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올림픽이 8월 13일(한국시간) 새벽 폐막식과 함께 13일의 대 장정을 끝맞쳤다. 우려했던 테러등의 불상사가 없이 비교적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을 보면서 한도시에서 3번이나 치러지는 초유의 행사지만 해가 지지않는 나라(?) 영국의 위상이 아직은 좀 남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올림픽 기간동안 한국인으로서 나는 행복을 느꼈다. 13개의 금메달과 세계 5위의 순위를 이룬 한국 팀의 능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아니 대단했다. 시합 하나 하나가 감동의 연출이지만 특히 그 많은 수의 금메달을 보면서 한국인인 나는 뿌듯했다. 미국 중국 영국 러시아 다음으로 한국이 금메달 수에서 5위를 차지하였다. 그 순위와 함께 사격 양궁 체조 등 전에는 기대하기 힘든 종목에서의 금메달은 더욱 뿌듯한 감동을 준다. 특히 양학서 체조선수의 승리 스토리는 나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공교롭게 한일전으로 발전된 축구에서 일본을 통쾌하게 제압하고 동메달을 따는 순간 한국인들은 모두 얼싸안고 춤을 추었다. 모든 한국인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기에 충분한 이벤트들이었다.
생각해보면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세계에서 다섯번째를 이루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 뿌듯한 일이다. 물론 금메달 수로만 순위로 재단하지 말자는 것이 요즘의 추세지만 사실 우리 뒤로 있는 많은 선진국, 큰 나라들을 생각하게 된다. 독일 불란서 이태리 스페인 카나다 일본 등 그 많은 선진국들이 우리 뒤에 있다.
올림픽의 발원지 그리스는 순위경쟁은 커녕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운 경제위기에 있다. 스페인 이태리의 신용등급이 날로 떨어지고 있더니, 이제 독일 네델란드 영국 등의 신용등급도 하향길로 들어서고 있다. '체력은 국력이다' 라는 말은 뒤집어 말하면 국력이 뒷밭침이 되어야 체력이 커지고 올림픽 같은 국제행사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최근 그리스사태에서 발생된 EU국들의의 경제위기는 그것 자체가 동정이 가는 이야기이지만 냉정하게 보면 그들 국가와 국민들 스스로 만들어낸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의 노력보다는 조상들이 이루어놓은 부(富)에 의존하여 절제를 모르는 이들 국가의 오늘과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원래 경제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불란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이웃시장이 침체되면서 자연 생산활동이 저조해지는 독일에 이르기까지 지금 유럽 경제는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유로체제에서 벗어난 영국은 그나마 가지고 있던 글로벌리더십 발휘에서도 한발 물러난 꼴이 되었다. 올림픽이 없었으면 영국은 더 빨리 신용등급의 하향길에 들어 섰을 것이다.
최근의 세계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나는 서구 선진국들의 모습을 '지는 해'에 빗대어 생각하게 된다. 남 안 된 일에 초치는 나쁜 심사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멘토로 삼았던 선진,서구문명의 신화(myth)가 깨지는 것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2차대전 이후 소위 후진국, 개발도상국들은 경제개발과 부흥을 위하여 나름대로 피나는 노력을 하여왔다. 경제계획이나 정책을 수립할 때 서구선진국들의 경험은 후참자들에게는 하나의 가르침이었고 선생님이었다. 특히 독일의 기술개발, 불란서의 정부역할 그리고 영국 그것도 대쳐정부의 지도력 이런 것들은 한국경제개발에 있어서 하나의 산 교과서였다.
그런 나라들이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즉 수술을 하면서 그 속살을 보이게 되었다. 한국의 IMF 때 보다 자기들 끼리라고 훨씬 특혜성 지원을 보내는 IMF 등 국제기관 그리고 서구 국가들의 행동에 내심 속이 뒤틀리기도 하면서 그래도 잘 되기를 바랐지만 이들 국가의 대응능력은 영 아닌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멘토의 속살이 아닌, 아니 우리 속살 만도 못한 모습을 보면서 나는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신화가 깨지는 순간이다.
올림픽 축구시합에서 한국이 영국과 4강진출을 준비할 때 영국축구감독은 '나는 한국 팀을 전연모른다' 라고 인터뷰하였다. 그말은 '내가 저 아래 수인 한국팀을 알 필요가 있느냐 즉 깜도 안되는 한국팀 쯤이야 '하는 오만한 속내을 들어 낸 것이다. 한국팀에 완패한 그의 얼굴이 보고 싶다. 역사상 처음 웨일스 아이랜드등 영국의 연합팀으로 구성하여 더욱 콧대가 높아진 영국팀이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의 단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에서도 그렇다. 21세기 한국의 경제위기 때 한국시장을 가지고 가장 악의적으로 놀았던 금융기관들이 주로 영국 불란서 독일계 은행들이었다. 그들의 뒤에는 Financial Times 등 구라파 언론기관들이 있었다. 그들의 눈에 발전성은 있지만 아직 작아 제맘대로 가지고 놀기에 말랑말랑한 한국경제가 하찮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내가 1980년대 초 경제기획국장으로 있을 때 영국경제를 따라잡을 수 있는 시기를 예측한 일이 있다. 결과는 당시 우리가 모수인 경제규모가 너무 적어 높은 성장률로만 따라잡는 시기를 예측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서 포기한 일이 있었다. 그게 한국경제의 실상이었다.
3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한국과 영국의 경제는 얼마나 격차가 나 있을까? 지금 다시 한국경제가 영국경제를 따라잡을 수 있는 시기를, 방법을 생각하면 옛날처럼 불가능한 일일까? 물론 현재의 대차대조표로는 한국경제가 영국을 , 독일을, 불란서를 당장 제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과 같은 역동성(varieties)을 경제에 불어넣는다면 영국의 축구처럼 될 수도 있지않을까 생각해본다.
한국경제의 멘토였던 일본경제를 생각해 보자. 이제 30년이나 지난 '잃어버린 10년'을 지금도 되풀이하면서 일본경제는 어려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벌써 3년이나 지났나. 후쿠시마원전의 쓰나미 피해 이후 일본인과 일본경제는 자신을 잃은 것 같다. 해마다 바뀌는 정권은 발전의 동력을 찾아 불어넣기에 역부족인 것 같다. 거기다가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는 막연한 지진피해 망상은 시간이 갈 수록 커지는 분위기이다.
세상도 변했다. 무결점 평균상승이 목표였던 대량생산시대는 지나갔다. 속도와 역동성의 시대에 맞는 경제리더십은 아직 일본경제에 찾기 힘들다. 초고령사회에서 안정이 우선인 일본 사회는 새로운 역동성을 심어가기에는 색이 바래버린 것 같다.
러시아도 지는 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현대화 과정으로 이행하려던 고르바쵸프시대는 우여곡절 끝에 푸틴시대를 맞아 다시 독재체제인 구시대로의 회귀 전환된 것 같다. 그렇다고 러시아가 대전 이후 미국과 맞서 양극체제를 구가하던 시대로 돌아가기에는 축적된 국력이 이미 다 소진된 뒤라고 보인다. 옛날의 영화는 중국에게 물려주고, 구시대에 쓰던 아나로그 무기들이 여기저기 흐터져 있는 한낫 개발도상국으로 전락되었다고 해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도 지는 해일까? 여기에는 여러 접근이 최근 나오고 있다. 미국도 이미 대전 이후 50여년 동안 이루어졌던 세계에 대한 절대적 지도력은 상실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경제적인 지도력의 한계는 달러의 기축통화지위 조차 흔들리게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대량생산중심의 아나로그시대를 마감한 현재, 디지털시대에 미국을 능가할 경제적역동성을 가진 나라는 아직 등장하지 않고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일본은 초고령사회로 역동성이 없고, 인도는 비교 되기에는 아직 너무 뒤져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21세기 디지털경제를 이끌 리더십은 미국을 제외하고 아직 찾기 힘든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은 아직 중천에 있는 해라고 평가하는 조지 프리드만의 평가에 손을 들어야 할 것 같다.
중국은 어떤가? 뜨는 해인가 지는 해인가? 최근에 발전이 시작되어 그 엄청난 크기 때문에 단숨에 미국의 맞상대가 되었으니 뜨는 해라고 보아야 하겠다. 그러나 근육과 골격이 아직 다져지지 않은채 풍선처럼 부풀어오른 중국경제는 언제 바람이 빠질지, 골격이 무너질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디지털로의 이행이 느린 그런 모습은 아니다. 그리고 일단 세계의 굴뚝, 세계의 소비를 좌우할 엄청난 크기의 힘이 있다. 이 모습은 해가 뜨기는 떴는데 일찍 폭풍우에 가려 해가 떠오르는지, 이미 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결론은 한국경제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답해야 한다. 한국경제는 일본경제처럼 아나로그적 무결점경제 행태라고 할 수는 없다.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 보여주었던처럼 오히려 디지털경제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가진 경제가 현재의 한국경제라고 할 수 있다. 성격상 무결점을 지향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나 보다 역동적으로 다양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한국경제의 오늘과 내일의 희망섞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뜨는 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런 한국경제의 역동성이 거저 정(正)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역동성은 성격상 실패의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어떻게 하면 이 역동성을 성공으로 연계시킬 것인가는 오늘을 사는 한국사람들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보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자유시장경제질서를 제대로 지켜나가는 지혜와 용기가 있어야 한다. 허울 좋은 '경제민주화'를 토대로 사탕발림식 복지를 내 세우는 것은 오늘의 그리스를 닮아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치열한 경쟁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회를 만들도록 해야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한국정치권이 내 세우는 혹세무민의 인기영합주의적 정책구호에 반대로 가야 한다. 인기영합을 배척하고 원론적 자유경쟁체제를 배양해 가야 한다. 피나는 노력만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보장 받는 것처럼 말이다.
올림픽 기간동안 한국인으로서 나는 행복을 느꼈다. 13개의 금메달과 세계 5위의 순위를 이룬 한국 팀의 능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아니 대단했다. 시합 하나 하나가 감동의 연출이지만 특히 그 많은 수의 금메달을 보면서 한국인인 나는 뿌듯했다. 미국 중국 영국 러시아 다음으로 한국이 금메달 수에서 5위를 차지하였다. 그 순위와 함께 사격 양궁 체조 등 전에는 기대하기 힘든 종목에서의 금메달은 더욱 뿌듯한 감동을 준다. 특히 양학서 체조선수의 승리 스토리는 나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공교롭게 한일전으로 발전된 축구에서 일본을 통쾌하게 제압하고 동메달을 따는 순간 한국인들은 모두 얼싸안고 춤을 추었다. 모든 한국인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기에 충분한 이벤트들이었다.
생각해보면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세계에서 다섯번째를 이루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 뿌듯한 일이다. 물론 금메달 수로만 순위로 재단하지 말자는 것이 요즘의 추세지만 사실 우리 뒤로 있는 많은 선진국, 큰 나라들을 생각하게 된다. 독일 불란서 이태리 스페인 카나다 일본 등 그 많은 선진국들이 우리 뒤에 있다.
올림픽의 발원지 그리스는 순위경쟁은 커녕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운 경제위기에 있다. 스페인 이태리의 신용등급이 날로 떨어지고 있더니, 이제 독일 네델란드 영국 등의 신용등급도 하향길로 들어서고 있다. '체력은 국력이다' 라는 말은 뒤집어 말하면 국력이 뒷밭침이 되어야 체력이 커지고 올림픽 같은 국제행사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최근 그리스사태에서 발생된 EU국들의의 경제위기는 그것 자체가 동정이 가는 이야기이지만 냉정하게 보면 그들 국가와 국민들 스스로 만들어낸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의 노력보다는 조상들이 이루어놓은 부(富)에 의존하여 절제를 모르는 이들 국가의 오늘과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원래 경제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불란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이웃시장이 침체되면서 자연 생산활동이 저조해지는 독일에 이르기까지 지금 유럽 경제는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유로체제에서 벗어난 영국은 그나마 가지고 있던 글로벌리더십 발휘에서도 한발 물러난 꼴이 되었다. 올림픽이 없었으면 영국은 더 빨리 신용등급의 하향길에 들어 섰을 것이다.
최근의 세계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나는 서구 선진국들의 모습을 '지는 해'에 빗대어 생각하게 된다. 남 안 된 일에 초치는 나쁜 심사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멘토로 삼았던 선진,서구문명의 신화(myth)가 깨지는 것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2차대전 이후 소위 후진국, 개발도상국들은 경제개발과 부흥을 위하여 나름대로 피나는 노력을 하여왔다. 경제계획이나 정책을 수립할 때 서구선진국들의 경험은 후참자들에게는 하나의 가르침이었고 선생님이었다. 특히 독일의 기술개발, 불란서의 정부역할 그리고 영국 그것도 대쳐정부의 지도력 이런 것들은 한국경제개발에 있어서 하나의 산 교과서였다.
그런 나라들이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즉 수술을 하면서 그 속살을 보이게 되었다. 한국의 IMF 때 보다 자기들 끼리라고 훨씬 특혜성 지원을 보내는 IMF 등 국제기관 그리고 서구 국가들의 행동에 내심 속이 뒤틀리기도 하면서 그래도 잘 되기를 바랐지만 이들 국가의 대응능력은 영 아닌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멘토의 속살이 아닌, 아니 우리 속살 만도 못한 모습을 보면서 나는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신화가 깨지는 순간이다.
올림픽 축구시합에서 한국이 영국과 4강진출을 준비할 때 영국축구감독은 '나는 한국 팀을 전연모른다' 라고 인터뷰하였다. 그말은 '내가 저 아래 수인 한국팀을 알 필요가 있느냐 즉 깜도 안되는 한국팀 쯤이야 '하는 오만한 속내을 들어 낸 것이다. 한국팀에 완패한 그의 얼굴이 보고 싶다. 역사상 처음 웨일스 아이랜드등 영국의 연합팀으로 구성하여 더욱 콧대가 높아진 영국팀이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의 단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에서도 그렇다. 21세기 한국의 경제위기 때 한국시장을 가지고 가장 악의적으로 놀았던 금융기관들이 주로 영국 불란서 독일계 은행들이었다. 그들의 뒤에는 Financial Times 등 구라파 언론기관들이 있었다. 그들의 눈에 발전성은 있지만 아직 작아 제맘대로 가지고 놀기에 말랑말랑한 한국경제가 하찮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내가 1980년대 초 경제기획국장으로 있을 때 영국경제를 따라잡을 수 있는 시기를 예측한 일이 있다. 결과는 당시 우리가 모수인 경제규모가 너무 적어 높은 성장률로만 따라잡는 시기를 예측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서 포기한 일이 있었다. 그게 한국경제의 실상이었다.
3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한국과 영국의 경제는 얼마나 격차가 나 있을까? 지금 다시 한국경제가 영국경제를 따라잡을 수 있는 시기를, 방법을 생각하면 옛날처럼 불가능한 일일까? 물론 현재의 대차대조표로는 한국경제가 영국을 , 독일을, 불란서를 당장 제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과 같은 역동성(varieties)을 경제에 불어넣는다면 영국의 축구처럼 될 수도 있지않을까 생각해본다.
한국경제의 멘토였던 일본경제를 생각해 보자. 이제 30년이나 지난 '잃어버린 10년'을 지금도 되풀이하면서 일본경제는 어려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벌써 3년이나 지났나. 후쿠시마원전의 쓰나미 피해 이후 일본인과 일본경제는 자신을 잃은 것 같다. 해마다 바뀌는 정권은 발전의 동력을 찾아 불어넣기에 역부족인 것 같다. 거기다가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는 막연한 지진피해 망상은 시간이 갈 수록 커지는 분위기이다.
세상도 변했다. 무결점 평균상승이 목표였던 대량생산시대는 지나갔다. 속도와 역동성의 시대에 맞는 경제리더십은 아직 일본경제에 찾기 힘들다. 초고령사회에서 안정이 우선인 일본 사회는 새로운 역동성을 심어가기에는 색이 바래버린 것 같다.
러시아도 지는 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현대화 과정으로 이행하려던 고르바쵸프시대는 우여곡절 끝에 푸틴시대를 맞아 다시 독재체제인 구시대로의 회귀 전환된 것 같다. 그렇다고 러시아가 대전 이후 미국과 맞서 양극체제를 구가하던 시대로 돌아가기에는 축적된 국력이 이미 다 소진된 뒤라고 보인다. 옛날의 영화는 중국에게 물려주고, 구시대에 쓰던 아나로그 무기들이 여기저기 흐터져 있는 한낫 개발도상국으로 전락되었다고 해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도 지는 해일까? 여기에는 여러 접근이 최근 나오고 있다. 미국도 이미 대전 이후 50여년 동안 이루어졌던 세계에 대한 절대적 지도력은 상실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경제적인 지도력의 한계는 달러의 기축통화지위 조차 흔들리게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대량생산중심의 아나로그시대를 마감한 현재, 디지털시대에 미국을 능가할 경제적역동성을 가진 나라는 아직 등장하지 않고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일본은 초고령사회로 역동성이 없고, 인도는 비교 되기에는 아직 너무 뒤져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21세기 디지털경제를 이끌 리더십은 미국을 제외하고 아직 찾기 힘든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은 아직 중천에 있는 해라고 평가하는 조지 프리드만의 평가에 손을 들어야 할 것 같다.
중국은 어떤가? 뜨는 해인가 지는 해인가? 최근에 발전이 시작되어 그 엄청난 크기 때문에 단숨에 미국의 맞상대가 되었으니 뜨는 해라고 보아야 하겠다. 그러나 근육과 골격이 아직 다져지지 않은채 풍선처럼 부풀어오른 중국경제는 언제 바람이 빠질지, 골격이 무너질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디지털로의 이행이 느린 그런 모습은 아니다. 그리고 일단 세계의 굴뚝, 세계의 소비를 좌우할 엄청난 크기의 힘이 있다. 이 모습은 해가 뜨기는 떴는데 일찍 폭풍우에 가려 해가 떠오르는지, 이미 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결론은 한국경제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답해야 한다. 한국경제는 일본경제처럼 아나로그적 무결점경제 행태라고 할 수는 없다.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 보여주었던처럼 오히려 디지털경제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가진 경제가 현재의 한국경제라고 할 수 있다. 성격상 무결점을 지향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나 보다 역동적으로 다양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한국경제의 오늘과 내일의 희망섞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뜨는 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런 한국경제의 역동성이 거저 정(正)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역동성은 성격상 실패의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어떻게 하면 이 역동성을 성공으로 연계시킬 것인가는 오늘을 사는 한국사람들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보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자유시장경제질서를 제대로 지켜나가는 지혜와 용기가 있어야 한다. 허울 좋은 '경제민주화'를 토대로 사탕발림식 복지를 내 세우는 것은 오늘의 그리스를 닮아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치열한 경쟁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회를 만들도록 해야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한국정치권이 내 세우는 혹세무민의 인기영합주의적 정책구호에 반대로 가야 한다. 인기영합을 배척하고 원론적 자유경쟁체제를 배양해 가야 한다. 피나는 노력만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보장 받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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