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7일 금요일

쌍용차 노사 극적타결의 함정

지난 5월 22일 시작된 쌍용차 노조의 공장점거 불법파업은 회사폐망의 백척간두에서 노사가 극적 타결을 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근 3개월에 걸친 노조의 공장점거 농성은 민노총 등 외부세력의 충동 속에 불법 파괴 폭력 등 갖은 나쁜 방법으로 근로자 가족은 말할 것 없고 평택시민 그리고 온 국민을 안타깝게 만들면서 진행되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현장의 사진들이 뉴스에 비추어질 때 안타까움과 함께 온 국민이 공포와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더욱 가관인 것은 국민의 대의기관인 민노당 국회의원들이 농성장에 동참 연좌하면서 ‘구조조정 해고 반대’를 외쳐대고 있었다. 오죽하면 근로자 가족들이 농성장에 나와 제발 민노당 좀 물러나 달라고 애원(?)하고 있겠는가? 그들이 거들어 도움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사태를 망가트릴까봐 하는 가족들의 안타까운 요구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일개 회사의 일 그것도 불가피한 구조조정을 하여 회사를 회생시키고자 하는 법원의 관리를 제3자가 해고(layoff)를 하지 말라는 등의 말도 안 되는 요구사항을 가지고 정치권이 불난 집에 부채질 하며 달라붙어 있다. 노노간의 폭력이 진행될 때 어느 국회의원이 두들겨 맞고 있는 모습은 국회의원으로서의 품위고 무엇이고 없는 사람들 같았다. 국회의원이 무어 그리 대단한 존재인가? 종북좌경(從北 左傾)정당의 자기 설자리 마련을 위한 행동쯤으로 일반인들에게 인식되어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니 내가 국회의원이라고 외쳐대도 그를 향한 방망이는 그치지 않고 두들겨 패 그를 병원으로 보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일과 관련하여 두 가지 잘된 부분이 눈에 뜨인다. 하나는 법정관리인의 의연한 소신 지키기이고, 다른 하나는 경찰력의 세심하고 인내심 있는 행사였다고 할 수 있다. 막무가내기 식 농성 에서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불상사를 경찰은 잘 참고 잘 관리하여 막아내었다. 용산 참사와 대조를 이룬 결과를 놓고 경찰지휘자들이 칭찬 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잘못되었다고 판단되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것은 언론에서 사용하는 표현으로 마지막 순간의 ‘극적타결’이다. 이것은 극적타결이 아니고 노조의 투항이다. 더 이상 견딜 수 없고 옆에서 충동질 해대던 전문 농성꾼들은 어느새 핫바지 무엇 새나가듯 없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자 노조는 새로운 제안이라고 해서 법정관리인이 당초 제시한 고용조정안을 수용하는 타협을 받아드린 것이다. 이것을 노조의 체면을 세우기 위함인지 모르지만 극적타결이라는 이름으로 끝맺음을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사회에 두 가지 다짐이 있어야 하겠다.

첫째 극적타결이라는 미사여구를 이런데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불법농성을 할대로 다 해놓고 회사 기물을 다 파괴하고 회사의 이미지를 땅에 다 떨어트려 놓고 더 견딜 수 없어 투항하는 노조를 놓고 최후순간 극적타결을 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타협은 좋다. 처음부터 그리 했어야지 자기들 처지가 견딜 수 없으니 갖은 못된 짓 다해놓고 이제 타결로 해서 내 체면을 세워달라고 하는 것은 패장으로서 도리가 아니다. 파렴치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의 노사갈등의 결말이 이런 식으로 결말이 나니 잘못한 사람이 전연 손해 볼 것이 없는 모순을 가져왔다.

관련은행에서도 관행대로 타결 직후 1000억원의 구조조정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들고 나오고 있다. 저렇게 회사의 기물이나 이미지가 손상 될 대로 다 된 회사에 극적타결이 이루어졌다고 즉시 지원하겠다고 나서는 은행장은 정신 있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현시점에서 다시 따져보고 지원여부를 정해야지 노사타결만 되면 지원하니 회사 경영진이나 노조는 손해 볼 일이 없게 된다. 구식이다.

이것이 한국노사문화의 잘못된 관행이라고 평가한다. 노조의 존재나 그 정당한 활동을 폄훼하자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노조는 권력기관이다. 그 권력기관이 잘못하였을 때도 언제나 그들의 체면만 세워왔기 때문에 한국의 노조활동이 이렇게 과격 불법화된 것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경찰이 노조 직접책임자의 처벌을 들고 나온 것은 당연하고 잘하는 일이라고 평가해야 한다. 법에 따라 엄정한 처벌이 따라야 하고 그에 상응하여 노조에 철저하게 손해가 가도록 조치되어야 한다. 뉴욕지하철 노조의 파업에 법원이 노조가 상상할 수 없는 피해보상을 명령한 본보기가 한국에서도 나와야 한다.

둘째 발전된 민주사회에서 ‘극적타결’이라는 용어가 시장에서 사라져 주기를 바란다. 언론에 이런 용어를 사용하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운영에서 전제되는 것이 상호간의 타협이다. 그 타협이 미리미리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지 극적으로 마지막 순간에 이루어진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극적이라는 말 자체가 마지막 순간을 상정한다. 세상 일이 이런 불가피한 경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라면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비용(cost)이 필요했을 것이겠나? 경쟁력의 측면에서 이것은 고비용을 전제한다.

극적이라는 말은 타협보다는 경직된 사회구조 속에서 어떤 권력자의 인위적 개입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독재적 정치권력구조나 독과점적 대기업주의 경직된 경영구조에서 극적타결이라는 형식을 빌려 사안을 극화하고 미화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한국사회는 그런 사회구조가 아니다. 전연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와는 많이 변하였다. 마치 비민주시대의 잔재와 같은 극적타결이 점점 줄어들고 그런 표현이 언론에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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