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출신 신학자 칼 라너 (Karl Rahner)는 이렇게 말하였다. 즉 성당이나 예배당에 오지 않지만, 사는 모습이 어딘가 그리스도인과 일맥상통한 사람들을 독일어로 'Anonyme Christen'이라 불렀다. 우리말로 '무명 그리스도 인'이라는 뜻이다. 교적이 없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뜻일 게다. 훗날 종교개혁의 출발점이 된 이런 주장이 당시 사회의 복잡성, 종교계의 부패성의 결과로 인류 앞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도 1960대인지 이런 이야기가 일반인의 삶 가운데 나타났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기억이 정확한지는 좀 자신이 없지만, 내가 고등학교인지 대학에 다닐때인지 잘 분간이 안 가지만, 당시 월간지 '사상계'에서 본 함석헌 선생의 글이 생각난다. 함선생님은 그 글에서 본인이 교회에 다니지 않는 크리스쳔이라고 말하였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분의 말씀은 궂이 교회에 다녀야 기독교인이냐? 성경을 공부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그분은 연세가 들어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고 기술하였다. 칼 라너의 말과 같은 뜻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나는 교회에 다니지 않았고, 기독교나 어느 종교에 대하여도 무관심한 생활을 하였다. 내 주위 누구도 나를 종교에 관심을 가지도록 이끄는 사람도 없었고, 당시만 하더라도 어떻게 하면 밥을 굶지않고 학교에 다니느냐가 더 관심사였던 시기였다. 그런 환경에서 함선생님의 당시 글이 나에게는 많은 가르침으로 다가왔다.
우선 나같이 종교의 종(宗)자도 모르고 사는 사람도 언젠가 종교를 가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기독교던 불교던, 나로서는 그에 대한 책 한권 제대로 읽지못한 무식함과 함께 그저 그날 그날 생활에 고단하기만 한 마음이 전부였다. 함선생의 말씀대로 나도 종교를 가질 수 있고, 또 나중에 늙어 다니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종교인가 그런 천진한 터득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후 한참의 세월이 흘러간 후 나는 막연하게 교회에 한번 가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마음이 실천에 이르게 된데는 두가지 계기가 있었다. 하나는 우선 나는 항상 막연하게 나의 부족함을 그 누구(?)에게 의지하고, 나를 도와주기를 마음 속으로 기도하면서 삶을 살아왔다. 교리도 없고, 기독교인지 불교인지 어느 종교라는 특정지어 생각해 보지 못한 삶을 살고 있었다. 살아갈 수록 삶은 더 어려워지고 의지할 곳은 아무 곳에도 없었다. 종교가 필요한 대목이다. 다음은 나의 장인어른이 독실한 기독교신자이셨기 때문에 그분의 생활을 나는 옆에서 배웠다. 자연 교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래서 나는 교회생활을 시작하였다.
교회에 나가기는 하였지만 나는 성경을 제대로 읽을 기회가 없었고 그럴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였다. 그러나 교회의 성경공부에 참여도 하고, 자연 성경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나는 언제부터인가 성경책을 읽어가기 시작하고, 막연하게 하나님과 예수그리스토에 대한 신앙심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나는 1990년대 초 나의 일생에 시련기를 맞게 되어 자연 성경을 더 많이 읽고 생각하며 생활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이 나에게 성경공부를 더 하도록 기회를 주신 것이다.
그런 내가 이제 70대 중반을 넘어 8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면서 나는 교회를 계속 다녀야 하나 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우선 나이 들면서 내가 뫼시던 목사님도 타계하시고, 젊은 목사님이 오셨는데 어쩐지 마음에 거리가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 해서 교회생활에 거리를 두게되었다. 그럴때 마다 그저 함석헌선생님도 말년에 교회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구실로 삼아 나도 교회에 나가는 것을 점점 멀리하기 시작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인으로서 기본인 기도생활을 멀리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자연 성경을 읽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면서 나는 이것 잘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자괴심도 생겼다.
어쩌면 기도하는 시간은 잘 지키며 하는데, 주님이 내 곁에서 나를 이끌어 주시는 느낌은 전 보다 줄어드는 것 같아, 언제나 걱정도 되고 불안한 마음이 생기기도 하였다. 기도할 때마다 언제나 옆에서 들어주시고 격려해주시는 예수님의 형상이 어떤 때는 멀어져 가기도 하는 것 같은 두려움이 생기기도 한다. 언젠가 길거리에서 만난 옛 동료가 왜 교회에 오지 않느냐고 하길래 '이제 늙은이가 물러나야 되는 것 아니냐'고 대답을 하니, 그 사람 하는 말이 '늙을 수록 더 교회에 나와야지요' 한다. 그 말이 맞는 말 같기도 하고.....
오늘 생각해 보는 칼 라너의 말처럼 '성당이나 예배당에 오지 않지만 사는 모습이 어딘가 그리스도인과 일맥상통하는 그런 '무명그리스토인'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생각해 본다. 그러기 위해 나에게 제일 부족한 것이 예수를 닮는 그런 마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니 언제나 나먼저 생각하고, 행동이 부족한 나다.
마태복음 7장 21절의 말씀처럼 '나에게 주님 주님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나는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는 노력이 부족하다. 그래도 한편에서는 칼 라너의 말처럼 '무명그리스도인'이라도 되고 싶은 욕심을 언제나 내 가슴에 안고 살아가고 있다. 제대로 실천을 하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래도 내가 무명 그리스토인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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