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30일 화요일

MB의 중도강화론과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

1. 이데올로기 시대의 종말

구 소련이 멸망한 이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 갈등은 사실상 결말이 났다. 2차대전 이후 확대되어 왔던 좌와 우의 이념갈등은 본령의 한축인 구 소련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면서 끝이 났다. 공산주의는 사라지고 자본주의가 승리하게 된 결과가 되었다. Prancis Fukuyama는 1992년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 이라는 저서를 통하여 인류의 역사 진화는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질서(capital liberal democracy)’로 그 결말이 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인류의 이데올로기 진화의 종점’이고 ‘인류 최후의 정부형태’라고 그는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후쿠야마의 자유민주주의의 승리 논리는 그 4년 전인 1988년 발표된 Paul Kennedy의 '강대국의 흥망(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으로 발생하게 된 미국을 비롯한 서구사회의 세계지배에 대한 비관주의를 잠재우는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폴 케네디는 16세기 이후 긴 역사적 관점에서 세계를 지배하는 국가의 흥망성쇠를 순환의 논리로 관찰하였다. 한 국가가 경제발전으로 우월성을 통하여 세계를 지배하지만, 그 국가는 우월한 경제적 지위를 지키기 위하여 군비를 증강하고 결국 지나친 군비증가가 종국에는 경제적 우월성을 상실하게 만든다고 분석한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이 그리고 서구제국이 경제적 우월성을 만들어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지만 결국 그 경제적 우월성을 지키기 위한 지나친 군비증강으로 미국의 세계지배는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 폴 케네디의 논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장래에 대한 비관논리가 지배하고 있을 때 소련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은 미국을 비롯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공산주의의 망령에서 세계가 벗어나 자유시장경제질서를 토대로 한 자본주의가 인류가 추구할 가치임을 분명하게 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가 모든 면에서 공산주의를 능가하고 무결점의 이념으로 승리하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의 기본 전제인 시장의 경쟁체제는 언제나 경쟁의 그늘과 낙오자를 생산하게 마련이고 이곳 또한 인류가 바로잡아야할 영원한 대상이고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질서가 인류 최후의 이념과 정부형태로 결말이 난 것은 자본주의의 승리라기보다는 공산주의가 갖는 체제적 결함 때문에 자멸한 결과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좌와 우로 표현되는 이념갈등은 후쿠야마의 주장대로 역사에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공산주의체제가 사실상 남아있는 곳은 지구의 동쪽 끝 북한 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러시아는 더 이상 공산주의 종주국이 아니고 정권유지에 급급한 한낱 개발도상국으로 전락하였고, 중국은 형식적인 공산주의 정치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시장경제를 도입한 신흥국가로 변화되었다. 이들 두 나라는 더 이상 공산주의 이념이 지배하는 사회로 분류될 수 없게 변화되었다. 쿠바나 일부 중미국가들도 폐쇄의 도구로 활용되었던 공산주의 이념이 국가가 개방되면서 더 이상 공산주의 이념을 추구할 형편이 되지 못하고 있다. 결론은 공산주의 이념이 이제 지구상에서 사라진 것이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남은 것은 자유시장경제질서이고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뿐이다. 이것이 현대국가의 정체성(identity)이다.

2. 현대국가의 운영

이러한 현대국가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국가운영의 지향점은 번영(prosperity)이라고 할 수 있다. 번영은 경제적 개념에 더 가깝지만 정의하여 본다면 부(富)와 행복이 함께하는 조건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번영의 개념 속에는 공동체 보다는 개인에 더 가깝게 접근하고자 한다. 따라서 영토확장이나 군비증강과 같은 적극적 의미의 국가체제 운영 보다는 소극적이지만 개인의 부의 축적과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우선하는 가치로 삼는 국가운영이라고 할 수 있다. 번영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영토확장을 위한 전쟁이나 공동체의 통합된 이념추구를 위한 투쟁적 행동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폴 케네디나 프란시스 후쿠야마나 표현의 차이가 있지만 국가나 사회의 우열(優劣)의 조건은 과학기술이나 경제의 우월성에 달려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경제개념으로 표현한다면 시장경제의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다. 경쟁력을 토대로 경제적 부가 축적되고 그 부를 토대로 사회가 발전하고 개인의 행복의 1차적 조건이 충족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시장에서의 경쟁은 언제나 그늘을 만들어낸다. 그 그늘을 살펴야 하고 그늘에서 유래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일은 현대국가 경영에서 영원이 계속되는 과제이고 피할 수 없다. 이제 지구상에는 사실상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질서 만 남아있는 현실 속에서 경쟁의 그늘과 관련된 문제를 풀기위한 방법으로서의 정책수요에는 국가간에 차이가 있을 수 없고 이것은 국가의 1차적 책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다시 좌니 우니 하는 이념적 차이를 찾는 것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접근이다. 국가가 존재하고 그를 대행하는 정부가 있다면 그 정부가 해야 할 제일 큰 임무중의 하나는 시장의 그늘을 보살피는 일이 되는 것은 당연하고 그것이 정부가 해야 할 책무가 된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최근 좌파 노동자당을 토대로 집권한 브라질의 룰라대통령은 좌파의 논리에서 벗어나 시장경제의 활성화로 국부를 증가시켜 그것을 빈곤층 지원에 활용하여 중산층으로 발전시켰다고 평가받고 있다 한다. 좌파와 우파를 아우르는 정책을 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총리도 노동당을 토대로 집권하였지만 집권하자 좌파적 정책을 버리고 보수당 정책을 추진하여 성공을 거두었고 현재 영국의 보수당 당수인 데이비드 캐머런은 반대로 사회적 약자보호와 환경 복지의 중시 등 좌파적 가치를 접목시킨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한다. 이제 국가운영에서 좌파와 우파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3. MB의 중도강화론

대한민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얼마 전 중도강화론을 들고 나왔다. 좌와 우에 편향되기 보다는 실용적으로 시의에 맞는 선택을 해 가는 것을 그의 국가운영의 기본으로 삼겠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미 그의 리더십을 실용에 두고 있음을 천명한 바 있다. 이번의 거론은 그 실용 중도 노선을 좀더 강화하겠다는 이야기로 해석된다.

그의 이러한 리더십에 대하여 그 함의를 가지고 여러 설왕설래가 이미 있었던 터라 이번 그 중도를 더 강화하겠다는 것이 좀더 좌 편향을 적극화하겠다는 것인지, 무엇을 구체적으로 강화하겠다는 것인지 논의가 분분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현대국가의 정체성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질서로 결론이 난 상태이다. 유독 한국사회 만이 아직도 좌파니 우파니, 제 나름대로 이름 지어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논쟁의 잔재가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잔재 치고는 서로 죽기 살기로 대드는 형국을 연출하고 있다. 세계 13위 경제규모를 가지고, 세계에 완전하게 개방되어 있는 한국사회가 뒷전에 앉아 자기들끼리 이미 지구상에서 사라져버린 이념의 허상을 붙들고 서로 싸움질을 하고 있는 꼴이다.

이러한 한국의 이념논쟁은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훨씬 극렬하게 사회분열을 조장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스스로 사회의 그늘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좌파의 논리를 있는 자 없는 자의 논리로 발전시켜가고 있다. 있는 자를 타도하여 없는 자를 구제하자는 논리는 쉽게 공산주의 논리와 맥을 같이하며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공산국가체제인 북한 김정일 정권을 돕지 못해 안달을 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진보그룹이라고 자칭한다. 이미 흘러가버린 공산주의 사회주의 좌파사고의 미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그룹이 한국사회에서 스스로 진보라는 이름을 쓸 수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들 중 김정일 정부를 지향하는 친북세력을 제외하면 나머지 좌파그룹들은 사실 이념적 논쟁에서 분류되는 좌파가 아니고 현대국가 경영에서 제기되는 사회의 그늘을 보다 적극적으로 바로잡고자하는 그룹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들은 좌파가 아니다. 반면 우파로 대표되는 한국의 보수그룹은 일부 행동그룹이 존재하지만 그들을 제외한 많은 조용한 다수(silent majority)가 그저 보수로 통칭되고 있다. 보수그룹 중 일부가 국가우선의 극우세력으로 한국사회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보수그룹들도 사회 그늘의 치유를 중요시하고 이를 보다 개혁적으로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한국사회에서 좌파로 분류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나 우파로 분류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함께 현대국가경영에서 사회의 그늘을 해결해보고자 하는 같은 목적과 사회발전을 희망하는 같은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사회의 친소(親疎)관계나 타성적 행동이 서로 다를 뿐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 지금 존재하는 좌파 우파의 논쟁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는가? 여기에는 두 가지 초점이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일부 세력들이 자기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이런 이념갈등을 부추기고 있고 이런 놀음에 한국사회가 놀아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일부 소수의 친북세력의 전략전술이 사회를 이념갈등으로 의제시켜 혼란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친북세력은 있을지언정 한국사회에 종래의미의 좌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만일 이런 논리에 동의한다면 한국사회에서의 이념 논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한국사회에 이념논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강화론은 무슨 뜻일까? 첫째는 좌우가 없으니 중도일 수밖에 없다는 어법상의 해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말장난은 물론 아닐 것이다. 둘째 현실을 좌파와 우파의 대결로 보고 어차피 우파에 속한 이명박대통령이 보다 좌파적 사고에 가까운 리더십 발휘를 하겠다는 해석이 가능하여 질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많은 문제를 제기한다고 평가한다.

첫째 대통령에게 결례가 되겠지만 만일 대통령의 중도강화론이 둘째의 사고에서 출발된 것이라면 그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평가된다. 이미 사라져버린 좌파 우파의 이념논쟁을 더욱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둘째 이러한 중도강화론을 실현하기 위하여 서민중심의 정책을 보다 꼼꼼하게 챙기겠다는 발상도 너무 전근대적이라고 평가한다. ‘서민’중심의 말 자체가 벌써 있는 자 없는 자의 문제 접근임을 깨달아야 한다. 서민이 아니라 발전의 그늘을 해결하기위한 노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표현으로 되어야 하고, 서민에게 무슨 시혜를 베푸는 듯한 접근이 아니고 현대국가경영에서 우선순위가 발전의 그늘을 치유하는 것임을 천명하고 여기에 중점을 두는 접근이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 또 서민을 위한 정책을 보다 꼼꼼하게 챙긴다는 말은 지금까지 그것을 소홀히 하였거나 아니면 보다 적극적으로 있는 사람 우선의 정책을 펴 왔다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다. 대통령의 말씀을 가지고 말꼬리를 잡는 듯한 이야기가 아니라 리더십발휘의 접근자세를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셋째 대통령의 통합의 리더십 발휘를 위한 충정은 이해되지만 중도강화가 종래의미의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닌 것이 중도 인데, 보수는 내 텃밭이니 보다 진보 쪽으로 기울겠다는 발상이라면 이것이 통합의 리더십일까 의구심이 앞선다. 중도가 진보와 보수를 모두 내편일 수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또 모두가 내편이 아닐 수도 있음은 당연한 논리이다. 있지도 않은 이념의 중도가 아니고 국가경영에서 사회구성원의 통합을 추구하는 리더십 발휘가 가장 긴급한 과제라고 할 것이다.

넷째 사회 그늘진 곳을 보살피는 정책은 자유시장경제를 운영하는 한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취급되어야 한다. ‘시장은 경쟁으로, 경쟁탈락자는 정부가 보살피는 국가운영이’ 현대국가경영의 철학이 되어야 한다. 정부는 시장에서 경쟁이 보장되도록 규칙을 엄격하게 만들고 그 위반을 가차 없이 응징할 수 있어야 한다. 법질서를 엄격하게 지키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첫걸음이라는 인식을 모두 공유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경쟁탈락자에 대하여 경쟁력을 일으키는 능력을 배양하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교육 보건 주택 등 1차적 소득분배정책을 제대로 시행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보장 사회보호정책 등 2차적 분배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경제운영의 틀을 제대로 마련하고 그대로 시행하는 리더십 발휘가 대통령이 말하는 서민을 위한 것이 될 것이다.

다섯째 차제에 한국사회에서 더 이상 좌파 우파의 이념갈등이 사라질 수 있도록 북한 추종세력을 제외한 좌파인사와 사회개혁을 소리 없이 염원하는 우파인사들이 서로 추구하는 목표가 같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사회움직임이 생겨나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의 사회통합에 대통령의 리더십이 발휘되기를 기대한다.

2009년 6월 23일 화요일

식자(識者)들의 혹세무민(惑世誣民)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요즘처럼 혼란스러운 때도 드물 것 같다. 그중에서도 작년 말 시작된 미국 발 세계적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지난 8개월 동안 낙관과 비관의 살얼음판을 지나오고 있다. 그것은 정도의 차이가 좀 있을지언정 발전된 나라나 그렇지 못한 나라나 비슷한 모양새라고 할 수 있다.

리먼사태가 발생하자 많은 사람들은 1930년대의 대공황을 연상하면서 어쩌면 그 이상의 고통이 세계를 휩쓸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래서 미국을 비롯한 영국 일본 등 선진국과 한국 등 일부 신흥국들은 긴급정상회의를 하면서 세계경제를 구원하기 위하여 재정지출을 최대한 늘리고, 시장의 구원을 위한 지원과 규제를 다 함께 할 것을 합의하고 이를 신속하게 이행하기 시작하였다. 자유시장경제 운영은 잠시 뒷전으로 물러나고 정부의 보이는 손이 마구 시장을 휘저어 대지만 군말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만큼 절박성이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약 4개월이 지난 금년 3월을 저점으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증시는 다시 상승탄력을 받는 모습을 연출하였다. 그중에서도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의 증시는 보다 활발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이제 세계경제는 불황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것 아니냐 하며 낙관적인 전망이 여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세계경제가 다시 3개월이 지난 6월 20일을 전후하여 다시 비관론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발단은 지난 22일 세계은행의 금년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이 3월의 마이너스 (-)1.7%에서 마이나스 2.9%로 위축 될 것이라는 데서 시작되었다. 불과 얼마 전 IMF의 개선된 전망과는 반대로 된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의 최근 제조업과 소비지표 그리고 주택지표들이 개선된 모습을 보이자 미국경제가 바닥을 친 게 아니냐 하는 전망이 나왔고, 일부는 세계경제도 점차 불황의 끝 부분을 지나고 있는 것 아니야 하는 낙관을 제기하였다. 그것이 불과 며칠을 두고 미국의 증시가 하락하기 시작하자 다시 비관이 득세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최근의 유가와 금리가 상승세를 보이다가 갑자기 유가가 급락하고 동(銅)등 자원가격과 식량 등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 또 금 가격이 하락하고 대신 안전재화로서 달러가격이 상승한 단기적 시장상황이 이를 뒷밭침하고 있다.

이러한 시장상황의 낙관과 비관의 중심에는 언제나 유명한 식자(識者)들이 서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책임 있는 유관기관에서 권위 있게 제시되는 경우가 믿음성이 더 있지만 이런 것들은 대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 어간에 투자은행이나 증권회사들의 애널리스트들이나 대학교수 그리고 펀드운영자들이 발 빠르게 전망을 내어놓게 된다. 물론 그 중간에 언론기관들이 이를 요리하여 세상에 내어놓게 마련이다. 물론 많은 경우 훌륭한 분석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전망이 제시되고 있지만 개중에는 소위 전문가라는 모자를 쓰고 점쟁이처럼 이말 저말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어 유감스러운 경우가 많이 있다.

이번 비관의 단초인 세계은행의 전망근거를 정확하게 파악할 길이 없지만 3개월 전에 비하여 현격한 경기하강을 전망하기 위해서는 보다 분석적 근거가 제시되었어야 할 것이다. 물론 제시되었지만 그것을 언론에서 상세하게 보도하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거의 동시에 방송에 출연하여 ‘더블 딥’을 전망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의 전망은 그의 이름값에 비하여 그리 신빙성이 없다고 평가된다. 그가 전망하는 장기금리상승, 미국정부의 재정적자부담 그리고 유가상승 전망 등에 이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얼마 전 ‘세계경제는 불황의 터널 끝을 지나가는 것 같다’는 전망을 한 바 있다. 그는 다 아는 바와 같이 작년의 세계경제위기를 예측한 사람으로 세상에 알려져 있고 그 이후 많은 기회에 그의 의견을 개진하고 있는 명사이다. 그는 얼마 전 한국 어느 기관의 초청으로 한국에 와 한국경제를 낙관적으로 전망한 바 있다. 물론 초청국에 대한 약간의 예의가 전망에 반영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번에도 그는 금년 연말까지 국제유가가 다시 100달러에 육박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어떻게 알까?

비슷한 모델로 미국 프린스턴대의 폴 크루그만 교수를 들 수 있다. 그야 유명한 언론의 컬럼니스트로 노벨경제학상을 탄 저명인사이다. 많은 저서를 출간하였고 예리한 현실분석으로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그도 최근 한국에 초청되어서 한국경제를 낙관하고 세계경제도 어느 정도 개선되는 모습을 전망하고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다른 지역에 가서 행한 어두운 세계경제전망을 보면서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바마 정부의 정책에 대한 그의 평가도 좋았다 나빴다 들쑥날쑥 이다. 왜 그럴까?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 코스피가 500이 된다고 글을 쓰면서 말썽을 빚은 인사가 있다. 그래도 그가 무엇을 맞췄다고 믿고자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점괘는 맞지 않았다. 필자가 들은 바에 의하면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들이 증시전망을 맞출 길이 없기 때문에 영업적으로 비관론자와 낙관론자 둘을 언제나 함께 전망하게 함으로써 언제나 현실에 맞는 점괘를 내걸도록 한다는 우스개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이런 일이 점괘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평생의 일을 나라의 장단기 경제 분석과 정책을 마련하는데 종사하였다. 그 일에 가장 전제되는 것이 장단기 전망이다. 이런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하여 많은 공부도 하고 전문가들과 많은 토론을 하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퇴직하여 대학교수로 그런 문제를 강의하고 지냈다. 그래서 남들은 내가 이런 분야의 경제전문가로서 생각해 주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부족하여서 그런 면도 있지만 언제 경제가 어떻게 되고 특히 언제 경제가 회복되고 유가가 언제 백 달러 될 것을 알아 낼 수는 없다. 전문기관이 경제성장률전망치를 몇 퍼센트로 내어 놓는 것은 여러 전제를 복합한 자기들 나름의 모델 분석결과이지 그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이다. 종교계에서 하는 선문답 식으로 불황의 터널을 지나느니 중간에 있느니, 유가가 언제 얼마가 되느니 하는 것은 점괘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다. 이것은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라고 평가한다.

필자가 어렸을 때 육이오전쟁 중 북괴의 남침에 어디로 피난 가는 것이 안전할 것인지 등에 대한 걱정을 할아버지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옆에서 들은 바 있다. 그때 제일 많이 이야기 된 것이 정감록의 토정비결이었다고 기억된다. 그래서 어느 지역이 가장 안전한 ‘피난고지’라고 그 예언서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세계적 경기침체가 언제 끝나고 얼마나 깊을 것인지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것은 점쟁이 점괘에 속하는 일이다. 전문가는 흐름을 보고 거기에 적절한 방책을 제시하는 일을 해야지 무슨 점쟁이 하는 일 하듯 하면 오히려 사회만 자꾸 혼란스러울 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답답하고 고통스럽지만 냉철한 이성에 입각하여 현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그에 대응하는 자세가 전문가들에게 요구된다고 평가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식자인양 무슨 점괘 같은 현실 전망을 하여 세상을 속이고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혹세무민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2009년 6월 13일 토요일

개성공단 국가운영 독재

2009.6.11 개성공단과 관련된 남북실무회의가 개성에서 열렸다. 예상은 하였던 일이지만 북한당국은 개성공단의 운영과 관련하여 남쪽이 받아드릴 수 없는 제안을 하였다. 지난번 회의에서 북쪽이 제기하였던 문제를 더 구체화한 것이기 때문에 놀래기보다는 그들의 저의가 무엇인지가 문제의 핵심처럼 제기되고 있다.

북쪽은 개성공단 근로자의 임금을 지금까지 월 75불 하던 것을 300불로 4배 인상하고 앞으로 연간 인상률도 10~20%하자고 하였다. 공업단지 사용료와 관련하여 100만평 1차분의 토지임대료를 5억불 지불하고 2010년부터 토지사용료로 평당 5~10달러를 징수하겠단다. 토지임대료는 토지개발공사가 2004년 50년 임대조건으로 16백만불을 일시불로 이미 지불한 것인데 그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먼저 낸 돈의 31배에 해당하는 돈을 또 요구하고 있다.

북한당국은 2008년 3월 남한당국자 11명을 개성공단에서 추방한 것을 시작으로 그동안 근로자의 입출경과 많은 제재를 일방적으로 취하고 있다. 국제관례나 계약조건의 이행과는 전연 거리가 있는 북한당국의 처사를 일반적인 시장경제의 논리로 이해하는 것은 납득할 수가 없고 황당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번에 구체적인 경제조건을 북한이 제시하고 나왔다. 앞으로 더 회담이 진행되어 보아야 하겠지만 지금 북한이 제시한 조건을 남쪽 기업이 받아들이기는 불가능할 것 같다. 더군다나 지금까지 북한당국이 취한 개성공단 운영과 관련한 인적 물적 교류의 일방적 제한조치들을 보면 이제 더 이상 개성공단 사업은 불가능할 것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현재의 결과를 놓고 지난 일을 되돌아보면 개성공단은 처음부터 출발하지 말았어야 했을 것 같다. 국제관례고 계약이고 무엇이고 내 맘대로 한다는 북한의 억지 논리로는 북한이 사업의 정상적인 상대가 될 수 없다. 아무리 시장경제와 다른 체제라 하지만 계약의 이행에 전연 기속되지 않는 처사 앞에 더 이상 무슨 이야기가 필요하단 말인가? 그것을 ‘민족끼리’라는 논리로 무턱대고 추진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남한당국으로서는 북한당국에 의하여 체포되어 면회도 소식도 모르는 근로자의 안전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일 이외에 현 시점에서 할 일이 없을 상 싶다. 지금 보아서는 북한당국이 남한당국의 관심사인 구속자 문제는 처음부터 다룰 의사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 할 일이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다. 만일 어떤 형태로던 이번 일이 1차적으로 해결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북한당국이 남쪽의 코를 꿰는 꼬임에 불과할 것이다. 질질 끌려가는 꼴이 될 것이다.

국가경영의 측면에서 미련을 접어야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북한정권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전략을 다시 한번 확고부동하게 수립하고 이를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전략은 크게 두 가지 방향이 되어야 한다. 하나는 물론 북한당국과의 관계를 좋게 하기위하여 너무 성급하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 하에 결연하고 냉정한 이해관계에서 대북접근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는 남한 땅에 일고 있는 일방적인 친북분위기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략접근에 따라 당장 해야 할 일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 될 것이다.

1. 개성공단은 주도면밀하게 준비하여 철수를 시작하여야 한다.

당장의 분위기로 보아서는 더 이상 개성공단과 관련하여 북한당국과 협상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냉정하게 경제성에 입각하여 협상에 임하되 남한의 입장은 철수를 포함한 여러 가능성을 열고 회담에 임하여야 한다. 북한이 제시한 비용의 조정은 조정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북한은 개성공단 실패의 책임을 남한당국에 떠넘기고자 할 것이기 때문에 그 빌미를 주지 않는 선에서 천천히 그리고 한 가닥, 한 가닥 세밀하게 집고 넘어가면서 협의를 해야 한다. 그 사이 경영이 불가능한 한국기업은 하나 둘 퇴각하도록 해야 한다. 시간은 남쪽 편이지 북쪽 편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2. 김대중 전 대통령은 더 이상 국민을 속이지 말고, 국민 앞에 속죄하여야 한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6월 11일 자기 재단에서 행한 ‘6.15기념연설’에서 이명박 정부를 독재정부로 규정하고 이렇게 가면 ‘국민도 불행하고 정부도 불행하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행동하는 양심이 되자’고 하였다. 국민도 불행하고 정부도 불행하다는 말을 곱씹어 보면 너무나 섬뜩한 국민협박으로 해석 된다. 그래서 그야말로 독재치하에서 지성인에게 호소하는 듯한 ‘행동하는 양심’을 가지고 국민을 선동하여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이명박정부의 독재에 항거하는 행동을 하자는 것이다. 그야말로 선동과 포퓰리즘 정치의 전형을 전직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오늘의 북한 핵 위협 앞에 국민을 불행하게 만든 원인제공자가 사죄는커녕 몰염치하게 선동정치를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독재정치를 국어사전에서는 ‘한나라의 권력을 주권자 한사람이 쥐고 마음대로 정무를 처단하는 정치행태’라고 풀이하고 있다. 정치학적으로는 대통령제 하에서는 대통령 한사람이 권력을 쥐고 정무를 처단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는 대통령제는 다 독재가 된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형식적 의미의 독재정치는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모두 같은 범주에 속할 것이다. 그렇다면 유독 이명박 대통령이 독재자라는 논리는 어디에 논거를 두는 것일까? 지난번 고 노무현 전대통령 장례과정에서 김대중 전대통령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전 군사독재시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언급한 것이 언론에 보도된바 있다. 그 이유가 이명박 대통령 마음대로 노무현 전대통령의 비리를 수사하게 만들어 그를 죽게 하였다는 데 논거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후 언론기관의 여론조사결과라고 보도되는 내용 중에 노무현전대통령의 죽음에 이명박대통령의 책임도 당사자 본인 다음으로 있다고 나온바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이명박대통령이 독재자라고 규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단 말인가? 논리의 비약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이명박대통령의 잘잘못을 여기서 시비하자는 말이 아니라 독재로 명명하는 행위의 당위성에 부당함을 말하는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같은 6.15기념연설에서 북한의 핵실험을 마지못해 비판하면서도 마치 현 정부가 전 정부가 맺은 남북협의 결과를 지키지 않는 것을 강도 높게 비난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명박 정부는 즉시 금강산관광사업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치 핵실험의 이유가 남한당국의 북한당국에 대한 비협조에 있는 듯한 여운을 남긴다. 과문한 결과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개성공단 문제에는 언급이 없다. 그와 고 노무현 대통령은 그들이 퍼다 준 대북지원으로 오늘의 대남 핵 협박을 가능하게 한 원인제공자들이다. 정부 집계에 의하면 이분들 임기 10년 동안 대북 지원은 현금만 29억달러, 현금과 현물을 합하면 69억달러라고 한다. 이 금액이면 지금 북한이 마련한 장거리 로켓과 핵무기개발에 드는 비용의 몇 배가 되는 규모이다. 같은 기간 중국이 북한에 제공한 돈의 4에 해당하는 엄청난 돈을 한국 국민의 동의도 물어보지 않고 이 분들은 자기들의 전략으로 북한에 퍼다 준 것이다. 물론 남쪽의 돈이 무기개발로 직접 들어갔다는 증거는 없지만 그 돈이 없었으면 북한정권이 이런 핵개발이 불가능하였을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그런 원인제공자인 김대중 전대통령의 행동은 역사에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3. 민주당은 국회로 돌아가 세금 값을 하라.

6월 10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는 ‘6.10항쟁’기념식이 그야말로 각계각층에서 모여서 치러졌다. 거기 참가한 사람이나 집에 있는 사람이나 모두 관심은 민중운동의 기념 보다는 얼마나 사람이 모이고, 사고가 나지 않을까, 교통은 얼마나 막힐까 하는데 모아졌다고 할 수 있다. 문화의 광장인 시청 앞 광장을 정치집회에 사용하는 것에 서울시가 난색을 표하자 이 행사를 문화행사로 한다는 해괴한 논리를 펴서 사용에 들어간 이 행사장의 가운데에 민주당 그리고 이름도 잘 모를 여러 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자리 잡고 앉아있었다. 그들은 이명박 독재타도를 외치고 고 노무현 대통령 정신계승을 자임하고 나섰다. 소위 ‘거리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외치는 이명박대통령의 독재는 내 맘대로 안 되는 것은 독재라는 억지 논리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법을 어기고 규정을 위반해도 내가 하려는 일이 옳은 것이니 좋고, 오히려 법을 지키고 집행하려는 것은 독재라는 논리가 된다. 국회의원이 국회는 팽개친 채 거리에 나와 선동을 일삼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것이 민주당의 논리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에 사과가 선행해야 한다고 국회를 열지 않고 있다. 그것이 비록 사과해야 할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국회를 여는 것과 연계할 필요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사과는 사고대로 받고 국회운영은 국회운영이 아닌가? 세금을 내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도대체 저들이 내 돈을 받아먹고 있는데 그들이 세금 값을 하는가? 국회우상화의 전근대적 표본이 바로 이런 것일 것이다.

민주당의 노무현 정신 계승은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가 생전 국민의 지지를 잃자 그가 그들 주변에 접근하는 것조차 전염병환자처럼 꺼리던 사람들이 바로 민주당 사람들이었다. 지금 세상인심이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에 동정론으로 변하자 무슨 정신계승 운운하는 것은 아무리 후안무치한 사람들이라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가소롭지 않을 수 없다. 빨리 국회로 돌아가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일이 법안심의를 심도 있게 하고, 국민을 평안하게 만드는 것일 것이다. 그것이 최소한 오늘 의 한국 국회를 존재하게 하는 최소한의 당위가 될 것이다.

4. 현대국가에서 좌파니 우파니 하는 전근대적 이념은 번영의 조건이 되지 못한다.

21세기 국가운영의 화두는 번영(prosperity)이라고 할 것이다. 번영의 함의는 경제적 조건이 우선 되겠지만 그 외의 안정, 행복이 가득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일 것이다. 번영의 일반적 조건은 국민 각자가 자기 있는 곳에서 부가가치 증식에 최선을 다하고, 각자의 안정과 행복을 위하여 내가 지켜야 할 것을 다 지키고, 국민 상대방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에 남아 있는 좌파 우파의 색깔이나 진보 보수의 이념 논쟁은 21세기 국가운영의 우선순위에서는 지나간 이슈에 불과하다. 얼마나 번영된 사회 번영된 국가를 만들어 가느냐가 현대사회의 우선된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국의 노동당정부나 보수당정부나 오늘날에는 정책은 모두 비슷하고, 빈민계층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많은 신흥국가들의 진보그룹들의 정책도 보수와의 차이를 제대로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세상이다. 그래서 발전된 나라나 신흥되는 사회나 막론하고 많은 나라에서 좌파정권이나 진보정권은 차츰 사라져 가고 있다. 모두 비슷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남는 가치가 바로 얼마나 국민의 번영을 가져오느냐 하는 것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에는 아직도 유별나게 진보니 보수니, 좌파 우파의 전근대적 색깔 론이 많이 남아있다. 학자들은 그것을 더 세분화하여 급진진보, 중도진보, 정통보수, 중도보수 등으로 세분화하고 싶어 하고 있다. 현대 국가운영의 흐름인 번영의 조건으로 본다면 이런 담론은 비현실적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오히려 한국에서의 좌파나 진보그룹 중에 얼마 많은 사람이 북한 김정일 정부에 가까운가, 즉 친북세력인가 그리고 우파나 보수그룹 중에도 얼마나 시장경제 운영을 우선시하는 세력인가를 구분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가난한 사람을 위하는 것이 좌파이고 부자를 위하는 것이 우파라는 기존 관념은 잘못된 것이고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현대국가운영에서 어느 정부 던 가난한 사람을 위하는 정책을 써야 하고 또 경제발전을 위하여 시장의 논리에 따라 부자를 위하는 정책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정부가 국민의 번영을 얼마나 가져왔느냐 하는 평가를 받는 것이 국가운영이지 좌파 우파의 색깔은 국가운영에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사회에서 지금 일고 있는 좌파니 진보니 하는 세력들은 조용히 스스로의 정체성을 다시 점검하고 스스로 추구하는 방향이 가난한 사람 권력을 얻지 못한 사람을 위하는 것인지 아니면 북한정권을 위하는 것인지를 구분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후자라면 모르겠지만 전자라면 그것은 좌파가 아니고 그야말로 번영을 위한 정책의 한 축을 더 중요시하는 부류로 스스로를 개념 규정할 필요가 있다. 우파나 보수도 마찬가지다. 스스로가 시장경제의 논리에 따른 경쟁의 경제를 중요시하는 그룹인지 국가지상주의와 같은 극우세력인지를 점검하여 보고 전자일 경우 이것은 우파도 무엇도 아닌 당연한 시장경제 지지자에 불과한 것이다. 만일 이런 분석에 동의한다면 한국사회에서 김정일 북한정권을 지지하는 그룹이나 국가지상주의를 신봉하는 그룹은 그 수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고 지금 스스로 좌파라고 하는 세력이나 우파라고 생각하는 세력의 대부분이 이념의 차이가 아니고 단순한 친소의 차이나, 일부 극단주의자들에게 비판 없이 휩쓸려 다닌 그룹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명하여 진다. 한국사회에서 더 이상 좌파 우파의 논쟁은 의미 없는 짓이다. 허상을 쫓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일부 극단 국가지상주의자나 친북세력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들을 실정법적으로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어느 사회이건 일부 극단론자들이 있게 마련이고 사회가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을 끌어안고 함께 번영을 찾아가는 것이 현대국가의 국가운영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지금 한국사회 안정을 어렵게 하는 일부 정치권, 노동권, 사회운동권 세력들은 국가통치력(법률과 사회규범)의 범위 내에서 활동하고 이를 지지해 주어야 한다. 전직 대통령이던 국회의원이던 노동단체든 친북사회단체든 국가통치력 안에서 행동하고 활동해야 한다. 국가통치력은 어느 경우이던 존중되어야 한다. 통치력을 벗어나는 행동은 당연히 법규의 제재를 받아야 하고 국가통치력 범위 내의 행동은 당연히 보호되어야 한다. 단순히 내 맘에 안 든다고 독재 운운하는 것은 한국민주주의를 오히려 모독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국민 모두가 여기에 이해를 같이해야 한국사회의 번영은 가능하여 진다고 할 수 있다.

5. 이명박대통령도 사회통합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치를 하여야 한다.

이명박대통령은 독재자라는 말을 들을 때 억울한 마음이 있을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현 정부를 독재정부라고 부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다만 왜 이런 억지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지를 대통령은 곰곰이 생각하여 보아야 할 것이다. 이명박대통령은 실례지만 너무 정치를 하지 못한다고 결론지어 말할 수 있다. 국민을 이해시키지 못하고, 사회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제 식구 들 조차 화합을 시키지 못하고 어떻게 옳게 대통령 노릇을 할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경제대통령의 이미지는 벗어던져야 한다. 대통령은 정치하는 사람이지 회사 사장이 아니다. 경제정책을, 경제논리를 정치논리에 우선하겠다는 착상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대통령이 할 일의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정치를 잘 하는 것을 전제로 경제대통령이 필요한 것이지 정치를 내팽개친(사회통합을 중요시 않는) 경제대통령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당내 결속을 먼저 확실하게 하여야 한다. 박근혜 진영과 정치적 연대를 분명하게 하고 실례지만 졸개들의 이해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억울하더라도 내각을 전면 쇄신하고 졸개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큰 틀에서 통합을 하는 정치의 모습을 주변을 쇄신하는 데서부터 시작하고 사회각계와 소통의 지평을 넓혀가야 한다. 이 길만이 그를 떠난 많은 지지 세력을 다시 부를 수 있는 계기가 되고 그들에게 다음 정권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은 본인의 안위보다는 그를 지원하여 준 많은 안정세력 들의 미래를 책임지는 그런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6. 개성공단, 고 노무현대통령 서거, 독재정권 타도와 같은 어지러운 현실이 결국 국가운영의 측면에서 중심 있게 해결되어야 한다. 이 중심에 대통령이 서 있어야 하고 국가운영이 번영의 가치를 우선하는데 집중되어야 한다고 평가한다.

2009년 6월 3일 수요일

잔인한 6월, 그래도 힘을 주소서

1. 우울한 5월의 그림자

5월이 가고 6. 25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6월이 왔다. 북한의 핵 위협 앞에 현충일을 앞둔 오늘 많은 상념이 우리 마음을 무겁게 한다. 6.25는 나이 든 세대에게는 현실이지만 젊은 계층에게는 역사 속으로 묻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쯤으로 치부하고 지나갈지 모르지만 나이든 한국인들은 아직도 김일성 공산도배에 절치부심하고 오늘을 살고 있다. 그 6월이 왔다.

2009년 5월은 시들어버린 라이락꽃처럼 우울하게 지나갔다. 그것도 긴 그림자를 드리운 채. 노무현 전대통령은 검찰의 비리수사를 받는 도중 지난 23일 돌연 자살하였다. 큰 충격과 함께 국민장을 치르는 7일 내내 많은 일들이 우리 앞에 벌어졌다. 무엇보다 전 대통령의 죽음 앞에 망연자실하는 많은 국민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그리고 장례가 치러지고 닷새가 지난 오늘 그를 억울하게 죽게 만든 현 정부가 사과해야 한다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고 있다. 그의 자살이 현 정부와 어떤 객관적 연관이 있는지 불분명하지만 고 노무현 대통령 지지자들은 책임론을 들고 일어나고 있다. 잠잠하였던 자칭 진보그룹인지 좌파세력인지 하는 인사들이 한데 뭉치고 있는 모습이다. 5월의 그림자는 길게 드리워져 있다.

이번 사건을 치르면서 이명박 정부의지지 세력이라 할 수 있는 보수진영 인사들이 이명박대통령 리더십에 많은 실망감을 나타내고 있다. 크게는 국민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지 못하고 정파 내에 갈등구조가 표출되는 이명박대통령의 리더십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가깝게는 고 노무현 대통령 장례과정에서 정부가 취한 의연하지 못한, 어쩌면 비굴하기까지 한 처사에 많은 지식인들은 실망감을 금할 수 없게 하였다. 유족측에게 국민장을 애원하는 것 같은 모습이나, 최상의 예우를 하지 못해 안달하는 모습들은 그 자체를 탓할 수 없을지 몰라도 객관적으로 의연하지 못하였다. 1년 전 촛불시위에 덴 이명박 정부는 미리 알아서 기는 형국을 연출하였다고 평가하는 것은 좀 과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5월의 그림자는 아직도 우울하게 우리주변에 길게 드리워져 있다.

2. 북한의 도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작고하고 하루 뒤 북한의 김정일 군사위원장은 조의를 유족에게 표하였다고 언론은 전하였다. 그리고 하루 뒤 북한정부는 원자력 핵실험을 단행하였다. 연이어 북한은 로켓발사시험을 여러 차례 실시하고 있다. 북한이 상중에 도발하는 것을 비난할 대상이 애초부터 아니지만 그래도 그들과 비교적 관계가 좋았던 고인의 장례가 진행 중인데 그 몇 날을 참지 못하고 북한은 세계에 핵위협을 해대고 있다. 이어서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을 준비 중에 있고 몇 개의 중거리 미사일도 발사준비를 하고 있다고 언론은 전한다. 앞으로 두주 후에 있을 한국 미국대통령 정상회담 무렵에 발사할 것이라느니 여러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남쪽 한국에서는 태평세월이고 오히려 전대통령 자살을 가져온 책임론이 훨씬 강하게 현실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이솝우화처럼 아기 달래는 수단으로 거짓 호랑이가 온다는 말이 아기의 무관심을 키워 정작 호랑이가 왔을 때 속수무책이듯 지금 우리 주변은 북한의 핵 위협에 무덤덤한 꼴이다. 아니 어떤 인간들은 북한이 핵을 가지면 그것이 결국 우리 것 되는 것 아니냐고 할 정도로 한국인의 인식은 혼동되어 있다. 불과 한 달 전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할 때 일본정부와 일본인 들이 보여준 반응을 과잉된 것이라고 치부한 것이 우리네 한국사람 들의 정서이다. 그러나 이미 북한은 핵무기를 몇개 만들 수 있는 플르토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또 며칠 전 미국의 전 국무장관은 북한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는 핵 보유가 필수적이라고 믿고 있고 또 그들이 필요할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생각하면 한국인의 오금이 저릴 일이다.

그저 북한 내부 정치사정으로 김정일 아들 후계구도를 완성하고자 하는 체제 내부용으로 핵실험 등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막연한 분석에 의지하고 싶은 것이 한국인들의 일반적 심정일 것이다. 또 중국이 자기네 안보상 가만히 있지 않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철딱서니 없는 낙관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개성공단은 이제 물 건너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 한 가닥 기대가 남았었다면 그것도 최근의 북한 행동을 볼 때 이제 접어야 한다. 다만 우리가 북한에게 비난의 구실을 주지 않기 위하여 조심스럽게 하되 철수를 주도면밀하게 시행하여 더 한국근로자들이 북한에 억류되거나 희생되는 일을 막아야 할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위협이 지속되는 가운데 그 뒤에서 죽어가고 있을 북한 사람들의 굶주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백성을 도탄에 빠트리고 정권유지를 위하여 수억 달러의 핵과 미사일 실험을 계속 해대는 북한 정부가 증오스럽다. 6월 2일 발표된 정부집계 결과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간 북한에 지원된 현금이 29억달러, 교역을 포함한 경제협력의 총 규모가 69억달러(8조7천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같은 기간 중국의 대북지원 규모가 19억달러라고 하니 김대중 노무현정부가 3.7배나 많이 준 결과가 된다. 이것은 북한 총수출의 90%에 달하는 규모라니 지난 10년간 한국정부가 얼마나 많은 돈을 북한에 퍼주었는지 가늠이 된다. 한국정부는 그동안 북한이 장거리 로켓과 핵무기를 개발하는데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하는 투자보다 훨씬 큰 규모의 대북 지원을 하여 그 보상(?)을 지금 받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한 것이다. 이 일을 주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고 노무현 대통령 장례 전후하여 한국 민주주의가 5공이나 유신시대로 회귀하고 있다고 탄식한 바 있다. 오늘의 참담한 북한의 핵 위협 앞에 과연 그가 한국 민주주의를 거들먹거릴 수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역사 앞에 책임을 져야할 일이라고 판단한다.

3. 실용주의(實用主義)가 실용(失用)으로

최근 이명박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회의가 여러 측면에서 제기되고 있다. 무엇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는 것 같은 현실 앞에 그의 반대세력은 말할 것 없고 그의 지지진영에서도 많은 이탈이 일어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본인이 실용주의라고 외치던 것이 실용(失用)되고 있다고 하면 현직대통령에 대한 결례일까? 그의 실용주의가 오늘까지 가져온 결과가 무엇인가?

고 노무현 대통령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노무현을 지지하는 그룹들은 그렇다고 치고 이명박을 지지하는 세력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떠났다고 한다. 그래서 소위 진보를 자처하는 인사들이나 비정부그룹들(NGO)은 요즘 다시 결속하면서 정부 비난에 총궐기하는 모습이다. 여기에 더하여 일부 대학교수들이 비난에 참여하고 있고, 이명박을 지지하였던 많은 인사들이 정부비난에 합세하고 있는 형국이다. 사실 보수세력 사이에 당장 대안이 없어 그렇지 대안만 있으면 이명박 정부 지지를 버리고 싶다고 하는 그룹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도 매 한가지이다. 모래성 같은 한나라당은 무엇하나 제대로 해내는 집권당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매일 친이친박하며 내부갈등 만 국민에게 보이고 있다. 모래알은 합치면 좋은 건축자재가 되지만 하나하나 흩어지면 사상누각이 될 수밖에 없다. 근원적으로는 모두 대통령의 책임으로 돌아가겠지만 결국은 박근혜의원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더구나 그는 다음을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그녀에게 득보다 실이 크다고 분석될 수 있다. 사실 박의원이 알아야 할 것은 현재 대안부재론 때문에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지 많은 보수들은 이명박 박근혜 모두에게 크게 실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해결책은 매우 간단하다. 많은 사람이 이야기 하는 것처럼 이명박 대통령은 박근혜의원에게 한나라당을 내어주고 다음 선거를 지원해야 한다. 박 진영에서도 이명박정부에게 완벽하게 책임을 나누는 자세로 참여와 지원을 해야 한다. 이명박정부는 정부와 정치권을 쇄신하는 변화를 박근혜 측과 함께 가져와야 한다. 이 안에 대하여 친이진영에서 반대한다는 것은 알만한 일이지만 그것은 이명박 정부가 어느 정도 제대로 할 때 이야기 이지 지금 분위기로는 다음 정권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많은 보수진영 인사들은 다른 대안만 있으면 떠나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나라당은 알아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정치와 사회통합에 매진해야 한다. 현 상황에서 경제대통령은 의미가 없다.

4. 새로운 성장동력을 4대강 버리고 서비스산업에서 찾아야한다.

이명박정부는 남은 임기동안 세계적 경제위기 앞에 한국경제가 흔들리지 않는 발전을 가져오기 위한 성장동력을 찾아 종합적인 발전계획을 마련하여 국민과 함께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4대강개발과 같은 하드웨어적 접근보다는 교육 보건 컨텐츠산업등 내수산업의 발전을 종합적으로 가져오는 계획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지금이야말로 KDI 등 정부연구소를 동원하여 장기 발전방향을 정돈 마련하고, 이를 이해관계인과 충분한 컨센서스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이를 정부 주도로 추진하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 (서비스산업 종합계획 만들자. 본인의 블로그 참조) 시의성과 추진에 시비가 있겠지만 이것은 정부의 선택이라고 판단한다.

5. 그래도 힘을 주소서.

한국인에게 6월은 잔인한 달이다. 역사의 비극을 거울삼아 지금 아주 어려운 내우외환(內憂外患)의 형국이지만 이를 딛고 일어나야 한다. 한국의 발전이 그러하듯이 지난 어려움을 한국사람 들은 용기와 인내로 견뎌 이겨내었다. 6.25도 그랬고 유신도 그랬고, 초근목피에서 번영을 일구어 냈다. 지금 한국이 비민주국가도 아니고, 인권이 유린되는 사회도 아니다. 정치권은 더 이상 독재니 소외계층이니 전 근대적 이슈를 거들먹거리지 마라. 한국은 한 세기 안에 절대빈곤을 지나 번영을 앞세운 세계 13등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 아프다. 어렵다. 그렇다고 그 아픔을 그 어려움을 서로 감싸 안아야지 상처를 더치는 행동은 같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서로 삼가야 한다. 이제 나라를 한 사람이 이끄는 걸 세출의 지도자를 기대할 수는 없다. 한사람 한사람이 주인으로서 책임자로서 자기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길이 오늘을 사는 우리 세대의 책임이다. 죽을힘을 다해 한국사회의 번영을 일구어 나아가야 한다. 두리번 대지 말자. 사회를 어렵게 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그래도 이들 모두에게 힘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