통령 노릇을 할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경제대통령의 이미지는 벗어던져야 한다. 대통령은 정치하는 사람이지 회사 사장이 아니다. 경제정책을, 경제논리를 정치논리에 우선하겠다는 착상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대통령이 할 일의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정치를 잘 하는 것을 전제로 경제대통령이 필요한 것이지 정치를 내팽개친(사회통합을 중요시 않는) 경제대통령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당내 결속을 먼저 확실하게 하여야 한다. 박근혜 진영과 정치적 연대를 분명하게 하고 실례지만 졸개들의 이해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억울하더라도 내각을 전면 쇄신하고 졸개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큰 틀에서 통합을 하는 정치의 모습을 주변을 쇄신하는 데서부터 시작하고 사회각계와 소통의 지평을 넓혀가야 한다. 이 길만이 그를 떠난 많은 지지 세력을 다시 부를 수 있는 계기가 되고 그들에게 다음 정권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은 본인의 안위보다는 그를 지원하여 준 많은 안정세력 들의 미래를 책임지는 그런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6. 개성공단, 고 노무현대통령 서거, 독재정권 타도와 같은 어지러운 현실이 결국 국가운영의 측면에서 중심 있게 해결되어야 한다. 이 중심에 대통령이 서 있어야 하고 국가운영이 번영의 가치를 우선하는데 집중되어야 한다고 평가한다.
북쪽은 개성공단 근로자의 임금을 지금까지 월 75불 하던 것을 300불로 4배 인상하고 앞으로 연간 인상률도 10~20%하자고 하였다. 공업단지 사용료와 관련하여 100만평 1차분의 토지임대료를 5억불 지불하고 2010년부터 토지사용료로 평당 5~10달러를 징수하겠단다. 토지임대료는 토지개발공사가 2004년 50년 임대조건으로 16백만불을 일시불로 이미 지불한 것인데 그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먼저 낸 돈의 31배에 해당하는 돈을 또 요구하고 있다.
북한당국은 2008년 3월 남한당국자 11명을 개성공단에서 추방한 것을 시작으로 그동안 근로자의 입출경과 많은 제재를 일방적으로 취하고 있다. 국제관례나 계약조건의 이행과는 전연 거리가 있는 북한당국의 처사를 일반적인 시장경제의 논리로 이해하는 것은 납득할 수가 없고 황당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번에 구체적인 경제조건을 북한이 제시하고 나왔다. 앞으로 더 회담이 진행되어 보아야 하겠지만 지금 북한이 제시한 조건을 남쪽 기업이 받아들이기는 불가능할 것 같다. 더군다나 지금까지 북한당국이 취한 개성공단 운영과 관련한 인적 물적 교류의 일방적 제한조치들을 보면 이제 더 이상 개성공단 사업은 불가능할 것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현재의 결과를 놓고 지난 일을 되돌아보면 개성공단은 처음부터 출발하지 말았어야 했을 것 같다. 국제관례고 계약이고 무엇이고 내 맘대로 한다는 북한의 억지 논리로는 북한이 사업의 정상적인 상대가 될 수 없다. 아무리 시장경제와 다른 체제라 하지만 계약의 이행에 전연 기속되지 않는 처사 앞에 더 이상 무슨 이야기가 필요하단 말인가? 그것을 ‘민족끼리’라는 논리로 무턱대고 추진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남한당국으로서는 북한당국에 의하여 체포되어 면회도 소식도 모르는 근로자의 안전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일 이외에 현 시점에서 할 일이 없을 상 싶다. 지금 보아서는 북한당국이 남한당국의 관심사인 구속자 문제는 처음부터 다룰 의사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 할 일이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다. 만일 어떤 형태로던 이번 일이 1차적으로 해결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북한당국이 남쪽의 코를 꿰는 꼬임에 불과할 것이다. 질질 끌려가는 꼴이 될 것이다.
국가경영의 측면에서 미련을 접어야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북한정권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전략을 다시 한번 확고부동하게 수립하고 이를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전략은 크게 두 가지 방향이 되어야 한다. 하나는 물론 북한당국과의 관계를 좋게 하기위하여 너무 성급하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 하에 결연하고 냉정한 이해관계에서 대북접근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는 남한 땅에 일고 있는 일방적인 친북분위기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략접근에 따라 당장 해야 할 일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 될 것이다.
1. 개성공단은 주도면밀하게 준비하여 철수를 시작하여야 한다.
당장의 분위기로 보아서는 더 이상 개성공단과 관련하여 북한당국과 협상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냉정하게 경제성에 입각하여 협상에 임하되 남한의 입장은 철수를 포함한 여러 가능성을 열고 회담에 임하여야 한다. 북한이 제시한 비용의 조정은 조정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북한은 개성공단 실패의 책임을 남한당국에 떠넘기고자 할 것이기 때문에 그 빌미를 주지 않는 선에서 천천히 그리고 한 가닥, 한 가닥 세밀하게 집고 넘어가면서 협의를 해야 한다. 그 사이 경영이 불가능한 한국기업은 하나 둘 퇴각하도록 해야 한다. 시간은 남쪽 편이지 북쪽 편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2. 김대중 전 대통령은 더 이상 국민을 속이지 말고, 국민 앞에 속죄하여야 한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6월 11일 자기 재단에서 행한 ‘6.15기념연설’에서 이명박 정부를 독재정부로 규정하고 이렇게 가면 ‘국민도 불행하고 정부도 불행하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행동하는 양심이 되자’고 하였다. 국민도 불행하고 정부도 불행하다는 말을 곱씹어 보면 너무나 섬뜩한 국민협박으로 해석 된다. 그래서 그야말로 독재치하에서 지성인에게 호소하는 듯한 ‘행동하는 양심’을 가지고 국민을 선동하여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이명박정부의 독재에 항거하는 행동을 하자는 것이다. 그야말로 선동과 포퓰리즘 정치의 전형을 전직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오늘의 북한 핵 위협 앞에 국민을 불행하게 만든 원인제공자가 사죄는커녕 몰염치하게 선동정치를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독재정치를 국어사전에서는 ‘한나라의 권력을 주권자 한사람이 쥐고 마음대로 정무를 처단하는 정치행태’라고 풀이하고 있다. 정치학적으로는 대통령제 하에서는 대통령 한사람이 권력을 쥐고 정무를 처단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는 대통령제는 다 독재가 된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형식적 의미의 독재정치는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모두 같은 범주에 속할 것이다. 그렇다면 유독 이명박 대통령이 독재자라는 논리는 어디에 논거를 두는 것일까? 지난번 고 노무현 전대통령 장례과정에서 김대중 전대통령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전 군사독재시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언급한 것이 언론에 보도된바 있다. 그 이유가 이명박 대통령 마음대로 노무현 전대통령의 비리를 수사하게 만들어 그를 죽게 하였다는 데 논거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후 언론기관의 여론조사결과라고 보도되는 내용 중에 노무현전대통령의 죽음에 이명박대통령의 책임도 당사자 본인 다음으로 있다고 나온바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이명박대통령이 독재자라고 규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단 말인가? 논리의 비약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이명박대통령의 잘잘못을 여기서 시비하자는 말이 아니라 독재로 명명하는 행위의 당위성에 부당함을 말하는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같은 6.15기념연설에서 북한의 핵실험을 마지못해 비판하면서도 마치 현 정부가 전 정부가 맺은 남북협의 결과를 지키지 않는 것을 강도 높게 비난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명박 정부는 즉시 금강산관광사업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치 핵실험의 이유가 남한당국의 북한당국에 대한 비협조에 있는 듯한 여운을 남긴다. 과문한 결과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개성공단 문제에는 언급이 없다. 그와 고 노무현 대통령은 그들이 퍼다 준 대북지원으로 오늘의 대남 핵 협박을 가능하게 한 원인제공자들이다. 정부 집계에 의하면 이분들 임기 10년 동안 대북 지원은 현금만 29억달러, 현금과 현물을 합하면 69억달러라고 한다. 이 금액이면 지금 북한이 마련한 장거리 로켓과 핵무기개발에 드는 비용의 몇 배가 되는 규모이다. 같은 기간 중국이 북한에 제공한 돈의 4에 해당하는 엄청난 돈을 한국 국민의 동의도 물어보지 않고 이 분들은 자기들의 전략으로 북한에 퍼다 준 것이다. 물론 남쪽의 돈이 무기개발로 직접 들어갔다는 증거는 없지만 그 돈이 없었으면 북한정권이 이런 핵개발이 불가능하였을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그런 원인제공자인 김대중 전대통령의 행동은 역사에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3. 민주당은 국회로 돌아가 세금 값을 하라.
6월 10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는 ‘6.10항쟁’기념식이 그야말로 각계각층에서 모여서 치러졌다. 거기 참가한 사람이나 집에 있는 사람이나 모두 관심은 민중운동의 기념 보다는 얼마나 사람이 모이고, 사고가 나지 않을까, 교통은 얼마나 막힐까 하는데 모아졌다고 할 수 있다. 문화의 광장인 시청 앞 광장을 정치집회에 사용하는 것에 서울시가 난색을 표하자 이 행사를 문화행사로 한다는 해괴한 논리를 펴서 사용에 들어간 이 행사장의 가운데에 민주당 그리고 이름도 잘 모를 여러 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자리 잡고 앉아있었다. 그들은 이명박 독재타도를 외치고 고 노무현 대통령 정신계승을 자임하고 나섰다. 소위 ‘거리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외치는 이명박대통령의 독재는 내 맘대로 안 되는 것은 독재라는 억지 논리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법을 어기고 규정을 위반해도 내가 하려는 일이 옳은 것이니 좋고, 오히려 법을 지키고 집행하려는 것은 독재라는 논리가 된다. 국회의원이 국회는 팽개친 채 거리에 나와 선동을 일삼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것이 민주당의 논리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에 사과가 선행해야 한다고 국회를 열지 않고 있다. 그것이 비록 사과해야 할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국회를 여는 것과 연계할 필요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사과는 사고대로 받고 국회운영은 국회운영이 아닌가? 세금을 내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도대체 저들이 내 돈을 받아먹고 있는데 그들이 세금 값을 하는가? 국회우상화의 전근대적 표본이 바로 이런 것일 것이다.
민주당의 노무현 정신 계승은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가 생전 국민의 지지를 잃자 그가 그들 주변에 접근하는 것조차 전염병환자처럼 꺼리던 사람들이 바로 민주당 사람들이었다. 지금 세상인심이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에 동정론으로 변하자 무슨 정신계승 운운하는 것은 아무리 후안무치한 사람들이라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가소롭지 않을 수 없다. 빨리 국회로 돌아가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일이 법안심의를 심도 있게 하고, 국민을 평안하게 만드는 것일 것이다. 그것이 최소한 오늘 의 한국 국회를 존재하게 하는 최소한의 당위가 될 것이다.
4. 현대국가에서 좌파니 우파니 하는 전근대적 이념은 번영의 조건이 되지 못한다.
21세기 국가운영의 화두는 번영(prosperity)이라고 할 것이다. 번영의 함의는 경제적 조건이 우선 되겠지만 그 외의 안정, 행복이 가득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일 것이다. 번영의 일반적 조건은 국민 각자가 자기 있는 곳에서 부가가치 증식에 최선을 다하고, 각자의 안정과 행복을 위하여 내가 지켜야 할 것을 다 지키고, 국민 상대방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에 남아 있는 좌파 우파의 색깔이나 진보 보수의 이념 논쟁은 21세기 국가운영의 우선순위에서는 지나간 이슈에 불과하다. 얼마나 번영된 사회 번영된 국가를 만들어 가느냐가 현대사회의 우선된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국의 노동당정부나 보수당정부나 오늘날에는 정책은 모두 비슷하고, 빈민계층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많은 신흥국가들의 진보그룹들의 정책도 보수와의 차이를 제대로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세상이다. 그래서 발전된 나라나 신흥되는 사회나 막론하고 많은 나라에서 좌파정권이나 진보정권은 차츰 사라져 가고 있다. 모두 비슷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남는 가치가 바로 얼마나 국민의 번영을 가져오느냐 하는 것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에는 아직도 유별나게 진보니 보수니, 좌파 우파의 전근대적 색깔 론이 많이 남아있다. 학자들은 그것을 더 세분화하여 급진진보, 중도진보, 정통보수, 중도보수 등으로 세분화하고 싶어 하고 있다. 현대 국가운영의 흐름인 번영의 조건으로 본다면 이런 담론은 비현실적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오히려 한국에서의 좌파나 진보그룹 중에 얼마 많은 사람이 북한 김정일 정부에 가까운가, 즉 친북세력인가 그리고 우파나 보수그룹 중에도 얼마나 시장경제 운영을 우선시하는 세력인가를 구분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가난한 사람을 위하는 것이 좌파이고 부자를 위하는 것이 우파라는 기존 관념은 잘못된 것이고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현대국가운영에서 어느 정부 던 가난한 사람을 위하는 정책을 써야 하고 또 경제발전을 위하여 시장의 논리에 따라 부자를 위하는 정책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정부가 국민의 번영을 얼마나 가져왔느냐 하는 평가를 받는 것이 국가운영이지 좌파 우파의 색깔은 국가운영에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사회에서 지금 일고 있는 좌파니 진보니 하는 세력들은 조용히 스스로의 정체성을 다시 점검하고 스스로 추구하는 방향이 가난한 사람 권력을 얻지 못한 사람을 위하는 것인지 아니면 북한정권을 위하는 것인지를 구분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후자라면 모르겠지만 전자라면 그것은 좌파가 아니고 그야말로 번영을 위한 정책의 한 축을 더 중요시하는 부류로 스스로를 개념 규정할 필요가 있다. 우파나 보수도 마찬가지다. 스스로가 시장경제의 논리에 따른 경쟁의 경제를 중요시하는 그룹인지 국가지상주의와 같은 극우세력인지를 점검하여 보고 전자일 경우 이것은 우파도 무엇도 아닌 당연한 시장경제 지지자에 불과한 것이다. 만일 이런 분석에 동의한다면 한국사회에서 김정일 북한정권을 지지하는 그룹이나 국가지상주의를 신봉하는 그룹은 그 수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고 지금 스스로 좌파라고 하는 세력이나 우파라고 생각하는 세력의 대부분이 이념의 차이가 아니고 단순한 친소의 차이나, 일부 극단주의자들에게 비판 없이 휩쓸려 다닌 그룹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명하여 진다. 한국사회에서 더 이상 좌파 우파의 논쟁은 의미 없는 짓이다. 허상을 쫓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일부 극단 국가지상주의자나 친북세력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들을 실정법적으로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어느 사회이건 일부 극단론자들이 있게 마련이고 사회가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을 끌어안고 함께 번영을 찾아가는 것이 현대국가의 국가운영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지금 한국사회 안정을 어렵게 하는 일부 정치권, 노동권, 사회운동권 세력들은 국가통치력(법률과 사회규범)의 범위 내에서 활동하고 이를 지지해 주어야 한다. 전직 대통령이던 국회의원이던 노동단체든 친북사회단체든 국가통치력 안에서 행동하고 활동해야 한다. 국가통치력은 어느 경우이던 존중되어야 한다. 통치력을 벗어나는 행동은 당연히 법규의 제재를 받아야 하고 국가통치력 범위 내의 행동은 당연히 보호되어야 한다. 단순히 내 맘에 안 든다고 독재 운운하는 것은 한국민주주의를 오히려 모독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국민 모두가 여기에 이해를 같이해야 한국사회의 번영은 가능하여 진다고 할 수 있다.
5. 이명박대통령도 사회통합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치를 하여야 한다.
이명박대통령은 독재자라는 말을 들을 때 억울한 마음이 있을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현 정부를 독재정부라고 부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다만 왜 이런 억지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지를 대통령은 곰곰이 생각하여 보아야 할 것이다. 이명박대통령은 실례지만 너무 정치를 하지 못한다고 결론지어 말할 수 있다. 국민을 이해시키지 못하고, 사회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제 식구 들 조차 화합을 시키지 못하고 어떻게 옳게 대통령 노릇을 할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경제대통령의 이미지는 벗어던져야 한다. 대통령은 정치하는 사람이지 회사 사장이 아니다. 경제정책을, 경제논리를 정치논리에 우선하겠다는 착상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대통령이 할 일의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정치를 잘 하는 것을 전제로 경제대통령이 필요한 것이지 정치를 내팽개친(사회통합을 중요시 않는) 경제대통령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당내 결속을 먼저 확실하게 하여야 한다. 박근혜 진영과 정치적 연대를 분명하게 하고 실례지만 졸개들의 이해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억울하더라도 내각을 전면 쇄신하고 졸개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큰 틀에서 통합을 하는 정치의 모습을 주변을 쇄신하는 데서부터 시작하고 사회각계와 소통의 지평을 넓혀가야 한다. 이 길만이 그를 떠난 많은 지지 세력을 다시 부를 수 있는 계기가 되고 그들에게 다음 정권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은 본인의 안위보다는 그를 지원하여 준 많은 안정세력 들의 미래를 책임지는 그런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6. 개성공단, 고 노무현대통령 서거, 독재정권 타도와 같은 어지러운 현실이 결국 국가운영의 측면에서 중심 있게 해결되어야 한다. 이 중심에 대통령이 서 있어야 하고 국가운영이 번영의 가치를 우선하는데 집중되어야 한다고 평가한다.
2009년 6월 3일 수요일
잔인한 6월, 그래도 힘을 주소서
1. 우울한 5월의 그림자
5월이 가고 6. 25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6월이 왔다. 북한의 핵 위협 앞에 현충일을 앞둔 오늘 많은 상념이 우리 마음을 무겁게 한다. 6.25는 나이 든 세대에게는 현실이지만 젊은 계층에게는 역사 속으로 묻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쯤으로 치부하고 지나갈지 모르지만 나이든 한국인들은 아직도 김일성 공산도배에 절치부심하고 오늘을 살고 있다. 그 6월이 왔다.
2009년 5월은 시들어버린 라이락꽃처럼 우울하게 지나갔다. 그것도 긴 그림자를 드리운 채. 노무현 전대통령은 검찰의 비리수사를 받는 도중 지난 23일 돌연 자살하였다. 큰 충격과 함께 국민장을 치르는 7일 내내 많은 일들이 우리 앞에 벌어졌다. 무엇보다 전 대통령의 죽음 앞에 망연자실하는 많은 국민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그리고 장례가 치러지고 닷새가 지난 오늘 그를 억울하게 죽게 만든 현 정부가 사과해야 한다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고 있다. 그의 자살이 현 정부와 어떤 객관적 연관이 있는지 불분명하지만 고 노무현 대통령 지지자들은 책임론을 들고 일어나고 있다. 잠잠하였던 자칭 진보그룹인지 좌파세력인지 하는 인사들이 한데 뭉치고 있는 모습이다. 5월의 그림자는 길게 드리워져 있다.
이번 사건을 치르면서 이명박 정부의지지 세력이라 할 수 있는 보수진영 인사들이 이명박대통령 리더십에 많은 실망감을 나타내고 있다. 크게는 국민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지 못하고 정파 내에 갈등구조가 표출되는 이명박대통령의 리더십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가깝게는 고 노무현 대통령 장례과정에서 정부가 취한 의연하지 못한, 어쩌면 비굴하기까지 한 처사에 많은 지식인들은 실망감을 금할 수 없게 하였다. 유족측에게 국민장을 애원하는 것 같은 모습이나, 최상의 예우를 하지 못해 안달하는 모습들은 그 자체를 탓할 수 없을지 몰라도 객관적으로 의연하지 못하였다. 1년 전 촛불시위에 덴 이명박 정부는 미리 알아서 기는 형국을 연출하였다고 평가하는 것은 좀 과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5월의 그림자는 아직도 우울하게 우리주변에 길게 드리워져 있다.
2. 북한의 도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작고하고 하루 뒤 북한의 김정일 군사위원장은 조의를 유족에게 표하였다고 언론은 전하였다. 그리고 하루 뒤 북한정부는 원자력 핵실험을 단행하였다. 연이어 북한은 로켓발사시험을 여러 차례 실시하고 있다. 북한이 상중에 도발하는 것을 비난할 대상이 애초부터 아니지만 그래도 그들과 비교적 관계가 좋았던 고인의 장례가 진행 중인데 그 몇 날을 참지 못하고 북한은 세계에 핵위협을 해대고 있다. 이어서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을 준비 중에 있고 몇 개의 중거리 미사일도 발사준비를 하고 있다고 언론은 전한다. 앞으로 두주 후에 있을 한국 미국대통령 정상회담 무렵에 발사할 것이라느니 여러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남쪽 한국에서는 태평세월이고 오히려 전대통령 자살을 가져온 책임론이 훨씬 강하게 현실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이솝우화처럼 아기 달래는 수단으로 거짓 호랑이가 온다는 말이 아기의 무관심을 키워 정작 호랑이가 왔을 때 속수무책이듯 지금 우리 주변은 북한의 핵 위협에 무덤덤한 꼴이다. 아니 어떤 인간들은 북한이 핵을 가지면 그것이 결국 우리 것 되는 것 아니냐고 할 정도로 한국인의 인식은 혼동되어 있다. 불과 한 달 전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할 때 일본정부와 일본인 들이 보여준 반응을 과잉된 것이라고 치부한 것이 우리네 한국사람 들의 정서이다. 그러나 이미 북한은 핵무기를 몇개 만들 수 있는 플르토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또 며칠 전 미국의 전 국무장관은 북한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는 핵 보유가 필수적이라고 믿고 있고 또 그들이 필요할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생각하면 한국인의 오금이 저릴 일이다.
그저 북한 내부 정치사정으로 김정일 아들 후계구도를 완성하고자 하는 체제 내부용으로 핵실험 등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막연한 분석에 의지하고 싶은 것이 한국인들의 일반적 심정일 것이다. 또 중국이 자기네 안보상 가만히 있지 않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철딱서니 없는 낙관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개성공단은 이제 물 건너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 한 가닥 기대가 남았었다면 그것도 최근의 북한 행동을 볼 때 이제 접어야 한다. 다만 우리가 북한에게 비난의 구실을 주지 않기 위하여 조심스럽게 하되 철수를 주도면밀하게 시행하여 더 한국근로자들이 북한에 억류되거나 희생되는 일을 막아야 할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위협이 지속되는 가운데 그 뒤에서 죽어가고 있을 북한 사람들의 굶주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백성을 도탄에 빠트리고 정권유지를 위하여 수억 달러의 핵과 미사일 실험을 계속 해대는 북한 정부가 증오스럽다. 6월 2일 발표된 정부집계 결과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간 북한에 지원된 현금이 29억달러, 교역을 포함한 경제협력의 총 규모가 69억달러(8조7천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같은 기간 중국의 대북지원 규모가 19억달러라고 하니 김대중 노무현정부가 3.7배나 많이 준 결과가 된다. 이것은 북한 총수출의 90%에 달하는 규모라니 지난 10년간 한국정부가 얼마나 많은 돈을 북한에 퍼주었는지 가늠이 된다. 한국정부는 그동안 북한이 장거리 로켓과 핵무기를 개발하는데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하는 투자보다 훨씬 큰 규모의 대북 지원을 하여 그 보상(?)을 지금 받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한 것이다. 이 일을 주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고 노무현 대통령 장례 전후하여 한국 민주주의가 5공이나 유신시대로 회귀하고 있다고 탄식한 바 있다. 오늘의 참담한 북한의 핵 위협 앞에 과연 그가 한국 민주주의를 거들먹거릴 수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역사 앞에 책임을 져야할 일이라고 판단한다.
3. 실용주의(實用主義)가 실용(失用)으로
최근 이명박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회의가 여러 측면에서 제기되고 있다. 무엇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는 것 같은 현실 앞에 그의 반대세력은 말할 것 없고 그의 지지진영에서도 많은 이탈이 일어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본인이 실용주의라고 외치던 것이 실용(失用)되고 있다고 하면 현직대통령에 대한 결례일까? 그의 실용주의가 오늘까지 가져온 결과가 무엇인가?
고 노무현 대통령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노무현을 지지하는 그룹들은 그렇다고 치고 이명박을 지지하는 세력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떠났다고 한다. 그래서 소위 진보를 자처하는 인사들이나 비정부그룹들(NGO)은 요즘 다시 결속하면서 정부 비난에 총궐기하는 모습이다. 여기에 더하여 일부 대학교수들이 비난에 참여하고 있고, 이명박을 지지하였던 많은 인사들이 정부비난에 합세하고 있는 형국이다. 사실 보수세력 사이에 당장 대안이 없어 그렇지 대안만 있으면 이명박 정부 지지를 버리고 싶다고 하는 그룹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도 매 한가지이다. 모래성 같은 한나라당은 무엇하나 제대로 해내는 집권당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매일 친이친박하며 내부갈등 만 국민에게 보이고 있다. 모래알은 합치면 좋은 건축자재가 되지만 하나하나 흩어지면 사상누각이 될 수밖에 없다. 근원적으로는 모두 대통령의 책임으로 돌아가겠지만 결국은 박근혜의원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더구나 그는 다음을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그녀에게 득보다 실이 크다고 분석될 수 있다. 사실 박의원이 알아야 할 것은 현재 대안부재론 때문에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지 많은 보수들은 이명박 박근혜 모두에게 크게 실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해결책은 매우 간단하다. 많은 사람이 이야기 하는 것처럼 이명박 대통령은 박근혜의원에게 한나라당을 내어주고 다음 선거를 지원해야 한다. 박 진영에서도 이명박정부에게 완벽하게 책임을 나누는 자세로 참여와 지원을 해야 한다. 이명박정부는 정부와 정치권을 쇄신하는 변화를 박근혜 측과 함께 가져와야 한다. 이 안에 대하여 친이진영에서 반대한다는 것은 알만한 일이지만 그것은 이명박 정부가 어느 정도 제대로 할 때 이야기 이지 지금 분위기로는 다음 정권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많은 보수진영 인사들은 다른 대안만 있으면 떠나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나라당은 알아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정치와 사회통합에 매진해야 한다. 현 상황에서 경제대통령은 의미가 없다.
4. 새로운 성장동력을 4대강 버리고 서비스산업에서 찾아야한다.
이명박정부는 남은 임기동안 세계적 경제위기 앞에 한국경제가 흔들리지 않는 발전을 가져오기 위한 성장동력을 찾아 종합적인 발전계획을 마련하여 국민과 함께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4대강개발과 같은 하드웨어적 접근보다는 교육 보건 컨텐츠산업등 내수산업의 발전을 종합적으로 가져오는 계획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지금이야말로 KDI 등 정부연구소를 동원하여 장기 발전방향을 정돈 마련하고, 이를 이해관계인과 충분한 컨센서스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이를 정부 주도로 추진하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 (서비스산업 종합계획 만들자. 본인의 블로그 참조) 시의성과 추진에 시비가 있겠지만 이것은 정부의 선택이라고 판단한다.
5. 그래도 힘을 주소서.
한국인에게 6월은 잔인한 달이다. 역사의 비극을 거울삼아 지금 아주 어려운 내우외환(內憂外患)의 형국이지만 이를 딛고 일어나야 한다. 한국의 발전이 그러하듯이 지난 어려움을 한국사람 들은 용기와 인내로 견뎌 이겨내었다. 6.25도 그랬고 유신도 그랬고, 초근목피에서 번영을 일구어 냈다. 지금 한국이 비민주국가도 아니고, 인권이 유린되는 사회도 아니다. 정치권은 더 이상 독재니 소외계층이니 전 근대적 이슈를 거들먹거리지 마라. 한국은 한 세기 안에 절대빈곤을 지나 번영을 앞세운 세계 13등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 아프다. 어렵다. 그렇다고 그 아픔을 그 어려움을 서로 감싸 안아야지 상처를 더치는 행동은 같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서로 삼가야 한다. 이제 나라를 한 사람이 이끄는 걸 세출의 지도자를 기대할 수는 없다. 한사람 한사람이 주인으로서 책임자로서 자기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길이 오늘을 사는 우리 세대의 책임이다. 죽을힘을 다해 한국사회의 번영을 일구어 나아가야 한다. 두리번 대지 말자. 사회를 어렵게 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그래도 이들 모두에게 힘을 주소서.
5월이 가고 6. 25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6월이 왔다. 북한의 핵 위협 앞에 현충일을 앞둔 오늘 많은 상념이 우리 마음을 무겁게 한다. 6.25는 나이 든 세대에게는 현실이지만 젊은 계층에게는 역사 속으로 묻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쯤으로 치부하고 지나갈지 모르지만 나이든 한국인들은 아직도 김일성 공산도배에 절치부심하고 오늘을 살고 있다. 그 6월이 왔다.
2009년 5월은 시들어버린 라이락꽃처럼 우울하게 지나갔다. 그것도 긴 그림자를 드리운 채. 노무현 전대통령은 검찰의 비리수사를 받는 도중 지난 23일 돌연 자살하였다. 큰 충격과 함께 국민장을 치르는 7일 내내 많은 일들이 우리 앞에 벌어졌다. 무엇보다 전 대통령의 죽음 앞에 망연자실하는 많은 국민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그리고 장례가 치러지고 닷새가 지난 오늘 그를 억울하게 죽게 만든 현 정부가 사과해야 한다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고 있다. 그의 자살이 현 정부와 어떤 객관적 연관이 있는지 불분명하지만 고 노무현 대통령 지지자들은 책임론을 들고 일어나고 있다. 잠잠하였던 자칭 진보그룹인지 좌파세력인지 하는 인사들이 한데 뭉치고 있는 모습이다. 5월의 그림자는 길게 드리워져 있다.
이번 사건을 치르면서 이명박 정부의지지 세력이라 할 수 있는 보수진영 인사들이 이명박대통령 리더십에 많은 실망감을 나타내고 있다. 크게는 국민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지 못하고 정파 내에 갈등구조가 표출되는 이명박대통령의 리더십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가깝게는 고 노무현 대통령 장례과정에서 정부가 취한 의연하지 못한, 어쩌면 비굴하기까지 한 처사에 많은 지식인들은 실망감을 금할 수 없게 하였다. 유족측에게 국민장을 애원하는 것 같은 모습이나, 최상의 예우를 하지 못해 안달하는 모습들은 그 자체를 탓할 수 없을지 몰라도 객관적으로 의연하지 못하였다. 1년 전 촛불시위에 덴 이명박 정부는 미리 알아서 기는 형국을 연출하였다고 평가하는 것은 좀 과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5월의 그림자는 아직도 우울하게 우리주변에 길게 드리워져 있다.
2. 북한의 도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작고하고 하루 뒤 북한의 김정일 군사위원장은 조의를 유족에게 표하였다고 언론은 전하였다. 그리고 하루 뒤 북한정부는 원자력 핵실험을 단행하였다. 연이어 북한은 로켓발사시험을 여러 차례 실시하고 있다. 북한이 상중에 도발하는 것을 비난할 대상이 애초부터 아니지만 그래도 그들과 비교적 관계가 좋았던 고인의 장례가 진행 중인데 그 몇 날을 참지 못하고 북한은 세계에 핵위협을 해대고 있다. 이어서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을 준비 중에 있고 몇 개의 중거리 미사일도 발사준비를 하고 있다고 언론은 전한다. 앞으로 두주 후에 있을 한국 미국대통령 정상회담 무렵에 발사할 것이라느니 여러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남쪽 한국에서는 태평세월이고 오히려 전대통령 자살을 가져온 책임론이 훨씬 강하게 현실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이솝우화처럼 아기 달래는 수단으로 거짓 호랑이가 온다는 말이 아기의 무관심을 키워 정작 호랑이가 왔을 때 속수무책이듯 지금 우리 주변은 북한의 핵 위협에 무덤덤한 꼴이다. 아니 어떤 인간들은 북한이 핵을 가지면 그것이 결국 우리 것 되는 것 아니냐고 할 정도로 한국인의 인식은 혼동되어 있다. 불과 한 달 전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할 때 일본정부와 일본인 들이 보여준 반응을 과잉된 것이라고 치부한 것이 우리네 한국사람 들의 정서이다. 그러나 이미 북한은 핵무기를 몇개 만들 수 있는 플르토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또 며칠 전 미국의 전 국무장관은 북한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는 핵 보유가 필수적이라고 믿고 있고 또 그들이 필요할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생각하면 한국인의 오금이 저릴 일이다.
그저 북한 내부 정치사정으로 김정일 아들 후계구도를 완성하고자 하는 체제 내부용으로 핵실험 등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막연한 분석에 의지하고 싶은 것이 한국인들의 일반적 심정일 것이다. 또 중국이 자기네 안보상 가만히 있지 않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철딱서니 없는 낙관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개성공단은 이제 물 건너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 한 가닥 기대가 남았었다면 그것도 최근의 북한 행동을 볼 때 이제 접어야 한다. 다만 우리가 북한에게 비난의 구실을 주지 않기 위하여 조심스럽게 하되 철수를 주도면밀하게 시행하여 더 한국근로자들이 북한에 억류되거나 희생되는 일을 막아야 할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위협이 지속되는 가운데 그 뒤에서 죽어가고 있을 북한 사람들의 굶주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백성을 도탄에 빠트리고 정권유지를 위하여 수억 달러의 핵과 미사일 실험을 계속 해대는 북한 정부가 증오스럽다. 6월 2일 발표된 정부집계 결과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간 북한에 지원된 현금이 29억달러, 교역을 포함한 경제협력의 총 규모가 69억달러(8조7천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같은 기간 중국의 대북지원 규모가 19억달러라고 하니 김대중 노무현정부가 3.7배나 많이 준 결과가 된다. 이것은 북한 총수출의 90%에 달하는 규모라니 지난 10년간 한국정부가 얼마나 많은 돈을 북한에 퍼주었는지 가늠이 된다. 한국정부는 그동안 북한이 장거리 로켓과 핵무기를 개발하는데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하는 투자보다 훨씬 큰 규모의 대북 지원을 하여 그 보상(?)을 지금 받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한 것이다. 이 일을 주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고 노무현 대통령 장례 전후하여 한국 민주주의가 5공이나 유신시대로 회귀하고 있다고 탄식한 바 있다. 오늘의 참담한 북한의 핵 위협 앞에 과연 그가 한국 민주주의를 거들먹거릴 수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역사 앞에 책임을 져야할 일이라고 판단한다.
3. 실용주의(實用主義)가 실용(失用)으로
최근 이명박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회의가 여러 측면에서 제기되고 있다. 무엇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는 것 같은 현실 앞에 그의 반대세력은 말할 것 없고 그의 지지진영에서도 많은 이탈이 일어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본인이 실용주의라고 외치던 것이 실용(失用)되고 있다고 하면 현직대통령에 대한 결례일까? 그의 실용주의가 오늘까지 가져온 결과가 무엇인가?
고 노무현 대통령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노무현을 지지하는 그룹들은 그렇다고 치고 이명박을 지지하는 세력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떠났다고 한다. 그래서 소위 진보를 자처하는 인사들이나 비정부그룹들(NGO)은 요즘 다시 결속하면서 정부 비난에 총궐기하는 모습이다. 여기에 더하여 일부 대학교수들이 비난에 참여하고 있고, 이명박을 지지하였던 많은 인사들이 정부비난에 합세하고 있는 형국이다. 사실 보수세력 사이에 당장 대안이 없어 그렇지 대안만 있으면 이명박 정부 지지를 버리고 싶다고 하는 그룹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도 매 한가지이다. 모래성 같은 한나라당은 무엇하나 제대로 해내는 집권당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매일 친이친박하며 내부갈등 만 국민에게 보이고 있다. 모래알은 합치면 좋은 건축자재가 되지만 하나하나 흩어지면 사상누각이 될 수밖에 없다. 근원적으로는 모두 대통령의 책임으로 돌아가겠지만 결국은 박근혜의원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더구나 그는 다음을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그녀에게 득보다 실이 크다고 분석될 수 있다. 사실 박의원이 알아야 할 것은 현재 대안부재론 때문에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지 많은 보수들은 이명박 박근혜 모두에게 크게 실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해결책은 매우 간단하다. 많은 사람이 이야기 하는 것처럼 이명박 대통령은 박근혜의원에게 한나라당을 내어주고 다음 선거를 지원해야 한다. 박 진영에서도 이명박정부에게 완벽하게 책임을 나누는 자세로 참여와 지원을 해야 한다. 이명박정부는 정부와 정치권을 쇄신하는 변화를 박근혜 측과 함께 가져와야 한다. 이 안에 대하여 친이진영에서 반대한다는 것은 알만한 일이지만 그것은 이명박 정부가 어느 정도 제대로 할 때 이야기 이지 지금 분위기로는 다음 정권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많은 보수진영 인사들은 다른 대안만 있으면 떠나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나라당은 알아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정치와 사회통합에 매진해야 한다. 현 상황에서 경제대통령은 의미가 없다.
4. 새로운 성장동력을 4대강 버리고 서비스산업에서 찾아야한다.
이명박정부는 남은 임기동안 세계적 경제위기 앞에 한국경제가 흔들리지 않는 발전을 가져오기 위한 성장동력을 찾아 종합적인 발전계획을 마련하여 국민과 함께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4대강개발과 같은 하드웨어적 접근보다는 교육 보건 컨텐츠산업등 내수산업의 발전을 종합적으로 가져오는 계획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지금이야말로 KDI 등 정부연구소를 동원하여 장기 발전방향을 정돈 마련하고, 이를 이해관계인과 충분한 컨센서스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이를 정부 주도로 추진하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 (서비스산업 종합계획 만들자. 본인의 블로그 참조) 시의성과 추진에 시비가 있겠지만 이것은 정부의 선택이라고 판단한다.
5. 그래도 힘을 주소서.
한국인에게 6월은 잔인한 달이다. 역사의 비극을 거울삼아 지금 아주 어려운 내우외환(內憂外患)의 형국이지만 이를 딛고 일어나야 한다. 한국의 발전이 그러하듯이 지난 어려움을 한국사람 들은 용기와 인내로 견뎌 이겨내었다. 6.25도 그랬고 유신도 그랬고, 초근목피에서 번영을 일구어 냈다. 지금 한국이 비민주국가도 아니고, 인권이 유린되는 사회도 아니다. 정치권은 더 이상 독재니 소외계층이니 전 근대적 이슈를 거들먹거리지 마라. 한국은 한 세기 안에 절대빈곤을 지나 번영을 앞세운 세계 13등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 아프다. 어렵다. 그렇다고 그 아픔을 그 어려움을 서로 감싸 안아야지 상처를 더치는 행동은 같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서로 삼가야 한다. 이제 나라를 한 사람이 이끄는 걸 세출의 지도자를 기대할 수는 없다. 한사람 한사람이 주인으로서 책임자로서 자기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길이 오늘을 사는 우리 세대의 책임이다. 죽을힘을 다해 한국사회의 번영을 일구어 나아가야 한다. 두리번 대지 말자. 사회를 어렵게 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그래도 이들 모두에게 힘을 주소서.
2009년 5월 30일 토요일
수심 가득한 계절의 여왕을 보내며
2009년 5월 계절의 여왕은 수심 가득한 모습이다. 하나는 노무현 전대통령의 자살에 따른 여러 파장을 안고 국민장으로 보내는 마음이 어둡다. 그가 청와대를 떠난 지 1년 반이 채 안되었는데, 세상은 오월 잔디에 잡초 솟아나듯 여러 갈등이 피어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 계절의 여왕 마음을 무겁게 한다. 둘은 남한의 국민장 중에도 참지 못하고 북한정권은 핵실험을 하고 로켓을 쏘아대고 있다. 그들이 좋아했던, 아니 그들을 좋아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치러지고 있는데 북한정권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갈 길을 가고 있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어 계절의 여왕 마음을 우울하게 하고 있다.
지난 5월 23일인가 아침 모든 뉴스미디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소식을 전하기 시작하여 어저께 27일 밤 12시 국민장기간이 끝날 때 까지 온통 이 소식으로 도배를 하다시피 하였다. 이 소식을 인터넷으로 보는 순간 나의 머리를 제일 먼저 스치는 것이 어떻게 대통령 지낸 사람이 자살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상상하기 힘든 현실 앞에 많은 한국 사람들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황하였을 것이다.
대통령의 자살. 과문한 나는 이런 사례가 다른 나라에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다른 외국의 사례는 몇 건 있었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처음 있는 이 비극을 앞에 놓고 많은 생각과 고민이 한국 하늘을 뒤 덮었다. 그리고 국민장을 치르면서 몇 가지 생각이 가닥을 잡아가기 시작하였다.
첫째는 한국 사람은 정이 많은 국민이구나 하는 생각이다. 언론에 나온 것을 보면 5백만이 넘는 조문객이 한반도와 그리고 외국공관 등을 찾았다고 한다. 또 장례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뜨겁게 망인 노무현을 애달파 했다. 그의 장례기간 동안 온 언론은 앞 다투어 망인의 훌륭한 생애를 찬미하듯 기사화하였다. 그러니 그의 잘못된 정책이나 자살의 직접적인 동인이었던 부정과 연관된 문제 등은 여느 결에 사라져 버렸다. 서양에서는 사건관련 자살이 범죄인정으로 받아드려진다지만, 한국에서는 죽음 앞에 모든 것은 없었던 일이 된다. 따라서 검찰에서도 ‘기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자살 직후 결론 내었다. 한 발작 더 나아가 장례과정에서 오히려 현 이명박대통령에게 사과하라고 엉뚱한 요구를 하는 해프닝까지 생겼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소박한 정이 넘치는 것이 한국 사람들의 마음이라고 읽었다.
둘째는 한국사회의 다양성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언론에 보도된 대로 이렇게 많은 애도의 물결에 유가족도 놀라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국민과의 소통을 망인은 잘 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면에서는 현 이명박 정부의 리더십에 실망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들의 실망감을 노무현 전대통령 조문으로 표시한 것 아닌가 하는 언론 분석도 나오고 있다. 아무튼 한국사회는 현재 여러 가지 형태의 갈등구조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이 먹은 사람들의 식사장소에서 우스개 소리로 나온 말이 우리 주변에서는 조문 간 사람을 찾을 수 없는데 어떻게 저렇게 많은 사람이 조문할 수 있느냐 한다. 전연 다른 위성(planet)이 한국사회에 많이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사회가 발전할수록 다양성이 확대되지만 그 다양성은 같은 위성에서 존재하는 견해의 차이이지 이것은 전연 다른 지구인들이 함께 사는 모양새와 보다 가까운지 모르겠다.
셋째 이번 장례과정에서 이명박정부의 의연함이 부족한 면을 보면서 실망스러운 점을 지적하고 싶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노 전대통령의 자살 소식이 전해지자 이명박 대통령은 당일의 모든 일정을 취소하였다고 한다. 물론 전임대통령의 서거 그것도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사건 앞에 현직 대통령의 마음을 읽을 수는 있지만 촌각도 그냥 갈 수 없는 대통령의 집무를 어떻게 중단할 수 있단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 국민장을 수용하게 유족에게 권유하는 과정도 일반인이 보기에 적절하지 못하였던 것 같다. 서거 당일 정부를 대표하여 조문 간 국무총리를 조문도 못하게 쫓아내고, 무슨 정부가 죄지은 것처럼 국민장을 수용해 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은 모습을 연출하는 것은 의연함이 부족하고 오히려 과례인 것처럼 보인다.
넷째 김정일 정권의 무례함에 새삼 분노와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족에게 조의를 표하여 왔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날 북한은 핵실험을 단행하였다. 연이어 미사일을 쏘아대는 실험을 오늘까지도 계속하고 있다. 북한정권에 대하여 예의를 논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핵실험 이후 한국정부가 취한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전면가입 조치를 놓고 선전포고니 무어니 하면서 지금 한반도에는 최근 가장 높은 긴장이 조성되고 있다. 연평도에 대한 북한의 불법침공이 예상시나리오에 오를 정도로 한국군은 비상체제에 있다. 언론보도만 보면 금세라도 전투가 벌어질 것 같은 긴장감 속에서 한국 사람은 오금이 저려오고 있다. 오늘 이런 상황이 있게 만든 데는 북한 정권 다음으로 지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무턱 댄 북한지원이 큰 몫을 하였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런 일을 시작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장례과정에서 마치 한국 민주주의를 만든 장본인처럼 행세하는 것을 보면서 분노와 허탈을 감출 수 없다.
아무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애는 많은 영욕을 뒤로 한 채 한줌의 재로 변하여 한국사람 들의 곁을 떠났다. 그 것도 이 찬란한 계절 5월에..... 많은 어려운 사람의 아픔을 함께한 채 그리고 모든 한국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북한 김정일 정권의 긴장을 놓아둔 채 그는 갔다. 그를 보내는 계절의 여왕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또한 계절의 여왕을 보내는 한국사람들의 마음도 무겁기는 마찬가지이다.
지난 5월 23일인가 아침 모든 뉴스미디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소식을 전하기 시작하여 어저께 27일 밤 12시 국민장기간이 끝날 때 까지 온통 이 소식으로 도배를 하다시피 하였다. 이 소식을 인터넷으로 보는 순간 나의 머리를 제일 먼저 스치는 것이 어떻게 대통령 지낸 사람이 자살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상상하기 힘든 현실 앞에 많은 한국 사람들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황하였을 것이다.
대통령의 자살. 과문한 나는 이런 사례가 다른 나라에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다른 외국의 사례는 몇 건 있었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처음 있는 이 비극을 앞에 놓고 많은 생각과 고민이 한국 하늘을 뒤 덮었다. 그리고 국민장을 치르면서 몇 가지 생각이 가닥을 잡아가기 시작하였다.
첫째는 한국 사람은 정이 많은 국민이구나 하는 생각이다. 언론에 나온 것을 보면 5백만이 넘는 조문객이 한반도와 그리고 외국공관 등을 찾았다고 한다. 또 장례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뜨겁게 망인 노무현을 애달파 했다. 그의 장례기간 동안 온 언론은 앞 다투어 망인의 훌륭한 생애를 찬미하듯 기사화하였다. 그러니 그의 잘못된 정책이나 자살의 직접적인 동인이었던 부정과 연관된 문제 등은 여느 결에 사라져 버렸다. 서양에서는 사건관련 자살이 범죄인정으로 받아드려진다지만, 한국에서는 죽음 앞에 모든 것은 없었던 일이 된다. 따라서 검찰에서도 ‘기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자살 직후 결론 내었다. 한 발작 더 나아가 장례과정에서 오히려 현 이명박대통령에게 사과하라고 엉뚱한 요구를 하는 해프닝까지 생겼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소박한 정이 넘치는 것이 한국 사람들의 마음이라고 읽었다.
둘째는 한국사회의 다양성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언론에 보도된 대로 이렇게 많은 애도의 물결에 유가족도 놀라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국민과의 소통을 망인은 잘 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면에서는 현 이명박 정부의 리더십에 실망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들의 실망감을 노무현 전대통령 조문으로 표시한 것 아닌가 하는 언론 분석도 나오고 있다. 아무튼 한국사회는 현재 여러 가지 형태의 갈등구조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이 먹은 사람들의 식사장소에서 우스개 소리로 나온 말이 우리 주변에서는 조문 간 사람을 찾을 수 없는데 어떻게 저렇게 많은 사람이 조문할 수 있느냐 한다. 전연 다른 위성(planet)이 한국사회에 많이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사회가 발전할수록 다양성이 확대되지만 그 다양성은 같은 위성에서 존재하는 견해의 차이이지 이것은 전연 다른 지구인들이 함께 사는 모양새와 보다 가까운지 모르겠다.
셋째 이번 장례과정에서 이명박정부의 의연함이 부족한 면을 보면서 실망스러운 점을 지적하고 싶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노 전대통령의 자살 소식이 전해지자 이명박 대통령은 당일의 모든 일정을 취소하였다고 한다. 물론 전임대통령의 서거 그것도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사건 앞에 현직 대통령의 마음을 읽을 수는 있지만 촌각도 그냥 갈 수 없는 대통령의 집무를 어떻게 중단할 수 있단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 국민장을 수용하게 유족에게 권유하는 과정도 일반인이 보기에 적절하지 못하였던 것 같다. 서거 당일 정부를 대표하여 조문 간 국무총리를 조문도 못하게 쫓아내고, 무슨 정부가 죄지은 것처럼 국민장을 수용해 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은 모습을 연출하는 것은 의연함이 부족하고 오히려 과례인 것처럼 보인다.
넷째 김정일 정권의 무례함에 새삼 분노와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족에게 조의를 표하여 왔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날 북한은 핵실험을 단행하였다. 연이어 미사일을 쏘아대는 실험을 오늘까지도 계속하고 있다. 북한정권에 대하여 예의를 논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핵실험 이후 한국정부가 취한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전면가입 조치를 놓고 선전포고니 무어니 하면서 지금 한반도에는 최근 가장 높은 긴장이 조성되고 있다. 연평도에 대한 북한의 불법침공이 예상시나리오에 오를 정도로 한국군은 비상체제에 있다. 언론보도만 보면 금세라도 전투가 벌어질 것 같은 긴장감 속에서 한국 사람은 오금이 저려오고 있다. 오늘 이런 상황이 있게 만든 데는 북한 정권 다음으로 지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무턱 댄 북한지원이 큰 몫을 하였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런 일을 시작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장례과정에서 마치 한국 민주주의를 만든 장본인처럼 행세하는 것을 보면서 분노와 허탈을 감출 수 없다.
아무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애는 많은 영욕을 뒤로 한 채 한줌의 재로 변하여 한국사람 들의 곁을 떠났다. 그 것도 이 찬란한 계절 5월에..... 많은 어려운 사람의 아픔을 함께한 채 그리고 모든 한국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북한 김정일 정권의 긴장을 놓아둔 채 그는 갔다. 그를 보내는 계절의 여왕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또한 계절의 여왕을 보내는 한국사람들의 마음도 무겁기는 마찬가지이다.
2009년 5월 19일 화요일
지방소득세, 지방소비세제 신설을 반대한다.
보도에 의하면 정부와 한나라당은 내년부터 지방소득세와 지방소비세를 신설하기로 합의하였다 한다. 우선 세 부담자인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이 경제위기에 무슨 뚱딴지같은 새로운 세목의 신설인가 의아할 수 있지만 일부는 전에 국세의 부가세 형태로 이미 징수하던 것을 아예 지방세로 독립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부담 증가는 없는 것이고, 일부는 새로 만드는 것인 모양인데 이것도 이미 징수한 부가가치세의 일부를 지방자치단체에 이전하는 것이므로 이것도 일단 추가 부담은 없는 것으로 추측된다. 이 정책의 배경에는 지난 해 수도권 규제를 완화할 때 지방자치단체들의 반대가 심하게 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한 약삭빠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을 실현하는 것이라 한다.
그 내용은 우선 국세인 소득세와 법인세의 10%를 부가세형태로 부과하던 주민세를 지방소득세로 변경 신설하여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징수하도록 한 것이고, 지방소비세는 부가가치세의 10%에 해당하는 세액을 지방자치단체의 몫으로 돌리는 것으로 이전의 형식에 따라 교부금이 될지 가산세의 형태가 될지는 아직 정확하지 않다. 아무튼 일견 국민의 추가 세 부담은 없고 지방자치단체의 세입이 보다 안정적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것이 이 정책의 추진 취지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도의 도입은 조세이론상으로 보나 현실 행정관행으로 볼 때 다음과 같은 불합리한 면이 있어 그 도입을 중단할 것을 제안한다.
첫째 지방자치제의 세원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조달해야 하는 일반원칙에 반하는 제도이다. 그동안 주민세를 소득세나 법인세의 부가세의 형태로 징수하던 편법을 이번에 지방소득세로 독립시키는 것은 이런 취지에서는 합당한 처사이다. 그런데 여기에 부가가치세의 일정비율을 지방에 이전하는 지방소비세는 또 하나의 나쁜 제도를 전과 같이 다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대책 없이 부가가치세의 10%를 지방에 이전하면 중앙정부의 세입에 그만큼 차질이 오는데 이것은 누가 부담하는가? 국민인가 정부인가. 물론 정부가 아닌 국민의 추가 부담이 어떤 형태로던 돌아올 것이 뻔하다.
둘째 지방소득세의 신설이 지방자치단체 간의 재정불균형을 심화시킬 것은 자명하다고 할 것이다. 지방소도시 자치단체의 소득세 징수가 과연 얼마나 되며 그곳의 재정궁핍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결국 중앙정부에 추가적 의존이 불가피할 것으로 판단된다.
셋째 보도에 의하면 지방소득세에 탄력세율과 감면 공제제도를 지자체가 자율 운영하도록 제도화한다는데 그렇게 될 경우 재정이 넉넉한 수도권이나 대도시 자치단체들의 경우 선심성 세율 낮추기와 감면확대가 올 것이다. 이때 타 지역과의 역차별이 발생하고 어려운 지자체의 세수확대 노력에 따른 주민부담 추가가 불가피할 것이다. 이 때 대도시와 농촌, 부자 지자체와 가난한 지자체 간의 불균형이 더욱 확대될 것이다.
넷째 국가의 조세징수권이 옛날 국왕의 특권으로 취급받던 개념에서 현대 행정에서는 정부의 행정서비스에 수반하는 불가피한 비용의 징수개념으로 전환되어가는 현대 조세개념에 입각해 본다면, 조세징수권을 지방에 이양하는 것이 무슨 혜택이나 이익을 주는 개념으로 이해되고 이런 인식위에 이번 국세의 지방세 이양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재고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시대착오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다섯째 행정비용의 증가가 불가피하며 또 공과금의 통합징수 추세에 반하는 정책이라고 평가한다. 주민세는 그동안 국세 부가세 형태로 징수하였는데 이것을 지자체가 직접 징수하기 위해서는 전담기구가 있어야 하고 상당한 추가 인력과 비용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 추가부담은 주민의 몫으로 돌아갈 것은 뻔한 이치이다. 그래서 최근 국민연금이나 의료보험료등 공적기관의 요금 징수를 통합하는 추세에 있다. 마찬가지로 국가의 각종 세금이나 요금의 징수를 통합 징수하는 방안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규모가 영세한 지방자치단체의 경우에는 세금징수의 한계비용은 증가하기 마련일 것이고 이 경우 일정액의 수수료를 납부하고 국세징수기관에 위탁하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입각하여 보면 지자체의 선심성 조세신설보다는 종래의 부가세 개념이 더 합리성을 가졌다고도 할 수 있다. 반면 납세자의 입장에서도 지방세의 독립신설이 소득신고 등 국세의 경우와 별개로 도일한 행동을 다시 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부가세제도를 없앨 요량도 아니고 새로 부가가치세에 부가세를 만들 요량이면 이번 지방소득세 지방소비세 신설은 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한다.
그 내용은 우선 국세인 소득세와 법인세의 10%를 부가세형태로 부과하던 주민세를 지방소득세로 변경 신설하여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징수하도록 한 것이고, 지방소비세는 부가가치세의 10%에 해당하는 세액을 지방자치단체의 몫으로 돌리는 것으로 이전의 형식에 따라 교부금이 될지 가산세의 형태가 될지는 아직 정확하지 않다. 아무튼 일견 국민의 추가 세 부담은 없고 지방자치단체의 세입이 보다 안정적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것이 이 정책의 추진 취지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도의 도입은 조세이론상으로 보나 현실 행정관행으로 볼 때 다음과 같은 불합리한 면이 있어 그 도입을 중단할 것을 제안한다.
첫째 지방자치제의 세원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조달해야 하는 일반원칙에 반하는 제도이다. 그동안 주민세를 소득세나 법인세의 부가세의 형태로 징수하던 편법을 이번에 지방소득세로 독립시키는 것은 이런 취지에서는 합당한 처사이다. 그런데 여기에 부가가치세의 일정비율을 지방에 이전하는 지방소비세는 또 하나의 나쁜 제도를 전과 같이 다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대책 없이 부가가치세의 10%를 지방에 이전하면 중앙정부의 세입에 그만큼 차질이 오는데 이것은 누가 부담하는가? 국민인가 정부인가. 물론 정부가 아닌 국민의 추가 부담이 어떤 형태로던 돌아올 것이 뻔하다.
둘째 지방소득세의 신설이 지방자치단체 간의 재정불균형을 심화시킬 것은 자명하다고 할 것이다. 지방소도시 자치단체의 소득세 징수가 과연 얼마나 되며 그곳의 재정궁핍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결국 중앙정부에 추가적 의존이 불가피할 것으로 판단된다.
셋째 보도에 의하면 지방소득세에 탄력세율과 감면 공제제도를 지자체가 자율 운영하도록 제도화한다는데 그렇게 될 경우 재정이 넉넉한 수도권이나 대도시 자치단체들의 경우 선심성 세율 낮추기와 감면확대가 올 것이다. 이때 타 지역과의 역차별이 발생하고 어려운 지자체의 세수확대 노력에 따른 주민부담 추가가 불가피할 것이다. 이 때 대도시와 농촌, 부자 지자체와 가난한 지자체 간의 불균형이 더욱 확대될 것이다.
넷째 국가의 조세징수권이 옛날 국왕의 특권으로 취급받던 개념에서 현대 행정에서는 정부의 행정서비스에 수반하는 불가피한 비용의 징수개념으로 전환되어가는 현대 조세개념에 입각해 본다면, 조세징수권을 지방에 이양하는 것이 무슨 혜택이나 이익을 주는 개념으로 이해되고 이런 인식위에 이번 국세의 지방세 이양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재고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시대착오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다섯째 행정비용의 증가가 불가피하며 또 공과금의 통합징수 추세에 반하는 정책이라고 평가한다. 주민세는 그동안 국세 부가세 형태로 징수하였는데 이것을 지자체가 직접 징수하기 위해서는 전담기구가 있어야 하고 상당한 추가 인력과 비용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 추가부담은 주민의 몫으로 돌아갈 것은 뻔한 이치이다. 그래서 최근 국민연금이나 의료보험료등 공적기관의 요금 징수를 통합하는 추세에 있다. 마찬가지로 국가의 각종 세금이나 요금의 징수를 통합 징수하는 방안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규모가 영세한 지방자치단체의 경우에는 세금징수의 한계비용은 증가하기 마련일 것이고 이 경우 일정액의 수수료를 납부하고 국세징수기관에 위탁하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입각하여 보면 지자체의 선심성 조세신설보다는 종래의 부가세 개념이 더 합리성을 가졌다고도 할 수 있다. 반면 납세자의 입장에서도 지방세의 독립신설이 소득신고 등 국세의 경우와 별개로 도일한 행동을 다시 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부가세제도를 없앨 요량도 아니고 새로 부가가치세에 부가세를 만들 요량이면 이번 지방소득세 지방소비세 신설은 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한다.
2009년 5월 12일 화요일
서비스산업활성화 종합계획 만들자.
차 례
1. 수출 중심에서 서비산업 중심으로
2. 한국서비스업의 낙후성
3. 정부의 무능한 서비스산업 발전전략
4. 계획의 기본틀은 KDI가, 추진은 재경장관을 부총리로 격상하여 재경부가.
5. 지금 주저하면 한국경제는 바람 앞에 등불신세를 면할 수 없다.
1. 수출 중심에서 서비스산업 중심으로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맞아 한국경제는 억울할 만큼 많이 흔들렸다. 지난 10여 년 간 경제의 발전은 부진하였지만 위기관리 면에서는 나름대로 개선되었다고 생각한 한국경제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기업의 재무구조가 개선되어 상장기업 평균 400% 대의 부채비율이 100% 대로 개선되었다. IMF 이후 속절없이 빗장이 풀린 한국경제는 수많은 기업이 없어졌거나 그 주인을 바꿨다. 그러면서 적자생존의 경쟁 속에서 한국경제를 지탱해온 저력은 한국 기업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나라살림살이에서도 재정은 구조면에서 많이 망가졌지만 외환보유액은 2000억불 이상 쌓았다. 1998년 당시 200억불의 외환보유가 하루아침 30억불로 줄어들어 한국경제는 IMF로 갔다. 그렇게 빡빡하던 외환보유도 여유가 있다고 정부는 자랑하곤 하였다.
그런 한국경제가 2008년 2분기 이후 위험신호가 켜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허구한 날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리고 몇 달 있다가 9월 말 미국의 불량주택채권 문제가 드디어 수면위로 떠올랐고, 이어 리먼 사태가 나자 세계는 하루아침에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그래도 순진한 한국 사람들은 2000억불이라는 외환보유가 있는데 하면서 마음의 여유를 가졌다. 그러나 사태는 환율에서 터지기 시작하였고 1000원대의 대미환율이 1500원이 넘어가고 국제원유가격이 1500달러가 넘어가자 한국에 와 있던 외국투자가들은 한국시장을 버리기 시작하였다. 한편 세계적인 패닉 앞에 수출시장은 마비되어 수출 길은 막혀 버렸다. 그러니 2008년 4분기 한국의 GDP는 연율로 20%가 넘게 마이나스 성장을 하고, 그 부(負)의 성장은 금년 1분기에도 계속되었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한국경제가 마치 금세 부도가 날 것처럼 비관론이 나오고 여기에 더하여 호시탐탐 한국시장을 넘보고 있는 국제자본들은 의도적으로 한국시장의 취약성을 부각시켰다. 지난 3월까지 특히 HSBC 등 금융기관과 영국의 피낸셜 타임스, 이코노미스트 등 언론기관은 내어놓고 한국경제를 폄하하였다. 속이야 쓰리지만 이런 악랄하기 까지 한 국제금융시장의 흐름 속에서 한국경제는 더 이상 수출에 의존된 경제를 운영해서는 안 되겠다는 문제점이 부각되었다.
한국경제의 무역의존도는 해마다 증가되어 2007년에 GDP의 75.1%까지 되었다. 이는 지난 1996년 50.4%에서 10년 사이 25포인트가 오른 것이다. 물론 부가가치 증가를 단순 무역규모에 비교하는 이론적 문제가 있지만 아무튼 대부분 이미 발전된 경제의 경우 한국경제보다는 이 비율이 훨씬 낮은 수준이다. 미국이 22%, 일본 30%, 영국 38%, 프랑스 45%, 중국 67%라고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독일 72%, 대만 121% 그리고 네델란드 벨지움 룩셈브르크 등 GDP의 두 배가 넘는 나라도 많다. IBRD의 무역의존도 통계에 의하면 한국이 83%인데 일본 28%, 중국 69%이다. 따라서 그 비율 수치 자체가 반드시 문제인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내수(內需)가 상대적으로 작은 경제는 외풍에 훨씬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겠다. 거기다가 경쟁력을 나타내는 수출단가를 비교한 UN 통계에 의하면 2000년을 100으로 하였을 때 일본 등 선진국 평균 수출단가는 130, 중국 103인데 비하여 한국은 92로, 그만큼 한국상품의 가격이 낮게 팔려나갔다고 나와 있다. 이는 수출산업의 채산성에 나쁜 결과를 가져오게 한다. 거기다가 수출에서 차지하는 몇 개 상품의 비중이 한국이 유독 크게 나타나 한국경제의 기반이 몇몇 기업이나 상품에 더 의존되어 있다고 분석된다. 세계적 경제위기가 오자 한국경제가 유난히 더 추위를 타게 되는 연유가 여기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경제의 수출발전전략은 1960년대 초 제1차경제개발계획으로 올라간다. 당시 내수시장이 손바닥만한데 어떻게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답으로 세계시장을 상대로 한 수출 진흥만이 한국경제가 살 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대외지향적 개발전략의 선택은 한국경제를 한 세대 안에 전통농업구조에서 공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구조로 발전시켰고, 이것이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지식 정보 통신 산업으로 그 무게가 옮겨가고 있다.
그동안 한국경제의 발전과정에서 한국의 무역의존 문제는 많이 다룬 사회이슈 중의 하나가 되었다. 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많은 자본이 필요한데 국내저축이 부족하여 외국자본을 도입하자 일각에서 외채망국론을 들고 나왔다. 수출전략이 가져온 부수정책이 수입자유화 개방정책인데 이 과정에서 국내산업의 보호문제가 사회문제로 제기 되었다. 쌀 시장의 개방문제는 아직도 해결이 남아 있는 부문이다. 1981년부터 시작된 4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서를 쓰면서 당시의 경제기획원 기획팀들 사이에서는 세계시장의 변화에 어떻게 수출을 지속시켜 나아갈 수 있을까 하는 전략논의를 무수히 계속하였다. 그리고 얻은 결론은 한국의 수출시장이 변화하더라도 세계 모든 시장이 그렇게 동시적(synchronization)으로 되는 것은 아니니까 한쪽 시장이 저조하면 다른 활발한 시장을 찾으면 되고 그래서 수출다변화가 이루어지면 이 문제는 자연 해결될 수 있다고 당시 4차계획서는 밝히고 있다.
생각하면 한국경제가 지금처럼 완전 개방되고 경제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올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연구가 당시로서는 부족하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30년 전에 오늘의 한국경제와 세계경제를 상정한 전략을 세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얻게 된 결론이 이제는 시장다변화에 의한 수출전략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결론이다. 그 출발점은 내수시장을 발전시키는 전략이 될 것이다.
내수시장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주택과 지방도시 건설 그리고 도로 철도 항만 항공 등 사회간접자본 시설 등 건설업이 떠오른다. 이명박정부의 4대강 운하계획이나 4대강유역개발계획 같은 것이 여기에 속하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부문의 개발은 장기적인 성장동력으로서 그 지속성이 어렵고 고용흡수나 부가가치 증식에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이 부문을 도외시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특히 위기극복을 위한 재정지출의 대상 중 큰 부문은 자연 사회간접자본이 될 수밖에 없다. 치산치수(治山治水)로 대표되는 이 부문은 보다 자본집약적이고 덜 부가가치와 정규고용 집약적이라는 취약점이 있다. 그래서 자본축적이 적고 빠른 발전이 요구되는 한국경제의 위기극복전략으로서는 자연 한계가 있게 된다. 경제의 하부구조를 튼튼하게 하여야 장기적인 발전의 기틀이 잡힌다는 사회간접자본의 중요성은 언제나 진리일 것이다.
그러나 대량생산과 연관된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에서 보다 필요로 하는 도로 철도 항만 등의 하드웨어적 사회간접자본은 이제 산업구조가 금융 지식 정보 통신 등 서비스업으로 이동되면서 경제의 하부구조도 변화를 요구받는다. 이에 따라 하드웨어적 사회간접자본과 함께 보다 소프트웨어적 사회간접자본 확충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서비스산업의 진흥발전을 위한 하부구조개발은 전통적인 사회간접자본부문 개발을 위한 건설업보다 장기적으로 성장동력이 보장되고 부가가치와 고용흡수가 큰 분야이기 때문에 이 분야에 대한 집중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2. 한국서비스산업의 낙후성
한국사회는 전통적인 농업 중시에서 수출진흥을 위한 제조업 중심으로 산업의 축이 이동되었다. 고용은 흡수력이 큰 농업부문이 대종을 이루어 왔는데 대량생산체제에서 산업현장 인력이 고용을 또한 흡수하였다. 다른 발전도상국가 들에 비하여 한국경제는 이런 독특한 산업발전과정 속에서 고용이 훨씬 덜 사회문제가 되었고 그런 현상은 최근까지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농업이라고 하는 고용의 큰 버퍼 죤이 있었기에 경기가 하향할 때도 한국경제는 고용에 관한한 문제가 덜 심각하였었다. 그러나 이제 농업이 고용흡수기능을 상실한 마당에 세계적 경제위기 앞에 한국의 고용시장은 기댈 데가 없다. 현재 한국사회의 고용문제의 심각성이 여기에 연유한다고 할 수 있다.
유교적 전통관념 속에서 한국사회는 서비스업의 부정적 개념이 정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서비스업을 향락산업으로 착각하고 윤리도덕 면에서 이 부문을 경시하고자 하였다. 마치 ‘수출은 좋은 것 수입은 나쁜 것’으로 이분법적 교육을 받은 한국의 개발세대들은 ‘제조업은 좋은 것 서비스업은 나쁜 것’으로 착각하게 되었다. 학문적으로 생각하면 눈에 보이는 재화는 높이 평가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용역은 그리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러한 사회관념과 함께 대량생산을 통한 상품수출을 개발전략으로 한 한국경제는 자연스럽게 제조업의 비중이 확대되었다. 1960년대 한국경제의 광공업이 전체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20%에 불과하던 것이 이제 40%대 까지 확대되었다. 상대적으로 한국의 서비산업부문은 50%대에서 정체되어 있다. 이런 산업구조는 OECD 국가들 중 서비스업의 평균비중 72% 와 비교하면 한국의 서비스부문은 가장 낮은 수준이다. 물론 산업구조는 그 나라 그 사회의 전통과 발전방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서비스업의 비중이 많고 적다는 것만이 발전의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전통적으로 제조업이 강한 독일은 선진국들 중 서비스업의 비중이 아직도 60%대에 남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선진국들의 서비스업은 70%대를 나타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국경제에서 서비스산업의 제한된 발전은 세계적인 경제위기에서 수출이 침체될 때 상대적으로 내수 그것도 서비스업에 기댈 여지가 적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한국은행의 분석대로 10억원의 최종수요 발생에서 유발되는 취업자수가 서비스업이 18.4명이고 제조업이 10.1명, 건설업이 16.6명이다. 고용문제가 전보다 더 심각한 과제로 제기된 한국경제로서는 고용흡수가 큰 서비스부문의 발전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고 아직 선진국 형 산업구조로 가기위해서도 서비스업은 보다 빨리 발전되어야 할 부문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교육부문은 서비스산업의 간판이고 국가의 장기발전을 위한 인프라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교육을 미국의 오바마는 칭찬하고 부러워하고 있지만 한국교육제도의 실상과 교육일선의 한심한 모습을 그가 볼가 무섭다. 한국정부에서 가장 규제가 많이 남아 있는 곳이 교육부문이다. 폐쇄성이 가장 큰 부문도 교육부문이다. 내 아이를 맞기기 무섭기까지 한 것이 전교조단체다. 이런 교육부문을 하루빨리 환골 탈퇴시키는 것이 서비스산업 발전의 제일 큰 축이 되어야 한다.
서비스업에서 금융업의 중요성은 현대경제에서 아무리 확대해도 부족하다 할 것이다. 알빈 토플러의 말대로 21세기는 자본이 더 이상 실물경제의 종속변수가 아니고 자본이 자본자체의 이익을 위하여 움직이는 독립변수가 되어있다. 상품성격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최근의 파생금융상품이 미국의 주택채권과 함께 세계경제를 휘저어 놓은 것이 현재의 세계적 위기 아닌가? 한국경제는 독특하게 개발연대에 금융을 실물경제의 시녀로 전락시켜 왔다. 이러한 관념은 금융과 재정을 혼란시켜 지금도 금융을 독립된 산업으로 보기보다는 정부의 시녀로 착각하고 있는 경향이 남아있다. 그러니 금융이 발전되지 않고 그럴수록 금융의 독자적인 책임성도 부족한 후진성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서비산업 부문의 미래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컨텐츠산업도 겉으로는 한국이 많은 발전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는 전문가의 강의를 들은바 있다. 예를 들어 애니메이션산업에서 한국의 영역은 그저 남이 만든 생산물의 뒤처리에 치중된 수준이라 한다. 정보 통신부문도 한국이 세계를 이끄는 부문도 있지만 고부가가치부문은 아직 미국에 비하여 크게 뒤지고 있다.
이제 서비스산업의 발전전략은 미룰 수 없고 당장 손대어야 할 일로 인식해야 한다. 그것도 적당하게 그림을 그리는 수준이 아니고 한국정부가 육십년대 칠십년대 했던 것처럼 전 정부적으로 모든 역량를 집합하여 끌고 나아가야 할 개혁과제라고 평가한다.
3. 정부의 무능한 서비스업 발전전략
이명박정부는 지난 5월 8일 한국의 서비스산업 선진화방안을 내어놓았다. 유감스럽게도 정부는 지난 해 세 차례 서비스산업 선진화방안을 발표하였고 이번이 네 번째다. 그리고 앞으로 금년 내에 두 차례 방안을 더 내어놓을 것이라고 한다. 필자가 과문한 탓이겠지만 이렇게 여러 번 서비스산업계획이 발표되었었는지 몰랐다. 무슨 계획을 서너 달마다 행사 성으로 내어놓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계획을 여러 번 해서는 안 된다는 법은 없으니 여러 번 할 수도 있겠지만, 언론의 비판대로 비슷한 내용을 재탕 삼탕 하면서 지난 번 발표된 내용의 추진상황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한다. 그러니 이번 발표된 내용에 대한 신뢰도 부족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무릇 경제계획이라고 하면 내용의 합리성과 추진성을 전제로 한다. 계획 내용이 얼마나 합리성을 가졌는가? 이를 위해서 정보, 지식 그리고 기술 등이 가장 합리적으로 동원되어 최적의 조합을 이룰 때 계획은 비로소 합리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다음 계획 내용이 아무리 훌륭한 합리성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그 내용의 추진이 담보되지 않을 경우 그것은 한낱 전망이나 논문에 불과하고 이것을 계획이라 할 수 없다. 비록 현실이 계획 내용대로 추진을 허용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계획자체에는 그 추진방안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이명박정부가 1년 3개월 사이 서비스산업육성계획을 네 번이나 마련하였다는 것은 그것이 경제계획으로서 틀을 갖추지 못하였거나, 정부의 무능으로 그 추진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일 것이다. 어떤 경우이건 그렇다고 해서 한국경제의 서비스산업발전계획을 포기하거나 뒤로 미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만큼 긴급하고 중요하다고 평가한다.
교육부문이 가장 규제가 많이 남아있고 그래서 그 규제의 보호 속에 새로운 시장진입은 철저하게 제한된다. 거기에 대외개방과 경쟁을 하자는 내용을 받아드리기 어렵게 되어있다. 의료, 제약 산업 또한 공익성의 구실 밑에 경쟁을 기피하게 된다. 컨텐츠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국민의 준법정신이다. 불법복제가 판을 치는 상황 하에서 콘텐츠산업의 사업성을 보장받을 수 없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계획의 합리성은 현실 애로를 구실로 퇴색되고 추진력을 상실하게 된다. 당사자간의 이해조정으로 시간만 천연되고 합리성은 퇴색된다. 그러니 자꾸 계획만 남발하게 되고 일은 추진되지 못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4. 계획의 기본 틀은 KDI가, 추진은 재경장관을 부총리로 격상 재경부가 맡도록
서비스산업 발전계획을 종합적인 경제계획의 성격으로 격상하여 추진할 것인가하는 문제를 집고 넘어가야 하겠다. 물론 다른 개별산업의 육성방안으로 추진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부문이 기득권자와 신규참입자간의 이해가 상충하는 경우가 많은 부문이다. 교육 방송 의료 제약 등 성격상 공익성이 강조되는 부문이기 때문에 공익성을 내세워 기득권을 보호하고자 한다. 준법정신이 보다 강조되는 다분히 사회정책적 측면이 강한 면이 있는 부문이 컨텐츠산업이다. 따라서 기존질서의 이해와 협력이 없이 이 부문의 새로운 발전 모멘텀을 잡기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서비스산업을 개별 산업별로 발전 전략을 수립 추진하기보다는 차제에 서비스산업 전체의 개발계획을 종합적으로 만들 것을 제안한다.
한국경제의 발전정도로 볼 때 아직도 종합계획을 논의하자는 것은 이미 때늦은 접근이 아닌가 하는 논의가 있을 수 있다. 물론 수긍이 간다. 오랜 기간 한국의 발전전략의 축을 이루었던 경제개발계획도 김영삼정부가 들어서 대통령의 임기와 계획순기를 맞출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7차 5개년계획을 포기하였다. 그리고 어설픈 정권차원의 ‘신경제5개년계획’이라는 이름의 계획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종합계획으로서의 내용과 추진계획이 결여된 어설픈 계획의 시늉을 내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IMF를 맞고 자연스럽게 한국경제에서 종합개발계획이라는 것이 사라졌다. 그런데 지금 새삼스럽게 서비스부문 종합발전계획을 만들자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서비스 산업의 성격이나 비중으로 볼 때 지금 때를 놓치면 이미 너무 늦게 된다는 시급성이 있다고 평가하여 전 정부적인 종합발전계획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평가한다. 그 이유는 첫째 서비스산업의 발전에 있어 가장 어려운 것이 장기적인 발전구도를 가다듬는 일이다. 교육이 ‘백년대계’라고 하듯 장기과제이지만 개방시대에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부문이다. 의료 제약 정보 통신 등도 마찬가지다. 컨텐츠산업 등 새로 등장하는 신흥산업 들의 개발을 뒤로 미적대다가는 설 땅을 찾지 못하게 되는 긴급한 분야이기도 하다. 둘째 이해상충이 큰 분야이기 때문에 치밀한 계획의 준비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그 추진도 전 정부적으로 이해조정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서비스산업은 GDP의 3분의 2를 점하게 된 비중이 큰 분야이고 앞으로도 외부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유일한 분야라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한국경제운영에서 이제 수출 우선의 발전전략에 대한 대안을 내어놓아야 한다. 수출전략을 지속하면서 외부충격을 흡수하고 생활의 질을 개선하는 유일한 부문이 서비스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경제가 50년 전 경제개발전략을 가다듬던 초심으로 돌아가 이제 선진경제로 가는 길목에서 다시 내수를 개발하는 전략을 가다듬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정부가 내세울 국가운영전략으로서 서비스산업 종합계획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종합계획작업에 동의한다면 그 계획의 종합구도는 한국개발원(KDI)이 맡아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KDI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장기발전계획을 만든 경험이 있다. 멀게는 1960년대 중반 1980년대를 내다본 장기발전계획을 마련한 바 있고, 1970년대 초 한국의 국민연금제도를 비롯한 사회발전계획을 마련한바 있다. 그 이후에도 크고 작은 장기전망 작업을 해 낸 국내 유일한 연구 산실이다. 따라서 이번의 서비스산업발전계획도 의당 KDI가 재경부등 관계부처 그리고 이해관계단체들과 함께 작업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특히 계획작업과정에서 이해관계기관이나 단체와의 이해구축(consensus build up) 작업에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서비스산업의 발전계획은 그 집행이 무엇보다 매우 어려운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를 담보하는 대안으로 재경부장관을 이해조정자의 사령탑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재경장관을 부총리고 격상하여 좀더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하도록 그에게 많은 조정권한을 부여하는 제도마련이 필요하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대책에 대하여 너무 과거로 회귀하는 전근대적 접근이라고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인정한다. 그러나 전통농업국가에서 수출중심의 산업국가로 발돋움하게 만든 것이 50년전의 수출전략이었다면 이제 선진국의 길목에서 새로운 발전전략으로서 서비스산업발전계획을 범정부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의미가 있고 이것은 정부의 선택에 달렸다고 할 것이다.
5. 지금 주저하면 한국경제는 바람 앞에 등불 신세를 면할 수 없다.
IMF를 지나면서 스스로 자초한 일이긴 하지만 한국경제는 속절없이 대문 빗장을 활짝 열었다. 준비할 겨를이나 통사정할 형편이 되지 못하였다. 물론 이 길이 한국경제가 가야하는 길이지만 그 준비가 너무 부족하였다. 2008년 9월 세계적 경제위기 앞에 한국경제는 가차 없이 외풍에 시달렸다. 억울하다고 푸념해야 ‘억울하면 출세하라’가 그 답으로 돌아온다. 국민총생산의 70% 이상을 무역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를 고쳐야 한다. 이 비율을 50%, 30%로 낮추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에 대한 대답이 서비스산업발전이다. 이 길이 농업경제에서 중화학공업개발한 것보다 더 어려운 길이라도 필자는 평가한다. 이해관계자들이 죽기로 대들 것이다. 지금 옛날 같은 강력한 정부의 지도력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 길을 가야 하는데 밤낮 앉아 토론만하고 과제를 뒤로 미루기만 한다면 한국경제의 갈 길은 요원하기만 하게 된다. 발람 앞의 등불은 언제 꺼질지 모른다. 한국경제의 새로운 발전 모멘텀을 서비산업에서 찾아보자.
1. 수출 중심에서 서비산업 중심으로
2. 한국서비스업의 낙후성
3. 정부의 무능한 서비스산업 발전전략
4. 계획의 기본틀은 KDI가, 추진은 재경장관을 부총리로 격상하여 재경부가.
5. 지금 주저하면 한국경제는 바람 앞에 등불신세를 면할 수 없다.
1. 수출 중심에서 서비스산업 중심으로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맞아 한국경제는 억울할 만큼 많이 흔들렸다. 지난 10여 년 간 경제의 발전은 부진하였지만 위기관리 면에서는 나름대로 개선되었다고 생각한 한국경제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기업의 재무구조가 개선되어 상장기업 평균 400% 대의 부채비율이 100% 대로 개선되었다. IMF 이후 속절없이 빗장이 풀린 한국경제는 수많은 기업이 없어졌거나 그 주인을 바꿨다. 그러면서 적자생존의 경쟁 속에서 한국경제를 지탱해온 저력은 한국 기업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나라살림살이에서도 재정은 구조면에서 많이 망가졌지만 외환보유액은 2000억불 이상 쌓았다. 1998년 당시 200억불의 외환보유가 하루아침 30억불로 줄어들어 한국경제는 IMF로 갔다. 그렇게 빡빡하던 외환보유도 여유가 있다고 정부는 자랑하곤 하였다.
그런 한국경제가 2008년 2분기 이후 위험신호가 켜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허구한 날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리고 몇 달 있다가 9월 말 미국의 불량주택채권 문제가 드디어 수면위로 떠올랐고, 이어 리먼 사태가 나자 세계는 하루아침에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그래도 순진한 한국 사람들은 2000억불이라는 외환보유가 있는데 하면서 마음의 여유를 가졌다. 그러나 사태는 환율에서 터지기 시작하였고 1000원대의 대미환율이 1500원이 넘어가고 국제원유가격이 1500달러가 넘어가자 한국에 와 있던 외국투자가들은 한국시장을 버리기 시작하였다. 한편 세계적인 패닉 앞에 수출시장은 마비되어 수출 길은 막혀 버렸다. 그러니 2008년 4분기 한국의 GDP는 연율로 20%가 넘게 마이나스 성장을 하고, 그 부(負)의 성장은 금년 1분기에도 계속되었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한국경제가 마치 금세 부도가 날 것처럼 비관론이 나오고 여기에 더하여 호시탐탐 한국시장을 넘보고 있는 국제자본들은 의도적으로 한국시장의 취약성을 부각시켰다. 지난 3월까지 특히 HSBC 등 금융기관과 영국의 피낸셜 타임스, 이코노미스트 등 언론기관은 내어놓고 한국경제를 폄하하였다. 속이야 쓰리지만 이런 악랄하기 까지 한 국제금융시장의 흐름 속에서 한국경제는 더 이상 수출에 의존된 경제를 운영해서는 안 되겠다는 문제점이 부각되었다.
한국경제의 무역의존도는 해마다 증가되어 2007년에 GDP의 75.1%까지 되었다. 이는 지난 1996년 50.4%에서 10년 사이 25포인트가 오른 것이다. 물론 부가가치 증가를 단순 무역규모에 비교하는 이론적 문제가 있지만 아무튼 대부분 이미 발전된 경제의 경우 한국경제보다는 이 비율이 훨씬 낮은 수준이다. 미국이 22%, 일본 30%, 영국 38%, 프랑스 45%, 중국 67%라고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독일 72%, 대만 121% 그리고 네델란드 벨지움 룩셈브르크 등 GDP의 두 배가 넘는 나라도 많다. IBRD의 무역의존도 통계에 의하면 한국이 83%인데 일본 28%, 중국 69%이다. 따라서 그 비율 수치 자체가 반드시 문제인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내수(內需)가 상대적으로 작은 경제는 외풍에 훨씬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겠다. 거기다가 경쟁력을 나타내는 수출단가를 비교한 UN 통계에 의하면 2000년을 100으로 하였을 때 일본 등 선진국 평균 수출단가는 130, 중국 103인데 비하여 한국은 92로, 그만큼 한국상품의 가격이 낮게 팔려나갔다고 나와 있다. 이는 수출산업의 채산성에 나쁜 결과를 가져오게 한다. 거기다가 수출에서 차지하는 몇 개 상품의 비중이 한국이 유독 크게 나타나 한국경제의 기반이 몇몇 기업이나 상품에 더 의존되어 있다고 분석된다. 세계적 경제위기가 오자 한국경제가 유난히 더 추위를 타게 되는 연유가 여기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경제의 수출발전전략은 1960년대 초 제1차경제개발계획으로 올라간다. 당시 내수시장이 손바닥만한데 어떻게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답으로 세계시장을 상대로 한 수출 진흥만이 한국경제가 살 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대외지향적 개발전략의 선택은 한국경제를 한 세대 안에 전통농업구조에서 공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구조로 발전시켰고, 이것이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지식 정보 통신 산업으로 그 무게가 옮겨가고 있다.
그동안 한국경제의 발전과정에서 한국의 무역의존 문제는 많이 다룬 사회이슈 중의 하나가 되었다. 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많은 자본이 필요한데 국내저축이 부족하여 외국자본을 도입하자 일각에서 외채망국론을 들고 나왔다. 수출전략이 가져온 부수정책이 수입자유화 개방정책인데 이 과정에서 국내산업의 보호문제가 사회문제로 제기 되었다. 쌀 시장의 개방문제는 아직도 해결이 남아 있는 부문이다. 1981년부터 시작된 4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서를 쓰면서 당시의 경제기획원 기획팀들 사이에서는 세계시장의 변화에 어떻게 수출을 지속시켜 나아갈 수 있을까 하는 전략논의를 무수히 계속하였다. 그리고 얻은 결론은 한국의 수출시장이 변화하더라도 세계 모든 시장이 그렇게 동시적(synchronization)으로 되는 것은 아니니까 한쪽 시장이 저조하면 다른 활발한 시장을 찾으면 되고 그래서 수출다변화가 이루어지면 이 문제는 자연 해결될 수 있다고 당시 4차계획서는 밝히고 있다.
생각하면 한국경제가 지금처럼 완전 개방되고 경제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올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연구가 당시로서는 부족하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30년 전에 오늘의 한국경제와 세계경제를 상정한 전략을 세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얻게 된 결론이 이제는 시장다변화에 의한 수출전략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결론이다. 그 출발점은 내수시장을 발전시키는 전략이 될 것이다.
내수시장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주택과 지방도시 건설 그리고 도로 철도 항만 항공 등 사회간접자본 시설 등 건설업이 떠오른다. 이명박정부의 4대강 운하계획이나 4대강유역개발계획 같은 것이 여기에 속하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부문의 개발은 장기적인 성장동력으로서 그 지속성이 어렵고 고용흡수나 부가가치 증식에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이 부문을 도외시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특히 위기극복을 위한 재정지출의 대상 중 큰 부문은 자연 사회간접자본이 될 수밖에 없다. 치산치수(治山治水)로 대표되는 이 부문은 보다 자본집약적이고 덜 부가가치와 정규고용 집약적이라는 취약점이 있다. 그래서 자본축적이 적고 빠른 발전이 요구되는 한국경제의 위기극복전략으로서는 자연 한계가 있게 된다. 경제의 하부구조를 튼튼하게 하여야 장기적인 발전의 기틀이 잡힌다는 사회간접자본의 중요성은 언제나 진리일 것이다.
그러나 대량생산과 연관된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에서 보다 필요로 하는 도로 철도 항만 등의 하드웨어적 사회간접자본은 이제 산업구조가 금융 지식 정보 통신 등 서비스업으로 이동되면서 경제의 하부구조도 변화를 요구받는다. 이에 따라 하드웨어적 사회간접자본과 함께 보다 소프트웨어적 사회간접자본 확충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서비스산업의 진흥발전을 위한 하부구조개발은 전통적인 사회간접자본부문 개발을 위한 건설업보다 장기적으로 성장동력이 보장되고 부가가치와 고용흡수가 큰 분야이기 때문에 이 분야에 대한 집중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2. 한국서비스산업의 낙후성
한국사회는 전통적인 농업 중시에서 수출진흥을 위한 제조업 중심으로 산업의 축이 이동되었다. 고용은 흡수력이 큰 농업부문이 대종을 이루어 왔는데 대량생산체제에서 산업현장 인력이 고용을 또한 흡수하였다. 다른 발전도상국가 들에 비하여 한국경제는 이런 독특한 산업발전과정 속에서 고용이 훨씬 덜 사회문제가 되었고 그런 현상은 최근까지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농업이라고 하는 고용의 큰 버퍼 죤이 있었기에 경기가 하향할 때도 한국경제는 고용에 관한한 문제가 덜 심각하였었다. 그러나 이제 농업이 고용흡수기능을 상실한 마당에 세계적 경제위기 앞에 한국의 고용시장은 기댈 데가 없다. 현재 한국사회의 고용문제의 심각성이 여기에 연유한다고 할 수 있다.
유교적 전통관념 속에서 한국사회는 서비스업의 부정적 개념이 정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서비스업을 향락산업으로 착각하고 윤리도덕 면에서 이 부문을 경시하고자 하였다. 마치 ‘수출은 좋은 것 수입은 나쁜 것’으로 이분법적 교육을 받은 한국의 개발세대들은 ‘제조업은 좋은 것 서비스업은 나쁜 것’으로 착각하게 되었다. 학문적으로 생각하면 눈에 보이는 재화는 높이 평가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용역은 그리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러한 사회관념과 함께 대량생산을 통한 상품수출을 개발전략으로 한 한국경제는 자연스럽게 제조업의 비중이 확대되었다. 1960년대 한국경제의 광공업이 전체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20%에 불과하던 것이 이제 40%대 까지 확대되었다. 상대적으로 한국의 서비산업부문은 50%대에서 정체되어 있다. 이런 산업구조는 OECD 국가들 중 서비스업의 평균비중 72% 와 비교하면 한국의 서비스부문은 가장 낮은 수준이다. 물론 산업구조는 그 나라 그 사회의 전통과 발전방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서비스업의 비중이 많고 적다는 것만이 발전의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전통적으로 제조업이 강한 독일은 선진국들 중 서비스업의 비중이 아직도 60%대에 남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선진국들의 서비스업은 70%대를 나타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국경제에서 서비스산업의 제한된 발전은 세계적인 경제위기에서 수출이 침체될 때 상대적으로 내수 그것도 서비스업에 기댈 여지가 적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한국은행의 분석대로 10억원의 최종수요 발생에서 유발되는 취업자수가 서비스업이 18.4명이고 제조업이 10.1명, 건설업이 16.6명이다. 고용문제가 전보다 더 심각한 과제로 제기된 한국경제로서는 고용흡수가 큰 서비스부문의 발전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고 아직 선진국 형 산업구조로 가기위해서도 서비스업은 보다 빨리 발전되어야 할 부문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교육부문은 서비스산업의 간판이고 국가의 장기발전을 위한 인프라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교육을 미국의 오바마는 칭찬하고 부러워하고 있지만 한국교육제도의 실상과 교육일선의 한심한 모습을 그가 볼가 무섭다. 한국정부에서 가장 규제가 많이 남아 있는 곳이 교육부문이다. 폐쇄성이 가장 큰 부문도 교육부문이다. 내 아이를 맞기기 무섭기까지 한 것이 전교조단체다. 이런 교육부문을 하루빨리 환골 탈퇴시키는 것이 서비스산업 발전의 제일 큰 축이 되어야 한다.
서비스업에서 금융업의 중요성은 현대경제에서 아무리 확대해도 부족하다 할 것이다. 알빈 토플러의 말대로 21세기는 자본이 더 이상 실물경제의 종속변수가 아니고 자본이 자본자체의 이익을 위하여 움직이는 독립변수가 되어있다. 상품성격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최근의 파생금융상품이 미국의 주택채권과 함께 세계경제를 휘저어 놓은 것이 현재의 세계적 위기 아닌가? 한국경제는 독특하게 개발연대에 금융을 실물경제의 시녀로 전락시켜 왔다. 이러한 관념은 금융과 재정을 혼란시켜 지금도 금융을 독립된 산업으로 보기보다는 정부의 시녀로 착각하고 있는 경향이 남아있다. 그러니 금융이 발전되지 않고 그럴수록 금융의 독자적인 책임성도 부족한 후진성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서비산업 부문의 미래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컨텐츠산업도 겉으로는 한국이 많은 발전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는 전문가의 강의를 들은바 있다. 예를 들어 애니메이션산업에서 한국의 영역은 그저 남이 만든 생산물의 뒤처리에 치중된 수준이라 한다. 정보 통신부문도 한국이 세계를 이끄는 부문도 있지만 고부가가치부문은 아직 미국에 비하여 크게 뒤지고 있다.
이제 서비스산업의 발전전략은 미룰 수 없고 당장 손대어야 할 일로 인식해야 한다. 그것도 적당하게 그림을 그리는 수준이 아니고 한국정부가 육십년대 칠십년대 했던 것처럼 전 정부적으로 모든 역량를 집합하여 끌고 나아가야 할 개혁과제라고 평가한다.
3. 정부의 무능한 서비스업 발전전략
이명박정부는 지난 5월 8일 한국의 서비스산업 선진화방안을 내어놓았다. 유감스럽게도 정부는 지난 해 세 차례 서비스산업 선진화방안을 발표하였고 이번이 네 번째다. 그리고 앞으로 금년 내에 두 차례 방안을 더 내어놓을 것이라고 한다. 필자가 과문한 탓이겠지만 이렇게 여러 번 서비스산업계획이 발표되었었는지 몰랐다. 무슨 계획을 서너 달마다 행사 성으로 내어놓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계획을 여러 번 해서는 안 된다는 법은 없으니 여러 번 할 수도 있겠지만, 언론의 비판대로 비슷한 내용을 재탕 삼탕 하면서 지난 번 발표된 내용의 추진상황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한다. 그러니 이번 발표된 내용에 대한 신뢰도 부족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무릇 경제계획이라고 하면 내용의 합리성과 추진성을 전제로 한다. 계획 내용이 얼마나 합리성을 가졌는가? 이를 위해서 정보, 지식 그리고 기술 등이 가장 합리적으로 동원되어 최적의 조합을 이룰 때 계획은 비로소 합리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다음 계획 내용이 아무리 훌륭한 합리성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그 내용의 추진이 담보되지 않을 경우 그것은 한낱 전망이나 논문에 불과하고 이것을 계획이라 할 수 없다. 비록 현실이 계획 내용대로 추진을 허용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계획자체에는 그 추진방안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이명박정부가 1년 3개월 사이 서비스산업육성계획을 네 번이나 마련하였다는 것은 그것이 경제계획으로서 틀을 갖추지 못하였거나, 정부의 무능으로 그 추진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일 것이다. 어떤 경우이건 그렇다고 해서 한국경제의 서비스산업발전계획을 포기하거나 뒤로 미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만큼 긴급하고 중요하다고 평가한다.
교육부문이 가장 규제가 많이 남아있고 그래서 그 규제의 보호 속에 새로운 시장진입은 철저하게 제한된다. 거기에 대외개방과 경쟁을 하자는 내용을 받아드리기 어렵게 되어있다. 의료, 제약 산업 또한 공익성의 구실 밑에 경쟁을 기피하게 된다. 컨텐츠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국민의 준법정신이다. 불법복제가 판을 치는 상황 하에서 콘텐츠산업의 사업성을 보장받을 수 없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계획의 합리성은 현실 애로를 구실로 퇴색되고 추진력을 상실하게 된다. 당사자간의 이해조정으로 시간만 천연되고 합리성은 퇴색된다. 그러니 자꾸 계획만 남발하게 되고 일은 추진되지 못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4. 계획의 기본 틀은 KDI가, 추진은 재경장관을 부총리로 격상 재경부가 맡도록
서비스산업 발전계획을 종합적인 경제계획의 성격으로 격상하여 추진할 것인가하는 문제를 집고 넘어가야 하겠다. 물론 다른 개별산업의 육성방안으로 추진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부문이 기득권자와 신규참입자간의 이해가 상충하는 경우가 많은 부문이다. 교육 방송 의료 제약 등 성격상 공익성이 강조되는 부문이기 때문에 공익성을 내세워 기득권을 보호하고자 한다. 준법정신이 보다 강조되는 다분히 사회정책적 측면이 강한 면이 있는 부문이 컨텐츠산업이다. 따라서 기존질서의 이해와 협력이 없이 이 부문의 새로운 발전 모멘텀을 잡기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서비스산업을 개별 산업별로 발전 전략을 수립 추진하기보다는 차제에 서비스산업 전체의 개발계획을 종합적으로 만들 것을 제안한다.
한국경제의 발전정도로 볼 때 아직도 종합계획을 논의하자는 것은 이미 때늦은 접근이 아닌가 하는 논의가 있을 수 있다. 물론 수긍이 간다. 오랜 기간 한국의 발전전략의 축을 이루었던 경제개발계획도 김영삼정부가 들어서 대통령의 임기와 계획순기를 맞출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7차 5개년계획을 포기하였다. 그리고 어설픈 정권차원의 ‘신경제5개년계획’이라는 이름의 계획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종합계획으로서의 내용과 추진계획이 결여된 어설픈 계획의 시늉을 내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IMF를 맞고 자연스럽게 한국경제에서 종합개발계획이라는 것이 사라졌다. 그런데 지금 새삼스럽게 서비스부문 종합발전계획을 만들자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서비스 산업의 성격이나 비중으로 볼 때 지금 때를 놓치면 이미 너무 늦게 된다는 시급성이 있다고 평가하여 전 정부적인 종합발전계획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평가한다. 그 이유는 첫째 서비스산업의 발전에 있어 가장 어려운 것이 장기적인 발전구도를 가다듬는 일이다. 교육이 ‘백년대계’라고 하듯 장기과제이지만 개방시대에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부문이다. 의료 제약 정보 통신 등도 마찬가지다. 컨텐츠산업 등 새로 등장하는 신흥산업 들의 개발을 뒤로 미적대다가는 설 땅을 찾지 못하게 되는 긴급한 분야이기도 하다. 둘째 이해상충이 큰 분야이기 때문에 치밀한 계획의 준비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그 추진도 전 정부적으로 이해조정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서비스산업은 GDP의 3분의 2를 점하게 된 비중이 큰 분야이고 앞으로도 외부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유일한 분야라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한국경제운영에서 이제 수출 우선의 발전전략에 대한 대안을 내어놓아야 한다. 수출전략을 지속하면서 외부충격을 흡수하고 생활의 질을 개선하는 유일한 부문이 서비스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경제가 50년 전 경제개발전략을 가다듬던 초심으로 돌아가 이제 선진경제로 가는 길목에서 다시 내수를 개발하는 전략을 가다듬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정부가 내세울 국가운영전략으로서 서비스산업 종합계획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종합계획작업에 동의한다면 그 계획의 종합구도는 한국개발원(KDI)이 맡아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KDI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장기발전계획을 만든 경험이 있다. 멀게는 1960년대 중반 1980년대를 내다본 장기발전계획을 마련한 바 있고, 1970년대 초 한국의 국민연금제도를 비롯한 사회발전계획을 마련한바 있다. 그 이후에도 크고 작은 장기전망 작업을 해 낸 국내 유일한 연구 산실이다. 따라서 이번의 서비스산업발전계획도 의당 KDI가 재경부등 관계부처 그리고 이해관계단체들과 함께 작업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특히 계획작업과정에서 이해관계기관이나 단체와의 이해구축(consensus build up) 작업에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서비스산업의 발전계획은 그 집행이 무엇보다 매우 어려운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를 담보하는 대안으로 재경부장관을 이해조정자의 사령탑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재경장관을 부총리고 격상하여 좀더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하도록 그에게 많은 조정권한을 부여하는 제도마련이 필요하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대책에 대하여 너무 과거로 회귀하는 전근대적 접근이라고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인정한다. 그러나 전통농업국가에서 수출중심의 산업국가로 발돋움하게 만든 것이 50년전의 수출전략이었다면 이제 선진국의 길목에서 새로운 발전전략으로서 서비스산업발전계획을 범정부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의미가 있고 이것은 정부의 선택에 달렸다고 할 것이다.
5. 지금 주저하면 한국경제는 바람 앞에 등불 신세를 면할 수 없다.
IMF를 지나면서 스스로 자초한 일이긴 하지만 한국경제는 속절없이 대문 빗장을 활짝 열었다. 준비할 겨를이나 통사정할 형편이 되지 못하였다. 물론 이 길이 한국경제가 가야하는 길이지만 그 준비가 너무 부족하였다. 2008년 9월 세계적 경제위기 앞에 한국경제는 가차 없이 외풍에 시달렸다. 억울하다고 푸념해야 ‘억울하면 출세하라’가 그 답으로 돌아온다. 국민총생산의 70% 이상을 무역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를 고쳐야 한다. 이 비율을 50%, 30%로 낮추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에 대한 대답이 서비스산업발전이다. 이 길이 농업경제에서 중화학공업개발한 것보다 더 어려운 길이라도 필자는 평가한다. 이해관계자들이 죽기로 대들 것이다. 지금 옛날 같은 강력한 정부의 지도력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 길을 가야 하는데 밤낮 앉아 토론만하고 과제를 뒤로 미루기만 한다면 한국경제의 갈 길은 요원하기만 하게 된다. 발람 앞의 등불은 언제 꺼질지 모른다. 한국경제의 새로운 발전 모멘텀을 서비산업에서 찾아보자.
2009년 5월 7일 목요일
노동개혁과 법치(法治)의 확립
1. 노동유연성 확보
이명박대통령은 최근 과천에서 행한 비상경제회의에서 ‘노동유연성 연말까지 최우선 해결’을 천명하였다고 한다. 세계적 경제위기를 맞아 당장 급한 것은 경제가 허물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경기 지원정책이 불가피하지만, 이제 위기 출발 후 7개월이 지난 지금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위기 이후의 대응전략이라 할 수 있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은 위기 이후 경제구조를 어떻게 다듬어 새로운 경쟁력을 갖게 하느냐 라는 말과 같은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대통령의 정책 선언은 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고질적인 과제인 노동부문의 개혁과제를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정책선언이라고 할 것이다.
2. 노동개혁
노동부문의 개혁은 이미 IMF 때 김대중 정부가 소위 4대 개혁과제의 하나로 천명한 바 있다. 그 개혁정책의 일환으로 김대중정부는 정부 내에 노. 사. 정이 함께하는 노사정위원회를 설치하고 거기에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대표를 사용자. 정부대표와 함께 참여시켰다. 그러나 당시 노사정위원회는 실망스러운 활동 만 되풀이 하였고 생산적인 결실을 만들어내지 못하였다. 거기에는 처음부터 정부 즉 김대중정부의 책임이 제일 크다고 할 수 있다. 노동개혁에 대한 정책 전략이 부재한 가운데 이해당사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으니 싸움만 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김대중정부나 노무현정부 모두 노조와 정치적으로 동지적 연대감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노조대표 특히 민노총 대표는 회의보다는 자기네 정치적 위세를 과시하는 장으로 노사정위원회를 전락시켰다. 두 정부 10년 동안 노사정위원회는 회의경비만 낭비하였지 무엇 하나 해내지 못한 실망스런 결과를 국민에게 내어놓았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정부는 ‘경제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명박대통령이 무엇으로 경제대통령 노릇을 할 것인지 채 설명도 하지 못한 가운데 인사시비, 쇠고기시비 등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출범 8개월 만에 미국 발 경제위기 앞에 허둥지둥 정부지원 동원에 여념이 없는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다. 그러니 새정부 출범 이후 1년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무엇이 이명박정부의 ‘경제대통령 정책’인지 제대로 내어놓지도 못하고 일반 회사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비상경제대책회의라는 것을 만들어 대통령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회의를 하고 있다. 청와대 지하벙커에도 갔다가, 과천 경제부처 청사에도 갔다가, 지방에도 갔다가 하는 모습은 문제의 심각성에 비하여 좀 ‘행사성’회의로 비쳐지기도 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이명박대통령이 노동유연성 확보 정책의 중요성을 제기하였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고, 차제에 노동부문 전반의 개혁에 좀더 종합적인 접근을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3. 노동개혁과 관련된 과제
가. 노동활동의 불법. 폭력성
노동 유연성확보에 앞서 노동활동에 있어서 불법성 폭력성을 제거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할 수 있다. 내 주장만 옳고 남의 주장은 전연 귀 기울이지 않는, 남의 재산이고 무엇이고 뚜드려 부수고 보는, 법을 지키려하는 마음보다는 떼를 쓰는 이러한 문화를 없애야 건전한 노조활동이 가능하여 진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한국노조 활동의 불법성과 폭력성 문화는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붉은 띠’로 상징되는 한국노동활동의 폭력성을 제거하는 일을 정부와 사용자단체 그리고 사회단체가 나서서 노조와 함께 해 내야 한다. 이것이 없이는 백약이 무효이다.
나. 노동유연성확보를 위한 제도구축
노동의 유연성은 제도화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해가 충돌하고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물러설 수 없는 한계점에서 당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인데 이런 구조조정 등의 문제가 미국 등 서구국가들처럼 하나의 사회적 관습으로 큰 혼란 없이 처리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필요불가피한 조건 하에 구조조정이 일어날 경우 해고가 이루어지고 또 새로운 고용의 기회가 다시 일어나는 유연성이 제도(制度)로 이루어지도록 하고 이 경우 그것을 노조나 당사자들은 받아드리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 제도 구축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떼를 쓰는 관행이 없어져야 노동유연성이 확보된다고 할 수 있다. 쌍용 자동차의 경우 회사는 어려워져 법정관리를 하는데 그 회사의 구조조정을 위한 해고를 전연 받아드릴 수 없다고 노조가 떼를 쓰면 그것은 너 죽고 나죽자는 논리로 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다. 상급노동단체의 변화
다음은 차제에 상급노동단체에 대한 변화도 시도되어야 할 것이다. 김대중대통령은 재임중 복수노조제도를 실현하였다. 김대중 전대통령이 대통령후보시절 갑자기 복수노조설립을 들고 나왔을 때 당시 정부에서는 그 불합리성을 강력하게 들고 반대하였다. 그러나 노조의 지지를 얻고자 하는 그의 정치적 노력은 결실을 맺어 한국은 복수노조가 제도화 되었고, 개별노조의 상급단체도 한국노총에서 민주노총까지 합법화되었다. 이 양 기관은 처음 서로 선명성 경쟁을 하다가 정치적 입지가 강화되자 이제 투쟁성 경쟁을 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한국노동활동의 폭력성과 불법성이 확대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권력 뒤에는 반드시 나오게 되어 있는 부패문제, 심지어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 현재의 한국 상급 노동단체의 안타까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차제에 개별노조 중심으로 갈 것인지, 독일처럼 아예 산업별노조형태로 가든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급노동단체를 그대로 갈 요량이면 현재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공공기관 노동조합의 상급단체인 제3, 제4의 상급노동단체를 만들어 갈 것인지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때 개별노조는 어떻게 할 것인지 함께 검토해야 한다.
라. 노동조합 구조의 개혁
이제 사용자와 근로자가 확연히 구분되는 대량생산체제는 현대 경제활동에서 빛바랜 체제이다. 따라서 사용자가 근로자이고 근로자가 경영을 해야 하는 경제구조로 변천되어 가고 있다. 대량보다는 고부가가치, 다수보다는 정예화 된 소수가 만들어내는 기업구조가 되어 간다면 더더군다나 상급노동단체는 그 설자리를 점차 잃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니 점점 상급단체들은 정치활동이나 자기존재를 과시하기위한 과격 활동을 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차제에 한국노동조합 구조의 개혁을 연구하고 대안을 강구하는 것이 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경쟁력을 살려가는 길이 될 것이다.
4. 법치확립
법의 엄정한 집행은 그 말 자체가 이제 식상한 테마이다. 노동개혁과 관련하여 불법성을 근절하고자 하는 노력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부족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첫째는 법은 안 지켜도 된다는 의식을 어떻게든 없애야 한다. 최근 촛불시위 1주년을 기념한다는 사람들이 서울시에서 개최하는 ‘하이서울’ 기념식장을 쳐들어가 난장판을 만들었다. 내주장만 내세우고 남이야 죽던 말 던 내 알바 아니라는 행동의 표본일 것이다. 이에 대하여 서울시에서는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하였다. 이 일은 일벌백계로 다스려져야 할 것이다.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관을 두드려 패고, 집단시위에 항의하는 도로변 음식점에 대하여 갖은 욕설과 인터넷음해를 해대는 것이 불법 한국사회상의 한 단면이다. 노동조합의 불법성이 이러한 사례에 직접해당 되지는 않겠지만 법을 지키지 않는 사회풍조와 연관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최근 민노총은 폭력시위를 하지 않겠다고 경찰과 약정을 맺었다고 했는데 그 다음 날 민노총은 다시 폭력시위를 하였다고 한다. 법을 지키고 그것을 지키지 않을 경우 거기에 상당한 책임을 묻는 사회적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둘째 사법부의 엄정성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재판권은 최대한 강조되어야 하겠지만 최근 사회혼란과 관련된 재판에서 법치와 관련하여 이해하기 힘든 판결을 보면서 답답한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사회적 좌경화의 흐름 속에서 무엇이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질서인지 헷갈리게 하는 경우가 있음을 보는 것은 필자의 보수성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노동부문의 폭력성은 붉은 머리띠와 함께 영원이 한국사회에서 사라지는 계기가 만들어지는 노동개혁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명박대통령은 최근 과천에서 행한 비상경제회의에서 ‘노동유연성 연말까지 최우선 해결’을 천명하였다고 한다. 세계적 경제위기를 맞아 당장 급한 것은 경제가 허물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경기 지원정책이 불가피하지만, 이제 위기 출발 후 7개월이 지난 지금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위기 이후의 대응전략이라 할 수 있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은 위기 이후 경제구조를 어떻게 다듬어 새로운 경쟁력을 갖게 하느냐 라는 말과 같은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대통령의 정책 선언은 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고질적인 과제인 노동부문의 개혁과제를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정책선언이라고 할 것이다.
2. 노동개혁
노동부문의 개혁은 이미 IMF 때 김대중 정부가 소위 4대 개혁과제의 하나로 천명한 바 있다. 그 개혁정책의 일환으로 김대중정부는 정부 내에 노. 사. 정이 함께하는 노사정위원회를 설치하고 거기에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대표를 사용자. 정부대표와 함께 참여시켰다. 그러나 당시 노사정위원회는 실망스러운 활동 만 되풀이 하였고 생산적인 결실을 만들어내지 못하였다. 거기에는 처음부터 정부 즉 김대중정부의 책임이 제일 크다고 할 수 있다. 노동개혁에 대한 정책 전략이 부재한 가운데 이해당사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으니 싸움만 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김대중정부나 노무현정부 모두 노조와 정치적으로 동지적 연대감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노조대표 특히 민노총 대표는 회의보다는 자기네 정치적 위세를 과시하는 장으로 노사정위원회를 전락시켰다. 두 정부 10년 동안 노사정위원회는 회의경비만 낭비하였지 무엇 하나 해내지 못한 실망스런 결과를 국민에게 내어놓았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정부는 ‘경제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명박대통령이 무엇으로 경제대통령 노릇을 할 것인지 채 설명도 하지 못한 가운데 인사시비, 쇠고기시비 등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출범 8개월 만에 미국 발 경제위기 앞에 허둥지둥 정부지원 동원에 여념이 없는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다. 그러니 새정부 출범 이후 1년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무엇이 이명박정부의 ‘경제대통령 정책’인지 제대로 내어놓지도 못하고 일반 회사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비상경제대책회의라는 것을 만들어 대통령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회의를 하고 있다. 청와대 지하벙커에도 갔다가, 과천 경제부처 청사에도 갔다가, 지방에도 갔다가 하는 모습은 문제의 심각성에 비하여 좀 ‘행사성’회의로 비쳐지기도 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이명박대통령이 노동유연성 확보 정책의 중요성을 제기하였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고, 차제에 노동부문 전반의 개혁에 좀더 종합적인 접근을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3. 노동개혁과 관련된 과제
가. 노동활동의 불법. 폭력성
노동 유연성확보에 앞서 노동활동에 있어서 불법성 폭력성을 제거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할 수 있다. 내 주장만 옳고 남의 주장은 전연 귀 기울이지 않는, 남의 재산이고 무엇이고 뚜드려 부수고 보는, 법을 지키려하는 마음보다는 떼를 쓰는 이러한 문화를 없애야 건전한 노조활동이 가능하여 진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한국노조 활동의 불법성과 폭력성 문화는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붉은 띠’로 상징되는 한국노동활동의 폭력성을 제거하는 일을 정부와 사용자단체 그리고 사회단체가 나서서 노조와 함께 해 내야 한다. 이것이 없이는 백약이 무효이다.
나. 노동유연성확보를 위한 제도구축
노동의 유연성은 제도화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해가 충돌하고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물러설 수 없는 한계점에서 당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인데 이런 구조조정 등의 문제가 미국 등 서구국가들처럼 하나의 사회적 관습으로 큰 혼란 없이 처리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필요불가피한 조건 하에 구조조정이 일어날 경우 해고가 이루어지고 또 새로운 고용의 기회가 다시 일어나는 유연성이 제도(制度)로 이루어지도록 하고 이 경우 그것을 노조나 당사자들은 받아드리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 제도 구축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떼를 쓰는 관행이 없어져야 노동유연성이 확보된다고 할 수 있다. 쌍용 자동차의 경우 회사는 어려워져 법정관리를 하는데 그 회사의 구조조정을 위한 해고를 전연 받아드릴 수 없다고 노조가 떼를 쓰면 그것은 너 죽고 나죽자는 논리로 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다. 상급노동단체의 변화
다음은 차제에 상급노동단체에 대한 변화도 시도되어야 할 것이다. 김대중대통령은 재임중 복수노조제도를 실현하였다. 김대중 전대통령이 대통령후보시절 갑자기 복수노조설립을 들고 나왔을 때 당시 정부에서는 그 불합리성을 강력하게 들고 반대하였다. 그러나 노조의 지지를 얻고자 하는 그의 정치적 노력은 결실을 맺어 한국은 복수노조가 제도화 되었고, 개별노조의 상급단체도 한국노총에서 민주노총까지 합법화되었다. 이 양 기관은 처음 서로 선명성 경쟁을 하다가 정치적 입지가 강화되자 이제 투쟁성 경쟁을 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한국노동활동의 폭력성과 불법성이 확대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권력 뒤에는 반드시 나오게 되어 있는 부패문제, 심지어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 현재의 한국 상급 노동단체의 안타까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차제에 개별노조 중심으로 갈 것인지, 독일처럼 아예 산업별노조형태로 가든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급노동단체를 그대로 갈 요량이면 현재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공공기관 노동조합의 상급단체인 제3, 제4의 상급노동단체를 만들어 갈 것인지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때 개별노조는 어떻게 할 것인지 함께 검토해야 한다.
라. 노동조합 구조의 개혁
이제 사용자와 근로자가 확연히 구분되는 대량생산체제는 현대 경제활동에서 빛바랜 체제이다. 따라서 사용자가 근로자이고 근로자가 경영을 해야 하는 경제구조로 변천되어 가고 있다. 대량보다는 고부가가치, 다수보다는 정예화 된 소수가 만들어내는 기업구조가 되어 간다면 더더군다나 상급노동단체는 그 설자리를 점차 잃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니 점점 상급단체들은 정치활동이나 자기존재를 과시하기위한 과격 활동을 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차제에 한국노동조합 구조의 개혁을 연구하고 대안을 강구하는 것이 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경쟁력을 살려가는 길이 될 것이다.
4. 법치확립
법의 엄정한 집행은 그 말 자체가 이제 식상한 테마이다. 노동개혁과 관련하여 불법성을 근절하고자 하는 노력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부족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첫째는 법은 안 지켜도 된다는 의식을 어떻게든 없애야 한다. 최근 촛불시위 1주년을 기념한다는 사람들이 서울시에서 개최하는 ‘하이서울’ 기념식장을 쳐들어가 난장판을 만들었다. 내주장만 내세우고 남이야 죽던 말 던 내 알바 아니라는 행동의 표본일 것이다. 이에 대하여 서울시에서는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하였다. 이 일은 일벌백계로 다스려져야 할 것이다.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관을 두드려 패고, 집단시위에 항의하는 도로변 음식점에 대하여 갖은 욕설과 인터넷음해를 해대는 것이 불법 한국사회상의 한 단면이다. 노동조합의 불법성이 이러한 사례에 직접해당 되지는 않겠지만 법을 지키지 않는 사회풍조와 연관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최근 민노총은 폭력시위를 하지 않겠다고 경찰과 약정을 맺었다고 했는데 그 다음 날 민노총은 다시 폭력시위를 하였다고 한다. 법을 지키고 그것을 지키지 않을 경우 거기에 상당한 책임을 묻는 사회적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둘째 사법부의 엄정성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재판권은 최대한 강조되어야 하겠지만 최근 사회혼란과 관련된 재판에서 법치와 관련하여 이해하기 힘든 판결을 보면서 답답한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사회적 좌경화의 흐름 속에서 무엇이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질서인지 헷갈리게 하는 경우가 있음을 보는 것은 필자의 보수성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노동부문의 폭력성은 붉은 머리띠와 함께 영원이 한국사회에서 사라지는 계기가 만들어지는 노동개혁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2009년 5월 4일 월요일
5월에 경제는 다시 일어나기 시작하나?
1. 누들볼효과(spaghetti bowl effect) 사라지나?
작년 10월 이후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세계경제는 지구인 모두를 무기력한 바보로 만들어가고 있다. 하루 가슴 철렁한 소식을 접하고 모든 사람들이 불안하고 초조해지다가 밤이 지나면 다시 실낱같은 소식이 진원지도 불분명한 지구 저쪽에서 번져 나오고 그것에 목매 증권시세는 오르고 시차에 따라 세계증시는 활기를 찾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미국의 금융회사의 영업실적이 어쩌고저쩌고 하면 다시 주가는 내려앉고 원유가격은 하락한다. 이러한 비관과 낙관의 불씨를 앉고 지구촌은 7개월을 보내었다.
그동안 미국의 FRB는 일본과 함께 제로금리시대를 열었고 천문학적인 재정지출을 하였다. 미국 뿐 아니라 중국 일본 한국 등 많은 나라가 재정지출을 늘리고 경기부양을 위하여 시장을 휘젓고 다녔다. 무엇이 시장경제고 무엇이 자본주의 기본질서인지는 지금 따질 경황이 없다. 한쪽에서는 한국경제가 가장 빠르게 회복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하다가, 다른 쪽(IMF)에서는 한국경제가 내년에도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동안 G-20회의라는 것을 만들어 워싱턴과 런던에서 두 차례 세계정상들이 함께 고민하는 회의도 하였지만 공연이 여비만 날렸지 무엇 하나 성과를 내지 못하였다. 오히려 차제에 미국의 일방주의에 발을 걸자고 불란서와 독일은 신자본주의(new capitalism)론을 들고 나오고 있다. 당면한 위기해소와는 별무상관이다.
이제 라일락이 피는 5월이 왔다. 계절이 빨라 이미 라일락꽃은 지고 있건만 지구촌의 경제위기 해결실마리는 오리무중이다. 얽히고설킨 국수 가닥은 찬물에 담갔다가 꺼내면 가지런히 정돈된다고 하는데 지구촌 경제의 얽히고설킨 가닥은 언제 어떻게 가지런히 정돈될지 점칠 수가 없다.
2. 자본시장은 가닥이 잡히나?
지난 3월 이후 미국의 다우는 그동안의 금융기관 지원과 자금 확대에 힘입어 8천선을 넘나들며 어느 정도 정돈이 잡혀가는 인상이다. 세계증시의 커플링 화에 따라 유럽 아시아 그리고 미주지역의 증시가 비슷하게 부침하면서 그래도 점차 가닥이 잡혀가는 인상이다. 또 국제금융시장도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이 불안에서 벗어나면서 점차 안정되는 모습이고 최근 어려움에 처했던 동구라파 국가들도 외화채권발행에 성공하였거나 준비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한국의 증시는 코스피가 벤치막크인 1300을 넘고 코스닥이 500을 넘어 안정되면서 상향곡선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한국시장을 불안하게 하였던 외국자본의 탈(脫) 한국 걱정이 사라지고 오히려 외국인들이 사자는 장세를 이끌고 있다. 물론 아직도 한국경제 전반의 불안정성이 남아 있고 특히 증시의 불안정은 계속되지만 그 불안의 정도는 많이 누그러졌다는 것이 최근의 한국증시에서의 외국인 동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신흥국들을 포함하여 EU 시장에도 나타나고 있다.
3. 실물경제와 연관된 희망의 신호들
언론 보도에 의하면 미국과 중국에서 실물경제의 선행지수인 ‘4월의 구매자관리지수(PMI)’가 함께 상승하였다고 한다. 그러니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몇 달 후 기업의 주문이 늘어 생산이 확대될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또 미국의 주택가격지수의 하락폭도 줄어들고 있고, 다른 분석에 의하면 중국의 경기부양책이 효과를 내면서 많은 분석가들이 중국의 경제전망을 상향조정하고 중국정부가 내놓은 올해 성장률 목표치 8%는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한 최근 국제원유가격이 점진적으로 상향조정되고 있는 점도 실물경제의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물론 이런 희미한 희망의 등불은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미풍에도 흔들리거나 꺼질지 모른다. 그러나 경제는 흐름과 분위기가 중요한 요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비관 일색에서 좀 희망의 조짐을 보는 것은 마냥 퇴박 받을 일은 아니라고 본다. 특히 오바마 미국대통령 정부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그의 출현이 세계 여러 인종 간에 얽혀있던 국수 가닥 정돈에 한줄기 새로운 희망의 분위기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또 무엇보다 미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영국 한국 모든 지도자들이 경제위기 처리에 최우선순위를 두는 정책을 펴고 있다는 것이 지구인들에게 그래도 어느 정도 신뢰를 갖게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 5월은 만물을 소생시키고 힘을 주는 달이다.
아직도 세계경제에 누들볼효과는 남아 있다. 미국의 FRB의 성명대로 미국경제가 ‘소득감소와 실업, 신용경색 등으로 아직은 위축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한 진단일 것이다. 다른 세계경제들도 비슷하다고 본다. 그러나 이런 흐름 속에서도 5월은 우리에게 그래도 가슴 설레는 희망을 주는 계절이다. 죽은 듯했던 나뭇가지가 파란 옷을 입고 우리에게 희망을 이야기 한다. 거기서 우리네 인간들은 힘을 받게 되듯 세계경제도 다시 꿈틀대기를 고대한다.
특히 한국경제는 보다 탄력을 받고 회생될 것이라는 희망을 5월의 햇볕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왜냐하면 한국경제는 다른 경제에 비하여 탄력성이 있는 경제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큰 어려움을 겪었던 한국경제가 아닌가? 한 세대 안에 전통 농업경제에서 최첨단 지식 정보 경제구조로 발전한 경제다. 그 역동성과 탄력성은 세계경제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런 한국경제가 지금 우선 자본시장이 어느 정도 정돈 되어 가고 있고, 어려움 속에서도 한국의 수출기업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기업의 재무구조는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개선되어 있고 기업의 지배구조도 점차 개선되어 가고 있다. 한편 아직도 파괴적이고 경직된 노동활동을 정돈하여 가는 과정에 있다. 나의 권리만 중요하고 남의 권리나 재산은 중요하게 생각 안하는 비민주성도 점차 개선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남은 과제들을 한국경제가 해결하고 현재의 경제위기에서 벗어나는 역동성을 한국경제는 곧 보여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작년 10월 이후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세계경제는 지구인 모두를 무기력한 바보로 만들어가고 있다. 하루 가슴 철렁한 소식을 접하고 모든 사람들이 불안하고 초조해지다가 밤이 지나면 다시 실낱같은 소식이 진원지도 불분명한 지구 저쪽에서 번져 나오고 그것에 목매 증권시세는 오르고 시차에 따라 세계증시는 활기를 찾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미국의 금융회사의 영업실적이 어쩌고저쩌고 하면 다시 주가는 내려앉고 원유가격은 하락한다. 이러한 비관과 낙관의 불씨를 앉고 지구촌은 7개월을 보내었다.
그동안 미국의 FRB는 일본과 함께 제로금리시대를 열었고 천문학적인 재정지출을 하였다. 미국 뿐 아니라 중국 일본 한국 등 많은 나라가 재정지출을 늘리고 경기부양을 위하여 시장을 휘젓고 다녔다. 무엇이 시장경제고 무엇이 자본주의 기본질서인지는 지금 따질 경황이 없다. 한쪽에서는 한국경제가 가장 빠르게 회복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하다가, 다른 쪽(IMF)에서는 한국경제가 내년에도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동안 G-20회의라는 것을 만들어 워싱턴과 런던에서 두 차례 세계정상들이 함께 고민하는 회의도 하였지만 공연이 여비만 날렸지 무엇 하나 성과를 내지 못하였다. 오히려 차제에 미국의 일방주의에 발을 걸자고 불란서와 독일은 신자본주의(new capitalism)론을 들고 나오고 있다. 당면한 위기해소와는 별무상관이다.
이제 라일락이 피는 5월이 왔다. 계절이 빨라 이미 라일락꽃은 지고 있건만 지구촌의 경제위기 해결실마리는 오리무중이다. 얽히고설킨 국수 가닥은 찬물에 담갔다가 꺼내면 가지런히 정돈된다고 하는데 지구촌 경제의 얽히고설킨 가닥은 언제 어떻게 가지런히 정돈될지 점칠 수가 없다.
2. 자본시장은 가닥이 잡히나?
지난 3월 이후 미국의 다우는 그동안의 금융기관 지원과 자금 확대에 힘입어 8천선을 넘나들며 어느 정도 정돈이 잡혀가는 인상이다. 세계증시의 커플링 화에 따라 유럽 아시아 그리고 미주지역의 증시가 비슷하게 부침하면서 그래도 점차 가닥이 잡혀가는 인상이다. 또 국제금융시장도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이 불안에서 벗어나면서 점차 안정되는 모습이고 최근 어려움에 처했던 동구라파 국가들도 외화채권발행에 성공하였거나 준비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한국의 증시는 코스피가 벤치막크인 1300을 넘고 코스닥이 500을 넘어 안정되면서 상향곡선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한국시장을 불안하게 하였던 외국자본의 탈(脫) 한국 걱정이 사라지고 오히려 외국인들이 사자는 장세를 이끌고 있다. 물론 아직도 한국경제 전반의 불안정성이 남아 있고 특히 증시의 불안정은 계속되지만 그 불안의 정도는 많이 누그러졌다는 것이 최근의 한국증시에서의 외국인 동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신흥국들을 포함하여 EU 시장에도 나타나고 있다.
3. 실물경제와 연관된 희망의 신호들
언론 보도에 의하면 미국과 중국에서 실물경제의 선행지수인 ‘4월의 구매자관리지수(PMI)’가 함께 상승하였다고 한다. 그러니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몇 달 후 기업의 주문이 늘어 생산이 확대될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또 미국의 주택가격지수의 하락폭도 줄어들고 있고, 다른 분석에 의하면 중국의 경기부양책이 효과를 내면서 많은 분석가들이 중국의 경제전망을 상향조정하고 중국정부가 내놓은 올해 성장률 목표치 8%는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한 최근 국제원유가격이 점진적으로 상향조정되고 있는 점도 실물경제의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물론 이런 희미한 희망의 등불은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미풍에도 흔들리거나 꺼질지 모른다. 그러나 경제는 흐름과 분위기가 중요한 요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비관 일색에서 좀 희망의 조짐을 보는 것은 마냥 퇴박 받을 일은 아니라고 본다. 특히 오바마 미국대통령 정부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그의 출현이 세계 여러 인종 간에 얽혀있던 국수 가닥 정돈에 한줄기 새로운 희망의 분위기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또 무엇보다 미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영국 한국 모든 지도자들이 경제위기 처리에 최우선순위를 두는 정책을 펴고 있다는 것이 지구인들에게 그래도 어느 정도 신뢰를 갖게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 5월은 만물을 소생시키고 힘을 주는 달이다.
아직도 세계경제에 누들볼효과는 남아 있다. 미국의 FRB의 성명대로 미국경제가 ‘소득감소와 실업, 신용경색 등으로 아직은 위축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한 진단일 것이다. 다른 세계경제들도 비슷하다고 본다. 그러나 이런 흐름 속에서도 5월은 우리에게 그래도 가슴 설레는 희망을 주는 계절이다. 죽은 듯했던 나뭇가지가 파란 옷을 입고 우리에게 희망을 이야기 한다. 거기서 우리네 인간들은 힘을 받게 되듯 세계경제도 다시 꿈틀대기를 고대한다.
특히 한국경제는 보다 탄력을 받고 회생될 것이라는 희망을 5월의 햇볕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왜냐하면 한국경제는 다른 경제에 비하여 탄력성이 있는 경제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큰 어려움을 겪었던 한국경제가 아닌가? 한 세대 안에 전통 농업경제에서 최첨단 지식 정보 경제구조로 발전한 경제다. 그 역동성과 탄력성은 세계경제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런 한국경제가 지금 우선 자본시장이 어느 정도 정돈 되어 가고 있고, 어려움 속에서도 한국의 수출기업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기업의 재무구조는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개선되어 있고 기업의 지배구조도 점차 개선되어 가고 있다. 한편 아직도 파괴적이고 경직된 노동활동을 정돈하여 가는 과정에 있다. 나의 권리만 중요하고 남의 권리나 재산은 중요하게 생각 안하는 비민주성도 점차 개선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남은 과제들을 한국경제가 해결하고 현재의 경제위기에서 벗어나는 역동성을 한국경제는 곧 보여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2009년 4월 28일 화요일
기업의 구조조정에 정부가 나서지 마라
1. 정부의 기업구조조정정책
보도에 의하면 오는 4월 30일 이명박대통령은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여 기업구조조정 문제를 다룰 예정이라고 한다. 그동안 정부 일각에서 검토해온 45대 그룹과 38개 해운업체의 신용위험평가를 마무리하고 구조조정대상을 확정한다고 한다. 그동안 한국경제에서 건설, 해운, 은행, 보험업은 구조조정이 시급한 분야로 분석되어 왔다.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맞아 경제전반의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였으니 특히 이들 분야를 중심으로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시급하게 제기되게 된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그러나 그동안 관련금융기관 중심으로 추진되어 온 해당기업의 구조조정은 사안의 시급성에 비하여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여 왔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이런 저런 이유로 이 이슈를 대통령의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다루게 된 모양이고 지금 과감한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정부가 기업에 보낼 예정인 것 같다. 옳은 방향이고 시급한 일이라고 판단된다. 다만 그 정책추진 방법이 IMF 때 김대중 대통령이 하던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을까 해서 일반적인 정부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2. 김대중 대통령의 대기업 빅딜정책
2002년으로 기억한다. 당시 정부는 소위 4대 개혁과제의 일환으로 기업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특히 대기업의 구조조정을 위하여 대통령이 직접 대기업 총수들을 불러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기업총수들도 정부의 구조조정 작업에 적극 참여하기로 합의를 한바 있다. 거기까지 했으면 좋았다.
그러나 정부는 물론 한걸음 더 나아가 기업의 진로를 좌지우지할 대기업의 소위 ‘빅딜’정책을 들고 나왔다. 여러 사례가 있겠지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삼성자동차를 삼성그룹에서 제외시키는 일이고, 반도체사업을 엘지그룹에서 분리하여 현대그룹에 통합하는 것이었다. 일견 다 타당성이 있어보였고 그래서 생겨난 것이 르노상성차이고 하이닉스 반도체이다. 이런 큰 거래가 정부의 손에 의하여 이루어 졌기 때문에 하이닉스 반도체가 그동안 더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것을 왜 사전적으로 정부가 너는 이래라 저래라 한 것이 문제라고 평가한다. 그것은 시장에서 기업이 했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 정부로서는 그 불가피성을 이야기하고 싶을 것이다. 하나는 이런 일을 당사자인 기업에 맞기면 부지하세월이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 또 하나는 대기업들이 큰 거래를 함에 있어 중재자적 기능을 할 곳이 필요한데 그것을 정부가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할 것이다. 일리가 있고 과거 한국경제는 그런 방식으로 운영되어 왔다. 가깝게 1979년 10.26 당시 국보위는 중화학공업 투자조정을 직접 하였었고, 필자가 재무부 차관보로 재직할 1984년 해운업계의 투자조정을 정부가 직접 한 경험이 있다. 물론 시간의 평면선상에서 2000년대 초 정부가 한 것이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의 발전 정도나 시장의 기능이 다르다는 인식을 모두 할 것이다.
3. 이제 기업이 해야 한다.
시장의 기능이 보다 확대되고 정부의 정보능력이 시장에 오히려 뒤지는 상황 하에서 기업의 구조조정은 기업 스스로 해야 한다. 정부가 손을 대면 댈수록 능률보다는 부작용이 커지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답답하니까 나서고 싶게 된다. 은행에 맡기면 상호간의 이해득실 때문에 일이 잘 진척되지 않는다. 그러니 결과는 범을 그리려다 고양이 그린다는 모양을 연출하기 쉽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여 지금처럼 정부의 재정을 통하여 시장을 지원하고 있는 마당인데 국민의 세금이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 되도록 정부가 직접 나설 합리적 이유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명박 정부도 기업구조조정에 나서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결과가 정부가 보기에 부족하더라도 정부가 나서는 것은 많은 부작용을 만들어 내게 된다는 점을 명심하고 구조조정 내용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기업지원을 하는 경우 정부는 거기에 엄격한 조건을 첨부하거나 관계은행으로 하여금 간접규제를 하도록 하면 될 것이다.
4. 노조투쟁은 좀 물러나 있어야 한다.
기업의 구조조정에서 1차 대상은 인원감축이 불가피하다. 이때 노조가 기업이야 죽던 말든 인원조정은 안된다고 주장하면 구조조정은 불가능하여 질 것이다. 최근의 쌍룡자동차 경우처럼 근로인력의 구조조정을 막무가내로 막는다면 결국 공멸의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기업의 구조조정에서 물론 경영자의 근로자 보호가 우선해야 하겠지만 불가피할 경우 인력감축을 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종래와 같은 파괴적 노조투쟁은 자제되어야 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 없이 한국경제가 현 위기 이후 경쟁력을 확보할 수는 없다. 물론 말같이 쉬운 일이 아니고 ‘근로자 우선’의 정신이 지속되어야 하겠지만 구조조정을 위한 불가피한 해고는 노조투쟁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는데 노조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이를 제도화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사회는 이를 이루도록 방패가 되어 주어야 한다.
5. 기업은 하루속히 새로운 S 커브를 접목하도록 해야 한다.
기업의 구조조정은 조직의 개편이나 사업구조의 변화만 추진한다고 목적이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변화된 기업 환경 속에서 리차드 포스터(Richard Foster)가 말하는 S커브 성장곡선을 빨리 갈아타야 한다. 포스터는 기업이 기존의 S커브에서 새로운 S커브로 갈아타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두 커브 사이에 단절이 길면 위험하다고 하였다. 이를 위하여 기술개발투자를 부단히 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근로자와 경영자가 함께 뭉쳐 헤쳐 나아갈 때 구조조정의 목적은 달성되고 기업은 새로운 비약을 가져오게 된다고 할 수 있다.
보도에 의하면 오는 4월 30일 이명박대통령은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여 기업구조조정 문제를 다룰 예정이라고 한다. 그동안 정부 일각에서 검토해온 45대 그룹과 38개 해운업체의 신용위험평가를 마무리하고 구조조정대상을 확정한다고 한다. 그동안 한국경제에서 건설, 해운, 은행, 보험업은 구조조정이 시급한 분야로 분석되어 왔다.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맞아 경제전반의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였으니 특히 이들 분야를 중심으로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시급하게 제기되게 된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그러나 그동안 관련금융기관 중심으로 추진되어 온 해당기업의 구조조정은 사안의 시급성에 비하여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여 왔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이런 저런 이유로 이 이슈를 대통령의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다루게 된 모양이고 지금 과감한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정부가 기업에 보낼 예정인 것 같다. 옳은 방향이고 시급한 일이라고 판단된다. 다만 그 정책추진 방법이 IMF 때 김대중 대통령이 하던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을까 해서 일반적인 정부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2. 김대중 대통령의 대기업 빅딜정책
2002년으로 기억한다. 당시 정부는 소위 4대 개혁과제의 일환으로 기업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특히 대기업의 구조조정을 위하여 대통령이 직접 대기업 총수들을 불러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기업총수들도 정부의 구조조정 작업에 적극 참여하기로 합의를 한바 있다. 거기까지 했으면 좋았다.
그러나 정부는 물론 한걸음 더 나아가 기업의 진로를 좌지우지할 대기업의 소위 ‘빅딜’정책을 들고 나왔다. 여러 사례가 있겠지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삼성자동차를 삼성그룹에서 제외시키는 일이고, 반도체사업을 엘지그룹에서 분리하여 현대그룹에 통합하는 것이었다. 일견 다 타당성이 있어보였고 그래서 생겨난 것이 르노상성차이고 하이닉스 반도체이다. 이런 큰 거래가 정부의 손에 의하여 이루어 졌기 때문에 하이닉스 반도체가 그동안 더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것을 왜 사전적으로 정부가 너는 이래라 저래라 한 것이 문제라고 평가한다. 그것은 시장에서 기업이 했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 정부로서는 그 불가피성을 이야기하고 싶을 것이다. 하나는 이런 일을 당사자인 기업에 맞기면 부지하세월이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 또 하나는 대기업들이 큰 거래를 함에 있어 중재자적 기능을 할 곳이 필요한데 그것을 정부가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할 것이다. 일리가 있고 과거 한국경제는 그런 방식으로 운영되어 왔다. 가깝게 1979년 10.26 당시 국보위는 중화학공업 투자조정을 직접 하였었고, 필자가 재무부 차관보로 재직할 1984년 해운업계의 투자조정을 정부가 직접 한 경험이 있다. 물론 시간의 평면선상에서 2000년대 초 정부가 한 것이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의 발전 정도나 시장의 기능이 다르다는 인식을 모두 할 것이다.
3. 이제 기업이 해야 한다.
시장의 기능이 보다 확대되고 정부의 정보능력이 시장에 오히려 뒤지는 상황 하에서 기업의 구조조정은 기업 스스로 해야 한다. 정부가 손을 대면 댈수록 능률보다는 부작용이 커지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답답하니까 나서고 싶게 된다. 은행에 맡기면 상호간의 이해득실 때문에 일이 잘 진척되지 않는다. 그러니 결과는 범을 그리려다 고양이 그린다는 모양을 연출하기 쉽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여 지금처럼 정부의 재정을 통하여 시장을 지원하고 있는 마당인데 국민의 세금이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 되도록 정부가 직접 나설 합리적 이유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명박 정부도 기업구조조정에 나서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결과가 정부가 보기에 부족하더라도 정부가 나서는 것은 많은 부작용을 만들어 내게 된다는 점을 명심하고 구조조정 내용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기업지원을 하는 경우 정부는 거기에 엄격한 조건을 첨부하거나 관계은행으로 하여금 간접규제를 하도록 하면 될 것이다.
4. 노조투쟁은 좀 물러나 있어야 한다.
기업의 구조조정에서 1차 대상은 인원감축이 불가피하다. 이때 노조가 기업이야 죽던 말든 인원조정은 안된다고 주장하면 구조조정은 불가능하여 질 것이다. 최근의 쌍룡자동차 경우처럼 근로인력의 구조조정을 막무가내로 막는다면 결국 공멸의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기업의 구조조정에서 물론 경영자의 근로자 보호가 우선해야 하겠지만 불가피할 경우 인력감축을 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종래와 같은 파괴적 노조투쟁은 자제되어야 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 없이 한국경제가 현 위기 이후 경쟁력을 확보할 수는 없다. 물론 말같이 쉬운 일이 아니고 ‘근로자 우선’의 정신이 지속되어야 하겠지만 구조조정을 위한 불가피한 해고는 노조투쟁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는데 노조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이를 제도화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사회는 이를 이루도록 방패가 되어 주어야 한다.
5. 기업은 하루속히 새로운 S 커브를 접목하도록 해야 한다.
기업의 구조조정은 조직의 개편이나 사업구조의 변화만 추진한다고 목적이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변화된 기업 환경 속에서 리차드 포스터(Richard Foster)가 말하는 S커브 성장곡선을 빨리 갈아타야 한다. 포스터는 기업이 기존의 S커브에서 새로운 S커브로 갈아타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두 커브 사이에 단절이 길면 위험하다고 하였다. 이를 위하여 기술개발투자를 부단히 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근로자와 경영자가 함께 뭉쳐 헤쳐 나아갈 때 구조조정의 목적은 달성되고 기업은 새로운 비약을 가져오게 된다고 할 수 있다.
2009년 4월 25일 토요일
수출과 내수(內需)의 균형이 갖는 정책적 의미
1. 한국경제의 수출과 내수의 비중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에 의하면 선진국들이 1인당 국민소득 2만 불의 벽을 넘어 3만 불, 4만 불로 커질 수 있었던 것은 내수부문의 왕성한 성장이 뒷받침했기 때문이라 하고, 그래서 ‘내수부문이 취약한 나라는 경제 강국이 되겠다는 꿈도 꾸지 말라’는 기사를 조선일보가 실었다.(2009년 4월 21일) 특히 일본이 지난 1988년 1인당 국민소득이 5년 만에 1만 불에서 2만 불을 넘어선 것은 연평균 7.6% 성장하였던 내수 때문이었고 오히려 수출은 같은 기간 7.2% 증가세에서 3.5% 증가율로 감소하였다고 하였다. 비슷한 수준에 있는 한국경제가 지난 해 투자와 소비증가율은 0.8%와 1.6%였음을 상기하면 한국경제가 2만 불의 벽을 넘기 위한 내수의 진작이 한참 떨어지는 느낌이다.
2. 정책의 홍수
필자는 지난 1월 20일 여중재노변정담에서 ‘경제위기에서 개방된 작은 경제가 살아 이기는 길’이라는 제목의 글을 실은바 있다. 무엇보다 외부충격으로부터 한국경제를 방어할 수 있는 안전변 확보대책이 마련되어야 함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정책의 마련에 앞서 정책당국자의 자세가 정책운영에서 보다 여유를 갖는 다시 말해서 좀더 신중한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음을 제기하였다. 이에 대한 정책적 해답은 한마디로 경제운영을 보다 안정되게 하자는 이야기가 된다. 시의에 맞지 않는 말 같지만 밖으로부터 온 경제위기 앞에 한국경제가 너무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고 정책도 백가쟁명 식으로 이것저것 허겁지겁 쏟아 내고 있다. 그중 실제로 정책으로 추진되는 것도 있고 많은 것은 아이디어 단계에서 책상서랍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많다. 선택된 정책안 중에는 관계부처 협의가 진행 중이거나 입법과정을 밟기 위해 국회에 나가게 된다. 관계부처협의는 상호간의 이해충돌로 그리고 국회심의는 특유의 비능률성으로 인하여 언제 입법과정을 끝낼지 모르는 가운데 일반인은 그것이 이미 정책으로 확정된 것으로 착각하고 경제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정리되지 않은 정책의 홍수 속에서 오히려 한국인 모두는 불안하고 투자와 소비를 위축시키는 심리를 불러오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출발 초 새로운 정책 다 출산기에 있기 도하고 경제대통령을 표방한 정부이기 때문에 경제정책을 양산하고자 하는 욕구가 많게 되어 있는 상황인데 거기에 세계적 경제위기가 발생하였으니 당연히 이것저것 많은 정책을 내어놓게 되어 있다. 거기에 더하여 지난 10년의 사회주의 중시 정권의 정책오류를 바로잡아야하는 정책욕구까지 합쳐 이명박정부는 경제정책을 양산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경제정책의 대량생산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니고 더구나 지금처럼 세계적 경제위기 앞에 당연히 많은 정책이 그 처방으로 나와야 한다. 더구나 경제의 안전변 확보가 정책의 대량생산과 상반되는 개념은 물론 아니다.
3. 경제정책의 두 가지 흐름
경제정책은 크게 보면 경기의 흐름에 영향을 주는 정책과 경제구조를 고치기 위한 정책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는 일반적으로 단기정책으로 금리나 환율 재정지출 등 정책변수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고 좀 더 직접적으로는 경기부양을 위한 보조정책들이 곁들여 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할 수 있다. 후자의 경우는 보다 장기적으로 재정이나 세율, 특별지원법 등을 활용하여 경제의 장기적 과제를 실현하여 구조적으로 번영의 틀을 마련하고자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책목적의 논리적 구분이 현실에서는 명확한 경우도 있고 함께 겹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현재의 한국경제위기도 정책에 따라 구분하면 단기적으로 위축되어가는 생산활동을 촉진하여 고용을 확대하고 경제성장을 확대하는 정책수요와 구조적으로는 개방경제가 갖게 되는 대외취약성을 보완하는 정책수요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를 위하여 금리를 여러 차례 대폭 인하하여 미국의 리먼사태 이후 2008년 10월 5.25%의 기준금리를 2009년 3월 2%로 낮추었다. 연관되어 통화를 대폭 풀었다. 재정을 최대한 탄력적으로 운용하여 사업을 조기집행하고 엄청난 액수의 추경예산을 추진하고 있다. 그 이외에 금융기관의 유동성 공급과 부실채권 처리를 지원하고 있다. 환율은 한국정부의 정책노력이 아니라 한국경제 안전에 대한 부정적 외부평가 등에 따라 지나치리만큼 저평가되어 국내물가와 소비 및 투자수요촉진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반면에 오히려 수출의 감소 폭을 완화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국내증시와 고용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그래도 과히 나쁘지 않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개방경제의 취약성을 보완하는 정책은 아직 이렇다하게 부각되고 있지 못하다. 우선 현재의 한국경제의 개방을 이제 뒤로 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해답은 내수를 개발하여 수출에 못지않게 그 비중을 키워나가는 일이 될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대로 한국경제를 앞서간 일본과 많은 선진국들의 예에서 배우듯 한국경제도 내수비중을 확대하는 정책이 필요할 것이고 그것이 그야말로 2만 불 소득수준을 넘어 3만 불, 4만 불 소득국가로 가는 길이 될 것이다. IBRD의 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무역의존도가 83.5%이다. 이는 일본의 28.8% 중국의 69%보다 높은 수준이다. 또 한국경제의 무역의존도 추세도 1996년 50.4%에서 2007년에는 75.1%로 점차 증가되고 있다. 이것은 한국의 산업구조 수출상품구조에 따른 결과로 분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경제성장을 하기 위해 수출을 확대하면 그에 상응하는 수입의 부수적 확대가 불가피하고 이것이 다시 한국경제의 무역의존을 확대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말이 나오는 것이 내수산업을 확대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이와 연관하여 제일 먼저 제기되는 것이 4대강운하계획, 이어지는 4대강 개발계획 등 토목사업이다. 다음으로 그린녹색사업으로 대표되는 풍력 조력 등 에너지사업과 생명과학의 바이오사업이 떠오르게 된다. 서비스산업으로 금융, 컨텐츠산업 그리고 기능창작 등 창조사업(creative industry), 지식산업(knowledge industry)등의 개발과 진흥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치산치수로 대표되는 토목사업은 사업의 특성상 좀 전근대적인 즉 부가가치 증식이 상대적으로 느린 부문이고 기계의 사용으로 고용흡수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린녹색사업이나 서비스산업 등은 중점적으로 개발 진흥시켜야 할 부문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기술개발이 전제되고, 많은 자본이 필요하게 되어 무엇보다 시간을 필요로 하는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문의 발전과 진흥이 없이 수출이, 무역이 계속 확대될 수는 없다. 개방사회에서 수출과 내수는 상호간의 대체성 보다는 오히려 상호보완적 기능을 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내수산업을 발전시키고 이를 토대로 수출기반을 확충하는 것은 사회전체의 안정 토대 위에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허구헌 날 싸움질하고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른 노동자들이 거리에서 내 재산 남의 재산 가리지 않고 내 주장만 옳다고 때려 부수는 사회에서는 이런 지식 서비스 산업 등 내수산업의 발전은 바랄 수 없다.
4. ‘안정과 경쟁력’의 정책슬로건
이러한 관점에서 당장의 경제위기를 헤쳐가기 위하여 경기를 부양하고 장기적으로 내수산업을 진흥시키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정책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역설적이지만 경제와 사회의 안정만이 그 해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연관된 정책을 열거하여 보자.
첫째 사회전체의 안정 확보이다. 이를 위하여 정부는 유동성확대 보다는 제도개선을 우선해야 한다. 노동개혁을 서둘러 한국노동운동에서 폭력을 완전하게 제거하여야 한다.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방하고 명명백백하게 하여 기업경영의 구조적 안정을 마련해야 한다. 법의 지배가 완전하게 작동되어야 한다. 법의 지배라는 개념이 법률가가 지배하는 사회라는 말과는 전연 다르다. 사회는 경제논리에 입각하여 능률이 지배되고 법률비지니스는 점차 사양화되는 사회가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만인 앞에 법이 제대로 지배되어야 한다. 정부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이명박정권은 제한된 사람들로 구성된 패거리정치를 고만두어야 한다. 옛날 경험에 입각한 정책고집(hubris) 보다는 열린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러한 안정된 사회의 확보만이 경제안정과 발전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둘째 개방된 한국경제는 글로벌경제운영을 지향하면서도 지역협력 즉 한. 중. 일의 협력체제를 부단히 추구해야 한다. 특히 공동통화(common currency)를 강력하게 추진하여 개방경제의 대외충격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이를 토대로 아시아의 공동번영을 추구해야 한다.
셋째 한국사회의 신뢰(trust)구축이 시급하다. 후쿠야마의 제4의 생산요소인 ‘사회적 자본’을 확충하는 것이 개방된 한국경제가 지향할 길이다.
넷째 무엇보다 안정된 경제운영을 하고 모든 경제정책의 지향점은 경쟁력확보에 있음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사회전체의 ‘안정과 경쟁력’을 정부의 정책슬로건으로 할 것을 제안한다.
결론적으로 개방된 경제체제 하에서 수출과 내수의 균형은 특정산업들의 경제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균형이 아니고, 경제전체가 안정을 토대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고 이를 통하여 결과적으로 경제가 수출산업과 내수산업 구분이 없이 서로 균형 있게 발전하는 체제를 말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에 의하면 선진국들이 1인당 국민소득 2만 불의 벽을 넘어 3만 불, 4만 불로 커질 수 있었던 것은 내수부문의 왕성한 성장이 뒷받침했기 때문이라 하고, 그래서 ‘내수부문이 취약한 나라는 경제 강국이 되겠다는 꿈도 꾸지 말라’는 기사를 조선일보가 실었다.(2009년 4월 21일) 특히 일본이 지난 1988년 1인당 국민소득이 5년 만에 1만 불에서 2만 불을 넘어선 것은 연평균 7.6% 성장하였던 내수 때문이었고 오히려 수출은 같은 기간 7.2% 증가세에서 3.5% 증가율로 감소하였다고 하였다. 비슷한 수준에 있는 한국경제가 지난 해 투자와 소비증가율은 0.8%와 1.6%였음을 상기하면 한국경제가 2만 불의 벽을 넘기 위한 내수의 진작이 한참 떨어지는 느낌이다.
2. 정책의 홍수
필자는 지난 1월 20일 여중재노변정담에서 ‘경제위기에서 개방된 작은 경제가 살아 이기는 길’이라는 제목의 글을 실은바 있다. 무엇보다 외부충격으로부터 한국경제를 방어할 수 있는 안전변 확보대책이 마련되어야 함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정책의 마련에 앞서 정책당국자의 자세가 정책운영에서 보다 여유를 갖는 다시 말해서 좀더 신중한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음을 제기하였다. 이에 대한 정책적 해답은 한마디로 경제운영을 보다 안정되게 하자는 이야기가 된다. 시의에 맞지 않는 말 같지만 밖으로부터 온 경제위기 앞에 한국경제가 너무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고 정책도 백가쟁명 식으로 이것저것 허겁지겁 쏟아 내고 있다. 그중 실제로 정책으로 추진되는 것도 있고 많은 것은 아이디어 단계에서 책상서랍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많다. 선택된 정책안 중에는 관계부처 협의가 진행 중이거나 입법과정을 밟기 위해 국회에 나가게 된다. 관계부처협의는 상호간의 이해충돌로 그리고 국회심의는 특유의 비능률성으로 인하여 언제 입법과정을 끝낼지 모르는 가운데 일반인은 그것이 이미 정책으로 확정된 것으로 착각하고 경제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정리되지 않은 정책의 홍수 속에서 오히려 한국인 모두는 불안하고 투자와 소비를 위축시키는 심리를 불러오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출발 초 새로운 정책 다 출산기에 있기 도하고 경제대통령을 표방한 정부이기 때문에 경제정책을 양산하고자 하는 욕구가 많게 되어 있는 상황인데 거기에 세계적 경제위기가 발생하였으니 당연히 이것저것 많은 정책을 내어놓게 되어 있다. 거기에 더하여 지난 10년의 사회주의 중시 정권의 정책오류를 바로잡아야하는 정책욕구까지 합쳐 이명박정부는 경제정책을 양산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경제정책의 대량생산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니고 더구나 지금처럼 세계적 경제위기 앞에 당연히 많은 정책이 그 처방으로 나와야 한다. 더구나 경제의 안전변 확보가 정책의 대량생산과 상반되는 개념은 물론 아니다.
3. 경제정책의 두 가지 흐름
경제정책은 크게 보면 경기의 흐름에 영향을 주는 정책과 경제구조를 고치기 위한 정책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는 일반적으로 단기정책으로 금리나 환율 재정지출 등 정책변수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고 좀 더 직접적으로는 경기부양을 위한 보조정책들이 곁들여 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할 수 있다. 후자의 경우는 보다 장기적으로 재정이나 세율, 특별지원법 등을 활용하여 경제의 장기적 과제를 실현하여 구조적으로 번영의 틀을 마련하고자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책목적의 논리적 구분이 현실에서는 명확한 경우도 있고 함께 겹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현재의 한국경제위기도 정책에 따라 구분하면 단기적으로 위축되어가는 생산활동을 촉진하여 고용을 확대하고 경제성장을 확대하는 정책수요와 구조적으로는 개방경제가 갖게 되는 대외취약성을 보완하는 정책수요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를 위하여 금리를 여러 차례 대폭 인하하여 미국의 리먼사태 이후 2008년 10월 5.25%의 기준금리를 2009년 3월 2%로 낮추었다. 연관되어 통화를 대폭 풀었다. 재정을 최대한 탄력적으로 운용하여 사업을 조기집행하고 엄청난 액수의 추경예산을 추진하고 있다. 그 이외에 금융기관의 유동성 공급과 부실채권 처리를 지원하고 있다. 환율은 한국정부의 정책노력이 아니라 한국경제 안전에 대한 부정적 외부평가 등에 따라 지나치리만큼 저평가되어 국내물가와 소비 및 투자수요촉진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반면에 오히려 수출의 감소 폭을 완화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국내증시와 고용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그래도 과히 나쁘지 않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개방경제의 취약성을 보완하는 정책은 아직 이렇다하게 부각되고 있지 못하다. 우선 현재의 한국경제의 개방을 이제 뒤로 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해답은 내수를 개발하여 수출에 못지않게 그 비중을 키워나가는 일이 될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대로 한국경제를 앞서간 일본과 많은 선진국들의 예에서 배우듯 한국경제도 내수비중을 확대하는 정책이 필요할 것이고 그것이 그야말로 2만 불 소득수준을 넘어 3만 불, 4만 불 소득국가로 가는 길이 될 것이다. IBRD의 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무역의존도가 83.5%이다. 이는 일본의 28.8% 중국의 69%보다 높은 수준이다. 또 한국경제의 무역의존도 추세도 1996년 50.4%에서 2007년에는 75.1%로 점차 증가되고 있다. 이것은 한국의 산업구조 수출상품구조에 따른 결과로 분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경제성장을 하기 위해 수출을 확대하면 그에 상응하는 수입의 부수적 확대가 불가피하고 이것이 다시 한국경제의 무역의존을 확대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말이 나오는 것이 내수산업을 확대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이와 연관하여 제일 먼저 제기되는 것이 4대강운하계획, 이어지는 4대강 개발계획 등 토목사업이다. 다음으로 그린녹색사업으로 대표되는 풍력 조력 등 에너지사업과 생명과학의 바이오사업이 떠오르게 된다. 서비스산업으로 금융, 컨텐츠산업 그리고 기능창작 등 창조사업(creative industry), 지식산업(knowledge industry)등의 개발과 진흥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치산치수로 대표되는 토목사업은 사업의 특성상 좀 전근대적인 즉 부가가치 증식이 상대적으로 느린 부문이고 기계의 사용으로 고용흡수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린녹색사업이나 서비스산업 등은 중점적으로 개발 진흥시켜야 할 부문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기술개발이 전제되고, 많은 자본이 필요하게 되어 무엇보다 시간을 필요로 하는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문의 발전과 진흥이 없이 수출이, 무역이 계속 확대될 수는 없다. 개방사회에서 수출과 내수는 상호간의 대체성 보다는 오히려 상호보완적 기능을 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내수산업을 발전시키고 이를 토대로 수출기반을 확충하는 것은 사회전체의 안정 토대 위에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허구헌 날 싸움질하고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른 노동자들이 거리에서 내 재산 남의 재산 가리지 않고 내 주장만 옳다고 때려 부수는 사회에서는 이런 지식 서비스 산업 등 내수산업의 발전은 바랄 수 없다.
4. ‘안정과 경쟁력’의 정책슬로건
이러한 관점에서 당장의 경제위기를 헤쳐가기 위하여 경기를 부양하고 장기적으로 내수산업을 진흥시키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정책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역설적이지만 경제와 사회의 안정만이 그 해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연관된 정책을 열거하여 보자.
첫째 사회전체의 안정 확보이다. 이를 위하여 정부는 유동성확대 보다는 제도개선을 우선해야 한다. 노동개혁을 서둘러 한국노동운동에서 폭력을 완전하게 제거하여야 한다.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방하고 명명백백하게 하여 기업경영의 구조적 안정을 마련해야 한다. 법의 지배가 완전하게 작동되어야 한다. 법의 지배라는 개념이 법률가가 지배하는 사회라는 말과는 전연 다르다. 사회는 경제논리에 입각하여 능률이 지배되고 법률비지니스는 점차 사양화되는 사회가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만인 앞에 법이 제대로 지배되어야 한다. 정부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이명박정권은 제한된 사람들로 구성된 패거리정치를 고만두어야 한다. 옛날 경험에 입각한 정책고집(hubris) 보다는 열린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러한 안정된 사회의 확보만이 경제안정과 발전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둘째 개방된 한국경제는 글로벌경제운영을 지향하면서도 지역협력 즉 한. 중. 일의 협력체제를 부단히 추구해야 한다. 특히 공동통화(common currency)를 강력하게 추진하여 개방경제의 대외충격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이를 토대로 아시아의 공동번영을 추구해야 한다.
셋째 한국사회의 신뢰(trust)구축이 시급하다. 후쿠야마의 제4의 생산요소인 ‘사회적 자본’을 확충하는 것이 개방된 한국경제가 지향할 길이다.
넷째 무엇보다 안정된 경제운영을 하고 모든 경제정책의 지향점은 경쟁력확보에 있음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사회전체의 ‘안정과 경쟁력’을 정부의 정책슬로건으로 할 것을 제안한다.
결론적으로 개방된 경제체제 하에서 수출과 내수의 균형은 특정산업들의 경제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균형이 아니고, 경제전체가 안정을 토대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고 이를 통하여 결과적으로 경제가 수출산업과 내수산업 구분이 없이 서로 균형 있게 발전하는 체제를 말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2009년 4월 20일 월요일
한국경제에 봄날은 오고 있는가?
한국경제에 봄날은 오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아니다’라는 대답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장기적으로 한국경제가 희망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당장 세계적 경제위기에 처하여 그동안 애타게 기다리던 경기회복의 소식이 봄날과 함께 오고 있는가하는 바람에 대한 답이라고 할 수 있다.
2009년 3월이 지나고 4월이 되면서 한국경제는 그동안 한국인들을 주눅 들게 하였던 외환부족의 문제와 연관된 협박성 전망에서 많이 자유롭게 되었고, 아직 박스권에서 왔다 갔다 하지만 증시가 많은 개선을 이루어 코스피가 1300을 넘어 1400선을 바라보게 되었다. 한편 경기침체에서 온 결과이지만 수출이 줄어드는 가운데에서도 수입이 보다 감소하여 3월의 무역수지가 40억불이 넘는 흑자를 보이고 이렇게 가면 연말 한국경제의 경상수지 흑자는 100억불을 간단하게 넘을 것이라는 것이 요즘의 전망이다. 부동산 시장도 강남의 재건축시장을 시작으로 활기를 찾고 있고, 원유 값의 안정으로 국내물가도 당분간 안정될 전망이다. 한편 국제금융시장에서 최근 한국경제에 대한 신용위험금리(CDS)가 크게 낮아져 이제 6%대에서 3%대로 내려왔다. 3월 위기설은 그야말로 설로 끝이 났고 어느 애널리스트 말대로 뉴욕에서 6000마일 떨어진 한국경제에서 세계적 경제위기의 첫 회복 소식이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따뜻한 봄 볏 넘어 에는 아직도 시꺼먼 먹구름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한국경제는 무엇보다 일자리가 줄어들어 실업자가 100만 명을 쳐다보게 되었다. 청년실업은 정말 고통스러운 상황이다. 아직도 수출은 계속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고 그에 따라 산업생산은 부진한 모습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한국경제는 대외 의존적 개방경제운영의 취약성을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春來 不思春’이 아니라 ‘春不來 思春’하는 상황이 요즘 한국경제에 대한 평가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의 이명박대통령은 어느 회의자리에서 한국경제가 긴 어두운 터널의 중간가운데를 지나가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재경부나 한국은행 역시 이러한 보수적인 시각을 아직 유지하고 있다.
희망과 절망의 교차는 미국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과 버냉키 FRB의장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경제전망을 이야기 하였다. 오바마는 어렴풋이나마 ‘미국경제 전반에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 한다’고 하였다. 주택거래가 늘고 있고, 증권가에서 웰스카고, 골드만삭스 등 금융기관의 1분기 실적개선은 다우지수를 8천선으로 끌어올렸고 이러한 영향으로 세계증시도 비슷하게 금년 들어 30%가량 상승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미국정부의 희망적인 분석에 대하여 아직은 아니라는 것이 대세인 것 같다. 영국의 BBC가 4월 17일 몇몇 전문가들의 미국경제 평가를 보도하였는데, 긍정적인 평가로는 미국의 생산활동이 여전히 감소하고 있지만 둔화속도는 완만해지고 있어 변곡점에 있는 것으로 전망하고 특히 주택가격 주식시장 그리고 국제상품가격 등이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어 가까운 시일에 경기회복조짐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반면 보다 많은 사람들은 희망이 보인다는 오바마의 발언은 자신의 희망을 담은 전망이고 적어도 2010년까지는 성장의 징후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더 어두운 전망은 미국이 10년 불황을 맞았던 일본과 비슷한 경험을 앞으로 겪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사람(케네스 로고프 하바드 경제학 교수)도 있다. 폴크르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최근 고개를 들고 있는 경기회복 기대가 ‘시기상조’임을 주장하고 이를 뒷밭임하는 자료로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산업생산, 주택착공 실적, 압류주택건수 증가 등을 예로 들고 있다.
여타국가들 특히 EU국들은 전통적인 재정적 취약성 때문인지 이렇다할 희망을 찾을 수 없고 오히려 영국이 다시 IMF에 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을 세계경제가 하고 있다. 독일이나 불란서는 경제위기 극복보다는 차제에 미국의 경제적 패권을 뒷다리 거는데 더 관심을 쏟는 기분이다. 일본은 어려울 때 특유의 진득한 인내를 보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금년 1분기를 지나면서 경제가 더욱 침체의 늪으로 빠져가는 느낌이다. 중국의 경기부양책은 그 효과를 너무 조급하게 기다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신통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고, 인도는 경제보다는 정치상황에 몰두하고 러시아나 브라질 등 신흥국들도 밝은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2009년 4월 후반인 지금 세계 어디에서도 소비나 투자가 늘어나는 시원한 소식은 없다. 그러니 그동안 한국경제의 외환부족 위험성을 선전하다시피 전망하던 영국의 피낸셜타임스나 에코노미스트지 들이 3월을 보내고 4월이 중반을 지나는데도 한국경제가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되자 머쓱한 표정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상대적으로 자기네 나라 영국의 외환위기가 IMF로 가는 것 아닌가하는 전망이 나오게 되자 스스로 망연자실한 모습이 되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단기적으로 한국경제가 그들의 악의적 전망에 따라 원화의 환율이 크게 절하된 덕분에 수출이 상대적으로 덜 줄게 되고, 증시도 다른 선진국에 비하여 덜 충격을 받게 되자 한국경제가 위기탈출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평가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한국경제에 봄날이 온 것은 아니다. 현재의 증시회복은 과잉유동성에서 비롯된 것이고 서울 일부지역의 부동산 거래확대도 돈이 갈 데가 마땅치 않아 생긴 일시적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수준이나 거래량도 그리 의미심장한 것은 아니라고 평가된다. 수출은 환율의 안정에 따라 가격경쟁력이 전만 못할 것이 뻔하다. 다른 나라의 수입수요를 당장 기대할 수도 없다. 그러니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설비투자를 기대할 수 없고 자산소득과 피용자보수의 증가를 기대할 수도 없으니 소비가 늘 것을 바랄 수 없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경제의 구조조정도 이루어진 것이 없다. 그러니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고용시장의 붕괴이다. 실업자가 100만명에 육박하고 그것을 흡수할 생산활동을 기대할 수 없다.
여기에 한국경제의 목을 죄는 것이 한국의 안보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북한은 미사일 실험에 이어 6자회담 탈퇴, 남북통로하고 할 수 있는 개성공단의 자의적 관리와 함께 ‘서울이 50km 밖에 되지 않는 것을 남한은 알아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군사도발 위협을 가하고 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이런 국가적 안보위협 앞에서 한국 국회는 패거리 이익을 위하여 오히려 안보상황을 이용하는 한심한 작태를 보이고 있다. 한시가 급한 추경예산의 처리는 뒷전에 쳐져 있다. 이명박정부는 PSI 처리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북한의 위협에 이리 끌리고 저리 끌리는 결연성이 없음을 연출하고 있다.
이상에서 한국경제가 지난 6개월 동안 세계적 경제위기 앞에서 정부가 잘 했던, 악의적인 한국경제평가에서 나타난 환율절하의 덕분이던, 지난 10년전의 IMF시기를 지나면서 한국기업의 재무구조가 그래도 개선된 덕분이던, 다른 경제에 비하여 그래도 선방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 위기에 처했을 때 한국인 특유의 절제와 결단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다시 보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여기까지라고 보아야 한다. 보다 구조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 차제에 한국경제의 고질인 파괴적 노동활동이 근절되고 생산적 노사관계가 정립되어야 한다. 기업의 지배구조가 보다 개방되고 공정해야 된다. 개방경제를 살려 나아가되 그 취약성이라 할 수 있는 내수부문의 확충이 시급하게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일을 감당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전근대적인 권력구조를 가지고는 안 된다. 삼권분립은 권력의 분점을 목표로 하는데 그 운영에 있어서는 상대방과의 경쟁을 도입하는 방법은 없는지 연구해 보았으면 좋겠다. 한심한 정치권 밑에 유능한 정부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그 대안은 무엇일까? 21세기 자유민주주의의 발전방향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무튼 이런 산적한 일 들 앞에 한국경제의 막연한 봄 타령을 하고 있는 것은 정신 나간 짓이라고 평가한다.
2009년 3월이 지나고 4월이 되면서 한국경제는 그동안 한국인들을 주눅 들게 하였던 외환부족의 문제와 연관된 협박성 전망에서 많이 자유롭게 되었고, 아직 박스권에서 왔다 갔다 하지만 증시가 많은 개선을 이루어 코스피가 1300을 넘어 1400선을 바라보게 되었다. 한편 경기침체에서 온 결과이지만 수출이 줄어드는 가운데에서도 수입이 보다 감소하여 3월의 무역수지가 40억불이 넘는 흑자를 보이고 이렇게 가면 연말 한국경제의 경상수지 흑자는 100억불을 간단하게 넘을 것이라는 것이 요즘의 전망이다. 부동산 시장도 강남의 재건축시장을 시작으로 활기를 찾고 있고, 원유 값의 안정으로 국내물가도 당분간 안정될 전망이다. 한편 국제금융시장에서 최근 한국경제에 대한 신용위험금리(CDS)가 크게 낮아져 이제 6%대에서 3%대로 내려왔다. 3월 위기설은 그야말로 설로 끝이 났고 어느 애널리스트 말대로 뉴욕에서 6000마일 떨어진 한국경제에서 세계적 경제위기의 첫 회복 소식이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따뜻한 봄 볏 넘어 에는 아직도 시꺼먼 먹구름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한국경제는 무엇보다 일자리가 줄어들어 실업자가 100만 명을 쳐다보게 되었다. 청년실업은 정말 고통스러운 상황이다. 아직도 수출은 계속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고 그에 따라 산업생산은 부진한 모습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한국경제는 대외 의존적 개방경제운영의 취약성을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春來 不思春’이 아니라 ‘春不來 思春’하는 상황이 요즘 한국경제에 대한 평가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의 이명박대통령은 어느 회의자리에서 한국경제가 긴 어두운 터널의 중간가운데를 지나가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재경부나 한국은행 역시 이러한 보수적인 시각을 아직 유지하고 있다.
희망과 절망의 교차는 미국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과 버냉키 FRB의장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경제전망을 이야기 하였다. 오바마는 어렴풋이나마 ‘미국경제 전반에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 한다’고 하였다. 주택거래가 늘고 있고, 증권가에서 웰스카고, 골드만삭스 등 금융기관의 1분기 실적개선은 다우지수를 8천선으로 끌어올렸고 이러한 영향으로 세계증시도 비슷하게 금년 들어 30%가량 상승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미국정부의 희망적인 분석에 대하여 아직은 아니라는 것이 대세인 것 같다. 영국의 BBC가 4월 17일 몇몇 전문가들의 미국경제 평가를 보도하였는데, 긍정적인 평가로는 미국의 생산활동이 여전히 감소하고 있지만 둔화속도는 완만해지고 있어 변곡점에 있는 것으로 전망하고 특히 주택가격 주식시장 그리고 국제상품가격 등이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어 가까운 시일에 경기회복조짐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반면 보다 많은 사람들은 희망이 보인다는 오바마의 발언은 자신의 희망을 담은 전망이고 적어도 2010년까지는 성장의 징후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더 어두운 전망은 미국이 10년 불황을 맞았던 일본과 비슷한 경험을 앞으로 겪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사람(케네스 로고프 하바드 경제학 교수)도 있다. 폴크르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최근 고개를 들고 있는 경기회복 기대가 ‘시기상조’임을 주장하고 이를 뒷밭임하는 자료로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산업생산, 주택착공 실적, 압류주택건수 증가 등을 예로 들고 있다.
여타국가들 특히 EU국들은 전통적인 재정적 취약성 때문인지 이렇다할 희망을 찾을 수 없고 오히려 영국이 다시 IMF에 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을 세계경제가 하고 있다. 독일이나 불란서는 경제위기 극복보다는 차제에 미국의 경제적 패권을 뒷다리 거는데 더 관심을 쏟는 기분이다. 일본은 어려울 때 특유의 진득한 인내를 보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금년 1분기를 지나면서 경제가 더욱 침체의 늪으로 빠져가는 느낌이다. 중국의 경기부양책은 그 효과를 너무 조급하게 기다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신통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고, 인도는 경제보다는 정치상황에 몰두하고 러시아나 브라질 등 신흥국들도 밝은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2009년 4월 후반인 지금 세계 어디에서도 소비나 투자가 늘어나는 시원한 소식은 없다. 그러니 그동안 한국경제의 외환부족 위험성을 선전하다시피 전망하던 영국의 피낸셜타임스나 에코노미스트지 들이 3월을 보내고 4월이 중반을 지나는데도 한국경제가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되자 머쓱한 표정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상대적으로 자기네 나라 영국의 외환위기가 IMF로 가는 것 아닌가하는 전망이 나오게 되자 스스로 망연자실한 모습이 되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단기적으로 한국경제가 그들의 악의적 전망에 따라 원화의 환율이 크게 절하된 덕분에 수출이 상대적으로 덜 줄게 되고, 증시도 다른 선진국에 비하여 덜 충격을 받게 되자 한국경제가 위기탈출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평가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한국경제에 봄날이 온 것은 아니다. 현재의 증시회복은 과잉유동성에서 비롯된 것이고 서울 일부지역의 부동산 거래확대도 돈이 갈 데가 마땅치 않아 생긴 일시적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수준이나 거래량도 그리 의미심장한 것은 아니라고 평가된다. 수출은 환율의 안정에 따라 가격경쟁력이 전만 못할 것이 뻔하다. 다른 나라의 수입수요를 당장 기대할 수도 없다. 그러니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설비투자를 기대할 수 없고 자산소득과 피용자보수의 증가를 기대할 수도 없으니 소비가 늘 것을 바랄 수 없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경제의 구조조정도 이루어진 것이 없다. 그러니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고용시장의 붕괴이다. 실업자가 100만명에 육박하고 그것을 흡수할 생산활동을 기대할 수 없다.
여기에 한국경제의 목을 죄는 것이 한국의 안보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북한은 미사일 실험에 이어 6자회담 탈퇴, 남북통로하고 할 수 있는 개성공단의 자의적 관리와 함께 ‘서울이 50km 밖에 되지 않는 것을 남한은 알아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군사도발 위협을 가하고 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이런 국가적 안보위협 앞에서 한국 국회는 패거리 이익을 위하여 오히려 안보상황을 이용하는 한심한 작태를 보이고 있다. 한시가 급한 추경예산의 처리는 뒷전에 쳐져 있다. 이명박정부는 PSI 처리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북한의 위협에 이리 끌리고 저리 끌리는 결연성이 없음을 연출하고 있다.
이상에서 한국경제가 지난 6개월 동안 세계적 경제위기 앞에서 정부가 잘 했던, 악의적인 한국경제평가에서 나타난 환율절하의 덕분이던, 지난 10년전의 IMF시기를 지나면서 한국기업의 재무구조가 그래도 개선된 덕분이던, 다른 경제에 비하여 그래도 선방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 위기에 처했을 때 한국인 특유의 절제와 결단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다시 보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여기까지라고 보아야 한다. 보다 구조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 차제에 한국경제의 고질인 파괴적 노동활동이 근절되고 생산적 노사관계가 정립되어야 한다. 기업의 지배구조가 보다 개방되고 공정해야 된다. 개방경제를 살려 나아가되 그 취약성이라 할 수 있는 내수부문의 확충이 시급하게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일을 감당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전근대적인 권력구조를 가지고는 안 된다. 삼권분립은 권력의 분점을 목표로 하는데 그 운영에 있어서는 상대방과의 경쟁을 도입하는 방법은 없는지 연구해 보았으면 좋겠다. 한심한 정치권 밑에 유능한 정부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그 대안은 무엇일까? 21세기 자유민주주의의 발전방향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무튼 이런 산적한 일 들 앞에 한국경제의 막연한 봄 타령을 하고 있는 것은 정신 나간 짓이라고 평가한다.
2009년 4월 8일 수요일
북한의 미사일 무력우위와 남한의 경제력 우위
1. 결론난 일 가지고 고민
세계는 이념(Ideology)시대가 종료 된지 20년이 지난 지금 이념시대의 마지막 잔재라고 할 수 있는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꿈꾸는 북한정권의 몽니 앞에 아연하고 있다. 이념의 시대는 구소련의 몰락과 함께 자본주의의 승리로 결론이 났다. 다만 아직 그 언저리에 남아 있던 일부 국가들이 과거의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권토중래를 꿈꾸고 있다. 그 몇 안 되는 나라들 중에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속해 있다고 할 수 있고 그 목표 추구 방식이 과격하기로 정평이 나있다고 할 수 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앞 뒤 가리지 않고 자기 멋대로 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정부의 몽니 앞에 세계는 다시 고민하고 있다.
2. 미사일 선군정치
북한정부는 예고한대로 4월 5일 오전 11시 반 그들이 말하는 인공위성 발사 실험을 단행하였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의 이지스함 들이 동해상에 출동하고 미국의 첩보비행체 그리고 각 기지국의 정보망들이 총동원되어 감시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의 무수단리를 출발한 장거리로켓은 당초 예상했던 7000~8000km에 크게 못미치는 3200km를 날라 가 태평양에 떨어졌다. 북한이 당초 주장한 것처럼 북한의 위성이 괴도에 진입하였다는 것은 거짓이고 태평양에 떨어져 실패하였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정보당국자들이 제공하는 평가이다.
여기서 관심의 초점이 되는 것은 북한이 인공위성을 발사한 것이냐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냐가 아니고, 또 그것이 성공했느냐 여부도 아니다. 관심은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기술의 발전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알다시피 북한이 처음 발사한 1998년의 대포동 1호는 1620km를 비행하였고, 8년 후인 2006년 발사한 대포동2호는 발사 된지 40초 만에 공중분해 되었다. 그리고 10여년 만에 발사한 이번 로켓은 당초보다 두 배에 달하는 3200km를 날라 갔다. 이를 통하여 북한은 머지않아 미국을 사정권에 넣는 대륙간타도미사일(ICBM) 기술을 갖게 될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여진다. 북한의 속내는 처음부터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리려는 시도가 아니고 대륙간의 탄도미사일의 시험이었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 추측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이번의 실험도 부분적으로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일정권은 이번 실험이 실패해도 얻을 것은 다 얻는 기막힌 도박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미사일실험의 목적은 대내 대외용으로 분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내적으로는 오는 4월 9일 김정일정권의 3기 시작을 앞두고 대내 결속과 세계에 대한 자기과시 속에서 출발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실험의 성공과 실패를 떠나 북한은 세계인의 관심을 끌게 되었고 이것이 김정일의 위대성에서 비롯되었다고 믿고 고무되었을 것이다. 앞으로 3년 후인 2012년 ‘강성대국 완료’를 앞두고 북한의 모든 인민들이 체제의 우위성과 김정일의 세계적 지도력을 마음껏 찬양 고무하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흥분 속에 배고픔도 잠시 잊을지도 모르겠고, 이럴수록 북한이라는 나라는 국제적 미아(迷兒)로 전락되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번의 미사일 실험이 노리는 대외적 이득은 새로 출발한 미국의 오바마 정부와의 직거래일 것이다. 오바마 정부의 정책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는 북한은 자극적인 방법으로 자기존재를 과시하고 이를 통해서 미북 직접대화를 획책할 것이다. 지난 2006년 실험에서도 북미직접대화를 이끌어낸 경험이 있는 북한정권이고 이미 미국의 대북특사로 임명된 보즈워즈도 직접대화의 가능성을 이미 시사한바 있다. 그러니 실험에 실패하고도 김정일 정권은 얻을 것은 다 챙기는 묘수를 두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3. 한국의 ‘不高興’
최근 중국인을 흥분시키고 자존심을 고취시키는 글귀가 ‘중궈 뿌 가오싱(中國不高興)’이라 한다. 그동안 무비판적으로 맹종하여 온 서양적인 가치(價値)기준에 대하여 이제 중국도 중국의 가치를 다시 찾아야 할 것 아니냐 하는 논리일 것이다. 경제의 빈곤과 발전의 후진성 속에서 중국인들은 자기의 자존적 가치보다는 모든 면에서 우월성을 가지고 있는 서양의 가치기준을 따라가려는 노력을 일방적으로 하여왔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내용이야 어떻던 세계에서 미국 과 일본 다음으로 큰 경제규모를 가지고 있고, 미국 인구의 여섯 배를 가진 대국이 된 중국이다. 중국은 그동안 2조 달러의 외환보유고와 5000억달러의 미국국채를 가지고 있는 미국 제일의 채권국가가 되었다. 이런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국인들은 자기의 자존적 가치기준을 가지고 지금까지 서양적 가치기준에 따라 주눅 들어 있던 현실을 보면서 불편한 심기를 나타내는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그 단적인 예가 최근 중국인민은행장의 SDR 기축통화론이고, 런던의 G20정상회의에서 이 회의의 모습을 놓고 G2회의라고 불릴 정도로 중국과 후진타오의 위상은 여타국들을 능가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중국의 ‘뿌가오싱’은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한국경제도 이미 경제규모 무역규모, IT 자동차 등 중요산업들의 발전상 등을 보면 세계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직 남북관계에서 오는 안보의 취약성이 남아 있고 개방된 경제구조 하에서 국제환경의 변화에 쉽게 흔들리는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한국경제는 20세기 후반기와 21세기 시작되는 시점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발전되어 가는 신흥국 중에 하나가 되었다. 그런 한국이 최근 북한은 말할 것 없고 중국의 이중적 잣대에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사실 최근의 북한의 미사일실험 반칙에 대하여 유엔 안보리에서 그 제재방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한미일이 함께 요구하는 북한에 대한 추가제재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사실상 북한정권의 유지를 위하여 정치적면에서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면에서 절대적인 지원을 하고 있는 나라다. 북한은 1961년 체결한 조.중(朝.中) 우호조약을 마지막 보루로 삼고 있다. 경제적으로 북한은 식량과 원유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최근 김정일 정권은 작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미국의 식량 원조를 거부한바 있다. 인민들이 굶어 죽고 있는데 북한정부가 미국의 식량 원조를 거절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중국에서 보상될 수 있다는 계산에서일 것이다. 만일 당장 중국이 안보와 경제에서 지원을 하여주지 않는다면 북한은 그 국가 기능이 상실될 수밖에 없다. 그런 중국이 북한의 미사일실험을 말은 만류한다고 하면서 이를 막지 않았고, 또 사후적으로도 이에 대한 상응한 제제(punishments)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남한정권에서 중국을 겨냥하여 미사일실험을 한다고 한다면 중국은 어떤 태도를 견지할 것인가? 그동안 6자회담의 의장국으로서 중국은 회담의제의 핵심인 북한의 비핵화를 관련국들과 협의하여 왔다. 그런 중국이 이제 핵무기 보유와 함께 이를 운반할 기술을 실험한 북한정권의 미사일 놀음을 단순한 말장난으로 북한정권이 주장하는 인공위성의 자주권을 내세워 그 처벌을 외면한다면 이것은 인류에 대한 죄를 짓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아무리 국제관계가 국익우선이라고 하지만 북한정권의 비핵화를위한 6자회담의 의장국으로서 중국이 취하고 있는 2중적 잣대에 한국은 불쾌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한국 내의 소위 진보그룹이라는 사람들의 행태이다. 그들은 전에도 그랬지만 이번 북한의 미사일실험을 선진된 기술수준의 보유로 보고, 우리가 가지지 못한 기술을 북한이 가진데 대하여 앞으로 한 민족으로서 기술공유를 꿈꾸면서 북한의 미사일 실험을 축하할 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한다. 전 세계가 북한의 몽니에 개탄과 함께 그것이 가져올 인류에 대한 재앙에 대하여 신경이 곤두서 있는데, 아직도 김정일의 ‘우리민족끼리’의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면서 북한 편향적인 이들 진보그룹들은 아예 북한으로 넘어가 살아야 한 인간들이다.
4. 넘볼 수 없는 경제력 우위 확보가 그 해답이다.
1961년 한국은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에 가입하였고 같은 해 한미간에 미사일협정을 체결한바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은 중량 500kg, 사거리 300km의 제한 속에 무기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은 당시 북한도 같은 제약 속에 무기개발이 이루어 질 것을 상정하여 이러한 협정에 가입하였지만, 북한은 1998년 대포동 1호 발사와 함께 이 모라토리움을 깨버렸고 이번의 실험으로 그 사거리를 2배 이상 늘렸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이 한미간의 미사일협정에 따른 개발제약을 계속 지키는 것은 한국의 안보를 위하여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연이은 세계의 군비증강과 연계되는 문제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인의 턱 앞에 들이대고 있는 북한의 칼날 놀음에 한국인은 그냥 앉아 있을 수는 없다.
몇일전 영국의 피낸셜 타임스의 기사대로 이번 북한의 미사일 실험을 빗대 ‘아이가 떼를 쓰면 내버려 둘 것인지 타일러야 할 것인지 부모로서 딜렘머가 아닐 수 없다.’고 하면서 이 신문이 그래도 타일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먼 남의 나라, 남의 일이니까 쉽게 할 소리이다. 그러나 북한이 노리는 남쪽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한가히 타이르고 앉아 있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우리 안보를 철저하게 지키는 전략과 대비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한 미국 일본 등 우방과의 협력을 제대로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근본 해결책은 한국경제의 상대적 힘을 한껏 끌어올리는 일이라고 평가한다. 그러기 위해서 정파끼리 싸움으로 한가한 시간을 보내거나, 국제경쟁력을 갉아먹는 불법 파괴행위 등이 한국경제에서 살아져야 한다. 북한체제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땅을 떠나 북한으로 보내야 한다. 그래서 모두 생산성을 올리고 경쟁력을 확보하는 경제활동을 하는 한국경제가 되어야 한다. 이제 무력에 의한 힘의 지배시대는 끝이 나간다. 무엇보다 경제력으로 승부를 보아야 한다. 제아무리 북한이 악랄하게 한국을 넘보려 할지라도 한국경제의 세계적 위상을 지금보다 훨씬 올려놓는다면 북한이 함부로 전쟁을 도발하거나 트집을 잡을 수 없게 된다. 설령 무모한 침공을 할지라도 우방과의 협력을 통하여 이를 물리칠 수 있음은 당연할 것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우방에 한국이 필요하고 한국의 위상이 그들에게도 꼭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 길은 경제력에서 찾아야 한다.
이제 미국의 팍스아메리카나 시대도 지나가고 있다. 세계의 다극체제 하에서 한국이 중요한 위상을 차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도 한국경제가 훨씬 결속력 있게 쭉 뻗어가야 한다. 그것이 북한의 미사일실험 등 몽니 앞에 한국이 의연하게 살아 이기는 길이 될 것이다.
세계는 이념(Ideology)시대가 종료 된지 20년이 지난 지금 이념시대의 마지막 잔재라고 할 수 있는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꿈꾸는 북한정권의 몽니 앞에 아연하고 있다. 이념의 시대는 구소련의 몰락과 함께 자본주의의 승리로 결론이 났다. 다만 아직 그 언저리에 남아 있던 일부 국가들이 과거의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권토중래를 꿈꾸고 있다. 그 몇 안 되는 나라들 중에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속해 있다고 할 수 있고 그 목표 추구 방식이 과격하기로 정평이 나있다고 할 수 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앞 뒤 가리지 않고 자기 멋대로 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정부의 몽니 앞에 세계는 다시 고민하고 있다.
2. 미사일 선군정치
북한정부는 예고한대로 4월 5일 오전 11시 반 그들이 말하는 인공위성 발사 실험을 단행하였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의 이지스함 들이 동해상에 출동하고 미국의 첩보비행체 그리고 각 기지국의 정보망들이 총동원되어 감시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의 무수단리를 출발한 장거리로켓은 당초 예상했던 7000~8000km에 크게 못미치는 3200km를 날라 가 태평양에 떨어졌다. 북한이 당초 주장한 것처럼 북한의 위성이 괴도에 진입하였다는 것은 거짓이고 태평양에 떨어져 실패하였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정보당국자들이 제공하는 평가이다.
여기서 관심의 초점이 되는 것은 북한이 인공위성을 발사한 것이냐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냐가 아니고, 또 그것이 성공했느냐 여부도 아니다. 관심은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기술의 발전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알다시피 북한이 처음 발사한 1998년의 대포동 1호는 1620km를 비행하였고, 8년 후인 2006년 발사한 대포동2호는 발사 된지 40초 만에 공중분해 되었다. 그리고 10여년 만에 발사한 이번 로켓은 당초보다 두 배에 달하는 3200km를 날라 갔다. 이를 통하여 북한은 머지않아 미국을 사정권에 넣는 대륙간타도미사일(ICBM) 기술을 갖게 될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여진다. 북한의 속내는 처음부터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리려는 시도가 아니고 대륙간의 탄도미사일의 시험이었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 추측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이번의 실험도 부분적으로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일정권은 이번 실험이 실패해도 얻을 것은 다 얻는 기막힌 도박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미사일실험의 목적은 대내 대외용으로 분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내적으로는 오는 4월 9일 김정일정권의 3기 시작을 앞두고 대내 결속과 세계에 대한 자기과시 속에서 출발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실험의 성공과 실패를 떠나 북한은 세계인의 관심을 끌게 되었고 이것이 김정일의 위대성에서 비롯되었다고 믿고 고무되었을 것이다. 앞으로 3년 후인 2012년 ‘강성대국 완료’를 앞두고 북한의 모든 인민들이 체제의 우위성과 김정일의 세계적 지도력을 마음껏 찬양 고무하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흥분 속에 배고픔도 잠시 잊을지도 모르겠고, 이럴수록 북한이라는 나라는 국제적 미아(迷兒)로 전락되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번의 미사일 실험이 노리는 대외적 이득은 새로 출발한 미국의 오바마 정부와의 직거래일 것이다. 오바마 정부의 정책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는 북한은 자극적인 방법으로 자기존재를 과시하고 이를 통해서 미북 직접대화를 획책할 것이다. 지난 2006년 실험에서도 북미직접대화를 이끌어낸 경험이 있는 북한정권이고 이미 미국의 대북특사로 임명된 보즈워즈도 직접대화의 가능성을 이미 시사한바 있다. 그러니 실험에 실패하고도 김정일 정권은 얻을 것은 다 챙기는 묘수를 두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3. 한국의 ‘不高興’
최근 중국인을 흥분시키고 자존심을 고취시키는 글귀가 ‘중궈 뿌 가오싱(中國不高興)’이라 한다. 그동안 무비판적으로 맹종하여 온 서양적인 가치(價値)기준에 대하여 이제 중국도 중국의 가치를 다시 찾아야 할 것 아니냐 하는 논리일 것이다. 경제의 빈곤과 발전의 후진성 속에서 중국인들은 자기의 자존적 가치보다는 모든 면에서 우월성을 가지고 있는 서양의 가치기준을 따라가려는 노력을 일방적으로 하여왔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내용이야 어떻던 세계에서 미국 과 일본 다음으로 큰 경제규모를 가지고 있고, 미국 인구의 여섯 배를 가진 대국이 된 중국이다. 중국은 그동안 2조 달러의 외환보유고와 5000억달러의 미국국채를 가지고 있는 미국 제일의 채권국가가 되었다. 이런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국인들은 자기의 자존적 가치기준을 가지고 지금까지 서양적 가치기준에 따라 주눅 들어 있던 현실을 보면서 불편한 심기를 나타내는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그 단적인 예가 최근 중국인민은행장의 SDR 기축통화론이고, 런던의 G20정상회의에서 이 회의의 모습을 놓고 G2회의라고 불릴 정도로 중국과 후진타오의 위상은 여타국들을 능가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중국의 ‘뿌가오싱’은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한국경제도 이미 경제규모 무역규모, IT 자동차 등 중요산업들의 발전상 등을 보면 세계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직 남북관계에서 오는 안보의 취약성이 남아 있고 개방된 경제구조 하에서 국제환경의 변화에 쉽게 흔들리는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한국경제는 20세기 후반기와 21세기 시작되는 시점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발전되어 가는 신흥국 중에 하나가 되었다. 그런 한국이 최근 북한은 말할 것 없고 중국의 이중적 잣대에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사실 최근의 북한의 미사일실험 반칙에 대하여 유엔 안보리에서 그 제재방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한미일이 함께 요구하는 북한에 대한 추가제재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사실상 북한정권의 유지를 위하여 정치적면에서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면에서 절대적인 지원을 하고 있는 나라다. 북한은 1961년 체결한 조.중(朝.中) 우호조약을 마지막 보루로 삼고 있다. 경제적으로 북한은 식량과 원유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최근 김정일 정권은 작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미국의 식량 원조를 거부한바 있다. 인민들이 굶어 죽고 있는데 북한정부가 미국의 식량 원조를 거절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중국에서 보상될 수 있다는 계산에서일 것이다. 만일 당장 중국이 안보와 경제에서 지원을 하여주지 않는다면 북한은 그 국가 기능이 상실될 수밖에 없다. 그런 중국이 북한의 미사일실험을 말은 만류한다고 하면서 이를 막지 않았고, 또 사후적으로도 이에 대한 상응한 제제(punishments)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남한정권에서 중국을 겨냥하여 미사일실험을 한다고 한다면 중국은 어떤 태도를 견지할 것인가? 그동안 6자회담의 의장국으로서 중국은 회담의제의 핵심인 북한의 비핵화를 관련국들과 협의하여 왔다. 그런 중국이 이제 핵무기 보유와 함께 이를 운반할 기술을 실험한 북한정권의 미사일 놀음을 단순한 말장난으로 북한정권이 주장하는 인공위성의 자주권을 내세워 그 처벌을 외면한다면 이것은 인류에 대한 죄를 짓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아무리 국제관계가 국익우선이라고 하지만 북한정권의 비핵화를위한 6자회담의 의장국으로서 중국이 취하고 있는 2중적 잣대에 한국은 불쾌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한국 내의 소위 진보그룹이라는 사람들의 행태이다. 그들은 전에도 그랬지만 이번 북한의 미사일실험을 선진된 기술수준의 보유로 보고, 우리가 가지지 못한 기술을 북한이 가진데 대하여 앞으로 한 민족으로서 기술공유를 꿈꾸면서 북한의 미사일 실험을 축하할 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한다. 전 세계가 북한의 몽니에 개탄과 함께 그것이 가져올 인류에 대한 재앙에 대하여 신경이 곤두서 있는데, 아직도 김정일의 ‘우리민족끼리’의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면서 북한 편향적인 이들 진보그룹들은 아예 북한으로 넘어가 살아야 한 인간들이다.
4. 넘볼 수 없는 경제력 우위 확보가 그 해답이다.
1961년 한국은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에 가입하였고 같은 해 한미간에 미사일협정을 체결한바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은 중량 500kg, 사거리 300km의 제한 속에 무기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은 당시 북한도 같은 제약 속에 무기개발이 이루어 질 것을 상정하여 이러한 협정에 가입하였지만, 북한은 1998년 대포동 1호 발사와 함께 이 모라토리움을 깨버렸고 이번의 실험으로 그 사거리를 2배 이상 늘렸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이 한미간의 미사일협정에 따른 개발제약을 계속 지키는 것은 한국의 안보를 위하여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연이은 세계의 군비증강과 연계되는 문제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인의 턱 앞에 들이대고 있는 북한의 칼날 놀음에 한국인은 그냥 앉아 있을 수는 없다.
몇일전 영국의 피낸셜 타임스의 기사대로 이번 북한의 미사일 실험을 빗대 ‘아이가 떼를 쓰면 내버려 둘 것인지 타일러야 할 것인지 부모로서 딜렘머가 아닐 수 없다.’고 하면서 이 신문이 그래도 타일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먼 남의 나라, 남의 일이니까 쉽게 할 소리이다. 그러나 북한이 노리는 남쪽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한가히 타이르고 앉아 있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우리 안보를 철저하게 지키는 전략과 대비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한 미국 일본 등 우방과의 협력을 제대로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근본 해결책은 한국경제의 상대적 힘을 한껏 끌어올리는 일이라고 평가한다. 그러기 위해서 정파끼리 싸움으로 한가한 시간을 보내거나, 국제경쟁력을 갉아먹는 불법 파괴행위 등이 한국경제에서 살아져야 한다. 북한체제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땅을 떠나 북한으로 보내야 한다. 그래서 모두 생산성을 올리고 경쟁력을 확보하는 경제활동을 하는 한국경제가 되어야 한다. 이제 무력에 의한 힘의 지배시대는 끝이 나간다. 무엇보다 경제력으로 승부를 보아야 한다. 제아무리 북한이 악랄하게 한국을 넘보려 할지라도 한국경제의 세계적 위상을 지금보다 훨씬 올려놓는다면 북한이 함부로 전쟁을 도발하거나 트집을 잡을 수 없게 된다. 설령 무모한 침공을 할지라도 우방과의 협력을 통하여 이를 물리칠 수 있음은 당연할 것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우방에 한국이 필요하고 한국의 위상이 그들에게도 꼭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 길은 경제력에서 찾아야 한다.
이제 미국의 팍스아메리카나 시대도 지나가고 있다. 세계의 다극체제 하에서 한국이 중요한 위상을 차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도 한국경제가 훨씬 결속력 있게 쭉 뻗어가야 한다. 그것이 북한의 미사일실험 등 몽니 앞에 한국이 의연하게 살아 이기는 길이 될 것이다.
2009년 4월 4일 토요일
그린벨트 훼손정책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어느 자리에선가 그린벨트를 해제할 것을 이야기한 것이 언론에 보도된바 있다. 그에 대한 화답인지는 모르겠지만 국토해양부장관이 지난 3월 31일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10년간 그린벨트에 아파트 24만 채를 건설 공급하겠다고 하였다 한다.
보도에 의하면 그는 서울 근교 그린벨트에 서민용 보금자리주택과 함께 민간중대형아파트가 들어서게 할 방침이고, 이것은 매년 2만 4천 채의 아파트가 공급되기 때문에 주택경기 회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또 ‘서울 근교에는 말만 그린벨트지 비닐하우스가 들어서 쓸모없는 땅으로 방치된 비닐벨트가 많다며 이들 지역은 적은 비용으로 다양한 주택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한다.
주무장관의 말이므로 이것이 정부정책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이것은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고 생각되어 그린벨트 훼손의 부당성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그린벨트 정책은 원천적으로 공익과 사익(私益)이 교차하기 때문에 정책의 결정도 어렵지만 그것을 유지시켜나가는 일이 더욱 어려운 정책이다. 따라서 어느 나라건 공익우선의 발전과정과 개인의 사익을 더 우선하는 민주화과정에 따라 그린벨트 정책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그린벨트정책도 시작된 것이 1971년부터라고 한다면 지난 38년 동안 역대 정권에 따라 그리고 사회 환경의 변화에 따라 정책의 유지와 변질이 반복되었다고 할 수 있다. 초기의 확고한 정책추진이 민주화과정에 따라 정책이 탄력적으로 유연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좋은 말로 표현해서 그렇지 사실은 먹이 감을 앞에 놓고 호시탐탐 노리는 들개들처럼 그린벨트의 해제는 이해당사자들의 끊임없는 욕구이고 이것이 민주화되면서 민초의 소리로 둔갑되어 확대되어가고 있다.
그만큼 그린벨트가 지켜지기 힘들기 때문에 영국 같은 나라에서는 이 지역을 골프장 등이 들어서게 해서 소유주의 사익이 어느 정도 지켜지면서 그린벨트를 유지시켜나간다고 한다. 한국처럼 국토를 개발전략 차원에서 관리하고자 하는 나라에서는 도시의 환경이나 합리적인 개발을 위하여 그린벨트는 필요한 평면적 개발욕구의 제어수단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요즈음처럼 환경오염이 중요한 문제로 등장하고 있고 더 나아가 그린성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발전의 중요한 분야가 된 녹지대의 확보는 새로운 정책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 정부의 그린벨트 훼손정책은 잘 못된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앞으로 3년 반 밖에 안 남은 이명박 정부가 이런 국가의 장기적 발전그림을 손쉽게 변경하고자 하는 것은 아주 단편적인 생각이고 이것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이 될 것이다. 지난 정부 특히 박정희 전두환 두 대통령 때에 그린벨트를 지키기 위한 정책노력은 철저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는 지금보다 정부가 하고자 하면 훨씬 손쉽게 그린벨트를 해제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 그런 정치적 욕구가 얼마나 많았겠지만 당시 대통령들은 그린벨트 훼손을 완전히 터부시하였다. 그래서 군(軍)이나 학교시설의 불가피한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린벨트에 손을 대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래서 해제절차도 아무리 작은 면적이라도 모두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의 재가를 받도록 하고 그것도 거의 안 되는 방향으로 검토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1980년대 중반 약 4년 동안 건설부(현 국토해양부)차관으로 재직한 경험이 있다. 당시 그린벨트정책의 주무 부서였던 관계로 이 안건이 작성되면 그것을 국무회의에 상정하고 설명해야 하는 책임이 장차관에게 있었다. 당시 국무회의에서는 이것을 가능하면 부결하기 위하여 많은 세세한 논의를 하게 되고, 아주 세세하고 시시콜콜한 질문들에 답을 해야 하는 책임을 건설부가 맡았다. 그래서 가능하면 건설부에서도 안건을 만들려하지 않았고 그것이 불가피하면 상황파악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해서 국무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 안건은 언제나 차관의 몫으로 될 정도로 까다로운 과정을 거쳤다. 그만큼 그린벨트 지키기를 철저히 하였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 그린벨트를 서민아파트 짓는다는 명목으로 또 이미 비닐벨트가 되었다는 구실로 이것을 풀려하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판단한다.
셋째 비닐벨트가 이미 되었으니 그린벨트로서의 기능이 떨어진다는 이유는 그 상황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지만 중요한 것은 왜 지금 비닐하우스가 꽉 들어차게 되었느냐하는 것이다. 그동안 그린벨트 내에 합법적인 방법으로 비닐하우스가 설치되었느냐 하면 모두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그것을 방치 또는 묵인하여 놓고 지금 와서 비닐벨트 운운하는 것은 아주 무책임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그런 불법 내지 탈법행위를 한 토지 주인이나 이해관계인은 그린벨트의 해제에 따른 직적간접의 수혜를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국민들의 법 안지키기 의식을 고취시키는 정부의 처사가 될 것임은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넷째 장관의 말에 대한 꼬리잡기가 되어 미안하지만 앞으로 그린벨트 해제에 따라 매년 2만채가 넘는 집을 짓게 되는 것이 건설경기부양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말은 하지 않아야 할 말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말은 결과적으로 그린벨트를 풀어 건설경기부양을 한다는 말인데 그것은 길가다 매 맞을 일이다.
결론적으로 그린벨트를 푸는 일이 절대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정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것을 하나의 정책으로 그린벨트를 풀어 주택지를 대량 공급하겠다는 논리는 그것을 하지 않고 견디면서 도시를 환경의 오염에서 지키고, 난개발에 따른 도시의 무질서한 평면개발을 제어하는 당초의 그린벨트정책 목표를 생각하여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당장의 건설경기 부양이라는 정책취지나 서민을 위한다는 논리는 얄팍한 정치논리에 불과하다고 판단한다. 그린벨트를 후손들에게 넘겨주는 앞서간 세대의 절제를 우리가 보여야 한다는 뜻에서도 그린벨트 훼손 정책은 폐기되어야 한다.
보도에 의하면 그는 서울 근교 그린벨트에 서민용 보금자리주택과 함께 민간중대형아파트가 들어서게 할 방침이고, 이것은 매년 2만 4천 채의 아파트가 공급되기 때문에 주택경기 회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또 ‘서울 근교에는 말만 그린벨트지 비닐하우스가 들어서 쓸모없는 땅으로 방치된 비닐벨트가 많다며 이들 지역은 적은 비용으로 다양한 주택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한다.
주무장관의 말이므로 이것이 정부정책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이것은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고 생각되어 그린벨트 훼손의 부당성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그린벨트 정책은 원천적으로 공익과 사익(私益)이 교차하기 때문에 정책의 결정도 어렵지만 그것을 유지시켜나가는 일이 더욱 어려운 정책이다. 따라서 어느 나라건 공익우선의 발전과정과 개인의 사익을 더 우선하는 민주화과정에 따라 그린벨트 정책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그린벨트정책도 시작된 것이 1971년부터라고 한다면 지난 38년 동안 역대 정권에 따라 그리고 사회 환경의 변화에 따라 정책의 유지와 변질이 반복되었다고 할 수 있다. 초기의 확고한 정책추진이 민주화과정에 따라 정책이 탄력적으로 유연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좋은 말로 표현해서 그렇지 사실은 먹이 감을 앞에 놓고 호시탐탐 노리는 들개들처럼 그린벨트의 해제는 이해당사자들의 끊임없는 욕구이고 이것이 민주화되면서 민초의 소리로 둔갑되어 확대되어가고 있다.
그만큼 그린벨트가 지켜지기 힘들기 때문에 영국 같은 나라에서는 이 지역을 골프장 등이 들어서게 해서 소유주의 사익이 어느 정도 지켜지면서 그린벨트를 유지시켜나간다고 한다. 한국처럼 국토를 개발전략 차원에서 관리하고자 하는 나라에서는 도시의 환경이나 합리적인 개발을 위하여 그린벨트는 필요한 평면적 개발욕구의 제어수단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요즈음처럼 환경오염이 중요한 문제로 등장하고 있고 더 나아가 그린성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발전의 중요한 분야가 된 녹지대의 확보는 새로운 정책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 정부의 그린벨트 훼손정책은 잘 못된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앞으로 3년 반 밖에 안 남은 이명박 정부가 이런 국가의 장기적 발전그림을 손쉽게 변경하고자 하는 것은 아주 단편적인 생각이고 이것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이 될 것이다. 지난 정부 특히 박정희 전두환 두 대통령 때에 그린벨트를 지키기 위한 정책노력은 철저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는 지금보다 정부가 하고자 하면 훨씬 손쉽게 그린벨트를 해제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 그런 정치적 욕구가 얼마나 많았겠지만 당시 대통령들은 그린벨트 훼손을 완전히 터부시하였다. 그래서 군(軍)이나 학교시설의 불가피한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린벨트에 손을 대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래서 해제절차도 아무리 작은 면적이라도 모두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의 재가를 받도록 하고 그것도 거의 안 되는 방향으로 검토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1980년대 중반 약 4년 동안 건설부(현 국토해양부)차관으로 재직한 경험이 있다. 당시 그린벨트정책의 주무 부서였던 관계로 이 안건이 작성되면 그것을 국무회의에 상정하고 설명해야 하는 책임이 장차관에게 있었다. 당시 국무회의에서는 이것을 가능하면 부결하기 위하여 많은 세세한 논의를 하게 되고, 아주 세세하고 시시콜콜한 질문들에 답을 해야 하는 책임을 건설부가 맡았다. 그래서 가능하면 건설부에서도 안건을 만들려하지 않았고 그것이 불가피하면 상황파악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해서 국무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 안건은 언제나 차관의 몫으로 될 정도로 까다로운 과정을 거쳤다. 그만큼 그린벨트 지키기를 철저히 하였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 그린벨트를 서민아파트 짓는다는 명목으로 또 이미 비닐벨트가 되었다는 구실로 이것을 풀려하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판단한다.
셋째 비닐벨트가 이미 되었으니 그린벨트로서의 기능이 떨어진다는 이유는 그 상황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지만 중요한 것은 왜 지금 비닐하우스가 꽉 들어차게 되었느냐하는 것이다. 그동안 그린벨트 내에 합법적인 방법으로 비닐하우스가 설치되었느냐 하면 모두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그것을 방치 또는 묵인하여 놓고 지금 와서 비닐벨트 운운하는 것은 아주 무책임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그런 불법 내지 탈법행위를 한 토지 주인이나 이해관계인은 그린벨트의 해제에 따른 직적간접의 수혜를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국민들의 법 안지키기 의식을 고취시키는 정부의 처사가 될 것임은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넷째 장관의 말에 대한 꼬리잡기가 되어 미안하지만 앞으로 그린벨트 해제에 따라 매년 2만채가 넘는 집을 짓게 되는 것이 건설경기부양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말은 하지 않아야 할 말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말은 결과적으로 그린벨트를 풀어 건설경기부양을 한다는 말인데 그것은 길가다 매 맞을 일이다.
결론적으로 그린벨트를 푸는 일이 절대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정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것을 하나의 정책으로 그린벨트를 풀어 주택지를 대량 공급하겠다는 논리는 그것을 하지 않고 견디면서 도시를 환경의 오염에서 지키고, 난개발에 따른 도시의 무질서한 평면개발을 제어하는 당초의 그린벨트정책 목표를 생각하여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당장의 건설경기 부양이라는 정책취지나 서민을 위한다는 논리는 얄팍한 정치논리에 불과하다고 판단한다. 그린벨트를 후손들에게 넘겨주는 앞서간 세대의 절제를 우리가 보여야 한다는 뜻에서도 그린벨트 훼손 정책은 폐기되어야 한다.
2009년 3월 31일 화요일
신뢰(Trust)가 바탕인 열린사회를 만들자
최근 국영방송인 KBS의 뉴스를 보면서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모 연예인과 관련된 성(性)과 연관된 뉴스가 마치 주간지 수준을 능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뉴스와 관련하여 우연히 처음 시작할 때 뉴스를 보았는데 기자가 쓰레기통에서 주었다는 소위 무슨 리스트인지 무엇인가를 무슨 큰 특종기사인 것처럼 매일 중요뉴스로 취급하기 시작한 것이 몇 주 째인지 모르겠다. 그것의 뉴스가치를 왈가왈부하자는 것이 아니라 도대체 온 집안 식구 들이 한자리에 앉아서 듣는 텔레비 뉴스에서 이런 낯 뜨거운 이야기를 아이들과 며느리들과 함께 계속 들어야 하는 가장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그런 인간들의 뉴스를 국민이 세금내서 만든 국영방송에서 앞장서는 것에 나는 분노한다.
반면 요즈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하여준 소식은 WBC에서 단합된 노력으로 2등을 한 한국야구선수단의 자랑스러운 활동이고, 지난 주말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하여준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 우승일 것이다. 지난 IMF 때 골프의 박세리가 한국인의 우울한 마음을 달래준 것처럼 이번에도 야구선수들이 그리고 김연아가 우리를 즐겁게 하고 한국인의 고달픈 삶에 의욕을 고취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회는 언제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 함께 있기 마련이지만 한국사회는 근대 발전사 가운데 1998년의 IMF를 시작으로 하여 10여 년 동안 어둡고 우울한 긴 시간의 터널을 지나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는 IMF와 대기성차관을 맺게 하였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확대해석하여 마치 한국경제가 IMF 식민통치를 받는 것처럼 이해시켜 한국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였다. 하루아침에 대문이 활짝 열린 한국경제는 밖으로부터의 충격을 완충시킬 마음의 자세도 경제제도도 갖추지 못하였다. 김대중정부의 아마추어적 전문성부족과 노무현정부의 사회주의적 정책접근은 한국경제를 긴 무기력의 터널을 지나가게 하였다. 연장선상에서 2008년 미국 발 세계적 경제위기는 한 번 더 한국경제를 강타하고 안 그래도 비실대는 한국경제의 몸체를 더욱 현기증 나게 만들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사회는 경제적 위기가 사회적 위기로 더 확대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사회적 위기를 학문적으로 분석할 능력은 없지만 일반론적으로 구성원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되는 힘의 총체적 집합이 점차 약화 쇠퇴되는 현상을 나름대로 사회적 위기라고 정의하고 그 현상을 문제화하고자 한다.
가장 손쉬운 설명이 소득격차의 확대를 들 수 있다. 한국의 소득분배는 역사적으로 모두가 어려운 가운데 비교적 형평한 분배상태를 유지하였고 지난 50여년의 집중적인 경제개발과정에서도 상대적으로 분배구조가 그리 악화되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한 한국경제의 분배구조가 지난 10여년 사이에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흔히 예로 드는 상위소득 20%와 하위 20%의 소득비율이 지난 1990년대 말에는 4배 정도이었던 것이 현재 7.6배로 지난 10여년 사이에 두 배로 악화되었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아졌음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금전만능의 풍조는 부(富)가 윤리 도덕에 앞서는 가치로 되어 사회적 규범들이 붕괴되고 돈 앞에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 앞에 법과 질서를 전제로 한 한국의 민주주의는 형식적인 통치방식으로 전락되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회의 대립과 반목은 확대되고 있다. 물론 현대사회의 다양성의 한 현상으로도 분석할 수 있겠지만 요즘 한국사회는 진보니 보수니, 지역, 씨족, 학벌 등등으로 분열되고 특히 후진적인 정치상황 속에서 이러한 대립과 반목은 사그라지기보다는 오히려 확대되는 모습이라고 할 것이다. 사회의 가장 작은 집단인 가정에서 가족이 해체되고 그 과정에서 출산은 줄고 자살은 빨리 늘어가고 있다. 한국사회의 위기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의 위기 촉발은 1차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에서 찾아야 한다. 실업이 늘고 내일에 대한 희망을 찾기 어려운 경제상황 하에서 사회는 더욱 위기의식이 확대될 것이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말대로 분배 없이 높은 성장을 해서 무엇 하겠느냐 하는 말이 나오게 되었고,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사회를 있는 자 없는 자의 문제로 이분화 하면서 없는 자를 위하여 있는 자의 것을 양보 받아야 한다는 사회주의적 발상이 뒤늦게 한국사회에 나타났다. 이러한 지나간 시대의 사고가 한국사회에서는 진보그룹으로 불린다. 반면 시장경제를 중시하고 경제의 세계화를 주장하는 것을 한국사회에서는 거꾸로 보수그룹으로 불린다. 이렇게 진보와 보수는 한국사회 구성원간에 대립과 반목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의 진보그룹들은 현대사회의 최고의 가치가 경제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무력에 의한 힘의 가치체계는 이제 경제 앞에 그 힘을 잃었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의 경제력은 비 미국의 그것에 버금 갈 정도로 확대되었고 아무리 미국의 재정적자가 커져도 달러가치는 당장 독야청청하다. 물론 한계가 있는 것이고 무한대로 갈 일은 아니지만 당장은 미국의 경제력 앞에 큰소리치기에는 다른 개별국가의 경제력은 제한적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또한 현재의 세계경제 흐름은 소위 글로벌경제를 배제할 수 없다. 좋던 싫던 세계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싸워 이겨야 번영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세계의 흐름 속에서 소위 ‘우리’ 나 ‘우리끼리’는 맞지 않는 가치이다. 오히려 모두가 함께 경쟁하고 함께 아우르는 열린사회가 현대사회라고 할 것이다. 우리끼리를 강조하면 할수록 현대사회에서 고립만을 자초할 뿐이다. 북한정권이 아무리 우리끼리를 강조해도 남는 것은 세계사회에서 낙후만 가져올 뿐이다. 결국 열린사회에서 살아 이기는 길을 찾는 것이 오늘의 우리의 삶이고 나라의 경영이고 사회의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우리끼리가 아닌 열린사회에서 사회구성원의 힘이 최대한 발휘되고 그를 통한 사회전체의 힘이 극대화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 길을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신뢰(TRUST)에서 찾았다. 현재 한국사회의 위기는 한국사람 사이에서 대립과 반목이 아닌 상호간의 신뢰의 회복에서 출발하여 한국의 야구선수들이 보여준 단합의 힘과 김연아가 보여준 최선을 다한 노력으로 세계 최고가 될 때 극복되고 비상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반면 요즈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하여준 소식은 WBC에서 단합된 노력으로 2등을 한 한국야구선수단의 자랑스러운 활동이고, 지난 주말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하여준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 우승일 것이다. 지난 IMF 때 골프의 박세리가 한국인의 우울한 마음을 달래준 것처럼 이번에도 야구선수들이 그리고 김연아가 우리를 즐겁게 하고 한국인의 고달픈 삶에 의욕을 고취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회는 언제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 함께 있기 마련이지만 한국사회는 근대 발전사 가운데 1998년의 IMF를 시작으로 하여 10여 년 동안 어둡고 우울한 긴 시간의 터널을 지나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는 IMF와 대기성차관을 맺게 하였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확대해석하여 마치 한국경제가 IMF 식민통치를 받는 것처럼 이해시켜 한국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였다. 하루아침에 대문이 활짝 열린 한국경제는 밖으로부터의 충격을 완충시킬 마음의 자세도 경제제도도 갖추지 못하였다. 김대중정부의 아마추어적 전문성부족과 노무현정부의 사회주의적 정책접근은 한국경제를 긴 무기력의 터널을 지나가게 하였다. 연장선상에서 2008년 미국 발 세계적 경제위기는 한 번 더 한국경제를 강타하고 안 그래도 비실대는 한국경제의 몸체를 더욱 현기증 나게 만들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사회는 경제적 위기가 사회적 위기로 더 확대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사회적 위기를 학문적으로 분석할 능력은 없지만 일반론적으로 구성원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되는 힘의 총체적 집합이 점차 약화 쇠퇴되는 현상을 나름대로 사회적 위기라고 정의하고 그 현상을 문제화하고자 한다.
가장 손쉬운 설명이 소득격차의 확대를 들 수 있다. 한국의 소득분배는 역사적으로 모두가 어려운 가운데 비교적 형평한 분배상태를 유지하였고 지난 50여년의 집중적인 경제개발과정에서도 상대적으로 분배구조가 그리 악화되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한 한국경제의 분배구조가 지난 10여년 사이에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흔히 예로 드는 상위소득 20%와 하위 20%의 소득비율이 지난 1990년대 말에는 4배 정도이었던 것이 현재 7.6배로 지난 10여년 사이에 두 배로 악화되었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아졌음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금전만능의 풍조는 부(富)가 윤리 도덕에 앞서는 가치로 되어 사회적 규범들이 붕괴되고 돈 앞에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 앞에 법과 질서를 전제로 한 한국의 민주주의는 형식적인 통치방식으로 전락되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회의 대립과 반목은 확대되고 있다. 물론 현대사회의 다양성의 한 현상으로도 분석할 수 있겠지만 요즘 한국사회는 진보니 보수니, 지역, 씨족, 학벌 등등으로 분열되고 특히 후진적인 정치상황 속에서 이러한 대립과 반목은 사그라지기보다는 오히려 확대되는 모습이라고 할 것이다. 사회의 가장 작은 집단인 가정에서 가족이 해체되고 그 과정에서 출산은 줄고 자살은 빨리 늘어가고 있다. 한국사회의 위기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의 위기 촉발은 1차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에서 찾아야 한다. 실업이 늘고 내일에 대한 희망을 찾기 어려운 경제상황 하에서 사회는 더욱 위기의식이 확대될 것이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말대로 분배 없이 높은 성장을 해서 무엇 하겠느냐 하는 말이 나오게 되었고,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사회를 있는 자 없는 자의 문제로 이분화 하면서 없는 자를 위하여 있는 자의 것을 양보 받아야 한다는 사회주의적 발상이 뒤늦게 한국사회에 나타났다. 이러한 지나간 시대의 사고가 한국사회에서는 진보그룹으로 불린다. 반면 시장경제를 중시하고 경제의 세계화를 주장하는 것을 한국사회에서는 거꾸로 보수그룹으로 불린다. 이렇게 진보와 보수는 한국사회 구성원간에 대립과 반목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의 진보그룹들은 현대사회의 최고의 가치가 경제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무력에 의한 힘의 가치체계는 이제 경제 앞에 그 힘을 잃었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의 경제력은 비 미국의 그것에 버금 갈 정도로 확대되었고 아무리 미국의 재정적자가 커져도 달러가치는 당장 독야청청하다. 물론 한계가 있는 것이고 무한대로 갈 일은 아니지만 당장은 미국의 경제력 앞에 큰소리치기에는 다른 개별국가의 경제력은 제한적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또한 현재의 세계경제 흐름은 소위 글로벌경제를 배제할 수 없다. 좋던 싫던 세계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싸워 이겨야 번영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세계의 흐름 속에서 소위 ‘우리’ 나 ‘우리끼리’는 맞지 않는 가치이다. 오히려 모두가 함께 경쟁하고 함께 아우르는 열린사회가 현대사회라고 할 것이다. 우리끼리를 강조하면 할수록 현대사회에서 고립만을 자초할 뿐이다. 북한정권이 아무리 우리끼리를 강조해도 남는 것은 세계사회에서 낙후만 가져올 뿐이다. 결국 열린사회에서 살아 이기는 길을 찾는 것이 오늘의 우리의 삶이고 나라의 경영이고 사회의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우리끼리가 아닌 열린사회에서 사회구성원의 힘이 최대한 발휘되고 그를 통한 사회전체의 힘이 극대화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 길을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신뢰(TRUST)에서 찾았다. 현재 한국사회의 위기는 한국사람 사이에서 대립과 반목이 아닌 상호간의 신뢰의 회복에서 출발하여 한국의 야구선수들이 보여준 단합의 힘과 김연아가 보여준 최선을 다한 노력으로 세계 최고가 될 때 극복되고 비상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2009년 3월 28일 토요일
새로운 기축통화(basic currency)논의와 한국의 대응
현 경제위기 타개대책으로 미국이 펴고 있는 통화의 대량살포가 달러가치의 하락을 일으키고 수퍼 인플레이션과 함께 종국에는 달러가치가 붕괴될 것이라는 것이 부정적인 측면에서 본 미국통화의 전망이다. 그러나 리먼사태 이후 지난 6개월 동안 이러한 수요공급 이론에 입각한 경제원론적인 전망은 달러의 강세와 함께 분석적인 설득력을 잃었다. 최근 오히려 미국은 한걸음 더 나아가 소위 ‘헬리콥터 머니’라고 별명이 붙을 정도로 돈을 마구 뿌려대고 있다.
그러자 세계는 이거 이러다가 엄청난 인플레이션과 함께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가치가 붕괴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확대되어 가고 있다. 중국인민은행장 저우샤오찬(周小川)은 3월 23일 ‘달러기축통화 폐기론’을 제안하였다. 이러한 중국의 제의에 대하여 미국은 당연히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미국을 제외한 많은 나라와 기구들로부터 호응을 받고 있다. 그동안 중국과 함께 달러의 기축통화제도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였던 러시아는 말할 것도 없고 브라질 등 신흥국들의 동조가 일어나고 있다.
더 의미 있는 반응은 IMF와 유엔에서 나왔다. IMF의 도미니크 스트로스칸(Strauss-kahn) 총재는 3월 25일 파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달러화를 대체할 준비통화에 대한 논의는 절대적으로 정당하다(absolutely legitimate)’하며 ‘그런 논의가 앞으로 수개월 뒤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동시에 유엔의 금융 . 경제개혁자문단은 유엔총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미국달러화를 대체할 새로운 기축통화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세계지도자들이 합의할 것을 촉구하였다고 언론은 전하고 있다.
기축통화(basic currency)는 금본위제 하에서는 금과 교환성이 보장되고 타국통화에 대한 평가지표가 될 뿐 아니라 대외준비자산으로 보유할 수 있는 통화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금본위제도가 실시 되지 않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금과의 태환성은 사라지고 다만 대외준비자산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기축통화는 영국의 파운드화가 중심이 되었으나 1918년 이후 영국의 파운드와 함께 미국의 달러가 기축통화로서 기능을 하여 왔었다. 그러나 제2차대전을 지나면서 영국의 파운드화는 금 태환기능이 정지하게 되었고, 전후 복구과정에서 파운드는 종래 미국달러에 4대 1의 비율에서 1949년 2.8대 1로 평가절하 되면서 파운드화의 기축통화기능이 상실되었다. 1950년 미국의 달러는 세계통화체제에서 사실상 유일한 기축통화로 자리 잡게 되고 이렇게 브레튼우드 체제하에서 ‘금환본위제(gold-dollar standard)'가 탄생되었다.
이러한 미국 달러의 기축통화 기능이 60여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시비를 걸고 있는데 대하여 미국은 자존심이 상할 것이다. 그것도 세계경제에서 미국의 위상이 현저하게 향상된 21세기에 들어와 미국경제는 극단적으로 미국을 제외한 세계경제를 다 합쳐도 미국과 맞먹는 상황이 되었는데 어느 날 미국의 자존심인 금융시장에서 탈이 나기 시작하여 실물경제에 이르기까지 걷잡을 수 없게 번지고 있고, 이는 세계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어 더는 달러가 피난처로서의 기능을 할 형편이 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기되었다. 거기다가 2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국채를 가지고 있는 중국이 딴죽을 걸고 나오자 미국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대목이 되지않을 수 없을 것이다.
거기다가 오는 4월 2일 런던에서 개최예정인 G-20정상회담에서 어떤 형태로든 달러의 기축통화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기축통화 논의와 관련하여 한국의 대응전략은 어떻게 하는 것이 정치 경제적으로 국익이 될까하는 것이 된다. 이번 G-20회의의 뒤에서는 불란서 독일 영국 등 EU국가들과 미국과의 헤게모니쟁탈이 예상된다. 거기에 중국이 끼어있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일본은 미국의 입장에서 일탈할 가능성이 적다. 한국은 의장국의 일환으로 기능을 하게 되어 있어서 다른 때보다 하기에 따라서는 표 나는 행동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이명박대통령의 국제관계에 대한 심오한 지도력에 아직 신뢰가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최근의 뜬금없는 아시아 코커스를 들고 나온 일이라던가, 뉴욕타임스인가에 한국의 위기극복사례을 따르라는 자랑을 하는 기고를 하였다는 말을 듣고 한국대통령에 대하여 나는 쓸데없이 미국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허장성세라고 표현하면 대통령에 대한 실례(失禮)가 되겠지만 좀더 신중하고 자중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런던회의에서 우리가 공연히 기축통화 논의에 끼어들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다.
오히려 차제에 2004년 한 중 일 3국이 합의한 공동통화(common currency)연구를 활성화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일본과 중국과 통화 스왑을 한 상황이니 이를 더욱 발전시켜 공동통화를 실현하는 구체적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물론 중국의 정부 간섭적인 통화정책이 당장의 어려움이 되겠지만 이를 극복하는 방안을 연구하여 아시아 전역보다는 한 중 일 3국이 우선 공동통화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EU의 발전과정을 타산지석으로 하여 추진한다면 여러 상황이 무르익을 수 있다고 평가한다. 한국정부의 대응전략을 기대한다.
그러자 세계는 이거 이러다가 엄청난 인플레이션과 함께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가치가 붕괴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확대되어 가고 있다. 중국인민은행장 저우샤오찬(周小川)은 3월 23일 ‘달러기축통화 폐기론’을 제안하였다. 이러한 중국의 제의에 대하여 미국은 당연히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미국을 제외한 많은 나라와 기구들로부터 호응을 받고 있다. 그동안 중국과 함께 달러의 기축통화제도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였던 러시아는 말할 것도 없고 브라질 등 신흥국들의 동조가 일어나고 있다.
더 의미 있는 반응은 IMF와 유엔에서 나왔다. IMF의 도미니크 스트로스칸(Strauss-kahn) 총재는 3월 25일 파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달러화를 대체할 준비통화에 대한 논의는 절대적으로 정당하다(absolutely legitimate)’하며 ‘그런 논의가 앞으로 수개월 뒤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동시에 유엔의 금융 . 경제개혁자문단은 유엔총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미국달러화를 대체할 새로운 기축통화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세계지도자들이 합의할 것을 촉구하였다고 언론은 전하고 있다.
기축통화(basic currency)는 금본위제 하에서는 금과 교환성이 보장되고 타국통화에 대한 평가지표가 될 뿐 아니라 대외준비자산으로 보유할 수 있는 통화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금본위제도가 실시 되지 않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금과의 태환성은 사라지고 다만 대외준비자산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기축통화는 영국의 파운드화가 중심이 되었으나 1918년 이후 영국의 파운드와 함께 미국의 달러가 기축통화로서 기능을 하여 왔었다. 그러나 제2차대전을 지나면서 영국의 파운드화는 금 태환기능이 정지하게 되었고, 전후 복구과정에서 파운드는 종래 미국달러에 4대 1의 비율에서 1949년 2.8대 1로 평가절하 되면서 파운드화의 기축통화기능이 상실되었다. 1950년 미국의 달러는 세계통화체제에서 사실상 유일한 기축통화로 자리 잡게 되고 이렇게 브레튼우드 체제하에서 ‘금환본위제(gold-dollar standard)'가 탄생되었다.
이러한 미국 달러의 기축통화 기능이 60여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시비를 걸고 있는데 대하여 미국은 자존심이 상할 것이다. 그것도 세계경제에서 미국의 위상이 현저하게 향상된 21세기에 들어와 미국경제는 극단적으로 미국을 제외한 세계경제를 다 합쳐도 미국과 맞먹는 상황이 되었는데 어느 날 미국의 자존심인 금융시장에서 탈이 나기 시작하여 실물경제에 이르기까지 걷잡을 수 없게 번지고 있고, 이는 세계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어 더는 달러가 피난처로서의 기능을 할 형편이 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기되었다. 거기다가 2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국채를 가지고 있는 중국이 딴죽을 걸고 나오자 미국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대목이 되지않을 수 없을 것이다.
거기다가 오는 4월 2일 런던에서 개최예정인 G-20정상회담에서 어떤 형태로든 달러의 기축통화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기축통화 논의와 관련하여 한국의 대응전략은 어떻게 하는 것이 정치 경제적으로 국익이 될까하는 것이 된다. 이번 G-20회의의 뒤에서는 불란서 독일 영국 등 EU국가들과 미국과의 헤게모니쟁탈이 예상된다. 거기에 중국이 끼어있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일본은 미국의 입장에서 일탈할 가능성이 적다. 한국은 의장국의 일환으로 기능을 하게 되어 있어서 다른 때보다 하기에 따라서는 표 나는 행동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이명박대통령의 국제관계에 대한 심오한 지도력에 아직 신뢰가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최근의 뜬금없는 아시아 코커스를 들고 나온 일이라던가, 뉴욕타임스인가에 한국의 위기극복사례을 따르라는 자랑을 하는 기고를 하였다는 말을 듣고 한국대통령에 대하여 나는 쓸데없이 미국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허장성세라고 표현하면 대통령에 대한 실례(失禮)가 되겠지만 좀더 신중하고 자중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런던회의에서 우리가 공연히 기축통화 논의에 끼어들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다.
오히려 차제에 2004년 한 중 일 3국이 합의한 공동통화(common currency)연구를 활성화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일본과 중국과 통화 스왑을 한 상황이니 이를 더욱 발전시켜 공동통화를 실현하는 구체적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물론 중국의 정부 간섭적인 통화정책이 당장의 어려움이 되겠지만 이를 극복하는 방안을 연구하여 아시아 전역보다는 한 중 일 3국이 우선 공동통화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EU의 발전과정을 타산지석으로 하여 추진한다면 여러 상황이 무르익을 수 있다고 평가한다. 한국정부의 대응전략을 기대한다.
피드 구독하기:
글 (At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