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30일 수요일

경제운영과 넛지(Nudge)

최근 모일간지에서 Robert H Thaler(미 시카고대학 경영연구소 교수)와의 인터뷰기사를 실으면서 최근 유행하는 그의 넛지(옆구리를 슬쩍 찔러 원하는 방향의 행동을 유도함)에 대한 내용을 상세하게 소개한바 있다.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로 공인되는 탈러의 넛지정책은 요즘 유행하는 훌루처럼 세계지도자들의 관심사라 한다. 우리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하여 오바마 미국대통령, 호주수상, 차기집권이 예상되는 영국의 보수당수 등이 모두 넛지 팬이란다. 중도를 내세운 한국의 대통령이야 우선 좌우를 아우른다는 이 행동경제학에 마음이 끌릴 것이다.

탈(脫)이념사회에서 새삼 좌와 우를 갈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시대에 뒤진 한국적 현실이지만, 중도를 표방하면서 좌와 우의 이념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이명박대통령으로서는 탈러교수의 넛지가 자기정당화의 훌륭한 지주라고 생각하고 싶을 것이다. 남자화장실의 파리 한 마리 그림이 네델란드의 청소비용을 80% 줄였다는 이 넛지이론이 얼마나 근사하고 매력적인가? 등소평의 ‘검은고양이 흰고양이 논리’가 실용(實用)의 대표논리처럼 들리는 것처럼, 시장경제운영에서 넛지가 얼마나 근사하게 들리겠는가? 슬쩍 옆구리만 치면 시장은 거기에 물 흐르듯 반응하는 경제운영은 아마 현대경제운영자의 꿈일 것이다.

그러나 경제운영에서 이런 근사한 정책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현실적일까? 성숙된 경제의 복잡성(complexity) 속에서 이런 넛지가 얼마나 필요한 만큼 필요한 제때에 마련될 수 있느냐가 문제일 것이다. 오바마가 찾고 있는 그 복잡한 의료시스템의 넛지정책은 무엇인가? 금융시장의 그 복잡성 속에서 파생상품(derivatives)을 정돈하고 해결할 수 있는 넛지는 무엇인가? 그래서 그 해답이 이거다 하고 제때에 나올 수 있을까 나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 해답으로 적절한 통제정책을 찾고 세계화를 다운사이징하자고? 아 이런 일들이 얼마나 현실성과 정합될까? 어느 정도 세계화를 주리면서 내부통제를 좀더 효울적으로 확대하자는 제의는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기득권자(First comer)의 논리가 아닐까? 후참자인 개발도상국들은 피해는 함께 보고 이에 대한 대책은 각자가 알아서 하라는 논리처럼 들리게 될 것이다. 탈러교수의 저서처럼 승자의 저주(curse)처럼 들리지 않을까?

행동경제학이 태동하기 전이라고 생각하지만 복잡계경제학(complexity economy)이 세인의 관심을 끈 적이 있고 아직도 여전한 세계경제이슈의 중앙에 이 이론이 있다. 그 일환으로 시작된 온실가스배출을 주리자는 교도의정서에 미국은 가입을 보류하고 버텼다. 지금 행동경제학에서는 세계화를 다운사이징하자고 한다. 모두가 선진국의 입장에서 아니 오늘의 세계경제위기를 만들어낸 미국의 입장에서 이제 내 코가 석자이니 각자가 알아서 하자고 나오는 뻔뻔함이 그 뒤에 있지 않다고 반박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경제이론이 발전하는 과정을 너무 현실에 대입하는 것은 그것 자체가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편의적으로 이론을 가지고 혹세무민하려는 의도도 우리가 경계해야 힐 일이라고 판단한다. 1970년데 중반에 칠레경제가 전근대적인 운영을 하다가 빈사직전에 있었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 칠레정부는 개방과 자율화만이 살길이라고 소위 시카고학파라는 밑튼 후리드만의 제자들을 불러들여 문제를 해결하였다. IMF나 미국의 신자유주의를 등에 업고 후발국가 들의 경제운영을 퇴박놓고 세계화만이 살길이라고 외쳐대던 그 훌륭한 경제학자들은 왜 지금 입을 다물고 있나? 후리드만은 지하에서 무엇이라 할까?

넛지의 이론은 경제이론이지 그것이 현실 경제운영에 쉽게 대입되기는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특히 이런 이론을 가지고 선진국들이 자기정당화나 후참국들을 이끌어가고자 한다면 그것 자체가 넛지가 반대로 가게 된다는 점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후기] 나는 지금 카자크스탄의 수도 아스타나에 와 있다. 이 나라가 만들고자 하는 5개년계획을 자문하기위해서 이곳 정부와 함께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이론에 더욱 관심이 가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