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14일 화요일

금욕과 절제의 칼뱅주의와 아시아적 가치

영국의 BBC는 칼뱅 탄생 500주년을 맞아 네델란드를 중심으로 칼뱅주의를 바탕으로 한 정치윤리와 생활방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보도를 하였다고 국내언론(한국경제)에 기사화 되었다. 금욕과 절제를 중심으로 한 청교도주의가 미국의 이민개척사에서 개척자의 종교이었고 생활철학이었다. 그 칼뱅이즘은 미국 시장경제 발전의 이념이었고, 그것이 오늘날 미국자본주의를 꽃피게 한 원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문명사회가 복잡화되면서 미국뿐만 아니라 오늘을 사는 지구 어디에서도 이러한 청교도적 생활자세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네델란드 총리 안페터 발케넨데는 본인이 칼뱅교도임을 공언하고, 엄격한 도덕성과 절도 있는 규범을 중시하는 정치를 펴고 있다고 한다. 그는 현재의 세계적 경제위기를 ‘돈에 대한 집착과 탐욕, 사회전체를 생각하지 않는 이기주의가 초래한 도덕성 위기’에서 찾고 있다. 사회의 강력한 도덕적 받침대가 바로 칼뱅이즘이라고 평가하고 칼뱅주의의 부활을 그는 주장하고 있다 한다.

작년 말 미국 발 세계경제위기는 금융가의 탐욕과 방탕한 경영에서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바탕(leverage)이 없는 신용, 무한대에 가까운 바탕이 없는 상품판매 그리고 종착역을 뻔히 알면서도 나한테만은 그 종착역이 되지 않을 것을 막연하게 바라면서 인간은 탐욕의 바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미국 리먼사태 당시의 시장과 인간의 본성과의 관계라고 분석할 수 있다. 그런 시장상황을 방치한 정책당국이나 감독기구가 일차적으로 비난을 받아야 하겠지만 아마 그들도 불운의 종착역이 그들 대에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살아왔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것이 터진 것이 세계적 경제위기이고 모든 지구인들은 도매금으로 볼모가 되어 있다.

이것을 해결하겠다고 선진국들은 G-10 정상회의를 만들고 각국이 재정을 풀고, 돈을 풀자고 합의하고 있다. 그만그만한 조치들이 발전된 나라들 사이에서 취해졌고, 미국을 위시하여 정책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는 나라들이 힘겹게 시장에 재정지원과 함께 돈을 한량없이 풀어대고 있다. 10개월이 지난 2009년 7월 중순 그러나 세계경제가 신통한 반응을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 벌써 각국정부의 재정파탄이나 강력 인플레이션 걱정이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타임지가 지난 3월 선정한 세계를 바꾸고 있는 10대 아이디어에 뽑힌 신칼뱅주의가 네델란드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여러 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현대문명의 마지막 이념이라 할 수 있는 시장경제나 의회민주주의는 자체가 가지고 있는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또 반면 여러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탐욕성이나 무절제가 시장에서 그리고 의회민주주의에서 여러 문제를 잉태하게 마련이다. 그 근원처방을 칼뱅에서 찾아보자는 것은 시의성이나 논리성으로 볼 때 매우 타당한 접근이라고 평가된다.

1990년대 말 아시아의 금융위기 시에 미국은 IMF 등을 동원하여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국가 들에게 가혹할 만큼 자유시장논리에 입각한 개방과 정부 시장관여정책 축소를 강요하였다. 당시 동원된 미국의 경제학자들이나 투자회사 운영자들은 입만 열면 시장경제논리로 정부는 시장에서 철수하고 정부의 보호를 철폐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때 이런 서구적 시장논리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사람이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수상이었고 마아티르 말레지아 총리였다. 소위 ‘아시아적 가치(Asia's value)’가 있음을 주장한 그들의 논리는 물론 서구의 힘 앞에 큰 반응을 받지 못하였다.

‘아시아적 가치’는 여러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고, 그것이 아시아의 발전에 큰 기여가 있었음을 증명할 수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일본이나 한국의 빠른 발전을 동양의 유교문화에서 찾은 연구도 있다. 역사를 보더라도 아시아는 서구사회와 차별되는 사회윤리 도덕이 존재하여 온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효(孝)를 바탕으로 한 가부장적 문화나, 충(忠)을 바탕으로 한 헌신의 문화가 존재한다. 연장자에 대한 예의나 조직을 위한 자기희생, 근면 절제 등의 아이사적 독특한 문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아시아적 가치가 신칼뱅이즘과 상통한다고 판단한다.

아시아적 가치는 당초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퇴박을 놓았던 바로 그 미국의 경제학자들이나 펀드 매네이저들이 지금 앞장서 정부보호와 시장 간여를 강조하고 있는 아이러니 앞에 칼뱅주의의 부활 시도는 정말 시의적절하고 옳은 방향이라고 평가한다.

한국사회에 표출된 후기산업사회의 문제들이나 자본주의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둘러보면서 그리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한국정치권의 행태를 보면서 다시 한국사회에 아시아적 가치가 강조되고 생활화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것이 이름을 어떻게 붙이던 ‘금욕과 절제’로 대표되는 아시아적 가치로 부활되어 나 개인의 이익과 함께 우리가 속해 있는 모든 공동체의 이익이 함께 추구되는 윤리와 도덕이 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한국에도 네델란드의 안페터 총리 같은 지도자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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