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데올로기 시대의 종말
구 소련이 멸망한 이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 갈등은 사실상 결말이 났다. 2차대전 이후 확대되어 왔던 좌와 우의 이념갈등은 본령의 한축인 구 소련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면서 끝이 났다. 공산주의는 사라지고 자본주의가 승리하게 된 결과가 되었다. Prancis Fukuyama는 1992년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 이라는 저서를 통하여 인류의 역사 진화는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질서(capital liberal democracy)’로 그 결말이 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인류의 이데올로기 진화의 종점’이고 ‘인류 최후의 정부형태’라고 그는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후쿠야마의 자유민주주의의 승리 논리는 그 4년 전인 1988년 발표된 Paul Kennedy의 '강대국의 흥망(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으로 발생하게 된 미국을 비롯한 서구사회의 세계지배에 대한 비관주의를 잠재우는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폴 케네디는 16세기 이후 긴 역사적 관점에서 세계를 지배하는 국가의 흥망성쇠를 순환의 논리로 관찰하였다. 한 국가가 경제발전으로 우월성을 통하여 세계를 지배하지만, 그 국가는 우월한 경제적 지위를 지키기 위하여 군비를 증강하고 결국 지나친 군비증가가 종국에는 경제적 우월성을 상실하게 만든다고 분석한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이 그리고 서구제국이 경제적 우월성을 만들어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지만 결국 그 경제적 우월성을 지키기 위한 지나친 군비증강으로 미국의 세계지배는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 폴 케네디의 논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장래에 대한 비관논리가 지배하고 있을 때 소련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은 미국을 비롯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공산주의의 망령에서 세계가 벗어나 자유시장경제질서를 토대로 한 자본주의가 인류가 추구할 가치임을 분명하게 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가 모든 면에서 공산주의를 능가하고 무결점의 이념으로 승리하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의 기본 전제인 시장의 경쟁체제는 언제나 경쟁의 그늘과 낙오자를 생산하게 마련이고 이곳 또한 인류가 바로잡아야할 영원한 대상이고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질서가 인류 최후의 이념과 정부형태로 결말이 난 것은 자본주의의 승리라기보다는 공산주의가 갖는 체제적 결함 때문에 자멸한 결과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좌와 우로 표현되는 이념갈등은 후쿠야마의 주장대로 역사에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공산주의체제가 사실상 남아있는 곳은 지구의 동쪽 끝 북한 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러시아는 더 이상 공산주의 종주국이 아니고 정권유지에 급급한 한낱 개발도상국으로 전락하였고, 중국은 형식적인 공산주의 정치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시장경제를 도입한 신흥국가로 변화되었다. 이들 두 나라는 더 이상 공산주의 이념이 지배하는 사회로 분류될 수 없게 변화되었다. 쿠바나 일부 중미국가들도 폐쇄의 도구로 활용되었던 공산주의 이념이 국가가 개방되면서 더 이상 공산주의 이념을 추구할 형편이 되지 못하고 있다. 결론은 공산주의 이념이 이제 지구상에서 사라진 것이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남은 것은 자유시장경제질서이고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뿐이다. 이것이 현대국가의 정체성(identity)이다.
2. 현대국가의 운영
이러한 현대국가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국가운영의 지향점은 번영(prosperity)이라고 할 수 있다. 번영은 경제적 개념에 더 가깝지만 정의하여 본다면 부(富)와 행복이 함께하는 조건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번영의 개념 속에는 공동체 보다는 개인에 더 가깝게 접근하고자 한다. 따라서 영토확장이나 군비증강과 같은 적극적 의미의 국가체제 운영 보다는 소극적이지만 개인의 부의 축적과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우선하는 가치로 삼는 국가운영이라고 할 수 있다. 번영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영토확장을 위한 전쟁이나 공동체의 통합된 이념추구를 위한 투쟁적 행동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폴 케네디나 프란시스 후쿠야마나 표현의 차이가 있지만 국가나 사회의 우열(優劣)의 조건은 과학기술이나 경제의 우월성에 달려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경제개념으로 표현한다면 시장경제의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다. 경쟁력을 토대로 경제적 부가 축적되고 그 부를 토대로 사회가 발전하고 개인의 행복의 1차적 조건이 충족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시장에서의 경쟁은 언제나 그늘을 만들어낸다. 그 그늘을 살펴야 하고 그늘에서 유래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일은 현대국가 경영에서 영원이 계속되는 과제이고 피할 수 없다. 이제 지구상에는 사실상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질서 만 남아있는 현실 속에서 경쟁의 그늘과 관련된 문제를 풀기위한 방법으로서의 정책수요에는 국가간에 차이가 있을 수 없고 이것은 국가의 1차적 책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다시 좌니 우니 하는 이념적 차이를 찾는 것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접근이다. 국가가 존재하고 그를 대행하는 정부가 있다면 그 정부가 해야 할 제일 큰 임무중의 하나는 시장의 그늘을 보살피는 일이 되는 것은 당연하고 그것이 정부가 해야 할 책무가 된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최근 좌파 노동자당을 토대로 집권한 브라질의 룰라대통령은 좌파의 논리에서 벗어나 시장경제의 활성화로 국부를 증가시켜 그것을 빈곤층 지원에 활용하여 중산층으로 발전시켰다고 평가받고 있다 한다. 좌파와 우파를 아우르는 정책을 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총리도 노동당을 토대로 집권하였지만 집권하자 좌파적 정책을 버리고 보수당 정책을 추진하여 성공을 거두었고 현재 영국의 보수당 당수인 데이비드 캐머런은 반대로 사회적 약자보호와 환경 복지의 중시 등 좌파적 가치를 접목시킨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한다. 이제 국가운영에서 좌파와 우파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3. MB의 중도강화론
대한민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얼마 전 중도강화론을 들고 나왔다. 좌와 우에 편향되기 보다는 실용적으로 시의에 맞는 선택을 해 가는 것을 그의 국가운영의 기본으로 삼겠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미 그의 리더십을 실용에 두고 있음을 천명한 바 있다. 이번의 거론은 그 실용 중도 노선을 좀더 강화하겠다는 이야기로 해석된다.
그의 이러한 리더십에 대하여 그 함의를 가지고 여러 설왕설래가 이미 있었던 터라 이번 그 중도를 더 강화하겠다는 것이 좀더 좌 편향을 적극화하겠다는 것인지, 무엇을 구체적으로 강화하겠다는 것인지 논의가 분분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현대국가의 정체성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질서로 결론이 난 상태이다. 유독 한국사회 만이 아직도 좌파니 우파니, 제 나름대로 이름 지어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논쟁의 잔재가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잔재 치고는 서로 죽기 살기로 대드는 형국을 연출하고 있다. 세계 13위 경제규모를 가지고, 세계에 완전하게 개방되어 있는 한국사회가 뒷전에 앉아 자기들끼리 이미 지구상에서 사라져버린 이념의 허상을 붙들고 서로 싸움질을 하고 있는 꼴이다.
이러한 한국의 이념논쟁은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훨씬 극렬하게 사회분열을 조장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스스로 사회의 그늘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좌파의 논리를 있는 자 없는 자의 논리로 발전시켜가고 있다. 있는 자를 타도하여 없는 자를 구제하자는 논리는 쉽게 공산주의 논리와 맥을 같이하며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공산국가체제인 북한 김정일 정권을 돕지 못해 안달을 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진보그룹이라고 자칭한다. 이미 흘러가버린 공산주의 사회주의 좌파사고의 미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그룹이 한국사회에서 스스로 진보라는 이름을 쓸 수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들 중 김정일 정부를 지향하는 친북세력을 제외하면 나머지 좌파그룹들은 사실 이념적 논쟁에서 분류되는 좌파가 아니고 현대국가 경영에서 제기되는 사회의 그늘을 보다 적극적으로 바로잡고자하는 그룹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들은 좌파가 아니다. 반면 우파로 대표되는 한국의 보수그룹은 일부 행동그룹이 존재하지만 그들을 제외한 많은 조용한 다수(silent majority)가 그저 보수로 통칭되고 있다. 보수그룹 중 일부가 국가우선의 극우세력으로 한국사회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보수그룹들도 사회 그늘의 치유를 중요시하고 이를 보다 개혁적으로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한국사회에서 좌파로 분류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나 우파로 분류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함께 현대국가경영에서 사회의 그늘을 해결해보고자 하는 같은 목적과 사회발전을 희망하는 같은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사회의 친소(親疎)관계나 타성적 행동이 서로 다를 뿐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 지금 존재하는 좌파 우파의 논쟁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는가? 여기에는 두 가지 초점이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일부 세력들이 자기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이런 이념갈등을 부추기고 있고 이런 놀음에 한국사회가 놀아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일부 소수의 친북세력의 전략전술이 사회를 이념갈등으로 의제시켜 혼란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친북세력은 있을지언정 한국사회에 종래의미의 좌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만일 이런 논리에 동의한다면 한국사회에서의 이념 논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한국사회에 이념논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강화론은 무슨 뜻일까? 첫째는 좌우가 없으니 중도일 수밖에 없다는 어법상의 해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말장난은 물론 아닐 것이다. 둘째 현실을 좌파와 우파의 대결로 보고 어차피 우파에 속한 이명박대통령이 보다 좌파적 사고에 가까운 리더십 발휘를 하겠다는 해석이 가능하여 질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많은 문제를 제기한다고 평가한다.
첫째 대통령에게 결례가 되겠지만 만일 대통령의 중도강화론이 둘째의 사고에서 출발된 것이라면 그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평가된다. 이미 사라져버린 좌파 우파의 이념논쟁을 더욱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둘째 이러한 중도강화론을 실현하기 위하여 서민중심의 정책을 보다 꼼꼼하게 챙기겠다는 발상도 너무 전근대적이라고 평가한다. ‘서민’중심의 말 자체가 벌써 있는 자 없는 자의 문제 접근임을 깨달아야 한다. 서민이 아니라 발전의 그늘을 해결하기위한 노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표현으로 되어야 하고, 서민에게 무슨 시혜를 베푸는 듯한 접근이 아니고 현대국가경영에서 우선순위가 발전의 그늘을 치유하는 것임을 천명하고 여기에 중점을 두는 접근이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 또 서민을 위한 정책을 보다 꼼꼼하게 챙긴다는 말은 지금까지 그것을 소홀히 하였거나 아니면 보다 적극적으로 있는 사람 우선의 정책을 펴 왔다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다. 대통령의 말씀을 가지고 말꼬리를 잡는 듯한 이야기가 아니라 리더십발휘의 접근자세를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셋째 대통령의 통합의 리더십 발휘를 위한 충정은 이해되지만 중도강화가 종래의미의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닌 것이 중도 인데, 보수는 내 텃밭이니 보다 진보 쪽으로 기울겠다는 발상이라면 이것이 통합의 리더십일까 의구심이 앞선다. 중도가 진보와 보수를 모두 내편일 수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또 모두가 내편이 아닐 수도 있음은 당연한 논리이다. 있지도 않은 이념의 중도가 아니고 국가경영에서 사회구성원의 통합을 추구하는 리더십 발휘가 가장 긴급한 과제라고 할 것이다.
넷째 사회 그늘진 곳을 보살피는 정책은 자유시장경제를 운영하는 한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취급되어야 한다. ‘시장은 경쟁으로, 경쟁탈락자는 정부가 보살피는 국가운영이’ 현대국가경영의 철학이 되어야 한다. 정부는 시장에서 경쟁이 보장되도록 규칙을 엄격하게 만들고 그 위반을 가차 없이 응징할 수 있어야 한다. 법질서를 엄격하게 지키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첫걸음이라는 인식을 모두 공유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경쟁탈락자에 대하여 경쟁력을 일으키는 능력을 배양하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교육 보건 주택 등 1차적 소득분배정책을 제대로 시행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보장 사회보호정책 등 2차적 분배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경제운영의 틀을 제대로 마련하고 그대로 시행하는 리더십 발휘가 대통령이 말하는 서민을 위한 것이 될 것이다.
다섯째 차제에 한국사회에서 더 이상 좌파 우파의 이념갈등이 사라질 수 있도록 북한 추종세력을 제외한 좌파인사와 사회개혁을 소리 없이 염원하는 우파인사들이 서로 추구하는 목표가 같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사회움직임이 생겨나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의 사회통합에 대통령의 리더십이 발휘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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