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미국대통령의 선거캠페인에 등장하였던 구호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가 자꾸 떠오르는 정치계절이다. 새누리당은 박근혜의원이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었고 민주당은 다음 달 말 쯤 후보 확정행사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가장 관심이 가는 안철수씨는 언제 어떤 형식을 타고 대통령후보로 공식 등판할지 아직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아무튼 안철수와 민주당 대통령후보와의 합종연행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지, 아니면 따로따로 독자행보를 하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따지고 보면 SNS시대 정당정치의 도그마를 깨보자고 달려드는 것 같은 안철수 행보는 좀 생경해 보이기도하고, 그러면서도 무언가 신선한 것 같기도하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새로움에 대한 설레임이 함께 교차하는 현상을 안철수씨를 통하여 본다. 정당이라는 전통의 틀 속에서 꼭 대통령은 만들어져야 하나? 국민후보, 시민후보 이런 이름으로 대통령이 될 수는 없는 것인가?
'그밥에 그나물' 격인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의 꼴 갖지않은 인사들의 작태를 보면 오히려 틀이 없는 국민후보가 훨씬 신선미가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틀이 없으니 어떤모습으로 등단하느냐 하는 것이 첫째 문제로 등장한다. 현행 대통령선거의 틀은 모두 정당을 그 밑바닥으로 깔고 있기 때문에 그 틀 밖의 국민후보는 어떻게 선거를 치러가게 될지 잘 상상이 떠오르지 않는다.
과문한 결과이겠지만 우선 국민후보는 기존 법률이나 제도로 보호되고 기속(羈束)되는 것에 잘 맞지 않을 같다. 선거자금의 지원이나 모든 선거법상의 지위를 얻어 활동하는데 한계가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내 돈가지고 내 능력대로 활동한다고 한다면 못 할 것도 없을 것 같다.
기존정치의 프레임에서 본 안철수 현상의 두려움은 이런 오프라인선상의 문제보다는 오히려 온라인선상의 두려움일 것이다. 그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그를 어떻게든 한몸으로 엮어가고 싶어하는 것이 현재 민주통합당 인사들의 속내일텐데, 현 상태대로 어물어물 가다 어느날 '나는 문재인을 지지하오.' 또는 '손학규를 지지하오'하고 안철수가 대통령후보직을 사퇴할 때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는 혼란과 두려움이다. 그는 이미 그런 전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하고 싶어하던 서울시장을 내용이 무엇이었던 갑자기 박원순이라는 인사에게 넘겨주면서 자기의 환상적(?) 인기를 단수의 지지율에 불과하던 박원순에 덧 입혀줌으로써 서울시민은 무어가 무언지 잘 모르는 가운데 엉겹결에 박원순을 서울시장으로 맞이하게 된 황당한 일을 당하게 하였다.
백보를 양보하여 서울시장은 그렇게 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대통령을 엉겹결에 맞이할 수는 없다. 대통령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고, 국가를 보위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안철수현상을 지금 두려워하는 소이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이시점에서 안철수는 베일을 벋고 정정당당히 국민 앞에 서야 한다. 정치평론가들 중에는 안철수가 이미 대통령후보를 선언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하지만, 해석은 해석이고 현실적 실정법 앞에 책임있게 행동해야 한다. '안철수 생각'같은 연극같은 대사를 버리고 국민 앞에 알몸으로 서야한다. 그게 국민에대한 도리고 예의이다.
8월 20일 새누리당은 박근헤 의원을 대통령후보로 선출하였다. 84%의 압도적 지지율로 당선되었다고 선전하지만 투표율이 40%도 안 되게 낮았던 점을 생각하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다시말해서 박근혜 지지할 사람 중심으로 투표가 이루어졌으니 득표율이야 올라갈 수밖에.
그리고 박근혜의원은 대통령후보 수락연설을 했다. 연설에 등장한 새로운 단어는 '변화' '행복'이런 것들인 것 같다. 그러면서 박근혜는 ' 국민행복을 위한 새로운 제3의 변화'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다. 제3의 변화는 '경제민주화, 복지 그리고 일자리'를 통하여 실현하겠단다. 대개 기대했던 수준의 연설내용이었고, 구성에 고민이 묻어나는 후보로서의 첫번째 대 국민 멧세지였다. 그러나 속좁은 경제전문가의 입장에서는 많은 토를 달고 싶다.
첫째 국민행복이라는 단어다. 우선 3인칭 국민이라는 단어에 추상적인 개념인 '행복'이라는 단어를 복합시켰다. 18세기 영국의 제러미 벤덤에의하여 제기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개념은 개인의 행복의 개념을 넘어 자유경제의 철학을 형성하게 하고, 이어진 제이 에스 밀과 같은 걸출한 경제철학자를 만들어 냈지만 개인의 행복과 공리(功利)는 상충개념으로 발전하였다. 오늘날 미국의 마이클 샌달에 의하여 현대경제에서 개인과 공리등이 구체적인 연구 테마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만큼 논의의 폭과 깊이가 넓고 깊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의 행복은 어떻게 형상화할까? 경제학에서 기피되는 단어가 행복(happiness)과 같은 추상적개념이다. 양심, 고통, 애국심 이런 개념은 객관적으로 계량화 형상화하기가 어렵다. 경제성장이나 물가, 1인당 소득, 소득분배 같은 용어들은 형상화할 수가 있다.
대통령이 국민을 어떻게 행복하게 할 수 있나? 그저 많은 사람이 행복을 느낄것 같은 환경을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국민의 행복을 최대화하는 정책이 될 수는 없다. '행복을 느낄것 같은 환경'은 주관적인 개념이다. 또 이 과정에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의 행복은 무시되어도 되나 하고 센달은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의문은 계속 이어진다. 그래서 이런 단어의 사용을 퍼퓰리즘이라 한다.
둘째 '제3의 변화'라는 이상한 단어를 사용하였다. '제3의 길' '제3의 물결'이런 말은 접해본 일이 있다. 알프레드 기든스의 제3의 길은 이미 퇴색된 개념이고, 최근 제3의 길은 없다고 까지 평가받기도 한다. 좋은 것만 찾아 떠나는 것 같은 개념의 제3의 길은 경제학에서는 없다. 공짜점심(free lunch box)이나 제3의길 같은 것이 국민의 행복과 상통하는 개념일지 모르겠다.
다만 최근 영국의 토니 블레어수상이 들고 나와 다시 주목받게 된 개념이 제3의 길이라고 한 수 있다. 그러나 노동당정부 출신인 블레어 수상이 들고나온 제3의 길은 기든스의 제3의 길과는 다른 개념이다. 오히려 사회주의 성격의 노동당 정강정책에 시장경제를 접합시키고자 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박근혜후보가 이야기하는 제3의 변화를 여기에 대입한다면 거꾸로 시장경제에 사회주의 개념을 도입하고자 하는 기든스의 이론에 보다 접근된 것으로 이미 퇴색된 논리를 들고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알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은 한마디로 단층적 변화를 의미한다. 디지털시대 기존질서와 파라다임을 뛰어넘는 단층적변화를 토플러는 'The third wave'라고 하였다. 박근혜후보가 이야기하는 제3의 변화를 시현시킬 전략으로 내세운 경제민주화, 복지, 일자리창출이 단층적변화를 가져오게 할 수 있나? 아니다. 경제민주화던 복지던 일자리창출이던 모두 공짜점심도 아니고, 단층적변화의 개념이 아니다. 언어의 유희라면 실례일까?
국민의 행복이나 제3의 변화나 정책을 수반하기 어려운 추상적 개념이고,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거론되기에는 너무 모호한 개념들이라는 점에서 안철수 원장의 '철수 생각'이나 박근혜 후보의 국민행복론이 다 거기가 거기인 것 같다.
셋째 국가경영의 기본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이 '국리민복'이다. 국리민복을 추상화하지 말고 보다 정책개념에서 접근해야 한다. 행복이라는 개념도 그런 의미로 쓰고자 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무엇보다 우선 '번영(繁榮)을 가져오는 정책을 구체화해야한다. 클린턴의 구호대로 문제는 경제적 번영이다.
앞으로 다가올 가까운 미래는 지구인들을 어렵게 만들어 갈 것 같다. 리먼사태로부터 시작된 세계경제위기는 5년이 지난 지금도 그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 EU를 비롯한 지구촌은 어디 활짝 웃는 곳을 지금 찾아볼 수 없다.
한국경제 만 이야기하자. 수출이 어렵다. 경제성장이 제자리 걸음이다. 일자리가 늘지 않고 있다. 인구구조는 이미 고령화로 변해가고 있다. 정치권은 지도자 집단으로서 국민의 존경을 잃은지 오래다. 대통령은 잘했다는 말보다 '깜이 아니다'라는 야유를 받을 지경까지 인기를 잃고 있다. 세상은 그야말로 만인대 만인의 투쟁처럼 싸움 판이다.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자영업자는 자영업자대로, 가계는 가계대로 모두가 죽겠다고 야단이다. 고용은 늘어나지 않아 실업자 특히 젊은이들이 갈데가 없다. 일반국민은 어디 처다볼 데가 없다. 물론 세상을 이렇게만 보면 안 된다.
그러나 그런 세상을 반영하듯 한국사회는 과거와 다른 변화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우선 돈이 없는 가계는 돈이 없어 소비를 못하고, 돈이 있는 가계는 장래가 불안해서 못쓰고 있다. 작년 2분기부터 가계의 소비성향이 줄어들고 있다. 가처분소득에대한 소비지출의 비율이 금년 2분기에 74.1%로 이 통계를 작성한 2003년 이후 최저수준이라고 한다. 가계가 지갑을 닫았다고 할 수 있다. 기업은 투자를 하지 않고 현금을 쌓아놓고 있단다. 이통에 기업의 부채비율이 100%이하로 내려갔다니 금석지감이 있다. 기업의 재무구조가 일시적으로 개선되는 것은 좋지만 투자를 하지 않으니 사업이 축소지향적일 수밖에 없고, 신규고용이 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정부는 정부대로 재정건전성 때문에 추경예산 편성같은 수요확장정책을 꺼리고 있다. 총수요가 늘 수 없는 환경이다.
그러니 2012년 한국경제성장률 전망을 여려 기관에서 2% 대로 예측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게 무언가? 정부는 나름대로 다 어려운 판에 한국경제는 그래도 선방하고 있다고 이야기 하고 싶을 것이다. IMF 이후 한국경제는 저성장에 익숙해졌다. 좋게 보면 한국경제가 이미 성숙단계에 들어간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경제운영을 일선에서 오랫동안 맡아왔던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하라면 아직 한국경제는 더 높은 성장세를 유지해야 한다. 오늘 이렇게 된 것은 경제성장기반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허물어저 가는 경제성장 동력을 다시 일으켜세우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5년전 한국인들은 이명박대통령이 이 일을 할 수 있는 경제대통령감이라고 판단하여 그를 압도적으로 지지하였었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이다.
사실 지금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는 국민의 안목에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나라를 팔아먹는 종북주의가 득세하지 않는 한 박근헤던 안철수던 아니 민주당 누구던 사실 별 상관 없다. 대통령이 국가의 지도자이지만 백성의 삶을 책임지지 못한다면 현대국가에서 지도자 자격을 가졌다고 할 수 없다. 사탕발림으로 미운 놈 때리고 어려운 사람 사정 들어주겠다고, 그래서 말로만 국민의 행복을 책임지겠다고 선전해대는 것을 믿을 사람은 없다. 그런 20세기적 정치구호는 이제 한국사회에 먹혀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작년에 펴냈다는 '다시 일터로(Back to Work)'가 생각난다. 이제 다시 한국경제의 활력을 불어넣어 성장동력을 살려나가는 일이 어느 무엇보다 중요하다. 성장 잠재력을 다시 어떻게하면 끌어 올릴 수 있을 것인지 심각하게 생각하여야 한다. 불행히 이런 고민을 하는 정당이나 대통령후보는 지금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이명박대통령의 '7-4-7'같은 정치구호를 반복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실사구시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번 대통령후보의 선거공약은 경제를 살리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다시 일터로'와 같은 한국경제 번영 전략이 나와야 한다. 그런 대통령후보를 내는 곳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정당이던 국민후보던 상관 없다. 나라를 팔아먹지 않는다면 흑묘(黑猫)던 백묘(白猫)던 무에 그리 대수인가?
따지고 보면 SNS시대 정당정치의 도그마를 깨보자고 달려드는 것 같은 안철수 행보는 좀 생경해 보이기도하고, 그러면서도 무언가 신선한 것 같기도하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새로움에 대한 설레임이 함께 교차하는 현상을 안철수씨를 통하여 본다. 정당이라는 전통의 틀 속에서 꼭 대통령은 만들어져야 하나? 국민후보, 시민후보 이런 이름으로 대통령이 될 수는 없는 것인가?
'그밥에 그나물' 격인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의 꼴 갖지않은 인사들의 작태를 보면 오히려 틀이 없는 국민후보가 훨씬 신선미가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틀이 없으니 어떤모습으로 등단하느냐 하는 것이 첫째 문제로 등장한다. 현행 대통령선거의 틀은 모두 정당을 그 밑바닥으로 깔고 있기 때문에 그 틀 밖의 국민후보는 어떻게 선거를 치러가게 될지 잘 상상이 떠오르지 않는다.
과문한 결과이겠지만 우선 국민후보는 기존 법률이나 제도로 보호되고 기속(羈束)되는 것에 잘 맞지 않을 같다. 선거자금의 지원이나 모든 선거법상의 지위를 얻어 활동하는데 한계가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내 돈가지고 내 능력대로 활동한다고 한다면 못 할 것도 없을 것 같다.
기존정치의 프레임에서 본 안철수 현상의 두려움은 이런 오프라인선상의 문제보다는 오히려 온라인선상의 두려움일 것이다. 그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그를 어떻게든 한몸으로 엮어가고 싶어하는 것이 현재 민주통합당 인사들의 속내일텐데, 현 상태대로 어물어물 가다 어느날 '나는 문재인을 지지하오.' 또는 '손학규를 지지하오'하고 안철수가 대통령후보직을 사퇴할 때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는 혼란과 두려움이다. 그는 이미 그런 전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하고 싶어하던 서울시장을 내용이 무엇이었던 갑자기 박원순이라는 인사에게 넘겨주면서 자기의 환상적(?) 인기를 단수의 지지율에 불과하던 박원순에 덧 입혀줌으로써 서울시민은 무어가 무언지 잘 모르는 가운데 엉겹결에 박원순을 서울시장으로 맞이하게 된 황당한 일을 당하게 하였다.
백보를 양보하여 서울시장은 그렇게 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대통령을 엉겹결에 맞이할 수는 없다. 대통령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고, 국가를 보위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안철수현상을 지금 두려워하는 소이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이시점에서 안철수는 베일을 벋고 정정당당히 국민 앞에 서야 한다. 정치평론가들 중에는 안철수가 이미 대통령후보를 선언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하지만, 해석은 해석이고 현실적 실정법 앞에 책임있게 행동해야 한다. '안철수 생각'같은 연극같은 대사를 버리고 국민 앞에 알몸으로 서야한다. 그게 국민에대한 도리고 예의이다.
8월 20일 새누리당은 박근헤 의원을 대통령후보로 선출하였다. 84%의 압도적 지지율로 당선되었다고 선전하지만 투표율이 40%도 안 되게 낮았던 점을 생각하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다시말해서 박근혜 지지할 사람 중심으로 투표가 이루어졌으니 득표율이야 올라갈 수밖에.
그리고 박근혜의원은 대통령후보 수락연설을 했다. 연설에 등장한 새로운 단어는 '변화' '행복'이런 것들인 것 같다. 그러면서 박근혜는 ' 국민행복을 위한 새로운 제3의 변화'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다. 제3의 변화는 '경제민주화, 복지 그리고 일자리'를 통하여 실현하겠단다. 대개 기대했던 수준의 연설내용이었고, 구성에 고민이 묻어나는 후보로서의 첫번째 대 국민 멧세지였다. 그러나 속좁은 경제전문가의 입장에서는 많은 토를 달고 싶다.
첫째 국민행복이라는 단어다. 우선 3인칭 국민이라는 단어에 추상적인 개념인 '행복'이라는 단어를 복합시켰다. 18세기 영국의 제러미 벤덤에의하여 제기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개념은 개인의 행복의 개념을 넘어 자유경제의 철학을 형성하게 하고, 이어진 제이 에스 밀과 같은 걸출한 경제철학자를 만들어 냈지만 개인의 행복과 공리(功利)는 상충개념으로 발전하였다. 오늘날 미국의 마이클 샌달에 의하여 현대경제에서 개인과 공리등이 구체적인 연구 테마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만큼 논의의 폭과 깊이가 넓고 깊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의 행복은 어떻게 형상화할까? 경제학에서 기피되는 단어가 행복(happiness)과 같은 추상적개념이다. 양심, 고통, 애국심 이런 개념은 객관적으로 계량화 형상화하기가 어렵다. 경제성장이나 물가, 1인당 소득, 소득분배 같은 용어들은 형상화할 수가 있다.
대통령이 국민을 어떻게 행복하게 할 수 있나? 그저 많은 사람이 행복을 느낄것 같은 환경을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국민의 행복을 최대화하는 정책이 될 수는 없다. '행복을 느낄것 같은 환경'은 주관적인 개념이다. 또 이 과정에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의 행복은 무시되어도 되나 하고 센달은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의문은 계속 이어진다. 그래서 이런 단어의 사용을 퍼퓰리즘이라 한다.
둘째 '제3의 변화'라는 이상한 단어를 사용하였다. '제3의 길' '제3의 물결'이런 말은 접해본 일이 있다. 알프레드 기든스의 제3의 길은 이미 퇴색된 개념이고, 최근 제3의 길은 없다고 까지 평가받기도 한다. 좋은 것만 찾아 떠나는 것 같은 개념의 제3의 길은 경제학에서는 없다. 공짜점심(free lunch box)이나 제3의길 같은 것이 국민의 행복과 상통하는 개념일지 모르겠다.
다만 최근 영국의 토니 블레어수상이 들고 나와 다시 주목받게 된 개념이 제3의 길이라고 한 수 있다. 그러나 노동당정부 출신인 블레어 수상이 들고나온 제3의 길은 기든스의 제3의 길과는 다른 개념이다. 오히려 사회주의 성격의 노동당 정강정책에 시장경제를 접합시키고자 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박근혜후보가 이야기하는 제3의 변화를 여기에 대입한다면 거꾸로 시장경제에 사회주의 개념을 도입하고자 하는 기든스의 이론에 보다 접근된 것으로 이미 퇴색된 논리를 들고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알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은 한마디로 단층적 변화를 의미한다. 디지털시대 기존질서와 파라다임을 뛰어넘는 단층적변화를 토플러는 'The third wave'라고 하였다. 박근혜후보가 이야기하는 제3의 변화를 시현시킬 전략으로 내세운 경제민주화, 복지, 일자리창출이 단층적변화를 가져오게 할 수 있나? 아니다. 경제민주화던 복지던 일자리창출이던 모두 공짜점심도 아니고, 단층적변화의 개념이 아니다. 언어의 유희라면 실례일까?
국민의 행복이나 제3의 변화나 정책을 수반하기 어려운 추상적 개념이고,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거론되기에는 너무 모호한 개념들이라는 점에서 안철수 원장의 '철수 생각'이나 박근혜 후보의 국민행복론이 다 거기가 거기인 것 같다.
셋째 국가경영의 기본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이 '국리민복'이다. 국리민복을 추상화하지 말고 보다 정책개념에서 접근해야 한다. 행복이라는 개념도 그런 의미로 쓰고자 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무엇보다 우선 '번영(繁榮)을 가져오는 정책을 구체화해야한다. 클린턴의 구호대로 문제는 경제적 번영이다.
앞으로 다가올 가까운 미래는 지구인들을 어렵게 만들어 갈 것 같다. 리먼사태로부터 시작된 세계경제위기는 5년이 지난 지금도 그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 EU를 비롯한 지구촌은 어디 활짝 웃는 곳을 지금 찾아볼 수 없다.
한국경제 만 이야기하자. 수출이 어렵다. 경제성장이 제자리 걸음이다. 일자리가 늘지 않고 있다. 인구구조는 이미 고령화로 변해가고 있다. 정치권은 지도자 집단으로서 국민의 존경을 잃은지 오래다. 대통령은 잘했다는 말보다 '깜이 아니다'라는 야유를 받을 지경까지 인기를 잃고 있다. 세상은 그야말로 만인대 만인의 투쟁처럼 싸움 판이다.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자영업자는 자영업자대로, 가계는 가계대로 모두가 죽겠다고 야단이다. 고용은 늘어나지 않아 실업자 특히 젊은이들이 갈데가 없다. 일반국민은 어디 처다볼 데가 없다. 물론 세상을 이렇게만 보면 안 된다.
그러나 그런 세상을 반영하듯 한국사회는 과거와 다른 변화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우선 돈이 없는 가계는 돈이 없어 소비를 못하고, 돈이 있는 가계는 장래가 불안해서 못쓰고 있다. 작년 2분기부터 가계의 소비성향이 줄어들고 있다. 가처분소득에대한 소비지출의 비율이 금년 2분기에 74.1%로 이 통계를 작성한 2003년 이후 최저수준이라고 한다. 가계가 지갑을 닫았다고 할 수 있다. 기업은 투자를 하지 않고 현금을 쌓아놓고 있단다. 이통에 기업의 부채비율이 100%이하로 내려갔다니 금석지감이 있다. 기업의 재무구조가 일시적으로 개선되는 것은 좋지만 투자를 하지 않으니 사업이 축소지향적일 수밖에 없고, 신규고용이 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정부는 정부대로 재정건전성 때문에 추경예산 편성같은 수요확장정책을 꺼리고 있다. 총수요가 늘 수 없는 환경이다.
그러니 2012년 한국경제성장률 전망을 여려 기관에서 2% 대로 예측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게 무언가? 정부는 나름대로 다 어려운 판에 한국경제는 그래도 선방하고 있다고 이야기 하고 싶을 것이다. IMF 이후 한국경제는 저성장에 익숙해졌다. 좋게 보면 한국경제가 이미 성숙단계에 들어간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경제운영을 일선에서 오랫동안 맡아왔던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하라면 아직 한국경제는 더 높은 성장세를 유지해야 한다. 오늘 이렇게 된 것은 경제성장기반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허물어저 가는 경제성장 동력을 다시 일으켜세우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5년전 한국인들은 이명박대통령이 이 일을 할 수 있는 경제대통령감이라고 판단하여 그를 압도적으로 지지하였었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이다.
사실 지금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는 국민의 안목에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나라를 팔아먹는 종북주의가 득세하지 않는 한 박근헤던 안철수던 아니 민주당 누구던 사실 별 상관 없다. 대통령이 국가의 지도자이지만 백성의 삶을 책임지지 못한다면 현대국가에서 지도자 자격을 가졌다고 할 수 없다. 사탕발림으로 미운 놈 때리고 어려운 사람 사정 들어주겠다고, 그래서 말로만 국민의 행복을 책임지겠다고 선전해대는 것을 믿을 사람은 없다. 그런 20세기적 정치구호는 이제 한국사회에 먹혀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작년에 펴냈다는 '다시 일터로(Back to Work)'가 생각난다. 이제 다시 한국경제의 활력을 불어넣어 성장동력을 살려나가는 일이 어느 무엇보다 중요하다. 성장 잠재력을 다시 어떻게하면 끌어 올릴 수 있을 것인지 심각하게 생각하여야 한다. 불행히 이런 고민을 하는 정당이나 대통령후보는 지금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이명박대통령의 '7-4-7'같은 정치구호를 반복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실사구시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번 대통령후보의 선거공약은 경제를 살리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다시 일터로'와 같은 한국경제 번영 전략이 나와야 한다. 그런 대통령후보를 내는 곳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정당이던 국민후보던 상관 없다. 나라를 팔아먹지 않는다면 흑묘(黑猫)던 백묘(白猫)던 무에 그리 대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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