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17일 화요일

한국경제의 상대적 우위성

어느 일간지 기사에 대한민국이 ‘엄친아’가 되었다고 보도한 것을 보았다. 엄친아는 엄마 친구의 아들이라는 말의 앞 글자인데, 그가 가지는 뜻은 잘생기고 훌륭한 남의 집자식과 우리집 아들을 비교하는 비유 은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자기 자식을 교육하고 추구하는 이상을 형상화한 이 말로 인하여 자기 집 아들은 경쟁심도 생기게 되고 때로는 좌절을 맞보기도 할 것이다.

한국경제가 종합적인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한 1960년대 이후 한국을 앞서간 많은 성공국가들의 사례를 발전의 모델로 원용하고자 노력하여 왔다. 가난이 세습화된 전통 농경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빠른 시간 안에 서구 선진국과 같은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을까 하는 한국경제의 욕심은 꿈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제2차대전 이후 패전국으로 황폐화된 당시 서독의 부흥을 한국경제는 기적으로 바라보았다. 소위 ‘라인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루드비히 에르하르트 독일을 보면서 당시 박정희대통령은 ‘한강의 기적’을 꿈꾸며 여기서 배우고자 노력하였다.

한국경제는 1970년 처음으로 10억불 수출을 이루었다고 뿌듯해 하고 있을 찰라 제1차 오일쇼크가 터졌다. 세계 선진국들은 모두 마이나스 성장을 하면서 고통을 감내하고 있을 때 일본경제는 유달리 에너지절략 정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였다. 그래서 GDP 한단위 생산하는데 들어가는 에너지 원단위 개념을 도입하여 그들의 말대로 ‘성 에너지’를 정책의 우선으로 하였고 이를 통하여 일본경제는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고 발전하였다. 그리고 제품생산에 생산성의 개념을 도입하여 임금정책이나 기술개발정책의 기본으로 하였다. 그 이후 먼 훗날이지만 일본은 2천년대 초 도하 아젠다로 추진하던 쌀 시장 연차별 개방 계획을 자발적으로 3년 앞당겨 시행해 버리고 말았다. 일본의 모든 정책의 밑바탕에는 ‘합리성’이라는 것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경제는 이런 일본의 합리성을 본받고자 경제운영자들은 애를 쓰고 있지만 지금도 한국의 에너지 원단위는 고 비용구조를 유지하고 있고, 쌀 시장 개방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제품 한 단위 생산에 들어가는 노동비용은 한국이 엄청나게 높다.

1970년대 말 한국경제는 무리한 중화학공업추진 후유증과 대통령 시해사건을 맞아 나라경제는 파산지경에 이르렀고 ‘서울의 봄’으로 표현되는 정치권의 혼란은 극한상황이었다. 1979년 영국수상에 오른 마가렛 대처는 원칙과 비타협의 상징으로 표현되는 ‘대처리즘’을 생산하였다. 불법 파괴행동을 일삼던 석탄노조와 불타협을 선언하고 재정과 통화증가율 계획을 미리 발표하여 그것을 지키는 일관성을 유지하였다. 한국경제는 이 대처리즘을 배우고자 하였다. 이것이 한국경제의 ‘종합안정화시책’으로 이름 지어져 1980년대 초 강력하게 추진되었던 경제구조개혁이었다.

1980년대 말 한국경제는 소위 민주화과정을 거치면서 경제정책은 많은 뒷걸음을 하였다. 노동자, 농민, 학생 등 이해관계인들은 허구한 날 데모를 하고 무두가 자기주장이 관철되는 날까지 투쟁을 계속하였다. 그중에서도 민주화세력으로 포장된 노동조합의 불법 파괴행위는 극을 이루었다. 네델란드, 아일랜드, 독일 등 유럽국가 들이 성공하고 있는 노동자 경영자 정부 등이 모여 이루어 낸 ‘사회계약’을 한국경제는 부러워했고 그것을 구체화시킨 것이 IMF 후의 노사정위원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합리성 부족으로 이 정책은 오늘날까지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1990년 10월 독일은 서독이 동독을 흡수하여 탄생하였다. 독일통일의 역사는 한국인의 꿈의 모델이 되었다. 서독의 동독 흡수통일은 오랜 시간동안 정치 사회적인 흡수노력을 한 결과이지만 그중 가장 바탕이 된 것은 서독의 경제력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다. 그 많은 통일비용을 감당하고 그러고도 통일 후 엄청난 부담에 시달인 독일결제를 보면서 한국인들은 서독의 경제력에서 통일을 배우고자 하고 있다. 현재 한국경제가 비록 많은 발전을 하였지만 남북통일을 감당하기엔 매우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통일은 무력경쟁보다는 경제력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한국은 독일에서 배우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미국경제는 소위 신자유주의를 바탕으로 세계 경제력의 절반을 차지하였다. IT, 소프트웨어산업, 금융산업 등을 통하여 월등한 위치에서 세계경제를 이끌고 있다. 지금 미국은 금융의 파생상품에서 비롯된 금융행위의 방종을 비난받고 있지만, 한편 이 부문의 경쟁력우위를 한국경제는 부러워하고 있다. IMF 이후 한국경제는 IT와 소프트웨어산업에서 괄목할 발전을 이루었지만 아직 미국의 수준에는 한참 멀었다. 금융산업은 더더욱 그렇다. 21세기 한국경제의 미래도 어차피 이런데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니 싫던 좋던 미국의 이런 분야를 벤치마크할 수밖에 없다.

그런 미국의 버락 오바마 새 대통령이 최근 한국의 성공사례를 인용하여 관심이 되고 있다. 그는 ‘미국 아이들은 한국아이들보다 1년에 한달 정도를 학교에서 시간을 덜 보낸다. 그렇게 해서는 21세기 경쟁에 대비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그는 또 ‘미국의 신형 하이브리드카를 움직이는 배터리는 한국산’이라고 지적하였다. 한국 내에서는 교육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아젠다인데 미국대통령의 시각은 한국교육의 시간 길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 측면에서는 옳은 말이라고 생각된다. 1980년대 초 미국의 한 연구기관에서 각국의 경제성장의 요인(source of growth)을 분석한 내용 중 일본이 당시 세계 선진국 중 가장 긴 노동시간을 가진 것이 경쟁력의 원인이라고 분석하였던 것이 기억된다. 현재 한국경제의 우위도 노동시간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근면성이다. 현재 한국경제는 첨단제품 생산에 차지하는 외국의 특허료 부품비등의 비중이 높아 부가가치나 더 나아가 수입수요의 경직성을 가져오는 한 원인이 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 어느새 미국 자동차를 비롯한 첨단제품 생산에 들어가는 부품 중에 일부가 한국제가 되고 있음은 새삼 격세지감과 함께 가슴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998년 IMF 때는 그렇게 기세등등하게 시장경제의 원칙을 외치며 한국경제를 벌거벗겨 세상에 내어놓았던 미국이나 IMF 가 지금은 안면바꾸고 시장지원과 간섭을 나서서 하고 있다. 그러면서 현 세계적 경제위기 극복에 한국의 리더십과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 한편 아니꼽지만 이것이 국제사회에서의 힘의 질서인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한편 오는 4월 초 런던의 G20 회의에서 의장국의 일원으로서 한국경제의 리더십 발휘가 기대되는 시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한국이 오만할 입장이 아니고 오히려 자세를 낮추어 국익을 챙기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이다.

한국경제의 우위성이 이렇게 하나 둘 나타날 것을 기대한다. 그러면서 반성할 것은 한국 사람 가운데 얼마나 적은 사람들이 이 어려운 일을 해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오히려 어렵게 만들었는지를 생각해 본다. 그래도 한국이 이렇게 잘하고 있다고 지적되는 것이 이 어려운 때에 얼마나 가슴 뿌듯한 일인가. 한국경제의 우위성을 살려나가고 용기를 가지고 오늘의 경제위기를 이겨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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