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31일 화요일

신뢰(Trust)가 바탕인 열린사회를 만들자

최근 국영방송인 KBS의 뉴스를 보면서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모 연예인과 관련된 성(性)과 연관된 뉴스가 마치 주간지 수준을 능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뉴스와 관련하여 우연히 처음 시작할 때 뉴스를 보았는데 기자가 쓰레기통에서 주었다는 소위 무슨 리스트인지 무엇인가를 무슨 큰 특종기사인 것처럼 매일 중요뉴스로 취급하기 시작한 것이 몇 주 째인지 모르겠다. 그것의 뉴스가치를 왈가왈부하자는 것이 아니라 도대체 온 집안 식구 들이 한자리에 앉아서 듣는 텔레비 뉴스에서 이런 낯 뜨거운 이야기를 아이들과 며느리들과 함께 계속 들어야 하는 가장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그런 인간들의 뉴스를 국민이 세금내서 만든 국영방송에서 앞장서는 것에 나는 분노한다.

반면 요즈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하여준 소식은 WBC에서 단합된 노력으로 2등을 한 한국야구선수단의 자랑스러운 활동이고, 지난 주말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하여준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 우승일 것이다. 지난 IMF 때 골프의 박세리가 한국인의 우울한 마음을 달래준 것처럼 이번에도 야구선수들이 그리고 김연아가 우리를 즐겁게 하고 한국인의 고달픈 삶에 의욕을 고취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회는 언제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 함께 있기 마련이지만 한국사회는 근대 발전사 가운데 1998년의 IMF를 시작으로 하여 10여 년 동안 어둡고 우울한 긴 시간의 터널을 지나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는 IMF와 대기성차관을 맺게 하였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확대해석하여 마치 한국경제가 IMF 식민통치를 받는 것처럼 이해시켜 한국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였다. 하루아침에 대문이 활짝 열린 한국경제는 밖으로부터의 충격을 완충시킬 마음의 자세도 경제제도도 갖추지 못하였다. 김대중정부의 아마추어적 전문성부족과 노무현정부의 사회주의적 정책접근은 한국경제를 긴 무기력의 터널을 지나가게 하였다. 연장선상에서 2008년 미국 발 세계적 경제위기는 한 번 더 한국경제를 강타하고 안 그래도 비실대는 한국경제의 몸체를 더욱 현기증 나게 만들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사회는 경제적 위기가 사회적 위기로 더 확대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사회적 위기를 학문적으로 분석할 능력은 없지만 일반론적으로 구성원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되는 힘의 총체적 집합이 점차 약화 쇠퇴되는 현상을 나름대로 사회적 위기라고 정의하고 그 현상을 문제화하고자 한다.

가장 손쉬운 설명이 소득격차의 확대를 들 수 있다. 한국의 소득분배는 역사적으로 모두가 어려운 가운데 비교적 형평한 분배상태를 유지하였고 지난 50여년의 집중적인 경제개발과정에서도 상대적으로 분배구조가 그리 악화되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한 한국경제의 분배구조가 지난 10여년 사이에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흔히 예로 드는 상위소득 20%와 하위 20%의 소득비율이 지난 1990년대 말에는 4배 정도이었던 것이 현재 7.6배로 지난 10여년 사이에 두 배로 악화되었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아졌음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금전만능의 풍조는 부(富)가 윤리 도덕에 앞서는 가치로 되어 사회적 규범들이 붕괴되고 돈 앞에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 앞에 법과 질서를 전제로 한 한국의 민주주의는 형식적인 통치방식으로 전락되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회의 대립과 반목은 확대되고 있다. 물론 현대사회의 다양성의 한 현상으로도 분석할 수 있겠지만 요즘 한국사회는 진보니 보수니, 지역, 씨족, 학벌 등등으로 분열되고 특히 후진적인 정치상황 속에서 이러한 대립과 반목은 사그라지기보다는 오히려 확대되는 모습이라고 할 것이다. 사회의 가장 작은 집단인 가정에서 가족이 해체되고 그 과정에서 출산은 줄고 자살은 빨리 늘어가고 있다. 한국사회의 위기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의 위기 촉발은 1차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에서 찾아야 한다. 실업이 늘고 내일에 대한 희망을 찾기 어려운 경제상황 하에서 사회는 더욱 위기의식이 확대될 것이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말대로 분배 없이 높은 성장을 해서 무엇 하겠느냐 하는 말이 나오게 되었고,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사회를 있는 자 없는 자의 문제로 이분화 하면서 없는 자를 위하여 있는 자의 것을 양보 받아야 한다는 사회주의적 발상이 뒤늦게 한국사회에 나타났다. 이러한 지나간 시대의 사고가 한국사회에서는 진보그룹으로 불린다. 반면 시장경제를 중시하고 경제의 세계화를 주장하는 것을 한국사회에서는 거꾸로 보수그룹으로 불린다. 이렇게 진보와 보수는 한국사회 구성원간에 대립과 반목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의 진보그룹들은 현대사회의 최고의 가치가 경제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무력에 의한 힘의 가치체계는 이제 경제 앞에 그 힘을 잃었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의 경제력은 비 미국의 그것에 버금 갈 정도로 확대되었고 아무리 미국의 재정적자가 커져도 달러가치는 당장 독야청청하다. 물론 한계가 있는 것이고 무한대로 갈 일은 아니지만 당장은 미국의 경제력 앞에 큰소리치기에는 다른 개별국가의 경제력은 제한적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또한 현재의 세계경제 흐름은 소위 글로벌경제를 배제할 수 없다. 좋던 싫던 세계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싸워 이겨야 번영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세계의 흐름 속에서 소위 ‘우리’ 나 ‘우리끼리’는 맞지 않는 가치이다. 오히려 모두가 함께 경쟁하고 함께 아우르는 열린사회가 현대사회라고 할 것이다. 우리끼리를 강조하면 할수록 현대사회에서 고립만을 자초할 뿐이다. 북한정권이 아무리 우리끼리를 강조해도 남는 것은 세계사회에서 낙후만 가져올 뿐이다. 결국 열린사회에서 살아 이기는 길을 찾는 것이 오늘의 우리의 삶이고 나라의 경영이고 사회의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우리끼리가 아닌 열린사회에서 사회구성원의 힘이 최대한 발휘되고 그를 통한 사회전체의 힘이 극대화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 길을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신뢰(TRUST)에서 찾았다. 현재 한국사회의 위기는 한국사람 사이에서 대립과 반목이 아닌 상호간의 신뢰의 회복에서 출발하여 한국의 야구선수들이 보여준 단합의 힘과 김연아가 보여준 최선을 다한 노력으로 세계 최고가 될 때 극복되고 비상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