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 멕시코 대통령 카를로스 살리나스(1988~1994)는 멕시코 경제의 구조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 자유시장경제를 표방하고, 미국 카나다 그리고 남미 대륙과의 개방협력을 추진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이 무렵 생겨난 것이 카나다와의 마지막 협상 타결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시작되었고, 미국과의 무역확대를 위하여 과감한 개방과 국영기업의 민영화정책을 살리나스는 추진하였다. 하바드 정치경제학박사 답게 시장개방을 중심으로 멕시코 경제를 한단계 업그레드 시킬려는 야심에 차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런 살리나스를 '예약된 실패'의 코너로 몰고 간 것은 살리나스 자신의 부패와 이를 응징하기 시작한 사회운동이었다. 살리나스와 그의 가족들은 많은 부패 혐의를 받게되었고 멕시코사회는 이를 정치사회문제화 하기 시작하였다. 그 중심에 살리나스의 북미자유무역협정이 문제제기의 구실노릇를 하였고, 이를 사회문제로 제기하는 데는 물론 법률가들이 앞장을 서게 되었다.
멕시코가 미국 카나다와 FTA를 맺은지 20년의 세월이 흐른 현재의 멕시코경제가 과연 기대만큼 발전하였나? 물론 미국이나 세계를 향한 멕시코의 수출은 괄목할 신장을 하였다. 미국과의 상대적 저임을 바탕으로 한 멕시코의 산업단지는 수적인 면에서 많이 증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에 비하여 30%정도 뒤진 저임수준을 끌어올려 번영을 이루고자 한 멕시코경제는 기대만큼 미국을 따라잡지 못하였다. 오히려 지난 10여년간 멕시코 경제는 2~3% 대의 저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더구나 최근 멕시코에 비하여 더 저임금 수준인 중국시장이 개방되면서 많은 외국기업들은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기 시작하였다. 산업단지에 겨울이 오기시작하였다. 임금개선에 따른 복지기대는 충족되지 못하고 있고, 그나마 소득의 발판이던 외국기업의 탈 멕시코 현상을 보면서 멕시코인들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다.
불만으로 가득찬 멕시코 사회는 그 표적을 미국과의 FTA에서 찾고자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 당시 대통령이었던 살리나스가 응징의 대상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를 앞장서 선동하고 행동에 옮기는 중심에는 자연스럽게 율사들이 등장하였다. 멕시코 정치의 중심에는 언제나 율사들이 판을 치고 있는데 율사들에게 살리나스의 개방정책과 부패는 고기가 물을 맞난 격이 되었다.
대통령 임기를 겨우 맞친 살리나스는 1995년 어느날 뉴욕으로 야반도주를 하게 되고, 그 이후 아이랜드 등지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다. 최근 들어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살리나스는 멕시코를 드나들면서 권토중래를 시도하며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한다고 한다.
한때 '세마리 용'으로 한국보다 오히려 우위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고, 1억이 넘는 인구와 많은 석유생산은 한국경제가 부러워하는 자원부국인 멕시코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2011년 11월 한국정부가 미국과 FTA를 타결하기위한 마지막 시도를 하고 있을 때 한국의 일부 지식인(?)들은 멕시코의 사례를 들어 나라를 거들내는 미국과의 FTA 반대를 외쳐대기 시작하였다. 거기에 더하여 살리나스 형제들의 부패협의에 비교하여 한국의 이명박대통령을 비난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시시비비를 여기서 논하고자 하지 않는다. 다만 객관적인 사실을 가지고 몇가지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첫째 멕시코경제가 NAFTA 때문에 망했나? 멕시코경제의 침하 원인 중에 NAFTA와 관련된 것이 일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수출증대를 통한 경기 부추김도 있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리먼사태 이후 소위 자유주의 그것도 미국이 좋아한다는 '신자유주의'가 경제운영 잘못의 중심에 서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정치경제학적 평가일 뿐이다. 마치 오늘날 유행병같은 '경제민주화', '정부규제확대'의 논의도 그가 갖는 정책의 정(正)의 효과 있는 반면, 다른 부작용이 얼마던지 있다는 것에는 반론이 없는 것과 같다. 더 나아가 오늘날 유행하는 자본주의 1,2,3,4,5가 사회발전의 흐름과 함께 강조점이 변화발전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거꾸로 멕시코가 살리나스 당시 FTA를 하지 않고 정부간섭 중심의 국수적 개발경제 운영(inward looking)을 하였다면 오늘 결과가 더 좋게 나왔을 것이라는 가정이 성립될 수 있을까? 결과를 놓고 이야기 한다면 아니다. 함께 출발한 카나다 경제는 오늘 오히려 미국을 추월할 것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미국과의 FTA 효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떻게 카나다의 FTA는 성공하고 멕시코의 FTA는 실패한 것일까?
둘째 현재 멕시코경제가 더 어려워진 이유중 가장 큰 것은 정치 경제 사회 등 내부갈등에 기인 된 것이 아닌가 나는 그렇게 평가한다. 정파끼리의 싸움을 넘어 사회전체가 서로 못 잡아먹어 아웅다웅하는 동물세계처럼 되어가는 사회가 계속 발전을 해 갈 수는 없을 것이다. 부패와 마약 그리고 살상을 밥먹듯하는 사회를 상정하면 그 사회가 어떻게 바른 발전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더 루이스(Arther Lewis)교수가 말하는 소위 ' 경제하려는 의지(The will of economize)'가 없는데 어떻게 경제가 발전할 수 있나?
한국의 요즘 정치현실을 생각해보자. 지금 한국의 대선정치판은 정책은 없고 서로 비난하고 떼 쓰고 서로 범법했다고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있다. 국회의원이랍시고 자기도 법률위반협의로 기소되어 있는 인사가 입만 열면 상대방의 범법행위를 맹비난하는 이 현실을 보면서 어떻게 한국경제가 올바른 발전과 번영를 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입만 열면 경제민주화, 복지를 외치는 그 인사들은 제대로 세금이나 내본 인사인지, 나라경제가 어떻게 운영되는 것인지 생각해본 일이나 있는지 의구심이 생긴다. 지금 한국경제가 이렇게 지리멸렬한 것은 한미 FTA를 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멕시코처럼 어떻게 하면 망하나 하는 짓만 골라하는 정치판에 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셋째 멕시코 경제가 어려워진 구조적 원인은 국제경쟁력이 떨어진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미국과의 FTA 이후 멕시코에는 자유화의 물결을 타고 많은 다국적기업들이 멕시코에 공장을 세우고 사업을 하였다. 그런 환경이 중국의 개방과 함께 경쟁력에서 뒤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많은 외국기업들은 멕시코를 떠나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였고 이에따라 멕시코의 산업단지는 찬바람이 불어오게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물론 경제자유화의 한 결과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유화는 오는 사람을 막지 말아야 하고 가는 사람을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가지 않게 하는 방법은 경쟁력을 살리는 길밖에 없다. 밤낮 갈등하면서 언제 경제의 경쟁력을 살려갈 수 있을까? 복지한다고 임금 올리고 기술개발은 뒷전인데 어떻게 경쟁력이 살아나나?
한국도 마찬가지다. 경쟁력은 안정과 기술개발에서 찾아야 한다. 사회의 안정, 물가안정, 대외개방, 엄정한 법질서 유지, 이런 것들이 안정의 덕목이다. 기술개발은 밤낮 싸우면서 언제 연구실의 기술개발을 기대할 수 있나? 사회가 기술개발을 칭찬하고 지원하고 키우는 노력을 하지 않고 이공계대학만 가라 한다고 기술이 개발되나? 대기업만 때리고 있는데 이들이 언제 기술개발해서 경쟁력을 가추나? 멕시코의 오늘을 보면서 한국경제의 내일을 본다.
넷째 율사들이 판을 치는 멕시코는 미래보다는 과거만 보는 우를 범하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율사의 속성은 상대방의 미래보다는 과거에 보다 집착한다. 상대방이 과거 무슨 잘못을 하였나, 무슨 법이나 규정을 위반하였나, 이런 것만 생각하지 상대방이 지금까지의 발전을 토대로 미래 무엇을 어떻게 할지는 별로 관심이 없게 마련이다.살리나스는 집권 후는 말할 것 없고 재직시에도 허구헌날 율사들의 과거 들추기에 매몰되어 있었다고 당시 외신들은 전한다.
한국을 보자. 왜 그렇게 많은 검사 판사 출신들이 현직이 끝나자마자 정치권을 기웃대는가? 오히려 정치권에 입문하기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하여 검찰청 법원에 근무하는 것 같다고 하면 너무 심한 매도일까? 물론 거의 대다수는 훌륭한 율사로서 길을 가고 있지만 최근 너무 많은 율사들이 청탁을 가리지 않고 정치권 여기저기에 몸을 의탁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들의 단기적 전문성은 무엇일까? 재직시 알게된 남의 어두운 면에 대한 정보일 것이다. 그들이 새 세상에서 단기적으로 기여하는 것은 남의 부정폭로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세상이 미래지향보다는 과거지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본인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아주 때 안묻은 척한다. 왜 일반관료들은 퇴직 후 일정기간동안 자기가 관여했던 업종에 가는 것을 제한하면서, 왜 율사들은 정치권에 가는 것을 제한하면 안 되나? 전직을 이용해 먹는 것은 일반관료나 율사가 무엇이 다른가?
나는 한국 율사들의 고매한 인격과 직업의식을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회가 앞으로 가기 위해서는 과거의 광정(匡正)보다는 미래지향적으로 변해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이 무렵 생겨난 것이 카나다와의 마지막 협상 타결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시작되었고, 미국과의 무역확대를 위하여 과감한 개방과 국영기업의 민영화정책을 살리나스는 추진하였다. 하바드 정치경제학박사 답게 시장개방을 중심으로 멕시코 경제를 한단계 업그레드 시킬려는 야심에 차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런 살리나스를 '예약된 실패'의 코너로 몰고 간 것은 살리나스 자신의 부패와 이를 응징하기 시작한 사회운동이었다. 살리나스와 그의 가족들은 많은 부패 혐의를 받게되었고 멕시코사회는 이를 정치사회문제화 하기 시작하였다. 그 중심에 살리나스의 북미자유무역협정이 문제제기의 구실노릇를 하였고, 이를 사회문제로 제기하는 데는 물론 법률가들이 앞장을 서게 되었다.
멕시코가 미국 카나다와 FTA를 맺은지 20년의 세월이 흐른 현재의 멕시코경제가 과연 기대만큼 발전하였나? 물론 미국이나 세계를 향한 멕시코의 수출은 괄목할 신장을 하였다. 미국과의 상대적 저임을 바탕으로 한 멕시코의 산업단지는 수적인 면에서 많이 증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에 비하여 30%정도 뒤진 저임수준을 끌어올려 번영을 이루고자 한 멕시코경제는 기대만큼 미국을 따라잡지 못하였다. 오히려 지난 10여년간 멕시코 경제는 2~3% 대의 저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더구나 최근 멕시코에 비하여 더 저임금 수준인 중국시장이 개방되면서 많은 외국기업들은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기 시작하였다. 산업단지에 겨울이 오기시작하였다. 임금개선에 따른 복지기대는 충족되지 못하고 있고, 그나마 소득의 발판이던 외국기업의 탈 멕시코 현상을 보면서 멕시코인들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다.
불만으로 가득찬 멕시코 사회는 그 표적을 미국과의 FTA에서 찾고자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 당시 대통령이었던 살리나스가 응징의 대상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를 앞장서 선동하고 행동에 옮기는 중심에는 자연스럽게 율사들이 등장하였다. 멕시코 정치의 중심에는 언제나 율사들이 판을 치고 있는데 율사들에게 살리나스의 개방정책과 부패는 고기가 물을 맞난 격이 되었다.
대통령 임기를 겨우 맞친 살리나스는 1995년 어느날 뉴욕으로 야반도주를 하게 되고, 그 이후 아이랜드 등지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다. 최근 들어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살리나스는 멕시코를 드나들면서 권토중래를 시도하며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한다고 한다.
한때 '세마리 용'으로 한국보다 오히려 우위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고, 1억이 넘는 인구와 많은 석유생산은 한국경제가 부러워하는 자원부국인 멕시코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2011년 11월 한국정부가 미국과 FTA를 타결하기위한 마지막 시도를 하고 있을 때 한국의 일부 지식인(?)들은 멕시코의 사례를 들어 나라를 거들내는 미국과의 FTA 반대를 외쳐대기 시작하였다. 거기에 더하여 살리나스 형제들의 부패협의에 비교하여 한국의 이명박대통령을 비난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시시비비를 여기서 논하고자 하지 않는다. 다만 객관적인 사실을 가지고 몇가지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첫째 멕시코경제가 NAFTA 때문에 망했나? 멕시코경제의 침하 원인 중에 NAFTA와 관련된 것이 일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수출증대를 통한 경기 부추김도 있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리먼사태 이후 소위 자유주의 그것도 미국이 좋아한다는 '신자유주의'가 경제운영 잘못의 중심에 서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정치경제학적 평가일 뿐이다. 마치 오늘날 유행병같은 '경제민주화', '정부규제확대'의 논의도 그가 갖는 정책의 정(正)의 효과 있는 반면, 다른 부작용이 얼마던지 있다는 것에는 반론이 없는 것과 같다. 더 나아가 오늘날 유행하는 자본주의 1,2,3,4,5가 사회발전의 흐름과 함께 강조점이 변화발전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거꾸로 멕시코가 살리나스 당시 FTA를 하지 않고 정부간섭 중심의 국수적 개발경제 운영(inward looking)을 하였다면 오늘 결과가 더 좋게 나왔을 것이라는 가정이 성립될 수 있을까? 결과를 놓고 이야기 한다면 아니다. 함께 출발한 카나다 경제는 오늘 오히려 미국을 추월할 것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미국과의 FTA 효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떻게 카나다의 FTA는 성공하고 멕시코의 FTA는 실패한 것일까?
둘째 현재 멕시코경제가 더 어려워진 이유중 가장 큰 것은 정치 경제 사회 등 내부갈등에 기인 된 것이 아닌가 나는 그렇게 평가한다. 정파끼리의 싸움을 넘어 사회전체가 서로 못 잡아먹어 아웅다웅하는 동물세계처럼 되어가는 사회가 계속 발전을 해 갈 수는 없을 것이다. 부패와 마약 그리고 살상을 밥먹듯하는 사회를 상정하면 그 사회가 어떻게 바른 발전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더 루이스(Arther Lewis)교수가 말하는 소위 ' 경제하려는 의지(The will of economize)'가 없는데 어떻게 경제가 발전할 수 있나?
한국의 요즘 정치현실을 생각해보자. 지금 한국의 대선정치판은 정책은 없고 서로 비난하고 떼 쓰고 서로 범법했다고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있다. 국회의원이랍시고 자기도 법률위반협의로 기소되어 있는 인사가 입만 열면 상대방의 범법행위를 맹비난하는 이 현실을 보면서 어떻게 한국경제가 올바른 발전과 번영를 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입만 열면 경제민주화, 복지를 외치는 그 인사들은 제대로 세금이나 내본 인사인지, 나라경제가 어떻게 운영되는 것인지 생각해본 일이나 있는지 의구심이 생긴다. 지금 한국경제가 이렇게 지리멸렬한 것은 한미 FTA를 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멕시코처럼 어떻게 하면 망하나 하는 짓만 골라하는 정치판에 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셋째 멕시코 경제가 어려워진 구조적 원인은 국제경쟁력이 떨어진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미국과의 FTA 이후 멕시코에는 자유화의 물결을 타고 많은 다국적기업들이 멕시코에 공장을 세우고 사업을 하였다. 그런 환경이 중국의 개방과 함께 경쟁력에서 뒤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많은 외국기업들은 멕시코를 떠나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였고 이에따라 멕시코의 산업단지는 찬바람이 불어오게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물론 경제자유화의 한 결과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유화는 오는 사람을 막지 말아야 하고 가는 사람을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가지 않게 하는 방법은 경쟁력을 살리는 길밖에 없다. 밤낮 갈등하면서 언제 경제의 경쟁력을 살려갈 수 있을까? 복지한다고 임금 올리고 기술개발은 뒷전인데 어떻게 경쟁력이 살아나나?
한국도 마찬가지다. 경쟁력은 안정과 기술개발에서 찾아야 한다. 사회의 안정, 물가안정, 대외개방, 엄정한 법질서 유지, 이런 것들이 안정의 덕목이다. 기술개발은 밤낮 싸우면서 언제 연구실의 기술개발을 기대할 수 있나? 사회가 기술개발을 칭찬하고 지원하고 키우는 노력을 하지 않고 이공계대학만 가라 한다고 기술이 개발되나? 대기업만 때리고 있는데 이들이 언제 기술개발해서 경쟁력을 가추나? 멕시코의 오늘을 보면서 한국경제의 내일을 본다.
넷째 율사들이 판을 치는 멕시코는 미래보다는 과거만 보는 우를 범하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율사의 속성은 상대방의 미래보다는 과거에 보다 집착한다. 상대방이 과거 무슨 잘못을 하였나, 무슨 법이나 규정을 위반하였나, 이런 것만 생각하지 상대방이 지금까지의 발전을 토대로 미래 무엇을 어떻게 할지는 별로 관심이 없게 마련이다.살리나스는 집권 후는 말할 것 없고 재직시에도 허구헌날 율사들의 과거 들추기에 매몰되어 있었다고 당시 외신들은 전한다.
한국을 보자. 왜 그렇게 많은 검사 판사 출신들이 현직이 끝나자마자 정치권을 기웃대는가? 오히려 정치권에 입문하기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하여 검찰청 법원에 근무하는 것 같다고 하면 너무 심한 매도일까? 물론 거의 대다수는 훌륭한 율사로서 길을 가고 있지만 최근 너무 많은 율사들이 청탁을 가리지 않고 정치권 여기저기에 몸을 의탁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들의 단기적 전문성은 무엇일까? 재직시 알게된 남의 어두운 면에 대한 정보일 것이다. 그들이 새 세상에서 단기적으로 기여하는 것은 남의 부정폭로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세상이 미래지향보다는 과거지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본인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아주 때 안묻은 척한다. 왜 일반관료들은 퇴직 후 일정기간동안 자기가 관여했던 업종에 가는 것을 제한하면서, 왜 율사들은 정치권에 가는 것을 제한하면 안 되나? 전직을 이용해 먹는 것은 일반관료나 율사가 무엇이 다른가?
나는 한국 율사들의 고매한 인격과 직업의식을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회가 앞으로 가기 위해서는 과거의 광정(匡正)보다는 미래지향적으로 변해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댓글 1개:
정말 잘보고갑니다. 좋은지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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