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민정은 2009년 2월 23일 큰 합의를 하였다고 발표하였다. 노동계와 사용자 그리고 시민단체나 종교계 등 시민대표 그리고 정부가 한자리에 모여 사회적대타협을 하였다고 한다. 이름 지어 ‘일자리 창출과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이라 한다.
그 내용이야 이미 모두 짐작이 되는 것이지만 전과 좀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우리 귀에 익숙한 노사정에 하나 더 ‘민’이 추가되었다. 그동안 노사정이 합의한 내용들이(별로 크게 합의한 경우도 드물지만) 잘 지켜지지 않아 이해당사자보다는 증인 격으로 민간사회단체 종교계 지도자들이 이 합의에 포함된 것이라고 짐작이 된다. 그것도 잘된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합의안을 일종의 사회협약을 선언형식으로 한 모양이다. 그 대목은 아직 확실치는 않지만 실무협의에서는 하나의 사회협약으로 선언할 것을 합의하였다고 하는데 최종단계에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그래도 이 내용을 사회에 선언하는 방식으로 하고자 한 것은 그 실천을 강제하고자 노력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번 합의는 2004년 초 노사정이 ‘일자리창출을 위한 노사정대타협’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외견상 다른 점은 민간기구 대표들이 이번에 참여하였고, 지난번에 참여하였던 민노총이 이번에는 빠졌다는 점 정도이다.
이 합의가 나오자 모든 언론은 그 실천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IMF가 나자 김대중정부는 노 사 정이 함께한 국민적 대타협의 기구로 노사정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었다. 그리고 몇 차례에 걸친 협의 노력도 하였지만 실제는 별 성과 없이 돈과 시간만 낭비하는 기구로 연명되었다. 당초 김대중대통령의 속셈에 경제구조개혁을 위한 중요한 개혁의 대상으로 노동계를 대하기보다는 자기와 동지적 입장에서 그 기구를 지원하고 한통속으로 가고자하는 마음이 더 컸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노사정위원회가 중요한 사회개혁의 주체로서 기능을 하였다기 보다는 노동계 상위단체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정치적 입지만 키워나가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노무현정부에 들어와서는 경제구조개선을 위한 개혁은 실종된 채 자고나면 ‘있는 자 없는 자’를 편 가르면서 경제정책의 사회주의화에 온 국력이 소진되었다. 그러다보니 경제는 형편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고 그 결과 실업의 문제가 큰 사회문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래서 2003년 그러니까 노무현정부 1년이 지나면서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책의 하나로 노사정위원회의 국민타협 필요성을 인식하고 2003년 말부터 이 작업이 시작되어 2004년 초 발표되었다. 고용을 하는 중소기업 지원에 보다 중점을 둔 당시의 타협안은 기대와 달리 별 성과 없이 끝나고 말았다. 오히려 민노총 한노총의 정치적 입지만 커져서 모든 일들이 그들의 마음에 따라 회의에 참석하기도 하고, 회의자체를 보이꼬트하기도 하여 왔다. 대 타협의 기본이 경제의 경쟁력을 올리기 위한 능률향상에 두어야 하는데 민노총의 조직원인 대기업 사업장의 불법 파괴적 노동행위는 오히려 더 증가되고 그러니 그런 사업장이 있는 지역경제는 더 황폐화되어 갔다. 일자리 창출과는 거리가 먼 결과를 가져오고 국민은 그런 정권을 외면하였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지 1년 만에 세계적경제위기가 온 지구에 급습하였다. 그 단초야 미국이고 그들이 세계로부터 비난을 받아야 하겠지만 문제는 그로부터 받게 된 타격은 우리 같은 개방경제에 제일 먼저 닥아 왔다. 더구나 아직 발전이 일천하여 그리 뿌리가 튼튼하지 못한 한국경제로서는 너무나 매서운 삭풍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생각하면 국정장악력과 기술이 부족한 이명박정부를 국민이 선택한 것을 후회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지난 정부보다 난 점은 능력이 있든 없던 경제회생을 정책우선순위에 두고 있는 점이라 할 수 있다. 그 와중에 이번의 국민타협이 이루어 졌다. 그것도 민간대표가 참여한 기구가 출범한지 한 달여 만에 이루어진 것은 사안의 시급성을 국민 모두가 인식한 결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 실천을 담보할 수 있느냐이다. 당장의 의구심은 그리되리라는 생각보다는 과거와 같을 것이라는 부정적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다. 우선 이번 협의에 불참한 민노총은 이 합의가 발표되자마자 노동자만을 희생시킨 타협이라고 비난하고 나서고 있다. 2004년에는 참여해놓고도 제대로 추진이 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참여도 하지 않았으니 보나마나 뻔한 속내라고 생각된다. 그것도 최근 성추문에 휘말린 민노총 내부문제를 희석시켜보고자 선명성이나 친 근로자 생색내기에 보다 열을 올릴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또 언론보도에 의하면 진보성향의 사회단체들이 이번 협의에 제외되었다고 하니 참여하지 않은 이유가 어디에 연유하던 이번 협약을 추진하는데 덜 협조적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협약의 실천을 담보하기 위하여 검토되어야 할 몇 가지 사항을 제기하여 보자.
우선 사회적대타협에 법률적 성격을 부여하는 방법은 없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사회협약 성격자체가 법률적이기 보다는 사회구성원들의 의견 합의라는 점에서 법률 성격을 부여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합의는 합의고 돌아서서 이것을 무시하는 행동이 한국사회의 문제라고 본다면 좀 어렵더라도 집행을 법률로 담보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우선 협의기구를 법제화하고 그 기구에서 협의를 만든 것은 그 집행을 의무화하는 방안 같은 것 말이다. 조세의 의무나 병역의 의무처럼 개념적으로 국민의 이름으로 법률적 기구에서 합의를 해 낸 사항은 이를 지켜야 하는 것이 국민모두의 의무로 하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네델란드의 1982년 바젤협약처럼 하나의 사회협약으로 사회전체가 받아드리고 지켜가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한국의 노조문화처럼 탈법과 파괴 그리고 나만 옳고 남의 의견을 타협하기 힘든 문화에서는 실천이 담보되지 않는 사회협약은 의미가 없게 된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그 실천을 담보하는 대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는 정부의 몫이다.
차제에 법을 지키지 않는 문화, 파괴적 폭력집단행동과 같은 일들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운영의 초석을 파괴하는 것이라는 것을 사회가 그 인식에 합의를 해야 할 것 같다. 바로 한달도 안 된 국회의 기물파괴 폭력들을 보고도 그 당시만 이러면 안 된다고 하고 돌아서 잊어버리는 것이 우리네 문화인지 모르겠다. 소위 민주주의를 한다고, 대의정치를 한다고 국민세금으로 월급 받아먹는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이 허구한 날 먹고 놀면서 그것도 부족하여 국민재산을 파괴하고 졸개들을 시켜 법질서에 저항하는 듯한 행동을 하는 국회가 연이어 열게 된 임시국회에서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다시 구태를 되풀이하고 있다. 민주주의에서, 시장경제운영에서 폭력은 그야말로 ‘악의 축’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같은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내가 참여했던 하지 않았던 정당한 기구에서 정당한 절차를 거친 사회협약을 무시하거나 더구나 폭력적 방법으로 이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이제 없어져야 할 것이다. 이것을 국민합의로 만들어야할 것 같다.
다음 노사정협의의 기본철학은 궁극적으로 경쟁력 향상에 있음을 분명히 하여야 한다. 그렇다고 시장실패자나 열위자를 무시하자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생산성에 기초한 임금제는 언제나 지켜져야 할 기본 원칙이다. 요즘 유행하는 쟙셰어링이니 하는 것은 경제원칙보다는 사회정책 차원에서 의미가 있는 정책이다. 한국과 같이 발전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경제가 사회안전망을 제대로 구축하기는 힘 든다. 그 과정에서 시장실패자나 열위자 들에게 사회가 국가가 따뜻한 손길을 뻗어야함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고용이나 임금정책 등이 그 기본인 경쟁력, 생산성 같은 것을 무시할 수 없음을 분명하게 하고 가야 한다. 이번의 경우에도 사회협약을 체결하고 돌아서자마자 노총과 경총의 협약 해석에 차이가 있는 것 같은 모양새가 나오면 실천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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