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8일 수요일

자유시장경제질서와 사회적시장경제질서

   대한민국 헌법은 23조에서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하고, 119조 1항에서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나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하는 '자유시장경제질서'를 천명하였다. 동시에 헌법 23조 2항과 119조 2항은 재산권의 행사나, 자유시장경제질서에서 권리행사의 한계를 제시하였다. 즉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하는 사회적 구속성의 원리를, 자유시장경제의 유지에서도 국가적 규제와 조정을 정당화하는 사회성의 원리를 토대로 한 사회적시장경제질서(헌법재판소, 성낙인서울대교수)를 천명하였다.

   여기서 거론되는 자유시장경제질서와 사회적시장경제질서는 상충적 개념이라기 보다는 상호독립적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시장경제질서의 본질이 자유경쟁의 원리를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재산권의 행사제한이나 시장질서 유지에 국가의 규제와 조정을 정당화하는 질서의 사회성을 동시에 천명하였다고 할 수 있다.

   상호보완적이라기 보다는 시장경제질서의 원활한 발전을 도모하는 독립된 개념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개념적으로는 자유시장경제질서가 주(主)의 개념이라면 경제질서의 사회성은 종(從)의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주와 종의 관계가 서로 상충될 때 어느것이 다른 것을 우선하기보다는 상호영역을 지키면서 상대방을 존중하는 관계임을 헌법재판소는 판시하였다. (헌법재판소 2006 헌바: 기본권침해를 정당화할 수 있는 모든 공익을 아울러 고려하여 법률의 합헌성 여부를 심사하여야 한다)

   헌법 119조의 2항은 자유시장경제원리에서 보면 많은 문제를 스스로 안고 있다. 자유경제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기 위하여 보다 구체적인 조건을 적시하는 듯한 제 2항의 문구는 요즘의 시각에서보면 해석상 많은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고, 그것이 제1항과 어떤관계를 가지고 운용되어야 하는지가 불분명하다. 개념적 주와 종의 관계라기보다는 상호독립적이다. 그러니 서로 상충될 때 해법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이에대한 법률적시비는 본고의 영역이 아니다.

   작금 한국사회에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소위 '경제민주화', '보편적복지' 등의 정치담론들이 다 헌법 119조 2항의 법률적개념에 토대를 두고 시작되어 사회체제 전체를 넘나드는 이념적담론으로까지 발전되어가고 있다. 논의의 한계를 살펴보고 그리고 해법을 찾아보는 순서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우선 논의의 본원지라 할 수 있는 헌법 제 119조를 그대로 옮겨보자.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는 자유시장경제질서의 기본철학이다. 그리고 2항은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로 되어 있다. 1항에대한 한계랄까 예외를 이야기할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보다 구체적인 경우를 적시하기위하여 말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1987년 만들어진 헌법조문이니 요즘 개념으로 보면 진부한 표현들이지만 지금 그것을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이 조항을 대표하여 소위 경제민주화가 정치담론으로 나오게 되었다고 할 것이다. 경제민주화의 개념이 확대되어 '사회적공평성'으로 발전되었다. 무엇이 사회적 공평성을 저해하는가? 경제력 격차다. 그 경제력 격차의 중심에는 대기업, 재벌이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사회적평등성'으로 가다보니 복지가 누구에게나 같은 내용의 행복을 보장받는 평등성으로 발전하여 '보편적복지'가 정치담론으로 발전되었다.

   여기서 제기되는 첫번째 문제가 주(主)와 종(從)을 어떻게 개념화해야 할까 하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로 대표되는 119조 2항은 자유시장질서를 천명한 119조 1항의 예외 내지는 한계에 속하는 종의 개념에 속한다. 따라서 경제민주화를 강조하여 자유시장질서를 기본적으로 망가트릴 수는 없는 경제민주화의 한계를 우선 인식해야 한다. 경제민주화를 위하여 재벌을 해체하고, 응징하고, 경제활동을 직접 제한하는 그런 행위는 할 수 없다는 논거가 여기에 있다.  총액출자제한이나 순환출자금지 또는 주권행사의 제한을 법률로 제한하는 데는 이런 한계가 있다. 헌법 119조의 1항(주) 과 2항(종)이 주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해결책은 없는 것인가? 포괄적이기는 하지만 공정거래법상의 불공정거래행위 제한 제도의 운용을 보다 확대하고 탄력적으로 하여 문제해결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재벌응징의 타당성 논거인 계열기업이나 중소거래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불공정 부당행위는 공정거래법의 운용을 보다 엄격하게 집행함으로써 많이 해결될 수 있다. 순환출자나 주권행사의 제한을 법률의 제정이나 개정을 통하여 이루려 하기보다는 앞에 이야기한 불공정거래행위 제한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하거나, 그것도 부족하다고 인식될 경우  주거래은행제도를 통하여 금융정책에 입각한 규제를 부활하는 것이 오히려 현재 정치권에서 추진하는 법률적제재보다는 낫다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외국의 예에서 보거나 우리 헌법119조의 해석으로 보나 자유시장경제질서를 지키면서 대기업들의 부작용을 치유하는 길이 될 것이다.

   물론 이정도의 제도적 장치로는 부족하다. 원천적으로 재벌 내지 대기업 오너의 의식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말처럼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1인독재, 영구집권을 정치에서 금기하는 것이 예상되는 독재 폐해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활동은 이것이 불가능하다. 결국 오너의 의식전환이 필요한 대목이다. 한국재벌 오너들의 권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임기가 없는 그들의 눈에 정치권이나 언론들이, 아니 대통령인들 무섭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그런 딕테이터십은 없을 것 같은 내부통제 앞에 새로운 파라다임의 전환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일지 모른다. 여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문제와 관련하여 3가지 해법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첫째 재벌 오너들은 법률상 기업지배구조가 터무니없는 불공정거래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이건희 삼성회장이 우호지분을 합하여도 불과 17%의 지분을 가지고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한다고 한다. 이것은 오히려 낳은 편으로 불과 5%내외의 지분을 가지고 기업을 지배하고 있는 재벌오너의 지배구조를 공정거래 차원에서 오너 스스로 문제인식을 가져야 한다. 계열기업이 없는 중소기업의 오너가 경영권 확보를 위하여 피나는 노력을 하는 것을 역지사지해야 한다. 순환출자가 현실적으로 불가피함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작은 비율의 주식분포 만 가지고 전횡의 권력울 행사하는 현실 앞에 재벌의 오너는 겸손해져야 한다.

   둘째 재벌의 탐욕성(greediness)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 재벌의 오너가 갑자기 성인군자가 되라고 할 수는 없다. 또한 재벌의 내부경영구조가 이익이 있는한 시장 참여는 확대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골목상권의 침탈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두가지를 생각해보자. 소위 끝없는 재벌의 시장참여확대 종착역은 어디일까? 재벌과 비재벌의 투쟁으로 가게 된다. 누가 이기나? 처음은 재벌이 이기겠지만 종국적으로는 재벌이 망하게 된다.

   명색이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의 딸들이 루이비통등 명품장사를 그 아버지의 경제권력으로 휘어잡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이뿐이랴. 재벌이 아이스케이키 장사를 하고, 식당을 하고, 커피전문점을 하고.....이런 무분별한 시장확장이 재벌이 아닌 나머지 시장들은 어떻게 받아드리게 되나? 이 길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계열기업의 납품을 계약서도 써주지 않고 받아놓고, 자기들 형편에 맞는 시기에 자기들 입에 맞는 가격으로 일방적으로 정하여 대금을 정산하는 대기업의 횡포는 얼마나 갈까? 그 종착역은 어디일까? 결국 대기업의 탐욕은 시장을 망가트리고 국민경제를 쇠퇴시킨다. 그리고 종국적으로는 새로운 시장의 세력 앞에 재벌 자체가 파멸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탐욕의 문제를 기업 오너들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기업가들 사이에 사업의 영역(나와바리)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아무리 내가 힘이 있어도 자기에게 가당치 않은 영역은 범접을 금한다고 한다. 경제학적으로야 그만큰 도전(challenge)이 적다고 할 수 있지만, 다른면에서는 전문성과 집중이 가능하게 되는 경영형태라고 할 것이다. 그보다는 대기업 횡포라는 문제의 자연스러운 해결책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셋째 재벌의 윤리성(virtue)의 문제를 성낙인 서울대 교수는 제기한다. 가진자의 사회에 대한 자비(mercy)가 아니라 도덕성 윤리성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한다. 대기업 오너들이 변칙상속을 위하여 불법 내지 법의 일탈행위를 한다던가, 자식에게 부와 함께 경영권을 물려주기 위하여 변칙적인 행위를 하는 것을 사회가 엄격하게 응징하여야 한다. 돈을 바탕으로 일반인보다 특별대우를 받는 행위는 도덕 윤리성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현재 한국경제에서 소위 재벌총수라 불리우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자기 선대로부터 부와 경영권을 함께 물려받은 사람들이다. 경쟁의 원리에서 원천적으로 일탈된 이들이 올림픽이다 무어다 해서 체육계 등에 지원을 맡았다 해서 그게 윤리성 부합여부의 논의를 희석시킬 수 있는 일은 못 될 것이다. 고용을 늘리고 수출을 늘리고 부가가치를 높이는 이런 경제활동은 물론 평가받아야 할 덕목이지만, 만일 그 뒤에 감추어진 계열기업에 대한 착취나 불공정행위를 하였다면 아무리 앞의 일이 칭찬받을 만한 것이라도 그런 재벌은 지탄의 대상이 되고, 윤리도덕면에서 그들의 존재를 정당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상에서 자유시장경제질서를 보완하는 사회적시장경제질서의 확립을 위한 법률적, 논리적 해법을 찾아 논의하여 보았지만 결과는 오히려 어떤면에서는 혼란스런 이야기만 된것 같기도 하다. 그만큼 현실적 해법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은 오히려 경제민주화의 모호성를 딛고 보편적 복지문제로 확대 승화된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완할 의무를 진다'라고 하여 개인의 행복추구권이 헌법상의 권리임을 명시하였다. 보편적 복지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여기에 제한적 개념이 선별적복지로 해석될 수 있다. 전자가 총괄주의(universal ism)라면 후자가 선별주의 (selective base)이다.

   보편적 복지는 국민의 행복추구권에 입각하여 국민 누구나 복지를 향유할 권리를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논거가 된다. 여기에 수반되는 재원 확보를 위하여 부자증세에서 재벌해체에 이르기까지 넓은 정책제시가 넘나든다. 이것이 더 나아가 행복보장의 평등성으로 사회주의 실현의 장느까지 확대될 수도 있다. 선별적 복지는 재원확충의 현실적 제약을 전제로 한다. 영유아 지원, 초중등학교의 급식비 지원등이 여기에 속하는 정책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개념적 분류는 사실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국가는 국민의 행복추구를 뒷밭침해야 할 무한책임이 있다. 그렇다고 능력이 따르지 않는데 무턱대고 한없이 복지만 추구할 수는 없다. 따라서 선벽적복지는 보편적복지의 현실적 능력의 한계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이것을 '보편주의 바탕위에 선별적 원리가 결합된 '선별적 보편주의(selective universal ism)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런 당연한 복지정책이 왜 이렇게 심각한 정치담론으로 승격되었는가? 여기에는 정치권의 인기영합주의(populism)가 문제가 된다.  사탕발림처럼 시작된 복지논쟁은 만인평등의 복지로까지 번져나가게 된다. 복지평등은 사회평등을 지향하여 사회주의 국가건설을 이념화하기까지 한다.

   1980년대까지 개발이론에서 근간이 되었던 소득분배정책(income distribution policy)은 이제 빛을 잃은 것 같다. 1차적 소득분배정책은 소득원을 함양하는 정책이론으로 교육, 보건, 주택, 직업훈련등이 기본이 되었다. 앞으로 닥아올 다음세대에게 부를 이룰 수 있는 원천(소득원)을 함양하자는 이론이다. 그리고 2차적 소득분배정책이 조세나 재정을 통한 소득이전을 추구하자는 정책이다. 이는 경쟁실패자, 노약자 등 사회부조가 필요한 계층에 대한 정부지원을 확대하자는 이론이다. 1990년대까지 한국경제정책의 기본은 바로 이 소득분배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경제가 이런 소득분배정책을 이제 폐기할 단계에 와 있는가? 아니다. 아직도 1차적 소득분배정책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제기되는 단계에 있다. 소득원을 함양하기 위하여 교육, 보건, 주택등 확대되어야 할 정책분야가 한없이 많다. 조세를 통한 소득의 2차적분배나 재정지원도 확대 발전되어야 할 정책분야이다.

   이런 경제정책의 기본은 다 없어지고 오로지 나누어먹기식 복지정책에 매몰되어 있는 것은 정치권으로부터 만들어진 폐해라고 할 것이다. 선심성 복지정책에의 매몰은 한국경제를 원천적으로 망가트리는 우를 범할 가능성이 있다. 우선 능력 밖의 복지수준 확대는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력을 괴멸시킬수 있다. 더 나아가 남의 것을 뺏어먹기에 매몰된 국민의 종착역은 어디겠는가? 결과의 평등 만을 지향하는 사회는  경쟁의 동기를 잃게 되어 파멸되게 된다.

    이런 무서운 결과를 의식하지 않은채 지금 한국의 보수 진보, 여야를 막론하고 보편적복지의 포퓨릴즘에 빠져 있는 형국이다. 한국경제가 오늘 이만큼 된 원인을 살펴보고 한번 더 도약할 것을 꿈꾸는 정치인이 나와야 한다. 그런사람이 국가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음수사원(飮水思源)의 자세가 필요한 오늘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사회에 밀물처럼 몰려온 경제민주화, 보편적복지 담론은 정치권의 인기주의의 구실이 아닌 한국경제가 지향하고 추구해야 할  원천적 과제이다. 이것은 정치에 이용 되는 얕은 꾀의 대상이 아니다. 항차 사회파멸의 음흉한 전략의 대상으로 접근되어서는 더더욱 안 될일이다. 또한 이 일을 이지경으로 만든 책임이 정치권에만 있다고 할 수 만 없다. 문제의 원천제공자라고 할 수 있는 기업, 대기업,재벌 그리고 놀고 공짜도시락만 거저 먹으려는 계층 모두가 자성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자유시장경제질서와 사회적시장경제질서를 함께 지키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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