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3일 토요일

가치관의 혼돈(anomie)에서 벗어나자

1. 사회적 갈등의 표출

한국사회는 개발연대와 민주화과정을 지나면서 여러 형태의 갈등이 잉태되었고 그것이 하나의 현상으로 구조화되어 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갈등구조는 IMF 이후 소위 좌경정부를 지나면서 보다 조직적으로 그리고 양성적으로 표출되어 한국사회에 하나의 힘의 도그마로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폭력적 노동운동, 광우병촛불시위, 면책특권을 빌미로 깡패나 다름없는 국회의원의 폭력행위 등을 단순한 사회갈등의 표출로 볼 것인가? 아니다. 이런 행위들은 사회적 갈등구조 표출의 주변에서 비슷한 탈을 쓰고 자기이익을 챙기기 위해 떼를 쓰는 행위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힘의 도그마 즉 사회갈등구조 속에서 약자의 가면 속에서 제 잇속 즉 경제적 또는 이념적 잇속 등을 챙기기 위하여 권력을 휘두르는 이런 현상을 현재 한국사회가 겪고 있다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사회발전과정에서 생성된 갈등구조의 자연스런 표출이 아니라 제몫 찾기에 눈이 먼 집단들의 집단행동이고 이것을 하나의 긍정적 사회발전과정으로 호도 미화하는 것은 실체파악의 착각이며 구시대적 안목이라고 평가한다.

2. 가치관의 혼돈

2010년 새해 들어 대한민국법원은 몇 가지 의미 있는 판결을 내어놓았다. 하나는 강기갑이라는 국회의원의 국회 내 폭력행위를 무죄로 판결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말썽 많던 MBC의 광우병 관련보도에 대한 무죄판결이 그것이다. 앞에 것은 국회의원이라는 자가 자기 분을 못 삭여 그랬다는(자기변명) 소위 ‘공중부양’을 하며 국회기물을 파괴하고 공무집행을 방해한 희화적인 사건이다. 뒤에 것은 광우병과 관련 없는 다우너 소의 처리를 영상화하여 마치 미국 쇠고기가 광우병에 걸려 있는 소를 도축하여 판매될 가능성이 있음을 그리고 또 다른 병으로 죽은 어느 미국인의 사인이 마치 인간광우병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 보도를 의도적으로 제작보도한데 대한 사기 명예회손 등의 사건이다.

이들 사건들을 맡은 단독판사들은 모두 무죄를 선고하였다. 판결이유는 강기갑 폭행은 공무집행을 방해할 의도가 없음을 이유로 하였다. 국회사무처장 방에서 방방 뛰는 그의 공중부양(?)이 공무집행에 방해가 안 되었다면, 그 뛰는 행위가 소리도 안 나고 새털처럼 조용해서 그 방에 있는 사람의 일에 전연 방해가 되지 않았다는 말인지 그 판사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그런 한량없는 너그러움이 발현될 수 있었을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또 사진에 명확하게 채증 된 국회 기물파괴는 어떻게 무죄가 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일반인이 그런 행동을 하면 죄가 되고 국회의원이 그것도 법을 만들고 그래서 누구보다 그 법을 잘 지켜야 할 책임이 있는 국회의원의 시정잡배만도 못한 국민재산 파손행위는 너그럽게 용서될 수 있는 것인지 판사는 답을 해야 한다.

MBC 광우병관련 판결은 더욱 가관이다. 필자가 제일 주목하는 판결이유 중 하나는 다우너 소 처리가 도축의 과정인지 불분명하므로 비록 그것이 도축되어 판매되었다하더라도 그것이 광우병과 관련 없는 것인데, 마치 다우너 소가 광우병에 걸린 소이고 그것을 미국은 도축하여 판매하는 것을 연상시키는 화면을 방송하였는데 그것이 의도적인 사기가 아니라는 판결을 하였다는 점이다. 이것도 방송당시에는 다우너 소인지 광우병 소인지 몰랐고 방송 후에서 그것이 단순한 다우너 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더구나 사인이 규명되지 않은 어느 여인의 죽음이 인간광우병을 연상시키도록 제작된 방송내용에 대해서도 사인규명이 방송 후에 인간광우병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으므로 방송당시는 사인이 불분명하였으므로 의도적인 사기가 아니라고 판결하였는데, 그러면 아무 관련 없는 사진들을 마치 관련 된 것처럼 만들어 보도한 그 방송내용이 단지 사인규명이 사후에 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죄가 된다면 공영방송의 책임은 어데서 찾아야 한단 말인지 판사는 답을 해야 한다.

법률가가 아닌 상식인의 입장에서 법관의 법해석과 판단의 결과를 왈가왈부하기는 어렵다. 전문영역에 속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상식인 들도 법철학의 근본이 상식(common sense)에 있음을 안다. 그렇다면 최근 사법부가 판결한 일련의 사건처리가 일반인의 상식에 부합하는 것이었는지를 논해보아야 하겠다.

첫째 이런 중요한 사건을 왜 단독판사들이 하는지 일반인은 이해하기 힘 든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대로라면 민감한 사건을 합의재판에 넘기면 합의과정에서 여러 잡음이 날 가능성이 있어서 이를 피하기 위하여 단독판사에게 넘겼다고 한다. 사실 여부는 외부에서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면 단독으로 판단하는데서 오는 독단이나 오류는 민감한 사건에서 왜 고려되지 않는지 일반인은 이해하기 어렵다. 또 언론에서 이야기가 많이 나오자 대법원에서는 일심판결을 가지고 무얼 그러느냐는 커멘트를 내어 놓았다. 물론 복심제이고 일심판결이 상급심에서 변화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판사의 판결은 확정력이 있는 것이고 판결의 오류를 전제로 상급심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단독판사가 한 이 판결이 오판일 가능성이 있고, 상급심에서 논할 수 있는 것 아니냐 하는 대법원의 의견대로라 하면 왜 애시 당초 신중한 처리를 위하여 합의재판부에서 신중한 검토를 할 것이지 단독판사의 결정으로 혼란을 자초하는지 법원의 행정절차를 이해할 수가 없다.

둘째 깡패나 다름없는 아니 그보다 더 저질적인 강기갑 폭행행위를 업무방해도 아니고 국회시설물을 파손하는 행위도 죄가 없다고 하면 무엇이 죄가 되는지 법의 상식으로 묻지 않을 수 없다. 제 분에 못 이겨 방방 뛰었다고 본인은 변명하는 모양인데 그가 자기 집 안방에서 방방 뛴들 누가 탓하랴. 국회사무처장이 집무하고 있는 방에 가서 탁자 위로 공중부양하는 해학적인 추태를 보여 놓고 그것이 제분에 못이긴 행위이니 공무방해가 없고 죄가 없다고 할 수 있는가? 보도에 의하면 도끼를 들고 국회 문을 부스는 사진이 공개되었는데 그것도 죄가 없다? 만일 판사 집 대문을 부순다 해도 그것은 별 일 아니라고 그렇게 너그러운 말을 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국회기물은 국민의 세금이다. 법을 누구보다 지켜야 할 입법기관이 기물을 파괴하는 행위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지 법의 상식에 맞지 않는 판결이라고 하지 아니할 수 없다.

셋째 MBC PD수첩사건은 법의 상식으로 더욱 이해할 수 없다. 다른 무엇보다 사실판단에서 연상될 만한 사진을 내어보내면서 그것을 보면 누구나 쉽게 광우병 쇠고기 판매나 인간광우병 발생 가능성을 생각하게 만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내용이 보도 이후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였으므로 악의적인 사기성이 없다는 판단이다. 사기죄나 명예회손죄의 성립요건을 여기서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판사들의 기술적 영역이다. 다만 이런 사실판단을 하는 것이 법의 상식에 맞는지를 따지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사실판단을 한다면 ‘나는 몰랐다’하면 모두 무죄가 된다. 모름의 귀책이 사회에 있지 당사자에게는 없다면 이런 세상살이는 참 편리하고 무서울 것 같다.

일반 매체에 대하여 그 잘 난체 잘하는 공영방송의 책임성은 어디 갔나? 내가 하면 이런 무책임성도 좋고 네가 하면 안 되는 이런 논리 아닌가? 사실 PD수첩방영을 보면서 중고등학교 어린 학생들이 미국쇠고기 먹으면 저렇게(인간광우병이라고 연상되는 여인의 죽음 화면) 된다고 울고 있던 뉴스를 판사는 보지 못했나? 법의 상식에 맞지 않는 판단이다. 그런 것들을 어느 개인이 사적인 장소에서 주장했다면 죄가 되겠는가? 안 될 것이다. 심지어 일반 상업방송에서 했다고 해도 좀 뜸을 들일 수 있는 여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MBC는 공영방송으로서 그 책임성이 다른 차원으로 판단해야 법의 상식에 맞는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사실 왜곡을 담당 작가가 지적까지 하였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왜곡보도를 한 것을 어떻게 당시 몰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면탈 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넷째 이러한 일련의 사건처리에 있어서 법의 상식에 입각한 공정한 판결보다는 재판부 스스로 이런 사건들을 사회 이념적 갈등사건으로 윤색하는 듯한 그래서 보다 진보적(?)인 입장에서 현실을 판단하고자 하는 것 아닌지 하는 오해를 부르게 한다. 한국사회는 사회갈등구조 속에서 약자의 입장을 감싸는 해법을 많이 찾아가고자 하였다. 경제개발과 민주화과정에서 옳은 방향의 사회발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일들이 훗날 한국사회에 ‘힘의 도그마’로서 활용되어 왔고 그것이 오늘날 사회의 많은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파괴적 노조활동이 그렇고 교권에서 벗어난 일부 전교조활동들이 그렇다. 일부 NGO를 표방한 사회운동이 그렇고 국익을 팽개친 정치권의 제몫 찾기 투쟁이 그렇다. 또한 과잉농업보호활동들이 그렇다. 대형노동조합, 전교조, 사회운동조직, 농민회 그리고 정치운동가들 모두가 이제는 약자가 아닌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이 센 집단이고 지난 발전의 혜택을 많이 받은 집단들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세월 그들의 사회활동을 약자를 돕는 입장에서 한국사회가 많은 지원을 하였다. 그 지원에 사법부는 큰 기여를 하였다고 할 수 있다. 배고픔을 안쓰러워하고 핍박 받음을 애써 돕고자 하여 왔다. 그런 사법부의 지원을 진보적인 판단이라고 평가하고 지지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이들이 가장 권력이 센 집단이고 그 떼를 쓰는 양상이 도를 넘는 경우가 많다. 이 도를 넘는 활동을 진보적 이름으로 관용 내지 지원하는 입장에서 법원이 판단한다면 이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필자는 평가한다. 이번의 판결이 이런 범위 내의 것인지는 아직 판단을 유보해야 하겠지만 법의 상식으로는 맞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앞으로 이번과 유사한 판결이 남아 있다고 언론은 전한다. 시국선언을 한 전교조 교원에 대한 평가가 그것이고, 공무원노조설립과 관련된 사법부의 판단이 현안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어떤 경우이던 법의 일반적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 판단을 법원을 하여야 할 것이다.

다섯째 한국사회의 가치관이 혼돈된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사법부 판단에 대하여 사회는 보수와 진보진영으로 대치하며 극렬한 상대방 비난 평가가 나타나고 있다. 이를 앞장서 정치권은 여는 보수를, 야는 진보의 편에서 서로 상대방에 대한 비난을 퍼부어 대고 있다. 급기야 검찰과 사법부의 대결처럼 나타나자 양 기관은 애써 이를 봉합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다. 당연히 그리 되어야겠지만 현재의 상황으로 한국사회는 가치관의 혼돈(anomie)으로 빠져들고 있는 양상이다. 일반인의 법의 상식과 거리가 있는 판결을 보면서 많은 한국사람 들은 스스로의 가치관에 혼돈을 경험하게 된다. ‘내가 무엇 잘못 생각하고 있나?’를 반추하면서 이것은 아닌데 하는 판단의 혼란을 스스로 경험하게 된다고 본다. 일부 사고와 행동에서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야 언제나 있게 마련이지만 내가 속해 있는 다수(majority)그룹의 가치관도 이런 것인지 의문과 회의가 생기게 될 것이다. 이것은 진보 보수의 이념적 갈등 이전의 개인의 가치관에 대한 혼돈이라고 필자는 평가한다. 도대체 무엇이 옳은 것인가? 사회는 이런 혼돈을 빨리 수습하고 옳고 글음의 가치관을 명확하게 해 주어야 한다.

3. 미래의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사회

그래서 정치권에서는 사법제도개혁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니까 대법원은 사법권독립을 굳건하게 지키겠다고 하고 야당에서는 여당의 사법권침해를 비난하고 있다. 이러한 일이야 당연한 일처리 수순이겠지만 이것은 일반국민의 관심권 밖이라고 생각한다.
문제의 해결은 사법부 구성원들의 올바를 가치관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느냐에 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발전된 나라일수록 사법부 구성원의 성향에 민감한 관심을 나타낸다. 그 구성원의 이념과 판단이 일반인의 가치관에 부합하느냐 여부가 매우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법부가 법집행의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에 그 구성원의 가치관이 일반인과 다를 경우 상식이 통하지 않고 더 나아가 개인 개인의 가치관의 혼돈을 가져오게 한다. 그것을 대법원장은 깊이 생각하야 할 것이다.

언제 어느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발전된 사회일수록 사회구성원으로 하여금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것을 위하여 한국사회는 지금 잉태하고 있는 가치관의 혼돈에서부터 빨리 벗어나야 한다. 21세기는 탈 이념시대이다. 보수 진보의 이념적 가치기준은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지구촌이 열린 마음으로 경쟁하고 거기서 번영을 구가하는 것이 오늘의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다.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아집에서 벗어나 지구를 아니 우주를 끌어안는 한국사회가 되어야 한다. 한국은 국운융성기에 있다. 이 기회에 한국사회가 세계 속에서 번영을 구가하기위해서는 한국인 모두가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갖게 해야 한다. 갈등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법부도 여기에 동참해야 한다. 아니 앞장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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